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33-送窮文(송궁문)-韓愈(한유)

耽古樓主 2024. 3. 18. 02:57

古文眞寶(고문진보)

送窮文(송궁문)-韓愈(한유)

 



元和六年正月乙丑晦, 主人使奴星, 結柳作車, 縛草爲船, 載糗輿粻, 牛繫軛下, 引帆上檣, 三揖窮鬼而告之曰:
元和 6년(811) 정월 乙丑일 저녁에, 주인이 하인 星을 시켜 버드나무를 엮어 수레를 만들고 풀을 묶어 배를 만들고, 미숫가루와 양식을 싣고, 멍에에 소를 매고 돛대에는 돛을 달고 窮鬼에게 세 번 揖하며 말하였다.
: 저녁, .
奴星 : 하인 . 성은 하인의 이름.
載糗輿粻(재구여장) : 미숫가루를 수레에 싣고 양식을 수레에 싣다.
() : 멍에.
引帆上檣 : 돛대에 돛을 올리다.

“聞子行有日矣, 鄙人不敢問所途.
"그대가 떠남엔 날이 있다고 들으나 비루한 내가 감히 갈 길을 묻지 못하겠소.
行有日 : 떠나는 날이 있다. 떠남에는 정해진 날이 있다.
鄙人 : 비루한 사람. 시골 사람.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所途 : 길 가는 곳. 갈 길.

躬具船與車, 備載糗粻, 日吉辰良, 利行四方.
몸소 배와 수레를 마련하고 미숫가루와 양식도 모두 실어놓았고, 일진은 길하여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터이오.

子飯一盂, 子啜一觴, 携朋挈儔, 去故就新.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시고, 친구와 무리를 이끌고 옛 고장을 떠나 새 고장으로 떠나시오
携朋繫儔 : 친구를 데리고 무리를 이끌고.

駕塵彍風, 與電爭先, 子無底滯之尤, 我有資送之恩, 子等有意於行乎?”
먼지 속에 수레를 달리고 바람 타고 배를 몰아 번개와 앞을 다투면, 그대에게는 머물러 있다는 허물이 없어질 터이요, 나는 노자를 주어 전송한 은혜를 가질 터인데, 그대들은 떠날 뜻이 있소?”
駕塵 : 먼지를 일으키며 수레를 빨리 달림.
彍風(확풍) : 바람을 타고 배를 몸.
底滯之尤 : 오래 머물러 있다는 허물. 머물러 있는 죄.
▶ 資送 : 노자와 물자를 준비해 주고 전송함.

屛息潛聽, 如聞音聲, 若嘯若啼.
숨을 죽이고 조용히 들으니 음성 들리는 듯하였는데, 휘파람소리 같고 울음과도 같았다.
屏息潛聽 :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듣다.
若嘯若啼 : 휘파람 소리와 같고 우는 소리와도 같은 것.

砉欻嚘嚶, 毛髮盡竪, 竦肩縮頸.
중얼중얼 재잘거리니 모발이 모두 곤두서고 어깨를 들추고 목을 움츠리게 하였다.
砉欻(혁훌) : 후둑후둑 소리가 나다. 중얼중얼거리다.
嗄瓔(우앵) : 재잘거리는 소리가 나다.
竦肩縮頸 : 두 어깨는 올라가고 목은 오므라듦. 두려움에 몸이 오므라드는 모양.

疑有而無, 久乃可明, 若有言者曰:
소리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가 오랜 뒤에야 분명해져서, 말하는 듯하였으니 이러하다.

“吾與子居四十年餘.
“내가 선생님과 함께 살아온 지 40여 년입니다.

子在孩提, 吾不子愚, 子學子耕, 求官與名, 惟子是從, 不變于初.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나는 선생님을 어리석다고 여기지 아니하였고, 선생님이 공부도 하고 말도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오직 선생님을 따르며 처음처럼 끝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 孩提(해제) : 안고 있는 아이. 어린 아기.

門神戶靈, 我叱我呵, 包羞詭隨, 志不在他.
門과 戶의 신령에게 나는 야단맞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딴 데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子遷南荒, 熱爍濕蒸, 我非其鄕, 百鬼欺陵, 太學四年, 朝齏暮塩, 惟我保汝, 人皆汝嫌, 自初及終, 未始背汝, 心無異謀, 口絶行語, 於何聽聞, 云我當去?
선생님께서 남쪽 황량한 곳으로 귀양갔을 적에 뜨겁고 덥고 습기 차고 찜질하는 듯하였으므로, 나는 그 고장에 맞지 않아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고, 太學에서 공부하기 4년 동안 아침에는 부추 저녁에는 소금으로 오직 저만이 당신을 보살펴주었고,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싫어했으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당신을 배반하지 않아서, 마음에 다른 의도가 없고 입에는 떠난다는 말을 담지 않았는데, 무엇을 들었기에 저에게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戶靈 : 방문의 신령.
() : 꾸짖다.
() : 꾸짖다.
包羞 : 부끄러움을 견디다.
詭隨 : 남을 속이면서도 따름. 무조건 따르다.
南荒 : 남쪽 먼 고장. 한유가 귀양갔던 陽山(:廣東省)을 가리킴.
非其鄕 : 그 고장에 적응치 못하다, 그 고장에 익숙치 않다.
欺陵 : 속이고 업신여기다.
熱爍濕蒸(열삭습증) : 덥기가 타는 듯하고 습기는 찌는 듯한 것.
朝齏暮鹽(조제모염) : 아침엔 부추요, 저녁엔 소금. 식사 때 반찬이 형편없음을 뜻함.

