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世家

世家38-宋微子世家(송미자세가)

구글서생 2023. 6. 16. 03:05

이 편은 30世家 중 여덟 번째 편으로 周나라의 제후국인 宋의 흥망과정을 기록하였다. 宋은 周成王이 은나라 紂왕의 아들 武庚을 주벌한 후 微子를 宋에 봉하여 은나라의 뒤를 잇게 하여 성립되었다.

사마천은 태사공 자서에서 말하였다.

“아아, 箕子여! 아아, 箕子여!

바른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노예가 되었구나. 武庚이 죽자 주왕실은 微子를 宋에 봉하였다.

후세에 宋襄公이 泓水에서 楚와 싸우다 부상을 입고 패했는데 군자로서 그 누가 인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宋景公이 겸양의 덕을 쌓으니 좋지 않은 징조인 火星이 서쪽으로 물러났다.

剔成이 포악하여 宋은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微子가 箕子를 太師로 삼아 자문을 구하여 정치를 행한 것을 칭송하여 제8편 ‘宋世家’를 지었다. ”

 

微子開者,殷帝乙之首子而帝紂之庶兄也。
微子開는 殷나라 帝乙의 맏아들이며, 紂王과 어머니가 다른 형이다.
 
紂既立,不明,淫亂於政,微子數諫,紂不聽。
紂왕이 즉위한 후 통치가 분명하지 못하고 국정에 음탕하고 난잡하여 미자가 자주 간언했으나 紂왕은 듣지 않았다.
 
及祖伊以周西伯昌之修德,滅黎國,懼禍至,以告紂。
이에 祖伊는 周나라의 西伯昌이 덕정을 베풀고 黎國을 멸망시키자 그 화가 미칠까 두려워 이를 紂왕에게 고하였다.
 
紂曰:
「我生不有命在天乎?
是何能為!」
주왕이 말하기였다.
“내가 살아 있음은 수명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 아닌가?
그가 무얼 어찌하겠는가?”

▶ 微子開: 微子 啓. 商나라의 30대 帝乙의 長子로 상나라 마지막 왕인 紂王의 이복형으로 이름은 啟이다. 어머니가 正后가 아니었기 때문에 王位를 계승받지 못했으며, 微에 封해져 微子라고 불렸다. 은나라가 멸망한 뒤에 周成王이 宋의 제후로 封하였다. 比干, 箕子와 함께 殷말기의 세 명의 어진 사람으로 꼽힌다. 春秋시대 諸侯國인 宋의 始祖이기도 하여 宋微子라고도 한다. 미자의 이름은‘啓’이나 漢景帝(劉啓)를 避諱하여 ‘開’로 표기한 것이다. 子는 작위이다.
▶ 帝乙: 상나라의 30대 군주이다. 성은 子이고 이름은 羡이다. 수도는 殷이었다. 자식은 첫째 미자 微子 啓, 둘째 中衍, 막내 帝辛, 주왕 등이 있다. 막내 아들 제신이 보위를 이었다.
▶ 帝紂: 商왕조의 마지막 왕. 본명은 帝辛 또는 受이고, 紂는 무도한 군주에게 주어진 시호이다. 주왕은 변설을 잘하고 힘도 세며 미녀와 음악을 즐겼다고 한다. 궁전과 정원을 호화롭게 장식하고 酒池肉林 속에서 寵妃 妲己에게 매혹되어 충신들의 諫言을 듣지 않고 간사한 무리들을 가까이하였다.
▶ 數(삭): 여러 차례.
▶ 祖伊: 商나라 때 사람으로 西伯(周文王)이 병사를 일으켜 黎國을 공격하여 그 땅을 차지하자 재앙이 곧 닥침을 알고 紂왕에게 충간을 올렸지만, 주왕은 듣지 않았다. <尙書 商書 西伯戡黎>
▶ 西伯昌: 姓은 姫, 이름은 昌이며 季王의 아들, 무왕의 아버지이다. 죽은 뒤 그의 아들 武王發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창건하였으며, 그에게 文王이라는 시호를 추존하였다.
▶ 有命在天: “내가 살아 있음은 수명이 하늘에 달려있어서인데, 백성들의 하는 말이 어찌 나를 해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於是微子度紂終不可諫,欲死之,及去,未能自決,乃問於太師、少師曰:
「殷不有治政,不治四方。
我祖遂陳於上,紂沈湎於酒,婦人是用,亂敗湯德於下。
殷既小大好草竊姦宄,卿士師師非度,皆有罪辜,乃無維獲,小民乃并興,相為敵讎。
今殷其典喪!
若涉水無津涯。
殷遂喪,越至于今。」
이에 미자는 紂왕은 간언으로는 일깨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죽이려 하다가,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太師와 少師를 찾아가 물었다.
“은나라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못해 세상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세상에 업적을 폈는데 紂왕은 술에 빠져 부인 말만 듣다가 湯왕의 덕정을 어지럽히고 무너뜨렸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은 아랫사람 윗사람 할 것 없이 초야에서는 도적질을 일삼고 소란스러운 짓을 좋아하며, 卿士들은 서로를 본받아 법도가 아닌 일을 일삼으니 모두가 죄를 짓고도 누구 하나 벌을 받지 않아서 백성들이 들고일어나 서로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은나라는 나라의 법과 제도를 상실하였습니다!
마치 강물을 건너는데 나루와 물가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은나라가 드디어 망하게 될 날이 지금 다가온 것입니다. ”

▶ 度: 헤아리다. 생각하다.
▶ 大師, 少師: 황태자의 스승을 太師, 太傅, 太保, 少師, 少博, 少保로 일컫는다. 太師는 三公으로 箕子를 말하며, 少師는 孤卿으로 比干을 말한다.
▶ 沈湎: 술에 젖어서 헤어나지 못함. (주색 따위에 빠지다.)
▶ 草竊姦宄: 초야에서 도적질을 일삼고 소란스러운 짓을 하다.

 

曰:
「太師,少師,我其發出往?
吾家保于喪?
今女無故告予,顛躋,如之何其?」
미자가 물었다.
“태사, 소사, 내가 나와서 떠나버려야겠소?
아니면 남아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겠소?
지금 그대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은나라가 무너져 떨어질 것이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太師若曰:
「王子,天篤下菑亡殷國,乃毋畏畏,不用老長。
今殷民乃陋淫神祇之祀。
今誠得治國,國治身死不恨。
為死,終不得治,不如去。」
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왕자시여,
하늘이 혹독하게 재앙을 내려 은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데도 주왕은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老長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지금 은나라 백성은 하늘과 땅에 대한 제사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실로 나라를 다스려 잘 다스려진다면 몸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죽어도 끝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떠나는 것만 못합니다. ”

遂亡。
미자는 그리하여 망명하였다.

▶ 顛躋: 멸망하다. 顛은 위로부터 무너짐을 이르고, 躋는 구렁텅이에 떨어짐을 이르니, 모두 멸망의 뜻이다.
▶ 若: 이와 같다.
▶ 菑: 재앙.
▶ 神祇: 天神과 地祇.

 

箕子者,紂親戚也。
箕子는 紂왕의 친척이다.
 
紂始為象箸,箕子嘆曰:
「彼為象箸,必為玉桮;
為桮,則必思遠方珍怪之物而御之矣。
輿馬宮室之漸自此始,不可振也。」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쓰기 시작하자 기자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가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틀림없이 옥 술잔을 쓸 테고, 옥 술잔을 쓰게 되면 틀림없이 먼 곳의 진기하고 괴이한 물건들을 차지하려 할 터이다.
수레와 말과 궁궐을 갖게 될 조짐이 이로부터 시작되어 멈출 수 없을 터이다. ”

紂為淫泆,箕子諫,不聽。
주왕이 제멋대로 쾌락에 빠지자, 기자가 간언했으나 듣지 않았다.
 
人或曰:
「可以去矣。」
누군가가 말하였다.
“떠남이 마땅합니다. ”

箕子曰:
「為人臣諫不聽而去,是彰君之惡而自說於民,吾不忍為也。」
기자가 말하였다.
“신하된 자가 간언하여 듣지 않는다고 떠나면 이는 군주의 잘못은 드러내고 자신은 백성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니 나로서는 차마 그렇게 못하겠다. ”

乃被髪詳狂而為奴。
이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여 노예가 되었다.
 
遂隱而鼓琴以自悲,故傳之曰箕子操。
마침내 숨어서 스스로 슬퍼하면서 거문고를 연주하였으므로 이 곡조가 ‘箕子操’라고 전해지고 있다.

▶ 箕子: 殷나라 紂王의 숙부로 이름은 胥餘이고 벼슬은 太師에 이르렀으며, 箕나라에 봉해졌다. 紂왕이 포악한 것을 보고 간했지만 듣지 않자, 머리를 풀고 미친 척 가장하여 노예가 되었다가 紂왕에 의해 구금되었다. 周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紂를 죽인 뒤에 箕子를 석방하고 그를 朝鮮에 책봉하였다.
▶ 詳: 佯과 통한다. 가장하다.
▶ 箕子操: 기자가 슬퍼하면서 거문고로 연주한 곡.

嗟嗟紂爲無道殺比干.

嗟重復嗟. 獨奈何.

漆身爲厲. 被髮以佯狂. 今奈宗廟何.

天乎天哉.

欲負石自投河. 嗟復奈社稷何.

슬프도다! 슬프도다! 紂가 무도하여 比干을 죽였도다.

슬프고 또 슬퍼라. 나 홀로 어이 할꼬.

온몸에 옻칠하여 문둥이로 변신하고 머리 풀어 광인으로 가장하였네.

지금의 이 종묘를 누가 받들 것인가?

하늘도 야속하오. 돌을 지고 깊은 물에 빠져나 볼까.

슬프다. 이 사직을 어이 할꼬.



王子比干者,亦紂之親戚也。
왕자 比干 역시 紂왕의 친척이다.
 
見箕子諫不聽而為奴,則曰:
「君有過而不以死爭,則百姓何辜!」
기자가 간언해도 듣지 않고, 노예가 딤을 보고 말하였다.
“군주에게 허물이 있는데도 죽음으로 따지지 않는다면 무고한 백성들만 피해를 입지 않겠는가!”

乃直言諫紂。
이에 주왕에게 직언하여 간하였다.
 
紂怒曰:
「吾聞聖人之心有七竅,信有諸乎?」
주왕이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듣기에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나 있다던데 정말 그런가?”

乃遂殺王子比干,刳視其心。
그리고는 왕자 비간을 죽여 그의 가슴을 열고 심장을 보았다.

▶ 比干: 殷나라 紂王의 숙부. 주왕의 음란함을 간한다고 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비간은 箕子와 微子와 아울러 은나라의 三仁으로 꼽힌다.
▶ 爭: 간쟁하다. 직간하다.
▶ 辜: 허물. 죄.
▶ 刳: 도려내다.

 

微子曰:
「父子有骨肉,而臣主以義屬。
故父有過,子三諫不聽,則隨而號之;
人臣三諫不聽,則其義可以去矣。」
미자가 말하였다.
“아비와 자식 사이에는 골육의 정이 있고, 군주와 신하는 의리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아비에게 잘못이 있으면 자식은 세 번을 간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자식은 계속 통곡할 따름이다.
신하된 자가 세 번을 충고했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 의리상 군주를 떠나도 괜찮다. ”

於是太師、少師乃勸微子去,遂行。
이에 태사와 소사가 미자에게 떠나기를 권하니 마침내 떠났다.

▶ 號: 號哭. 목놓아 슬피 울다.

 

周武王伐紂克殷,微子乃持其祭器造於軍門,肉袒面縛,左牽羊,右把茅,膝行而前以告。
주무왕이 주왕을 토벌하여 은나라를 물리치자 미자는 이에 종묘의 제기를 들고 軍門으로 가서 웃통을 벗고 등 뒤로 손을 묶은 다음, 왼쪽 사람에게 양을 끌게 하고 오른쪽 사람에게는 띠를 가지게 하여 무릎으로 걸어 무왕의 앞으로 나가 고하였다.
 
