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篇은 30世家 중 29번째 편으로 漢景帝의 다섯 명의 후비에게서 태어난 열세 명의 아들들이 제후왕이 되었다가 몰락하는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漢景帝의 부인은 일곱 명으로 첫 번째 부인인 薄皇后는 폐후되고 武帝劉徹의 어머니인 왕씨가 황후가 되었다. 景帝는 슬하에 모두 14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그 중 하나가 漢武帝유철이고 다섯 명의 후비에게서 태어난 13명의 아들은 모두 諸侯王에 봉해졌다. 사마천은 같은 모친에서 태어난 아들을 宗親이라 하였으며, 이에 5명의 후비들이 낳은 아들이 모두 모친으로 여겨 같은 종친으로 지낸다고 해서 五宗이라고 한 것이다.
사마천은 太史公自序에서
“景帝의 다섯 후비의 자식들이 제후왕이 되어 친족이 화합을 이루었고, 크고 작은 제후들이 蕃國이 되어 각자 자기 직분을 다하니 분수를 모르고 천자 행세를 하려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제29편 ‘五宗世家’를 지었다.”
라고 기술하였다.
孝景皇帝子凡十三人為王,而母五人,同母者為宗親。
경제의 아들 열세 명이 왕으로 봉해졌으며 그들의 어머니는 다섯 사람으로 같은 어머니가 낳았으면 종친이 된다.
栗姬子曰榮、德、閼于。
栗姬의 아들은 劉榮·劉德·劉閼于이다.
程姬子曰餘、非、端。
程姬의 아들은 劉餘·劉非·劉端이다.
賈夫人子曰彭祖、勝。
賈夫人의 아들은 劉彭祖·劉勝이다.
唐姬子曰發。
唐姬의 아들은 劉發이다.
王夫人兒姁子曰越、寄、乘、舜。
王夫人兒姁의 아들은 劉越·劉寄·劉乘·劉舜이다.
▶ 孝景皇帝子凡十三人為王: 景帝는 슬하에 모두 14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그중 한 사람이 漢武帝유철이고 다섯 명의 후비에게서 태어난 13명의 아들은 모두 諸侯王에 봉해졌다.
▶ 閼于: <漢書景十三王傳>에는‘閼’로 기록되어있으며 于자가 없다.
▶ 栗姬: 景帝의 후궁. 齊 출신으로, 경제의 맏아들인 유영을 낳았으나 권력 암투 끝에 몰락하였다. 景帝의 황후는 원래 박황후였으나 경제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아들을 낳지도 못하니, 율희가 경제에게 장자 유영을 낳아주었으므로 경제4년 기원전153년에 유영은 태자가 됐고 경제6년(기원전151년)박황후가 쫓겨났다.
▶ 兒姁: 王夫人. 兒姁는 왕태후 王娡의 동생으로 아들 넷을 낳았다. <史記世家권49. 外戚世家>
河閒獻王德,以孝景帝前二年用皇子為河閒王。
河間獻王 劉德은 경제 전원2년(기원전155년)에 황제의 아들의 신분으로 하간왕에 봉해졌다.
好儒學,被服造次必於儒者。
유학을 좋아하여 복장이나 말과 행동 모두 유생을 본받았다.
山東諸儒多從之游。
산동의 유생에 그를 따르면서 교유하는 자가 많았다.
▶ 孝景帝前二年: 孝景帝前元 2년(기원전155년)
▶ 用皇子: 황제의 아들의 신분.
▶ 被服: 옷차림과 服飾.
▶ 造次: 언행과 거동.
▶ 於: 따르다.
▶ 山東: 崤山의 동쪽. 효산은 河南省洛寧縣북쪽에 위치한 산이다.
▶ 游: 교유하다. 왕래하다.
二十六年卒,子共王不害立。
하간헌왕은 재위26년 만에 죽고, 아들 共王劉不害가 계승하였다.
四年卒,子剛王基代立。
그는 재위4년 만에 죽고, 아들 剛王劉基가 대를 이었다.
十二年卒,子頃王授代立。
유기는 12년 만에 죽고, 아들 頃王劉授가 대를 이었다.
臨江哀王閼于,以孝景帝前二年用皇子為臨江王。
臨江哀王 劉閼于는 경제 전원2년 皇子 신분으로 임강왕에 봉해졌다.
三年卒,無後,國除為郡。
그가 재위3년 만에 죽자 후계자가 없어 봉국은 폐지되고 郡이 되었다.
臨江閔王榮,以孝景前四年為皇太子,四歲廢,用故太子為臨江王。
臨江閔王劉榮은 경제 전원4년(기원전153년)에 황태자가 되었으나, 4년 후 폐위되어 옛 태자의 신분으로 임강왕에 봉해졌다.
