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臨江仙(임강선)/楊愼(양신)

구글서생 2023. 3. 4. 01:07

滾滾長江東逝水 浪花淘盡英雄
是非成敗轉頭空
靑山依舊在 幾度夕陽紅
白髮漁樵江渚上 慣看秋月春風
一臺濁酒喜上逢 古今多少事 都付笑談中

(​이문열 역)
굽이쳐 동으로 흐르는 긴 강물
그 물결에 일리듯 옛 영웅 모두 사라졌네
옳고 그름 이기고 짐 모두 헛되어라
​푸른 산은 예와 다름없건만 저녁해 붉기 몇 번이던가
강가의 머리 센 고기잡이와 나무꾼 늙은이 가을달 봄바람이야 새삼스러우랴
한병 흐린 술로 기쁘게 서로 만나
예와 이제 크고 작은 일 웃으며 나누는 얘기에 모두 붙여보네
(박종화 역)
​굼실굼실 흘러서 동으로 가는 긴 강물.
낭화 물거품이 영웅들의 시비 성패 다 씻어 가 버렸네.
머리를 들어 돌이켜보니 어허 모두 다 공이로다.
푸른 산은 예와 같이 의연히 있네. 몇 번이나 석양볕이 붉었다가 꺼졌더냐.
강가의 백발 성성한 어부와 초부는 가을달 봄바람을 언제나 바라보며,
한 병 막걸리로 기쁠싸 서로 만나, 고금의 허다한 일 소담 속에 부쳐 보네.

위의 詞 臨江仙은 明나라의 楊愼이 썼고, 명대 이후의 삼국지에서 序詩로 인용되었다.

장강의 황혼

 

양신(楊愼.1488~1559)

중국 명대(明代)의 문학가ㆍ학자.
자는 용수(用修), 호는 승암(升庵). 사천(四川) 신도(新都) 사람.
1511년(正德 6) 진사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한림수찬(翰林修撰)을 제수받았다.
​가정제(嘉靖帝: 世宗) 때 경연강관(經筵講官)이라는 직책을 맡았으나, 1524년 2번에 걸쳐 <의대례(議大禮)>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가정제의 심기를 거슬려 황제 앞에서 곤장을 맞고 거의 죽을 뻔했다. 이후 운남(雲南) 영창(永昌)으로 유배되었다.
​그의 시문은 맑고 아름답다.
초기 시는 육조시대의 화려한 풍격을 지녔으나, 만년에는 소박한 풍격으로 바뀌었다.
학식이 해박하여
사학·금석학·민간문학·사곡(詞曲) 등에 조예가 깊었다. 저작은 100여 종에 달한다.
​【저서】<승암집(升庵集)> <도정악부(陶情樂府)> <단연총록(丹鉛總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