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3五言古風長篇-19送諸葛覺往隨州讀書(송제갈각왕수주독서)

구글서생 2024. 2. 7. 02:05

古文眞寶(고문진보)

제갈각이 수주로 공부하러 감을 전송하며(送諸葛覺往隨州讀書)-한유(韓愈)

▶ 諸葛覺 澹師의 이름으로 이었으나 불교를 버리고 유교로 돌아온 사람韓愈의 逸詩에 <澹師鼾睡> 2수가 있는데 바로 이 사람을 두고 지은 시라 한다隨州 지금의 湖北省 德安府에 있던 고을 이름

이때 鄴縣侯 李泌의 아들 李繁이 隨州刺史로 있었다

제갈각은 이번을 좇아 공부하려고 수주로 떠났는데그를 보내며 한유가 지은 시가 이것이다

이 시는 韓昌黎先生集》 7에 실려 있다.

 


鄴侯家多書架揷三萬軸.
업후의 집에는 책이 많아서가에는 3만 개의 두루마리가 꽂혀 있네.
▶ 鄴侯(업후) : 宰相을 지낸 李泌을 가리킨다은 자가 長源이며 貞元(786~804) 중에 이 되어 업현후에 봉함을 받았다.
▶ () : 書架.
▶ () : 꽂다.
▶ () : 두루마리'. 이때의 책은 비단에 글을 써서 (: 굴대)에 만 것이었다. 3만 은 곧 3만 책에 해당한다.

一一縣牙籤新若手未觸.
하나하나 상아 딱지가 달려 있고새롭기 손도 대지 않은 듯하네.
▶ 一一 하나하나에 모두.
▶ () : 매달다.

為人强記覽過眼不再讀.
그분은 많이 읽고 외우고 하여한번 본 책은 다시 읽지 않는다네.
▶ 牙籤(아첨) : 상아로 만든 패 쪽지거기엔 과 作名이 적혀 있다.
▶ 强記覽 强記博覽많이 외우고 널리 책을 읽는 것.

偉哉羣聖書磊落載其腹.
위대하게도 성인들의 글이 수북이 그의 뱃속에 쌓여 있다네.
▶ 磊落(뇌락) : 돌이 첩첩이 쌓여 있는 모양여기에서는 암송하는 책의 많음을 형용한 것이다.
▶ 載其腹 그의 뱃속에 들어 있다곧 암기하고 있다는 뜻.

行年逾五十出守數已六.
나이는 50이 넘었는데고을 태수를 여섯 번이니 이미 지냈네.
▶ 行年 지나온 해나이.
▶ 出守 지방으로 나가 고을 태수가 됨.
▶ 數已六 횟수가 이미 여섯 번이다곧 여섯 번이나 지방 태수 노릇을 하였다.

京邑有舊廬不容久食宿.
장안에도 옛집이 있으나오래 숙식하게 두지 않고,
▶ 京邑 長安을 가리킨다.
▶ 不容久食宿 오랫동안 장안에 있는 집에서 먹고 자고 살도록 용허하지 않았다곧바로 지방으로 쫓아내 버렸던 일을 뜻한다.

臺閣多官員無地寄一足.
대각엔 관원이 많아한 발을 들여놓을 여지도 없다네.
▶ 臺閣 조정 정치의 중심이 되는 尙書省을 가리킨다여기에서는 장안의 중앙 관서를 가리킨다고 생각함이 좋다.

我雖官在朝氣勢日局縮.
나는 비록 조정에서 벼슬하고 있다 하나기세가 나날이 오므라들고 있어,
▶ 局縮(국축) : 오므라드는 것위축

屢為丞相言雖懇不見錄.
여러번 승상에게 말씀드렸지만간절한 말 들어주지도 않더군.
▶ 丞相言 승상에게 말하다.
▶ 雖懇 : ‘비록 간절히’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 不見錄(불현록) : 채록되지 않았다들어주지 않았다() : 被動을 나타낸다.

送行過滻水東望不轉目.
그를 전송하러 산수를 지나가서그가 가는 동쪽을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바라보았네.
▶ 滻水(산수) : 장안의 藍田谷 북쪽으로부터 나와 灞陵에 이르러 灞水와 합쳐지는 강물 이름.
▶ 東望 동쪽으로 감을 바라보다.
▶ 不轉目 눈을 깜박거리거나 굴리지도 않고 응시하다.

今子從之遊學問得所欲.
지금 그대가 그에게 가서 교유하면학문을 바라는 대로 닦을 수 있을 거네.
▶ 從之遊 그를 좇아 논다. ''는 李繁을 가리킨다.

入海觀龍魚矯翮逐黃鵠.
바다로 들어가 물고기와 용을 보고나래 들어 황혹을 쫓듯 마음껏 공부하게.
▶ 入海觀龍魚 바닷속으로 들어가 고기나 용을 구경하듯 심오한 학문을 많이 배우라는 뜻.
▶ () : ‘나래를 들어높이 날다() : 죽지나래() : 고니黃鵠은 고니큰 기러기같이 생긴 候鳥의 하나이 구절은 마음껏 공부를 많이 하라는 뜻임.

勉為新詩章月寄三四幅.
힘써 새로운 시와 글 지어다달이 서너 폭씩 보내주게나.
▶ 三四幅 서너 폭옛날에는 글을 卷物이나 掛物에 썼으므로 이라 한 것이다.

 

 

 

 해설


이 시는 친구인 諸葛覺이 隨州로 글 배우러 떠남을 전송하며 지은 것이다. 수주의 刺史로 있는 李繁의 아버지 鄴侯는 많은 藏書와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있던 분이다. 그의 아들인 이번도 자연히 학문이 깊을 것이지만 나이 50이 넘도록 줄곧 지방 태수 노릇만 하는 사람이다. 자기는 丞相에게 이번을 여러 번 추천했으나 등용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수주로 떠나갈 때 이별하던 일이 지금도 눈에 떠오른다. 지금 그대는 이번에게로 글공부를 하러 가니 가거든 그 많은 장서와 淵源있는 학식 밑에서 마음껏 많은 공부를 하기 바란다. 그리고 멀리 떠나 있다 하더라도 나를 잊지 말고 한 달에 서너 편씩 좋은 시를 써 보내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그 시를 통하여 그대의 소식에 접하고 나날이 진보하는 학문을 알고 自勵하겠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시를 통하여 학문에 대한 韓愈(768~824)의 깊은 관심과, 깊은 학문을 지니고도 큰 벼슬 못하는 이에 대한 동정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