▶ 臨江王: 臨江閔王 劉榮. 景帝의 맏아들이다. 栗姬소생으로 율태자라고 칭하였다. 태자였으나 폐위되어 임강민왕이 되었고, 종묘의 영역을 침범하여 궁궐을 지은 죄로 경제에게 소환되었을 때 중위부로 가서 심문을 받았는데, 중위 郅都가 매우 엄하게 꾸짖자 두려워하여 자결하였다. <사기열전 권122. 혹리열전>
四年,坐侵廟壖垣為宮,上徵榮。
민왕 재위4년에 종묘의 담장 밖 공터를 침범하여 궁궐을 지은 죄로 경제가 유영을 소환하였다.
榮行,祖於江陵北門。
유영이 길을 나서서 江陵城 북문에서 제사를 올렸다.
既已上車,軸折車廢。
마치고 수레에 올랐는데 축이 부러지면서 수레가 망가졌다.
江陵父老流涕竊言曰:
「吾王不反矣!」
강릉의 부로들이 눈물을 소곤거렸다.
“우리 왕은 돌아오지 못할 터이다!”
榮至,詣中尉府簿。
유영이 도착하여 中尉府로 가서 심문을 받았다.
中尉郅都責訊王,王恐,自殺。
중위 郅都가 왕을 심문하니 왕이 겁을 먹고 자살하였다.
葬藍田。燕數萬銜土置冢上,百姓憐之。
藍田에 묻었는데 수만 마리의 제비들이 흙을 물어다가 봉분 위에 갖다 놓으니 백성들이 그를 가엾게 여겼다.
▶ 坐: 죄를 짓다.
▶ 壖: 성곽 둘레의 논밭이나 공터. 빈 땅.
▶ 徵: 부르다.
▶ 祖: 路神에게 제사지내다.
▶ 反: 返과 같다.
▶ 簿: 對簿. 심문을 받다.
▶ 郅都: 西漢楊縣사람으로 景帝때 中郞將이 되어 직간을 서슴지 않았고, 濟南太守가 되어 豪强瞷氏를 진압하면서, 극악한 무리들을 誅戮하였다. 中尉가 되어 법을 집행함이 엄격하고 가혹하여 황족이라도 꺼리지 않아 貴戚과 列侯들이 그를 蒼鷹이라 불렀다.
[史記列傳]권122酷吏列傳
▶ 銜: 입에 물다. 머금다.
榮最長,死無後,國除,地入于漢,為南郡。
유영은 맏아들이었는데 죽은 뒤 후계자가 없어 봉국은 폐지되고 봉지는 漢에 편입되어 南郡이 되었다.
右三國本王皆栗姬之子也。
위 세 나라의 제1대 왕들은 모두 율희가 낳은 아들들이다.
▶ 右: 고대에는 문자를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기 때문에 ‘右’라고 하면 ‘위’와 같은 말이다.
▶ 本王: 제1대 국왕.
魯共王餘,以孝景前二年用皇子為淮陽王。
魯共王劉餘는 경제 전원2년에 皇子의 신분으로 淮陽王에 봉해졌다.
二年,吳楚反破後,以孝景前三年徙為魯王。
재위2년에 吳·楚 7국의 반란을 격파시킨 후 경제 전원3년(기원전154년)에 魯王으로 옮겨졌다.
好治宮室苑囿狗馬。
노왕은 궁전과 사냥터를 짓는 것과 개와 말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였다.
季年好音,不喜辭辯。為人吃。
만년에는 음악을 좋아했는데 말은 잘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 吳楚反: 吳楚七國의 반란
▶ 孝景前三年: 孝景帝前元 2년(기원전154년)
▶ 季年: 晚年. 季는 말년.
▶ 吃: 말을 더듬다.
二十六年卒,子光代為王。
노왕 劉餘는 재위26년 만에 죽고, 아들 劉光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初好音輿馬;晚節嗇,惟恐不足於財。
유광이 처음에는 음악, 수레, 말을 좋아했으나, 만년에는 인색해져 오로지 쓸 재물이 부족할까봐 걱정하였다.
▶ 嗇: 인색하다.
江都易王非,以孝景前二年用皇子為汝南王。
江都易王劉非는 경제 전원2년(기원전155년)에 皇子의 신분으로 汝南王에 봉해졌었다.
吳楚反時,非年十五,有材力,上書願擊吳。
吳·楚 7국의 반란 때, 유비는15세로 지혜와 勇力을 겸비하여, 상서하여 吳를 치겠다고 하였다.
景帝賜非將軍印,擊吳。
경제가 유비에게 將軍印을 주니 吳를 공격하였다.
吳已破,二歲,徙為江都王,治吳故國,以軍功賜天子旌旗。
吳를 격파하고 2년 후 江都王으로 옮겨져 吳의 옛 나라를 다스렸으며, 軍功으로 천자의 깃발을 하사받았다.
元光五年,匈奴大入漢為賊,非上書願擊匈奴,上不許。
무제 元光 5년(기원전130년)에 흉노가 한나라 변경을 대거 침입하여 노략질하자, 유비가 흉노를 치겠다는 글을 올렸으나 무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非好氣力,治宮觀,招四方豪桀,驕奢甚。
유비는 기력이 좋았고, 궁전을 지어 사방의 호걸들을 불러들이는 등 교만과 사치가 심하였다.
