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浮碧樓(부벽루) - 李穡(이색)

耽古樓主 2023. 3. 30. 01:42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
長嘯倚風磴, 山靑江流.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성은 비었는데 하늘엔 달 한 조각, 돌은 오래되고 구름은 천 년을 떠있네.

麒麟馬는 가고 나서 돌아오지 않으니, 天孫은 어느 곳에서 노니는고.

길게 휘파람 불고 돌계단에 기대어 서니, 산은 푸르고 강물 절로 흐르네.

 

浮碧樓(부벽루) - 李穡(이색)

영명사와 부벽루

※이 시는 牧隱이 23세에 원나라에서 돌아오던 도중 평양 부벽루에 올라 역사와 인간의 무상함을 읊은 시로, 고려시대 오언율시로는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영명사 부벽루를 둘러보는데 번성하던 성은 텅 빈 채 한 조각 달만 떠있다.

풍상에 시달린 바위는 오래되어 금이 갔는데 구름은 천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주몽이 타고 놀던 기린마는 하늘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주몽 역시 어디서 노니는지 알 길이 없다.

참으로 무상함을 주체하기 어려워 길게 휘파람 불며 돌계단에 기대어 보니, 산과 강물은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푸르고 하염없이 흘러간다.

※이색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목은은 일찍이 원나라에 가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전시 등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귀국 후 공민왕이 즉위하자 전제, 국방, 불교 등 당면 현안에 대하여 개혁을 건의하였으며 좌승선, 대제학,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 요직에 차례로 중용되었다.

친명 정책을 지지했으나 조민수 등과 함께 창왕을 옹립하면서 이성계 일파와 대립했고 그들이 세력을 잡자 장단 등으로 유배되었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지고 출사 종용이 있었으나, 끝까지 고사하였으며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하에서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명사와 조선 왕조 창업에 기여한 사대부들이 두루 배출되었는데, 정몽주, 길재, 이숭인(麗末 三隱) 등이 전자이고 정도전, 하륜, 권근 등이 후자이다.

정몽주, 길재, 김종직, 조광조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주류가 그로부터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