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87-高祖論(고조론)-蘇洵(소순)

耽古樓主 2024. 4. 6. 04:07

古文眞寶(고문진보)

高祖論(고조론)-蘇洵(소순)

 

 

漢高祖挾數用術, 以制一時之利害, 不如陳平, 揣摩天下之勢, 擧指搖目, 以劫制項羽, 不如張良, 微此二人, 則天下不歸漢, 而高帝乃木强之人而止耳.

漢나라 高祖는 술수를 가지고 술책을 씀으로써 한때의 이해를 제어함에는 陳平만 못하고, 천하의 형세를 헤아려 손가락을 들고 눈을 움직임으로써 項羽를 위협하고 통제함에는 張良만 못하매, 이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천하는 한나라에 귀속하지 않았을 터이고, 고조는 나무처럼 뻣뻣한 사람에 그치고 말았을 터이다.

漢高祖 : 劉邦. 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項羽와 천하를 다툰 끝에 한나라를 세웠던 임금, 기원전 206~기원전 195년 사이 在位.

挾數 : 술수를 지니고 있음. 과 뜻이 같음.

陳平 : 高祖를 도와 천하를 차지하게 한 功臣 중의 한 사람. 특히 策士로 알려졌다.

揣摩(췌마) : 미루어 헤아리다. 상상하다.

擧指搖目 : 손가락을 들고 눈을 움직임. 손가락짓과 눈짓. 간단한 행동을 뜻함.

劫制 : 위협하고 制御.

項羽 : 이름은 . 힘이 장사인 장수이나, 뒤에 한나라 고조에게 천하를 다투다가 패하여 죽었다.

張良 : 한 고조를 섬겼던 功臣 중의 한 사람. 軍師로서 유명하였다.

 : 와 같음. ~이 아니라면.

木强之人 : 나무처럼 뻣뻣한 사람. 강직한 사람. 여기서는 강직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한 일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然天下已定, 後世子孫之計, 陳平ㆍ張良智之所不及, 則高帝常先爲之規畫處置, 使夫後世之所爲, 曉然如目見其事而爲之者.

그러나 천하가 평정되고 나서 후세의 자손을 계획함에는, 진평과 장량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고조는 언제나 먼저 계획을 세워서 조처하고, 후세 사람이 행할 바를 눈으로 보는 듯이 분명하게 알고 처리한 분이다.

先爲之規畫 : 먼저 후세 사람들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

處置 : 일을 처리함.

後世之所爲 : 후세에 하는 일.

曉然 : 분명한 모양, 밝은 모양.

目見其事 : 눈으로 그 일을 직접 봄.

 

蓋高帝之智, 明於大而暗於小, 至於此而後見也.

대체로 고조의 지혜가 큰일에는 밝으나 작은 일에는 어두웠음이 여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나타났다.

: 드러나다. 과 같음.

呂后 : 한 고조가 젊었을 때 고향에서 결혼한 본실 부인. 여후의 아버지가 고조를 일찍이 알아보고 딸을 주었고, 여후는 여장부로 고조가 죽은 뒤에는 스스로 권력을 잡은 끝에 女帝가 되었다.

 

帝常語呂后曰:

“周勃重厚少文, 然安劉氏者必勃也, 可令爲太尉.”

고조가 일찍이 呂后에게 말하였다.

“周勃은 중후하고 겉치레는 적소, 그러나 劉氏를 안정시킬 사람은 틀림없이 주발일 터이니, 그를 太尉에 임명함이 좋겠소.”

周勃 : 고조의 공신 중의 한 사람. 성품이 매우 質朴하였다.

少文 : 겉치레가 적은 것. 꾸밈이 적은 것. 주발의 성품이 질박함을 뜻한다.

劉氏 : 한나라 王室을 가리킴.

太尉 : 한나라 때 丞相·御史大夫와 함께 三公이라 불리었다. 승상이 행정, 어사대부가 사법의 최고 책임자였고, 태위는 군사의 최고 책임자였다.

 

方是時, 劉氏旣安矣, 勃又將誰安耶?

바야흐로 그때는 유씨가 이미 안정된 상황이었는데, 주발이 또 누구를 안정시킨다는 것인가?

 

故吾之意曰高帝之以太尉屬勃也, 知有呂氏之禍也.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고조가 태위 벼슬을 주발에게 囑託함은 呂氏에 의한 災禍가 있으리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 부탁하다. 당부하다.

