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列傳권107-魏其武安侯列傳(위기무안후열전)

耽古樓主 2023. 9. 18. 09:43

 

魏其武安侯列傳은 魏其侯 竇嬰武安侯 田蚡灌夫 3인의 合傳이다.
두영과 전분은 漢 초기 황실의 외척이며 관부는 오초칠국의 난에서 공을 세워 장군이 된 인물이다.
이 편에서는 세 사람이 권력을 쟁취하는 모습을 기술하였다.



1.竇嬰

竇嬰은 西漢의 大臣이며 는 王孫이다文帝의 황후인 竇皇后의 조카로 오초칠국의 난 때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형양을 지키며 齊·趙의 병사를 감독하였다.
오초칠국의 난이 평정된 후 魏其侯로 임명되었다.
景帝는 두영이 사람됨이 가벼워 진중하지 못하다고 여겨 재상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武帝 초에 丞相에 임명되었고儒學을 숭상하여 두태후의 뜻을 거슬러 파직되었으며승상 田蚡과 사이가 나빠져 그의 모함을 받아 사형에 처해졌다.

魏其侯竇嬰者,孝文后從兄子也。
魏其侯 竇嬰은 孝文帝 皇后의 從兄의 아들이다.

父世觀津人。
선대로부터 觀津 사람이다.

喜賓客。
빈객을 좋아하였다.

孝文時,嬰為吳相,病免。
孝文帝 때 두영은 吳 丞相으로 있다가 병으로 면직되었다.

孝景初即位,為詹事。
孝景帝 즉위 초에 詹事가 되었다.

梁孝王者,孝景弟也,其母竇太后愛之。
梁孝王은 孝景帝의 동생으로 어머니인 竇太后가 사랑하였다.

梁孝王朝,因昆弟燕飲。
梁孝王이 입조함에 황제와 형제였기 때문에 주연이 베풀어졌다.

是時上未立太子,酒酣,從容言曰:
「千秋之後傳梁王。」
이때 황제가 아직 태자를 세우지 않았었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자 조용히 말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 帝位를 梁王에게 물려주겠다.”

太后驩。
두태후가 기뻐하였다.

竇嬰引卮酒進上,曰:
「天下者,高祖天下,父子相傳,此漢之約也,上何以得擅傳梁王!」
두영이 술잔을 들어 황제에게 술을 올리며 아뢰었다.
천하는 高祖의 천하로 부자간에 서로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 제도인데 황제께서는 무엇 때문에 마음대로 양왕에게 제위를 전하십니까!”

太后由此憎竇嬰。
두태후가 이 때문에 두영을 미워하게 되었다.

竇嬰亦薄其官,因病免。
두영 역시 첨사의 관직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으므로 병을 핑계로 사임하였다.

太后除竇嬰門籍,不得入朝請。
태후는 두영을 門籍에서 삭제하여朝請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 孝文後 : 竇太后. 漢文帝 劉恆의 처. 景帝의 어머니. 두영은 두태후의 조카이다.
▶ 從兄 : 사촌 형.
▶ 父世 : 아버지 대 이상의 대대손손.
▶ 孝文 : 漢文帝 劉恆.
▶ 吳 : 漢 초기의 제후국.
▶ 孝景 : 漢景帝 劉啟.
▶ 詹事 : 태후와 태자의 궁중 사무를 담당하는 직책.
▶ 梁孝王 : 文帝의 둘째 아들 劉武. 梁王으로 봉해졌다.
▶ 昆弟 : 어머니가 같은 형제.
▶ 燕 : 宴과 통하여 주연을 베풀다.
▶ 上 : 漢 景帝.
▶ 酒酣 : 술자리가 무르익다.
▶ 千秋之後 : 死後.
▶ 引卮 : 술잔을 들다. 卮는 술잔.
▶ 約 : 법에 정한 약속.
▶ 門籍 : 궁궐을 드나들 때 문에 드나들기를 허락한 票.
▶ 朝請 : 고대에 제후가 경성에 와서 황제를 알현하는 일로 春天은 朝, 秋天은 ‘請’이라 한다.

孝景三年,吳楚反,上察宗室諸竇毋如竇嬰賢,乃召嬰。
孝景帝 3(서기전 154), ·의 반란에 황제가 宗室과 竇氏 일족을 살펴보니두영만큼 현명한 사람이 없어서 이에 두영을 불렀다.

嬰入見,固辭謝病不足任。
두영이 입조하여 황제를 알현하고 한사코 사양하며 병을 구실삼아 임무를 맡기가 부족하다고 하였다.

太后亦慚。
두태후 역시 부끄러워하였다.

於是上曰:
「天下方有急,王孫寧可以讓邪?」
이에 황제가 말하였다.
천하는 바야흐로 위급한데王孫이 어찌 사양할 수 있는가?”

乃拜嬰為大將軍,賜金千斤。
이에 두영을 大將軍으로 임명하고황금 1천근을 하사하였다.

▶ 孝景三年 : 漢景帝 3년. 기원전 154년.
▶ 吳楚反 : 오초칠국의 난. 吳王濞列傳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사기 권106. 오왕비열전>

 

 

列傳권106.吳王濞列傳(오왕비열전)

吳王 劉濞는 前漢의 제후왕으로 高祖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함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劉濞가 高祖 12년(기원전 195) 吳王에 봉해졌으며 封國에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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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諸竇 : 두태후의 성을 가진 사람.
▶ 固辭 : 굳이 사양함.
▶ 謝病 : 병을 구실삼아 사직하다.
▶ 王孫 : 竇嬰의 字.

嬰乃言袁盎、欒布諸名將賢士在家者進之。
두영은 이에 袁盎欒布 등 명장들과 賢士로 벼슬하지 않는 자들을 추천하였다.

所賜金,陳之廊廡下,軍吏過,輒令財取為用,金無入家者。
황제가 하사한 금을 궁전의 낭하에 진열해두고軍吏가 지나갈 때마다 재량껏 가져가 쓰게 하니금에 자신의 집으로 들인 것이 없었다.

竇嬰守滎陽,監齊趙兵。
두영은 滎陽을 지키며 趙 지역의 漢軍을 감독하였다.

七國兵已盡破,封嬰為魏其侯。
칠국의 군대를 모두 깨뜨린 후 두영을 魏其侯에 봉하였다.

諸游士賓客爭歸魏其侯。
游士와 빈객들이 다투어 魏其侯에게 歸附하였다.

孝景時每朝議大事,條侯、魏其侯,諸列侯莫敢與亢禮。
孝景帝 때 조정에서 대사를 토론할 때마다 列侯들이 條侯魏其侯를 감히 자신들과 대등한 예로 대하지 못하였다.

▶ 廊廡 : 낭하.
▶ 財 : 裁와 통하여 가늠하다.
▶ 朝議 : 조정에서 토론하다.
▶ 條侯 : 周亞夫.
▶ 亢禮 : 대등한 예를 취하다. 亢은 抗과 통한다.

孝景四年,立栗太子,使魏其侯為太子傅。
孝景帝 4(기원전 153)에 栗太子를 세우고魏其侯를 太子傅로 삼았다.

孝景七年,栗太子廢,魏其數爭不能得。
孝景帝 7(기원전 150)에 율태자가 폐위됨에魏其侯가 여러 차례 諫爭하였으나되지 않았다.

魏其謝病,屏居藍田南山之下數月,諸賓客辯士說之,莫能來。
魏其侯가 병을 핑계하고 藍田의 南山 기슭에서 은거하기 몇 달빈객과 辯士들이 그를 설득하였으나아무도 돌아오게 하지 못하였다.

▶ 孝景四年 : 漢景帝 4년. 기원전 153년.
▶ 栗太子 : 景帝의 맏아들인 劉榮. 栗姬의 소생으로 율태자라고 칭하였다. 태자였으나 폐위되어 임강민왕이 되었고, 종묘의 영역을 침범하여 궁궐을 지은 죄로 경제에게 소환되었을 때 중위부로 가서 심문을 받았는데, 중위 질도가 매우 엄하게 꾸짖자 두려워하여 자결하였다.
▶ 太子傅 : 태자의 스승.
▶ 孝景七年 : 漢景帝 7년. 기원전 150년.
▶ 數爭 : 여러 차레 栗太子를 위하여 변호하다.
▶ 屏居 : 은거하다.
▶ 說 : 설득하다.

梁人高遂乃說魏其曰:
梁 사람 高遂가 魏其侯를 설득하였다.

「能富貴將軍者,上也;
能親將軍者,太后也。
장군을 부귀하게 할 분은 황제이고,
장군을 조정이 親信하게 할 분은 태후이십니다.

今將軍傅太子,太子廢而不能爭;
爭不能得,又弗能死。
지금 장군께서는 태자의 스승으로태자가 폐위되어도 간쟁하지 못하였고,
간쟁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도죽지 못하였습니다.

自引謝病,擁趙女,屏閒處而不朝。
스스로 병을 핑계로 물러나서 趙女를 끼고 한가로운 곳에 은거하여 입조하지 않고 계십니다.

相提而論,是自明揚主上之過。
이런 정황을 비춰 논하자면스스로 황제의 허물을 떠벌리는 것입니다.

有如兩宮螫將軍,則妻子毋類矣。」
만약 황제와 태후의 두 궁궐에서 장군에게 화를 내면장군의 처자식은 살아남는 자가 없을 터입니다.”

魏其侯然之,乃遂起,朝請如故。
魏其侯가 옳다고 여기고마침내 몸을 일으켜 옛날과 같이 조회에 참석하였다.

