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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30. 막걸리

구글서생 2023. 6. 15. 05:11

한국인의 살리고 싶은 버릇

 

막걸리는 숨가쁘게 돌변하는 기후대 아래 어느 다른 나라 사람보다 부지런하게 또 꾸준히 일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에게 있어 새참으로써 십상인 식품이다.

 

강화섬에서 몰락한 왕손의 후예로 가난하게 살았던 철종은 왕궁의 그 무수한 미주(美酒)가 입에 당기지 않았다. 어느 날 반주를 들면서 강화에서 마시던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했으나 왕궁에는 막걸리가 없었다. 中殿은 친정어머니에게 막걸리를 구해 들여보내 달라고 했다. 부부인(府夫人)도 당황하고 있는데 때마침 찬간에서 일하던 계집종이 들어와 자기 남편이 즐겨 마시는 이문안 막걸리가 장안에서 제일 좋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이 이문안 막걸리를 구해 바치자 철종은 그렇게 좋아라 하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 후부터 이 이문안 막걸리집에 進封 막걸리를 만들게 하여 무감(武監)하나로 하여금 날마다 병을 들고 와서 나르게 했다. 철종은 이 술맛에 반해 이 막걸리 장수에게 1년에 1천 석씩 받는 선혜청 고지기 벼슬을 내렸다 한다.

 

그 풍토와 기후와 문화가 조화되어 그 나라 그 민족의 대중들에게 가장 알맞는 술이 있게 마련이다. 그 한국인의 주체적 술이 막걸리인 것이며 철종이 산해진미에 미주가 아무리 많아도 막걸리를 찾아 마신 것도 그 주체적 메커니즘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조 중엽에 막걸리를 별나게 좋아하는 판서가 있었다. 아들들이

"그보다 좋은 약주와 소주가 있는데 하필이면 막걸리만 찾아 마십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아버지는 소의 쓸개 세 개를 사오라 시키고 소주 · 약주 · 막걸리를 각기 다른 쓸개에 넣어 두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들을 불러 그 쓸개를 펴 보이는데 소주를 담았던 쓸개 주머니는 거의 구멍이 나 있고 약주를 담은 쓸개 주머니는 거의 상해져 있는데 막걸리를 담은 쓸개 주머니는 오히려 두터워져 있었다 한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인의 체질이나 건강에 가장 알맞는 술이 막걸리라는 상식에서, 수백 년 영향력을 부려왔던 속전(俗傳)인것이다.

 

또 막걸리는 숨가쁘게 돌변하는 기후대(氣候帶) 아래 어느 다른 나라 사람보다 부지런하게 또 꾸준히 일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에게 있어 새참으로써 십상인 식품이다. 막걸리 한 사발은 허기도 면하고 또 기운도 돋워주고 적당히 신도 나게 해주는 일의 촉성제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시에 '한 잔 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수이 사라질까 두렵구나.'하고 읊은 것이 있는데, 이 신라주가 막걸리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은 없다. 막걸리가 문헌에 등장한 것은 고려 때부터다.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나그네 창자를 박주(薄酒)로 푼다'고 한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서민이나 빈민이 마셨던 민중적인 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고려 때 시인 윤소종(尹紹宗)의 막걸리 지게미 시(詩)는 눈물겹다.

 

슬프도다. 조[粟]米가 익으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아이들은 병들어 나무 뿌리 씹고 있다.

천장만 보고 누워 한숨만 쉬고 있는데

아낙은 머리 잘라 술지게미와 바꿔 온다.

 

여기 술지게미는 막걸리를 거르고 난 찌꺼기인 것이다. 막걸리는 이처럼 서민의 애환과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는 우리들의 술이다.

 

따라서 막걸리에는 이명(異名)도 많다. 걸쭉하게 탁하다 하여 탁주(濁酒), 빛깔이 뽀얗다 하여 백주(白酒), 술기운이 박하다 하여 박주(薄酒), 그리고 비운의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어머니가 유배지에 가서 술지게미를 재탕해 팔아 연명했기로 모주(母酒)라고도 한다. 또 집집마다 집에서 담가먹는다 하여 家酒, 농사짓는데 새참으로 불가결하다 하여 農酒라고도 하며, 또 온 나라 사람들이 누구나 다 마시는 대표적인 술이라 하여 국주(國酒)라고도 했다.

 

막걸리 빚는 수법도 다양했기로 가문(家門)마다 각기 다른 막걸리맛을 전승시켜 그 가문의 자랑으로 삼기도 했다. 농주로 십상인 이 막걸리가 산업구조의 변화로 사양에 접어들고 있으나 국제화 사회에서 한국이 기여할 음식문화 가운데 이 막걸리가 각광받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