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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강 기행문

耽古樓主 2023. 2. 25. 07:25

내금강

교과서에 나온 정비석의 '산정무한'은 그가 1941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매일신보'에 연재한 '내금강 기행문' 중에 빼어난 부분을 뽑아 놓은 글이다. 교과서의 '산정무한'은 출발에서 내금강역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통째로 빠져 있고, 또 글쓴이가 즐겨쓰는 고유의 토박이말이나 말투를 일반적인 말투나 표준말로 바꾸는 등 고치고 다듬어 놓았다.

 

내금강 기행문

 

산길 걷기에 알맞도록 간편히만 차리고 떠난다는 옷치장이, 정작 푸른 하늘 아래에 떨치고 나서니 멋은 제대로 들었다. 스타킹과 니커즈빤쓰(무릎 근처에서 졸라매게 되어 있는 품이 넓은 바지.knickerpants)와 잠바로 몸을 가뿐히 단속한 후 등산모 제껴쓰고 바랑을 걸머지고 고개를 드니, 장차 우리의 발 밑에 밟혀야 할 만 이천 봉이 천리千里로 트인 창공에 뚜렷이 솟아 보이는 듯하다. 그립던 금강산金剛山으로, 그리운 금강산으로! 떨치고 나선 산장山裝(산행 행장)에서는 어느새 산의 향기가 서리서리 풍긴다. 산뜻한 마음으로 활개쳐가며 산으로 떠나는 지완之完과 나는 이미 본정통本町通에 방황하던 창백한 인텔리가 아니라,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의 기개氣槪를 가진 갈데없는 야인野人 문서방文書房이요, 정생원鄭生員이었다. 경원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서 무슨 흘게 빠진 체모란 말이냐! 우리 조상들의 본을 떠서 우리도 할 소리 못할 소리 남 꺼릴 것 없이 성량껏 떠들었으면 그만이 아닌가.(사람들이 여태 그래왔듯이 따라 떠들고 즐기면 됐지, 차 안에서 무슨 정신 빠진 체면에 우리가 얽매여야 한단 말인가!※돌이켜 보니 기차 안에서 행동이 좀 맘에 켕겨 머쓱한 듯.) 스스로 야인의 긍지에 도취되어서 뒤로뒤로 흘러가는 창 밖의 경개景槪를(경치를) 우리는 호화로운 심정으로 영접하였다.

 

고리타분한 생활을 항간巷間에 남겨 두고, 잠시나마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처럼 쾌사快事였던가? 인간 생활의 코답지근하고 답답하기 한없음을 인제서 깨달은 듯이나 하였다. 잠시나마 악착스러운 생활을 벗어나 순수한 자연의 품 안에 들어본다는 것은 항상 오만한 인간 생활의 순화를 위하여 얼마나 긴요한 일일까. 허심탄회虛心坦懷 인화지와 같은 마음으로 앞으로 전개될 자연들을 우리는 해면海綿(스펀지)처럼 흡수했으면 그만이었다. 철원서 금강 전철로 차를 바꿔 탄 것이 저무는 일곱 시쯤, 먼 산골에는 황혼이 어리고 대지는 각일각刻一刻 회색으로 용해되어 가는데, 개성을 추상推象당한 산령山嶺들이 묵직한 윤곽만으로 서녘 하늘에 웅크렸다. 고요하기 태고太古같은 이 풍경 속에서 순시瞬時도 멎음 없이 변화를 조종하는 기막힌 조화는 대체 누가 부리는 요술이던가. 창명愴冥히(슬프고 막막히) 저물어 가는 경개에 심취하여 창가에 기대인 채 마음의 평화를 즐기다가 우리는 어느덧 저 모르게 가슴 깊이 지녔던 비밀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보배로 여기던 비밀을 아낌없이 털어놓도록 그만치 우리를 에워싼 분위기는 순수했던 것이다. 유리창 밖으로 비치는 지완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의 청춘사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웠을 사랑담을 허심히 들어넘기며, 나는 몇 번이고 담배를 바꿔 피웠다. 침착한 여인네가 장롱에 옷가지 챙겨 넣듯 차근차근 조리있게 얽어 나가는 지완의 능숙한 화술은, 맑은 그의 음성과 어울려서 귓가에 도란도란 향기로웠다. 사랑이 그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세상에 사랑처럼 쓰라린 것 매운 것은 없다는데, 지완의 것은 아침 이슬같이 담결淡潔했다니, 그도 그의 성격의 소치일까? 창 밖에 금풍金風이 소슬해서 그 사람이 유난히 고매高邁하게 느껴졌다.

