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의 허사

한문의 허사(虛詞) 與(歟)

耽古樓主 2022. 12. 25. 05:08
한문의 허사(虛詞) ()
는 세 가지 별개의 글자로 쓰인다.
그럴까 여語氣詞로 쓰이며, 2(yú)으로 읽는다.
더불 여는 주로 전치사(介詞)로 쓰이며 3(yǔ)으로 읽는다.
참여할 여참여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4(yù)으로 읽는다.
허사로서가 아닌 동사로 쓰이는 상기 세 번째 용법은 여기에서는 논하지 않는다.
어기사적 용법으로 쓰이는 그럴까여그런가여자의 假借字로 쓰인 글자인데, 이 글자 역시 2(yú)으로 읽으며 문미에서 의문, 반문, 감탄의 어기를 나타낸다. 대체로 호자와 용법이 같다.

甲文金文, 尙書周易卦爻辭에서는 語氣詞로 쓰인 일이 없다.
左傳國語에서도, “其與幾何[그 얼마인가?]” “幾與不然乎[반드시 그렇지 않겠는가?]” “與有幾와 같은 구절을 제외하면, 자가 단어 말미에 어기사로 쓰인 일이 없다.

詩經중에서도, 周頌 潜商頌 那에서 자가 감탄적 어기사로 쓰인 것을 제외하고는, 기타 용법으로 쓰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더 연구를 해보아야 하겠지만, 여기에서 더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

 

(1) 문장 가운데에서 숨고름(休止)을 나타낸다. 해석을 안 해도 되지만, 한다면 ”,“”,“로 번역할 수 있다.

 

于予與何誅? 論語 公冶長

재여에 대해서는 책망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我之大賢與, 于人何所不容? 我之不賢與,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 論語 子張

만약 내가 크게 어질면, 어찌 용납되지 못할 것이며, 내가 어질지 못하면, 남들이 장차 나를 거절할 것이니, 어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2)  는 여부를 묻는 의문어기사로 쓰인다. 현대 중국어의  또는 에 해당한다.

 

¶ “許子冠乎?” : “.” “自織之與?” : “.”孟子 藤文公上

허자는 관을 쓰고 있었는가?” 답했다: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짠 관이었는가?”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 “王聞燕太子丹入質秦與?” : “聞之史記 甘茂列傳

왕은 연태자 이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것을 들었습니까?” 답했다: “들었습니다.”

 

(3)  는 또한 특별지정 의문구에서 사용된다. 즉 의문사적 의문구가 따로 있으며, 의문의 중점 사항은 이 의문사에 있다.

丘何爲是棲棲者與? 論語 憲問

는 어찌하여 이렇게 서성대는 것인가?

 

誰與哭者? 禮記 檀弓上

곡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誰與哭者哭者誰與의 도치문이다.

詩經 唐風 葛生에 나오는

誰與獨處

誰與獨息

誰與獨旦 등의 구절은 모두 이와 같은 구법(句法)이라고 보아

이 땅 위에 홀로 사는 자 누구인가?”

외로이 쉬는 자 누구인가?”

외로이 밤을 지새는 자 누구인가?” 라고 해석해야 한다.

 

(4)  는 또한 선택 의문문을 만든다.

爲肥甘不足於口與? 輕煖不足於體與? 抑爲采色不足視於目與?

먹을 고기와 맛있는 음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따뜻하고 가벼운 입을 옷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눈으로 볼 채색이 보시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亭長告余曰: “此古戰場也, 嘗覆三軍, 往往鬼哭, 天陰則聞.” 傷心哉! 秦歟? 漢歟? 將近代歟? 李華: 弔古戰場文

그곳의 정장이 내게 말하기를: “이곳은 옛 전쟁터입니다. 일찍이 삼군의 군사가 전멸당하여, 곳곳에서 혼귀가 곡하고, 날이 흐릴 때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슬프도다. 진나라 시대였을까? 한나라 시대였을까? 아니면 근대였을까?