▶ 元光五年: 기원전130년. 元光은 한 무제의 두 번째 기원. 기원전134~129년.
▶ 賊: 도둑질하다.
▶ 宮觀: 궁전. 觀은 대궐문. 누각(樓閣: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立二十六年卒,子建立為王。七年自殺。
유비는 재위26년 만에 죽고 아들 劉建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재위7년 만에 자살하였다.
淮南、衡山謀反時,建頗聞其謀。
淮南王과 衡山王이 반란을 꾀했을 때 유건은 그 음모를 대략 알고 있었다.
自以為國近淮南,恐一日發,為所并,即陰作兵器,而時佩其父所賜將軍印,載天子旗以出。
봉국이 회남과 가까우므로, 어느 날 일이 터지면 회남에 합병될까 두려워하고, 몰래 병기를 만들고 늘 그 아버지가 하사받은 將軍印을 찬 채, 천자의 깃발을 달고 외출하였다.
▶ 子建: 劉建. 江都王. 漢景帝의 손자이며 강도왕 유비의 아들이다.
▶ 淮南, 衡山謀反: 淮南王劉安과 衡山王劉賜가 반란을 꾀한 것을 말한다. <史記列傳권118. 淮南衡山列傳>
易王死未葬,建有所說易王寵美人淖姬,夜使人迎與姦服舍中。
역왕이 죽고 장례를 마치기도 전에, 유건은 역왕이 총애하던 미인 淖姬에게 반하여, 밤중에 사람을 시켜 빈소로 맞아들여 간통하였다.
及淮南事發,治黨與頗及江都王建。
회남왕의 반란 사건이 발각되어 그 일당을 치죄하는데 江都王유건이 상당히 연루되어 있었다.
建恐,因使人多持金錢,事絕其獄。
유건이 두려워하고 사람을 시켜 많은 금전으로 그 訟事를 무마하려 하였다.
而又信巫祝,使人禱祠妄言。
또 무당을 신봉하여 사람을 시켜 기도와 제사를 올리며 터무니없는 말을 날조하였다.
建又盡與其姊弟姦。
유건은 또 여자 형제와 모조리 간통하였다.
事既聞,漢公卿請捕治建。
일이 알려지자 한의 공경들이 유건을 잡아다 죄를 다스리자고 하였다.
天子不忍,使大臣即訊王。
천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대신을 보내 왕을 심문하였다.
王服所犯,遂自殺。
강도왕 유건은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자살하였다.
國除,地入于漢,為廣陵郡。
봉국은 폐지되고 봉지는 한에 편입되어 廣陵郡이 되었다.
▶ 說: 반하다. 마음에 들다.
▶ 淖姬: 강도 역왕의 첩.
▶ 服舍: 상중에 머무는 가옥.
▶ 黨與: 붕당. 파당.
▶ 獄: 訟事.
▶ 巫祝: 무당.
▶ 妄言: 터무니없는 말. 허튼 소리를 하다.
▶ 姊弟: 윗누이와 누이동생.
▶ 即: 가다.
膠西于王端,以孝景前三年吳楚七國反破後,端用皇子為膠西王。
膠西于王劉端은 경제 전원3년(기원전154년) 吳·楚 7국의 난이 평정되고 난 후 皇子의 신분으로 교서왕에 봉해졌다.
端為人賊戾,又陰痿,一近婦人,病之數月。
유단은 사람됨이 잔인하고 사납고, 또 발기부전증이 있어 한 번 여인을 가까이하면 몇 달을 앓았다.
而有愛幸少年為郎。
그리고 총애하는 소년이 있었는데 郎官으로 삼았다.
為郎者頃之與後宮亂,端禽滅之,及殺其子母。
낭관이 된 지 얼마 후 후궁과 亂行하자, 유단은 그를 잡아 죽이고 그의 아들과 어머니까지 죽였다.
▶ 賊戾: 잔인하고 흉악하다.
▶ 陰痿: 발기부전증.
▶ 禽: 擒과 같다. 사로잡다.
數犯上法,漢公卿數請誅端,天子為兄弟之故不忍,而端所為滋甚。
여러 차례 천자의 법령을 어기자 漢의 公卿들이 유단을 죽이라고 여러 번 청했으나, 무제는 형제라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유단의 하는 짓이 더욱 심해졌다.
有司再請削其國,去太半。
有司가 재차 그의 봉국을 삭감하자고 청하여 殆半의 봉지를 삭감하였다.
端心慍,遂為無訾省。
유단은 마음속에 원망을 품고 마침내 어떤 일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府庫壞漏盡,腐財物以巨萬計,終不得收徙。
창고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엄청난 재물이 훼손되었지만 옮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였다.
令吏毋得收租賦。
관리들에게는 조세를 거두지 말라고 명하였다.
端皆去衛,封其宮門,從一門出游。
유단은 경호원을 모두 물리치고 궁문을 봉쇄한 채 한 쪽 문으로만 나다녔다.
