漢詩와 漢文

麥秀之歎(맥수지탄)

구글서생 2023. 4. 25. 03:23

麥秀之歎(맥수지탄)

其後箕子朝周,過故殷虛,感宮室毀壞,生禾黍,箕子傷之,欲哭則不可,欲泣為其近婦人,乃作麥秀之詩以歌詠之。其詩曰:
「麥秀漸漸兮, 禾黍油油。
彼狡僮兮, 不與我好兮!」

그 이후 기자가 주왕을 배알하기 위해 옛 은나라의 도읍지를 지나가다가, 궁실은 이미 파괴되어 거기에 곡식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슬픈 생각이 들어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할 수 없고, 울먹이자니 아녀자의 꼴이 되는 듯하여, “맥수(麥秀)”라는 시를 지어 그것을 노래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보리 이삭은 잘 자랐고, 벼와 기장은 싹이 올라 파릇하구나.

개구쟁이 어린애야! 나하고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였지.”

 

所謂狡童者,紂也。

소위 개구쟁이 어린애는 바로 은나라의 주왕을 가리킨다.

 

殷民聞之,皆為流涕。<史記 宋微子世家>

은나라 백성들이 그것을 듣고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秀: 이삭

▶狡: 교활하다. 사납다. 어긋나다.

▶僮: 아이, 하인

 

중국(中國)의 대표적(代表的)인 폭군(暴君)으로 알려진 주왕에게도 충신(忠臣)은 있었습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의 세 명(名)으로,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에 이들에 대(對)한 기록(記錄)이 있습니다.

 

微子去之 箕子為之奴 比干諫而死.
미자(微子)는 떠났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었으며, 비간(比干)은 간(諫)하다가 죽었다.

孔子曰, 殷有三仁焉.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길, ‘은(殷)나라에는 세 명(名)의 인자(仁者)가 있었다’라고 하셨다.

 

주왕의 이복(異腹) 형(兄)이었던 미자(微子)는 주왕에게 간(諫)하여도 들어주지 않자 다른 나라로 망명(亡命)하였습니다.

주왕의 친척(親戚)이었던 기자(箕子)는 간하여도 들어주지 않자 광인(狂人) 행세(行世)를 하며 숨어 지냈습니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주왕의 친척이었던 비간(比干)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結局) 주왕에게 죽임을 당(當)했습니다.

세 명의 충신이 사라지자 주왕의 폭정(暴政)도 얼마 가지 못하고 주나라의 무왕에게 멸망되었습니다.

뒷날 기자가 은나라의 도읍(都邑)이었던 곳을 지나가다가 화려(華麗)했던 옛 모습은 사라지고 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광경(光景)을 보고 시(詩)를 지었는데, 맥수지탄(麥秀之嘆)은 이 시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