於是武王乃釋微子,復其位如故。
이에 무왕은 미자를 석방하고 예전대로 복위시켰다.

▶ 造: 가다.
▶ 肉袒面縛: 패배를 인정하고 순순히 투항함을 이르는 말. 肉袒은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것이며 복종, 사죄 등의 뜻을 나타낸다. 面縛은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묶고 앞을 보게 함.

武王封紂子武庚祿父以續殷祀,使管叔、蔡叔傅相之。
周 武王은 은나라 紂왕의 아들 武庚祿父에게 은나라 왕조의 제사를 잇게 하고, 管叔과 蔡叔을 시켜 그를 보좌하게 하였다.

▶ 武庚祿父: 商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紂王의 아들로 商이 멸망한 뒤 商의 도읍이었던 殷에 머무르며 遺民들을 다스렸고, 주 周 武王이 죽은 뒤에 周公이 成王을 대신해 攝政을 하자, 周公의 동생들인 管叔, 蔡叔, 霍叔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武王既克殷,訪問箕子。
주무왕이 은나라를 물리친 후 기자를 방문하였다.

▶ 訪問箕子: 무왕 즉위 13년에 기자를 방문하였다. <書經周書鴻範>

 

武王曰:
「於乎!
維天陰定下民,相和其居,我不知其常倫所序。」
무왕이 말하였다.
“오오!
하늘은 아래의 백성들을 정해놓고 그들의 삶을 도우시고 화합하게 하시나, 나는 하늘의 변함없는 윤리가 베풀어지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

▶ 陰定: 몰래 정하다.
▶ 常倫: 항상 지켜야 할 변함없는 인간의 도리.

 

箕子對曰:
「在昔鯀陻鴻水,汨陳其五行,帝乃震怒,不從鴻範九等,常倫所斁。
鯀則殛死,禹乃嗣興。
天乃錫禹鴻範九等,常倫所序。
기자가 대답하였다.
“옛날 鯀이 홍수를 막으면서 오행의 질서를 어지럽히자 상제께서 크게 노하여 큰 규범 아홉 가지를 주시지 않아 변함없는 윤리가 이로써 흐트러졌습니다.
곤이 죽임을 당하고 禹가 그 일을 이어서 일으켰습니다.
하늘은 곧 禹에게 큰 규범 아홉 가지를 내리시어 일상의 윤리가 순서를 찾게 된 것입니다.

▶ 鯀: 우의 아버지는 鯀이며, 곤의 아버지가 제 전욱이다. 전욱의 아버지는 昌意이고, 창의의 아버지가 黃帝이다.
▶ 鴻: 洪과 통용된다.
▶ 陻(인): 막다.
▶ 汨(골)陳: 마구 어지럽게 늘어놓다. 汨은 어지럽히다.
▶ 斁(두): 섞다. 손상되다.
▶ 殛(극): 죽이다.
▶ 洪範九疇: 중국 上古시대에 夏나라의 禹왕이 堯舜이래의 사상을 集大成한 천지의 大法으로 알려진 정치 도덕의 기본적 아홉 법칙을 말한다. 홍범은 大法을 말하고, 구주는 9개 條를 말하는 것으로, 즉 9개 조항의 큰 법이라는 뜻이다.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로부터 받은 洛書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주武王이 箕子에게 선정의 방안을 물었을 때 기자가 이 홍범구주로써 교시하였다고 한다. <書經>周書洪範편에 수록되어 있다. 9조목은 五行·五事·八政·五紀·皇極·三德·稽疑·庶徵및 五福과 六極이다.

 

初一曰五行;二曰五事;三曰八政;四曰五紀;五曰皇極;六曰三德;七曰稽疑;八曰庶徵;九曰嚮用五福,畏用六極。
“첫째는 五行이라 하고, 두 번째를 五事, 세 번째를 八政, 네 번째를 五紀, 다섯 번째를 皇極, 여섯 번째를 三德, 일곱 번째를 稽疑, 여덟 번째를 庶徵이라 하며, 아홉 번째를 嚮用五福과 畏用六極이라 합니다.

 

五行:一曰水,二曰火,三曰木,四曰金,五曰土。
오행은 첫째는 물이고, 둘째는 불, 셋째는 나무이고, 넷째는 쇠이고, 다섯째는 흙입니다.
 
水曰潤下,火曰炎上,木曰曲直,金曰從革,土曰稼穡。
물은 아래로 젖어들며, 불은 위로 타오르며, 나무는 굽거나 곧으며, 쇠는 따르고 모양을 바꾸며, 흙은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潤下作鹹,炎上作苦,曲直作酸,從革作辛,稼穡作甘。
아래로 젖어들면 짠 것을 만들고, 위로 타오르면 쓴맛을 만들고, 굽고 곧은 것은 신맛을 만들고, 따르고 변화하는 것은 매운맛을 만들고, 심어서 거두는 것은 단맛을 만듭니다.

▶ 五行: 만물을 생성하는 水•火•木•金•土의 다섯 가지 元氣. 五行相生과 五行相剋의 이치로 만물을 지배한다.

 

五事:
一曰貌,二曰言,三曰視,四曰聽,五曰思。
五事는그 첫째가 외모이며, 둘째는 말이며, 셋째는 보는 것이며, 넷째는 듣는 것이며, 다섯째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貌曰恭,言曰從,視曰明,聽曰聰,思曰睿。
외모는 공손해야 하고, 말은 이치에 맞아야 하며,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총명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恭作肅,從作治,明作智,聰作謀,睿作聖。
공손하면 엄숙해지고, 이치에 맞으면 조리가 있도록 만들고, 밝으면 지혜로워지고, 총명하면 일을 꾀할 수 있고, 지혜로우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 五事: 다섯 가지의 일. 貌•言•視•聽•思. 외모, 말,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을 지칭한다. 외모는 공손해야 하고, 말은 조리가 있어야 하며,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분명해야 하며,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워야 한다. 공손함은 엄숙을, 이치를 따름은 조리가 있음을, 밝음은 지혜를, 분명함은 도모를, 지혜는 성인을 만드는 것이다.
▶ 睿: 슬기롭다. 지혜롭다.

 

八政:
一曰食,二曰貨,三曰祀,四曰司空,五曰司徒,六曰司寇,七曰賓,八曰師。
“八政이란 첫째는 食이며, 둘째는 貨, 셋째는 祀이며, 넷째는 司空, 다섯째는 司徒, 여섯째는 司寇, 일곱째는 賓, 여덟째는 師를 말합니다.

▶ 八政: 여덟 가지의 政事로 食, 貨, 祀, 司空, 司徒, 司寇, 賓, 師를 말한다. 食은 양식을 관리하는 것이며, 貨는 재정을 주관하는 것이며, 祀는 제사를 다스려 관리하는 것이며, 司空은 백성의 땅을 다스리는 것이며, 司徒는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며, 司寇는 범죄를 잡아서 다스리는 것이며, 賓은 손님을 불러 대접하는 것이며, 師는 군대를 이끌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五紀:
一曰歲,二曰月,三曰日,四曰星辰,五曰歷數。
“五紀는 첫째는 歲, 둘째는 月, 셋째는 日, 넷째는 星辰, 다섯째는 曆數를 말합니다.

▶ 五紀: 다섯 가지의 하늘의 때가 변화하는 紀律. 歲•月•日•星辰•曆數를 말한다.
▶ 曆數: 역법을 계산함.

 

皇極:皇建其有極,斂時五福,用傅錫其庶民,維時其庶民于女極,錫女保極。
皇極은 제왕이 세워야 할 지극한 법칙으로, 五福을 거두어 백성들에게 두루 베풀어 주면 당시의 백성은 제왕의 법칙을 지키게 되고 백성들이 제왕과 함께 법칙을 지킬 것입니다.
 
凡厥庶民,毋有淫朋,人毋有比德,維皇作極。
만약 백성들이 사악한 패거리를 짓지 않고, 관리들도 사사로운 덕을 이루지 않는 것은 오직 제왕의 법칙을 시행하기 때문입니다.
 
凡厥庶民,有猷有為有守,女則念之。
만약 백성들 중 계책도 있고 능력도 있으며 지조도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왕께서 그들을 염두에 두십시오.
 
不協于極,不離于咎,皇則受之。
제왕의 법칙에 맞지 않더라도 죄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제왕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시오.

▶ 皇極: 제왕의 법칙으로 제왕이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정한 大道로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中正의 도이다. 즉, 제왕이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자연히 제왕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 凡厥: 凡是. 만약~한다면.
▶ 傅: 나누다.
▶ 錫: 하사하다.
▶ 女: 汝와 통용된다. 그대. 너. 여기서는 제왕의 의미. 기자가 주무왕을 지칭한 것이다.
▶ 有: 又와 통용된다. ~도.
▶ 猷: 계책.
▶ 離: 罹와 통용된다. 만나다. 당하다.
▶ 咎: 허물. 죄.

 

而安而色,曰予所好德,女則錫之福。
편안한 안색을 하시고, ‘나는 덕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제왕께서는 그에게 작위와 녹봉을 내리십시오.
 
時人斯其維皇之極。
그렇게 하시면 이런 사람들이 제왕의 법칙을 지킬 것입니다.
 
毋侮寡而畏高明。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학대하지 마시고, 덕이 높고 현명한 사람을 두렵게 여기십시오.
 
人之有能有為,使羞其行,而國其昌。
능력 있고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관리들에게 재능을 펼치게 하면 나라는 번창 할 터입니다.
凡厥正人,既富方穀。
만약 정직한 사람이라면 부유하게 해주면 곧 더 좋아집니다.
 
女不能使有好于而家,時人斯其辜。
제왕께서 훌륭한 사람들로 하여금 왕실에 공헌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사람들은 죄를 범하게 될 터입니다.
 
于其毋好,女雖錫之福,其作女用咎。
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왕께서 복을 내리셔도 그들은 제왕이 잘못을 저지르게 할 것입니다.
毋偏毋頗,遵王之義。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마시고 선왕의 의로움을 지키십시오.
 
毋有作好,遵王之道。
사사로이 좋아하는 바가 없이 제왕의 도를 지키십시오.
 
毋有作惡,遵王之路。
사사로이 싫어하는 바가 없이 제왕의 길을 따르십시오.
 
毋偏毋黨,王道蕩蕩。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고 패거리를 짓지 않으면, 왕도가 탕탕해집니다.
毋黨毋偏,王道平平。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고 그릇되지 않으면 왕도가 평안해집니다.
 
毋反毋側,王道正直。
거스르지 않고 벗어나지 않아야 왕도가 바르고 곧아집니다.
 
會其有極,歸其有極。
모두가 제왕의 법칙 아래로 모여야 하고 제왕의 법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曰王極之傅言,是夷是訓,于帝其順。
법칙에 의거하여 발표한 제왕의 말은 백성들을 이끄는 변치 않는 법으로 상제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凡厥庶民,極之傅言,是順是行,以近天子之光。
만약 백성들이 법칙에 의거하여 발표한 말에 따라 실행한다면 천자의 광명에 가까워집니다.
 
曰天子作民父母,以為天下王。
이것이 ‘천자는 백성의 부모로서 천하의 왕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 蕩蕩: 평탄한 모양. 넓고 넓음.
▶ 傅言: 덧붙여 늘어놓는 말.
▶ 夷: 彝와 통용된다. 변치 않는 법칙.

 

「三德:一曰正直,二曰剛克,三曰柔克。
三德이란 첫째는 正直이며, 둘째는 剛克이며, 셋째는 柔克입니다.
 
