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單은 臨淄사람으로 성은 媯(규)이고, 氏는 田, 이름은 單이다. 원래 齊의 종친의 먼 친척으로 처음에는 수도 臨淄의 小吏였으나 燕과 전쟁 때 卽墨싸움에서 火牛陣의 전법으로 燕軍을 대패시키고 齊를 수복하여 安平君에 봉해져 相國이 되었다.
田單者,齊諸田疏屬也。
田単은 齊 全氏의 먼 친족이었다.
湣王時,單為臨菑市掾,不見知。
湣王때 전단은 임치에서 시장을 감독하는 관리이었지만 알려지지 못하였다.
及燕使樂毅伐破齊,齊湣王出奔,已而保莒城。
燕이 악의를 보내 제를 공격하여 패퇴시키자, 齊湣王은 달아나 莒城을 지켰다.
燕師長驅平齊,而田單走安平,令其宗人盡斷其車軸末而傅鐵籠。
燕軍이 멀리까지 쫓아와 齊를 평정하였으므로 전단은 安平으로 달아났는데, 집안사람에게 수레바퀴 축의 양 끝을 모두 자르고 쇠로 테를 씌우도록 하였다.
已而燕軍攻安平,城壞,齊人走,爭涂,以折車敗,為燕所虜,唯田單宗人以鐵籠故得脫,東保即墨。
그 후 燕軍이 안평을 공격하여 성이 무너지자, 齊 사람들은 달아나며 길을 다투었지만 수레가 부서지는 바람에 燕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오직 전단의 집안사람들만 바퀴 축을 쇠로 씌워두었기 때문에 탈출하여 동쪽 卽墨으로 가서 지킬 수 있었다.
▶ 諸田疏屬: 齊王 전씨의 종친의 먼 친척.
▶ 市掾: 시장을 감독하는 관리.
▶ 見知: 알려지다. 인정받다.
▶ 長驅: 먼 곳까지 몰아서 쫓아감.
▶ 鐵籠: 철판으로 만든 테두리.
▶ 爭涂: 달아날 길을 다투다. 涂는 途와 통한다.
燕既盡降齊城,唯獨莒、即墨不下。
燕은 齊의 거의 모든 성읍을 항복시켰으나 오직 莒、即墨은 함락하지 못하였다.
燕軍聞齊王在莒,并兵攻之。
燕軍는 齊王이 莒에 있음을 알고 병력을 합쳐서 공격하였다.
淖齒既殺湣王於莒,因堅守,距燕軍,數年不下。
이때 淖齒(뇨치)가 莒에서 湣王을 살해하고 성을 굳게 지키며, 燕軍에 저항하여 몇 년 동안 함락되지 않았다.
燕引兵東圍即墨,即墨大夫出與戰,敗死。
燕은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즉묵을 포위하였으며, 즉묵의 대부들이 나가서 맞서 싸우다가 져서 죽었다.
城中相與推田單,曰:
「安平之戰,田單宗人以鐵籠得全,習兵。」
立以為將軍,以即墨距燕。
성안에서 서로 전단을 추대하며 말하였다.
“안평의 전투에서 전단의 집안사람들은 수레바퀴 축을 쇠로 싸두어 온전할 수 있었으니 병법에 익숙한 것이다.”
즉각 장군으로 삼았고 이로써 즉묵은 燕에 저항하였다.
▶ 淖齒: 楚장수. 燕 장수 樂毅가 五國을 연합해서 齊에 쳐들어오자 齊湣王이 莒로 도망쳐서 楚에 구원을 청하니, 楚는 장군 淖齒를 보내 구원하였다. 민왕이 감격해서 요치를 相國으로 삼았으나 요치는 齊 땅을 燕과 반분할 셈으로 莒에서 민왕을 죽여 그 筋骨을 뽑아 대들보에 다는 만행을 저질렀다. <史記권79范睡·蔡澤列傳>
▶ 距: 拒와 통하여 항거하다. 저항하다.
頃之,燕昭王卒,惠王立,與樂毅有隙。
얼마 뒤, 燕昭王이 죽고 惠王이 즉위하였는데, 악의와 사이가 나빴다.
田單聞之,乃縱反閒於燕,宣言曰:
전단이 알고 燕에 反閒을 풀어 말을 퍼뜨렸다.