數變名姓,為布衣,之他郡國。
여러 차례 성과 이름을 바꾸고 평민 복장을 한 채 다른 郡國을 다녔다.
▶ 天子: 漢武帝
▶ 滋甚: 더욱 심하다.
▶ 訾省: 헤아리다. 세다.
相、二千石往者,奉漢法以治,端輒求其罪告之,無罪者詐藥殺之。
漢에서 임명한 相國과 2천석의 관리가 조정의 법령에 따라 정사를 처리하면, 유단은 번번이 그들의 죄를 찾아내어 고발하고, 죄가 없는 사람은 약이라 속여 살해하였다.
所以設詐究變,彊足以距諫,智足以飾非。
간계를 꾸며서 변화를 추구함에, 强暴하여 남의 충고를 거절하였고, 지혜로워 자신의 잘못을 잘 감추었다.
相、二千石從王治,則漢繩以法。
상국이나 2천석 관리들이 교서왕을 따라 정사를 처리하면 한은 법으로 그들을 처벌하였다.
故膠西小國,而所殺傷二千石甚眾。
이 때문에 교서는 小國이었지만 殺傷한 2천석 관리들이 매우 많았다.
立四十七年,卒,竟無男代後,國除,地入于漢,為膠西郡。
유단은 재위 47년 만에 죽었으나 끝내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고 봉지는 한에 편입되어 교서군이 되었다.
右三國本王皆程姬之子也。
위 세 나라의 제1대 왕들은 모두 程姬의 아들이다.
▶ 相: 제후국의 國相.
▶ 所以設詐: 간계를 꾸미는 방법. 詐는 간계를 꾸미다.
▶ 距: 拒와 통용된다. 저항하다. 거부하다.
▶ 繩: 처벌하다. 죄를 다스리다.
趙王彭祖,以孝景前二年用皇子為廣川王。
趙王 劉彭祖는 경제 전원2년 皇子의 신분으로 廣川王에 봉해졌다.
趙王遂反破後,彭祖王廣川。
조왕 劉遂의 반란을 격파한 후 유팽조는 광천왕이 되었다.
四年,徙為趙王。
재위 4년 만에 조왕으로 옮겼다.
十五年,孝景帝崩。
재위 15년에 효경제가 붕어하였다.
彭祖為人巧佞卑諂,足恭而心刻深。
유팽조는 사람됨이 교활하며 간사하고 아첨을 잘했으며, 겉으로는 아주 공손했지만, 마음은 각박하였다.
好法律,持詭辯以中人。
법률에 밝았고 궤변으로 사람을 中傷하였다.
▶ 趙王彭祖: 劉彭祖. 경제와 가부인의 아들이며 경제의 6째 아들이다. 경제 전원2년 다른 형제들과 함께 광천왕으로 봉해졌다.
▶ 趙王遂: 趙王 劉遂. 고조의 아들인 趙幽王 劉友의 아들로, 고황후8년(기원전180년)에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고 文帝가 황제가 되면서, 죽은 여록을 대신해 趙왕이 되었다. 오초7국의 난에 참가하였으나 난포가 물을 끌어다가 趙城에 흘려보내자 패배하여 趙王 유수가 마침내 자살하였다. <史記世家권50. 楚元王世家>
▶ 徙為趙王: 경제5년(기원전152년)광천왕을 趙王으로 옮겼다. <史記本紀권11. 孝景本紀>
▶ 巧佞: 간사하고 교활하다.
▶ 卑諂: 지나치게 아첨함.
▶ 刻深: 가혹하고 악독하다.
彭祖多內寵姬及子孫。
유팽조는 총애하는 첩과 자손들이 많았다.
相、二千石欲奉漢法以治,則害於王家。
상국과 2천석 관리들이 한의 법률로 정사를 처리하면 조왕의 왕실에 불리하였다.
是以每相、二千石至,彭祖衣皁布衣,自行迎,除二千石舍,多設疑事以作動之,得二千石失言,中忌諱,輒書之。
그래서 매번 조정에서 상국과 2천석 관리들이 올 때마다 유팽조는 검은색 노예의 옷을 입고 몸소 마중을 나갔으며, 2천석 관리의 숙소를 청소하기까지 하였다. 의심스런 일을 많이 제기하여 상대방이 행동하도록 하고, 이천석 관리가 실언해서 조정의 금기를 어기면, 그때마다 기록해두었다.
二千石欲治者,則以此迫劫;
不聽,乃上書告,及汙以姦利事 .
이천석 관리가 법대로 다스리려 하면 이것으로 그들을 협박했고,
듣지 않으면 上疏하여 고발하기를, 간사한 방법으로 사욕을 취하였다고 무고하였다.
▶ 皁布衣: 검은색의 무명옷. 죄수복.
▶ 除: 청소하다.
▶ 疑: 혼란시키다. 미혹시키다.
▶ 中忌諱: 조정의 禁忌를 범하다.
