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70-辛毗引裾(신비인거) 본문
by 耽古書生
辛毗引裾- 辛毗가 옷자락을 당기며 급하게 諫言하였다.
魏志
<魏志>에 일렀다.
辛毘字佐治 穎川陽翟人.
辛毘의 자는 佐治이니, 穎川 陽翟 사람이다. ▶辛毗: 신평의 동생이다. 원담을 섬기다가 조조에게 투항하고 신평의 가족을 몰살한 심배를 조조에게 읍소하여 죽게 한다. 사민정책 반대, 사냥 절제, 오나라 정벌 반대, 궁궐신축 반대,권신에게 아부하지 않음, 정월 개정 등 위나라의 정치에 기여한 바가 컸다.<삼국연의>에서는 220년 조조가 죽고 맏아들 조비가 조조의 뒤를 잇자, 화흠,왕랑 등과 함께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에게 양위를 강요하는 것으로 나온다.
文帝踐阼 遷侍中.
文帝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侍中으로 옮겼다.▶踐阼: 亦作“践胙”、“践祚”。即位;登基。
帝欲徙冀州士家十萬戶實河南.
문제는 冀州의 士家 10만 戶를 옮겨다가 河南을 채우고자 하였다. ▶士家: 魏晋时,职业士兵的家庭称为士家。士家子弟世代为兵。
時連蝗民饑.
이때 해마다 계속해서 蝗蟲으로 인하여 백성이 굶주렸다.
群司以爲不可. 而帝意甚盛.
百官이 옳지 않다고 여겼으나 황제의 뜻은 몹시 완강했다.▶群司:百官
毘與朝臣俱求見. 帝知其欲諫作色以見之. 皆莫敢言.
신비는 조정 신하들과 함께 알현하기를 요청하였으나, 황제는 신하들이 간언하려 함을 알고 노한 기운을 띠며 만나니,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毘曰
陛下不以臣不肖 置之左右 厠之謀議之官.
安得不與臣議.
臣所言非私 乃社稷之慮也.
신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臣을 못났다고 여기시지 않고 좌우에 두시어, 일을 도모하는 관원속에 두었사옵니다.
어찌 신과 의논하지 않으십니까?
신이 말하는 바는 사사로운 일이 아니옵고, 곧 社稷을 걱정함이옵니다.”▶厠: 뒷간. 침상의 주위. 섞다.
帝不答 起入內.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서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毘隨而引其裾. 帝遂奮衣不還.
신비는 따라가면서 그 옷깃을 당겼으나, 황제는 즉시 옷을 뿌리치고 돌아오지 않았다.▶裾:옷자락
良久乃出曰
卿之我何太急邪.
한참 만에 나와서 말하였다.
“卿은 朕에게 어찌 그토록 급하게 구는가?”
毘曰
今徙旣失民心. 又無以食.
신비가 말하였다.
“지금 백성들을 옮기면 民心을 잃게 되고, 또 먹을 것도 없습니다.”
帝遂徙其半.
황제는 드디어 그 절반만을 옮기었다.
嘗從帝射雉. 帝曰
射雉樂哉.
일찍이 황제를 따라 꿩을 사냥하는데, 황제가 말하였다.
“꿩을 사냥함이 즐겁도다.”
毘曰
於陛下甚樂 群下甚苦.
신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몹시 즐거우시나, 아랫사람들은 몹시 괴롭습니다.”
帝黙然.
황제는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後遂乃爲之稀出.
그 뒤로 사냥하러 드물게 나갔다.
終衛尉.
衛尉로 벼슬살이를 마쳤다.
[註解]
▶內- 內殿. 대궐 안 깊숙이 있는 궁전.
▶衛尉- 九卿의 하나. 대궐 문의 경비 및 兵營을 맡은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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