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苑

說苑(설원) 제20권 反質(반질)

耽古樓主 2023. 12. 24. 22:17



 

이 篇은 人爲的인 奢侈와 虛飾을 버리고 事物의 本質을 지켜야 함을 일깨우는 내용으로 편성하였다.
먼저 本質이 넉넉한 것은 꾸밈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인용하고, 鬼神을 믿기보다는 道德을 믿음이 낫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여기에 부합하는 사례들을 제시하여 質朴한 삶으로 돌아감이 중요함을 증명하였다.
機智가 있으면 기지 때문에 실패한다는 道家의 觀點을 내세워 機巧을 반대하였고, 화려한 衣服, 高大한 宮室, 과도한 奢侈를 경계하였다.
秦 始皇이 사치한 생활을 추구하다가 결국 나라를 멸망시킨 일을 敎訓으로 삼아 옛 明君이 음식은 배가 부르면 족하고, 옷은 몸에 따뜻하면 족하며, 궁실은 거처할 정도면 족하고, 車馬는 타고 다닐 정도면 족하게 여긴 것을 法으로 삼아야 함을 표현하였다.
節儉하면 나라를 일으키고 奢侈하면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관점에서 간소한 복장, 재물의 저장과 건축의 확장을 반대하며, 술을 절제하고 간소한 葬禮 등을 말하여 反質의 氣風을 提唱하였다.

 

 


1.

孔子卦得賁,喟然仰而歎息,意不平。
孔子께서 점을 쳐서 賁卦를 얻으시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탄식하시어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셨다.
▶ () : 周易》 64의 하나로아래는 (), 위는 ()으로 되어 있다文飾을 뜻하는 괘라고 한다周易 賁卦

子張進,舉手而問曰:
「師聞賁者吉卦,而歎之乎?」
子張이 앞으로 나와 손을 들고 물었다.
저 가 알기에는 한 괘라는데 어찌 탄식하십니까?”

孔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賁非正色也,是以歎之。
비는 순수한 빛깔[正色]이 아니기 때문에 탄식하였다.

吾思夫質素,白當正白,黑當正黑。」
나는 본질이 순수하기를 생각하니흰색이면 순수한 흰색이고검정색이면 순수한 검정색이기를 바란다.”
▶ 夫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근거하여 로 바로잡았다.

「夫質又何也?」
본질은 또 무엇입니까?”

「吾亦聞之,丹漆不文,白玉不彫,寶珠不飾,何也?
質有餘者,不受飾也。」
나는 또 들으니붉은 칠[丹漆]은 다른 빛깔로 더 꾸미지 않고白玉은 다시 쪼아 새기지 않으며寶珠는 다시 장식하지 않는다고 한다이는 무엇 때문인가?
본질이 넉넉하면 수식을 수용하지 않는다.”

 



2.

信鬼神者失謀,信日者失時,
鬼神을 믿는 사람은 計策을 세움에 실패하고時日의 길흉을 믿는 사람은 時機를 얻음에 실패한다.

何以知其然?
무엇으로 그러한 줄을 아는가?

夫賢聖周知,能不時日而事利;
敬法令,貴功勞,不卜筮而身吉;
謹仁義,順道理,不禱祠而福。
聖賢은 두루 알기 때문에 날을 잡지 않아도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法令을 공경히 준수하고 공로를 귀중히 여기면 점을 치지 않아도 몸이 하고
仁義를 삼가 행하며 道理를 따르면 제사하여 빌지 않아도 복을 받는다.
▶ 時日 시간과 날짜(日辰)를 말한다.

故卜數擇日,潔齋戒,肥犧牲,飾珪璧,精祠祀,而終不能除悖逆之禍,
그러므로 운수를 점쳐서 날을 선택하며정결하게 재계하며살찐 犧牲을 바치며祭器를 으로 장식하며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더라도끝내 순리를 거스르는 災禍를 제거하지 못한다.

