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陋室銘(누실명) - 劉禹錫(유우석)

耽古樓主 2023. 3. 8. 05:42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斯是陋室, 惟吾德馨.
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可以調素琴閱金經.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
孔子云何陋之有.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살면 명산이라 하고,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살면 신령스럽다 한다.
여기 이방은 누추하지만 오직 나의 덕은 향기롭다.
이끼는 섬돌까지 올라 푸르고 풀빛은 주렴에 들어와서 푸르다.
훌륭한 선비들과 담소를 나누고, 천박한 자들과 교제하지 않으니,거문고 연주하고 금경 읽기에 알맞도다.
관현악의 시끄러움도 없고, 관청서류를 읽는 고역도 없으니, 남양의 諸葛孔明의 초가집이요, 西蜀 揚子雲의 정자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지, '군자가 살고 있으니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라고.

 

 해설

누실(陋室)'누추한 집'이라는 뜻이며, '()'은 대개 쇠북이나 솥, 비석 따위에 스스로 경계하거나 남의 공덕을 길이 잊지 않기 위하여 지은 문장의 한 종류를 말한다.

작자는 누추한 집에 살지만 덕()의 향기로 가득 채우겠노라며 자신이 놓인 초라한 환경에 굴하지 않는 기개를 드러내면서, 일세를 풍미한 촉나라의 제갈량(諸葛亮)과 한나라의 양웅(揚雄)이 살던 초라한 집을 언급하여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나아가 마지막 구절에서는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을 그와 같은 군자(君子)로 끌어올리고 있다.

논어(論語)의 자한(子罕)편에 공자가 구이(九夷) 땅에 거하려고 하였을 때 누군가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하자 공자는 군자가 사는 곳에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구절이 있다.

[논어집주] - 論語集註 子罕 第九(논어집주 자한 제구) 第十三章

 

論語集註 子罕 第九(논어집주 자한 제구) 第十三章

▣第十三章 子欲居九夷。 孔子께서 九夷에 살려고 하시니, 東方之夷有九種。 東方의 夷族에는 아홉 종족이 있다. 欲居之者,亦乘桴浮海之意。 欲居之란 또한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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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석(劉禹錫, 772 ~ 842)

유우석(劉禹錫 : 서기 772 서기 842 )의 자()는 몽득(夢得)이며 팽성(彭城 : 현재 하남성 낙양(洛陽)) 출생이다. 태종(太宗) 정원(貞元) 년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태자빈객(太子賓客) 겸 검교예부상서(檢校禮部尙書)를 최후로 생애를 마쳤다. 시문집으로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 30권과 외집(外集) 10권이 있다.

유우석(劉禹錫)은 당나라 중엽의 걸출한 문학가요 정치가이며 초기 유물주의 사상가였다.

문학상으로는 시문(詩文)과 시가(詩歌)에 출중하였으며 한의학에도 정통하였다. 일생동안 한의학을 좋아하여 의방(醫方)과 의술(醫術) 연구에 정진하였다. 그리하여 유우석(劉禹錫)은 수 많은 의난병증(疑難病症 : 진단하기 어렵거나 치료가 힘든 병)을 치료하였다.

유우석(劉禹錫)의 명방(名方)들은 이름을 떨쳤으며 현재 중의대사전(中醫大辭典) 안에 의사문헌분책(醫史文獻分冊)84 쪽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의 의료행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후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 약재(藥材)와 약학(藥學)에 관한 책을 편수(編修)하였다.

유우석(劉禹錫)선재의호(善哉醫乎)! 용독이공진(用毒以攻疹), 용약이안신(用藥以安神), 역즉양지명의(易則兩,明矣).” 라고 외쳤다. 다시 말하면 독약을 사용하여 발진을 치료하고 약으로 정신을 안정시키지만 두 가지 약을 바꾸어서 치료하면 실패한다. 고로 의학이론을 잘 이해하고 의술에 익숙해야 마땅하니라!” 는 뜻이다.

즉 약성(藥性)이 온화(溫和)하고 부드러운 약과 약성이 맹렬한 약의 사용에 엄격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두가지 약을 변경하여 치료하면 부작용이 크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유우석(劉禹錫)은 사람에 따라 처방이 달라야 하고 병정에 따라 처방이 각각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유우석(劉禹錫)은 수 많은 처방들을 폭넓게 취하고 모든 의가(醫家)의 장점을 취하며 백성들을 질병으로 부터 예방해 주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경험을 총괄하라고 설명했다. 유우석(劉禹錫)은 평소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한약방을 학교 등교하듯 들락거렸으며 한약방 주인들로 부터 얻은 경험을 일일히 기록해 두었다. 유우석(劉禹錫)은 백성들의 질병을 예방하고 질병을 치료하면서 스스로 얻은 주옥같은 임상경험들을 통해서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누적된 처방들을 재 수집 정리하여 "전신방(傳信方)" 을 편성(編成)하였다. 실로 유우석은 민간에서 사용하는 약방(藥方)들을 수집하기 위하여 방방곡곡을 돌아 다녔다.

