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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송명현

耽古樓主 2023. 2. 26. 06:05

1970년대 국어교과서 표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은 실천의 문제다. 그러므로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의 말대로 실천 궁행하지 않는 한 천만 어를 나열한다 해도 대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 말은 공자가 한 말로, 사람들은 이 말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대답으로 믿어 온다. 그러나, 지난날의 웬만한 유생들이라면, 이 정도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특히 공자의 말이 그 대답으로 믿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공자의 실천궁행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수년 전에 나는 오대산엘 간 일이 있다. 거기에는 유명한 고찰 월정사와 상원사가 있다. 그런데, 월정사는 불탄 뒤에 새로 지었기 때문에 모습을 볼 길 없었으나, 상원사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거기서, 이 절이 그 전란 속에서도 그대로 남게 된 연유를 들었다.

상원사는 방한암 선사가 주지로서 생명을 마친 곳이다. 6,25때였다. 국군은 남침하는 침략군을 격퇴하여 북상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때 국군은 이 두 절이 적군에게 유리한 엄폐물이 되기 때문에 작전상 불태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래서, 국군은 월정사를 불태우고, 상원사로 가 스님들을 피하라고 했다. 방선사는 며칠 동안의 유예를 청했다. 그동안 선사는 스님들을 모두 하산시키고 혼자 남았다. 약속한 날에 국군이 가 보니, 선사는 의자에 단좌한 채 절명해 있었다. 그 장엄한 광경을 본 국군은 그대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원사는 남은 것이다.

작전하는 처지에서 보면, 절을 수호한 선사에게나 절을 불태우지 않은 군인들에게나 우리는 다 같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념을 위하여 신명을 도한 선사의 높은 행동 앞에 옷깃을 여미고 떠난 그 군인들의 가장 인간적인 행동은 우리에게 큰 감명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암시를 줌에 족하지 않은가.

내가 어려서 읽은 오봉의 이야기도, 생각할 때마다 이런 감명과 암시를 준다. 옛날, 타이완의 산간에는 사람의 목을 베어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아리산의 토인들은 다른 데 사는 토인들보다 앞서 이 악습을 없앴는데, 그건 오봉이란 사람의 살신한 결과였다.

오봉은 중국에서 건너간 선교사로, 아리산 토인들의 교화에 힘썼는데, 나중에는 그들의 추장으로 추대되었다. 토인들은 오봉을 하느님같이 숭배하고 따랐다. 그러나, 그 악습을 버리자는 말은 듣지 않았다. 오봉은 하는 수 없이, 내년에는 허락할 테니 금년만은 참으라고 했다. 그래서, 1년을 무사히 지냈다. 그리고, 다음 해도 그렇게 해서 또 1년을 넘겼다. 그러나, 3년째는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란이라도 일으킬 기세였다. 그 때 오봉은, 그들에게 아무 날 아무 때 아무 곳에 가 보면 붉은 모자를 쓰고 붉은 옷을 입은 나그네가 지나갈 것이니, 그의 목을 베어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토인들은 좋아하며 그날 그때 그곳으로 가 보니, 추장이 말한 대로 그런 나그네가 있었다. 이에 그들이 아무것도 살피지 않고 그의 목을 베고 보니, 그가 바로 하느님처럼 숭배하고 따르던 오봉이 아닌가. 그들은 대성통곡하고, 재래의 악습을 청산했으며, 그 후로 오봉의 기일이 되면 붉은 옷을 입고 그의 덕을 추모한다는 것이다.

오봉의 행동이 최선의 길이었던가에 관해선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펴고자 생명을 초개처럼 버린 그의 거룩한 행동은, 우리에게 큰 감명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암시를 줌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 아니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아도 살신성인한 분들을 허다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그 반대의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군자는 의에 민첩하고, 소인은 이에 민첩하다고 하거니와, 우리가 위에서 제기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도, 결국은 군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 소인의 길을 걸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귀결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천만 마디로 대답한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방한암처럼, 오봉처럼 실천하지 않는 한..

 

1975년 인문계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글입니다.

2023.2.26 고안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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