▶ 引 : 물러나다
▶ 趙女 : 미녀를 말한다. 옛날에는 趙 땅에 미녀가 많았다.
▶ 屏閒處 : 퇴직하여 은거하다.
▶ 相提而論 : 서로 비교하여 말하다.
▶ 明揚 : 뚜렷이 나타냄. (황제의 과실을 떠벌림.
▶ 有如 : 만약.
▶ 兩宮 : 태후가 있는 곳은 東宮인 長樂宮이며 漢景帝가 있는 곳은 서궁으로 未央宮이다.
▶ 螫(석) : 노하다.
▶ 毋類 : 전 가족이 죽임을 당한다는 뜻.

桃侯免相,竇太后數言魏其侯。
桃侯 劉舍가 승상에서 면직되자 두태후가 여러 차례 魏其侯를 천거하였다.

孝景帝曰:
「太后豈以為臣有愛,不相魏其?
魏其者,沾沾自喜耳,多易。
難以為相,持重。」
효경제가 말하였다.
태후께서는 설마 제가 인색하여 魏其侯를 승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여기십니까?
魏其侯는 교만하고 자신을 즐길 뿐일 처리에 경솔합니다.
승상으로 삼아 막중한 임무를 맡기기 어렵습니다.”

遂不用,用建陵侯衛綰為丞相。
결국 魏其侯를 등용하지 않고 建陵侯 衛綰을 승상으로 삼았다.

▶ 桃侯 : 景帝 때 丞相 劉舍.
▶ 愛 : 인색하다.
▶ 沾沾自喜 : 경망스럽게 스스로 즐거워하다. 우쭐거리며 뽐내는 모습. 沾沾은 스스로 만족하는 모양.
▶ 易 : 경솔하다는 뜻.
▶ 持重 : 막중한 임무를 맡다.

 

2.武安侯 田蚡

武安侯 田蚡은 長陵 사람으로 景帝 王皇后 王娡와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다.
처음에 諸曹郞이 되고, 경제 말년에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외척의 신분으로 武帝의 총애를 받아 太尉를 지냈고, 武安侯에 봉해진 뒤 太尉를 거쳐 丞相이 되었다.
미천할 때 竇嬰을 섬겼는데, 출세하고 두영이 세력을 잃자 무고하여 두영과 灌夫) 살해했다.
유가 사상을 숭상하여 黃老 사상을 좋아한 竇太后에 의해 파직되었다.
두태후가 죽은 뒤 복직되어 무제의 유학 장려 정책에 크게 기여했다. 병으로 죽었다.

武安侯田蚡者,孝景后同母弟也,生長陵。
武安侯 田蚡은 孝景皇后의 同母弟로 長陵에서 태어났다.

魏其已為大將軍後,方盛,蚡為諸郎,未貴,往來侍酒魏其,跪起如子姓。
魏其候가 대장군이 되고 난 후에 바야흐로 기세가 성할 때田蚡은 낭관이 되어 존귀한 신분이 아니었으며왕래하며 魏其候의 술 시중을 들 때꿇어앉고 일어서는 예절이 마치 자손과 같았다.

及孝景晚節,蚡益貴幸,為太中大夫。
孝景帝 만년이 되자 전분이 더욱 존귀하게 되고 총애를 받아 太中大夫가 되었다.

蚡辯有口,學槃盂諸書,王太后賢之。
전분은 말재주가 좋고 槃盂 등의 여러 道家 서적을 공부하였으매王太后가 현명하다고 여겼다.

孝景崩,即日太子立,稱制,所鎮撫多有田蚡賓客計筴,蚡弟田勝,皆以太后弟,孝景後三年封蚡為武安侯,勝為周陽侯。
孝景帝가 붕어하자 당일로 태자를 세우고 왕태후가 섭정하였는데이때 전국을 진압하고 민심을 달램에 田蚡 빈객의 계책을 많이 채용하였으며전분의 아우 田勝은 모두 왕태후의 동생이었으므로 孝景後 3(기원전 141)에 전분은 武安侯전승은 周陽侯에 각각 봉해졌다.

▶ 孝景後同母弟 : 漢景帝의 황후인 효경황후의 동생. 어머니는 장아로서 전분과 같고 아버지는 왕중으로 전분과 다르다. 孝景皇后 王娡는 전한의 제6대 황제 경제의 부인이자 제7대 황제 무제의 어머니이므로 王太后가 되었다. 왕태후의 어머니 藏兒는 괴리의 王仲에게 시집을 가서 王信이라는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왕중이 죽자 장아는 長陵 田氏에게로 재가하여 아들 田蚡과 田勝을 낳았다
▶ 魏其候 : 竇嬰.
▶ 方盛 : 바야흐로 기세가 좋게 일어남.
▶ 諸郎 : 郎中. 漢 때 제왕의 측근에서 호위하며 시중을 들면서 자문하던 직책.
▶ 子姓 : 자손. 아들.
▶ 晚節 : 만년.
▶ 貴幸 : 지위가 존귀하게 되어 총애를 받음.
▶ 辯有口 : 말재주가 좋다.
▶ 槃盂: 전설에 黃帝의 史官 孔甲이 지은 銘文으로 모두 26편의 글을 器物에 새겨서 전하였으나 지금은 실전되었다. 槃은 盤과 같다. 전분이 고문자에 대하여 학습에 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 即日太子立 : 景帝가 붕어한 날 태자 劉徹이 즉시 황제의 제위를 이어받았으며, 이때 무제의 나이는 16세였다.
▶ 稱制 : 태후가 천자를 대신하여 섭정하다. 武帝가 아직 미성년이었으므로 왕태후가 섭정한 것이다.
▶ 筴(협) :策과 같다.
▶ 孝景後三年 : 효경황후 3년. 기원전 141년.

武安侯新欲用事為相,卑下賓客,進名士家居者貴之,欲以傾魏其諸將相。
武安侯가 새로이 정권을 잡고 승상이 되고자 하여겸손하게 빈객을 대하고閑居하는 名士를 추천하여 존귀하게 함으로써 魏其 등의 將相들을 압도하려 하였다.

建元元年,丞相綰病免,上議置丞相、太尉。
建元 원년(서기전 140)에 승상 위관이 병으로 사임하자 황제가 승상太尉의 임명을 조정에서 논의하게 하였다.

籍福說武安侯曰:
籍福이 武安侯를 설득하였다.

「魏其貴久矣,天下士素歸之。
魏其侯는 존귀하게 된 지가 오래되었으며천하의 인재들이 줄곧 그에게 歸附하였습니다.

今將軍初興,未如魏其,即上以將軍為丞相,必讓魏其。
그러나 장군은 겨우 출세하여 魏其侯만 못하매만약 황제께서 장군을 승상으로 삼으려 하시면 꼭 魏其侯에게 양보하십시오.

魏其為丞相,將軍必為太尉。
魏其侯가 승상이 되면 장군은 틀림없이 태위가 되실 터입니다.

太尉、丞相尊等耳,又有讓賢名。」
태위와 승상은 존귀함이 대등하며또 현자에게 승상의 자리를 양보했다는 명성을 얻습니다.”

武安侯乃微言太后風上,於是乃以魏其侯為丞相,武安侯為太尉。
武安侯가 이에 태후에게 은밀하게 말하여태후가 황제에게 그 뜻을 암시토록 하니그리하여 魏其侯는 승상이 되고 武安侯는 태위가 되었다.

籍福賀魏其侯,因弔曰:
籍福이 魏其侯를 축하하고 일깨워 주었다.

「君侯資性喜善疾惡,方今善人譽君侯,故至丞相;
然君侯且疾惡,惡人眾,亦且毀君侯。
君侯의 천성은 선함을 좋아하고악함을 미워하시니지금 착한 사람들이 군후를 칭송하매 승상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군후께서 또 악함을 미워하시는데악한 사람도 많으니 그들도 군후를 비방할 터입니다.

君侯能兼容,則幸久;
不能,今以毀去矣。」
군후께서 好人과 惡人을 겸하여 포용하셔야승상의 지위를 오래 보전하실 터입니다.
그렇지 못하면곧 비방을 받아서 직위를 잃게 될 터입니다.”

魏其不聽。
魏其侯가 듣지 않았다.

▶ 卑下賓客 : 빈객을 대할 때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다.
▶ 傾 : 압도하다. 초과하다.
▶ 建元 : 武帝의 첫 번째 기원전 140~135년. 중국 최초의 정식 연호이다.
▶ 籍福 : 승상 전분의 문객. 평소 불화한 전분과 두영의 사이를 조율하려고 노력하였다.
▶ 素 : 一向。평소. 줄곧.
▶ 歸 : 귀순하다. 따르다. 歸附
▶ 初興 : 막 뜻을 이루다.
▶ 即 : 만약.
▶ 微言 : 은밀한 말.
▶ 風 : 諷과 같다. 풍자하다. 암시하다.
▶ 因吊 : 일깨워 주다. 경고적인 의사.
▶ 君侯 : 列侯에 대한 존칭.
▶ 資性 : 天性.
▶ 疾 : 적대시하다.
▶ 方今 : 지금.

魏其、武安俱好儒術,推轂趙綰為御史大夫,王臧為郎中令。
魏其侯와 武安侯는 모두 儒家의 학설을 좋아하였으며趙綰을 추천하여 御史大夫로 삼고王臧을 郎中令으로 삼았다.

迎魯申公,欲設明堂,令列侯就國,除關,以禮為服制,以興太平。
의 申培公을 맞아들여 明堂 설립하려 하였으며열후를 봉국으로 돌아가게 하였고감금하는 법을 폐지하였으며예법에 따라 길흉의 服飾과 제도를 정함으로써 태평 시대를 振作하려 하였다.