 

(5)    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묻거나,  반문하는데 쓰인다.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 “爲仲由.” :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 論語 微子

걸닉에게 물으니, 걸닉이 다시 묻기를: “그대는 뉘시오?”하니, 말하기를: “저는 중유라고 합니다.” 하니, 말하기를: “그렇다면 노나라의 그 공구의 사람들이시오?” 하니,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했다.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屈原: 漁父辭

당신은 초나라의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소?

 

이상 두 가지 예문은 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묻는 경우의 예문이고, 아래 것은 반문의 경우의 예문이다. 반문의 경우, 때로는 德非[이 아니겠는가?] 無乃[이 아니겠는가?] [어찌하겠는가?]와 함께 쓰인다.

 

今言王若易然, 則文王不足法與? 孟子 公孫丑上

이제 말씀하기시기를 왕자 되는 것이 쉬운 듯이 하시니, 그렇다면 문왕도 본받을 만하지 못한 것입니까?

 

夫人生百體堅强, 手足便利, 耳目聰明, 而心聖智, 豈非士之愿與? 史記 蔡澤列傳

사람이 살아가면서 건강한 신체와 자유로운 수족, 밝은 눈에, 잘 들리는 귀, 성스러운 지혜를 갖게 되는 일을 어찌 선비 된 자들만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得非諸侯之盛强, 末大不掉之咎歟? 柳宗元 封建論

제후들이 지나치게 강성하여, 마치 꼬리가 너무 비대하여 그것을 흔들지 못하는 허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雖雲優愼, 無乃葸與?班固 典引

비록 말로는 유유자적하고 있다고 하지만, 겁먹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襄公曰: “先君薨, 尸在堂, 見秦師利而因擊之, 無乃非爲人子之道歟? 呂氏春秋 悔過篇

양공이 말했다: “부친께서 방금 사거하시어, 관곽이 아직 당상에 놓여 있는데, 진나라 군사에 대한 형세가 나에게 유리하다고 해서 이를 공격하는 것이, 어찌 자식된 도리에 합당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勢之於人也, 可不愼歟? 史記 楚世家

사람에 대한 위세를 어떻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6)  는 또한 추측, 짐작의 뜻을 나타낸다.

子曰: “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 論語 子罕

일러주면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안회일 터이다!

 

政姉榮聞人有刺殺韓相者, 賊不得, 國不知其名姓, 暴其尸而懸之千金. 乃于邑曰: “其是吾弟與!” 史記 刺客傳

섭정의 누이 섭영은, 한나라 재상을 죽인 자가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것과, 그 시체를 시장에 드러내 놓고 천금의 상을 걸어 그 사람의 신원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울면서 말했다. “그는 내 동생일거야!”

 

(7)  는 또한 감탄의 뜻을 나타낸다.

猗與漆沮! 詩經 周頌 潜

, 칠수와 저수!

 

子在陳 曰: “歸與! 歸與!《論語 公冶長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

 

猗歟偉歟何行而可以彰先帝之洪業休德? 《漢武帝: 賢良詔

아름답도다! 위대하도다! 어떻게 선대 황제들의 위대한 공로와 미덕을 발양할 수 있을까?

 

(8) 는 선진 시대와 서한 시대에 간혹 조사로 쓰였다. 의미가 없고 번역 불능이다.

若壅其口, 其與能幾何? 國語 周語上

가령 그들의 입을 막는다 치더라도,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諸臣之委室而徒退者將與幾人? 國語 晉語

신하들 중에 그들 집안의 재산을 포기한 채 빈손으로 물러나는 사람이 장차 몇이나 될까?

 

兵不得休八年, 萬民與苦甚. 漢書 高帝紀

군사들은 8년 동안 쉬지 못하였고, 만백성의 고통이 자심하다.

 

咸非其本義, 與不得已, 魯最爲近之. 漢書 藝文志

모두 다 그 본래의 뜻에 부합하지 않지만, 부득이하게 노나라의 해석이 가장 근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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