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태평한화골계전40-風聲鶴唳 본문
太平閑話滑稽傳
風聲鶴唳
楚腰輕梨園佳妓 崔有江譯官之有名者也 其名字漢音略相似.
楚腰輕은 梨園의 아름다운 기생이고, 崔有江은 역관(譯官)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 이름이 중국 발음으로는 대충 비슷했다.
▶楚腰輕: 조선 시대 유명한 기생의 이름이다. 이 기생에 대한 이야기가 ≪용재총화≫ (제2권)에 실려 있다.
▶梨園: 중국의 당(唐)나라 玄宗이 스스로 배우의 技藝를 가르치던 곳을 말한다. 배우의 사회 · 극단 · 연예계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교방(敎坊)의 뜻이다.
▶崔有江: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12년 왕명으로 중국 말을 배우게 되었고, 단종 1년 부사직(副司直)을 지냈으며, 세조 3년 행사직(行司直)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세조 14년에 司譯院正, 성종 3년에는 漢學 교수를 지냈다.
▶譯官: 사역원 관리의 총칭이다. 외국과의 교류에서 통역을 맡았던 관리다. 대개는 중인 출신들이 맡았다.
有一鄭斯文粗識漢語 嘗赴京 獨坐一室 有華士語鄭曰
崔有江好在否
정씨 성의 선비가 중국 말을 약간 알았는데, 일찍이 연경(燕京)에 사신(使臣)으로 가서 혼자 방에 앉아 있었더니, 중국 선비가 鄭에게 말하였다.
"최유강은 잘 있소?"
▶연경: 중국 명(明)나라의 수도였던 북경을 가리키는 말이다.
鄭誤認爲楚腰輕 應聲曰
有
仍語李譯官曰
楚腰輕以一小妓 名動中原 華士亦有問訊者 我東方之有絶色 可知也
정이 초요경으로 잘못 알고 즉시 답하기를,
“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李역관에게 말하였다.
“초요경은 작은 기생으로 이름이 중국에 진동하여, 묻는 사람이 중국 선비에도 있으니, 우리 동방(東邦)에 絶色이 있음을 가히 알 수 있네.”
李曰
華士識賤妾無是理 子無奈誤認耶
李가 말하였다.
“중국 선비가 천한 계집을 알 리가 없습니다. 그대가 잘못 아신 것 아닙니까?”
鄭曰
嫫母無鹽以醜惡 尙流名於萬古 以楚腰輕之姿之艶姿 名動中原 從何疑哉.
鄭이 말하였다.
“嫫母와 無鹽은 추악했으나 오히려 그 이름이 만고에 전하였는데, 초요경의 자질의 아름다움으로 이름이 중국에 진동함이 어찌 의심스럽다는 말인가!”
▶嫫母(모모): 중국 황제(黄帝)의 네 번째 비(妃)이다. 얼굴은 매우 못생겼으나, 대단한 덕(德)이 있었다고 한다. 후대에는 못생긴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無鹽: 본래는 한(漢)나라 때에 설치했던 현(縣)의 이름이었으나, 여기서는 무염녀(無鹽女)라는 여인을 가리킨다. '무염녀'는 齊宣王의 부인으로 이름은 鍾離春인데, 매우 못생겼으나 왕의 정치를 잘 도왔다고 한다.
李語華士曰
楚腰輕吾東國一小妓 大人何從而識名字乎.
李가 중국 선비에게 말하였다.
“초요경은 우리나라의 한갓 작은 기생인데, 대인(大人)께서는 어찌해서 그 이름을 아십니까?”
▶何從: ‘어찌해서’, ‘어떤 경로로’로 이해한다.
華士大笑曰
我所問崔有江非楚腰輕也 鄭官人必鍾愛於楚腰輕 有如是之聽 其猶風聲鶴唳 皆晉兵之類乎
중국 선비가 크게 웃고 말하였다.
"내가 물은 것은 최유강이지, 초요경이 아닙니다. 鄭官人이 틀림없이 초요경에게 사랑을 기울였기에 그렇게 들었을 터입니다. 그것은 바람 소리와 鶴의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 왕의 군대가 이미 도달한 것으로 생각하고], [八公山의 풀과 나무를] 모두 진(晉)나라 병사로 알았던 것과 같은 부류가 아니겠습니까?"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풍성학려(風聲鶴唳).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 적병(敵兵)인가 두려워했다는 내용의 고사다. 意氣를 잃어서 사물의 조그마한 소리에도 놀라고 소동을 부림을 말한다. <진서(晉書)><謝玄傳>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이때 玄과 琰과 伊 등이 정예한 군사 8000명으로 비수(肥水)의 남쪽을 건넜다. 석(石)의 군사와의 거리가 화살이 도달할 만한 거리가 되자 (석의 군사가) 조금 물러났다. 현과 염이 억지로 전진해 비수의 남쪽에서 결전했다. 堅(前秦의 왕이었던 符堅을 말한다)은 화살에 맞고, 진(陣)으로 와서는 융(融)의 목을 베었다. 견(堅)의 무리가 패해서 어지러워지니, 자기들끼리 밟혀서 죽고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어서 비수가 흐르지 못할 정도였다. 남은 무리는 무기를 버리고 밤을 틈타 숨었는데,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모두 왕의 군대가 이미 도달하였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태로도 억지로 읽으면 문맥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대로 하면 대괄호 속의 내용이 보충되어야 의미가 원만히 통한다.
▶八公山: 중국 안휘성(安徽省) 봉대현(鳳臺縣)의 동남쪽, 肥水의 북쪽, 淮水의 남쪽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北山'이라고도 한다. 진나라의 孝武帝 太元 8년에 前秦의 왕 符堅이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한 후 허겁지겁 도망치다가 이 산의 나무와 풀을 멀리서 바라보고는 진나라의 군사들로 착각했다는 곳이다.
▶[八公山의 풀과 나무를]: 대괄호 속의 내용이 원문에서 빠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 내용이 보충되어야 의미가 원만히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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