彭祖立五十餘年,相、二千石無能滿二歲,輒以罪去,大者死,小者刑,以故二千石莫敢治。
유팽조가 재위한 50여 년, 상국이나 2천석 관리는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늘 죄를 얻어 떠났는데, 죄가 크면 죽고 죄가 가벼우면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2천석 관리는 감히 법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다.
而趙王擅權,使使即縣為賈人榷會,入多於國經租稅。
조왕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사신을 각 현에 파견하여 교역을 독점하니, 그 수입이 나라의 정상적인 조세보다 많았다.
以是趙王家多金錢,然所賜姬諸子,亦盡之矣。
이 때문에 趙왕실에는 금전이 많았으나 첩과 자식들에게 하사하여 다 써버렸다.
彭祖取笔江都易王寵姬王建所盜與姦淖姬者為姬,甚愛之。
유팽조는 옛 江都易王이 총애하던 첩이자 江都王 劉建이 몰래 간통했던 요희를 첩으로 맞아들이고 몹시 사랑하였다.
▶ 賈人: 상인.
▶ 榷: 專賣하다. 독점판매하다.
▶ 經: 正常.
▶ 取: 娶와 같다. 아내로 맞아들이다.
▶ 笔: 그래서. 그런 까닭에. =故
彭祖不好治宮室、禨祥,好為吏事。
유팽조는 궁전을 짓거나 미신은 좋아하지 않았으나, 하급관리들의 일을 하기를 좋아하였다.
上書願督國中盜賊。
조정에 상소하여 나라 안의 도적을 감독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常夜從走卒行徼邯鄲中。
늘 밤에 병사들을 데리고 한단 성내를 순찰하고 다녔다.
諸使過客以彭祖險陂,莫敢留邯鄲。
사신과 과객은 유팽조의 음험함과 사악함 때문에 감히 한단에 머물지 못하였다.
▶ 禨祥: 귀신을 받들어 복을 구함. 귀신의 禍福.
▶ 吏: 하급관리.
▶ 徼: 순찰하다.
▶ 陂: 사악하다.
其太子丹與其女及同產姊姦,與其客江充有卻。
그의 태자 劉丹은 그의 딸과 同母의 누이와 간통하여 그의 문객 江充과 틈이 벌어졌다.
充告丹,丹以故廢。
강충이 유단을 고발하니 유단은 그 때문에 폐위되었다.
趙更立太子。
趙는 다시 태자를 세웠다.
▶ 同產姊: 劉丹과 어머니가 같은 누이.
中山靖王勝,以孝景前三年用皇子為中山王。
中山靖王 劉勝은 경제 전원3년(기원전154년)에 皇子의 신분으로 中山王에 봉해졌다.
十四年,孝景帝崩。
정왕 재위14년에 효경제가 붕어하였다.
勝為人樂酒好內,有子枝屬百二十餘人。
유승은 사람됨이 술과 여색을 좋아하여 자손이 120여 명이었다.
常與兄趙王相非,曰:
「兄為王,專代吏治事。
王者當日聽音樂聲色。」
늘 형 조왕과 서로를 비난하며 말하였다.
“형은 왕이면서 하급 관리가 하는 일만 한다.
왕이라면 당연히 날마다 음악을 듣고 가무와 여색을 즐겨야 한다.”
趙王亦非之,曰:
「中山王徒日淫,不佐天子拊循百姓,何以稱為藩臣!」
조왕 역시 유승을 비난하며 말하였다.
“중산왕은 매일 음탕함에만 빠져 천자를 보좌하지 않고 백성을 돌보지 않으니 어찌 제후국의 왕이라 칭하겠는가!”
▶ 樂酒好內: 술을 좋아하고 여색을 탐하다.
▶ 枝屬: 親族.
▶ 非: 비난하다.
▶ 聲色: 歌舞女色.
▶ 拊: 위로하다.
▶ 藩臣: 封地를 하사받은 제후국의 왕.
立四十二年卒,子哀王昌立。
유승은 재위42년 만에 죽고, 아들 哀王劉昌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一年卒,子昆侈代為中山王。
유창은 일 년 만에 죽고 아들 劉昆侈가 계승하여 중산왕이 되었다.
右二國本王皆賈夫人之子也。
이상 두 나라의 제1대 왕들은 賈부인의 아들이다.
長沙定王發,發之母唐姬,故程姬侍者。
長沙定王 劉發의 어머니는 唐姬인데 원래 程姬의 시녀였다.
景帝召程姬,程姬有所辟,不願進,而飾侍者唐兒使夜進。
경제가 정희를 불렀는데 정희가 월경 중이어서 모시고 싶지 않으므로, 시녀 唐兒를 변장시켜 밤에 황제를 모시게 하였다.
上醉不知,以為程姬而幸之,遂有身。
황제가 취하여 알아보지 못하고 정희라고 여겨 동침하여 임신하게 되었다.
已乃覺非程姬也。
나중에 정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及生子,因命曰發。
아들을 낳으니 이 때문에 이름을 發이라 하였다.