 

내금강역에 닿으니 밤 열 시! 어느 사찰을 연상시키는 순 조선식純朝鮮式 거하巨廈(큰 건물)가 달빛 속에 우리를 반기는 듯 맞는다. 내금강 역사驛舍다. 어느 외국인의 산장山莊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이 멋진 양관洋館 외금강역과 아울러 이 조선식 내금강역은 산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한 정겨운 호대조好對照의 두 건물이다. 내內와 외外를 여실히 상징한 것이 더 좋았다. 십삼 야월十三夜月의 달빛 차겁게 넘실거리는 역 광장에 나서니, 심산深山의 밤이라 과시果是(과연) 바람은 세찬데, 별안간 계간谿間을 흐르는 물소리가 정신을 빼앗을 듯 소란하여 추위는 한층 뼈에 스민다. 장안사로 향하여 몇 걸음 걸어가며 고개를 드니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쭐우쭐 둘러선다. 기쓰고 찾아온 것이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가고, 금세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여 마시니 어느덧 간장肝臟도 청수淸水에 씻기운 듯 맑아 온다. 청계淸溪를 끼고 물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기 십 분쯤, 문득 발부리에 나타나는 단청丹靑된 다리는 이름부터 격에 어울려 함부로 건너기조차 외람된 문선교問仙橋!

 

문선교! 어느 때 어떤 은사隱士가 예까지 찾아와서 선경仙境이 어디냐고 목동에게 차문借問한 고사故事라도 있었던가? 있을 법한 일이면서 깜짝 소문에조차 듣지 못한 것은, 역시 선경仙境과 속계俗界가 스스로 유별有別한 탓이었던가. '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주막이 어디 있느냐 물으니)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목동이 멀리 살구꽃 마을을 가리킨다)'은 속계의 노래로, 속계에서는 이만하면 풍류객風流客이렷다. 동양류의 선경이란 풍류객들이 사는 고장을 이름이니, 선경과 속계는 백지 한 겹밖에 아닌 듯이 믿어지니, 이미 세진世塵을 떨치고 나선 몸이라 서슴지 않고 문선교를 건너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고단할 것을 예상한 것에 비해선, 고단한 것치고는, 평안도에서는 보통으로 쓰는 표현인 듯) 일찌거니 눈이 떠진 것은 몸에 지닌 기쁨이 하도 컷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靈峰들을 대면하려고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峻峰은 상기(아직)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容易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 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두 근심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靑雲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문실문실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野山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氣稟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조반朝飯 후 단장短杖 짚고 험난한 전정前程을(갈 길을) 웃음경삼아 탐승探勝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개'하면 더 간단명료한 표현) 원근遠近 산악이 열병식閱兵式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만산萬山의 색소色素는 홍紅!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보다 하였다.

 

만학천봉萬壑千峰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은 붉을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紅만도 아니었다. 청靑이 있고, 녹綠이 있고, 황黃이 있고, 등橙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朱紅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①장안사長安寺

 

복잡한 것은 색色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다기多岐하다. 혹은 깍은 듯이 준초峻峭하고(깎아지른 듯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溫厚하고, 혹은 막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 용체풍모容體風貌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범속凡俗이 아니다. 산의 품평회品評會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무궁무진無窮無盡이다. 장안사長安寺 맞은편 산에 울울창창鬱鬱蒼蒼 우거진 것은 모두 전나무뿐인데, 도시都是 이등변삼각형二等邊三角形으로 가지를 늘이고 섰는 품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 놓은 다례탑茶禮塔 같다. 부처님은 다례상 만으로는 미흡未洽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珍羞盛饌을 탐내신 것일까? 얼핏 듣기에 탐낸다는 것이 불온하다면, 탐하는 그것이 이미 물욕物慾 저편의 존재인 자연이면, 자연을 맘껏 탐낸다는 것이 이미 불심佛心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류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과 물이 교접된 지점에 조그마한 다점茶店이 있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 울창한 사이, 물 맑고 아름다운 만천萬川을 건너자, 유명한 장안사가 나온다. 장안사는 신라 23대 법흥왕法興王의 발원發願으로 진표율사眞表律師가 AD 551년 창건했다고 전해 온다. 장경봉長慶峰(1076 m), 석가봉(946 m), 작은지장봉小地藏峰 등이 칼날처럼 주위를 에워싸고, 300년 이상 묵은 전나무와 잣나무가 울울창창 우거진 속에 맑은 물소리가 울려, 원나라 순제 때 왕후 기씨奇氏가 불공을 들이려고 여기까지 왔던(AD 1343년) 선경이다. 장안사는 유점사楡岾寺와 더불어 금강산 2대 사찰로 꼽혔으며, 6전六殿 7각七閣 2루二樓 2문二門을 비롯하여, 기타 10여 동棟의 부속 건물들을 거느려, 웅대미려雄大美麗함을 자랑하였다. 그 중에서도 대웅보전과 사성전은 2층 건물로서 모양과 짜임새에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시대적 특성을 나타내는 훌륭한 건축물이었다. 독일의 유명한 건축가였던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1880~1938)도 한국 건축술에 크게 놀라, 금강산에서 평생 우리 건축술을 연구하다 장안사 부근에 묻혔다고 한다. 일제시대, 장안사는 육영 사업에 관심을 기울여, 개성에 장화여학교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지금, 장안사는 폐허가 되어 '장안사터'라 쓰인 푯말 만이 외로이 해와 달을 반기고 있을 뿐이다.