平康正直,彊不友剛克,內友柔克,沈漸剛克,高明柔克。
천하가 평안하고 즐거우면 正直으로 다스리고, 강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굳세게 다스리며, 화합하고 따름에는 부드럽게 다스리며, 침체함에는 굳세게 다스리고, 고상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부드럽게 다스립니다.
 
維辟作福,維辟作威,維辟玉食。
제왕만이 복을 내릴 권한이 있으며, 제왕만이 죄를 다스릴 위엄을 가질 수 있으며, 제왕만이 진귀한 음식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臣無有作福作威玉食。
신하에게는 복을 내릴 권한과 죄를 다스릴 위엄과 진귀한 음식을 누릴 권리가 없습니다.
 
臣有作福作威玉食,其害于而家,凶于而國,人用側頗辟,民用僭忒。
신하가 복을 내릴 권한과 죄를 다스릴 위엄과 진귀한 음식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면, 그대의 집안에 해롭고 그대의 나라에 흉하여, 관리들은 임금을 잘못되게 하고 백성은 본분을 지키지 않을 터입니다.

▶ 三德: 세 가지 덕목. 正直·剛克·柔克을 말한다.
▶ 内: 화합하다.
▶ 沈漸: 가라앉듯 숨어서 일을 하지 않음.
▶ 辟: 임금.
▶ 玉食: 진귀한 음식.
▶ 僭忒: 분수에 넘치고 어긋나다. 윗사람을 넘보거나 어긋난 행위를 하다.

 

稽疑:擇建立卜筮人。
稽疑란 거북점과 蓍草로 점치는 사람을 세워 선택하는 것입니다.
 
乃命卜筮,曰雨,曰濟,曰涕,曰霧,曰克,曰貞,曰悔,凡七。
거북점과 시초점을 치도록 명하여 비가 오겠다, 날씨가 개이겠다, 날이 흐렸다 개겠다, 안개가 끼겠다, 음양이 서로 침범하는 것과 내괘와 외괘의 일곱 가지를 봅니다.
 
卜五,占之用二,衍貣。
거북점은 다섯 雨,濟,涕,霧,克로, 시초점은 두 貞,悔로 점괘를 살핍니다.
 
立時人為卜筮,三人占則從二人之言。
때에 맞춰 이런 사람들을 임용하여 복서를 행하는데 세 사람이 점을 쳤을 경우 결과가 같은 두 사람의 말을 따릅니다.
 
女則有大疑,謀及女心,謀及卿士,謀及庶人,謀及卜筮。
제왕께 큰 의문이 있다면 제왕께서 먼저 깊이 생각하시고 그 다음에 대신과 관리들과 상의하시고 그 다음에 백성들과 상의하시고. 그런 뒤에 거북점과 시초점으로 물어보십시오.

▶ 稽疑: 의문을 푸는 것. 卜과 筮로 점을 치는 사람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점을 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 卜筮: 禮記曲禮上에 “龜甲으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卜이라 하고, 蓍草로 길흉을 점치는 것을 筮라 한다( 龜爲卜,策爲筮)”라고 하였다. 蓍草는 가새풀로 점을 치는 데 사용한 것을 말한다.
▶ 涕: 왕래가 잦아 끊이지 않다.
▶ 貞: 易占의 괘. 內卦.
▶ 悔: 外卦.
▶ 衍貣: 변화를 미루어 짐작하다.

 

女則從,龜從,筮從,卿士從,庶民從,是之謂大同,而身其康彊,而子孫其逢吉。
제왕께서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고 대신과 관리들이 따르고, 백성도 따르면 이를 일컬어 <大同>이라 하며, 자신은 안락하고 자손은 흥성함을 만나 길할 터입니다.
 
女則從,龜從,筮從,卿士逆,庶民逆,吉。
제왕께서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면, 대신과 관리들이 거역하고 백성이 거역할지라도 길할 터입니다.
 
卿士從,龜從,筮從,女則逆,庶民逆,吉。
대신과 관리들이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면 제왕이 거역하고 백성들이 거역하더라도 길할 터입니다.
 
庶民從,龜從,筮從,女則逆,卿士逆,吉。
백성들이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고 시초점이 따르면 제왕이 거역하고 대신과 관리들이 거역하더라도 길할 터입니다.
 
女則從,龜從,筮逆,卿士逆,庶民逆,作內吉,作外凶。
제왕께서 따르고 거북점이 따르지만 시초점이 거역하고 대신과 관리들이 거역하고 백성들이 거역하면 내부 일은 길하고 외부 일은 흉할 터입니다.
 
龜筮共違于人,用靜吉,用作凶。
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사람들의 생각과 어긋난다면 가만히 있으면 길하지만 움직이면 흉할 터입니다.

庶徵:曰雨,曰陽,曰奧,曰寒,曰風,曰時。
庶徵이란 비가 오는 것과 날이 화창함과 날이 따뜻함과 날이 추운 것, 바람 부는 것과 계절이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五者來備,各以其序,庶草繁廡。
이 다섯 가지 날씨의 조화가 다 갖추어지고 각각 그 질서에 따라 나타나면 모든 풀과 나무가 무성해집니다.
 
一極備,凶。一極亡,凶。
그 가운데 하나가 지나치면 흉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나치게 부족하면 흉합니다.

▶ 庶徵: 하늘의 여러 가지 징조. <書經>의 洪範九疇 가운데 여덟 번째 조목이며, 통치자가 나라를 잘 다스리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때에는 나라가 어지러워짐을 날씨의 조화에 비유하여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난다고 한 것이다.
▶ 奧: 따뜻하다. 奥은 따뜻할 ‘욱’.
▶ 廡: 무성하다.

 

曰休徵:
曰肅,時雨若,
曰治,時暘若;
曰知,時奧若;
曰謀,時寒若;
曰聖,時風若。
경사스러운 징조란
제왕이 엄정함에 제때에 비가 내리며,
조리 있음에 제때에 날이 개이며,
지혜로움에 제때에 날이 따뜻하며,
계획을 잘 세움에 제때에 날이 추우며,
성스러움에 제때에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曰咎徵:
曰狂,常雨若;
曰僭,常暘若;
曰舒,常奧若;
曰急,常寒若;
曰霧,常風若。
재앙의 징조란
경망함에 오랫동안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고,
참람함에 오랫동안 해가 비추며,
편히 놀음에 오랫동안 무더위가 계속되며,
조급함에 오랫동안 추위가 따르며,
몽매함에 오랫동안 바람이 따르는 것입니다.

▶ 休徵: 아름다운 징험. 경사스러운 징조.
▶ 若: 좇다. 따르다.
▶ 咎徵: 재앙의 징조.
▶ 僭: 잘못. 분수에 지나치게 행동하다.

 

王眚維歲,卿士維月,師尹維日。
제왕이 정책 결정을 잘못 내리면 1년 동안 영향을 미치고, 대신들과 관리가 착오가 생기면 그 영향이 한 달을 가며, 관리들이 일을 잘못하면 하루 동안 영향을 줍니다.
 
歲月日時毋易,百穀用成,治用明,畯民用章,家用平康。
한 해, 한 달, 하루에 거스름이 없으면 백곡이 풍성해지고 정치가 맑아지며,
뛰어난 인재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라는 태평하고 편안해집니다.
 
日月歲時既易,百穀用不成,治用昏不明,畯民用微,家用不寧。
한 해, 한 달, 하루가 어긋나면 백곡이 익지 않고 정치도 혼미해져 밝지 못하며,
뛰어난 인재들은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며 나라는 편안해지지 못합니다.
 
庶民維星,星有好風,星有好雨。
백성들은 뭇별들과 같으며, 별에는 바람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별에는 비를 좋아하는 것도 있습니다.
 
日月之行,有冬有夏。
해와 달의 운행으로 겨울을 있게 하고 여름을 있게 하였습니다.
 
月之從星,則以風雨。
달이 별을 따름으로써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게 됩니다.

▶ 眚: 잘못.
▶ 畯: 뛰어나다. 俊과 통용된다.

 

五福:一曰壽,二曰富,三曰康寧,四曰攸好德,五曰考終命。
五福이란
첫째는 오래 사는 일이며,
둘째는 부유한 것이며,
셋째는 건강하고 안락한 것이며,
넷째는 덕을 닦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이며,
다섯째는 제명대로 편히 죽는 것을 말합니다.
 
六極:一曰凶短折,二曰疾,三曰憂,四曰貧,五曰惡,六曰弱。」
六極이란
첫째는 횡사하거나 요절하는 것이며,
둘째는 병에 걸리는 것이며,
셋째는 근심이며,
넷째는 가난한 것이며,
다섯째는 흉악한 것이며
여섯째는 몸이 약한 것을 말합니다. ”

▶ 五福: 인생의 바람직한 조건인 다섯 가지의 복. 壽·富·康寧·攸好德·考終命. 곧 오래 사는 長壽,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富, 건강하게 사는 康寧,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람 있는 봉사를 하는 攸好德, 자기 집에서 깨끗이 죽음을 맞는 考終命을 말한다.
▶ 六極: 여섯 가지의 하늘의 징벌. 凶短折·疾·憂·貧·惡·弱을 말한다. 즉, 횡사하거나 요절하는 것, 병에 걸리는 것, 근심, 가난한 것, 흉악한 것, 몸이 약한 것을 말한다.
▶ 攸: 所. 곳.
▶ 考終命: 제 명대로 다 살다가 편안하게 죽다. 考는 장수하다.
▶ 極: 징벌하다.
▶ 凶短折: 횡사하거나 요절. 이가 나기 전에 죽는 것을 凶, 성인이 되기 전에 죽는 것을 短, 혼인을 못하고 죽는 것을 折이라고도 한다.

 

於是武王乃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이에 무왕은 기자를 朝鮮에 봉하되 신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其後箕子朝周,過故殷虛,感宮室毀壞,生禾黍,箕子傷之,欲哭則不可,欲泣為其近婦人,乃作麥秀之詩以歌詠之。
그 후 기자가 주나라에 조회할 때, 은나라의 폐허를 지나다가 궁실이 무너진 자리에 벼와 기장이 자라고 있는 것에 느끼는 바가 있어 기자는 상심하여 통곡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울고도 싶었으나 아녀자 같을까 봐 麥秀라는 시를 지어 노래를 불렀다.
 
其詩曰:
「麥秀漸漸兮,禾黍油油。
彼狡僮兮,不與我好兮!」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보리 잘 되어 이삭 빼어났네, 벼와 기장이 자라 우거졌구나.
저 교활한 아이야, 나와는 가까이 지내지 못했구나!”

所謂狡童者,紂也。
이른바 교활한 아이란 紂왕을 말한다.
 
殷民聞之,皆為流涕。
은나라의 유민들이 이를 듣고는 모두 눈물을 흘렸다.

▶ 麥秀之詩: 狡童之歌. 箕子가 고국 殷나라가 망한 뒤 조선에 책봉된 후 주나라에 조회를 드리러 올 때 은나라의 황폐해진 궁궐에 보리와 기장만 무성한 것을 보고 한탄하며 불렀다는 노래로 나라가 망함을 한탄한 노래의 의미로 쓰인다.
▶ 漸漸: 조금씩 더하거나 덜해지는 모양. 점차.
▶ 狡童: 교활한 아이.
▶ 紂王: 殷나라의 제31대 왕으로 마지막 군주이다.
▶ 禾黍: 벼와 기장.
※黍離之歎 : 나라가 멸망하여 궁궐터에 기장만이 자라 황폐해진 것을 보고 탄식함. 세상의 성함과 쇠함이 서로 바뀌어 무상함을 탄식하는 것을 이르는 말. 부귀영화의 무상함에 대한 탄식.

 

武王崩,成王少,周公旦代行政當國。
무왕이 붕어하고 成王이 어려서 周公旦이 대신하여 나라를 맡아 다스렸다.
 
