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世家

世家51-荊燕世家(형연세가)

耽古樓主 2023. 7. 7. 01:25

이篇은 30世家 중 21번째 편으로 漢나라의 荊王 劉賈와 燕敬王 劉澤에 관한 기록이다.
荊王 劉賈와 燕敬王 劉澤은 漢高祖 劉邦의 먼 친척 형제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할 때 전공을 세워 왕후로 봉해졌으므로 사마천이 두 사람에 대한 전기를 기록하였다.
사마천은 태자공 자서에서
“고조가 秦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을 때 劉賈가 함께하였다. 그 후 英布의 공격을 받아 荊과 吳땅을 잃었다. 營陵侯 劉澤이 여태후를 감동시켜 琅琊王에 봉해졌다. 祝午에게 기만당해 齊哀王을 믿어 齊로 돌아올 수 없게 되자 꾀를 내어 서쪽으로 관중으로 돌아와서 文帝를 옹립한 공으로 다시 燕王에 봉해졌다. 천하가 미처 평정되지 못한 때 유고와 유택은 친족의 신분으로 한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이에 제21편 ‘荊燕世家’를 지었다.”
라고 하였다.

世家51-荊燕世家(형연세가)

 

荊王劉賈者,諸劉,不知其何屬初起時。
荊王 劉賈는 유씨의 종족이지만어느 족속으로 처음 시작하였는지 알 수 없다.

漢王元年,還定三秦,劉賈為將軍,定塞地,從東擊項籍。
한왕 원년(기원전206한왕이 한중에서 군대를 돌려 三秦을 평정함에유고는 장군이 되어 塞王의 땅을 평정하고 고조를 따라 동쪽으로 項籍을 공격하였다.

▶ 劉賈: 고조 유방의 從兄으로 荊王을 지냈으며, 영포의 반란 때 전사하였다. 漢高祖11년(기원전196년), 영포가 동쪽으로 荊을 치니, 형왕 劉賈는 달아나다가 富陵에서 죽었다.
▶ 諸劉: 劉邦의 종족.
▶ 何屬: 유씨의 방계 자손.
▶ 三秦: 항우가 秦나라를 멸망시킨 후 그 땅을 각기 나누어 셋으로 만들어 분봉하고 雍王, 塞王, 翟王이라 이름하고는 三秦이라 불렀다. 〈秦始皇本紀〉
▶ 定塞地: 새왕의 지역을 평정하다. 당시 새왕은 사마흔이었다. 司馬欣은 초한전 무렵 秦나라의 장군으로 항우에게 항복해 장한, 동예와 함께 삼진왕으로 봉해져 한왕 견제가 임무였으나 유방에게 공격받아 항복했다
▶ 項籍: 項羽. 이름은 籍이고, 자는 羽이다. 秦나라 말기의 농민봉기 지도자이자 項梁의 조카이다. 秦나라가 망하자 자립하여 西楚霸王이 되었다. 楚漢전쟁에서 劉邦에게 패하여 烏江에서 자결하였다.

漢四年,漢王之敗成皋,北渡河,得張耳、韓信軍,軍修武,深溝高壘,使劉賈將二萬人,騎數百,渡白馬津入楚地,燒其積聚,以破其業,無以給項王軍食。
한왕4(기원전203)에 한왕이 成皐에서 패배하여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 張耳와 韓信의 군대를 얻은 다음修武에 주둔하여 참호를 깊이 파고 성채를 높이 쌓았다유고에게 병사 2만 명과 기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白馬津을 건너 楚 땅으로 들어가서 쌓아 놓은 군량에 불을 질러 그들의 산업을 파괴하게 함으로써 항왕에게 군량을 보급하지 못하게 하였다.

已而楚兵擊劉賈,賈輒壁不肯與戰,而與彭越相保。
얼마 후 의 군대가 유고를 공격했으나 유고는 줄곧 보루를 견고히 지키며 싸우지 않았으며 彭越과 서로 의지하며 함께 지켰다.