유우석(劉禹錫)이 수집한 대다수의 처방들은 효과가 영험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며 값이 싸기 때문에 험(), (便), ()의 원칙에 부합된 것들 이었다. 그러므로 당나라 때와 송나라 때 한의사들이 유우석(劉禹錫)의 처방을 긴요하게 잘 사용했었다.

유우석(劉禹錫)이 구기자(枸杞子)를 예찬한 시() 한 수를 읽어보면 유우석(劉禹錫)의 약학 지식이 얼마나 깊고 넓은 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승방약재의색정(僧房藥材依塞井), 정유향천수유영(井有香泉樹有靈).

취대엽생롱석추(翠黛葉生籠石), 은홍자숙조강병(殷紅子熟照鋼甁).

지번본시선인장(枝繁本是仙人杖), 근노신성서견형(根老新成瑞犬形).

상품공능감로미(上品功能甘露味), 환지일작가연령(還知一勺可延齡).”

다시 말하면

승려들이 사용하는 약재는 우물 물을 사용한다. 우물 물에서는 향내가 나고 그 향내음은 영()이 들어있는 나무로 부터 나온다.

미인의 눈썹과 같은 구기자의 잎사귀와 가지들은 돌로 쌓아놓은 우물의 벽을 삥둘러 서 있고, 풍성하게 잘 익은 진홍색(眞紅色) 구기자는 스테인레스 병에 비추이는 것과 같이 우물물 위에서 번쩍거리누나!

무성하게 자란 구기 나무의 뿌리는 선인들의 지팡이라! 오래된 구기 나무의 뿌리는 상서로운 개의 모양과 비슷하다.

구기자는 상품에 속하는 약의 효력을 나타내고 달콤한 구기자의 맛은 영액(靈液)의 맛이라!

일작의 구기자를 복용하면 인체를 건강하게 해주고 수명을 늘려준다는 것을 알지어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작()은 고대 용량의 단위로써 일작(一勺)은 일승(一升)100 분의 1 이며 일승(一升)1000g 이다.

약물학 전저(專著) 신농본초경에 보면 모든 약물을 상품, 중품, 하품으로 분별하여 놓았다. 그리고 상품 한약은 대부분 경신연년(輕身延年), 보익공효(補益功效)가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구기자는 상품에 속해 있는 한약이다.

구기(枸杞), 구복견근골(久服堅筋骨), 경신불로(輕身不老)”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구기자를 장복하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 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장수한다.” 는 뜻이다.

그래서 유우석은 상품공효(上品功效)” 란 구절을 구기자 예찬시에 인용하였다.

구기자를 복용하면 신선(神仙)이 된다는 전설은 대단히 많이 있다. 독신선전(讀神仙傳)에 보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날 주유자(朱孺子)가 산에 채약(采藥)하러 올라갔다. 두 마리의 어린 강아지가 잎이 무성한 나무 옆에서 서로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주유자(朱孺子)는 즉시 노스승에게 이와 같이 이상한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스승을 모시고 그 나무 밑에 다달았다. 그런데 어린 강아지들은 간데 온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주유자(朱孺子)는 나무 밑을 파기 시작했다. 두 개의 뿌리를 캐내었다. 어린 강아지 모양의 뿌리는 튼튼해 보였다. 주유자(朱孺子)는 이 뿌리를 깨끗이 씻어 먹었다. 갑자기 주유자(朱孺子)는 신선이되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유우석(劉禹錫)지번본시선인장(枝繁本是仙人杖)” 이라고 시를 읊었다. 다시 말하면 가지가 무성한 나무의 뿌리는 선인장이라는 뜻이다.

 

시인으로도 유명하여 위응물, 백거이와 더불어 삼걸(三傑)’로 불렸다. 만년에 백거이와 시를 교류하며 지내 유백(劉白)’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우석은 민간의 생동감 있는 감각을 시로 승화시켰다. 시풍이 참신하고 민가의 특성이 농후했다. 특히 호방한 시의(詩意) 때문에 시호(詩豪)’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또한 많은 책을 소장하여 천 일을 술에 취해 있고, 서른 수레의 책을 보관하고 있다.”라는 평을 들었다. 저서로 유몽득문집(柳夢得文集) 30권과 외집(外集) 10, 유빈객집(劉賓客集)이 있다.

농민의 생활 감정을 노래한 죽지사(竹枝詞)를 펴냈고, 유지사(柳枝詞)와 삽전가(揷田歌) 등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