以神明有知而事之,乃欲背道妄行而以祠祀求福,神明必違之矣。
神明이 안다고 여겨서 그를 섬기더라도도리를 위배하고 망령되이 행동하면서 제사 지내어 복을 구한다면 신명은 반드시 그를 저버릴 터이다.

天子祭天地、五嶽、四瀆,諸侯祭社稷,大夫祭五祀,士祭門戶,庶人祭其先祖。
天子는 天地와 五嶽과 四瀆에 제사를 지내고제후는 社稷에 제사를 지내고大夫는 五祀에 제사를 지내고는 門戶에 제사를 지내고庶人은 그의 先祖에게 제사를 지낸다.
▶ 五嶽四瀆 본서 권18 辨物〉 0607 참고.
▶ 五祀 주택 내외의 다섯 에게 제사하는 일또는 그 제사 대상인 다섯 신을 이른다.
그 다섯 신에 대해서는 中霤(방의 중앙)()이라는 설과 室中霤라는 설이 있다禮記 月令》‧《論衡 祭意

聖王承天心,制禮分也。
이는 聖王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등급을 정해 를 제정한 것이다.

凡古之卜日者,將以輔道稽疑,示有所先而不敢自專也;
非欲以顛倒之惡而幸安之全。
고대에 날을 점쳐서 정함은장차 正道를 돕고 의심나는 일을 고찰하여우선할 바를 보여주어 감히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이지,
常道에 반대되는 나쁜 행위를 하고서 안전하기를 바라려는 것은 아니다.
▶ 自專 저본에는 專自로 되어 있으나說苑校證에 근거하여 自專으로 바로잡았다.

孔子曰:
「非其鬼而祭之,諂也。」
孔子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사의 대상이 아닌 귀신에게 제사함은 아첨이다.”
▶ 非其鬼而祭之諂也 論語》 〈爲政에 보인다.

是以泰山終不享季氏之旅,易稱東鄰殺牛,不如西鄰之禴祭,蓋重禮不貴牲也,敬實而不貴華。
이 때문에 泰山의 신은 끝내 季氏가 지내는 旅祭를 흠향하지 않았고周易에는 동쪽 이웃이 소를 잡아 성대하게 제사 지냄이 서쪽 이웃의 제사[禴祭]보다 못하다.”라고 하였으니대체로 예의를 중시하되 犧牲을 중시함이 아니고성실을 공경하되 화려함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 泰山終不享季氏之旅 季氏(季康子)가 泰山에 旅祭(諸侯가 자기 나라의 山川에 지내는 제사)를 지내려고 하자孔子께서 冉有에게 태산의 이 林放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가?”라 하셨다임방이 일찍이 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물어 예의 본질을 아는데태산의 신이 예의 근본을 모르는 계씨의 제사를 흠향하지 않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論語 八佾
▶ 東隣殺牛 不如西隣之禴祭 誠意는 없고 단지 성대한 제물만 진설하는 제사가 제물은 간략하지만 정성스럽게 지내는 제사보다 못하다는 뜻이다周易》 旣濟卦의 九五爻辭에 보인다.

誠有其德而推之,則安往而不可。
진실로 道德을 가지고 미루어 넓힌다면 어디로 간들 불가하겠는가?

是以聖人見人之文,必考其質。
이 때문에 聖人이 남의 문채를 보면 항상 그 본질을 고찰하였다.

 



3.

歷山之田者善侵畔,而舜耕焉;
雷澤之漁者善爭陂,而舜漁焉;
東夷之陶器窳,而舜陶焉。
歷山에서 농사짓는 자가 남의 밭두렁을 침탈하기를 잘하였으나 帝舜은 이곳에서 농사지었고,
雷澤에서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 남의 방죽을 쟁탈하기를 잘하였으나 제순은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東夷가 생산하는 陶器는 이지러져서 견고하지 못했으나 제순은 이곳에서 도기를 만들었다.
▶ 歷山 帝舜이 농사를 지은 곳이라고 전해지는 이다본서 권17 雜言〉 18 참고.
▶ 雷澤 帝舜이 물고기를 잡은 곳이라고 전해지는 못이다본래의 이름은 雷夏澤으로河南省 范縣의 남동쪽에 있다管子 版法》‧《史記 五帝本紀
▶ 東夷之陶器窳 東夷族이 빚은 陶器가 이지러져서 견고하지 못함을 말한다동이는 고대 中原 동쪽에 살던 각 종족을 통틀어 이르던 말이다.
▶ 苦窳 陶器 따위가 거칠고 이지러져서 품질이 열악함을 이르는 말이다韓非子 難 1