▶ 軍: 주둔하다.
▶ 深溝: 참호를 깊이 파다.
▶ 高壘: 성채를 높이 쌓다.
▶ 輒: 줄곧.
▶ 壁: 군루를 견고히 지키다.
▶ 相保: 서로 의지하다.
▶ 彭越: 項羽의 군사가 되었으나 항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반란을 일으켜 유방에게 귀순하여 한나라를 도와 楚를 공격하여 여러 차례 楚의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史記列傳권90. 魏豹彭越列傳>

漢五年,漢王追項籍至固陵,使劉賈南渡淮圍壽春。
한왕5(기원전202)에 한왕은 항적을 추격하여 固陵에 이르렀고유고를 시켜 남으로 淮水를 건너 壽春을 에워싸게 하였다.

還至,使人閒招楚大司馬周殷。
유고가 신속히 돌아오자 사람을 시켜 기회를 엿보아 의 大司馬 周殷을 유인하였다.

周殷反楚,佐劉賈舉九江,迎武王黥布兵,皆會垓下,共擊項籍。
주은은 를 배반하고 유고를 도와 九江을 평정한 다음 武王 黥布의 군대를 맞아들이고 모두 垓下에 모여서 함께 항적을 공격하였다.

漢王因使劉賈將九江兵,與太尉盧綰西南擊臨江王共尉。
한왕은 이에 유고에게 구강의 군대를 거느리고 太尉 盧綰과 서남쪽으로 臨江王 共尉를 공격하게 하였다.

共尉已死,以臨江為南郡。
공위가 죽자 臨江을 南郡으로 삼았다.

▶ 還: 신속히.
▶ 閒: 기회를 엿보다.
▶ 周殷: 劉賈가 壽春을 포위하여 楚의 大司馬인 周殷을 유인하자, 주은이 楚를 배반하고 九江의 군대를 다 동원해서 黥布를 맞이하여, 城父를 도륙하고, 유고를 따라 제와 양의 제후들이 모두 해하에 대대적으로 모여들었다.
[史記本紀]권08. 高祖本紀 <楚漢戰爭>
▶ 盧綰: 沛國 豊邑사람으로 劉邦과 같은 날에 태어난 동향인으로 유방의 총애를 받았다. 초한 전쟁 때 太尉가 되었고 長安侯에 봉해졌다. 후에 유방을 따라 燕王 藏荼를 격파하여 燕王에 봉해졌다. 한왕5년(기원전202년)겨울에 고조가 항우를 격파한 후 노관을 別將으로 삼아 劉賈와 함께 臨江王 共尉를 격파하였다. [史記列傳]권93韓信盧綰列傳

漢六年春,會諸侯於陳,廢楚王信,囚之,分其地為二國。
漢高祖6(기원전201)봄에 陳縣에서 제후들과 회맹하여 초왕 한신을 폐위하고 그를 가둔 다음 그 땅을 두 나라로 나누었다.

當是時也,高祖子幼,昆弟少,又不賢,欲王同姓以鎮天下,乃詔曰:
「將軍劉賈有功,及擇子弟可以為王者。」
당시 고조의 아들은 어리고형제의 수는 적은 데다 똑똑하지도 못하였으므로同姓을 왕으로 세워 천하를 진정하고자 조서를 내렸다.
장군 劉賈는 전공이 있으니 유씨 자제들 중 택하여 왕으로 삼을 만하다. ”

群臣皆曰:
「立劉賈為荊王,王淮東五十二城;
高祖弟交為楚王,王淮西三十六城。」
신하들이 모두 말하였다.
유고를 荊王으로 세워 회수 동쪽 52성을 다스리게 하고,
고조의 동생이신 劉交를 왕으로 세워 회수 서쪽 36개 성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
因立子肥為齊王。
이에 고조는 아들 劉肥를 왕으로 삼았다.

始王昆弟劉氏也。
처음으로 유씨 형제들이 왕이 되었다.

