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29-胡廣補闕(호광보궐) 본문
by 耽古書生
胡廣補闕- 胡廣은 빠진 것을 채우며 황제를 보좌하였다
後漢胡廣字伯始 南郡華容人.
後漢때 胡廣의 字는 伯始이니, 南郡 華容 사람이다.
察孝廉 試章奏.
효렴에 뽑혀, 천자에게 올리는 글을 맡았다.
安帝以廣爲天下第一.
安帝는 호광을 천하의 일인자로 여겼다.
累爲三公.
여러 번 三公이 되었다.
年已八十而心力克壯.
나이가 이미 80세였으나 마음과 힘이 아직도 씩씩했다.
性溫柔謹素 常遜言恭色.
성품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삼가고 소박하여, 항상 겸손한 말과 공손한 빛으로 대하였다.
達練事體 明解朝章.
일의 대체에 통달하고 익숙했으며, 조정의 법에 밝았다.
雖無謇直之風 屢有補闕之益.
비록 강직한 풍도는 없어도, 여러 번 빠진 것을 보충하는 도움이 있었다.
故京師諺曰
萬事不理問伯始 天下中庸有胡公.
그런 까닭에 도읍의 속담에 말하였다.
“萬事에 이치가 아님은 伯始에게 묻고, 천하의 중용에는 胡公이 있네.”
及共李固‧趙戒‧杜喬議立淸河王蒜 而蠡吾侯志取梁冀妹 冀欲立之.
이고·조계·두교와 함께 의논하여 淸河王 蒜을 세웠는데, 蠡吾侯 劉志가 梁冀의 누이를 취하자, 양기는 여오후를 세우려 하였다.
廣‧戒憚冀 皆曰 惟大將軍令.
호광과 조계는 양기를 꺼렸으나 모두 말하였다.
“오직 장군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獨固與喬 堅守本議 竟立蠡吾侯. 是爲桓帝.
이고와 두교 만이 굳게 본래 의론을 지켰으나, 뜻밖에 蠡吾侯를 세웠으니 이가 곧 桓帝이다.
以此議毁於時.
이로써 당시에 비난받았다.
自再公臺三十餘年 歷事安‧順‧冲‧質‧桓‧靈六帝 凡一履司空 再作司徒 三登大尉 又爲太傅.
다시 3공이 되어 30여 년에, 安·順·冲·質·桓·靈의 여섯 황제를 섬기며 1번 司空이 되고, 두 번 司徒가 되고, 세 번 太尉에 오르고, 또 太傅가 되었다
其所辟命 皆天下名士.
그가 부르라고 명령한 사람은 모두 천하의 名士였다,
與故吏陳蕃‧李咸 竝爲三司.
그가 원래 썼었던 관리인 陳蕃·李咸도 함께 三司가 되었다.
蕃等每朝會輒稱疾避廣. 時人榮之.
진번 등이 늘 조회 때마다 문득 병이라 일컫고 호광을 피하니, 당시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호광을 영화롭다고 여겼다.
▲公臺: 3공의 지위
[註解]
▶後漢-<후한서> <열전> 34의 기사.
▶伯始- 胡廣의 자.
▶孝廉- 과거를 보이는 과목, 漢武帝가 효행이 있고 청렴한 사람을 뽑는 과거를 설치한 데서 시작되었음(儒生은 經學, 文吏는 文辭). 효렴은 九品官人法으로 이어져 지방의 어른이 유망인물을 품평하여 9등급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천거하는 것이 察擧이다.(일종의 면접시험)
▶三公- 가장 높은 세 가지 벼슬. 곧 大司徒·大司馬·大司空을 말함.
▶中庸- 過不及이 없는 中正의 道.
▶司空- 三公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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