是必夫子信讒, 有間於予也.
이것은 필시 선생님께서 남이 참언을 믿고서 내게 거리를 두기 때문일 터입니다.

我鬼非人, 安用車船.
저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수레와 배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鼻嗅臭香, 糗粻可捐.
코로 냄새와 향기를 맡을 뿐이매, 미숫가루와 양식은 버려도 됩니다.
: 버리다.

單獨一身, 誰爲朋儔.
홀로 외짝인 한 몸인데 누가 친구와 무리가 되겠습니까?

子苟備知, 可數以不.
선생께서 진실로 모두 알고 계시면,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따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 (부사) 모두
可數以不: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헤아릴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 以不已不 또는 與否와 같은 말임.

子能盡言, 可謂聖智.
선생께서 모두 말할 수 있으시다면 聖人이나 智人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情狀旣露, 敢不廻避.”
진실이 드러나도 감히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廻避 :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쫓음. 여기서는 수긍함을 의미함.

主人應之曰:
주인이 대답하였다.

“子以吾爲眞不知也邪?
“그대는 내가 정말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子之朋儔, 非六非四, 在十去五, 滿七除二.
그대의 벗과 무리는 여섯도 아니고 넷도 아니며, 열에서 다섯을 뺀 숫자이고 일곱에서 둘을 덜어낸 숫자요.

各有主張, 私立名字, 捩手覆羹, 轉喉觸諱, 凡所以使吾面目可憎, 語言無味者, 皆子之志也.
제각기 주장하는 일이 있으니, 사사로이 이름을 내세우며, 남의 손을 비틀어 뜨거운 국을 엎고, 노래하며 남의 꺼리는 바를 들추어내고, 내 체면을 가증스럽게 하고, 언어에 맛을 없애는 것이 모두 그대들의 뜻이었소.
捩手覆羹 : 남의 손을 비틀어 국을 뒤엎다. 남 생각은 않고 자기멋대로 억지 짓을 하는 데 비유한 말.
轉喉 : 노래함.
觸諱 : 남이 꺼리는 일을 들추어내는 것. 이 구절로 남이야 싫어하든 말든 자기 멋대로 행동함을 뜻하는 말임.

其一名曰‘智窮’, 矯矯亢亢, 惡圓喜方, 羞爲姦欺, 不忍害傷.
그 첫째 이름은 智窮인데, 고답적이면서도 뻣뻣하고 둥근 것은 싫어하고 모난 것을 좋아하며, 간사하게 속임을 부끄러워하는데, 남을 害傷함은 차마 하지 못하오.
矯矯 : 高踏的인 모양.
亢亢 : 높은 모양, 뻣뻣한 모양.

其次名曰‘學窮’, 傲數與名, 摘抉杳微, 高挹群言, 執神之機.
그다음은 이름을 學窮이라 하는데, 법도와 명성에 대하여는 오만하고, 심원하고 미묘함을 잡아내며 여러 이론을 높이 들추어내어 神의 기밀을 파악하지요.
傲數與名 : 숫자 또는 법칙과 명성에 대하여는 오만한 것. 법칙이나 명성 같은 것에는 초연한 태도를 지님.
摘抉 : 들추어내다. 집어내다.
杳微(묘미) : 오묘하고 미묘한 것.
高挹 : 높이 드러내다.
群言 : 여러 가지 이론. 여러 가지 학설.
執神之機 : 신의 빌미를 파악하다. 신묘한 작용들을 파악함.

又其次曰‘文窮’, 不專一能, 怪怪奇奇, 不可時施, 秖以自嬉.
또 그다음은 文窮이라 하는데, 한 가지 능력을 전공하지 않고, 괴기한 표현을 일삼아 시국에 응용할 수가 없고 오직 자신을 즐겁게 할 따름이오.
不專一能 : 한 가지 능력만을 전공하다. 문장에 있어서 시나 산문 한 가지만을 오로지 추구함.
不可時施 : 시대에 베풀어지지 못하다. 시국에 적응하지 못하다.
: 단지. 다만. 와 통함.
怪怪奇奇 : 기이한 표현을 추구함. 특히 시에 있어서 文學史家들은 한유를 怪誕派의 대표적 작가로 친다.

又其次曰‘命窮’, 影與形殊, 面醜心姸, 利居衆後, 責在人先.
다시 그다음은 命窮이라 하는데, 그림자가 형체와 달라서 얼굴은 추하나 마음은 곱고, 이로움에는 대중의 뒤에 서고 책임질 일에는 남보다 앞장서지요.
影與形 : 그림자와 형체.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과 육체를 가리킨다.