以孝景前二年用皇子為長沙王。
유발은 경제 전원2년(기원전155년) 皇子 신분으로 長沙王에 봉해졌다.
以其母微,無寵,故王卑溼貧國。
그는 어머니가 微賤하여 총애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형이 낮고 습한 가난한 나라의 왕이 된 것이다.
▶ 程姬: 경제의 후비. 魯共王劉餘, 江都易王劉非, 膠西于王劉端의 모친이다.
▶ 辟: 월경. 회피하다.
▶ 身: 임신하다.
▶ 卑: 낮다.
立二十七年卒,子康王庸立。
장사왕 유발은 즉위 27년 만에 죽고 아들 康王劉庸이 즉위하였다.
二十八年,卒,子鮒鮈立為長沙王。
유용은 28년 만에 죽고, 아들 劉鮒鮈가 장사왕으로 즉위하였다.
右一國本王唐姬之子也。
위의 나라의 제1대 왕은 唐姬의 아들이다.
廣川惠王越,以孝景中二年用皇子為廣川王。
廣川惠王 劉越은 경제 중원2년(기원전148년)에 皇子의 신분으로 광천왕에 봉해졌다.
十二年卒,子齊立為王。
劉越이 재위12년 만에 죽자 아들 劉齊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齊有幸臣桑距。
유제에게는 총애하는 신하 桑距가 있었다.
已而有罪,欲誅距,距亡,王因禽其宗族。
그 후 죄를 지어서 상거를 죽이려고 하자, 상거가 도망치니, 상거의 종족을 잡아들였다.
距怨王,乃上書告王齊與同產姦。
상거가 왕을 원망하여 조정에 상서하기를. 광천왕이 친누이들과 간통했다고 하였다.
自是之後,王齊數上書告言漢公卿及幸臣所忠等。
그 뒤로 광천왕 유제는 여러 차례 상서하여 한의 公卿과 幸臣 所忠등의 죄상을 고발하였다.
▶ 廣川惠王越: 廣川惠王劉越. 한경제와 王夫人 兒姁의 아들로 한무제의 이복형이다. 광천 혜왕12년(기원전137년)에 죽어 아들 劉齊가 광천왕을 계승하였다. 王夫人兒姁는 孝景皇后王娡의 동생으로 아들 넷을 낳았다.
▶ 孝景中二年: 孝景帝中元 2년(기원전148년)
▶ 子齊立為王: 劉齊. 광천혜왕12년(기원전137)년에 아버지가 죽자 광천왕위를 계승하였다.
膠東康王寄,以孝景中二年用皇子為膠東王。
膠東康王劉寄는 경제 중원2년에 皇子 신분으로 교동왕에 봉해졌다.
二十八年卒。
유기는 재위28년 만에 죽었다.
淮南王謀反時,寄微聞其事,私作樓車鏃矢戰守備,候淮南之起。
淮南王이 반란을 꾀했을 때, 유기는 이 일을 은밀히 알고, 몰래 전차와 활과 화살 등을 만들어 전투할 준비하고 회남왕이 기병하기를 살폈다.
及吏治淮南之事,辭出之。
관리가 회남왕의 모반 사건을 심문하던 중 진술에서 유기의 일이 폭로되었다.
寄於上最親,意傷之,發病而死,不敢置後,於是上問[聞]。
유기는 황제와 가장 친하였으므로, 마음이 상하여 병이 나서 죽으니, 감히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는데 이 일이 황제에게 알려졌다.
▶ 淮南王謀反時: 淮南王劉安과 衡山王劉賜가 반란을 꾀한 것을 말한다. <史記列傳권118. 淮南衡山列傳>
▶ 樓車: 고대에 적을 망보는 망루를 설치한 전차.
▶ 鏃矢: 화살 촉과 화살.
▶ 出: 폭로되다. 노출되다
▶ 傷: 애통해하다.
寄有長子者名賢,母無寵;
少子名慶,母愛幸,寄常欲立之,為不次,因有過,遂無言。
유기에게는 劉賢이라는 맏아들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총애받지 못하였고,
劉慶이라는 막내아들은 어머니가 총애받았고, 유기도 일찍이 그를 후계자로 세우고 싶었지만, 순서에 맞지 않고 과실이 있던 터라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上憐之,乃以賢為膠東王奉康王嗣,而封慶於故衡山地,為六安王。
황제가 이를 가엾게 여겨 劉賢을 교동왕으로 삼아 교동 강왕의 계승자로 삼고 劉慶은 옛날 형산왕의 땅에 봉하고 六安王이라 하였다.
▶ 常: 일찍이.
▶ 不次: 계승순서에 맞지 않다.
▶ 因有過: 회남왕의 모반 사건에 가담한 죄를 지었음을 말한다.
膠東王賢立十四年卒,謚為哀王。
교동왕 유현이 재위 14년 만에 죽자, 시호를 哀王이라고 하였다.
子慶為王。
그의 아들 劉慶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六安王慶,以元狩二年用膠東康王子為六安王。
육안왕 劉慶은 무제 元狩 2년(기원전121년)에 교동 강왕 아들의 신분으로 육안왕에 봉해졌다.