管、蔡疑之,乃與武庚作亂,欲襲成王、周公。
管叔과 蔡叔이 주공을 의심하여 武庚과 함께 난을 일으켜 성왕과 주공을 습격하려 하였다.
 
周公既承成王命誅武庚,殺管叔,放蔡叔,乃命微子開代殷後,奉其先祀,作微子之命以申之,國于宋。
周公이 성왕의 명을 받아 무경을 주살하고 관숙을 죽이고 채숙은 추방했으며, 이어 미자 微子 開를 은나라의 후손으로 대체하여 은나라 선조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고 <微子之命>을 지어 거듭 부탁하고 宋에 나라를 세우게 하였다.
 
微子故能仁賢,乃代武庚,故殷之餘民甚戴愛之。
미자는 원래 어질고 유능하여 무경을 대신했으므로 은나라의 유민들도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 成王: 주나라의 제2대 왕. 주무왕의 아들로 성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무왕이 역성혁명 후 불과 2년 만에 사망하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성왕이 어렸으므로 무왕의 아우 周公 旦이 攝政하였다.
▶ 周公旦: 周나라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 當國: 국정을 맡아 다스리다.
▶ 微子之命: 周公은 武庚의 난을 평정하고, 무경 대신 微子를 宋땅의 제후로 봉하여 殷나라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미자를 송 땅에 봉하면서 周나라의 成王이 微子에게 훈시한 글이 미자지명이며, <書經>周書 미자지명에 실려 있다.
▶ 甚戴愛: 매우 사랑하다.

 

微子開卒,立其弟衍,是為微仲。
미자 微子 開가 죽고, 그의 동생 衍이 즉위하니 그가 微仲이다.
 
微仲卒,子宋公稽立。
미중이 죽고, 아들 宋公稽가 즉위하였다.
 
宋公稽卒,子丁公申立。
송공 계가 죽고, 아들 丁公申이 즉위하였다.
 
丁公申卒,子湣公共立。
정공 신이 죽고, 아들 湣公共이 즉위하였다.
 
湣公共卒,弟煬公熙立。
민공 공이 죽고, 동생 煬公熙가 즉위하였다.
 
煬公即位,湣公子鮒祀弒煬公而自立,曰「我當立」,是為厲公。
양공이 즉위하자, 민공의 아들인 鮒祀가 양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즉위하는 것이 당연하다. ”
라고 했으니, 그가 厲公이다.
 
厲公卒,子釐公舉立。
여공이 죽고, 아들인 釐公이 즉위하였다.

▶ 微仲: 서주의 제후국인 宋의 제2대 공작이다. 이름은 衍, 호는 仲思이다. 미자의 동생이고, 제을의 아들이다.

 

釐公十七年,周厲王出奔彘。
희공17년(기원전841년), 周厲王이 彘나라로 달아났다.
 
二十八年,釐公卒,子惠公覵立。
희공28년(기원전831년), 희공이 죽고 아들인 惠公覵이 즉위하였다.
 
惠公四年,周宣王即位。
혜공4년(기원전827년), 주宣王이 즉위하였다.
 
三十年,惠公卒,子哀公立。
혜공30년(기원전801)년에 혜공이 죽고, 아들 哀公이 즉위하였다.
 
哀公元年卒,子戴公立。
애공이 원년(기원전800년)에 죽자 아들 戴公이 즉위하였다.
 
戴公二十九年,周幽王為犬戎所殺,秦始列為諸侯。
대공29년(기원전771년)에 주幽王이 犬戎에게 살해당하였고, 秦나라가 처음으로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三十四年,戴公卒,子武公司空立。
대공34년(기원전766년), 대공이 죽고 아들 武公司空이 즉위하였다.
 
武公生女為魯惠公夫人,生魯桓公。
무공의 딸은 魯惠公의 부인이 되어 魯桓公을 낳았다.
 
十八年,武公卒,子宣公力立。
무공년(18기원전748년)에 무공이 죽고, 아들 宣公力이 즉위하였다.

▶ 魯惠公: 西周때 魯의 國君. 이름은 弗涅이고, 孝公의 아들이다. 천한 첩인 聲子가 아들 息姑를 낳자 宋 여자를 아내로 얻었는데, 총애하여 본부인을 내쫓고 아내로 삼았다. 아들 允을 태자로 세웠다. 16년 동안 재위하였다.

 

宣公有太子與夷。
선공의 태자 이름은 與夷이다.
 
十九年,宣公病,讓其弟和,曰:
「父死子繼,兄死弟及,天下通義也。
我其立和。」
선공19년(기원전729년)에 선공이 병이 나자 동생 和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하면서 말하였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계승하는 것은 천하에 통용되는 이치다. 나는 和를 군주로 세우겠다. ”

和亦三讓而受之。
화가 여러 차례 사양하다가 결국 받아들였다.
 
宣公卒,弟和立,是為穆公。
선공이 죽은 후 동생인 和가 즉위하니 그가 穆公이다.

▶ 宣公: 宋宣公(송선공. 춘추시대 宋의 13대 군주이다. 성은 子, 이름은 力이다. 송무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임종시에 태자 與夷가 있음에도 아우 和에게 양위하였다.

 

穆公九年,病,召大司馬孔父謂曰:
「先君宣公捨太子與夷而立我,我不敢忘。
我死,必立與夷也。」
목공9년(기원전720년)에 목공이 병이 중해지자 大司馬 孔父를 불러 말하였다.
“선군이신 선공께서 태자 與夷를 버려두고 나를 군주로 세우셨으니 내가 감히 잊지못하오.
내가 죽거든 반드시 與夷를 군주로 세우도록 하시오. ”

孔父曰:
「群臣皆願立公子馮。」
공보가 말하였다.
“신하들은 모두 공자 馮을 세우기를 희망합니다. ”

穆公曰:
「毋立馮,吾不可以負宣公。」
목공이 말하였다.
“풍을 세우지 말라. 내가 선공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

於是穆公使馮出居于鄭。
이에 목공은 아들 풍을 鄭으로 옮겨 살게 하였다.

▶ 穆公: 宋穆公. 춘추시대 宋의 제14대 군주이다. 성은 子, 이름은 和이다. 12대 송무공의 아들이며 13대 송선공의 아우로, 형이 임종 시에 군위를 맡겨 세 번 사양하고 즉위하였다. 재위9년 만에 죽었고, 임종 시에 대사마 공보를 불러다 자신의 아들(후의 송장공)대신 형의 아들 (후의 송상공)에게 양위하도록 하였다.
▶ 大司馬孔父: 孔父嘉. 춘추시대 宋의 대사마. 자는 孔父이며 이름은 嘉이다. 孔子의 6祖다. 穆公때 大司馬가 되었는데, 목공이 죽자 목공의 遺囑을 받아 殤公을 세웠다. 상공이 재위하는10년 동안 11번이나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太宰 華父督이 그의 아내를 빼앗으려고 민생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공보가를 살해하고 공보가의 아내를 차지하였다.

 

八月庚辰,穆公卒,兄宣公子與夷立,是為殤公。
8월 경진일에 목공이 죽고, 형 선공의 아들 與夷가 즉위하니 그가 殤公이다.
 
君子聞之,曰:
「宋宣公可謂知人矣,立其弟以成義,然卒其子復享之。
군자들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宋선공은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생을 군주로 세워 도의를 이루고, 끝내 그 아들이 다시 군주의 자리를 누리게 하였다. ”

殤公元年,衛公子州吁弒其君完自立,欲得諸侯,使告於宋曰:
「馮在鄭,必為亂,可與我伐之。」
상공 원년(기원전719년), 衛의 공자 州吁가 그의 군주 完을 시해하고 스스로 스스로 즉위했으며, 제후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宋에 사람을 보내 알렸다.
“鄭에 있는 馮이 틀림없이 난을 일으킬 터이니, 우리와 함께 토벌하여야 하겠소. ”

宋許之,與伐鄭,至東門而還。
宋이 허락하고 함께 鄭를 정벌하러 나서 동문을 포위하였다가 돌아왔다.
 
二年,鄭伐宋,以報東門之役。
상공2년(기원전718년), 鄭이 宋를 침공하여 동문의 전쟁을 보복하였다.
 
其後諸侯數來侵伐。
그 후 제후들이 여러 차례 宋을 쳐들어왔다.

▶ 衛公子州吁: 州吁는 衛의 14대 군주. 莊公의 아들이자 衛桓公의 동생이다. 위환공16년(기원전719) 봄, 주우는 衛의 도망자들과 함께 환공을 습격하여 죽이고 스스로 衛의 군주가 되었다. 州吁가 衛의 군주가 된 뒤에, 鄭에 대한 先君의 원한을 보복하고 제후들에게 총애를 구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려 하였다.
▶ 宋許之,與伐鄭: 宋‧陳‧蔡‧衛가 연합하여 鄭을 공격하여 鄭의 東門을 포위하였다가 5일 만에 돌아왔다. <춘추좌씨전魯隱公4년(기원전719년)>
▶ 東門之役: 鄭이 周王의 군사를 거느리고 邾의 군대와 연합하여 宋을 공격하여 외곽까지 들어가서 東門의 전쟁을 보복하였다. <춘추좌씨전魯隱公5기원전718년>

 

九年,大司馬孔父嘉妻好,出,道遇太宰華督,督說,目而觀之。
상공9년(기원전711년), 대사마 孔父嘉의 처는 미인으로, 외출하여 길에서 太宰 華督을 만났는데, 화독은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督利孔父妻,乃使人宣言國中曰:
「殤公即位十年耳,而十一戰,民苦不堪,皆孔父為之,我且殺孔父以寧民。」
화독은 공보가의 처를 탐내어 사람을 시켜 도성에 떠벌리게 하였다.
“상공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열한 차례나 전쟁을 일으켜 백성이 괴로워 견디지 못함은, 모두가 공보가가 한 짓이니 내가 공보가를 죽여 백성을 편하게 하겠다. ”

是歲,魯弒其君隱公。
이해에 魯는 그들의 군주 隱公을 시해하였다.
 
十年,華督攻殺孔父,取其妻。
상공10년(기원전710년), 화독이 공보가를 공격해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다.
 
殤公怒,遂弒殤公,而迎穆公子馮於鄭而立之,是為莊公。
상공이 화를 내자 상공마저 시해하고 鄭에서 목공의 아들인 馮을 맞아들여 옹립하니, 그가 莊公이다.

▶ 太宰華督: 華父督. 춘추시대 宋戴公의 손자이다. 太宰가 되었다. 宋殤公 10년 大夫 孔父嘉를 살해한 뒤 그 아내를 취하였다. 다시 殤公을 시해한 뒤 鄭에 있던 공자 公子 馮을 데려다 宋莊公으로 세우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閔公때 대부 南宮萬에게 살해당하였다.
▶ 利: 탐내다.

 

莊公元年,華督為相。
장공 원년(기원전709년), 華督이 재상이 되었다.
九年,執鄭之祭仲,要以立突為鄭君。
장공9년(기원전702)년, 鄭의 祭仲을 체포하고, 突을 鄭의 군주로 옹립하려 하였다.
 
祭仲許,竟立突。
제중이 이를 받아들이자 마침내 돌을 옹립하였다.
 
十九年,莊公卒,子湣公捷立。
장공이 재위19년(기원전692년)만에 죽고 아들 湣公捷이 즉위하였다.

▶ 祭仲: 춘추시대 鄭의 중신이다. 제중은 장공의 맏아들인 태자 홀의 후견인이 되어 宋의 후원을 받고 있던 공자 돌의 견제를 물리치고, 정장공의 사후 태자 홀이 鄭의 군주가 되는 일을 도왔다. 宋의 군주 송장공은 크게 노하여 제중을 사로잡아 돌을 즉위시키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협박하였다. 이에 제중은 태자 홀을 버리고 돌을 옹립하니 그가 곧 정여공이다.