▶ 楚王韓信: 淮陰侯 韓信. 高帝 6년에 어떤 자가 楚王 韓信이 모반한다고 고발하자, 고제가 陳平의 계책을 사용하여 거짓으로 雲夢에 유람한다고 하고 제후들을 陳땅에 모이게 하여 한신을 사로잡고 동생 유교를 초왕으로 삼아 彭城에 도읍하게 하였다. <史記列傳권92淮陰侯列傳>

 

高祖十一年秋,淮南王黥布反,東擊荊。
漢高祖11(기원전196가을에 淮南王 경포가 반란을 일으켜 동쪽으로 을 공격하였다.

荊王賈與戰,不勝,走富陵,為布軍所殺。
형왕 유고가 맞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富陵으로 달아났다가 경포의 군대에 피살되었다.

高祖自擊破布。
고조가 친히 경포를 격파하였다.

十二年,立沛侯劉濞為吳王,王故荊地。
漢高祖12(기원전195), 沛侯劉濞를 오왕으로 삼고 형왕의 옛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 黥布反: 경포는 항우에 의해 九江王에 봉해졌으나 楚漢전쟁 중에 한나라가 설득하자 한나라로 귀순하였다. 淮南王에 봉해졌고, 유방을 따라 垓下전투에서 항우를 격파하였다. 漢나라가 선 뒤 韓信과 彭越등 개국 공신들이 하나하나 피살되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강남으로 달아났다가 長沙王에게 유인되어 誅殺되었다. <사기열전 권91. 경포열전>
▶ 劉濞: 吳王 劉濞. 前漢의 제후왕으로 漢高祖 劉邦의 형 劉仲의 아들이다. 훗날 황실이 제후국을 견제함에 반발하여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世家51-荊燕世家(형연세가)



燕王劉澤者,諸劉遠屬也。
연왕 劉澤은 유씨의 먼 族屬이다.

高帝三年,澤為郎中。
고제 3(기원전 204유택이 郎中이 되었다.

高帝十一年,澤以將軍擊陳豨,得王黃,為營陵侯。
고제 11(기원전 196)에 유택은 장군이 되어 陳豨를 공격하여 王黃을 잡으니 營陵侯에 봉해졌다.

▶ 燕王劉澤: 전한의 낭야왕을 지냈으며, 3대 52년간 지속되는 연경왕 계통의 초대 연왕이다. <한서>에서는 고제의 재종형제라고 한다. 한왕 3년(기원전 204년)에 낭중이 되었고, 고제 11년(기원전 196년) 진희의 난 진압에서 진희의 장수 王黃을 사로잡는 공을 세워 營陵侯에 봉해졌다. 문제 원년(기원전 179년), 여씨가 齊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고, 여씨 일족으로 주살된 연왕 여통을 대신해 유택을 연왕으로 옮겨 봉하였다.

유택은 재위 2년 만에 죽어 시호를 敬이라 했으므로 燕敬王이라 한 것이다.
▶ 遠屬: 종족의 먼 친척. 고조의 6촌형제라고도 한다. <資治通鑑綱目>
▶ 高帝三年: 기원전 204년. 고조 유방이 기원전 202년에 황제에 즉위했으므로 한왕 3년으로 기록함이 마땅하다.
▶ 郎中: 숙직하며 창을 잡고 지키는 직책.
▶ 陳豨: 漢나라의 개국공신으로 漢高祖 劉邦을 따라 燕王 藏荼를 평정하여 陽夏侯에 봉해졌다. 고조 7년(기원전 200)년에 代의 相國이 되어 趙·代의 군사를 통솔하였다. 고조 10년(기원전 197년) 韓信과 모반을 도모하여 王黃, 曼丘臣 등과 반란을 일으키고 代王으로 자칭하였다. 고제의 親征으로 진압되었다. 고조 12년(기원전 196년) 한나라의 진압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기열전 권93. 韓信盧綰列傳>

高后時,齊人田生游乏資,以畫干營陵侯澤。
高后 때 사람 田生은 遊說를 하다가 재물이 떨어지자 영릉후 유택에게 계책을 올리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澤大說之,用金二百斤為田生壽。
유택은 크게 기뻐하며 황금 200근을 전생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田生已得金,即歸齊。
전생은 황금을 얻자 곧 로 돌아갔다.