故耕漁與陶非舜之事,而舜為之,以救敗也。
그러므로 농업·어업·陶業은 帝舜의 사무가 아닌데제순이 그것을 행함은 그로써 도덕의 敗壞를 바로잡으려 함이다.

民之性皆不勝其欲,去其實而歸之華,是以苦窳之器,爭鬥之患起,爭鬥之患起,則所以偷也。
사람의 本性은 모두 그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그의 實質을 버리고 浮華함을 따르매거칠고 열악한 도기를 만들어내고투쟁하는 환난이 일어나고투쟁하는 환난이 일어나면 훔치는 까닭이 된다.
▶ 歸 따르다

所以然者何也?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由離誠就詐,棄樸而取偽也,追逐其末而無所休止。
성실함을 떠나서 속임으로 나아가며朴實을 버리고 詐僞를 취하며그 말단을 추구하여 休止가 없기 때문이다.

聖人抑其文而抗其質,則天下反矣.
聖人이 그들의 文飾을 억제하여 바탕을 高揚하면 천하 사람들이 실박한 본질로 되돌아간다.
▶ 抗 들다들어올리다.

 



4.

《詩》云:
「尸鳩在桑,其子七兮;淑人君子,其儀一兮。」
詩經에 일렀다.
뻐꾸기가 뽕나무 위에 있으니그 새끼가 일곱 마리이네.
선량한 군자여그 威儀가 한결같구나.”
▶ 詩云……其儀一兮 詩經》 〈曹風 鳲鳩에 보인다.

傳曰:
이를 해설한 에 일렀다.
▶ 傳 宋 王應麟의 漢書藝文志考證의 권2에 의하면 이는 魯詩라 하였다.

「尸鳩之所以養七子者,一心也;
君子所以理萬物者,一儀也。
뻐꾸기가 일곱의 새끼를 기르는 방법은 한결같은 마음이요,
君子가 萬物을 다스리는 방법은 한결같은 威儀이다.

以一儀理物,天心也;
五者不離,合而為一,謂之天心。
한결같은 위의로 만물을 다스림은 하늘의 뜻이니다섯 가지를 위배하지 아니하여 하나로 통합함을 하늘의 뜻이라고 이른다.

在我能因自深結其意於一,故一心可以事百君,百心不可以事一君,是故誠不遠也。
내가 자신을 통하여 그 뜻을 하나로 깊이 결속함에 달려 있다그러므로 한결같은 마음은 백 명의 임금을 섬길 수 있고백 갈래의 마음은 한 명의 임금도 섬길 수 없다이렇듯이 誠實은 멀리 있지 않다.

夫誠者一也,一者質也;
君子雖有外文,必不離內質矣。」
성실은 한결같음이고한결같음은 본바탕이니군자가 외면의 문식을 가지더라도 내면의 본질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
▶ 五者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으니혹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하다일설에는 의 五行이라 한다.

 



5.

衛有五丈夫,俱負缶而入井灌韭,終日一區。
나라에 다섯 남자가 있어서 물동이를 짊어지고 샘에 들어가서 물을 길어다가 부추에 물을 주는데 온종일 한 구역에 불과하였다.