又其次曰‘交窮’, 磨肌戞骨, 吐出心肝, 企足以待, 寘我讐寃.
또 그다음은 交窮인데, 살갗과 뼈를 부비며, 심장과 간을 토하여 보이며, 발돋음하고 대우하고도 나를 원수 자리에 놓소.
磨肌戞骨(마기알골) : 살갗이 서로 닿아 갈리고 뼈도 서로 부딪치며 부벼댐.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지냄을 형용하는 말임.
心肝 : 심장과 간. 자기 마음속. 眞情을 뜻함.
企足以待 : 발돋움을 하고 대우하다, 남을 진심으로 반갑게 대함.

凡此五鬼, 爲吾五患, 飢我寒我, 興訛造訕, 能使我迷, 人莫能間.
이 다섯 귀신은 나에게 다섯 가지 환난을 지으니, 나를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며, 訛傳을 일으키고, 비방을 조성하고, 나를 미혹하게 하되, 사람들은 아무도 이에 간섭하지 못하오.
興訛造 : 와전을 일으키고 비방을 조성하다.

朝悔其行, 暮已復然, 蠅營狗苟, 驅去復還.”
아침에 그런 행동을 후회하나, 저녁이면 또다시 그렇게 행하니, 파리가 진을 치고 개가 음식을 욕심내듯이 쫓아버려도 다시 돌아오지요.
蠅營狗苟 : 파리 떼가 진을 치고 개가 음식을 탐함.

言未畢, 五鬼相與張眼吐舌, 跳踉偃仆, 抵掌頓脚, 失笑相顧, 徐謂主人曰: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섯 귀신이 모두 張眼吐舌하고 펄쩍펄쩍 뛰다가는 이리저리 나자빠지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다가, 실소하면서 서로 돌아다보고 천천히 주인에게 말하였다.
張眼吐舌 :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밈.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는 행동임.
跳踉偃仆(도량언부) :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이리저리 나자빠짐.

“子知我名, 凡我所爲, 驅我令去, 小黠大癡.
"선생께서 우리 이름과 우리 행위를 모두 아시고, 우리를 내쫓으며 떠나라고 하시는데, 작게는 약지만 크게 보면 바보 같은 짓입니다.
小點大癡(소할대치) : 작게는 약고 크게는 바보이다. 작게 보면 약지만 크게 보면 바보짓이다.

人生一世, 其久幾何.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감에 그 장구함이 얼마나 됩니까?

吾立子名, 百世不磨.
우리는 선생의 명성을 세워서 百世토록 뭉개지지 않게 합니다.

小人君子, 其心不同, 惟乖於時, 乃與天通.
소인과 군자는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오직 시세에 어긋나야만 비로소 하늘과 통합니다.

携持琬琰, 易一羊皮, 飫於肥甘, 慕彼糠糜.
아름다운 玉을 가지고 한 장의 양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것에 배가 불러 겨와 싸라기를 그리워함이지요.
琬琰 : 瑞玉의 이름, 美玉의 이름임.
() : 배부른 것. 먹기 싫어짐.
糠糜(강미) : 벼와 싸라기.

天下知子, 誰過於予.
천하에서 선생님을 아는 데 있어서 누가 우리보다도 더 낫겠소?

雖遭斥逐, 不忍子疏, 謂予不信, 請質詩書.”
비록 斥逐되더러도 차마 선생님과 소원하지 못하니, 내가 미덥지 않다고 여기시면 《詩經》·《書經》을 質正해 보십시오.“

主人於是垂頭喪氣, 上手稱謝, 燒車與船, 延之上座.
주인은 이에 머리를 떨구고 기가 죽어서, 손을 들어 사과하고 수레와 배를 불사르고 그들을 上座로 모셨다.
: 마중하다. 모시다.

 

 

 해설


작자가 해학을 통하여 자기의 사상을 드러낸 글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곤궁케 하는 귀신으로 智窮·學窮·文窮·命窮·交窮의 다섯이 있고, 늘 자신에게 붙어 다니면서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곤궁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들에게 수레와 배를 마련해주고 이들을 모두 쫓아버리려 한다. 그러나 이들 窮鬼가 그러한 주인의 뜻을 비웃으며, '사람이란 시국과 어긋나야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이라 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다.

여기에서 작자는 시국과 어긋나는 자신의 사상이나 학문·문장 등의 성격을 밝히며, 은근히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을 비꼬고 있다. 작자는 결국 궁귀의 말을 듣고 이들을 쫓아버릴 명분을 잃게 된다. 이에 다시 작자 한유는 이들을 모셔 들이고 그대로 전날처럼 곤궁하기는 하지만 뜻있는 삶을 추구하겠다고 한다. 궁귀는 바로 한유의 성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유의 글 중에서도 매우 해학적이면서도 재미있고 뜻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