二年,澤使人謂田生曰:
「弗與矣。」
이듬해에 유택이 사람을 보내 전생에게 말하였다.
나와 함께하지 않겠는가?”

田生如長安,不見澤,而假大宅,令其子求事呂后所幸大謁者張子卿。
전생은 장안으로 가서 유택은 만나지 않은 채 큰 집을 빌리고 그 아들에게 여후를 모시며 총애를 받고 있는 大謁者 張子卿을 섬기도록 주선케 하였다.

居數月,田生子請張卿臨,親修具。
몇 달 뒤 전생의 아들은 장경을 초청하면서 전생이 술자리를 준비할 것이라고 하였다.

張卿許往。
장경이 가겠다고 응낙하였다.

田生盛帷帳共具,譬如列侯。
전생은 화려한 휘장을 걸고 각종 장식품을 내놓았는데 제후에 비견하였다.

張卿驚。
장경이 놀랐다.

▶ 田生: 田子春. 서한 초의 유세가. 이름은 알 수 없으며 字는 子春이다. 영릉후 유택에게 계책을 올려 여태후가 분봉시 낭야왕에 임명하도록 하였다.
▶ 畫: 劃과 같다. 계책. 계획.
▶ 干: 구하다. 요구하다.
▶ 與: 왕래하다. 상종하다.
▶ 大謁者 張子卿: 張卿. 張釋.
▶ 修具: 술자리를 마련하다.
▶ 共具: 술과 음식을 위한 각종 장식품을 내놓다. 共은 供과 같다.

酒酣,乃屏人說張卿曰:
술자리가 무르익자 사람들을 물리게 하고 장경에게 권하였다.

「臣觀諸侯王邸弟百餘,皆高祖一切功臣。
신이 보기에 제후와 왕들의 저택이 100여 채가 넘는데 모두 고조 때의 공신들입니다.

今呂氏雅故本推轂高帝就天下,功至大,又親戚太后之重。
지금까지 여씨들은 평소 고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으니 그 공은 지극히 크며게다가 모두 태후의 존귀한 친척들입니다.

太后春秋長,諸呂弱,太后欲立呂產為[呂]王,王代。
태후께서는 연세가 많고 여씨들은 약하여 태후께서 呂產을 왕으로 봉하여 代 땅을 다스리게 하려 합니다.

太后又重發之,恐大臣不聽。
태후께서는 또 말을 꺼내기가 어렵고 대신들이 반대할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今卿最幸,大臣所敬,何不風大臣以聞太后,太后必喜。
지금 경께서는 최고의 총애를 받고 대신들이 존경하는 터인데 어째서 대신들을 부추겨 태후께 건의하지 않으십니까태후께서 틀림없이 기뻐하실 터입니다.

諸呂已王,萬戶侯亦卿之有。
여씨들이 왕이 되고 나면 萬戶侯 또한 경의 차지가 될 터입니다.

太后心欲之,而卿為內臣,不急發,恐禍及身矣。」
태후께서는 내신 하고싶어 하고 경은 가장 가까운 신하인데 서둘러 움직이지 않으셨다간 화가 미칠까 걱정입니다.”

▶ 酒酣: 술자리가 무르익다.
▶ 屏人: 좌우의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다.
▶ 邸弟: 邸弟. 제후의 저택. 弟는 第와 같다.
▶ 雅故: 평소.
▶ 推轂: 일을 이루도록 돕다. 본래의 의미는 수레가 앞으로 나가도록 바퀴를 움직이다.
▶ 春秋長: 연세가 많다.
▶ 發: 발표하다. 제출하다.
▶ 風: 諷과 통용된다. 풍자하다. 암시하거나 권유하다.
▶ 萬户侯: 식읍이 만호인 제후.