鄧析過,下車為教之,曰:
「為機,重其後,輕其前,命曰橋。
終日灌韭,百區不倦。」
鄧析이 지나가다가 수레에서 내려 가르쳐주었다.
기계를 만들되 뒤쪽은 무겁게 하고 앞쪽은 가볍게 만들어야 하니 이름을 라고 합니다.
종일토록 백 구역의 부추에 물을 주어도 피곤하지 않을 터이오.”
▶ 鄧析 춘추시대 나라의 大夫이다본서 권貴德〉 07 참고.
▶ 下車為教之 저본에는 자가 있으나說苑校證에 衍文이라 하였고太平御覽》 510976과 事類賦의 의 인용문에 모두 자가 없음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 橋 桔橰이다곧 두레박틀로두레박질을 쉽게 하도록 만든 장치이다.

五丈夫曰:
다섯 남자가 말하였다.

「吾師言曰:
有機知之巧,必有機知之敗;
我非不知也,不欲為也。
우리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機智가 공교로우면 반드시 기지의 敗壞가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기계를 모름은 아니지만 만들려고 하지 않을 뿐이오.

子其往矣.
그대는 가시오.

我一心溉之,不知改已!」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물을 줄 뿐바꿀 줄 모르오.”

鄧析去,行數十里,顏色不悅懌,自病。
등석이 길을 가기를 수십 리안색이 언짢으며 자신을 탓하였다.

弟子曰:
「是何人也?而恨我君,請為君殺之。」
제자들이 말하였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기에 우리 선생님을 번민하게 한단 말입니까?
선생님을 위하여 죽여버리겠습니다.”

鄧析曰:
「釋之,是所謂真人者也。可令守國。」
등석이 말하였다.
그만두어라.
이 사람들은 이른바 眞人이니나라를 지키게 할 만하다.”

 



6.

禽滑釐問於墨子曰:
「錦繡絺紵,將安用之?」
禽滑釐가 墨子에게 물었다.
수놓은 비단과 곱게 짠 葛布를 어디에 쓰시렵니까?”
▶ 禽滑()釐 전국시대 나라 사람이다처음에 子夏에게 受業하였고뒤에 墨子의 제자가 되었다墨子 備城門

墨子曰:
묵자가 대답하였다.

「惡,是非吾用務也。
이것은 내가 힘쓸 일이 아니다.

古有無文者得之矣,夏禹是也。
고대에 화려하게 꾸미지 않음을 터득한 자가 있으니夏禹가 그분이다.

卑小宮室,損薄飲食,土階三等,衣裳細布;
當此之時,黻無所用,而務在於完堅。
집은 낮고 작으며음식은 줄여 변변찮으며세 층의 흙 계단만 쌓고의복은 작은 베 조각을 이어 만들었다.
이런 때에는 黼黻을 쓸 곳이 없고 완전하고 견고함에 힘썼다.
▶ 衣裳細布 : ‘細布로 지었다.’로 번역하면 좋겠으나細布는 가는 실로 곱게 짠 베이기 때문에 질박함과는 맞지 않아 이렇게 번역하였다.
▶ 黻 저본에는 로 되어 자가 없으나群書拾補에 “‘자가 빠졌으니太平御覽》 820에 자가 있다.”라고 하였다.
說苑校證도 이를 인정하여 보충하였으므로 이를 따라 해석하였다.
는 옛날 禮服에 흰색과 검정색을 섞어서 도끼[모양을 수놓아 일을 결단하여 처리하는 뜻을 상징하였다.
은 예복에 검정색과 청색을 섞어 자 모양을 수놓은 문양을 이른다書經 虞書 益稷

