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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와 漢文

鐵原懷古-姜淮伯

耽古樓主 2025. 2. 9. 11:19

鐵原懷古-姜淮伯

山含故國千年恨,  雲抱長空萬里心.
自古興亡皆有致, 願因有轍戒來今.

산은 지난 왕조의 천년한을 머금었고, 구름은 드넓은 하늘에 만리심을 품었구나.

예부터 나라의 흥망에 다 까닭이 있나니, 지난 잘못을 거울삼아 앞날을 경계할지니라.

 

감상

 

고려말의 학자 강회백(姜淮伯)이 지은 '철원회고(鐵原懷古)'라는 제목의 시이다.

철원은 그 옛날 궁예(弓裔)가 태봉국을 세우고 황제로 군림하면서 북벌의 큰 꿈을 키우던 곳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태봉국에서 고려로,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옮기면서 흥망을 거듭하였다. 한 왕조가 무너지고 새 왕조가 그 뒤를 잇는 것은 역사 발전의 규율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속에서 교훈을 읽어내며, 어리석은 사람은 전철(前轍)을 밟는다.

 

작자-강회백(1357-1402)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보(伯父), 호는 통정(通亭). 할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강군보(姜君寶)이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 성균좨주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 · 부사 · 첨서사사(簽書司事)를 역임하였다.

1385년에는 밀직부사로서 명나라에 갔다온 김유(金庾)를 찬성사(贊成事) 우현보(禹玄寶)와 함께 국문하였다. 혐의는 김유가 명나라에서 우왕의 혈통 문제를 발설했다는 것이다. 이후 12월 명나라에 갔다.

1388년 창왕이 즉위하자 밀직사로 부사 이방우(李芳雨)와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뒤에 창왕을 폐할 때 지밀직(知密直) 윤사덕(尹師德)과 함께 부고(府庫)를 봉한 공이 있어, 1389년공양왕이 즉위하자 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 해에 조준(趙浚) 등과 함께 세자사부에 임명되었으나 나이 어린 것을 이유로 사퇴하였고, 이어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이조판서를 겸임하였다.

 

이 때 상소하여 불교의 폐해를 논하고 한양천도를 중지하게 하였으며, 이어 교주 · 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로 나갔다가 돌아와 정당문학 겸 사헌부대사헌(政堂文學兼司憲府大司憲)이 되었다.

 

이 때 정몽주(鄭夢周)의 사주를 받은 간관 김진양(金震陽) 등이 조준 · 정도전(鄭道傳) 등을 탄핵할 때 이에 동조, 대관을 거느리고 상소하였는데, 1392년 정몽주가 살해당하자 처음에는 막내아우인 강회계(姜淮季)가 공양왕의 사위였기 때문에 탄핵을 면하였으나, 곧 진양(晉陽)에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398년(태조 7)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다. 저서로는 『통정집(通亭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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