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83-族譜序(족보서)-蘇洵(소순)

耽古樓主 2024. 4. 5. 05:42

古文眞寶(고문진보)

族譜序(족보서)-蘇洵(소순)

 


蘇氏族譜, 譜蘇之族也.
蘇氏族譜는 소씨 일족의 계보를 기록한 것이다.

蘇氏出於高陽, 而蔓延於天下.
소씨는 전욱에게서 나와 천하로 퍼져나갔다.
高陽 : 옛날 黃帝의 손자이며, 三皇五帝 중의 한 사람으로 치는 顓頊. 처음에 고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하여 高陽氏라 부른다.

唐神堯初, 長史味道刺眉州, 卒于官, 一子留于眉, 眉之有蘇氏, 自此始而譜不及者, 親盡也.
唐나라 高祖 초기에 長史 蘇味道가 眉州刺史로 있다가, 在官 중에 졸하고, 한 아들이 미주에 남으니 미주에 소씨가 있음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나, 족보가 어급하지 않는 자는 친족관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神堯 : 나라 高祖 李淵의 칭호. 神堯皇帝.
長史 : 벼슬 이름으로 본시는 丞相 바로 밑의 온 나라 일을 관장하던 벼슬. 후세에는 刺史도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있게 되었다.
味道 : 蘇味道. 20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進士가 된 뒤 鳳閣侍郞의 벼슬까지 올랐다가 眉州로 귀양갔다. 문장을 잘 지어 李嶠와 함께 이름을 날렸다.
眉州 : 지금의 四川省 眉山근처 땅. 蘇洵은 미주 사람이다.
親盡 : 친함이 다하다. 곧 친족관계가 없어짐.

親盡則曷爲不及? 譜爲親作也.
친족관계가 없어지면 어째서 언급하지 않는가? 족보는 친족을 위하여 짓기 때문이다.

凡子得書而孫不得書者, 何也? 著代也.
모든 자식을 기록하면서 손자는 기록하지 못함은 어째서인가? 한 세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子得書 : 족보에 누구나 자식에 관하여 쓰고 손자에 관하여는 쓰지 않는다.

自吾之父, 以至吾之高祖, 仕不仕, 娶某氏, 享年幾, 某日卒皆書, 而它不書者, 何也? 詳吾之所自出也.
나의 아버지로부터 나의 高祖까지는 벼슬을 하거나 하지 않음, 어떤 집안에 장가듦, 몇 살까지 사심, 어느 날 돌아가심을 모두 쓰면서, 다른 분에 관하여는 쓰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내가 나온 계보를 詳述함이다.
() : 자기 아버지에서 고조에 이르는 분들 이외 분들.

自吾之父, 以至吾之高祖, 皆曰諱某, 而它則遂名之, 何也? 尊吾之所自出也.
나의 아버지로부터 나의 고조까지는 모두 諱가 무엇이었다고 말하면서, 다른 분은 모두 이름을 부름은 어째서인가? 내가 나온 계보를 존중함이다.

譜爲蘇氏作, 而獨吾之所自出, 得詳與尊, 何也? 譜吾作也.
족보는 소씨를 위하여 짓거늘 오직 내가 나온 계보만을 자세히 하고 존중함은 어째서인가? 족보는 내가 만들기 때문이다.

嗚呼, 觀吾之譜者, 孝悌之心, 可以油然而生矣.
아아! 나의 족보를 보는 사람은, 孝悌의 마음이 구름이 피어나듯 생겨날 수 있을 터이다.
孝悌 :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
油然 : 구름 같은 것이 솟아오르는 모양.

情見于親, 親見于服, 服始于衰, 而至于緦麻, 而至于無服, 無服則親盡, 親盡則情盡, 情盡則喜不慶, 憂不弔, 喜不慶, 憂不弔, 則塗人也.
친밀한 정은 친족에서 나타나고 친족은 喪服에서 나타나는데, 상복은 衰服에서 시작하여 緦麻에 이르고, 또 無服에 이르니, 無服이란 친족관계가 다한 것이며, 친족관계가 다하면 친밀한 정도 없어지고, 정이 다하면 기쁜 일에도 경하하지 않고 우환에도 슬퍼하지 않는데, 기쁜 일에 경하하지 않고 우환에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곧 길거리의 남인 것이다.
() : 상복 중 가장 무거운 것으로 삼년상에 입는 斬衰를 가리킨다. 옛날 상복. 五服이라 하여, 斬衰·齊衰·大功·小功·緦麻의 다섯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緦麻(시마) : 상복 중 가장 가벼운 것으로 석달의 상을 지키는 경우에 입었다.
塗人 : 길거리 사람. 길거리의 남.

吾所與相視如塗人者, 其初兄弟也, 兄弟其初, 一人之身也, 悲夫! 一人之身, 分而至於塗人, 吾譜之所以作也.
내가 길거리의 남처럼 보는 사람도 처음에는 모두 형제였고, 형제는 처음에 한 사람의 몸이었으매, 슬프도다! 한 사람의 몸이 분파하여 길거리의 남에 이름이, 내가 족보를 만든 까닭이다.

其意曰, 分而至於塗人者勢也, 勢吾無如之何也, 幸其未至於塗人也, 使其無致於忽忘焉, 可也.
족보를 만든 뜻은, 한 사람이 분파되어 길거리의 남에 이름이 형세이고, 형편상 나에게 어찌할 수 방도가 없으나, 다행히 아직 길거리의 남에 이르지 않은 사람은 소홀하여 잊음에 이름이 없게 함이 옳겠다는 것이다.
無致於忽忘 : 소홀히 하고 잊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함.

嗚呼, 觀吾之譜者, 孝悌之心, 可以油然而生矣.
아아! 나의 족보를 보는 사람은, 孝悌의 마음이 구름이 피어나듯 생겨날 수 있을 터이다.

系之以詩曰:
시를 붙여 놓으니 이렇다.

“吾父之子, 今爲吾兄, 吾疾在身, 兄呻不寧.
내 아버지 아들이 지금은 나의 형이니, 내가 몸에 병을 앓으면 형도 신음하며 편치 못하네.

數世之後, 不知何人, 彼死而生, 不爲戚欣.
몇 세 뒤에는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 그가 죽거나 태어나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지도 않게 된다네.
戚欣 : 슬퍼하고 기뻐함.

兄弟之情, 如足如手, 其能幾何. 彼不相能, 彼獨何心.”
형제의 정이 손과 같고 발과 같다고 하나, 그 정이 얼마나 갈 수가 있는가? 저들이 서 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수 없음은, 저들이 어떤 마음을 지녔기 때문인가?

 

 

 

 해설


소순이 소씨 집안의 족보를 처음으로 만들고거기에 쓴 서문으로족보를 만드는 이유가 간결히 설명되어 있다.

중국의 일반인의 족보는이 소씨 집안의 족보에서 비롯되어후세로 가면서 성행하였다우리나라 각 성씨의 족보도 말할 것도 없이 이들 중국 족보의 목적과 편찬 방법을 배워 만들게 되었다.

소순은 이 글 이외에도 〈族譜亭記〉도 남겼는데거기에 따르면 그 시대에 소씨 문중에서 상복을 입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백명을 넘지 않는 형편이어서 '소씨족보'를 만든 다음그의 고조의 묘 서남쪽에 족보정을 세우고그곳 비석에 이름들을 새겨놓았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