 

장하던 금전벽우金殿碧宇 찬 재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 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 '장안사'에서--

 

②명경대明鏡臺

 

다리도 쉬일 겸, 스템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 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지면紙面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명경대明鏡臺! 부앙俯仰하여(굽어보고 우러러보고) 천지에 참괴慙愧함(부끄럼)이 없는 공명公明한 심경을 명경지수明境止水라고 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지니고 온 악심惡心을 여기서만은 정淨하게 하지 아니치 못하는 곳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다점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생반生盤같이 푸른 황천담黃泉潭을 발 밑에 굽어보며 반공半空에 외연巍然히(우뚝) 솟은 깎은 듯이 판판한 거암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化粧鏡 그대로였다. 옛날에 죄의 유무有無를 이 명경에 비추면, 그 흐르는 밑에 황천담에까지 영자影子(그림자)가 반영되었다고 안내인은 말한다.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품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臆說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猶不足일 거울의 묘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可驚(놀랄)할 일인가? 신라조新羅朝 최후의 왕자인 마의 태자麻衣太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송念誦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業罪를 명경에 영조映照해(비춰)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雲上氣稟(고상한 기품)에 무슨 죄가 있으랴만, 등극登極하실 몸에 마의麻衣(삼베옷)를 감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佛法이 말하는 전생의 연緣일는지 모른다.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만천萬川 상류로 가다가 오른쪽 꺾어지니, 백천동百川洞(일명 만천강萬泉江)계곡이다. 석가봉(946 m)과 시왕봉十王峰(1141 m) 두 산줄기 사이에 펼쳐 있어, 마치 베틀 북처럼 수 없이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며, 꼬불꼬불한 길로 '오리바위' 지나, 배석대拜石臺에서 우러러보면, 커다란 거울을 벼랑에 세워 놓은 듯한 경관景觀이 반공半空에 외연히 솟아 있으니, 바로 유명한 명경대(높이 90 m, 폭 30 m되는 거대한 규모이다)이다. 업경대業鏡臺라고도 부른다. 갈고 다듬어, 반들반들 갈생 거울이 그 아래 누루퉁퉁 황천담(일명 黃流潭 또는 玉鏡潭, 깊이 3.8 m, 면적 180㎡)에 비친 모습은 신비의 거울 그대로다. 특히, 붉은 단풍과 함께 명경대 그림자 황천담에 어룽어룽 비칠 때면, 더없는 아름다움 연출한다. 명경대란 불교용어로서, 저승길 입구에 있다는 거울을 말한다. 이 거울은 지나가는 이의 생전의 선과 악을 그대로 비추어 심판한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 명경대 앞에서 자신있게 설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과연, 명경대와 주위에 높이 솟은 십왕봉十王峰(일명 시왕봉), 판관봉判官峰, 죄인봉罪人峰, 사자봉使者峰, 지옥문地獄門, 극락문極樂門은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③석가봉釋迦峰, 946 m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閻魔(염라대왕)처럼 막아서는 웅자雄姿가 석가봉釋迦峰, 뒤로 맹호猛虎같이 덮누르는 신용神容이 천진봉天眞峰!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峽搾한 골짜구니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峽谷!