「齊王已死,城之不拔者二耳。
“齊王이 이미 죽음에, 함락하지 못한 성이 둘 뿐이다.
樂毅畏誅而不敢歸,以伐齊為名,實欲連兵南面而王齊。
악의는 誅罰될까 두려워 귀국하지 않고, 齊 토벌을 명분으로 하고 실은 전쟁을 오래 끌어서 남면하며 齊에서 왕이 되려한다.
齊人未附,故且緩攻即墨以待其事。
齊의 사람들이 歸附하지 않으므로 잠시 즉묵 공격을 늦춰 그 일을 기다리고 있다.
齊人所懼,唯恐他將之來,即墨殘矣。」
齊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는, 다른 장군이 와서 즉묵을 도륙할까 걱정하는 것일 뿐이다.”
燕王以為然,使騎劫代樂毅。
燕惠王은 그렇다고 믿고 騎劫이 악의를 대신하게 하였다.
▶ 有隙: 사이가 나쁘다.
▶ 田單聞之,乃縱反閒於燕: 악의열전과 유사한 내용이다.
齊將 田單이 이를 듣고 燕에 첩자를 보내 반간계를 쓰며 다음과 같은 말을 퍼트렸다.
“齊의 성 중에 함락되지 않은 것은 두 성뿐이다. 그런데 서둘러서 함락시키지 않는 이유는 악의가 燕의 새로운 왕과 사이가 나빠서 전쟁을 끌면서 齊에 머물러서 남면하며 齊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있다. 齊가 오직 燕이 다른 장수를 보낼까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齊之田單聞之,乃縱反閒於燕,曰:
「齊城不下者兩城耳。然所以不早拔者,聞樂毅與燕新王有隙,欲連兵且留齊,南面而王齊。齊之所患,唯恐他將之來.”<사기 권80악의열전>
▶ 反閒: =反間.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것,
▶ 南面: 예전에 임금이 남쪽을 향하여 앉아서 신하의 朝禮를 받았던 데서 君主가 됨을 말한다.
▶ 王齊: 齊의 왕으로 칭하다. 齊에서 왕이 되다. 王은 동사로 쓰였다.
▶ 騎劫: 燕惠王은 樂毅를 소환하고 騎劫을 장수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樂毅가 趙로 도망하자 燕軍은 혜왕의 처사에 크게 불만을 품고 전의를 상실하였다. 기겁은 전단에게 죽었다.
樂毅因歸趙,燕人士卒忿。
악의는 이로 인하여 趙로 귀순하니, 燕의 사람과 병사들이 분개하였다.
而田單乃令城中人食必祭其先祖於庭,飛鳥悉翔舞城中下食。
한편 전단은 즉묵성 백성에게 명령하기를, 식사 때마다 반드시 뜰에서 조상을 제사지내라고 하니, 날던 새가 모두 성안으로 춤추며 날아내려 음식을 먹었다.
燕人怪之。
燕의 군사가 괴이하게 여겼다.
田單因宣言曰:
「神來下教我。」
전단이 이 틈에 말을 퍼트렸다.
“신이 내려와 나를 가르치신다.”
乃令城中人曰:
「當有神人為我師。」
그리고 성의 백성에게 알렸다.
“마땅히 신이 나의 스승이 되실 터이다.”
有一卒曰:
「臣可以為師乎?」因反走。
군졸 하나가 말하였다.
“臣도 스승이 될 수 있을까요?” 하고는 뒤돌아 달아났다.
田單乃起,引還,東鄉坐,師事之。
전단이 곧 일어나서 그를 데려오고 동쪽을 향해 앉은 다음 스승으로 받들고자 하였다.
卒曰:
「臣欺君,誠無能也。」
군졸이 말하였다.
“臣이 장군을 속였습니다. 정말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田單曰:
「子勿言也!」因師之。
전단이 말하였다.
“그대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하고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每出約束,必稱神師。
군령을 내릴 때마다 늘 신령스런 스승을 언급하였다.
乃宣言曰:
「吾唯懼燕軍之劓所得齊卒,置之前行,與我戰,即墨敗矣。」
그리고 선언하였다.
“우리가 걱정함은, 燕軍이 포로로 잡은 齊軍의 코를 베어, 그들을 앞줄에 두고 우리와 싸워서 即墨이 패하는 것일 뿐이다.”
燕人聞之,如其言。
燕軍이 듣고 말대로 하였다.