殷之盤庚,大其先王之室,而改遷於殷,茅茨不剪,采椽不斲,以變天下之視;
當此之時,文采之帛,將安所施?
나라의 盤庚은 선왕이 이룩한 王室을 확대하고으로 천도하고띠로 이은 추녀의 끝을 가지런하게 자르지 않고떡갈나무 서까래를 깎아 다듬지 아니하여천하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이런 때에 화려한 비단을 어디에 가져다 쓰겠는가?
▶ 盤庚 나라 제17대 왕이다湯王의 9대손이고祖丁의 아들인데형 陽甲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귀족들의 사치 풍조를 혁신하였고수재를 피해 에서 으로 천도하여 나라를 중흥하였다書經 商書 盤庚》‧《史記 殷本紀
▶ 殷 商王 盤庚이 에서 새로 옮긴 國都이다지금의 河南省 安陽市에 있었다殷墟로 일컬어지며이곳으로 遷都한 이후를 은나라로 불렀다이곳에서 273년 동안 존속하였다書經 商書 盤庚》‧《詩經 大雅 文王》‧《孟子 公孫丑 上
▶ 采椽不斲 采椽은 떡갈나무[櫟木]나 상수리나무[柞木]로 만든 서까래이다떡갈나무나 상수리나무로 만든 서까래를 깎아 다듬지 않았다는 뜻으로검소함을 이른다韓非子 五蠹》‧《史記 太史公自序

夫品庶非有心也,以人主為心,苟上不為,下惡用之?
백성[品庶]은 주견이 없어임금의 행위를 마음에 두므로 만일 윗사람이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어찌 그것을 쓰겠는가?

二王者以化身先于天下,故化隆於其時,成名於今世也。
두 帝王은 자신을 교화하기를 천하 사람보다 앞에 두었으므로그 당시에 교화가 융성하고명성을 이루어 지금까지 전하여 온다.
▶ 化 저본에는 자가 있으나群書拾補에 “‘자는 衍文이다.”라고 하였으나저본에 따라 해석하였다.

且夫錦繡絺紵,亂君之所造也,其本皆興於齊,景公喜奢而忘儉,幸有晏子以儉鐫之,然猶幾不能勝。夫奢安可窮哉?
게다가 수놓은 비단과 곱게 짠 葛布는 昏君이 만든 것으로그 근원은 모두 나라에서 시작되었으니景公이 사치를 좋아하여 검소함을 잊었으나다행히 晏子가 있어서 검약을 경계하여 권면하였으나그럼에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였으니사치하는 풍조가 어찌 다하였겠는가?
▶ 鐫 : ‘경계하여 勸勉하다의 뜻이다.

紂為鹿臺糟丘,酒池肉林,宮牆文畫,彫琢刻鏤,錦繡被堂,金玉珍瑋,婦女優倡,鐘鼓管絃,流漫不禁,而天下愈竭.
殷紂는 鹿臺槽丘酒池肉林을 만들고궁궐 담에 그림을 그리며기둥과 들보를 아름답게 조각하고수놓은 비단이 을 덮으며金玉 같은 珍寶가 그득하고미녀와 광대鐘鼓와 管絃樂器를 질탕하게 울리고 방종한 생활을 금하지 않아 천하의 재력이 더욱 고갈되었다.
▶ 鹿臺糟丘酒池肉林 鹿臺는 본서 권15 指武〉 16 참고.
糟丘는 술지게미가 쌓여 언덕을 이루었다는 뜻으로술을 아주 많이 빚어 지나치게 술에 취해 지냈음을 극도로 말한 것이다尸子 下》‧《韓詩外傳 4
酒池肉林은 술로 연못을 삼고고기를 매달아 숲으로 삼았다는 뜻으로지극히 호화롭고 사치한 생활을 이른다韓非子 喻老》‧《史記 殷本紀
▶ 隨侯之珠 본서 권17 雜言〉 10 참고.

故卒身死國亡,為天下戮,非惟錦繡絺紵之用耶?
그 때문에 끝내 자신은 죽고 나라는 멸망하여 천하 사람에게 치욕을 받았으니수놓은 비단과 곱게 짠 葛布의 사용에 기인함이 아니겠는가?