 

몸에 감길 듯이 정겨운 황천강黃泉江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由來談을 길잡이에게 들어 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深海같이 유수幽邃한(깊고 그윽한) 수목樹木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안사터에서 유명한 벽류碧流(장안사 앞을 흐르는 만천萬川 바닥 200여 m 구간에 푸른 바위靑石가 쫙 깔려 있어, 흐르는 물이 유달리 푸르게 보이는 곳)를 지나 올라가니, 오른쪽에 수려한 석가봉의 자태가 나타난다. 마치 그 누가 품을 들여 차곡차곡 쌓은 듯 인공산人工山처럼 생겼는데, 구름이 늘 허리를 감돌아 봉우리는 마치 바다 위 뜬 섬처럼 보인다. 잠자던 사슴도 석가봉이 다 보이게 되면 그제야 잠을 깬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로 구름이 감돌지 않는 날이 드물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강원도 금강산의 백도라지,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스리슬슬 다 넘누나

에헤여 에헤요 에헤요,

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네

네가 내 간장을 다 녹인다

--민요 '금강산 도라지'중에서--

 

 

④영원암靈源庵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至賤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속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燎原(불타는 들판) 같은 화원花園이요, 벽공碧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봉봉峰峰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 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 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 요란百花燎亂한(온갖 꽃이 활짝 핀,'백화난만'이 문맥상 더 적합) 것일까? 아니면, 불의不意의 신화神火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면서 있는 것일까? 진주홍眞朱紅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海綿(스펀지)같이, 우러러볼수록 요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은 몰랐다. 김 형金兄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畵幅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짜면, 물에 행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명경대 감상한 다음, 극락으로 통한다는 황사굴黃蛇窟,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흑사굴黑蛇窟을 지나고, 마의태자의 '대궐터', 애마愛馬인 용마龍馬를 매었다는 '계마석繫馬石'을 지난다. 얼마 후 돌무더기(조탑장) 부근에서 우두마면봉牛頭馬面峰 구경하면, 지장봉地藏峰(1381 m) 언덕 자리잡은 영원암이 나타난다. 신라 영원조사靈源祖師가 도를 닦았다는 곳. 서쪽엔 하얀 죽순이 돋은 듯 봉우리를 솟았고, 기묘한 돌 기둥도 들쑥날쑥 솟았다. 바람도 조심조심, 살살 불고, 물살도 가만가만 흐른다는 영원동靈源洞은 금강산 중에서도 영원동의 단풍은 직접보고, 보아서 느낄 뿐, 결코 말하거나 그럴 것이 아니다.

 

이 부근은 잣나무 무성하고 당귀, 함박꽃, 만삼蔓蔘 등 약초가 많이 난다. 금강산에 나는 약초이고 보니, 약효도 더욱 좋으리라. 영원암 지나 오르니, 옥초대沃焦臺 나타난다. 빼어난 전망대다. 전설이 있어, 달밤이면 영원조사가 여기 올라 옥피리 불었는데, 그때마다 학이 날아와 춤추었다 전해 온다.

 

洞隔溪深路僅開 동격계심로근개

험한 계곡 깊은 개울 좁은 길 헤치고

登臨一息萬塵灰 등림일식만진회

암자에 오르니 온갖 번뇌 재가 되는구나

尼僧禱佛誠心極 니승도불성심극

여승은 정성껏 부처님께 빌고

磬鐸聲中鳥自來 경탁성중조자래

경쇠와 목탁 소리에 새들이 저절로 날아드는구나

--김구하, ?~?, 법호는 취산鷲山-- (1872년~1965년)

 

지금 영원암은 소실되었다.

 

⑤망군대望軍臺, 1331 m

 