張卿大然之,乃風大臣語太后。
장경은 아주 옮은 말이라 여기고 곧 대신들을 부추겨 태후에게 말하도록 하였다.

太后朝,因問大臣。
태후가 조회를 이용하여 대신들에게 물었다.

大臣請立呂產為呂王。
대신들은 여산을 呂王으로 삼자고 주청하였다.

太后賜張卿千斤金,張卿以其半與田生。
태후가 장경에게 황금 1천 근을 하사하자장경은 그 절반을 전생에게 주었다.

田生弗受,因說之曰:
「呂產王也,諸大臣未大服。
今營陵侯澤,諸劉,為大將軍,獨此尚觖望。
今卿言太后,列十餘縣王之,彼得王,喜去,諸呂王益固矣。」
전생은 받지 않고 이어서 권하였다.
여산이 왕이 되었으나대신들은 완전히 승복하지 않습니다.
지금 영릉후 유택은 유씨로서 대장군이 되었지만자신만 왕이 되지 못한 것에 오히려 실망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께서 태후께 말씀드려 10여 을 나누어 그를 왕으로 봉하면그는 왕이 됨을 기뻐하며 갈 터이고여씨 왕들의 지위가 더욱 공고해질 터입니다.”

▶ 觖望: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원망하다.

 

張卿入言,太后然之。
장자경은 입궐하여 태후에게 말했고 태후도 그게 좋겠다고 하였다.

乃以營陵侯劉澤為瑯邪王。
이에 영릉후 유택을 琅邪王에 봉하였다.

瑯邪王乃與田生之國。
낭야왕 유택은 곧 전생과 함께 자신의 봉국으로 갔다.

田生勸澤急行,毋留。
전생은 유택에게 급히 가자며 지체하지 말라고 권하였다.

出關,太后果使人追止之,已出,即還。
函谷關을 나서자 태후가 과연 사람을 보내 그들을 뒤쫓아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함곡관을 나간 뒤라 되돌아갔다.

及太后崩,瑯邪王澤乃曰:
「帝少,諸呂用事,劉氏孤弱。」
여태후가 죽자 낭야왕 유택이 말하였다.
황제는 어린데 여씨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유씨는 외롭고 약하다.”

乃引兵與齊王合謀西,欲誅諸呂。
이에 병사들을 이끌고 齊王 劉襄과 연합하여 모의하기를西進하여 여씨들을 죽이려 하였다.

至梁,聞漢遣灌將軍屯滎陽,澤還兵備西界,遂跳驅至長安。
梁 땅에 이르렀을 때한나라가 灌嬰 장군을 보내어 滎陽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유택은 군대를 돌려 서쪽 경계를 방비하고 자신은 빠른 말로 장안에 도착하였다.

代王亦從代至。
代王 역시 에서 장안으로 왔다.

諸將相與瑯邪王共立代王為天子。
將相과 낭야왕이 함께 代王을 천자로 옹립하였다.

天子乃徙澤為燕王,乃復以瑯邪予齊,復故地。
천자는 유택을 燕王으로 옮기고 琅琊郡을 다시 齊王에게 돌려주어 옛 땅을 회복시켰다.

▶ 用事: 정권을 잡다.
▶ 跳驅: 급히 가다.
▶ 代王: 漢文帝 劉恒. 高祖 劉邦의 넷째 아들로 처음에 代王에 책봉되어 中都에 도읍했다가 呂氏의 난이 평정된 뒤 太尉 周勃과 승상 陳平 등 중신의 옹립으로 제위에 올랐다. <史記 本紀 권10. 孝文本紀>

 

澤王燕二年,薨,謚為敬王。
유택은 연에서 왕이 된 지 2년 만에 죽었으며 시호는 敬王이라 하였다.