舉適諸竇宗室毋節行者,除其屬籍。
동시에 황후의 외척과 宗室 가운데서 행실이 좋지 못한 자를 檢擧하고 謫發하여 그들을 동족의 족보에서 삭제하였다.

時諸外家為列侯,列侯多尚公主,皆不欲就國,以故毀日至竇太后。
이때 외척이 열후가 되어 있었고열후 대다수가 공주와 혼인하였으므로모두 봉국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으매비방하는 소리가 날마다 두태후의 귀에 들어갔다.

▶ 趙綰, 王臧 : 趙綰은 일찍이 신공에게 <시경>을 전수받고, 어사대부가 되었으며 왕장은 孝景帝를 섬겨 태자소부가 되었다. 조관과 왕장은 무제에게 明堂을 세워 제후를 소집하여 입조토록 주청하였으나 무제가 그 일을 허락하지 않자 자신들의 스승인 신공을 천거하였다.<사기 권 121. 유림열전>
▶ 推轂 : 뒤를 밀어주어 앞으로 나아가게 함. 여기서는 추천한다는 뜻.
▶ 魯申公 : 노나라의 유학자 申培.
▶ 明堂 : 천자가 정무를 보고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곳
▶ 就國 : 자기의 봉지로 돌아가다.
▶ 除關 : 감금하는 법을 폐지하다.
▶ 舉適 : 검거하고 적발하다. 適은 謫과 같다.
▶ 屬籍 : 宗譜. 동족의 계보.
▶ 外家 : 外戚.
▶ 尚公主 : 공주와 결혼하다. 고대에 신하가 군주의 딸과 혼인함을 ‘尚’이라 한다.

太后好黃老之言,而魏其、武安、趙綰、王臧等務隆推儒術,貶道家言,是以竇太后滋不說魏其等。
두태후는 黃老학설을 좋아하였는데 魏其侯武安侯조관왕장 등은 儒家의 학설을 추숭하는데 노력하고道家의 학설을 폄하하였으므로이로 인하여 두태후는 더욱 魏其侯 등의 사람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及建元二年,御史大夫趙綰請無奏事東宮。
建元 2(기원전 139)에 어사대부 조관이 동궁에 정무를 보고함을 폐지하자고 주청하였다.

竇太后大怒,乃罷逐趙綰、王臧等,而免丞相、太尉,以柏至侯許昌為丞相,武彊侯莊青翟為御史大夫。
두태후는 대노하여 이에 조관왕장 등을 파면하고승상과 태위를 면직하고柏至侯 許昌을 승상으로 임명하고武强侯 莊靑翟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魏其、武安由此以侯家居。
魏其侯와 武安侯는 이로써 후작의 신분만 유지한 채 집에서 한거하였다.

▶ 黃老之言 : 道家의 학설. 黃은 黃帝. 老는 老子.
▶ 隆推 : 높여 추앙하다.
▶ 滋 : 더욱 더.
▶ 建元二年 : 기원전 139년. 建元은 武帝의 첫 번째 연호.
▶ 東宮 : 태후가 거처하는 長樂宮.
▶ 以侯家居 : 侯爵의 신분으로 집에서 한거하다.
▶ 莊靑翟 : 문제 원년(기원전 163년), 아버지 장영의 뒤를 이어 武彊侯에 봉해졌다. 건원 4년(기원전 137년), 어사대부에 임명되었으나 2년 후 두태후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은 죄로 면직되었다.

武安侯雖不任職,以王太后故,親幸,數言事多效,天下吏士趨勢利者,皆去魏其歸武安,武安日益橫。
武安侯가 비록 직책을 맡지 못하여도왕태후와의 연고로 親信과 총애를 받았으며여러 차례 국사를 말함에 효과가 많으매천하의 관리와 선비로 권세와 이익을 좇는 자들이 모두 魏其侯를 떠나 武安侯를 따르게 되자武安侯는 날로 더욱 방자해졌다.

建元六年,竇太后崩,丞相昌、御史大夫青翟坐喪事不辦,免。
건원 6(기원전 135)에 두태후가 붕어하였는데승상 허창과 어사대부 장청적은 두태후의 喪事를 잘 처리하지 못한 죄로 해임되었다.

以武安侯蚡為丞相,以大司農韓安國為御史大夫。
武安侯 전분을 승상으로 삼고大司農 韓安國을 어사대부로 임명하였다.

天下士郡諸侯愈益附武安。
천하의 선비로서 군수와 제후왕이 더욱 武安侯를 따르게 되었다.

▶ 親幸 : 황제의 총애를 받다.
▶ 橫 : 교만 방자하다.
▶ 建元六年 : 기원전 135년.
▶ 坐喪事不辦 : 장례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 죄를 지어 처벌을 받다.
▶ 郡諸侯 : 郡國의 제후왕과 관리.
▶ 愈益 : 더욱 더.

武安者,貌侵,生貴甚。
武安侯는 키가 작고 못생겼으나 태어날 때부터 존귀하였다.

又以為諸侯王多長,上初即位,富於春秋,蚡以肺腑為京師相,非痛折節以禮詘之,天下不肅。
또 당시 제후왕에 연장자가 많고황제가 막 즉위하여 나이가 어렸으므로전분은 자신이 至親한 心腹으로 조정의 승상이 되었으므로그들을 매섭게 억제하고 예로써 굴복시키지 않으면 천하가 고분고분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當是時,丞相入奏事,坐語移日,所言皆聽。
당시 승상이 입조하여 정무를 아룀에앉아서 말하기에 오래 걸려도 말하는 바를 다 들어주었다.

薦人或起家至二千石,權移主上。
사람을 천거함에집에 閑居하는 자를 起用하여 二千石의 관직에 이르게도 하니, (이것은권력을 主上에게서 (그에게로옮겨감이었다.

上乃曰:
「君除吏已盡未?
吾亦欲除吏。」
이에 황제가 말하였다.
승상의 관리 임명이 끝났는가아닌가?
짐도 관리를 임명하려 한다.”

嘗請考工地益宅,上怒曰:
「君何不遂取武庫!」
언젠가 무기를 만드는 관아의 땅을 달라고 하여 사택을 증축하려고 하자 황제가 노하여 말하였다.
승상은 어째서 무기고를 가져가지 않는가!”

是後乃退。
이후부터는 행동거지를 삼갔다.

嘗召客飲,坐其兄蓋侯南鄉,自坐東鄉,以為漢相尊,不可以兄故私橈。
한번은 손님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풂에그의 형 蓋侯는 남향으로 앉게 하고 자신은 동향으로 앉게 하였는데승상은 존귀하매 형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굽힐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貌侵 : 몸집이 작고 생김생김이 좀 모자람.
▶ 生貴甚 : 출생이 매우 존귀하다. 전분이 출생 전부터 왕태후인 王娡가 총애를 받고 있었다.
▶ 富於春秋 : 나이가 어리다. 앞길이 구만리 같다.
▶ 肺腑 : 마음속으로 믿다.
▶ 京師相 : 조정의 승상을 말한다.
▶ 痛 : 호되게. 매섭게.
▶ 折節 : 억압하다.
▶ 詘 : 屈과 통하여 굴복시키다.
▶ 肅 : 공경하다.
▶ 移日 : 해 그림자가 위치를 이동하다. 즉 매우 긴 시간을 말한다.
▶ 權移主上 : 황제의 권력이 자기 수중에 들어오다.
▶ 除吏 : 관리를 임명하다. 除는 임명하다.
▶ 考工 : 무기를 만드는 것을 감독하는 관아.
▶ 益宅 : 사택을 증축하다.
▶ 蓋侯 : 아버지가 다른 형인 王信을 말한다. 王信은 효경황후의 오라비. 외척으로 蓋侯에 봉해졌다.
▶ 東向 : 당시에는 동향하여 앉음을 上席으로 여겼다.
▶ 橈(뇨) : 撓와 통한다. 굽히다. 휘어 구부러짐.

武安由此滋驕,治宅甲諸第。
武安侯는 이로부터 더욱 교만해져서 저택을 수리하니 저택들 중에서 으뜸이었다.

田園極膏腴,而市買郡縣器物相屬於道。
田園은 지극히 비옥하였고郡縣에서 器物을 사서 오는 행렬이 도로에 서로 잇닿아 끊어지지 않았다.

前堂羅鐘鼓,立曲旃;後房婦女以百數。
저택의 앞채에는 종과 북을 배열해두고굽은 자루의 깃발을 세웠으며뒤채에는 부녀의 수를 으로 계산하였다.

諸侯奉金玉狗馬玩好,不可勝數。
제후가 그에게 진상한 金玉과 개와 말노리갯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魏其失竇太后,益疏不用,無勢,諸客稍稍自引而怠傲,唯灌將軍獨不失故。
魏其侯가 두태후를 잃고 나자 더욱 소원해져서 중용되지 않았다권세가 없어지자 빈객들도 점차 떠나고그를 대함도 태만하고 방자해졌다유독 灌將軍이 古誼를 잃지 않았다.

魏其日默默不得志,而獨厚遇灌將軍。
魏其侯가 매일 묵묵하게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유독 관장군을 후하게 대우하였다.

▶ 滋驕 : 더욱 교만해지다.
▶ 甲諸第 : 귀족의 관저에서 소유한 것을 초과하다. 第는 府第. 관저。
▶ 膏腴 : 비옥하다.
▶ 相屬於道 : 서로 잇닿아 끊이지 않다.
▶ 羅 : 배열하다.
▶ 曲旃 : 깃대 끝이 비스듬하게 굽은 깃발. 고대 황제나 왕이 스승을 모시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의장용 깃발이다. 이것을 장식으로 세워 둠은 승상의 신분을 넘는 행위였다.
▶ 玩好 : 진귀한 노리갯감.
▶ 稍稍 : 점점.
▶ 自引 : 저절로 멀어지다.
▶ 怠傲 : 태만하고 방자하다.
▶ 故 : 옛정. 古誼
▶ 灌將軍 : 灌夫.