城中人見齊諸降者盡劓,皆怒,堅守,唯恐見得。
성의 백성은 齊의 降兵이 모두 劓刑(의형)을 당하였음을 보고, 모두 분개하여 성을 굳게 지켰으며, 오직 잡힐까만 두려워하였다.
單又縱反閒曰:
「吾懼燕人掘吾城外冢墓,僇先人,可為寒心。」
전단은 또 첩자를 풀어놓으며 말을 퍼뜨렸다.
“우리는 燕軍이 우리 성 밖의 무덤을 파헤쳐 조상을 욕보임을 두려워하니, 소름이 끼치게 할 만하다.”
燕軍盡掘壟墓,燒死人。
燕軍은 무덤을 모두 파헤쳐 시체를 불살랐다.
即墨人從城上望見,皆涕泣,俱欲出戰,怒自十倍。
즉묵 사람들이 성 위에서 바라보면서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다 함께 출전하려 하니, 분노는 열 배나 커졌다.
田單知士卒之可用,乃身操版插,與士卒分功,妻妾編於行伍之閒,盡散飲食饗士。
전단은 병사를 사용할 만함을 알고, 몸소 판자와 삽을 들고 사졸과 함께 일을 나누었고, 자신의 처첩을 軍伍에 편입하였으며, 음식을 모조리 풀어 병사들을 먹였다.
令甲卒皆伏,使老弱女子乘城,遣使約降於燕,燕軍皆呼萬歲。
무장한 병사를 모두 매복하고, 노약자와 부녀자들만 성에 오르게 하고, 사신을 보내 燕에 항복을 약속하니 燕軍은 모두 만세를 외쳤다.
田單又收民金,得千溢,令即墨富豪遺燕將,曰:
「即墨即降,願無虜掠吾族家妻妾,令安堵。」
전단은 또한 백성에게서 금을 거두어 1천 일을 모으고, 즉묵의 부호에게 명령하여 燕將에게 주고 말하게 하였다.
“즉묵이 곧 항복하면 저희 가족은 포로로 잡지 않아서 안도하게 하십시오.”
燕將大喜,許之。
燕將이 크게 기뻐하며 허락하였다.
燕軍由此益懈。
燕軍은 이로 인하여 더욱 해이해졌다.
▶ 反走: 되돌려 달아나다. 反은 返과 같으며 되돌아가다.
▶ 東鄉坐: 鄉은 向과 통하여 東向坐.
▶ 約束: 군령.
▶ 劓(의): 코를 베는 형벌. 고대 5형 중의 하나. (‘墨’·‘剕’·‘宫’·‘大辟’와 함께‘五刑’의 하나)
▶ 僇: 욕보이다.
▶ 壟墓: 무덤.
▶ 行伍: 軍伍를 말함. 軍을 편성하는 대오. 한 줄에 5명을 세우는 데 이를 伍라 하고, 그 5줄의25명을 行이라 함
▶ 饗士: 軍士에게 음식을 먹임.
▶ 鎰: 고대 중량의 단위로 1鎰은20냥 또는 24냥이다
▶ 安堵: 안도하다.
※火牛之計: 소에게 불을 붙여 날뛰게 하는 전략. 火牛計.
전단은 성 밑을 파서 땅굴을 만든 후에 천여 마리의 소를 붉은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거기에 五色으로 용의 그림을 그린 다음, 양쪽 뿔에 칼을 붙들어 매고 꼬리에는 기름이 묻은 갈대를 매달았다. 적을 다 취하게 만든 후에 神將처럼 꾸민 장사 오천 명이 칼을 들고 뒤따르며 쇠꼬리에 불을 붙여 소가 날뛰도록 하여 燕은 대패하고 기겁은 죽었다.
田單乃收城中得千餘牛,為絳繒衣,畫以五彩龍文,束兵刃於其角,而灌脂束葦於尾,燒其端。
전단은 성에서 소 1천여 마리를 거두어 얻고, 진홍색 비단옷을 입히고, 그 옷에 오색 용무늬를 그려놓고, 쇠뿔에는 칼날을 묶고, 소꼬리에 기름 부은 갈대를 매달고, 갈대 끝에 불을 붙였다.
鑿城數十穴,夜縱牛,壯士五千人隨其後。
성벽에 수십 개의 굴을 뚫고, 밤에 소를 내몰고, 장사 5천 명이 그 뒤를 따랐다.