呂氏之禍 : 고조가 죽은 뒤 여후가 권력을 잡고, 자기가 낳지 않은 고조의 자식은 모두 죽이고, 여씨에게 모든 높은 벼슬을 주었으며, 특히 고조가 사랑했던 척부인은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멀게 하고 귀까지 먹게 하여 '사람돼지'를 만들어 놓았던 잔인성은 유명하다.

 

雖然其不去呂后, 何也? 勢不可也.

그런데도 그가 여후를 제거하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형세가 불가하였기 때문이다.

 

昔者武王沒, 成王幼而三監叛, 帝意百歲後, 將相大臣及諸侯王, 有如武庚祿父而無有以制之也.

옛날 周 武王이 죽자 成王은 어렸고 三監이 반란을 일으켰으매. 고조의 생각으로는 백년 뒤에 장상·대신·제후왕 중에 武庚·祿父와 같은 자가 있어도 그들을 제압할 수 없다고 여겼다.

三監 : 나라 武王을 쳐부순 다음 紂王의 아들 武庚祿父를 자기네 옛땅에 봉해 주고, 무왕의 형제인 管叔·蔡叔·藿叔으로 하여금 이들을 감시케 하였다. 그러나, 무왕이 죽고 周公攝政을 하자 이들은 오히려 주왕의 아들과 공모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이를 三監之亂이라한다. 주공이 東征하여 이들을 평정하였다.

制之 : 그들을 제어하다. 그들을 통제한다.

 

獨計以爲家有主母, 而豪奴悍婢, 不敢與弱子抗, 呂氏佐帝定天下, 爲諸侯大臣素所畏服, 獨此可以鎭壓其邪心, 以待嗣子之壯.

홀로 계책을 세우기를, 집안에 주부가 있으면 奇傑찬 노복이나 사나운 비녀가 있어도 감히 약한 자식에게 항거하지 못하듯이, 여씨는 황제가 천하를 평정함을 도와서 제후·대신이 평소 두려워 복종하는 바이었으므로, 오직 그만이 그들의 邪心을 진압하여 뒤를 이을 자식이 장성하기를 기다릴 수 있다고 여겼다.

獨計 : 홀로 계획하다.

主母 : 한 집안의 본실 부인. 主婦

豪奴 : 기운 센 노복.

悍婢 : 사나운 노비.

: 평소 평상시.

嗣子 : 뒤를 이을 아들, 惠帝(기원전 194~기원전 188 재위)를 가리킴.

 

故不去呂后者, 爲惠帝計也.

그러므로 여후를 제거하지 않음은 惠帝를 위한 계책이었다.

 

呂后旣不可去, 故削其黨, 以損其權, 使雖有變, 而天下不搖.

여후는 기왕 제거할 수 없으매, 그의 黨人을 삭감하고 그의 권력을 덜어서, 만약 변고가 생겨도 천하가 요동치지 않아야 했다.

削其黨 : 그들 무리의 수를 삭감하다.

 

是故以樊噲之功, 一旦遂欲斬之而無疑.

그러므로 樊噲의 功勳으로도 하루아침에 죽이려 함에 아무런 躊躇가 없었다.

樊噲 : 고조의 공신의 한 사람, 유명한 鴻門宴에서 항우의 동생 項莊이 칼춤을 추며 고조를 죽이려 했을 때, 용감히 홍문 안으로 뛰어들어 고조를 구해냈다. 그리고 그는 여후의 동생에게 장가들어 공신 중에서는 여씨 집안과 가장 친밀한 관계였다.

一旦 : 하루 아침. 어느 날 아침. 어떤 사람이 고조에게, 고조가 죽으면 번쾌가 여후와 힘을 합쳐 戚夫人과 그의 집안을 없애려 한다고 모함을 하였다. 바로 그때를 뜻한다.

: 머뭇거리다. 주저하다.

 

嗚呼! 彼獨於噲不仁耶.

아아! 그가 번쾌에게만 인자하지 않았던가?

 

且噲與帝偕起, 拔城陷陣, 功不爲少, 方亞父嗾項莊時, 微噲譙羽, 則漢之爲漢, 未可知也.