 

12. 灌夫

灌夫는 前漢 潁川 潁陰 사람이며 자는 仲孺이다. 아버지는 張孟인데, 灌嬰의 舍人이 되어 총애를 받자 성을 灌氏로 바꾸었다.
吳楚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와 함께 전쟁에 나섰다가 아버지가 전투 중에 죽자,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오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적병 수십 명을 죽여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이 공로로 中郞將이 되었다.
武帝 建元 원년(기원전 140년) 淮陽太守가 되었고, 이어 입조하여 太僕이 되었다가 다음 해 燕의 宰相이 되었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酒邪가 있었으며, 家産만 수천만이었고 食客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魏其候 竇嬰과 부자지간처럼 사귀었다.
술에 취해 丞相 田蚡을 모욕하는 不敬罪를 저질러 탄핵받고 일족이 誅殺되었다.

灌將軍夫者,潁陰人也。
灌將軍 夫는 穎陰 사람이다.

夫父張孟,嘗為潁陰侯嬰舍人,得幸,因進之至二千石,故蒙灌氏姓為灌孟。
灌夫의 부친인 張孟은 일찍이 穎陰侯 灌嬰의 家臣이었으며관영의 총애를 받고 추천되어 2천 의 관리가 된 연고로灌氏 성을 받고 灌孟이 되었다.

吳楚反時,潁陰侯灌何為將軍,屬太尉,請灌孟為校尉。
吳楚의 반란 때영음후 灌何가 장군이 되어 태위 주아부에게 배속되었는데관하가 태위에게 관맹을 校尉로 천거하였다.

夫以千人與父俱。
灌夫는 1천 명을 이끌고 부친과 함께 종군하였다.

灌孟年老,潁陰侯彊請之,郁郁不得意,故戰常陷堅,遂死吳軍中。
관맹은 연로하였는데영음후가 그를 태부에게 强請하였는데도 뜻을 이루지 못함을 답답하게 여기매전투에서 항상 견고한 성곽을 공격하다가 결국 의 軍中에서 전사하였다.

軍法,父子俱從軍,有死事,得與喪歸。
군법에부자가 함께 종군하다가 전사하는 사고가 있으면 喪歸를 許與하였다.

灌夫不肯隨喪歸,奮曰:
「願取吳王若將軍頭,以報父之仇。」
灌夫는 부친의 유해를 따라 喪歸하지 않고 격분하여 말하였다.
오왕 또는 장군의 목을 베어 부친의 원수를 갚게 해주십시오.”

於是灌夫被甲持戟,募軍中壯士所善願從者數十人。
이때 灌夫가 갑옷을 입고 창을 쥐고는軍中의 壯士로서 친하면서 따르기를 원하는 수십 명을 모집하였다.

及出壁門,莫敢前。
軍門을 나설 때까지 감히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 潁陰侯嬰 : 灌嬰. 전한 초기 睡陽 사람으로 젊었을 때는 비단을 파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秦 말기 劉邦의 시종관으로 전공을 세워 執珪의 작위에 오르고 昌文侯로 불렸다.<史記 권95 樊酈滕灌列傳>

 

 

列傳권95-樊酈滕灌列傳(번역등관열전)

樊酈滕灌列傳은 樊噲, 酈商, 滕公 夏侯嬰, 灌嬰 네 사람의 合傳이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유방의 휘하에서 武功을 세운 장수들이며, 미천한 신분이었다가 秦 말기의 혼란한 틈을 타서 영웅이 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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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舍人 : 門客. 家臣.
▶ 蒙 : 쓰다. 덮다. 받다
▶ 灌何 : 灌嬰의 아들.
▶ 屬太尉 : 태위에 예속되다. 太尉는 周亞父를 말한다.
▶ 郁郁 : =鬱郁. 침울한 모양.
▶ 不得意 :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다. 뜻을 얻지 못하다.
▶ 陷堅 : 적의 견고한 성곽을 격파하다.
▶ 死事 : 전사하다.
▶ 喪歸 : 喪事를 치르려 귀가하다.
▶ 喪 : 영구. 유해.
▶ 若 : 혹은.
▶ 被甲 : 갑옷을 입다.
▶ 壁門 : 군영의 문. 營門.

獨二人及從奴十數騎馳入吳軍,至吳將麾下,所殺傷數十人。
오직 두 사람과 거느린 노비 십 수 가 말을 달려 吳軍으로 돌격하였으며吳將의 휘하에 이르러 수십 명을 殺傷하였다.

不得前,復馳還,走入漢壁,皆亡其奴,獨與一騎歸。
전진할 수 없어서 다시 말을 달려 돌아왔는데의 군영으로 들어옴에 노비들은 모두 죽고 단지 1와 함께 돌아왔다.

夫身中大創十餘,適有萬金良藥,故得無死。
灌夫의 몸은 십여 군데의 큰 상처를 입었으나마침 萬金의 良藥이 있으매 죽지 않았다.

夫創少瘳,又復請將軍曰:
「吾益知吳壁中曲折,請復往。」
創傷이 조금 낫자 또 다시 장군에게 청하였다.
저는 吳 軍營의 곡절을 더욱 잘 알게 되었습니다다시 가기를 청합니다.”

將軍壯義之,恐亡夫,乃言太尉,太尉乃固止之。
장군은 용감하고 義氣가 있다고 여기매 灌夫를 잃을까 염려하여태위에게 보고하니 태위도 단호하게 중지시켰다.

吳已破,灌夫以此名聞天下。
를 격파하고 나자 灌夫는 이로 인하여 천하에 명성이 알려졌다.

潁陰侯言之上,上以夫為中郎將。
영음후가 황제에게 보고하니황제가 灌夫를 中郎將으로 임명하였다.

數月,坐法去。
몇 달 만에 법을 어겨 죄를 짓고 관직에서 쫓겨났다.

後家居長安,長安中諸公莫弗稱之。
이후로 장안의 집에서 머물렀는데장안의 公卿에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孝景時,至代相。
孝景帝 때에 灌夫는 의 승상이 되었다.

孝景崩,今上初即位,以為淮陽天下交,勁兵處,故徙夫為淮陽太守。
孝景帝붕어하고 今上이 막 즉위함淮陽이 천하 교통의 요충지로서 강한 군대가 주둔할 곳이라고 여기매灌夫를 회양의 太守로 전출시켰다.

▶ 獨 : 오직.
▶ 麾下 : 장군의 깃발 아래.
▶ 復 : 또.
▶ 大創 : 큰 상처.
▶ 萬金良藥 : 귀중한 좋은 약.
▶ 瘳 : 낫다.
▶ 固止 : 단호하게 충고하여 그만두게 하다.
▶ 坐法去 : 법을 어겨 죄를 짓고 관직에서 면직되다.
▶ 代相 : 代王의 승상.
▶ 今上 : 漢武帝.
▶ 勁兵處 : 강대한 군대가 주둔하는 곳.

建元元年,入為太仆。
建元 원년(기원전 140)에 灌夫는 조정에 들어가서 太僕이 되었다.

二年,夫與長樂衛尉竇甫飲,輕重不得,夫醉,搏甫。
건원 2년에 灌夫가 長樂衛尉인 竇甫와 술을 마셨는데과음하여 灌夫가 술에 취하여 두보를 때렸다.

甫,竇太后昆弟也。
두보는 두태후와 형제간이었다.

上恐太后誅夫,徙為燕相。
황제는 두태후가 灌夫를 죽일까 염려하여 灌夫를 의 승상으로 전출시켰다.

數歲,坐法去官,家居長安。
몇 년 뒤에 범법행위로 관직에서 쫓겨나서 장안의 집에 한거하였다.

▶ 太仆 : 太僕. 황제의 車馬를 관장하는 직책.
▶ 長樂衛尉 : 長樂宮의 衛兵長.
▶ 竇甫 : 前漢의 관료로 趙 청하군 觀津縣 사람이다. 효 문황후의 형제 사이이다.
▶ 輕重不得 : 有三种解法:
一、饮酒过量(과음함);
二、礼节尊卑不得当(예법에 부당함);
三、争论是非,意见不合(시비를 논함. 의견이 다름)。
뒷글에서 관부에게 酒癖이 있다 하였으므로 1로 해석함이 옳겠다.
▶ 搏 : 때리다.

灌夫為人剛直使酒,不好面諛。
灌夫는 사람됨이 강직하고 酒癖이 있었으나면전에서 아부함을 좋아하지 않았다.

貴戚諸有勢在己之右,不欲加禮,必陵之;
諸士在己之左,愈貧賤,尤益敬,與鈞。
貴戚이나 권세가로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자에게는예를 표하지 않았고 반드시 모욕하였다.
선비로서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자에게는빈천할수록 더욱 공경하며 평등하게 대우하였다.

稠人廣眾,薦寵下輩。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을 발탁하고 표창하였다.

士亦以此多之。
선비들 또한 이 때문에 그를 칭찬하였다.

夫不喜文學,好任俠,已然諾。
灌夫는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협객을 좋아하였으며 허락한 것은 꼭 실천하였다.

諸所與交通,無非豪桀大猾。
더불어 교유하며 왕래하는 자에 호걸이나 크게 교활한 자가 아님이 없었다.

家累數千萬,食客日數十百人。
집에는 수천만 금을 축적하여 두었으며 식객이 매일 수십에서 1백여 명에 달하였다.

