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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집주 진심장구 하 제38장 본문

맹자집주

맹자집주 진심장구 하 제38장

구글서생 2023. 3. 1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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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曰:
「由堯舜至於湯, 五百有餘歲, 若禹·皐陶, 則見而知之;

若湯, 則聞而知之.
孟子가 말하였다.
“堯舜으로부터 湯王에 이르기까지가 오백여 년이니, 禹王과 皐陶는 직접 보고서 알았고,

湯王은 들어서 알았다.

趙氏曰:
五百歲而聖人出, 天道之常;

然亦有遲速, 不能正五百年, 故言有餘也.

趙氏가 말하였다.
‘五百年 만에 聖人이 나옴은 天道의 떳떳함이다.

그러나 또한 더디고 빠름이 있어서 바로 五 百年으로 기약할 수 없다. 그러므로 有餘하다고 말씀한 것이다.’


尹氏曰:
, 謂知其道也.
尹氏가 말하였다.
‘안다는 것은 그 道를 앎을 이른다.’

由湯至於文王, 五百有餘歲, 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
若文王, 則聞而知之.
湯王으로부터 文王에 이르기까지가 五百餘年이니, 伊尹과 萊朱는 직접 보고서 알았고,

文王은 들어서 알았다.

趙氏曰:
萊朱, 湯賢臣. 或曰:
卽仲虺也, 爲湯左相.

趙氏가 말하였다.
“萊朱는 湯王의 賢臣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곧 仲虺이니 湯王의 左相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由文王至於孔子, 五百有餘歲, 若太公望·散宜生, 則見而知之;
若孔子, 則聞而知之.
文王으로부터 孔子에 이르기까지가 五百餘 年이니, 太公望과 散宜生은 직접 보고서 알았고,

孔子는 들어서 아셨다.

, ; 宜生, ; 文王賢臣也.

散은 氏요, 宜生은 이름이니, 文王의 賢臣이다.

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夫子焉不學?

子貢이 말하였다.
“文王, 武王의 道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인간에 있다.

賢者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不賢者는 그 작은 것을 알고 있어서, 文王 武王의 道가 있지 않음이 없다.
夫子께서 어느 곳에선들 배우지 않았겠는가?”


此所謂聞而知之也.
이것이 이른바 들어서 아셨다는 것이다.

由孔子而來至於今, 百有餘歲, 去聖人之世, 若此其未遠也;
近聖人之居, 若此其甚也, 然而無有乎爾, 則亦無有乎爾.」
孔子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百餘年이니, 聖人의 세대와의 거리가 이렇게 멀지 않으며, 聖人이 거주하신 곳과 가까움이 이렇게 심하다.
그런데도 보고서 공자의 도를 아는 사람이 이렇게 없으니, 그렇다면 또한 듣고서 공자의 도를 아는 사람이 이렇게 없겠구나!”

:如此

林氏曰:
孟子言孔子至今時未遠, 鄒魯相去又近, 然而已無有見而知之者矣; 則五百餘歲之後, 又豈復有聞而知之者乎?

林氏가 말하였다.
“孟子가 말하기를, ‘孔子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멀지 않고, 鄒나라와 魯나라의 거리가 또 가까우나 이미 보고서 아는 자가 없으니, 그렇다면 五百年 뒤에 어찌 다시 들어서 아는 자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愚按:

此言,

雖若不敢自謂已得其傳, 而憂後世遂失其傳, 然乃所以自見其有不得辭者, 而又以見夫天理民彝不可泯滅, 百世之下, 必將有神會而心得之者耳.

내가 살펴보건대, 이 말은 비록 감히 자신이 그 嫡傳을 얻었다고 이르지 못하지만 後世에 마침내 그 傳함을 잃을까 걱정한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 사양할 수 없는 까닭이 있음을 스스로 나타내었다.
또 天理와 민이(民彛)가 없어져서는 안 되고, 百世의 아래에 반드시 정신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터득할 자가 있을 것임을 나타내었다.


