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蘇東坡의 詩詞 2수 본문
蘇東坡의 詩詞 2수
東欄梨花
梨花淡白柳深靑(이화담백류심청) 柳絮飛時花滿城(류서비시화만성)
惆悵東欄一株雪(추창동란일주설) 人生看得幾淸明(인생간득기청명)
배꽃은 맑고 희며 버들은 짙푸르네, 버들개지 날릴 때면 배꽃은 성에 만발하네
슬프구나 동쪽 난간 한 그루의 흰 배꽃, 살면서 맑고 밝은 저 꽃을 몇 번이나 볼 것인가?
○ 柳絮(유서) : 버드나무의 꽃, 버들개지
○ 惆悵(추창) : 근심하고 슬퍼함
○ 淸明(청명) : 맑고 밝음. <청명절>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해설
이 시는 <東坡全集>에 ‘和孔密州五絕·東欄梨花’라는 제목으로 실려있으며 소동파가 후임인 孔宗翰 密州知州의 오언절구에 답한 것이다.
소식은 혁신 정치 세력에 밀려 杭州, 密州( = 현 山東省 諸城), 徐州( = 현 江蘇), 湖州( = 현 浙江) 등의 지방관을 주로 역임하였다.
작자 - 蘇軾
蘇軾 (1037년~1101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字는 子瞻이고 호는東坡居士이다. 흔히 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 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동파의 시는 송(宋)나라 때부터 중국은 물론 고려나 요(遼)나라 같은 이웃 나라에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만큼 독자의 수요에 부응하여 그의 시집 역시 송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줄곧 간행되어 왔으며, 이 가운데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도 아주 많다.
소동파(蘇東坡)가 우리 문단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그러기에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세상의 학자들이 처음에는 과거시험에 필요한 문체를 익히느라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시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소동파 시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매년 과거의 방이 나붙은 뒤에 사람마다 금년에 또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다고 여긴다”
라고 했고,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는 오로지 만당(晩唐) 시만 익혔고 고려 중엽에는 오로지 소동파 시만 배웠다”
라고 했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과 동생 김부철(金富轍)의 이름이 소동파(본명 軾)와 소철(蘇轍) 형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소동파에 대한 우리 문인들의 추앙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소동파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黃州定慧院客居作
缺月挂疎桐 漏斷人初靜 誰見幽人獨往來
縹渺孤鴻影 驚起却回首 有限無人省
揀盡寒枝不肯棲 寂寞沙洲冷
조각달 성긴 오동나무에 걸리고 물시계 끊어지고 인적 또한 끊겼는데
누가 보았는가 유인이 홀로 서성임을.
아스라이 외로운 기러기 때문에 홀로 놀라 일어나 고개 돌려보니
한만 남되 보이는 사람 없으니
찬가지에 깃들기를 용남치 않음인가
적막한 사주 땅 차갑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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