▶ 子慶: 膠東戴王劉通平. 혹은 劉慶. 膠東哀王유현의 아들이다. 교동애왕14년(기원전107년)에 아버지가 죽자 교동왕을 계승하였다.
六安王劉慶은 교동왕 유현의 동생으로 숙질이 이름이 같은 것으로 기록하여 오류로 보는 견해가 있다. <漢書·景十三王傳>에는 유현의 아들을 ‘通平’으로 기록하고 있다.
▶ 元狩二年: 기원전121년. 元狩는 한 무제의 네 번째 연호. (기원전122~117년)
清河哀王乘,以孝景中三年用皇子為清河王。
淸河哀王劉乘은 경제 중원3년(기원전147년)에 皇子 신분으로 淸河王에 봉해졌다.
十二年卒,無後,國除,地入于漢,為清河郡。
재위 12년 만에 죽었는데 후사가 없어 봉국은 폐지되고 봉지는 漢에 편입되어 淸河郡이 되었다.
常山憲王舜,以孝景中五年用皇子為常山王。
常山憲王劉舜은 경제 중원5년(기원전145년)에 皇子 신분으로 常山王에 봉해졌다.
舜最親,景帝少子,驕怠多淫,數犯禁,上常寬釋之。
유순은 가장 총애받는 경제의 막내아들인지라 교만하고 태만하며 황음하여 금령을 자주 범했지만 경제는 늘 관대하게 용서해주었다.
立三十二年卒,太子勃代立為王。
유순은 재위 32년 만에 죽었고 태자 劉勃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 孝景中五年: 孝景帝中元 5년(기원전145년)
▶ 常山憲王舜: 常山憲王劉舜. 전한 경제와 왕부인 아후의 소생이다.
初,憲王舜有所不愛姬生長男棁。
당초 헌왕 劉舜에게는 그가 총애하지 않는 첩이 낳은 장남 劉梲이 있었다.
棁以母無寵故,亦不得幸於王。
유탈은 어머니가 총애를 받지 못한 까닭에 또한 헌왕의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王後修生太子勃。
왕후 脩가 태자 劉勃을 낳았다.
王內多,所幸姬生子平、子商,王后希得幸。
헌왕에게는 첩이 많았는데 그가 총애하는 첩이 아들 劉平, 아들 劉商을 낳는 바람에 왕후는 은총을 받는 일이 드물었다.
及憲王病甚,諸幸姬常侍病,故王后亦以妒媢不常侍病,輒歸舍。
헌왕의 병이 위독하자 寵姬들이 늘 간병했는데, 왕후는 또 이를 질투하였기 때문에 간병하지 않았고 늘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醫進藥,太子勃不自嘗藥,又不宿留侍病。
醫員이 약을 올려도 태자 유발은 직접 약을 맛보지도 않았고 또 밤을 새워 간병하지도 않았다.
及王薨,王后、太子乃至。
왕이 죽자 왕후와 태자는 그때서야 왔다.
憲王雅不以長子棁為人數,及薨,又不分與財物。
헌왕은 평소 큰아들 유탈을 아들로 여기지 않아서, 죽을 때도 재물을 나눠주지 않았다.
郎或說太子、王后,令諸子與長子棁共分財物,太子、王后不聽。
어떤 낭관이 태자와 왕후에게 권하기를, 헌왕의 여러 아들과 장자 탈에게도 재물을 함께 나누어 주라고 하였지만, 태자와 왕후는 듣지 않았다.
▶ 内: 첩.
▶ 妒媢: 질투하다.
▶ 雅: 평소.
太子代立,又不收恤棁。
태자가 왕위를 계승해서도 유탈을 거두어 돌보지 않았다.
棁怨王后、太子。
유탈은 왕후와 태자에게 원한을 품었다.
漢使者視憲王喪,棁自言憲王病時,王后、太子不侍,及薨,六日出舍,太子勃私姦,飲酒,博戲,擊筑,與女子載馳,環城過市,入牢視囚。
조정의 사신이 헌왕의 장례를 보러 오자, 유탈은 직접 나서서 고발하기를, ‘헌왕이 병중에 있을 때 왕후와 태자는 간병하지 않았고 헌왕이 죽은 지 6일 만에 빈소를 벗어났으며, 태자 유발은 몰래 간음, 음주, 노름, 격축 등을 일삼으며 여자를 수레에 태워 달리며 성과 저자를 돌아다니며 감옥에 가서 죄수를 시찰했다.’라고 하였다.
▶ 收恤: 거두어 돌보다.
▶ 出舍: 빈소를 벗어나다.
▶ 博: 도박.
▶ 筑: 고대의 악기명.
天子遣大行騫驗王后及問王勃,請逮勃所與姦諸證左,王又匿之。
천자는 大行 張騫을 보내 왕후와 상산왕 유발을 조사하였는데, 유발과 함께 간통한 사람들을 잡아다 증인으로 삼기를 청하였으나 유발은 또 그들을 숨겼다.