그림 속의 연화담蓮花潭 수렴폭垂簾瀑을 완상翫賞하며(느긋하게 감상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石階와 목잔木棧과(나무 사다리와) 철삭鐵索을(쇠줄을) 답파踏破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삼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 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오천 척의 망군대望軍臺, 아! 천하는 이렇게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이름도 정다운 백마봉白馬峰은 바로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毘盧峰은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 밖에도, 유상有象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戰時에 할거割據하는 영웅들처럼 여기에도 불끈 저기에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은 천인단애千仞斷崖(천 길 낭떠러지), 무한제無限際로 뚝 떨어진 황천 계곡黃泉溪谷에 단풍이 선혈鮮血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 단장七寶丹粧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스란치마 폭 같다고나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 눈 깔며 돌아서는 낯 붉힌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세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돌 무더기(조탑장)에서 왼쪽으로 들어가, 그림 같은 연화담蓮花潭과 수렴동水簾洞의 미관美觀을 감상하고, '사자목'을 넘어 '봉황대'와 '의자바위' 등을 바라보며, 네발로 기어 오르니, 푸른 하늘 아래 수억 년 깎이고 다듬어진 백옥봉두白玉峰頭가 은빛을 발하며 손짓한다. 여기가 바로 비로봉 버금가는 전망대인 망군대이다. 아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廣闊하고 웅장雄壯하고 숭엄崇嚴하던가! 북으로 능허봉(1465 m), 영랑봉(1601 m), 중향성(1520 m), 비로봉(1638 m), 동으로 장군봉(1560 m), 월출봉(1575 m), 일출봉(1552 m), 차일봉(1529 m), 백마봉(1510 m)이 닭의 벼슬처럼 이어졌고, 가까이 향로봉, 법기봉, 지장봉(1381 m), 십왕봉(1141 m), 혈망봉(1372 m) 등 만학천봉萬壑千峰이 시야가 미치는 한, 푸른 연기처럼, 성난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망군대의 위관偉觀! 끝없는 봉우리, 봉우리들이 망군대를 중심으로 몇 겹의 원을 그리며 모였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얼핏 보면 복잡한 듯하나, 살펴보면 질서가 있으니, 무수無數한 소통일小統一을 합하여 내금강 전체가 하나의 대통일大統一을 이루니, 복잡, 질서 그리고 통일의 조화여! 철따라 비취翡翠빛, 진홍빛 뚝뚝 떨어져 흐르는 수림樹林의 바다! 지긋지긋하도록 용하게 된 금강산(내금강)을 발가벗겨 놓고, 참빗질 식式으로 감상하며, 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선線의 전개와 변화, 그 예술적 구성에 감격의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곳이다.

 

내금강 만들 때

조물주 앉아서 지휘한 곳이 망군대요

조각彫刻이 끝난 뒤

선녀들 거느려 잔치한 곳이 망군대요

보름달 두둥실

선녀들 금강산 보자고 내려온 곳도 망군대더라

금강산 큰 조각을 천겁千劫만에 이루던 날

옥황의 보좌寶座를 어느 곳에 정하리까

망군대 백옥봉두야 그곳인가 하노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만 이천봉! 무양武揚하냐 금강산아

너는 너의 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너의 님은 너 때문에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온갖 종교, 철학, 명예, 재산

그 외에도 있으면 있는 대로 태워 버리는

줄을 너는 모르리라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법호는 卍海)--

 

☞주: 무양(無恙)-몸에 탈이 없음(본문에는 무양武揚이라 하였고 주注에는 무양無恙의 뜻이 해석되어 있으니 무슨 이유일까? 두 가지 뜻이 중첩되었다는 말일까, 잘못 올렸을까? '武揚하냐'는 '의기양양하냐, 무인의 기개를 떨치고 있느냐'는 뜻일 듯)

 

⑥마하연摩訶衍

 

저물 무렵에 마하연摩訶衍의 여사旅舍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고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歡待도 은근하나,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 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은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맞은편 법기봉法起峰 같되, 가지에 깃들였던 산새처럼, 밝으면 떠나갈 길손에게 무엇을 속삭이려는 그 무언의 수태愁態(근심스러워 하는 모습)가 무한 가애可哀로왔다.

 

여장旅裝을 풀고 마하연암摩訶衍庵을 찾아갔다. 여기는 선원禪院이어서, 불경 공부하는 승려僧侶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30 명은 됨직하다. 이런 심산에 웬 중이 그렇게도 많을까?

 

한없는 청산 끝나 가려 하는데, [無限靑山行欲盡]

흰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白雲深處老僧多]

 

옛날 그대로다.

 

노독路毒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 앉으니 온고지정溫故之情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하며, 불을 바라보는 지완의 말씨가 하도 따듯해서, 나도 장난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잊지 못할 얼굴들이 흐르는 물에 낙화落花 송이 같이 떠돌았다.

 

밤 깊어 뜰에 나서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陰風이 몸에 스산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 만도 아니요,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아니다. 아마, 바람 소리와 물 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달빛에 젖으며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오롯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가는 줄 모르고 정성껏 읽는 품이 춘향春香이 태형笞刑 맞으며 백白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누명陋名 쓴 장화薔花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告祝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정배定配가는 카츄사의 뒤를 네프 백작白爵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 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 갔다.