陂池田園,宗族賓客為權利,橫於潁川。
밭에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어 그의 종족과 빈객들이 권력과 이익을 다투고 穎川에서 제멋대로 행동하였다.

潁川兒乃歌之曰:
「潁水清,灌氏寧;
潁水濁,灌氏族。」
영천의 아이들은 그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穎水가 맑으면 灌氏는 평안하네.
영수가 탁하면 관씨는 멸족당하리.”

▶ 剛直使酒 : 강직하고 술주정을 부림.
▶ 面諛 : 얼굴을 맞대고 아부를 함.
▶ 貴戚 : 황제의 인척.
▶ 勢在己之右 : 세력이 자신 보다 센 자. 右는 上位이며 左는 下位.
▶ 凌 : 능욕하다. 모욕하다.
▶ 稠人廣眾 : 많은 사람이 모인 곳.
▶ 薦寵下輩 : 지위가 낮은 사람을 발탁하고 표창하다. 寵은 표창하다.
▶ 多 : 칭찬하다.
▶ 任俠 : 俠客. 의협심이 강하다.
▶ 已然諾 : 타인의 일에 약속을 지킴.
▶ 交通 : 교유하고 왕래함.
▶ 大猾 : 대단히 교활하다.
▶ 陂池田園 : 밭에 물을 대기 위하여 저수지를 만들다. 陂는 제방.
▶ 為權利 : 권력과 이익을 다투다.
▶ 橫 : 횡행하다. 제멋대로 행동하다.
▶ 族 : 멸족하다.

灌夫家居雖富,然失勢,卿相侍中賓客益衰。
灌夫는 비록 재산은 많았지만 집에 閑居하매 세력을 잃고 卿相侍中빈객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及魏其侯失勢,亦欲倚灌夫引繩批根生平慕之後棄之者。
魏其侯도 세력을 잃게 되자灌夫를 의지하며평소 그를 앙모하다가 후에 저버리는 자들을 둘이서 한패가 되어 배척하고자 하였다.

灌夫亦倚魏其而通列侯宗室為名高。
灌夫 또한 魏其侯에 의지하여 열후나 종실과 교류하여 명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兩人相為引重,其游如父子然。
두 사람이 서로 이끌고 존중하며 교제함이 마치 부자지간과 같았다.

相得驩甚,無厭,恨相知晚也。
서로 깊이 기뻐하여 싫증내지 않았고서로 앎이 늦음을 한탄하였다.

▶ 引繩批根 : 새끼줄을 걸어 잡아당겨 뿌리째 뽑아 버린다는 뜻으로, 둘이 한패가 되어 다른 사람을 배척함.
▶ 游 : 교제하다. 왕래하다.
▶ 相得 : 서로 의기투합함.
▶ 厭 : 싫어서 꺼림.

灌夫有服,過丞相。
灌夫가 喪中에 승상 田蚡을 방문하였다.

丞相從容曰:
「吾欲與仲孺過魏其侯,會仲孺有服。」
승상이 별생각 없이 말하였다.
나는 仲孺와 더불어 魏其侯를 방문하고 싶었는데마침 중유가 상을 당하였구만.”

灌夫曰:
「將軍乃肯幸臨況魏其侯,夫安敢以服為解!
請語魏其侯帳具,將軍旦日蚤臨。」
灌夫가 말하였다.
장군께서 영광스럽게도 魏其侯에게 왕림하시려는데제가 어찌 감히 상을 당하였다고 마다하겠습니까!
제가 魏其侯에게 연회준비를 하게 알리겠사오니 장군께서는 내일 아침에 왕림하여 주십시오.”

武安許諾。
武安侯가 승낙하였다.

灌夫具語魏其侯如所謂武安侯。
灌夫가 魏其侯에게 武安侯에게 말한 바를 상세히 전하였다.

魏其與其夫人益市牛酒,夜灑埽,早帳具至旦。
魏其侯와 그 부인은 술과 고기를 많이 사고밤에 청소하고장막을 설치하고 주연을 준비하기를 새벽 무렵까지 하였다.

平明,令門下候伺。
날이 밝아오자 사람을 시켜 기다려 살피도록 하였다.

至日中,丞相不來。
한낮에 이르도록 승상이 오지 않았다.

魏其謂灌夫曰:
「丞相豈忘之哉?」
魏其侯가 灌夫에게 말하였다.
승상이 설마 잊었단 말인가?”

灌夫不懌,曰:
「夫以服請,宜往。」
灌夫가 기분이 상하여 말하였다.
제가 상복을 입고 청하였으매승상이 마땅히 와야 합니다.”

乃駕,自往迎丞相。
이에 수레를 타고 자신이 친히 승상을 맞으러 갔다.

丞相特前戲許灌夫,殊無意往。
승상은 단지 전날에 농담 삼아 灌夫에게 승낙하였을 뿐전혀 갈 생각이 없었다.

及夫至門,丞相尚臥。
灌夫가 승상의 문에 이르렀는데승상이 아직도 침상에서 누워 있었다.

於是夫入見,曰:
「將軍昨日幸許過魏其,魏其夫妻治具,自旦至今,未敢嘗食。」
이에 灌夫가 들어가서 뵙고 말하였다.
장군께서 어제 영광스럽게도 魏其侯를 방문하시겠다고 허락하셔서 魏其侯 부부는 주연을 준비하기를 새벽부터 지금까지 하고감히 식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武安鄂謝曰:
「吾昨日醉,忽忘與仲孺言。」
武安侯는 깜짝 놀라 사과하였다.
내가 어제 취하여 그대와 한 말을 잊었네.”

乃駕往,又徐行,灌夫愈益怒。
이에 수레를 타고 가는데또 천천히 가니 灌夫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及飲酒酣,夫起舞屬丞相,丞相不起,夫從坐上語侵之。
술을 마셔 거나해지자灌夫가 일어나서 춤을 추고승상에게 권하였으나승상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灌夫는 앉은 자리에서 승상을 말로써 풍자하였다.

魏其乃扶灌夫去,謝丞相。
魏其侯가 이에 灌夫를 부축하여 데리고 나가고승상에게 사과하였다.

丞相卒飲至夜,極驩而去。
승상이 밤이 되서야 주연을 마치고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 有服 : 상복을 입다. 당시 灌夫는 누이의 喪中이었다.
▶ 過 : 예를 갖추어 방문하다.
▶ 丞相 : 田蚡.
▶ 從容 : 여유가 있다. 자유롭다.
▶ 仲孺 : 灌夫의 字.
▶ 臨況 : 왕림하다. 況은 貺과 통하여 베풀다.
▶ 解 : 거절하다.
▶ 帳具 : 장막을 설치하여 주연을 준비하다.
▶ 旦日 : 내일.
▶ 蚤 : 早와 통하여 일찍.
▶ 具語 : 상세히 알리다.
▶ 益市牛酒 : 고기와 술을 많이 사다.
▶ 洒掃 : 청소하다.
▶ 平明 : 새벽. 해가 돋아 밝아올 무렵.
▶ 懌 : 기뻐하다.
▶ 特 : 다만
▶ 治具 : 주연을 준비하다.
▶ 鄂謝 : 놀라는 척하면서 사과하다. 鄂은 愕과 통한다.
▶ 忽忘 : 잊어버리다.
▶ 起舞 : 당시 연회에서 감사의 표시로 춤을 추는 풍습을 말한다.
▶ 語侵之 : 田蚡을 비꼬는 말로 풍자하다. 侵은 거스르다.

丞相嘗使籍福請魏其城南田。
승상이 籍福을 시켜 魏其侯에게 성 남쪽 전답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魏其大望曰:
「老僕雖棄,將軍雖貴,寧可以勢奪乎!」
魏其侯는 크게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 늙은이가 비록 버림받았고 장군이 비록 귀한 신분이지만 어찌 권세로써 빼앗는가!”

不許。
허락하지 않았다.

灌夫聞,怒,罵籍福。
灌夫가 듣고 노하여 적복을 꾸짖었다.

籍福惡兩人有郤,乃謾自好謝丞相曰:
「魏其老且死,易忍,且待之。」
적복은 武安侯와 魏其侯가 사이가 벌어짐을 싫어하여사실을 속이고 스스로 승상에게 좋게 말하였다.
魏其侯는 나이가 많아서 곧 죽을 터이고참기는 쉬우니우선 기다리시지요.”

已而武安聞魏其、灌夫實怒不予田,亦怒曰:
「魏其子嘗殺人,蚡活之。
蚡事魏其無所不可,何愛數頃田?
且灌夫何與也?
吾不敢複求田。」
얼마 지나지 않아 武安侯는 魏其侯와 灌夫가 실제로는 화가 나서 田地를 주지 않았음을 알고역시 화를 내며 말하였다.
魏其侯의 아들이 이전에 사람을 죽였을 때내가 그를 살렸다.
내가 魏其侯를 섬기면서 못할 바가 없었는데어찌 밭 몇 마지기에 인색하단 말인가?
또 灌夫는 어찌하여 참견하는 것인가?
내가 다시는 전답을 요구하지 않겠다.”

武安由此大怨灌夫、魏其。
武安侯는 이로 인하여 灌夫와 魏其侯를 크게 원망하였다.

▶ 籍福 : 승상 전분의 문객.
▶ 請 : 요구하다. 강요하다.
▶ 大望 : 크게 원망하다.
▶ 老僕 : 늙은 사내종. 자신을 낮춰 말하는 표현.
▶ 郄 : 隙과 같다. 사이가 벌어지다.
▶ 謾 : 속이다. 거짓말하다.
▶ 老且死 : 나이가 많아 곧 죽는다. 且는 곧.
▶ 已而 : 머지않아. 곧.
▶ 愛 : 인색하다.