더욱이 번쾌는 황제와 함께 기병하여 성을 함락하고 적진을 쳐부수어 공로가 적지 않았고, 亞父가 項莊을 사주하였을 때 번쾌가 항우를 꾸짖지 않았더라면, 漢이 꼭 漢이 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偕起 : 함께 군사를 일으키다.

亞父 : 항우의 軍師范增. 항우가 평소에 그를 존경하여 叔父나 비슷한 말로 '아보'라 불렀다. 鴻門에서 항우가 유방을 불러 잔치를 벌였을 때, 범증은 항우의 아우 항장을 使嗾하여, 술자리에서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엿보아 고조 유방을 찔러 죽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뒤에 번쾌가 이를 알고 뛰쳐 들어와 큰소리치는 바람에 유방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 : 사주하다. 유방을 죽이라고 지시하다.

譙羽 : 항우를 꾸짖다. 항우를 질책하다.

 

一旦人有惡噲, 欲滅戚氏者, 時噲出伐燕, 立命平ㆍ勃, 卽軍中斬之.

어느 날 아침 어떤 사람이 번쾌가 戚氏를 멸하려 한다고 악담하였을 때, 번쾌는 燕나라에 출정하였는데, 즉시 진평과 주발에게 군중으로 가서 번쾌를 斬하라고 명령하였다.

: 나쁘게 말하다. 모함하다.

: 지금의 河北省 지방, 고조의 친구였던 공신 盧綰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하여 번쾌가 대장으로 정벌에 나섰다. 고조가 "군중으로 가서 번쾌를 죽여라."하고 진평과 주발에게 명하였으나, 진평은 여후의 보복이 두려워 번쾌를 죽이지 않고 장안으로 호송하였다. 그가 장안에 도착하자 고조가 이미 죽은 뒤여서, 번쾌는 바로 석방되었고, 진평도 무사할 수 있었다.

 

夫噲之罪未形也. 惡之者誠僞未必也. 且帝之不以一女子, 斬天下功臣, 亦明矣.

번쾌의 죄는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고, 악담의 진위도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고조가 여자 하나 때문에 천하의 공신을 죽이지 않을 것임도 명백하다.

未形 : 겉으로 형성되지 않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다.

誠僞 : 眞僞. 참말인가 거짓말인가.

 

彼其娶於呂氏, 呂氏之族, 若産祿輩, 皆庸才, 不足恤, 獨噲豪健, 諸將所不能制, 後世之患, 無大於此矣.

그러나 번쾌는 여씨에 장가들었고, 여씨 족속에 呂産·呂祿 따위의 무리는 모두 용렬한 인물이어서 걱정할 것이 못 되었으나, 번쾌만은 호걸이어서 장수들이 제압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으니, 후세의 환난으로 이보다 큰 것이 없었다.

: , 번쾌. 그는 여후의 동생에게 장가들었다.

産祿 : 呂産呂祿. 모두 여후의 오빠 아들. 이들 두 사람을 필두로 하여 여씨 사람은 모두 왕후에도 봉해지고 높은 벼슬자리에도 올랐다.

庸才 : 평범한 인재, 용렬한 사람.

: 걱정하다.

 

夫高帝之視呂后, 猶醫者之視菫也, 使其毒, 可使治病, 而無至於殺人而已.

고조가 여후를 대접함은 마치 의원이 菫草를 대우함과 같아서, 그 독으로 병을 치료하게 해야지 살인에 이름이 없어야 한다고 여길 따름이었다.

: 대접하다. 대우하다.

() : 毒草의 일종. 잘 쓰면 병을 고치지만 잘못 쓰면 사람을 죽게도 하는 약초임.

 

噲死則呂氏之毒, 將不至於殺人.

번쾌가 죽으면 여씨의 독이 사람을 죽임에 이르지는 않을 터이다.

 

高帝以爲是足以死而無憂矣, 彼平ㆍ勃者, 遺其憂者也.

고조는 이것이 자신이 죽고 나서도 걱정이 없을 방도라고 여겼으니, 저 진평과 주발은 고조의 우려를 후세에 남긴 사람들이다.

 

噲之死於惠帝之六年, 天也, 使之尙在, 則呂祿不可紿, 太尉不得入北軍矣.

번쾌가 惠帝 6년에 죽음은 天命이었으니, 만약 그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으면 여산과 여록을 속이지 못하여 태위가 北軍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을 터이다.