 

만폭동 8담 끝 화룡담 지나 오르며, 왼쪽 사자봉獅子峰 뒤로 쫑긋 하늘 찌르고 솟은 촉대봉燭臺峰(1148 m)을 구경하다 보면, 마하연이 나타난다. 신라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했고, 당우堂宇는 순조 31년 월송선사月松禪師가 중건한 것으로, 기역자(ㄱ)로 된, 사방 여덟 자인 방이 53개나 되었던 웅대한 건물이었다. 근처에 만회암萬恢庵이라는 암자도 있었다. 지금, 마하연도 소실되어 부속 건물인 ①칠성각과, 부근에 팔각 정자인 연화대(일명 만회대)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해발 846 m의 평지 마하연터에서의 조망眺望은 특출特出하다. 뒤에 촉대봉, 앞에 혈망봉, 법기봉이 솟았고, 왼쪽에 중향성, 나한봉의 산줄기 백옥성白玉城처럼 뻗었다. 법기봉 머리 앉아 한 손을 넌짓 들로(둘러) 반야경 가르치니 '법기암法起巖', 그 앞에 무릎 꿇고 다소곳 고개 숙여 배우니 '파륜암波輪巖(일명 상제바위)', 바람에 치맛자락 휘날리며 사뿐사뿐 모롱이 돌아오니 '관음암觀音巖', 참으로 절묘絶妙하다. 그 뿐인가, 수미봉須彌峰(일명 영추봉) 일곱 개 뾰죽뾰죽 '칠성바위', 조쪽의(저쪽의)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흰구름 훤하게 보여 주는 혈망봉穴望峰 맞구녕, 참으로 신비神秘하다. 이렇게 수려하고 오묘한 경관에 세속을 떠나 수도하는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부근에 처녀림 우거졌고, 금강산 특수 식물인 금강초롱 만발하여, 새로운 정서를 자아낸다. 교통 요지로서, 백운대 가는 길과 묘길상 거쳐 비로봉 또는 내무재령 가는 길이 있고, 서북쪽 설옥동(일명 가섭동)과 수미봉을 거쳐 수미암터로 가는 길이 있다.

 

참새가 날아들고 새 달이 돋아 온다

외나무 다리로 홀로 가는 저 선사禪師야

네 절이 얼마나 하관대 원종성遠鐘聲이 들리나니

 

☞주① 칠성각七星閣 : 앞면 3간, 옆면 1간의 작고, 소박한 건축물이다. 비바람 막기 위한 풍판이 건물 높이의 2/3 정도로 내려오게 한 점이 특이하다. 지금, 남아 있다.

 

 

⑦금사다리金梯, 은사다리銀梯

 

다음날 아침, 다시 산을 찾아 나섰다. 자꾸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친지와 처자를 버리고 중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 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群小峰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옥하고 음산陰散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겨드니, 은제銀梯, 금제金梯에서 기어이 비는 내렸다. 햇솜 같은 연무煙霧 속에서 지척咫尺을 분간할 수 없다. 우구雨具가 없어 젖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일진 광풍一陣狂風이 어디서 불어 왔는가, 휙 소리를 내며 운무雲霧를 홀가닥 헤치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진홍 주단 폭 같이 참된 진달래 단풍이 다음다음 전개된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엇바꾸어 가며 짠織 비단결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는 꽃보다 단풍이 배승倍勝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묘길상에서 사선교四仙橋(지금은 消失되었다) 못 미쳐 왼쪽(오른쪽은 내무재령 가는 길)으로 올라, '20년고개' 등성이에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 모습인 '사랑바위'를 감상하며 오르니, 급한 비탈에 집채덩이 돌 사태沙汰가 나서 톱날 같은 바위 줄기 뻗어 올라, 그 끝이 비로봉에 닿았다. 돌 사태 너비는 10여 m, 길이는 수백 m에 달한다. 그 모양 어느 것이나 층계를 이루어, 질서秩序가 정연整然하게 까마득한 하늘로 올려 놓은 사다리 같은데, 돌옷(이끼)이 아래는 금빛, 위는 은빛이어서 금사다리, 은사다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톱날 같은 바위 줄기 아침해가 뜰 때면 영롱한 은빛을 발하고, 저녁해가 질 때면 찬란한 금빛을 뿌린다. 금사다리, 은사다리 다 오르면, 비로봉과 영랑봉이 연결된 능선 중간이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비로봉 정상에 서게 된다.