故於篇終, 歷序群聖之統, 而終之以此, 所以明其傳之有在, 而又以俟後聖於無窮也, 其指深哉!

그러므로 篇의 끝에서 여러 聖人의 전통을 일일이 서술하고 이것으로 마쳤으니, 그 전통이 있음을 밝혔고, 또 後世의 聖人을 無窮한 後代에 기다리시니, 그 뜻이 깊다.

 

有宋元豐八年, 河南程顥伯淳卒. 潞公文彦博題其墓曰:明道先生.

宋나라 元豊 八年에 河南 程顥 伯淳이 별세 한 대, 潞公 文彦博이 그 墓에 쓰기를 明道先生이라 하였다.


而其弟頤正叔序之曰:
周公歿, 聖人之道不行;

孟軻死, 聖人之學不傳.
道不行, 百世無善治; 學不傳, 千載無眞儒.
無善治, 士猶得以明夫善治之道, 以淑諸人, 以傳諸後; 無眞儒, 則天下貿貿焉莫知所之, 人欲肆而天理滅矣.
先生生乎千四百年之後, 得不傳之學於遺經, 以興起斯文爲己任.
辨異端, 闢邪說, 使聖人之道渙然復明於世.
蓋自孟子之後, 一人而已.
然學者於道不知所向, 則孰知斯人之爲功?

不知所至, 則孰知斯名之稱情也哉?
이에 그의 아우인 頤 正叔이 다음과 같이 序하였다.
‘周公이 별세함에 聖人의 道가 행해지지 못하였고,

孟軻가 죽음에 聖人의 學問이 전해지지 못하였다.
道가 행해지지 못하니 百世에 善한 政治가 없었고,

學問이 전해지지 못하여 千年에 참 선비가 없었다.
善한 정치가 없더라도 선비는 오히려 善治의 道理를 밝혀서, 남에게 私淑하여 後世에 전할 수 있거니와,

참 선비가 없으면 天下가 貿貿(어둠)하여 갈 곳을 알지 못해서, 人慾이 함부로 펴지고 天理가 滅할 터이다.
先生은 千四百年 뒤에 태어나서, 전해지지 않던 학문을 遺經에서 얻어 斯文(道學)을 興起시킴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았다.

異端을 분별하고 邪說을 막아서, 聖人의 道를 환하게 다시 세상에 밝혔다.

대개 孟子 以後로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배우는 자가 도에 대해서 향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이분의 공로를 누가 알겠는가?

그의 경지를 알지 못한다면, (明道라는) 이 名號가 실정에 걸맞음을 누가 알겠는가?’



孟子年譜


孟子의 年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므로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淸代사람 狄子奇의 저술인 孟子編年에 의하여 그 개략을 추려보았다.
BC 372년 4월 2일 鄒나라(지금의 山東省 兗州府 鄒縣)에서 태어나다.
358년 (15세) 魯나라에서 배우다.
332년 (41세) 처음 鄒나라 穆公을 만나다.
331년 (42세) 齊나라 平陸에 머무르다.
330년 (43세) 鄒나라에서 任나라로 가다.
329년 (44세) 齊나라 平陸 에서 齊나라 서울로 가다.
328년 (45세) 齊나라에서 賓師가 되다.
326년 (47세) 齊나라를 떠나 宋나라로 가다.
325년 (48세) 宋나라에서 鄒나라로 돌아오다.
324년 (49세) 鄒나라에서 滕 나라로 가다.
322년 (51세) 滕나라를 떠나 鄒나라로 돌아오다.
320년 (53세) 梁나라 惠王의 초빙을 받고 梁나라로 가다.
319년 (54세) 梁나라 王 영(罃)이 죽자 梁나라를 떠나 齊나라로 감.
318년 (55세) 齊나라에서 卿이 되다
317년 (56세) 母親喪을 당하여 齊나라에서 魯나라 돌아와 장례를 모심
312년 (61세) 宋나라에서 薛나라로 가다
289년 (84세) 1월 15일, 세상을 떠나다.

 

2023.3.14 고안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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