吏求捕勃大急,使人致擊笞掠,擅出漢所疑囚者。
관리가 체포하라고 요구하자, 유발은 다급하여 사람을 시켜 그 관리를 매질하고, 제멋대로 조정에서 의심하고 있던 죄수를 석방하였다.
有司請誅憲王後修及王勃。
有司가 헌왕의 왕후 修와 왕 유발을 죽이기를 청하였다.
上以修素無行,使棁陷之罪,勃無良師傅,不忍誅。
황제는 왕후 수가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아서, 유탈이 그녀의 죄를 고발할 지경에 이르렀고, 유발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없었다고 생각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였다.
有司請廢王後修,徙王勃以家屬處房陵,上許之。
유사가 왕후 수를 폐출하고, 왕 유발은 그 가족과 함께 房陵으로 이주시키라고 청하자 황제가 허락하였다.
▶ 左: 증인. 증거.
▶ 笞掠: 매로 때리다. 고문하다.
▶ 有司: 담당관리.
▶ 無行: 품행이 좋지 않다.
▶ 陷: 모함하다.
▶ 王勃以家屬: 以는 전치사로서 與자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와 함께” “…에게” 후대에 들어 이러한 용법은 극소화되었다. 허사 以 참조
勃王數月,遷于房陵,國絕。
유발은 왕이 된 지 몇 달 만에 방릉으로 유배되었고 봉국은 끊어졌다.
月餘,天子為最親,乃詔有司曰:
「常山憲王蚤夭,后妾不和,適孽誣爭,陷于不義以滅國,朕甚閔焉。
其封憲王子平三萬戶,為真定王;
封子商三萬戶,為泗水王。」
한 달여 지난 후, 천자는 헌왕을 가장 총애했기 때문에 有司(담당관리)에게 조서를 내렸다.
“상산 헌왕이 요절함에, 왕후와 첩들이 불화하고 적자와 서자들이 서로 무고하여 싸우는 등, 불의에 빠졌으므로 나라를 멸하였으나, 짐은 이를 참으로 가련하게 생각한다.
헌왕의 아들 유평에게 3만 호를 봉하여 眞定王으로 삼고, 아들 유상에게 3만 호에 봉하여 泗水王으로 삼으라.”
▶ 蚤夭: 요절하다. 蚤는 早와 통용된다.
▶ 適孽: 嫡子와 庶子. 適은 嫡과 같다.
真定王平,元鼎四年用常山憲王子為真定王。
真定王劉平은 무제 元鼎 4년(기원전113년)에 상산 헌왕의 아들의 신분으로 진정왕에 봉해졌다.
泗水思王商,以元鼎四年用常山憲王子為泗水王。
泗水思王劉商은 무제 원정4년에 상산 헌왕의 아들의 신분으로 사수왕에 봉해졌다.
十一年卒,子哀王安世立。
재위11년 만에 죽고 그의 아들 哀王劉安世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十一年卒,無子。
애왕은 재위11년 만에 죽었는데 아들이 없었다.
於是上憐泗水王絕,乃立安世弟賀為泗水王。
이에 무제는 사수왕의 후손이 끊어짐을 가엾게 여겨 유안세의 동생 劉賀를 사수왕으로 삼았다.
右四國本王皆王夫人兒姁子也。
이상 네 나라의 제1대 왕들은 모두 왕부인 아후의 아들들이다.
其後漢益封其支子為六安王、泗水王二國。
그 후 漢에서 그 방계 자손들까지 육안왕·사수왕으로 두 나라에 봉하였다.
凡兒姁子孫,於今為六王。
兒姁의 자손은 지금까지 모두 왕이 여섯 명이다.
▶ 元鼎四年: 기원전113년. 元鼎은 한무제의 다섯 번째 기원 (기원전116~기원전111년)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高祖時諸侯皆賦,得自除內史以下,漢獨為置丞相,黃金印。
“고조 재위 때는 제후가 모두 세금을 부과하고, 內史 이하의 관리를 직접 임명하였으며, 조정에서는 단지 승상을 파견하였고 黃金印을 수여하였다.
諸侯自除御史、廷尉正、博士,擬於天子。
제후가 직접 어사, 정위정, 박사를 임명하니 천자를 방불케 하였다.
自吳楚反後,五宗王世,漢為置二千石,去「丞相」曰「相」,銀印。
吳楚의 반란 이후 五宗이 왕으로 봉해졌던 시대에는 2천석 관리는 모두 조정에서 파견하였고, ‘丞相’을 없애고 ‘相’이라 하였고 銀印을 수여하였다.
諸侯獨得食租稅,奪之權。
제후들은 단지 조세의 수입만 가졌고, 권력은 빼앗겼다.
其後諸侯貧者或乘牛車也。
그 후 제후로서 가난한 자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기도 했다.”
▶ 諸侯: 제후왕을 말한다.
▶ 皆賦: 봉국내 일체의 세금을 모두 제후의 소유로 하다.
▶ 除: 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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