 

湣公七年,齊桓公即位。
민공7년(기원전685년), 齊桓公이 즉위하였다.
 
九年,宋水,魯使臧文仲往弔水。
민공9년(기원전683년), 宋에 물난리가 나자 魯에서 藏文仲을 보내 宋의 물난리를 위로하였다.
 
湣公自罪曰:
「寡人以不能事鬼神,政不修,故水。」
민공은 자책하며 말하였다.
“과인이 귀신을 섬기지 못하고,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물난리가 났습니다. ”

臧文仲善此言。
장문중이 이 말을 칭찬하였다.
 
此言乃公子子魚教湣公也。
이 말은 공자 子魚가 민공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 湣公: 宋湣公. 춘추시대 宋 제17대 군주로 성은 子, 이름은 捷이다. 송장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뒤를 이었다. 민공10년(기원전)683년, 南宮萬을 보내 魯를 공격했으나 패하고 남궁만은 사로잡혔다. 나중에 풀려나온 남궁만과 사냥을 하다 다툼다가 화가 나서 남궁만을 魯의 포로라고 모욕했다가 격분한 남궁만에게 시해당하였다.
▶ 齊桓公: 齊나라의 제16대 후작으로, 성은 姜, 휘는 小白, 姜太公의 12세손이며, 시호는 桓公이다. 춘추시대 覇王이 되었다. 제환공은 高傒와 鮑叔의 활약에 의해 공자 糾와의 왕위 계승 분쟁에서 승리해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 臧文仲: 魯의 대부.
▶ 吊: 위문하다.
▶ 公子子魚教湣公: 춘추좌씨전 노장공11년에는 자어의 아버지인 公子 御說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御說은 宋莊公의 아들이다.

 

十年夏,宋伐魯,戰於乘丘,魯生虜宋南宮萬。
민공10년(기원전682년)여름에 宋이 魯를 침공하여 乘丘에서 전투를 하였는데, 魯가 宋의 南宮萬을 생포하였다.
 
宋人請萬,萬歸宋。
宋의 군주가 남궁만을 풀어달라고 요청해서 남궁만은 宋으로 돌아왔다.
 
十一年秋,湣公與南宮萬獵,因博爭行,湣公怒,辱之,曰:
「始吾敬若;今若,魯虜也。」
민공11년(기원전681년) 가을에 민공과 남궁만이 사냥을 나가서 바둑을 두다가 다툼이 벌어졌는데, 민공이 화가 나서 남궁만을 모욕하며 말하였다.
“당초 내가 그대를 존경했지만 지금 그대는 魯의 포로에 불과하다. ”

萬有力,病此言,遂以局殺湣公于蒙澤。
남궁만은 힘이 세었는데, 이 말을 몹시 원망하며 蒙澤에서 바둑판으로 민공을 쳐서 죽였다.
 
大夫仇牧聞之,以兵造公門。
大夫 仇牧이 이 소식을 듣고 무기를 들고 궁문에 이르렀다.
 
萬搏牧,牧齒著門闔死。
남궁만이 구목을 치니 구목은 이가 문짝에 부딪치며 죽었다.
 
因殺太宰華督,乃更立公子游為君。
이에 남궁만은 또 태재 화독을 죽이고 공자 游를 군주로 바꾸어 옹립하였다.

▶ 南宮萬: 南宮長萬. 춘추시대 宋의 장수. 魯와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생포되어 魯에서 죄수 신분이 되었다. 魯장공은 이듬해에 宋의 청으로 남궁장만을 宋으로 돌려보냈다. 宋湣公은 돌아온 남궁장만에게 魯의 포로라고 농담을 했고, 남궁장만은 이 때문에 원한을 품어 蒙澤에서 송민공을 시해하고 宋의 군주를 공자 游로 바꾸었다.
▶ 博: 簙과 통용된다. 고대 일종의 바둑.
▶ 病: 몹시 원망하다.
▶ 局: 바둑판.
▶ 闔: 문짝.
▶ 公子游: 춘추시대 宋의 제18대 송공이다. 성은 子, 이름은 游이다. 사서에서 子游로 기록되는데, 이는 성명이 아니라 宋의 공자 유의 의미다. 민공10년(기원전682년), 송민공을 시해한 경 南宮萬에 의해 옹립되었다.

 

諸公子奔蕭,公子御說奔亳。
공자들은 蕭읍으로 달아났고, 공자 禦說은 亳으로 달아났다.
 
萬弟南宮牛將兵圍亳。
남궁만의 동생인 南宮牛는 군사를 거느리고 亳을 포위하였다.
 
冬,蕭及宋之諸公子共擊殺南宮牛,弒宋新君游而立湣公弟御說,是為桓公。
겨울에 소읍과 宋에 있던 공자들이 함께 공격해 남궁우를 죽이고, 宋의 새로운 군주 游를 시해하고 민공의 동생 어열을 세우니, 그가 桓公이다.
 
宋萬奔陳。
남궁만은 陳으로 달아났다.
宋人請以賂陳。
宋가 陳에 뇌물을 주고 남궁만을 요청하였다.
 
陳人使婦人飲之醇酒,以革裹之,歸宋。
진의 군주는 미인을 보내 남궁만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가죽으로 남궁만을 싸서 宋으로 돌려보냈다.
 
宋人醢萬也。
宋은 남궁만을 죽여 젓갈을 담았다.

▶ 禦說: 宋桓公. 춘추 시대 宋의 군주로 이름은 御說이며, 閔公의 동생이다. 南宮萬이 민공을 살해하고 公子 游를 군주로 세웠는데 그후 공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공자 유를 살해하고 어열을 군주로 세웠으니 그가 송환공이다.
▶ 醇酒: 무회주.
▶ 醢: 고대 혹형의 하나로 사람을 죽여 젓갈을 담는 형벌.
▶ 裹: 싸다.

 

桓公二年,諸侯伐宋,至郊而去。
환공2년(기원전680년), 제후들이 宋를 토벌하려고 宋의 교외까지 왔다가 돌아갔다.
 
三年,齊桓公始霸。
환공3년(기원전679년), 제환공이 패주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二十三年,迎衛公子燬於齊,立之,是為衛文公。
환공23년(기원전659년), 衛가 齊에서 공자 燬를 맞이하여 옹립하니 그가 衛文公이다.
 
文公女弟為桓公夫人。
위문공의 여동생은 宋환공의 부인이 되었다.
 
秦穆公即位。
이 해에 秦나라 穆公이 즉위하였다.

▶ 公子燬: 衛文公. 춘추시대 衛의 군주로 이름은 辟疆인데, 燬로 고쳤다. 昭伯頑의 아들이고, 戴公의 동생이다. 처음에 齊로 달아났는데, 齊桓公이 衛가 여러 차례 狄에게 침략을 당하는 것을 알고 제후를 이끌고 狄을 공격하고, 楚丘 땅에 성을 쌓아주고 위문공으로 삼았다.

 

三十年,桓公病,太子茲甫讓其庶兄目夷為嗣。
환공30년(기원전652년), 환공이 병이 났는데 태자 玆甫가 庶兄인 目夷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하였다.
 
桓公義太子意,竟不聽。
환공은 태자의 뜻을 의롭다고 여겼지만 끝내 듣지 않았다.

三十一年春,桓公卒,太子茲甫立,是為襄公。
환공31년(기원전651년) 봄에 환공이 죽고 태자 玆甫가 즉위하니 그가 襄公이다.
 
以其庶兄目夷為相。
庶兄인 目夷를 재상으로 삼았다.
 
未葬,而齊桓公會諸侯于葵丘,襄公往會。
장례를 마치기도 전에 제환공이 葵丘에서 제후들과 회맹한다 하여 양공이 회맹에 갔다.

▶ 太子茲甫: 송환공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目夷는 측실 소생이고, 작은아들 玆父는 정실 출생이어서 당연히 자보가 후계의 자격이 있었다. 두 형제는 비록 신분 차이가 있을망정 우애가 깊어 자보가 목이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하려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玆父는 후일의 송양공이 되며, 目夷는 송양공의 재상이 된다.
▶ 目夷: 송환공의 아들. 송양공의 어머니가 다른 형이다. 字는 子魚이다.
▶ 襄公: 宋襄公. 춘추시대 宋의 군주로 史家에 따라서는 춘추시대 五霸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기원전638년 송양공은 적은 병력으로 楚와 싸웠는데, 楚의 군대가 泓水를 반쯤 건넜을 때 司馬인 子魚(目夷)가 공격할 것을 청했으나, 양공은 正道가 아니라 하여 듣지 않았으며, 楚 군대가 홍수를 건너고 나서 미처 대열을 정리하기 전에 다시 공격할 것을 청했으나 역시 듣지 않다가, 楚의 군대가 대열을 갖추기를 기다려 싸웠으나 부상을 입고 크게 패하였다. 이에 세상 사람들이 ‘宋襄之仁’이라 하여 이를 비웃었다. <춘추좌씨전 노희공22년>
※宋襄之仁: 宋양공의 인정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동정 또는 배려를 말한다.

 

襄公七年,宋地茀星如雨,與雨偕下;
六鶂退蜚,風疾也。
양공7년(기원전644년)에 宋의 하늘에서 유성이 비처럼 떨어졌는데, 비도 함께 내렸다.
여섯 마리의 鷁鳥가 세차고 빠른 바람 때문에 뒤로 날아갔다.

▶ 茀星: 孛星이라고도 한다. 혜성. 불길함을 상징한다.
▶ 鶂: 거위. 또는 큰 물새. 鶂을 鷁(새이름 익)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 蜚: 飛와 통용된다. 날아가다.

八年,齊桓公卒,宋欲為盟會。
양공8년(기원전643년)에 제환공이 죽자 宋이 회맹을 소집하고자 하였다.
 
十二年春,宋襄公為鹿上之盟,以求諸侯於楚,楚人許之。
양공12년(기원전639년)봄에 송양공이 鹿上에서 회맹하고자 楚에게 제후들을 소집해달라고 요구하니, 楚의 군주가 이를 허락하였다.
 
公子目夷諫曰:
「小國爭盟,禍也。」
공자 目夷가 간언하였다.
“작은 나라가 맹주가 되려 다툼은 화를 불러들입니다. ”
不聽。
듣지 않았다.
 
秋,諸侯會宋公盟于盂。
가을에 제후들이 盂에서 宋양공과 회맹하였다.
 
目夷曰:
「禍其在此乎?
君欲已甚,何以堪之!」
목이가 말하였다.
“화가 이번 회합에서 비롯되지 않겠는가?
군주의 욕심이 지나치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於是楚執宋襄公以伐宋。
과연 楚가 宋양공을 체포하고 宋을 침공하였다.

▶ 鹿上: 宋의 땅. 宋이 盟主가 되었기 때문에 회맹을 소집한 것이다. 송양공이 녹상에서 회맹하고서 楚에게 제후들이 자신을 맹주로 추대하도록 도와주기를 요구하자 楚가 허락하였다.
▶ 諸侯會宋公盟于盂 : 가을에 宋公‧楚子‧陳侯‧蔡侯‧鄭伯‧許男‧曹伯이 盂에서 회합하였다. 盂는 宋 땅이다. <춘추좌씨전 魯僖公21기원전639년>
▶ 禍其在此乎: 송양공이 霸業을 도모함에 있어 욕심이 지나치므로 제후들이 그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으니 반드시 변란이 생길 것이라는 말이다.
▶ 楚執宋襄公: 송양공이 덕도 없으면서 맹주가 되기를 다투어 제후의 미움을 샀기 때문에 여러 나라가 함께 잡은 것이다.

 

冬,會于亳,以釋宋公。
겨울에 제후들이 재차 亳에서 회맹하고 宋양공을 풀어주었다.
 