元光四年春,丞相言灌夫家在潁川,橫甚,民苦之。請案。
元光 4(기원전 131승상이 황제에게 아뢰기를灌夫의 집이 영천에 있는데횡포가 심하여 백성이 시달린다고 하며 조사하여 처벌하기를 청하였다.

上曰:
「此丞相事,何請。」
황제가 말하였다.
이것은 승상의 일인데무엇 때문에 청원하는가?”

灌夫亦持丞相陰事,為奸利,受淮南王金與語言。
灌夫 역시 승상의 비밀스러운 일을 파악하고 있었는데불법으로 이익을 구한 것淮南王에게서 뇌물을 받고 밀담을 나눈 것이다.

賓客居間,遂止,俱解。
빈객들이 중간에서 들어서 마침내 멈추고 피차간 화해하였다.

▶ 元光四年 : 기원전 131년. 元光은 漢武帝의 두 번째 연호.
▶ 案 : 조사하여 처벌하다.
▶ 陰事 : 비밀스러운 일. 은밀한 일.
▶ 為奸利 : 불법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다.
▶ 淮南王 : 劉安. 武帝 建元 2년(기원전 139년)에 입조함에, 당시 太尉였던 田蚡이 말하기를 유안이 다음 황제가 될 것이라고 하자, 기뻐하여 전분에게 뇌물을 주었다.<사기 권118. 淮南衡山列傳>
▶ 居間 : 중간에 서서 화해시키다.
▶ 解 : 화해하다.

夏,丞相取燕王女為夫人,有太后詔,召列侯宗室皆往賀。
여름에 승상이 燕王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니 태후가 조서를 내려 열후와 종실에게 모두 가서 축하하라고 명령하였다.

魏其侯過灌夫,欲與俱。
魏其侯는 灌夫를 방문하여 함께 가려고 하였다.

夫謝曰:
「夫數以酒失得過丞相,丞相今者又與夫有郤。」
灌夫가 사양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여러 차례 술로 인하여 실수하여 승상에게 잘못을 얻어서승상과 지금 저는 사이가 벌어져 있습니다.”

魏其曰:
「事已解。」
魏其侯가 말하였다.
그 일은 이미 화해했잖은가.”

彊與俱。
억지로 함께 갔다.

▶ 取 : 娶와 같다. 장가들다.
▶ 燕王女 : 이미 죽은 燕康王 劉嘉의 딸.
▶ 酒失 : 술을 마시고 범한 실수.
▶ 得過 : 죄를 짓다.

飲酒酣,武安起為壽,坐皆避席伏。
주연이 무르익자 武安侯가 일어나서 축수하니 좌중이 모두 避席하여 엎드려서 불감당의 뜻을 표하였다.

已魏其侯為壽,獨故人避席耳,餘半膝席。
조금 뒤에 魏其侯가 축수하자 오직 魏其侯의 친구들만 避席할 뿐나머지 반은 좌석에 무릎을 꿇었다.

灌夫不悅。
灌夫는 기분이 언짢았다.

起行酒,至武安,武安膝席曰:
「不能滿觴。」
그가 일어나 차례대로 술을 권함에武安侯에 이르러니 武安侯는 무릎을 꿇으며 말하였다. “가득 찬 잔은 마실 수 없네.”

夫怒,因嘻笑曰:
「將軍貴人也,屬之!」
灌夫는 화가 났지만 苦笑하며 말하였다.
장군은 귀인이시라 제가 권합니다!”

時武安不肯。
이때 武安侯는 응답하지 않았다.

行酒次至臨汝侯,臨汝侯方與程不識耳語,又不避席。
차례로 술을 올려 순서가 臨汝侯 灌賢에게 이르렀는데임여후는 한창 程不識과 귓속말을 하고 있었고게다가 避席하지도 않았다.

夫無所發怒,乃罵臨汝侯曰:
「生平毀程不識不直一錢,今日長者為壽,乃效女兒呫囁耳語!」
灌夫는 화낼 곳이 없던 차에임여후를 욕하였다.
평소에 정불식이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비방하더니오늘 어른이 축수함에 계집애를 본받아서 귓속말을 소곤대는가!”

武安謂灌夫曰:
「程李俱東西宮衛尉,今眾辱程將軍,仲孺獨不為李將軍地乎?」
武安侯가 灌夫에게 말하였다.
정불식과 李廣은 모두 ·西宮의 衛尉인데지금 대중 앞에서 정장군을 모욕을 하니 灌夫는 어찌 이장군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가?”

灌夫曰:
「今日斬頭陷匈,何知程李乎!」
灌夫가 말하였다.
오늘 머리를 자르고 가슴에 구멍을 낸다고 해도 정장군이나 이장군을 어찌 알겠소!”

坐乃起更衣,稍稍去。
좌중이 일어나 측간에 가는 척하면서 하나 둘씩 떠나갔다.

魏其侯去,麾灌夫出。
魏其侯도 나가면서 灌夫에게 나오라고 손짓하였다.

武安遂怒曰:
「此吾驕灌夫罪。」
武安侯가 마침내 분노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내가 灌夫를 교만하게 만든 죄이다.”

乃令騎留灌夫。
곧 기병에게 명령하여 灌夫를 억류하였다.

灌夫欲出不得。
灌夫는 나가려 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籍福起為謝,案灌夫項令謝。
적복이 일어나 관부 대신 사과하면서 灌夫의 목덜미를 누르며 사과하게 하였다.

夫愈怒,不肯謝。
灌夫가 더욱 화를 내며 사죄하지 않았다.

武安乃麾騎縛夫置傳舍,召長史曰:
「今日召宗室,有詔。」
武安侯는 곧 기병을 지휘하여 灌夫를 포박하여 객실에 두고 長史를 불러 말하였다.
오늘 종실을 부름은 태후의 조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劾灌夫罵坐不敬,系居室。
灌夫가 좌중을 모욕하여 不敬罪를 범하였다고 탄핵하여 官員用 감옥에 수감하였다.

遂按其前事,遣吏分曹逐捕諸灌氏支屬,皆得棄市罪。
마침내 그의 이전 일까지 조사하고관리를 보내 조를 나누어 관씨 일족을 잡아들이게 하였는데모두 棄市의 벌을 받았다.

魏其侯大媿,為資使賓客請,莫能解。
魏其侯는 크게 부끄러워하며돈을 풀어 빈객을 시켜 무안후에게 청원하게 하였으나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武安吏皆為耳目,諸灌氏皆亡匿,夫系,遂不得告言武安陰事。
武安侯의 관리들이 모두 耳目이 되고관씨들은 모두 도망쳐서 숨었고灌夫는 구금되어 있어서武安侯의 은밀한 일을 고발할 수 없었다.

▶ 避席伏 : 자기 자리를 벗어나 엎드려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함. 避席은 (윗사람에게 경의를 표시하여 자리를 피하다.
▶ 已 : 오래지 않아.
▶ 故人 : 친구.
▶ 膝席 : 무릎을 꿇고 앉다.
▶ 行酒 : 술을 권하다. 잔으로 술을 돌림.
▶ 嘻笑 : 고의로 억지웃음을 짓다.
▶ 屬 : 권하다.
▶ 臨汝侯 : 灌嬰의 손자 灌賢.
▶ 耳語 : 귓속말.
▶ 無所發怒 : 화를 낼 곳이 없다.
▶ 不直一錢 : 一錢不値. 한 푼의 값어치도 없다는 뜻으로, 조금도 가치가 없다거나 쓸모없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直는 值와 같다.

▶ 呫囁(첩섭) :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며 하는 귓속말.
▶ 程李 : 程不識과 李廣. 정불식은 당시 長樂宮(:동궁)의 衛尉이었으며 李廣 未央宮(:서궁)의 衛尉였다.
▶ 地 : 처지.
▶ 陷匈 : 가슴에 구멍을 뚫다. 匈은 胸과 통한다.
▶ 坐 : 座와 통한다.
▶ 更衣 : 측간을 가는 척하다.
▶ 稍稍去 : 점차 모두 떠나다.
▶ 麾 : 揮와 통한다. 손짓하다.
▶ 留 : 억류하다. 구류하다.
▶ 為謝 : 灌夫 대신 사죄하다.
▶ 案 : 按과 같다. 누르다.
▶ 項 : 목덜미.
▶ 傳舍 : 객실.
▶ 不敬 : 大不敬. 황제에게 불경한 죄로 사형에 처하는 죄.
▶ 系 : 감옥에 가두다. 수감하다.
▶ 居室 : 관원의 감옥.
▶ 按 : 案과 같다. 조사하여 처벌하다.
▶ 分曹 : 여러 조로 나누다.
▶ 諸灌氏支屬 : 관씨 종족의 분파. 관씨 일족.
▶ 棄市 : 공개장소에서 참수형을 집행하여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고대 중국의 형벌.


▶ 大愧 : 크게 부끄러워하다.
▶ 為資 : 돈을 풀다.
▶ 耳目 : 측근.
▶ 亡匿 : 도망쳐 숨다.

魏其銳身為救灌夫。
魏其侯는 灌夫를 구하고자 용감히 나섰다.

夫人諫魏其曰:
「灌將軍得罪丞相,與太后家忤,寧可救邪?」
부인이 魏其侯에게 말렸다.
관장군은 승상에게 죄를 짓고태후의 집을 거스렀으니어찌 구할 수 있겠습니까?”