牛尾熱,怒而奔燕軍,燕軍夜大驚。
소는 꼬리가 뜨거워지자 성이 나서 燕軍으로 달려가니, 燕軍들은 한밤중에 깜짝 놀랐다.
牛尾炬火光明炫燿,燕軍視之皆龍文,所觸盡死傷。
소꼬리에 붙은 횃불은 눈이 부시게 밝았는데 燕軍이 보니 모두 용의 무늬였는데 다. 받히는 대로 죽거나 부상하였다.
五千人因銜枚擊之,而城中鼓譟從之,老弱皆擊銅器為聲,聲動天地。
5천 명이 하무를 입에 물고 공격하고, 성에서는 북을 울리며 함성을 올려 응원하고, 노약자들은 모두 구리 그릇을 두들기며 성원을 하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燕軍大駭,敗走。
燕軍은 크게 놀라 패주하였다.
齊人遂夷殺其將騎劫。
齊軍이 마침내 將帥 騎劫을 죽였다.
燕軍擾亂奔走,齊人追亡逐北,所過城邑皆畔燕而歸田單,兵日益多,乘勝,燕日敗亡,卒至河上,而齊七十餘城皆復為齊。
燕軍은 어지러이 달아나고 齊軍이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자, 지나는 성읍이 모두 燕을 배반하고 전단에게 귀순하였으며, 날마다 병사가 불어서 승세를 탔고, 燕은 날마다 패하여 도망하다가 결국 황하에 이르러니, 齊의 70여 성이 모두 다시 齊나라 땅이 되었다.
乃迎襄王於莒,入臨菑而聽政。
齊襄王을 莒에서 맞아들이니, 臨菑로 들어가서 정사를 보았다.
襄王封田單,號曰安平君。
襄王은 전단을 安平君에 봉하였다.
▶ 絳繒衣: 진홍색 비단 옷을 입히다.
▶ 炬火: 횃불.
▶ 銜枚: (행군할 때 떠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젓가락 모양의 나무를 입에 물리다.
▶ 鼓譟: 북을 치며 떠들어 댐.
▶ 追亡逐北: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다. 北는 패배하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兵以正合,以奇勝。
“전쟁은 원칙적인 전술로 교전하고, 변칙적인 전술로 승리하는 것이다.
善之者,出奇無窮。
용병을 잘하는 자는 변칙적인 전술이 무궁무진하다.
奇正還相生,如環之無端。
변칙적인 전술과 원칙적인 전술을 번갈아 내놓기를 마치 둥근 고리가 끝이 없는 것처럼 한다.
夫始如處女,適人開戶;
後如脫兔,適不及距:
其由單之謂邪!
처음에는 처녀와 같게 하여 적이 문을 열게 하고,
뒤에는 탈출하는 토끼와 같게 하여 적이 미처 막지 못하게 한다는데,
그 유래는 전단을 이름이 아니겠는가!”
▶ 兵以正合,以奇勝. : 전쟁에서는 원칙적인 正兵으로 맞붙어 싸우다가 변칙적인 奇兵로 변화를 꾀한다는 뜻이다. 잘 싸우는 사람은 변칙적인 전술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니, 변칙적인 전술과 원칙적인 전술을 번갈아 내놓기를 마치 고리에 끝이 없는 것처럼 한다.
손자병법의 兵勢에 “무릇 전투는 正兵으로 교전하고 奇兵으로 승리한다. 그러므로 奇兵을 잘 출동시키는 자는 무궁무진함이 하늘과 땅 같고 다하지 않음이 강과 바다 같다. (凡戰者,以正合,以奇勝。故善出奇者,無窮如天地,不竭如江河,終而復始,日月是也.”고 하였다. <孫子兵法 兵勢>
▶ 始如處女……敵不及拒: 손자병법의 九地篇에 “처음에는 처녀와 같이 나약하게 행동하여 적이 문을 열어놓거든, 뒤에는 그물을 빠져나가는 토끼와 같이 신속히 행동하여 적이 미처 막지 못하게 한다. (是故始如處女,敵人開戶,後如脫兔,敵不及拒.’라고 하였다. 이는 처음에는 閨中의 처녀와 같이하여 약함을 보여주어서 적으로 하여금 공격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게 하고, 뒤에는 그물을 빠져나가는 토끼와 같이 신속히 행동하여 적으로 하여금 미처 우리를 대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孫子兵法 九地篇˃
▶ 適不及距: 적이 저항하지 못하게 한다. 適은 敵과 통한다.