 

 

웃노라 예사람들 바벨탑이 부질없네

만층의 금사다리 예 있는 줄 모르던가

알고도 찾는 이 적으니 그만 한이 없어라

 

태초太初라 금강산에 금봉 은봉 있겄더라

금봉 헐어 금사다리 은봉 헐어 은사달

하늘에 오르는 길을 이리하여 이루니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⑧비로봉毘盧峰, 1638 m

 

오를수록 우세雨勢는 맹렬했으니 농무濃霧(짙은 안개) 속에서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금방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는) 영봉靈峰을 영송迎送하는 것도 가히 장관壯觀이었다.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暴注로(세차게) 내리붓는다. 만 이천 봉을 단박에 창해滄海로 변해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절정絶頂에 있는 다점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엿보고 섰던 동자童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先着客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雨雹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 용호龍虎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로大怒하신 것일까? 경천동지驚天動地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이렇게 만상萬象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간장肝腸을 조이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졌다. 변환變幻도 이만하면 극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최고점最高點이라는 암상巖上에 올라 사방을 조망眺望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이는 운해雲海뿐,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을 것 같았다. 내.외.해內外海 삼 금강三金剛을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어 가석可惜하나, 돌이켜 생각하면 해발 육천 척에 다시 신장 오 척을 가하고 오연敖然히(오만하게) 저립佇立해서(우두커니 서서), 만학천봉을 발 밑에 꿇어 엎드렸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마음은 천군만마千軍萬馬에 군림하는 쾌승 장군快勝將軍보다도 교만驕慢해진다.

 

금사다리, 은사다리 지나, 비로봉과 영랑봉 잇닿은 등성이에, 방목장을 방불彷彿케 하는 넓디넓은 비로고대毘盧高臺(둘레 약 4 km)에서 숨을 고르고 조금 오르니, 일만 이천봉의 꼭대기-비로봉-에 이른다. 여기는 비로봉, 내.외금강의 만학천봉이 발 아래 조아리고, 동해의 검푸른 물결에 거울을 띄운 듯, 빛나는 해금강이 모형지도처럼 펼쳐졌다. 금강산은 바다에 닿아 있는 산이라(일부는 바다 위로 솟아올라 해금강이 되었다), 검푸른 동해가 발 아래 아득히 펼쳐지고, 만 이천봉이 머리를 조아리니, 사방 수백 기機, 일원一圓에 비로봉을 당할자 없으므로 해발 수천m의 산악들 보다 오히려 높고 웅대하게 보일 뿐 아니라, 다양한 구성, 풍요한 산악미, 변화무쌍한 색채까지 더해주니, 그 웅대하고 아름다운 전망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특히, 비로봉에서 동해 해돋이와 저녁 노을에 비친 일만 이천 봉 감상은 필설筆舌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금강산이라는 이름은 옛날부터 알려져, 일찍이 ①화엄경에서도 지적된 명산으로, 한민족이 염원하는 이상향이었으며, 세계 여행가들은 저마다 최대의 찬사와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비로봉 올라서니 세상만사 우스워라

산해 만리(山海萬里)를 ②일모一眸에 넣었으니

그 따위 만국도성萬國都城이 ③의질蟻垤에나 비하리오

 

금강산 만 이천 봉 발 아래 굽어 보고

창해 푸른 물에 하늘 닿은 곳 찾노라니

청풍이 백운을 몰아 귓가으로 지나더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金剛頌』

금 雄大한 全景

山體의 大膽한 構成

깎아지른 絶壁

 

人間의 발길이 닿지 않은 處女林

그 奇怪한 峽谷

순결한 瀑布

急流와 深淵에 비치는 光線과 色彩

이에 의한 無窮한 變化와 造化를

世界 어느 곳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Dr. Kruger--

 

비로봉 대자연을 사람아 물딪 마소

눈도 미쳐 못보거니 입이 능히 말할손가

비로봉 알려 하옵거든 가 보소서 하노라

 

④홍몽鴻濛이 ⑤부판剖判하니 하늘이요 땅이로다

창해와 만 이천 봉 신생의 빛 마시올 제

사람이 소리를 높여 창세송創世頌을 부르더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주①화엄경華嚴經 : 석가가 득도得道한 후 27일 되던 날에, 법계法界 평등의 진리를 증오證悟한 불佛의 만행萬行, 만덕萬德을 칭양稱揚한 불교의 가장 높은 경전「~, 東北方~海中, 有處名金剛山,~」이라 하였다.

주②일모一眸 : 한 눈에 보임. 일망一望

주③의질蟻垤 : 개미의 집. 개밋둑

주④홍몽鴻濛 : 하늘과 땅이 아직 갈리지 않은 모양

주⑤부판剖判 : 둘로 갈라서 나누다

 

정작 비로봉 올라서니, 평평하고, 흙과 풀도 있는 평지인데, 둥글넓적한 거암들 모여있는 중, 한 가운데 '배바위'라는 것이 있어, 동해를 지나는 배들이 멀리서 평범하게 생긴 바위를 보고 뱃길을 잡는다 하니, 개벽開闢 이래以來 많은 생명을 구한 위대한 바위라 하겠다. 정녕, 위대偉大는 평범平凡과 통하는 것인가.