子魚曰:
「禍猶未也。」
자어가 말하였다.
“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十三年夏,宋伐鄭。
양공13년(기원전638년)여름에 宋이 鄭을 침공하였다.
 
子魚曰:
「禍在此矣。」
자어가 말하였다.
“화란이 여기에 있다.”

秋,楚伐宋以救鄭。
가을에 楚가 宋을 침공하여 鄭을 구원하고자 하였다.

襄公將戰,子魚諫曰:
「天之棄商久矣,不可。」
양공이 맞아 싸우려 하자 자어가 간하였다.
“하늘이 商(宋)을 버린 지 오래니 싸울 수 없습니다. ”

▶ 釋宋公: 송양공이 楚에 복종하기를 청하였기 때문에 박에서 회맹하고 송양공을 석방하였다.
▶ 禍猶未也: 禍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子魚는 송양공이 석방될 때 자못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서, 襄公은 여전히 제후의 맹주가 되기를 탐할 것이므로 禍가 아직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 宋伐鄭: 여름에 宋公, 衛侯, 許男, 滕子가 鄭를 토벌하였다. <춘추좌씨전魯僖公22기원전638년>
▶ 禍在此矣: 송양공은 鄭伯이 楚에 간 것에 노하였기 때문에 鄭을 침공한 것이다. 이것이 11월에 泓水에서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 되었다.

 

冬,十一月,襄公與楚成王戰于泓。
겨울 11월에 양공은 楚成王과 泓水에서 전투하였다.
 
楚人未濟,目夷曰:
「彼眾我寡,及其未濟擊之。」
楚의 군대가 강을 건너지 않았을 때 목이가 말하였다.
“저들은 군대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강을 건너기 전에 공격하십시오. ”
公不聽。
양공은 듣지 않았다.
 
已濟未陳,又曰:
「可擊。」
楚軍이 강을 건넜으나 전열을 미처 갖추지 못하자, 목이가 또 말하였다.
“지금이라도 공격해야 합니다.”

公曰:
「待其已陳。」
양공이 말하였다.
“저들이 布陣하기를 기다려라. ”

陳成,宋人擊之。
전열을 다 갖춘 다음 宋이 공격하였다.
 
宋師大敗,襄公傷股。
宋軍대은 대패하고 송양공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다.
 
國人皆怨公。
宋 사람들이 모두 양공을 원망하였다.

▶ 陳: 陣과 통용된다. 전열을 갖추다.

 

公曰:
「君子不困人於阸,不鼓不成列。」
양공이 말하였다.
“군자는 남이 재난에 처했을 때 곤란하게 하지 않으며, 전열을 갖추지 못한 적에게 진격의 북을 울리지 않는다. ”

子魚曰:
「兵以勝為功,何常言與!
必如公言,即奴事之耳,又何戰為?」
자어가 말하였다.
“군대는 승리를 공으로 삼는데 무슨 그런 어리석은 말씀을 하십니까!
공의 말대로라면 노비처럼 남을 섬기는 것이니 전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阸: 재난.
▶ 不鼓不成列: 적군이 전열을 갖추기 전에 북을 울려 진격하지 않은 것은 속임수로 승리를 취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楚成王已救鄭,鄭享之;
去而取鄭二姬以歸。
楚 왕이 鄭을 구원하고 나자 鄭의 군주가 성왕을 접대하였고, 성왕은 떠나면서 鄭君의 두 딸을 데리고 돌아갔다.

叔瞻曰:
「成王無禮,其不沒乎?
為禮卒於無別,有以知其不遂霸也。」
叔瞻이 말하였다.
“성왕이 무례하니, 수명대로 살겠는가?
분별 없이 예를 마치니 그가 패업을 이루지 못할 줄 알겠다. ”

▶ 享: 대접하다. 향응을 베풀다.
▶ 鄭二姬: 초성왕이 鄭君의 두 딸을 데리고 돌아갔다. 二姬는 鄭君의 두 딸이다. <춘추좌씨전魯僖公22기원전638년>
▶ 叔瞻: 叔詹. 춘추시대 鄭의 대부. 鄭文公의 동생. 晉公子 重耳가 달아나다가 鄭을 지나갔는데 문공이 예를 갖추지 않았다. 숙첨이 일찍이 문공에게 간하여 예로써 대하든가 아니면 죽여 후환을 없애라고 했지만 문공이 듣지 않았다. 나중에 晉과 秦이 鄭을 포위하고 숙첨을 죽이려 하자 자살하였다.

 

是年,晉公子重耳過宋,襄公以傷於楚,欲得晉援,厚禮重耳以馬二十乘。
기원전 638년, 晉공자 重耳가 宋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楚와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양공은 晉의 후원을 얻고 싶어, 후한 예로 중이를 접대하여 전차 20乘을 선물하였다.

▶ 晉公子重耳: 춘추시대 제후국인 晋獻公의 둘째 아들이다. 헌공의 후처로 들어온 驪姬의 계략에 빠져 형인 申生이 사망하고 자신은 진을 떠나 적으로 망명하였다. 19년 간 긴 망명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秦의 도움으로 군사를 이끌고 귀국하여 晉文公에 올랐다.
▶ 二十乘: 1승은 말4필이 끄는 전차로 말 80필을 선물한 것이다.

 

十四年夏,襄公病傷於泓而竟卒,子成公王臣立。
양공14년(기원전637년) 여름에 양공이 泓水의 부상 때문에 결국 죽었으며, 아들 成公 王臣이 즉위하였다.
 
成公元年,晉文公即位。
성공 원년(기원전636년), 晉文公이 즉위하였다.
 
三年,倍楚盟親晉,以有德於文公也。
성공3년(기원전634년)에 楚와의 맹약을 저버리고 晉과 가까이 지냈는데 송양공이 진문공에게 은덕을 베푼 적이 있기 때문이다.
 
四年,楚成王伐宋,宋告急於晉。
성공4년(기원전633년)에 楚성왕이 宋을 공격하자 宋은 晉에 위급함을 알렸다.

五年,晉文公救宋,楚兵去。
성공5년(기원전632년)에 진문공이 宋을 구원하자 楚軍은 철수하였다.
 
九年,晉文公卒。
성공9년(기원전628년)에 진문공이 죽었다.
 
十一年,楚太子商臣弒其父成王代立。
성공11년(기원전625년)에 楚태자 商臣이 그 아버지 성왕을 시해하고 뒤를 이었다.
 
十六年,秦穆公卒。
성공16년(기원전620년), 秦穆公이 죽었다.

▶ 成公: 宋成公. 춘추시대 宋의 21대 군주로 이름은 王臣이다. 송양공의 아들이다.
▶ 倍: 背와 통용된다. 倍는 ‘등질 패’. 배반하여 버리다. 파기하다.
▶ 以有德於文公也: 宋은 송양공이 진문공 중이에게 과거에 전차 20乘을 준 것을 이유로 楚를 배반하고 晉에 붙으니, 겨울에 楚가 군대를 거느리고 宋을 공격하여 포위하였다.
▶ 商臣: 楚穆王. 춘추시대 楚의 군주로 이름은 商臣이며, 成王의 아들이다. 태자로 있을 때 폐위될까 두려워 宮衛兵으로 성왕을 포위하고 아버지를 자살하게 한 뒤 왕위에 올랐다

 

十七年,成公卒。
성공17년(기원전619년)에 성공이 죽었다.
 
成公弟御殺太子及大司馬公孫固而自立為君。
성공의 동생인 御가 태자와 대사마 公孫固를 죽이고 스스로 군주에 올랐다.
 
宋人共殺君御而立成公少子杵臼,是為昭公。
宋 사람들이 함께 군주인 御를 죽이고 성공의 작은아들 杵臼를 옹립하니 그가 昭公이다.

▶ 成公弟御: 성공의 동생 御. 宋公 禦. 춘추시대 宋 제22대 군주이다. 성은 子, 이름은 禦이다. 襄公의 아들이며, 成公의 아우다. 성공17년(기원전620), 성공이 죽자 태자와 大司馬 公孫固를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으나, 宋 사람들이 어를 죽이고 성공의 작은아들 杵臼를 임금으로 세웠다.
▶ 杵臼: 宋昭公. 춘추시대 宋의 군주로 이름은 杵臼이고, 成公의 둘째 아들이다. 행동이 무도하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사냥을 나갔을 때 할머니 宋襄公의 夫人이 魏伯을 시켜 살해하게 하였다.

 

昭公四年,宋敗長翟緣斯於長丘。
소공4년(기원전616년)에 宋이 長丘에서 長翟의 緣斯를 물리쳤다.
 
七年,楚莊王即位。
소공7년(기원전613년)에 楚莊王이 즉위하였다.

▶ 長翟: 長狄. 狄은 戎狄이라고도 하여, 일반적인 북방 이민족을 통틀어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춘추시대에는 陝西에서 山西지방에 걸쳐 활약하였으며, 赤狄·白狄·長狄등으로 나뉘어 中原에까지 진출하였다.
소공3년(기원전617년)겨울, 狄의 침략을 받았다. 소공4년(기원전616년)에 宋이 長翟 緣斯를 이겼다고 나오나, 노주공세가와 춘추좌씨전에서는 이 사건이 송무공 치세의 일로 나온다.

 

九年,昭公無道,國人不附。
소공9년(기원전611년)에 소공이 무도하자 백성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
 
昭公弟鮑革賢而下士。
소공의 동생 鮑革은 현명하고 인재를 잘 대우하였다.
 
先,襄公夫人欲通於公子鮑,不可,乃助之施於國,因大夫華元為右師。
이보다 앞서 양공의 부인이 공자 鮑와 정을 통하려 했으나 되지 않자, 부인은 그를 도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대부 華元을 시켜 포혁을 右師로 삼게 하였다.
 
昭公出獵,夫人王姬使衛伯攻殺昭公杵臼。
소공이 사냥을 나가자 송양공의 부인 王姬는 衛伯을 시켜 昭公 杵臼를 공격하여 죽였다.
 
弟鮑革立,是為文公。
동생인 포혁이 즉위하니, 그가 文公이다.

▶ 鮑革: 公子 鲍.
▶ 華元: 춘추시대 宋의 대부. 華督의 증손이다.
▶ 文公: 宋文公. 춘추시대 宋의 24대 군주이다. 성은 子, 휘는 鮑革 혹은 鮑이며, 昭公의 동생이다. 용모가 아름다워 조모인 송양공의 부인이 사통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宋에 기근이 들자 자기가 가진 재물을 宋사람에게 나눠주어 무도한 송소공에게서 인심을 빼앗았고, 양공의 부인 역시 문공을 도왔다. 소공9년(기원전611년), 양공부인이 송소공을 죽이자 그 뒤를 이어 宋公이 되었다.

 

文公元年,晉率諸侯伐宋,責以弒君。
문공원년(기원전610년)에 晉이 제후들을 이끌고 宋을 공격하여 군주를 시해한 것을 나무랐다.
 
聞文公定立,乃去。
문공이 정식으로 즉위했음을 알고는 물러갔다.
 
二年,昭公子因文公母弟須與武、繆、戴、莊、桓之族為亂,文公盡誅之,出武、繆之族。
문공2년(기원전609년)에 昭公의 아들이 문공의 친동생인 須에 의지해 武公, 繆公, 戴公, 莊公, 桓公의 친족들과 난을 일으키자 문공은 이들 모두를 죽이고 무공과 목공의 친족들은 추방하였다.

▶ 文公母弟須: 文公이 昭公을 시해하였기 때문에 친족들과 昭公의 아들이 司城須에 의지하여 난을 일으키려 한 것이다. 須는 司城須로 文公의 아우이다. <춘추좌씨전魯文公18기원전609년>

四年春,鄭[楚]命鄭伐宋。
문공4년(기원전607년) 봄에 楚가 鄭에게 宋을 정벌하라고 명하였다.
 
