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蘭亭序(난정서) 원문 및 해설

耽古樓主 2023. 3. 8. 05:32

蘭亭序

중국 역사상 수많은 서예작품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는 것은 무엇일까?
단연 王羲之의 行書 蘭亭序인데 이것에 대하여 알아보자.
유구한 중국의 역사에서도 글씨와 문장이 똑같이 빼어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蘇東坡가 짓고 직접 쓴 [赤壁賦]와 이 [난정서]를 꼽는다. 그만큼 [난정서]는 서예에서 뛰어날 뿐 아니라 문장으로서도 명문이다.
이제 그 유려한 문장과 아름다운 필적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원문은 [神龍本]의 글자를 따르되, 문장만을 볼 때 많은 사람이 참조하는 古文眞寶의 글자와 다른 부분은 주석으로 표시하였다.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於會稽山陰之蘭亭, 脩禊事也.
永和 9년 계축년(353년), 3월 초승에 會稽 山陰縣의 蘭亭에 모여서 禊事를 행하였다.
▸脩禊: 『고문진보』에는 修禊

 

群賢畢至, 少長咸集.

賢士들이 다 모이고 소년과 장년이 모두 모였도다.

此地有崇山峻領, 茂林脩竹, 又有清流激湍, 暎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列坐其次.
이곳은 높은 산과 가파른 고개, 무성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가 있으며, 또 맑은 물과 격동치는 여울이 허리띠를 두른 듯이 좌우로 이어지고, 春光이 그 위에 반짝이며 흐르고 있으매, 이 물줄기를 끌어다가 流臨曲水를 만들고 차례에 따라 벌려 앉았다.
▸流傷曲水: 술잔을 띄워 보낼 수 있는 물굽이
▸峻領: 고문진보에는 峻嶺으로 쓰여 있다. 의미로 보아 '嶺'을 쓰는 게 맞지만, 원문에서 '領'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는 서로 글자를 통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당나라 때 쓰여진 臨本 가운데 특히 褚遂良의 임본 중에는 ‘嶺’으로 쓰여진 것이 다수 있다. 이러한 임본들을 일컬어 [領字從山本], 즉 ‘山자 아래에 領자를 쓴 판본’이라 부른다.
▸暎帶: [고문진보]에는 映帶로 쓰여 있다. 의미는 같다

 

無絲竹管弦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叙幽情.
비록 絲竹管絃의 성대한 연주는 없으나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조리니 그윽한 마음속 情懷를 풀어내기에 足하도다.
▸管弦: 고문진보에는 ‘管絃’으로 쓰여 있다. 의미는 같다.

 

是日也, 天朗氣清, 惠風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所以遊目騁懷, 足以極視聽之娛信可樂也.
이날이야말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大氣는 맑았으며, 봄바람은 따스하고 부드럽게 불었는데, 우러러 宇宙의 넓음을 觀望하고, 굽혀서 만물의 풍성함을 살펴보니, 눈가는 대로 바라보다가 想念의 나래를 펴기도 하며,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니, 실로 즐겁기 그지없노라.

 

夫人之相與, 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무릇 사람들이 서로 더불어 一世를 俯仰함에, 어떤 이는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가지고 마주 앉아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기도(悟言)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신을 맡겨, 육체의 밖에서 자유롭게 노닐기도 한다.

(무릇 인간이 서로 더불어 한 세상을 살아감에, 어떤 사람은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 좁은 방 안에서 깨달은 바를 토론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도교의 가르침을 받아 세상이나 육신의 속박을 벗어나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雖趣舍萬殊 靜操不同, 當其欣於所遇蹔得於己, 怏然自足不知老之將至.

비록 취향은 만 가지로 다르고 성격에 따라 조용함과 시끄러움(靜操)이 같지 않지만, 자신이 처한 경우가 기쁘면, 잠시나마 자신의 뜻을 얻었다고 自得하여, 곧 늙음이 닥쳐옴도 모르고 지낸다.

▸趣舍: 고문진보에는 取舍
▸ 蹔得: 고문진보에는 暫得
▸怏然: 快然의 誤記이냐에 관하여 논란이 있다.
▸不知老之將至: 고문진보에는 ‘曾不知老之將至’로 曾을 덧붙여 놓았다.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 

그러나 그의 위치에 권태를 느끼거나, 감정이 사태에 따라 옮겨가면, 여러 가지 감회가 이어 나온다.

向之所欣, 俛仰之間, 以爲陳迹, 尤不能不以之興懷.

이전의 즐거웠던 일이 잠깐 사이에 낡은 자취가 되어버리니,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문진보에는 猶不能不以之興懷를 尤不能不以之興懷로 표기함.

 

況修短隨化, 終期於盡, 古人云死生亦大矣, 豈不痛哉.

하물며 (목숨이) 길건 짧건 자연의 조화를 따라 마침내 다함을 기약함에랴! 옛사람이 生死는 매우 큰 일이라고 말하였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未嘗不臨文嗟悼, 不能喩之於懷.

나는 옛사람들이 감회를 일으켰던 까닭을 알게 될 적마다, 마치 두 개의 符節을 하나로 맞춘 듯 내 생각과 똑같음을 깨달았으므로, 고인의 문장을 대함에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정회를 표현할 수가 없었다.

▸每攬: 고문진보에는 每覽으로 쓰여 있다. 攬은 왕희지의 증조부의 이름(王覽)을 諱한 것.

 

固知一死生爲虛誕 齊彭殤爲妄作.

生死를 同一視함이 虛荒되고, 彭祖와 殤을 같다고 함도 망언임을 잘 알고 있다.

 

後之視今, 亦由今之視昔, 悲夫!
후세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옛날 사람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슬프도다!
▸亦由今之視昔: [고문진보]에는 ‘亦猶今之視昔’으로 기재함. 由와 猶는 통용된다.

 

故列敘時人錄其所述.
雖世殊事異, 所以興懷其致一也, 後之攬者 亦將有感於斯文.
고로 연회에 참석한 지금 사람들을 순서대로 列記하고, 이들이 지은 시를 수록한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사정이 변할지라도 사람이 感懷에 젖게 되는 까닭은 한가지이매, 훗날 이 글을 보는 사람도 (내가 석숭의 옛 문장에 감회를 느끼듯) 이 글에서 감회를 가질 터이다.
▸攬者: 고문진보에는 覽者로 기재됨. 왕희지는 王覽의 증손자이므로 覽을 쓰지 못하고 攬을 씀.

 

 

 

後集12-蘭亨記(난정기)-王羲之(왕희지)

後集12-蘭亨記(난정기)-王羲之(왕희지)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 永和 9년 계축년(353년), 3월 초승에 會稽 山陰縣의 蘭亭에 모여서 禊事를 행하였다. ▶ 永和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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