魏其侯曰:
「侯自我得之,自我捐之,無所恨。
且終不令灌仲孺獨死,嬰獨生。」
魏其侯가 말하였다.
후작의 신분은 내 스스로 얻었으니내가 포기해도 유감이 없다.
그러나 결국 灌夫를 홀로 죽게 하고나 홀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乃匿其家,竊出上書。
이에 집안사람들을 속이고 몰래 나가서 황제에게 상서하였다.

立召入,具言灌夫醉飽事,不足誅。
황제가 즉시 그를 불러 입궁하고灌夫의 취중의 일을 자세하게 말하고주살할 일이 아니라고 아뢰었다.

上然之,賜魏其食,曰:
「東朝廷辯之。」
황제가 옳다고 여겨 魏其侯에게 음식을 하사하고 말하였다.
東宮의 조정에서 그를 변론하라.”

魏其之東朝,盛推灌夫之善,言其醉飽得過,乃丞相以他事誣罪之。
魏其侯가 東朝에 가서 灌夫의 장점을 힘껏 칭찬하여 알리고그가 취하여 죄를 지은 것뿐인데 승상이 다른 일로써 무고하게 치죄하였다고 말하였다.

武安又盛毀灌夫所為橫恣,罪逆不道。
武安侯 또한 灌夫가 저지른 횡포와 방자함을 힘껏 비방하고죄가 대역무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魏其度不可奈何,因言丞相短。
魏其侯가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여 승상의 단점을 거론하였다.

武安曰:
武安侯가 말하였다.

「天下幸而安樂無事,蚡得為肺腑,所好音樂狗馬田宅。
천하가 다행히 태평무사하여 신은 심복이 되었으나좋아하는 것은 음악과 개와 말밭과 집뿐입니다.

蚡所愛倡優巧匠之屬,不如魏其、灌夫日夜招聚天下豪桀壯士與論議,腹誹而心謗,不仰視天而俯畫地,辟倪兩宮間,幸天下有變,而欲有大功。
신이 아끼는 것은 광대와 솜씨 좋은 職工과 같은 무리이며魏其侯나 灌夫처럼 천하의 호걸과 장사를 초청하여 더불어 주야로 논의하며내심으로 조정을 비방하고고개를 들고 하늘을 살피지 않으면서 굽어보고 땅을 구획하고동서궁의 사이를 엿보며 천하에 변고가 나서 자신들이 큰 공을 세우려 함과는 다릅니다.

臣乃不知魏其等所為。」
신은 魏其侯 등이 하는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於是上問朝臣:
「兩人孰是?」
이에 황제가 조정의 대신들에게 물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옳은가?”

御史大夫韓安國曰:
어사대부 한안국이 아뢰었다.

「魏其言灌夫父死事,身荷戟馳入不測之吳軍,身被數十創,名冠三軍,此天下壯士,非有大惡,爭杯酒,不足引他過以誅也。
魏其侯가 말하기를灌夫는 부친이 전사하자 몸에 창을 지니고 강대한 吳軍으로 달려들었고몸에 수십 군데의 상처를 입어 명성이 三軍의 으뜸이었으니 이것은 천하의 장사가 분명하며큰 잘못이 있음도 아니고 술을 돌리다가 다툰 것일 뿐다른 허물을 끌어들여 사형할 것은 못 된다고 하였습니다.

魏其言是也。
魏其侯의 말이 옳습니다.

丞相亦言灌夫通奸猾,侵細民,家累巨萬,橫恣潁川,淩轢宗室,侵犯骨肉,此所謂 『枝大於本,脛大於股,不折必披』,丞相言亦是。
승상이 또 말하기를灌夫는 교활한 무리와 왕래하며 백성을 압박하고 집에는 막대한 재산을 쌓아두고영천에서 횡포한 짓을 하며종실을 업신여기고 황제의 친척을 욕보였으매이것은 이른바 나뭇가지가 나무보다 크며 종아리가 넓적다리보다 크면 부러지지 않으면 반드시 갈라진다.’이니 승상의 말 또한 옳습니다.

唯明主裁之。」
영명하신 황제께서 판결하시기 바랍니다.”

▶ 銳身 : 곤란한 일에 용감히 나서다.
▶ 忤 : 거스르다.
▶ 捐 : 던져버리다. 포기하다.
▶ 恨 : 遺憾.
▶ 竊出上書 : 몰래 나가 漢武帝에게 상서하다.
▶ 不足誅 : 참수할 죄에 부족하다.
▶ 立 : 곧. 즉시.
▶ 東朝廷辯 : 태후가 거처하는 長樂宮에서 변론하다.
▶ 盛推 : 있는 힘을 다하여 칭찬하다.
▶ 誣 : 무함하다. 날조하다.
▶ 罪 : 죄를 더하다.
▶ 盛毀 : 비방에 진력하다.
▶ 橫恣 : 횡포함과 방자함.
▶ 罪逆不道 : 대역무도한 죄를 짓다.
▶ 度 : 헤아리다. 생각하다.
▶ 不可奈何 : 별다른 방법이 없다.
▶ 肺腑 : 心腹.
▶ 倡優 : 광대.
▶ 腹誹而心謗 : 내심으로 불만에 차 있다.
▶ 辟倪 : 엿보다. 정탐하다.
▶ 兩宮 : 王太后와 漢武帝를 말한다.
▶ 幸 : 바라다.
▶ 孰是 : 누가 옳은가?
▶ 韓安國 : 전한 梁의 成安 사람. 자는 長孺다. 일찍이 田生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梁孝王을 섬겨 中大夫가 되었다. 吳楚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이끌고 吳兵을 격파하여 명성을 얻었다.<史記 권108. 韓長孺列傳>
▶ 不測 : 미리 헤아릴 수 없음. 강대함을 말함.
▶ 侵細民 : 백성을 압박하다.
▶ 淩轢 : 업신여기다.
▶ 骨肉 : 황제의 친척.

主爵都尉汲黯是魏其。
主爵都尉 汲黯은 魏其侯가 옳다고 하였다.

內史鄭當時是魏其,後不敢堅對。
內史 鄭當時도 魏其侯가 옳다고 했다가 뒤에는 의견을 견지하지 못하였다.

餘皆莫敢對。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上怒內史曰:
「公平生數言魏其、武安長短,今日廷論,局趣效轅下駒,吾並斬若屬矣。」
황제가 노하여 내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평소에 여러 차례 魏其侯와 武安侯의 장단점을 말하더니 오늘 조정의 논의에서는 마치 수레 끌채 아래의 망아지처럼 움츠러드니 짐은 그대들까지 참할 터이다.”

即罷起入,上食太后。
즉시 조회를 마치고 일어나 입궁하여 태후에게 식사를 올렸다.

太后亦已使人候伺,具以告太后。
태후 역시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였으므로상황을 상세하게 태후에게 보고하였다.

太后怒,不食,曰:
태후가 화를 내고 밥을 먹지 않고 말하였다.
「今我在也,而人皆藉吾弟,令我百歲後,皆魚肉之矣。
지금 내가 살아 있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나의 동생을 모욕하니가령 내가 죽고 나면 모두 魚肉을 만들 터이오.

且帝甯能為石人邪!
또 황제는 어찌 石人이 될 수 있는가!

此特帝在,即錄錄,設百歲後,是屬寧有可信者乎?」
이렇게 다행히 황제가 살아 있어도 보잘것없는데만약 황제가 돌아가신 뒤에는 이런 무리 중에 어찌 믿을 자가 있겠는가?”

上謝曰:
「俱宗室外家,故廷辯之。
不然,此一獄吏所決耳。」
황제가 사죄하였다.
모두 종실의 외척이기 때문에 조정에서 변론하였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옥리가 판결할 일이었습니다.”

是時郎中令石建為上別言兩人事。
이때 낭중령 石建이 황제를 위하여 魏其侯와 武安侯 두 사람의 사정을 분별하여 진술하였다.

▶ 局趣 : 局促과 같다. 몸을 움츠림.
▶ 轅下駒 : 끌채에 매인 노새. 속박당한 처지.
▶ 若屬 : 너희들.
▶ 藉 : 짓밟다. 모욕하다.
▶ 百歲後 : 死後.
▶ 魚肉 : 어육을 만들다. 마음대로 마구 짓밟다.
▶ 特 : 다행히. 요행으로.
▶ 甯 : 어찌.
▶ 錄錄 : =碌碌. 녹록하다. 보잘것없다.
▶ 設 : 만약.
▶ 外家 : 외척.

武安已罷朝,出止車門,召韓御史大夫載,怒曰:
「與長孺共一老禿翁,何為首鼠兩端?」
武安侯 전분은 조회를 마친 뒤에 止車門을 나와서 어사대부 한안국을 불러 수레에 같이 타고 가면서 성내며 말하였다.
나는 그대와 함께 그 대머리 늙은이를 맞서려 하였는데어찌하여 首鼠兩端이오?”

▶ 止車門 : 停車門. 궁전의 外門.
▶ 載 : 수레를 함께 타다.
▶ 長孺 : 御史大夫 韓安國의 字.
▶ 老禿翁 : 늙고 벼슬 없는 노인. 대머리 노인. 魏其를 말한다.
首鼠兩端 : 쥐가 머리만 내밀고 두리번거린다는 뜻으로, 얼른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 또는 이모저모 살피는 기회주의를 꼬집는 말이다. 성어 首鼠兩端의 최초 출처이다.



韓禦史良久謂丞相曰:
「君何不自喜?
한안국이 한참 있다가 승상에게 말하였다.
승상은 어찌 자중자애하지 않습니까?