惠帝之六年 : 번쾌는 혜제 6년에 병으로 죽었다. 여후가 죽고 여씨 일가가 멸망된 것은 그로부터 9년 뒤의 일이다.

紿() : 속이다. 여후가 죽은 뒤, 장안의 군대는 남북 양군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여산과 여록 두 사람이 지휘를 맡아서, 太尉인 주발도 군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침 齊王이 여씨 토벌의 군사를 일으키자, 주발은 진평과 의논한 끝에, 여록에게 첩자를 보내어 여록으로 하여금 자기 領地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러면 여씨가 제위를 탐내지 않음이 밝혀서 제왕의 군대도 저절로 수그러지겠다는 것이었다. 여록은 그 말을 믿고 북군의 지휘권을 즉시 내놓았다. 그러자, 주발은 곧장 북군으로 들어가 군사를 선동하여 여씨 일족을 모두 잡아 죽여버렸다. 만약 번쾌가 살아 있었더라면 여씨 일족이 그토록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或謂噲於帝最親, 使之尙在, 未必與産祿叛.

어떤 이는 말하기를, 번쾌는 고조와 가장 친했으니 그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 하더라도 여산·여록과 꼭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夫韓信ㆍ黥布ㆍ盧綰, 皆南面稱孤, 而綰又最爲親幸, 然及高帝之未崩也, 皆相繼以逆誅, 誰謂百歲之後, 椎埋屠狗之人, 見其親戚得爲帝王, 而不欣然從之耶.

저 韓信·黥布·盧綰은 모두 南面하여 稱孤하였고, 노관은 더욱이 최고의 총애를 받았는데도, 고조가 붕어하기도 전에 모두 연이어 반역죄로 처형을 당하였으니, 백년이 지난 뒤에 사람을 때려죽여 땅에 묻고 개백정 노릇이나 하던 사람이 그의 친척도 제왕이 될 수 있음을 알고도 기뻐하며 따르지 않으리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韓信 : 고조의 장군으로, 항우와의 싸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뒤에 侯王이 된 다음 반란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黥布 : 본명은 英布. 墨刑을 받아 경포라고도 부른다. 항우를 섬기다가 고조에게로 와서 많은 공을 세웠다. 한신이 죽임을 당하자 선수를 치려고 반란을 꾀하다가 역시 죽임을 당하였다.

盧綰 : 고조와 동향으로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건국 공신 중 고조와 가장 친하였으나, 燕王에 봉해진 뒤 모반을 했다는 혐의로 征討되었다.

南面稱孤 : 왕은 남쪽을 향해 앉아 신하들을 맞아 조회하고 자신을 ''라 부른다. 따라서 임금노릇 함을 뜻한다.

椎埋 : 사람을 쳐죽여 땅에 묻어 버리는 무법자.

屠狗 : 개백정.

誰謂百歲之後, 椎埋屠狗之人, 見其親戚得爲帝王, 而不欣然從之耶. : 문맥상 뜻이 통하지 않는다. 不欣然이 아니라 欣然이라면 되겠다. 耽古樓主 생각

 

吾故曰 彼平ㆍ勃者, 遺其憂者也.

나는 그 때문에 저 진평과 주발은 고조의 우려를 후세에 넘겨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해설

 

이 글은 독특한 방향에서 한나라 고조의 인물을 논한 글이다. 곧 고조는 전쟁의 계략이나 작은 일의 처리에는 신하인 陳平이나 張良만 못하였지만, 한나라의 장래를 계획하고 위하는 면에서는 다른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것이다.

 

소순은 고조가 여씨의 환란을 미리 예견하고 周勃을 태위에 임명하였고, 여씨의 환란을 예견하면서도 자기 뒤를 이을 惠帝가 무사히 장성하도록 여후를 제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다만 여후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진평과 주발에게 樊噲를 죽이도록 하였는데, 이들이 죽이지 않음으로써 결국 여씨의 환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다행히 번쾌가 미리 죽었기 때문에 뒤에 여씨 일족이 주발에 의하여 모두 잡혀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진평과 주발이 번쾌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고조의 걱정을 후세까지 남겨 놓았던 사람들'이라 말하고 있다.

 

앞뒤 논리의 연결에는 약간 문제가 있는 듯도 하나 매우 재미있는 독특한 인물론이라 할 것이다. 소순의 才氣가 번뜩이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