傳子嘉,為康王。
아들 에게 왕위를 전하여 康王이 되었다.

▶ 薨: 고대에는 제후의 죽음을 훙이라 하였다.
▶ 嘉: 燕康王 劉嘉. 전한의 연왕이다. 연경왕 유택의 아들로 아버지가 연경왕 2년(기원전 178년)에 죽자 연왕을 계승했고, 연강왕 26년(기원전 152년)에 죽어 아들 유정국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至孫定國,與父康王姬姦,生子男一人。
유택의 손자 劉定國에 이르러 아버지 康王의 姬妾과 간통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

奪弟妻為姬。
동생의 처를 빼앗아 첩으로 삼았다.

與子女三人姦。
또 딸 셋과도 간통하였다.

定國有所欲誅殺臣肥如令郢人,郢人等告定國,定國使謁者以他法劾捕格殺郢人以滅口。
정국이 신하인 肥如의 현령 郢人을 죽이려 하자 영인 등은 정국을 고발하였고정국이 알자를 시켜 다른 법으로 고발해 영인을 잡아 때려죽임으로써 입을 막았다.

▶ 定國: 燕王 劉定國. 연강왕 유가의 아들. 아버지 연강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아버지의 첩과 간통해 아들 하나를 낳았고, 아우의 아내를 빼앗아 첩으로 들였고, 또 딸 셋과 간통하였다. 또 자기 신하와 肥如令 郢人을 죽이려고 하니, 영인 등이 유정국의 행태를 고발했고, 유정국은 알자를 시켜 영인을 죽여 입을 막았다. 원삭 연간에 영인의 형제들이 다시 유정국의 행태를 무제에게 고발하였다. 공경들은 유정국이 짐승 같은 행위를 했으니 마땅히 주살해야 한다고 했고, 황제가 허락하니 연왕 정국 24년(기원전 128년) 유정국은 자결하였다. 燕은 폐지되어 군이 되었다.
▶ 劾: 탄핵하다. 고발하다.
▶ 格殺: 때려 죽이다.

至元朔元年,郢人昆弟復上書具言定國陰事,以此發覺。
元朔 원년(기원전 128)에 이르러 영인의 형제가 다시 글을 올려 유정국의 비밀스런 일을 모두 말함으로써 정국의 죄상이 발각되었다.

詔下公卿,皆議曰:
「定國禽獸行,亂人倫,逆天,當誅。」
황제는 조서를 공경에게 내리니 모두들 의론하였다.
정국은 짐승 같은 행동으로 인륜을 어지럽히고 하늘을 거슬렀으니 죽여 마땅합니다.”

上許之。
주상이 윤허하였다.

定國自殺,國除為郡。
정국은 자살하였으며나라를 폐지하여 군으로 삼았다.

▶ 元朔: 한 무제의 세 번째 연호. 元年은 기원전 128년이다.
▶ 陰事: 비밀스러운 일.

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荊王王也,由漢初定,天下未集,故劉賈雖屬疏,然以策為王,填江淮之閒。
荊王이 왕이 됨은 한나라가 막 건립되어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런 까닭에 유고가 비록 먼 친족이었지만 전공으로써 왕이 될 수 있었고장강과 회수 사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劉澤之王,權激呂氏,然劉澤卒南面稱孤者三世。
劉澤이 왕이 됨은 권모술수로 여씨를 激發하였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유택이 남면하여 칭왕함은 三世로 마쳤다.

事發相重,豈不為偉乎!
일을 벌임에 서로를 중시하였으니 어찌 비범하지 아니한가!”

▶ 集: 통일하다.
▶ 策: 책략. 여기서는 戰功을 말한다.
▶ 填: 鎭과 통용된다. 위압하다. 진정시키다.
▶ 權激: 권모술수로 격동시키다.
▶ 南面稱孤: 임금이 됨을 이르는 말, 孤는 왕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 發: 개시하다.
▶ 重: 연루되다. 돌보아 주다.
▶ 偉: 특별하다. 비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