宋使華元將,鄭敗宋,囚華元。
宋은 華元을 장수로 삼았으나, 鄭은 宋를 패퇴시키고 화원을 포로로 잡았다.
 
華元之將戰,殺羊以食士,其御羊羹不及,故怨,馳入鄭軍,故宋師敗,得囚華元。
화원은 전투에 나서며 양을 잡아 병사들을 먹였으나, 자기 마부에게는 양고기국을 주지 않으니, 마부가 원망하여 鄭軍을 향해 돌진하는 바람에 宋軍은 패하고 화원이 포로로 잡혔다.
 
宋以兵車百乘文馬四百匹贖華元。
宋이 兵車 100승, 얼룩말 400필로 화원의 贖錢을 내놓았다.
未盡入,華元亡歸宋。
그런데 이것들을 楚로 다 보내기 전에 화원은 도망쳐 宋으로 돌아왔다.

▶ 華元: 춘추시대 宋의 대신으로 宋戴公의 5대손이다.
▶ 贖: 죄를 면하기 위하여 돈을 바치다. 속전을 내다

 

十四年,楚莊王圍鄭。
문공14년(기원전597년)에 楚장왕이 鄭을 포위하였다.
 
鄭伯降楚,楚復釋之。
鄭은 楚에 항복했고 楚는 다시 정백을 풀어 주었다.
 
十六年,楚使過宋,宋有前仇,執楚使。
문공16년(기원전595년)에 楚의 사신이 宋을 지나가는데 宋이 과거의 원한을 품고 楚의 사신을 구금하였다.
 
九月,楚莊王圍宋。
9월에 楚장왕이 宋을 포위하였다.
 
十七年,楚以圍宋五月不解,宋城中急,無食,華元乃夜私見楚將子反。
문공17년(기원전594년), 楚가 宋을 다섯 달이나 포위한 채 풀지 않자, 宋의 도성은 식량이 바닥나는 위기에 처하였고, 華元이 밤에 몰래 楚의 장수 子反을 만났다.
 
子反告莊王。
자반이 장왕에게 보고하였다.

王問:
「城中何如?」
장왕이 물었다.
“성안의 상황은 어떤가?”

曰:
「析骨而炊,易子而食。」
자반이 대답하였다.
“사람 뼈를 쪼개어 밥을 짓고, 자식을 서로 바꿔 먹고 있다고 합니다. ”

莊王曰:
「誠哉言!
我軍亦有二日糧。」
장왕이 말하였다.
“그 말이 진실이구나!
우리 군대도 역시 이틀 분 식량만 남았다. ”

以信故,遂罷兵去。
楚는 믿고 군대를 철수하여 돌아갔다.

▶ 執楚使: 楚가 문공 10년에 孟諸에서 사냥할 때 문공의 마부를 매질한 적이 있어 그 원한으로 사신인 申舟를 체포하여 죽였다. 이로 인해 초장왕이 宋을 포위한 것이다. <춘추좌씨전 노선공14년>
▶ 子反: 초장왕의 동생으로 楚의 司馬이다.

 

二十二年,文公卒,子共公瑕立。
문공22년(기원전589년)에 문공이 죽고, 아들 共公 瑕가 즉위하였다.
 
始厚葬。
宋에서 처음으로 정중한 장례를 치렀다.

君子譏華元不臣矣。
군자들은 화원이 신하 노릇을 못했다며 비웃었다.

▶ 厚葬: 정중한 장례.
▶ 譏: 비웃다. 나무라다.

 

共公 元[十]年,華元善楚將子重,又善晉將欒書,兩盟晉楚。
공공원년(기원전579년)에 화원이 楚의 장수 子重과 잘 지내고 또 晉의 장수 欒書와도 사이가 좋았으므로, 진 · 초의 두 나라와 동맹하였다.
 
十三年,共公卒。
공공13년(기원전576년)에 공공이 죽었다.
 
華元為右師,魚石為左師。
화원은 右師가 되었고, 魚石은 左師가 되었다.
 
司馬唐山攻殺太子肥,欲殺華元,華元奔晉,魚石止之,至河乃還,誅唐山。
司馬 唐山이 태자 肥를 공격하여 죽이고, 화원도 죽이려고 하자, 화원은 晉으로 달아났는데, 어석이 그를 막아서자 황하에서 되돌아와 당산을 죽였다.
 
乃立共公少子成,是為平公。
곧 공공의 작은 아들 成을 옹립하니, 그가 平公이다.

▶ 共公: 宋共公. 성은 子이고, 이름은 瑕이다. 宋文公의 아들이다. 재임 중에 큰 水災를 만나, 이를 피해서 국도를 睢阳에서 相城으로 옮겼다.
▶ 平公: 宋平公. 춘추시대 宋 26대 군주이다. 성은 子, 이름은 成이다. 공공13년(기원전576년), 공공이 죽은 뒤 華元은 右師, 魚石은 左師로 있었다. 司馬인 당산이 태자 肥를 죽이고 화원도 죽이려 했으나 화원이 晉으로 달아나려고 하다가 어석이 말리자 반격을 시도해 탕택을 죽이니, 탕택의 일족은 楚로 달아났다. 그리고 화원이 송공공의 작은 아들인 공자 成을 옹립하니 그가 바로 송평공이다.

 

平公三年,楚共王拔宋之彭城,以封宋左師魚石。
평공3년(기원전573년)에 楚共王이 宋의 彭城을 함락하고 宋의 左師 魚石을 그곳에 봉하였다.
 
四年,諸侯共誅魚石,而歸彭城於宋。
평공4년(기원전572년)에 제후들이 함께 어석을 죽이고 팽성을 宋에 돌려주었다.
 
三十五年,楚公子圍弒其君自立,為靈王。
평공35년(기원전541년)에 楚공자 圍가 그의 군주를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니, 그가 靈王이다.
 
四十四年,平公卒,子元公佐立。
평공44년(기원전532년)에 평공이 죽고, 아들 元公 佐가 즉위하였다.

▶ 平公: 춘추시대 宋의 제26대 군주. 송공공의 아들로 右師인 華元의 추대로 즉위하였다.
▶ 宋左師魚石: 魚石은 宋의 좌사였으며, 어석 등은 송공공13년(기원전576년)에 화원이 탕택을 주살하고 평공을 옹립하자 楚로 달아났었는데, 평공3년 楚공왕이 어석 등을 宋으로 돌려보내면서 宋의 팽성을 함락하고 어석 등을 팽성에 배치하였다.
▶ 楚公子圍: 楚靈王. 춘추시대 楚의 26대 군주로 熊氏고, 이름은 圍였으나, 나중에 虔으로 고쳤다. 楚共王의 둘째 아들이다. 令尹이었을 때 兵事를 관장했는데, 조카 郟敖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531년에는 蔡를 멸망시키고 현으로 삼았으며, 동생인 공자 棄疾을 蔡公으로 봉해 그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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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公三年,楚公子棄疾弒靈王,自立為平王。
원공3년(기원전529년)에 楚공자 棄疾이 영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하여 楚平王이 되었다.
 
八年,宋火。
원공8년(기원전524년)에 宋에 큰불이 났다.
 
十年,元公毋信,詐殺諸公子,大夫華、向氏作亂。
원공10년(기원전522년)에 원공이 信義 없이 속임수로 공자들을 죽이자, 대부 華氏와 向氏가 난을 일으켰다.
 
楚平王太子建來奔,見諸華氏相攻亂,建去如鄭。
楚평왕의 태자 建이 宋으로 도망 왔으나, 화씨 등이 서로 공격하며 난을 일으킴을 보고는 그곳을 떠나 鄭으로 갔다.
 
十五年,元公為魯昭公避季氏居外,為之求入魯,行道卒,子景公頭曼立。
원공15년(기원전517년)에 원공은 魯昭公이 季氏를 피해 국외에 머물러 있어서 그를 魯로 돌려보내려 힘쓰다가 죽었으며, 아들 景公頭曼이 즉위하였다.

▶ 公子棄疾: 楚의 공자 棄疾. 楚平王. 楚의 군주로 熊氏이며 이름은 居 또는 子居, 자는 棄疾이다. 楚靈王이 陳를 멸하고 5년 뒤 楚公子 棄疾이 영왕을 살해하고 자립하여 楚平王이 되었다.
▶ 八年,宋火. : 바람이 심하게 불어 宋‧衛‧陳‧鄭에 모두 화재가 발생하였다. <춘추좌씨전魯昭公18기원전524년〉
▶ 元公毋信,詐殺諸公子: 宋元公은 신의가 없고 私心이 많아서 華氏와 向氏를 미워하였다. 여러 공자들을 속여 죽이려 했으나, 華定과 華亥에게 선수를 빼앗겨 華亥가 병에 걸린 것처럼 꾸미고 문병 온 송원공 측의 공자들을 죽이고 向勝과 向行은 구금되었다.
원공은 화씨에게 석방을 청했으나 협박을 받았고, 결국 화씨와 상호 인질을 교환하기로 하고 결맹해 태자 난과 난의 아우 공자 辰, 공자 地를 화해에게 인질로 주고 화해의 아들 無慼·상영의 아들 羅·화정의 아들 啓를 인질로 받았다. 이때 공자 城 · 공손 忌 · 樂舍 · 사마 彊 · 向宜 · 向鄭은 鄭으로 달아났다.
원공은 대사마 華比遂의 도움을 청해 10월에 자신이 잡은 인질들을 죽이고 화씨와 상씨를 공격하였다. 화씨와 상씨는 진으로 달아났고, 화비수의 아들 華登은 吳로 달아났다. 화해는 달아나면서 노쇠한 소사구 華牼에게 자신의 인질들을 맡겨 원공에게 돌려보냈다.
▶ 楚平王太子建: 楚平王이 費無忌의 참언을 믿고 그에게 성보의 太子 建을 죽이게 하였다. 태자는 宋으로 달아났다. 당시 초평왕에게 쫓겨난 폐태자 건은 3월에 宋으로 망명왔다가, 宋의 혼란상을 보고 송원공 편에 가담했다가 鄭으로 달아났다.
▶ 魯昭公: 노소공 25년(기원전517년), 계평자와 후소백이 닭싸움을 시켰는데, 계평자가 지자 크게 노해 후소백의 땅을 침범하니, 후소백이 원망을 품고 노소공과 함께 계씨를 공격하였으나 季孫氏, 叔孫氏, 孟孫氏의 세 집안이 연합하여 노소공을 공격하였다. 노소공은 패해 달아나 齊와 晉에 원조를 청하였다. 계씨는 제에는 대항하고 진에는 뇌물을 주어 소공을 乾侯에 머무르게 하였다. 소공은 돌아가지 못하고 간후에서 죽었다.

 

景公十六年,魯陽虎來奔,已復去。
경공16년(기원전501년)에 魯의 陽虎가 도망쳐 왔다가 얼마 뒤 다시 떠났다.
 
二十五年,孔子過宋,宋司馬桓魋惡之,欲殺孔子,孔子微服去。
경공25년(기원전492년)에 孔子가 宋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宋의 사마 桓魋가 공자를 미워하여 죽이려 하자, 공자가 微服을 입고 떠났다.
 
三十年,曹倍宋,又倍晉,宋伐曹,晉不救,遂滅曹有之。
경공30년(기원전487년)에 曹가 宋을 배반하고 또 晉도 배반하자, 宋이 曺를 공격했는데 晉이 구원하지 않아, 마침내 曺를 멸망시키고 차지하였다.
 
三十六年,齊田常弒簡公。
경공36년(기원전481년)에 齊의 田常이 簡公을 시해하였다.