 

비로봉 오르는 대표적 등산로 8개 중, 내금강으로 오르는 코스가 4개인데,

① 장안사터→표훈사→만폭동→마하연터→묘길상→금사다리,은사다리→비로봉

② 장안사터→표훈사→만폭동→마하연터→묘길상→사선교→내무재령→일출봉→장군성→비로봉

③ 장안사터→표훈사→만폭동→마하연터→설옥동→수미암터→영랑봉→비로고대→비로봉

④ 금강천 상류인 신풍리 쑥밭艾田→구성동→영랑봉→비로고대→비로봉이다

 

 

외금강으로 부터 오르는 코스도 4개인데

① 온정리→옥류동→구룡폭포→상팔담비사문→구담곡(아홉소골)→용마석→비로봉산장→비로봉

② 온정리→동석동 또는 발연동→집선봉→채하봉→장군봉→장군성→비로봉

③ 온정리→유점사터→효운동→내무재령→일출봉→장군성→비로봉

④ 온정리→한하계→만상정→상등봉→삼성암터→용마석→비로봉산장→비로봉이다.

 

그 중에서 내금강 ①번 코스와 외금강 ①번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고, 경치도 가장 좋고, 내.외금강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코스다. 그 사이 비로봉산장(용마석과 비로봉 사이에 있다)에서 일박一泊해야 하는데 비로봉 해돋이 감상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 비로봉 서쪽 가까이 영랑봉이 솟았다. 영랑봉永郞峰(1601 M)은 비로봉에 버금가는 제이第二의 봉우리다. 둥글뭉실 흙산인데, 생김새 웅대하고 전망도 좋다. 남쪽은 중향성衆香城이라는 절묘한 경치를 이루며 가파른 낭떠러지 되어 있고, 서쪽은 그 옛날 신선이 콩 농사를 지었다는 '월명수좌콩밭등'을 거쳐 능허봉凌虛峰(1465 M)과 닿았고 북쪽은 구성동九成洞 계곡이 펼쳐진다.

 

이 일대一帶에는 금강산 특수종 식물인 '금강국수나무', 기름을 먹으면 신경통과 폐결핵에 좋다는, 앵두처럼 빨간 '마가목 열매', 특히, 수분이 적은 고산지대에 알맞게 잎이 두텁고, 산 밑의 나비 유인하느라 꽃이 유달리 크며, 화려한 즙을 짜서 종창에 바르면 독기를 없애준다는 '만병초' 등 수많은 약초들 무더기로 자생하는 중, 산삼도 있으나, 숲 속에 숨어,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 하니, 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 볼 일이다.

 

曳杖陟崔嵬예장척최외

지팡이 짚고 꼭대기(비로봉) 오르니

長風四面來장풍사면래

거센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靑天頭上帽청천두상모

푸른 하늘은 머리 위에 쓴 모자요

碧海掌中盃벽해장중배

(동해의)푸른 바다는 손바닥 안의 술잔이네

--이이(李珥, 1536~1584, 호는 栗谷)--

 

배바위야 네 덕이 크다

만장봉두萬杖峰頭에 말없이 앉아 있어

창해蒼海에 가는 배의 길잡이가 된다 하니

아마도 성인聖人의 공功이 이러한가 하노라

 

만 이천 봉이 기奇로써 다툴 적에

비로야 네가 홀로 범凡으로 높단 말가

배바위 이고 앉았으니 더욱 기뻐하노라

--이광수의 '金剛山遊記'에서--

 

⑨마의태자묘麻衣太子墓와 용마석龍馬石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 자리를 삼가, 구중 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樹中公主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哀話 맺혀 있는 용마석龍馬石----마의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陵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철책鐵柵도 상석床石도 없고, 풍림風霖에 시달려 비문碑文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창명히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된 태자의 애기愛騎 용마龍馬의 고영孤影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는 듯, 소복素服한 백화白樺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명월이 중천에 외롭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麻衣 걸치고 스스로 이 험산險山에 들어 온 것은, 천 년 사직千年社稷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진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樂浪公主의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裡가 어떠했을까? 흥망興亡이 재천在天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信義가 있으니, 천자의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봉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須臾(짧은 순간)던가!

 

고작 칠십 생애生涯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싣고 각축角逐을 다투다가 한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依支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黯然히 수수愁愁롭다('서글프다, 슬프다'의 일본식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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