初,淖齒之殺湣王也,莒人求湣王子法章,得之太史嬓之家,為人灌園。
당초 楚의 장군 淖齒가 湣王을 죽이자, 莒땅 사람들은 湣王의 아들 法章을 구하여, 太史嬓의 집에서 찾았는데, 정원에 물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嬓女憐而善遇之。
태사교의 딸이 그를 불쌍히 여겨 잘 대해 주었다.
後法章私以情告女,女遂與通。
나중에 법장이 사사로이 자신의 사정을 딸에게 말하자, 딸은 법장과 사통하였다.
及莒人共立法章為齊王,以莒距燕,而太史氏女遂為后,所謂「君王后」也
거 땅 사람들이 다 함께 법장을 齊王으로 세우고, 거 땅에서 燕에 항거하였으며, 태사교의 딸은 마침내 왕후가 되었으니, 소위 君王后이다.
▶ 齊湣王(齊湣王: 기원전300년부터284년까지 재위한 전국 때 齊의 군주다. 田성에 이름은 地이고 제선왕의 아들이다.
▶ 通: 私通하다.
燕之初入齊,聞畫邑人王蠋賢,令軍中曰
「環畫邑三十里無入」,以王蠋之故。
燕이 당초 齊를 침입했을 때 畫邑의 王蠋이라는 자가 어짊을 알고, 군중에 명령하기를,
“획읍 둘레 30리에 들어가지 말라.”라고 하였는데, 왕촉 때문이었다.
已而使人謂蠋曰:
「齊人多高子之義,吾以子為將,封子萬家。」
그렇게 하고 나서 사람을 보내 왕촉에게 말하였다.
“齊의 사람 중에 그대의 의기를 높이 평가하는 자가 많으니, 나는 그대를 장수로 삼고 그대에게 1萬戶를 봉하겠소.”
蠋固謝。
왕촉이 완강히 사양하였다.
燕人曰:
「子不聽,吾引三軍而屠畫邑。」
燕將이 말하였다.
“그대가 듣지 않으니, 나는 삼군을 이끌고 畫邑을 도륙할 터이오.”
▶ 畵邑: 전국시대 齊의 고을 이름.
王蠋曰:
왕촉이 말하였다.
「忠臣不事二君,貞女不更二夫。
“충신은 두 군주를 섬기지 않고, 열녀는 남편을 바꾸지 않소.
齊王不聽吾諫,故退而耕於野。
齊王은 내가 간함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나서 들에서 농사짓고 있소.
國既破亡,吾不能存;
今又劫之以兵為君將,是助桀為暴也。
나라가 이미 망했는데 내가 어찌 생존할 수 있겠소.
지금 군사로서 위협하여 그대의 將가 됨은, 桀王을 도와 포악한 짓을 하는 것이오.
與其生而無義,固不如烹!」
살아서 不義할 바에야 차라리 烹刑이 나을 터이오!”
遂經其頸於樹枝,自奮絕脰而死。
그리고는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스스로 힘껏 죄어 죽었다.
齊亡大夫聞之,曰:
「王蠋,布衣也,義不北面於燕,況在位食祿者乎!」
齊의 도망한 대부들이 듣고 말하였다.
“왕촉은 평민인데도 도의상 燕을 섬기지 않았는데, 하물며 지위에 있으며 녹봉을 먹는 자임에랴!”
乃相聚如莒,求諸子,立為襄王。
이에 함께 모여 莒땅으로 가서 제민왕의 아들을 찾아 세우니 襄王이 되었다.
▶ 經其頸: 자신의 목을 매다. 經은 목매다.
▶ 脰: 목.
▶ 布衣: 평민. 서민.
▶ 北面: 신하로서 임금을 섬김. 군주는 남면하고 신하는 북면한다.
▶ 食祿者: 나라의 봉록을 먹는 자.
▶ 如莒: 거 땅으로 가다. 如는 가다.
▶ 立為襄王: 淖齒가 湣王을 죽이자, 莒 사람들은 田單과 합세하여 민왕의 아들 法章을 즉묵 땅에서 찾아내고 왕으로 옹립하니, 이이가 齊襄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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