▶ 景公: 宋景公. 춘추시대 宋의 군주로 이름은 頭曼이고, 元公의 아들이다.
▶ 陽虎: 춘추시대 말기 魯나라 季氏의 家臣으로, 季平子를 섬겼다. 계평자가 죽자 권력을 장악하였다. 일찍 季桓子를 잡아 강제로 동맹을 맺게 하였다. 魯定公 8년에 三桓을 제거하고 삼환의 嫡子들을 모두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陽關으로 달아났다. 다음 해에 삼환이 양관을 공격하자 齊로 달아났고, 다시 晉으로 달아났다. 趙盾에게 귀의하여 趙簡子의 謀臣이 되었다.
▶ 宋司馬桓魋: 宋의 군정을 주관하는 司馬의 관직에 있던 向魋. 宋桓公의 후예였기 때문에 환퇴라고 불렀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宋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예를 연습하고 있을 때 그 나무를 뽑아 공자를 죽이려고 하였다.
빨리 피하기를 권하는 제자들의 말에 공자가 대답하기를
“하늘이 이미 나에게 덕을 주셨으니, 환퇴가 나를 어찌하겠는가?(孔子言天旣賦我以如是之德, 則桓魋其奈我何?”
라고 말하였다. <史記권47孔子世家>
▶ 微服: 지위가 높은 사람이 무엇을 살피러 다닐 적에 남의 눈을 피하려고 입는 수수한 차림.

 

三十七年,楚惠王滅陳。
경공37년(기원전480년)에 楚惠王이 陳을 멸하였다.

熒惑守心。心,宋之分野也。
火星이 心宿구역을 침범하였다. 심수 구역은 宋의 분야이다.
 
景公憂之。
경공은 이를 걱정하였다.
 
司星子韋曰:
「可移於相。」
司星 子韋가 말하였다.
“재앙을 재상한테 돌릴 수 있습니다. ”

景公曰:
「相,吾之股肱。」
경공이 말하였다.
“재상은 나의 팔과 다리요. ”

曰:
「可移於民。」
자위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백성들에게 돌릴 수 있습니다. ”

景公曰:
「君者待民。」
경공이 말하였다.
“군주는 백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이오. ”

曰:
「可移於歲。」
자위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한 해의 수확 쪽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

景公曰:
「歲饑民困,吾誰為君!」
경공이 말하였다.
“수확이 나빠 백성이 굶주리면 누구에 의지하여 군주 노릇을 하겠소!”

子韋曰:
「天高聽卑。
君有君人之言三,熒惑宜有動。」
자위가 말하였다.
“하늘이 높긴 하지만 인간 세상의 일을 두루 살핍니다.
주군께서 군주로서 해야 할 세 마디를 하셨으니 화성은 마땅히 자리를 옮길 터입니다. ”

於是候之,果徙三度。
이에 살펴보니 과연 화성이 3度를 옮겼다.

▶ 熒惑守心: 火星이 心星을 침범하다. 熒惑이 心宿구역에 있음을 말한다. 熒惑은 火星의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사람을 현혹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천벌을 의미한다. 心은 心宿로 28宿중 동방7수의 하나로 천자의 올바른 자리로 명당과 상과 벌을 의미한다. 즉, 제왕이 재앙을 당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分野: 고대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地上의 영역을 하늘의 二十八宿에 배당하여 나눈 칭호로 천문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 候: 관찰하다.


六十四年,景公卒。
경공64년(기원전453년)에 경공이 죽었다.
 
宋公子特攻殺太子而自立,是為昭公。
宋의 공자 特이 태자를 공격하여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니 그가 昭公이다.
 
昭公者,元公之曾庶孫也。
소공은 元公의 증손자이다.
 
昭公父公孫糾,糾父公子褍秦,褍秦即元公少子也。
소공의 아버지는 孔孫糾이고, 공손규의 아버지는 공자 褍秦이고, 단진이 바로 원공의 작은아들이다.
 
景公殺昭公父糾,故昭公怨殺太子而自立。
경공이 소공의 아버지 공손규를 죽였기에 소공이 원한을 품어 태자를 죽이고 스스로 즉위한 것이다.

▶ 昭公: 宋昭公. 춘추시대 宋의 공작으로 이름은 特, <춘추좌씨전>은 得으로 기록하고 있다.

 

昭公四十七年卒,子悼公購由立。
소공이 재위47년(기원전404년) 만에 죽고, 아들 悼公購由가 즉위하였다.
 
悼公八年卒,子休公田立。
도공은 재위8년(기원전396년) 만에 죽고, 아들 休公田이 즉위하였다.
 
休公田二十三年卒,子辟公辟兵立。
휴공 전이 재위23년(기원전373년) 만에 죽고, 아들 辟公辟兵이 즉위하였다.
 
辟公三年卒,子剔成立。
벽공은 재위3년(기원전370년)만에 죽고, 아들 剔成이 즉위하였다.
 
剔成四十一年,剔成弟偃攻襲剔成,剔成敗奔齊,偃自立為宋君。
척성41년(기원전329년), 척성의 동생인 偃이 척성을 습격하였으며, 척성이 패배하여 齊로 달아나고 偃이 宋의 군주로 즉위하였다.

▶ 剔成: 剔成君. 춘추전국시대 宋의 군주로 성은 子, 씨는 戴 또는 皇, 휘는 剔成이다.
▶ 剔成弟偃: 기원전329년 척성군이 무도하다는 이유로 아우 언의 습격을 받아 싸우다가 져서 齊로 달아났고, 언이 宋의 군주가 되었다.
偃은 辟公의 아들이며 剔成의 동생이다. 형을 죽이고 자립하여 宋君이라 하였다가 11년 만에 왕을 칭하여 康王이라 하였다. 성질이 포악무도하여 제후들이 桀宋이라 불렀다. 전국시대 宋의 최후의 군주로 齊, 楚, 魏의 연합군에 의해 宋이 멸망했으며 송강왕은 달아났으나 魏의 온읍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君偃十一年,自立為王。
송군 偃 11년(기원전318년)에 스스로 王이라 칭하였다.
 
東敗齊,取五城;
南敗楚,取地三百里;
西敗魏軍,乃與齊、魏為敵國。
동쪽으로는 齊를 물리쳐 다섯 개의 성을 취하였고,
남쪽으로는 楚를 물리치고 300리 땅을 취하였다.
서쪽으로는 魏의 군대를 패퇴키니 이로써 齊 및 魏와 적국이 되었다.

▶ 自立為王: 宋君偃은 재위11년 만에 스스로 왕을 칭하며 康王이라 하였다.

 

盛血以韋囊,縣而射之,命曰 「射天」。
송왕 언은 가죽 주머니에 피를 채워 매달고 화살로 쏘게 하면서 ‘하늘을 쏘아라’고 하였다.
 
淫於酒婦人。
술과 여자에 빠졌다.
 
群臣諫者輒射之。
신하들로서 諫言하는 자는 그때마다 활을 쏘았다.
 
於是諸侯皆曰
「桀宋」。
이에 제후들은 모두 ‘桀宋’이라 불렀다.
 
「宋其復為紂所為,不可不誅」。
告齊伐宋。
“宋이 은나라 紂왕이 한 짓을 되풀이하니 죽이지 않을 수 없다.”하며 제에게 宋을 토벌하라고 일렀다.
 
王偃立四十七年,齊湣王與魏、楚伐宋,殺王偃,遂滅宋而三分其地。
송왕 언47년(기원전282년)에 齊湣王과 魏 및 楚가 宋을 정벌하여 송왕 언을 죽이고, 마침내 宋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셋으로 나누었다.

▶ 韋囊: 가죽 주머니.
▶ 射天: 康王은 자루에 피를 담아 공중에 매달아 놓고 활로 쏘아 하늘이 죽어 血雨가 내린다고 하였다.
▶ 王偃立四十七年: <六國年表>에는 기원전286년에 宋가 멸망했으며, 송군 언 재위4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286년에 齊湣王이 魏‧楚와 연합하여 宋을 멸망시킬 때 송강왕은 魏나라로 도망갔다가 溫邑에서 죽었다고 하였으며, 또한 제민왕이 宋을 멸망시켰으며 魏와 楚가 참여했다는 기록이 없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孔子稱
「微子去之,箕子為之奴,比干諫而死,殷有三仁焉」。
“공자는 ‘미자는 떠났고, 기자는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바른말을 하다가 죽으니 은나라에는 세 사람의 어진 이가 있었다.’라고 칭송하였다.
 
春秋譏宋之亂自宣公廢太子而立弟,國以不寧者十世。
<春秋>에서 나무라기를, 宋은 내란으로 宣公이 태자를 폐하고 동생에게 양위하면서 나라가 10대 동안 편치 못했다고 하였다.
襄公之時,修行仁義,欲為盟主。
하지만 양공 때는 인의를 수행하며 맹주가 되고자 하였다.
 
其大夫正考父美之,故追道契、湯、高宗,殷所以興,作商頌。
그의 대부 正考父가 이를 찬미하고자 契, 湯, 高宗을 추모하고 은나라가 흥성한 이치를 <商頌>으로 나타내 보였다.
 
襄公既敗於泓,而君子或以為多,傷中國闕禮義,褒之也,宋襄之有禮讓也。
襄公이 泓水에서 패했으나 그를 칭찬한 군자도 있었으니, 중국에 예의가 사라진 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宋양공의 禮讓을 칭찬한 것이다. ”

▶ 孔子稱: 微子는 떠나가고 箕子는 종이 되고 比干은 諫하다가 죽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殷나라에 세 仁者가 있었다”.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殷有三仁焉. >(論語微子제1장)
微와 箕는 나라 이름이며, 子는 爵位이다. 微子는 紂王의 庶兄이고, 箕子와 比干은 紂王의 叔父이다. 微子는 紂王이 무도한 것을 보고 떠나가서 宗祀를 보존하였으며, 箕子와 比干은 모두 諫하니 紂王이 比干을 죽이고 箕子를 가두어 노예로 삼았다. 箕子는 인하여 거짓 미친 체하며 치욕을 당하였다.
▶ 宣公: 宋宣公. 춘추시대 宋의 13대 군주이다. 성은 子, 이름은 力이다. 송무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임종 시에 태자 與夷가 있음에도 아우 和에게 양위하였다.
▶ 正考父: 宋의 대부. 戴公, 武公, 宣公의 세 왕을 보좌했는데, 商頌 12편을 周나라 大師에게 얻었는데, ‘那’편을 首篇으로 하였다. 정고보는 처음 士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등을 굽히고 걸었고, 두 번째 대부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허리를 굽히고 남을 대했고, 세 번째 경에 임명되어서는 머리를 들지 않고 구부린 채로 담장을 따라 달리듯 걸었다. <장자 열어구 제6장>
▶ 頌: 周頌, 魯頌, 商頌으로 나뉘는데, 모두 사람과 사물을 칭송하는 시이다. 商頌은 모두 5편이나 상송은 商의 노래가 아니다. 상의 후예를 宋에 봉하였는데, 宋사람이 정리해 낸 상조의 頌歌로, 사실은 송의 제례가이다.
▶ 襄公: 宋襄公. 춘추시대 宋의 군주로 史家에 따라서는 춘추시대 五霸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기원전638년 송양공은 적은 병력으로 楚와 싸웠는데, 楚의 군대가 泓水를 반쯤 건넜을 때 司馬인 子魚(:목이)가 공격할 것을 청했으나, 양공은 正道가 아니라 하여 듣지 않았으며, 楚 군대가 홍수를 건너고 나서 미처 대열을 정리하기 전에 다시 공격할 것을 청했으나 역시 듣지 않다가, 楚의 군대가 대열을 갖추기를 기다려 싸웠으나 부상을 입고 크게 패하였다. 이에 세상 사람들이‘宋襄之仁’이라 하여 이를 비웃었다.
▶ 多: 칭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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