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327-劉玄刮席(유현괄석) 본문
by 古岸子
劉玄刮席- 劉玄이 나약하여 자리를 더듬을 뿐이었다.
後漢劉玄字聖公 光武族兄.
後漢의 劉玄은 字가 聖公이니 光武帝 族兄이다.
王莽末 平林陳牧等聚衆 號平林兵.
王莽말년에 平林의 陳牧 등이 군사를 모아 平林兵이라 불렀다.
聖公往從之.
聖公이 가서 좇았다.
及破莽軍 號聖公爲更始將軍.
평림병이 왕망의 군사를 깨뜨리자 聖公을 更始將軍이라 했다.
衆雖多無所統一. 遂共立更始爲天子.
군사는 비록 많았지만 대부분 統一이 되지 않으므로, 다함께 경시를 天子로 삼았다.
更始卽帝位 南面朝群臣.
경시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南面하고 신하들의 조회를 받았다.
素懦弱 羞愧流汗 擧手不能言.
본래 나약하였으므로 부끄럼을 타서 따을 흘리니, 손을 들고 말을 하지 못하였다.
初入都宛城. 時漢兵誅王莽 傳首詣宛 懸於市 遂北都洛陽 後遷長安.
처음에 들어가 宛城에 도읍했는데 漢나라 군사가 왕망을 주살하고 그 머리를 전하여 완성으로 보내어 저자에 매다니, 이에 북쪽으로 洛陽에 도읍했다가 뒤에 長安으로 옮겼다.
初莽敗 惟未央宮被焚 餘宮館無所毁 官府市里 不改於舊.
처음에 왕망이 패할 때 오직 未央宮만이 불타고 나머지 宮館은 헐린 것이 없었고 官府와 市里도 옛것을 고치지 않았었다.
更始旣至 居長樂宮 升前殿. 郞吏以次列庭中.
更始帝가 오고 나서 長樂宮에 거처하면서 앞의 대궐에 올라가자 郞吏들이 차례로 뜰 안에 벌여 섰다.
更始羞怍 俛首刮席 不敢視.
경시제는 수줍어하며 머리를 숙이고 자리를 더듬을 뿐 감히 보지 못했다.
後赤眉賊入關見殺.
뒤에 赤眉賊이 入關(함곡관으로 들어감)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註解]」
▶後漢- <後漢書> <列傳> 1의 기사임.
▶陳牧- 平林兵의 우두머리.
▶平林兵- 陳牧이 그 우두머리였다.
▶未央宮- 漢나라 때의 유명한 宮殿.
▶赤眉- 後漢 초에 山東에서 반역을 했던 匪徒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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