夫魏其毀君,君當免冠解印綬歸,曰『臣以肺腑幸得待罪,固非其任,魏其言皆是』。
저 魏其侯가 승상을 비방하면승상께서는 관을 벗고 승상의 인끈을 풀어 황상께 돌려드리며
신은 황제의 심복으로 요행히 승상 직을 얻었습니다만 본래 적임이 못 되오니魏其侯의 말이 모두 옳습니다.’라고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如此,上必多君有讓,不廢君。
그렇게 했다면 황제께서는 필시 승상에게 겸양이 있음을 칭찬하며 승상을 폐하지 않으셨을 터입니다.

魏其必內愧,杜門齰舌自殺。
魏其侯는 틀림없이 속으로 부끄러워 문을 닫아걸고 혀를 깨물어 자살하였을 터입니다.

今人毀君,君亦毀人,譬如賈豎女子爭言,何其無大體也!」
지금 남이 승상을 비방한다고 승상 또한 남을 비방함은 비유하면 장사치나 계집애들 말다툼과 같으니어떻게 그리도 중요한 이치를 모르십니까!”

武安謝罪曰:
「爭時急,不知出此。」
武安侯는 사죄하였다.
쟁론할 때에 마음이 급하여그것을 해야 함을 몰랐습니다.”

於是上使禦史簿責魏其所言灌夫,頗不讎,欺謾。
이때 황제가 御史를 시켜 魏其侯가 灌夫에 관하여 말한 바를 조사하니 상당 부분 부합되지 않아 기만죄에 해당되었다.

劾系都司空。
魏其侯를 탄핵하여 都司空의 특별 감옥에 가두었다.

孝景時,魏其常受遺詔,曰
「事有不便,以便宜論上」。
孝景帝 때 魏其侯가 遺詔를 받은 적이 있는데이르기를,
사정에 불편함이 생기면편의대로 황제에게 보고하라.”

及系,灌夫罪至族,事日急,諸公莫敢複明言於上。
魏其侯가 구금되자灌夫의 죄는 멸족에 이르고사태가 날로 다급해지는데공경들 중 누구도 감히 황제에게 다시 분명히 설명하지 않았다.


魏其乃使昆弟子上書言之,幸得複召見。
魏其侯가 이에 조카를 시켜 황제에게 상서하여 그것을 말하게 하여다시 불려가서 황제를 뵙기를 희망하였다.

書奏上,而案尚書大行無遺詔。
상소문이 황제에게 올라왔으나 尙書에 보관된 문서를 조사해보니경제가 임종 전에 남긴 유조가 없었다.

詔書獨藏魏其家,家丞封。
조서는 단지 魏其侯의 집에만 있었고魏其侯의 가신이 봉해둔 것이었다.

乃劾魏其矯先帝詔,罪當棄市。
이에 魏其侯를 경제의 유조를 날조하였다고 탄핵하니그 죄는 棄市에 해당하였다.

​▶ 自喜 : 스스로 기쁨에 젖다. 自重自愛.
▶ 印綬 :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官印을 몸에 차기 위한 끈.
▶ 待罪 : 관리가 자기 직책을 수행하는 것을 겸손하게 이른 말
▶ 多君有讓 : 겸양의 미덕이 있다며 칭찬하다. 多는 칭찬하다.
▶ 齰舌 : 혀를 깨물다.
▶ 賈豎 : 商人.
▶ 爭言 : 말다툼하다.
▶ 簿責 : 灌夫의 죄상을 조사 기록한 문서.
▶ 頗不讎 : 상당부분 부합되지 않다. 讎는 부합하다.
▶ 都司空 : 전문적으로 황제가 명령한 안건을 책임지는 관아.
▶ 遺詔 : 황제가 죽기 전에 남긴 조서.
▶ 罪至族 : 멸족에 상당하는 죄로 논하다
▶ 昆弟子 : 형제의 아들. 조카.
▶ 大行 : 황제가 임종함을 말함.
▶ 家丞封 : 魏其侯의 가신이 날인하여 보관하다.
▶ 矯 : 사칭하다.

五年十月,悉論灌夫及家屬。
원광 5(기원전 130) 10월에 灌夫 및 그 일족을 모두 처형하였다.

魏其良久乃聞,聞即恚,病痱,不食欲死。
魏其侯는 한참 뒤에야 소식을 듣고듣고 나자 분개하여 중풍을 앓았으며음식을 끊고 죽으려고 하였다.

或聞上無意殺魏其,魏其複食,治病,議定不死矣。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魏其侯를 죽일 뜻이 없다고 알려주자魏其侯가 다시 음식을 먹고 병을 치료하였으며조정에서 그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乃有蜚語為惡言聞上,故以十二月晦論棄市渭城。
그를 헐뜯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니이로 인하여 12월 그믐에 渭城에서 棄市를 집행하였다.

其春,武安侯病,專呼服謝罪。
그해 봄에 武安侯가 병들자계속하여 소리쳤는데 사죄의 말 뿐이었다.

使巫視鬼者視之,見魏其、灌夫共守,欲殺之。
귀신을 보는 무당을 시켜 보이니魏其侯와 灌夫가 함께 지키고 서서 죽이려 함이 보였다.

竟死。子恬嗣。
결국 武安侯가 죽고아들 이 작위를 계승하였다.

元朔三年,武安侯坐衣襜褕入宮,不敬。
元朔 3(기원전 126), 武安侯 전염은 짧은 홑옷을 입고 입궁하여 불경죄에 걸렸다.

淮南王安謀反覺,治。
淮南王 劉安이 모반하다 발각되어治罪하였다.

王前朝,武安侯為太尉,時迎王至霸上,謂王曰:
「上未有太子,大王最賢,高祖孫,即宮車晏駕,非大王立當誰哉!」
이전에 회남왕이 입조함에 武安侯는 태위였는데회남왕을 영접하러 霸上에 가서 왕에게 말하였다.
황제께는 아직 태자가 없으매대왕께서 가장 현명하시고 高帝의 손자이시니황제께서 붕어하시면 대왕이 즉위하지 않으면 누가 마땅하겠습니까!”

淮南王大喜,厚遺金財物。
회남왕은 크게 기뻐하며 황금과 재물을 후하게 주었다.

上自魏其時不直武安,特為太后故耳。
황제가 魏其侯의 일이 있을 때부터 武安侯가 옳지 않다고 여겼으나단지 왕태후 때문이었다.

及聞淮南王金事,上曰:
「使武安侯在者,族矣。」
회남왕이 武安侯에게 뇌물을 준 일을 알고 황제가 말하였다.
만약 武安侯가 살아 있다면 멸족하였을 터이다.”

▶ 五年十月 : 기원전 130년 10월. 元光은 漢武帝의 세 번째 연호.
▶ 論 : 판결하다.
▶ 恚 : 원망하다. 분노하다.
▶ 病痱 : 중풍에 걸리다.
▶ 蜚語 : 流言蜚語. 터무니없이 떠도는 말. 뜬 소문. 蜚는 飛와 같다.
▶ 晦 : 그믐.
▶ 專呼服謝罪 : 오직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한다는 소리를 외치다.
▶ 巫視鬼者 : 귀신을 볼 수 있는 무당.
▶ 元朔三年 : 기원전 126년. 元朔은 漢武帝의 세 번째 연호이다.
▶ 襜褕(첨유) : 짧은 홑옷.
▶ 覺 : 발각되다.
▶ 前朝 : 전에 입조한 일을 말한다. 武帝 建元 2년(기원전 139년)에 입조하여 당시 太尉였던 田蚡이 유안이 다음 황제가 될 것이라고 하자 기뻐하여 전분에게 뇌물을 주었다.<사기 권118. 淮南衡山列傳>
▶ 宮車晏駕 : 황제가 붕어함. 宮車一日晏駕는 궁의 수레가 아침에 늦게 나간다 함은 왕이 조회에 늦는다는 의미로 제왕이 붕어했다는 뜻.
▶ 使 : 만약.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魏其、武安皆以外戚重,灌夫用一時決筴而名顯。
魏其侯와 武安侯는 모두 외척으로서 존귀하였고灌夫는 한때 결정한 계책으로 명성을 드날렸다.

魏其之舉以吳楚,武安之貴在日月之際。
魏其侯가 중용됨은 오초칠국의 난 때문이었고武安侯가 존귀하게 됨은 漢武帝가 막 즉위하여 王太后가 섭정할 때였다.

然魏其誠不知時變,灌夫無術而不遜,兩人相翼,乃成禍亂。
그러나 魏其侯는 진실로 시세 변화를 알지 못하였고 灌夫는 학식이 없고 불손하였는데 두 사람이 서로 비호하여 이런 재난을 만들었다.

武安負貴而好權,杯酒責望,陷彼兩賢。
武安侯는 존귀함을 등에 업고 권모술수를 좋아하였으매한 잔 술의 책망으로 인하여 저 두 賢士를 모함하였다.

嗚呼哀哉!遷怒及人,命亦不延。
아아슬프다灌夫는 분노를 남에게 이르게 하며 자신의 수명 또한 연장하지 못하였다.

眾庶不載,竟被惡言。
大衆이 옹호하지 않으니 마침내 나쁜 말을 듣게 되었다.

嗚呼哀哉!禍所從來矣!
아아슬프다재앙이 起因하는 바여!”

▶ 一時決筴 : 灌夫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하여 吳 진영으로 달려들어간 것을 말한다.
▶ 以吳楚 : 오초칠국의 난 때문이다.
▶ 日月之際 : 漢武帝가 즉위하고 王太后가 정권을 잡았을 때를 말한다.
▶ 時變 : 時勢의 변화. 竇太后가 죽고 王太后가 정권을 잡음으로 인하여 전분의 권력이 강해짐을 말한다.
▶ 相翼 : 서로 비호하다.
▶ 權 : 권모술수.
▶ 載 : 擁護하다. 떠받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