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

論語集註 述而 第七(논어집주 술이 제칠) 第十四章

구글서생 2023. 3. 7.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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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十四章

冉有曰:
「夫子為衛君乎?」
冉有가 말하였다.
“夫子께서 衛나라 君主를 도우실까?”

子貢曰:
「諾。
吾將問之。」
子貢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내 장차 여쭈어보리다.”

為,猶助也。
는 돕다와 같다.

衛君,出公輒也。
衛君이란 出公 輒이다.

靈公逐其世子蒯聵。
靈公世子蒯聵를 내쫓았다.

公薨,而國人立蒯聵之子輒。
靈公이 죽자, 위나라 사람들이 蒯聵의 아들인 을 세웠다.
:제후의 죽음 :천자의 죽음
:壽命대로 죽음 :非命에 죽음
: 죽은 것 : 장례를 지낸 것
: 사대부가 제대로 죽음 : 사대부가 사대부답지 않게 죽음 (춘추필법)

於是晉納蒯聵而輒拒之。
이때 나라가 蒯聵를 본국에 들여보내니, 은 그를 막았다.

時孔子居衛,衛人以蒯聵得罪於父,而輒嫡孫當立,故冉有疑而問之。
이때 孔子가 衛나라에 계셨으니, 衛나라 사람들은 蒯聵는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輒은 嫡孫이므로 즉위함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冉有가 의심하여 물은 것이다.
衛人以= 衛人以爲
嫡孫:嫡長之孫, 承重孫
, : 처에서 나면 , 첩에서 나면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처에서 난 큰아들만 이고 나머지는 이다. 첩의 아들은 庶孽이다. 임금의 아들은 서자라 하지 않고 衆子라 한다

諾,應辭也。
은 응대하는 말이다.

入,曰:
「伯夷、叔齊何人也?」
들어가서 물었다.
“伯夷와 叔齊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曰:
「古之賢人也。」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賢人이시다.”

曰:
「怨乎?」
물었다.
“(임금의 지위를 버린 것을) 後悔하였습니까?”

曰:
「求仁而得仁,又何怨。」
대답하셨다.
“仁을 추구하다가 仁을 얻었으니, 다시 어찌 後悔하였겠는가?”

出,曰:
「夫子不為也。」
子貢이 나와서 말하였다.
“夫子께서는 그를 돕지 않으실 것이다.”

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
伯夷叔齊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其父將死,遺命立叔齊。
아버지[孤竹君]가 죽을 적에 叔齊를 세우라는 遺言하였다.

父卒,叔齊遜伯夷。
아버지가 죽자, 叔齊伯夷에게 양보하였다.
으로 써야 하나 비명에 죽지 않았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을 씀.

伯夷曰:「父命也」,遂逃去。
伯夷아버지의 遺命이다라고 말하고, 이윽고 도망하여 떠났다.(나라로)
逃去: 逃而去之

叔齊亦不立而逃之,國人立其中子。
叔齊도 즉위하지 않고 도망가니, 나라 사람들은 둘째 아들을 세웠다.

其後武王伐紂,夷、齊扣馬而諫。
그 뒤에 武王紂王征伐하자, 伯夷·叔齊는 말고삐를 잡고 하였다.

武王滅商,夷、齊恥食周粟,去隱於首陽山,遂餓而死。
武王이 商나라를 멸망시키자, 伯夷·叔齊는 周나라의 祿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나라를 떠나 首陽山에 숨어 살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 도정하지 않은 곡식. 祿은 도정하지 않은 것을 주므로 이라 한다.

怨,猶悔也。
은 후회와 같다.

君子居是邦,不非其大夫,況其君乎?
君子는 그 나라에 머무를 때에는 그 나라 大夫邑宰도 비난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君主에 있어서이겠는가?

故子貢不斥衛君,而以夷、齊為問。
그러므로 子貢나라 君主를 곧바로 指斥하지 않고 伯夷·叔齊를 들어 질문하였다.
指斥: 좋은 일을 가리킬 때 , 나쁜일을 가리킬 때

夫子告之如此,則其不為衛君可知矣。
夫子의 대답이 이와 같았으니(형제도 遜位하는데 父子가 왕위를 다툼은 더욱 옳지 않다고 말함), 공자가 衛君을 돕지 않으실 것을 알 수 있다.

蓋伯夷以父命為尊,叔齊以天倫為重。
伯夷는 아버지의 遺命을 존중하였고 叔齊天倫을 중시하였다.
君臣: 人倫 兄弟:天倫

其遜國也,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而即乎人心之安。
나라를 사양한 것은 다 天理의 바름에 합하고(숙제) 人心의 편안함을 이루는(백이) 방도를 추구한 것이다.

既而各得其志焉,則視棄其國猶敝蹝爾,何怨之有?
각각 자기의 뜻을 얻었으니, 그 나라를 버리는 것 보기를 헌신짝처럼 여긴 것이다. 무슨 後悔가 있었겠는가?

若衛輒之據國拒父而惟恐失之,其不可同年而語明矣。
衛輒이 나라를 점거하고 아버지를 막아서 행여 나라를 잃을까 근심한 것과 같은 것은, 같은 자리에 놓고 말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程子曰:
「伯夷、叔齊遜國而逃,諫伐而餓,終無怨悔,夫子以為賢,故知其不與輒也。」
程子가 말씀하였다.
伯夷·叔齊는 나라를 사양하다가 도망하였고, 征伐하다가 굶주려 죽었으나 끝내 後悔가 없었는데, 夫子께서 그들을 어질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衛輒을 돕지 않으실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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