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佳人)-두보(杜甫)
▶ 佳人 : 美人. 좋은 사람. 《杜少陵集》 권7에 실려 있다.
絕代有佳人, 幽居在空谷.
절세의 미인이, 조용한 골짜기에 조용히 살고 있네.
▶絶代 : 絶世와 같은 말. 이 세상에 둘도 없음.
漢나라 李延年의 <佳人歌>에도 일렀다.
'북방에 가인이 있으니 절세에 獨立하였다.'
▶ 空谷 : 공허하고 사람 없는 산골짜기.
自云良家子, 零落依草木.
자기는 양갓집 딸이었는데, 지금은 몰락하여 초목 속에 몸을 맡기고 있다네.
▶ 零落(영락) : 零도 落의 뜻을 지녔으며 ‘몰락’.
▶ 依草木 : 몸을 초목에 의지한다. 곧 산림 속에 묻혀 산다는 뜻.
關中昔喪敗, 兄弟遭殺戮.
관중 땅이 옛날 전쟁통에 짓밟힐 때, 형제들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네.
▶ 關中 : 陝西省의 函谷關 以西 지방을 가리킴. 長安은 關中에 있으며 安祿山이 난을 일으켜 장안을 함락하였다.
▶ 喪敗 : 喪亂으로 된 판본도 있으며 모두 전란에 짓밟혀 형편없이 됨.
官高何足論? 不得收骨肉.
벼슬 높은 것 들추어 무엇하리? 골육도 거두지 못하는 것을.
▶ 骨肉 : 뼈와 살을 물려받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
世情惡衰歇, 萬事隨轉燭.
세상 인정은 집안 망함을 싫어하나, 만사가 촛불 꺼지듯 변해 버렸다네.
▶ 惡衰歇(오쇠헐) : 집안이 쇠하고 망함을 미워한다. 歇은 멸망을 뜻한다.
▶ 萬事隨轉燭(만사수전초) : 만사가 촛불이 꺼지듯이 되어간다. 곧 세상의 모든 일이 옛날 집안이 흥성했던 때와는 정반대로 갑자기 촛불이 꺼지듯이 모두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
夫婿輕薄兒, 新人美如玉.
남편은 경박한 사람이어서, 아름답기 구슬 같은 새사람을 얻었는데,
▶ 夫婿(부서) : 자기의 남편.
▶ 輕薄兒 : 경솔하고 박정한 사람.
▶ 新人 : 남편이 새로 맞아들인 사람. 새로 얻은 아내.
合昏尚知時, 鴛鴦不獨宿.
합혼초는 풀이지만 때를 알고, 원앙새는 새이지만 흘로 자지 않는다는데,
但見新人笑, 那聞舊人哭!
새사람의 웃음만 보고, 옛사람의 통곡은 들은 체도 않는가!
▶ 合昏 : 풀 이름. 밤이 되면 잎새들이 합쳐지는 풀. 이처럼 풀도 밤이 되면 합쳐지는데 자기 남편은 전혀 옛사랑을 모르고 있다는 뜻.
▶ 鴛鴦 : 언제나 암수가 함께 노닌다는 새. 예부터 부부의 애정을 표시할 때 비유로 많이 써왔다. 자기 남편은 이 새만도 못하다는 뜻을 지녔다.
在山泉水淸, 出山泉水濁.
산에서는 샘물이 맑지만, 산을 나서면 샘물이 흐려지는 법.
▶ 在山泉水淸 出山泉水濁 : 산에서는 샘물이 맑다가도 산을 벗어나면 그 물이 흐려지듯이, 자기가 옛날 집에서 잘 살 때는 그리운 것 없이 풍부하였으나 지금은 형편없이 궁함을 뜻한다. 古人들은 흔히 泉水의 청탁을 그의 節操나 정에 비하고 절조를 지키려고 자기가 산에 와 살고 있음을 뜻한다든가, 남편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고 풀었으나 잘못인 듯하다.
侍婢賣珠廻, 牽蘿補茅屋.
시녀가 구슬을 팔고 돌아와서는, 댕댕이덩굴 거두며 초가지붕을 보수하네.
▶ 侍婢 : 하녀.
▶ 賈珠廻 : 살림이 궁하여 옛날 지녔던 구슬을 팔고 돌아왔다는 말.
▶ 牽蘿(견라) : 뻗어 올라간 댕댕이덩굴을 끌어 올려 거둠.
▶ 補茅屋 : 초가지붕을 보수하다.
摘花不揷髮, 采柏動盈掬.
꽃을 따되 머리에는 꽂지 않고, 측백잎을 뜯다 보니 어느덧 웅큼이 차네.
▶ 摘花 : 꽃을 따다.
▶ 不揷髮(불삽발) : 머리에 꽂지 않는다. 《詩經》 衛風 伯兮 시에 ‘어찌 머리 감고 기름 바를 게 없으랴만, 누구를 위하여 화장할까?’라고 한 뜻을 표현하였다. 꽃을 꺾지만 예쁘게 보일 님이 없어 꽂지 않는 것이다.
▶ 采柏 : 잣나무 잎새를 따다. 잣나무는 1년 내내 푸른 소나무처럼 잎이 시들지 않아, 松柏이라 하여 변함없는 節操를 나타낸다. 남편의 절조를 비는 뜻에서 잣나무 잎새를 따는 것이다.
▶ 動(동): 걸핏하면. 어느새. 바로,
▶ 盈掬(영국) : 한줌이 찬다는 뜻.
天寒翠袖薄, 日暮荷脩竹.
날씨는 찬데 푸른 옷소매 얇고, 해가 지자 긴 대나무를 의지하네.
▶ 翠袖(취수) : 비취빛 옷소매.
▶ 倚脩竹(의수죽) : 긴 대나무에 몸을 기댄다. 여기에서도 절조있는 남편 품에 기대고 싶은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脩는 長의 뜻.
해설
옛날에는 佳人을 賢者에 비긴 것으로 보고, 關中의 난 이후 어진 老成한 사람들은 몰락하고 新進의 덕 없는 젊은이만을 등용하고 있음을 풍자한 시라고 흔히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乾元 2년(759) 杜甫가 秦州에서 눈으로 친히 본 한 여인을 두고 읊은 것이라 봄이 좋을 터이다.
여인의 가정의 몰락을 통하여 전쟁이 백성들에게 안겨준 비극을 노래하고, 여인과 남편의 관계를 통하여 전쟁 속에 무너진 사회도덕과 얄팍해진 인정을 노래하였다. 아무리 사람이 몰락했고 또 사회가 어지럽다 하더라도 사람이면 모두 올바른 절조를 지니기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시사철 푸른 잣나무 잎새를 따고 또 지는 해를 바라보며 꿋꿋한 대나무에 몸을 의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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