今當凶年,有欲予子隨侯之珠者,不得賣也,珍寶而以為飾;
又欲予子一鍾粟者,得珠者不得粟,得粟者不得珠,子將何擇?」
지금 흉년을 당하여 어떤 이가 너에게 隨侯의 구슬을 주려고 하되팔아서는 안 되고 珍寶로 여겨 장식으로 삼으라고 하고,
또 어떤 이가 너에게 1의 곡식을 주려고 하되구슬을 얻은 자는 곡식을 얻지 못하고곡식을 얻은 자는 구슬을 얻지 못한다고 하면너는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 不得賣也 저본에는 자가 없으나說苑校證에 인용한 太平御覽과 事類賦》 에 不得賣也’ 앞에 자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채용하지 않았다.
▶ 鍾 고대의 容量 단위이다춘추시대 나라 公室에서 사용한 용량은 6斛 4였다春秋左氏傳 昭公 3

禽滑釐曰:
「吾取粟耳,可以救窮。」
금골리가 말하였다.
저는 곡식을 취할 뿐이니그것으로 곤궁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墨子曰:
「誠然,則惡在事夫奢也?
長無用,好末淫,非聖人所急也。
묵자가 말하였다.
진실로 그렇다면 어찌 處事에 저 사치이겠는가?
장구히 쓸모가 없고 말단의 분수에 지나침은 성인이 긴요하게 여긴 바가 아니다.

故食必常飽,然後求美;衣必常暖,然後求麗;居必常安,然後求樂。
그러므로 식사는 항상 배가 부른 뒤에야 맛있음을 찾고의복은 항상 따뜻한 뒤에야 화려함을 찾으며거처는 항상 편안한 뒤에야 즐거움을 찾는다.

為可長,行可久,先質而後文,此聖人之務。」
행위가 오래가게 하려면 질박함을 우선하고 문식을 뒤에 구하여야 하니이것이 성인이 힘쓸 일이다.”

禽滑釐曰:
「善。」
금골리가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7.

秦始皇既兼天下,大侈靡,即位三十五年猶不息,治大馳道,從九原抵雲陽,塹山堙谷直通之。
秦 始皇이 천하를 겸병하고 나서 크게 사치하여즉위한 지 35년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으니크게 馳道를 닦아서 九原에서 雲陽에 닿도록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워 直通하게 하였다.
▶ 治大馳道 車馬가 달릴 수 있는 큰길을 닦았다는 말이다여기서의 馳道는 특히 天子가 달리는 길을 이른다史記》 〈秦始皇本紀에는 자가 없다.
▶ 從九原抵雲陽 九原은 秦代에 둔 郡 이름으로治所는 지금의 內蒙古 烏拉特前旗 동남쪽의 堡子灣 古城에 있었다史記 秦本紀》‧《漢書 匈奴傳》 雲陽은 진대의 邑 이름인데漢代에는 을 두었다지금의 陝西省 淳化縣 서북쪽에 있었다史記 秦始皇本紀》‧《漢書 地理志 上

厭先王宮室之小,乃於豐鎬之間,文武之處,營作朝宮,渭南山林苑中.
先王의 宮室이 협소함에 염증을 내어과 鎬京 사이 周 文王과 武王이 거처하던 渭南의 山林苑에 王宮을 지었다.
▶ 豐鎬 : ‘은 으로도 쓴다본서 권17 雜言〉 155) 참고.
▶ 營作朝宮渭南山林苑中 제왕의 궁전[朝宮]을 渭水 가의 남산 林苑에 지었다는 말이다.
史記》 〈秦始皇本紀에는 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으로 되어 있다.

作前殿阿房東西五百步,南北五十丈,上可坐萬人,下可建五丈旗.
正殿(前殿)인 阿房宮을 지었는데東西의 길이는 500남북의 넓이는 50으로그 위에는 1만 명이 앉을 수 있고아래에는 5丈 길이의 旗幟를 세울 수 있었다.

周為閣道自殿直抵南山之嶺以為闕,為複道,自阿房渡渭水屬咸陽,以象天極閣道絕漢,抵營室也。
사방 둘레에 閣道를 만들어 궁전 아래에서 南山의 정상에 닿도록 門闕을 만들고複道를 만들어 아방궁에서 渭水를 건너 咸陽에 닿게 하여 天極星과 閣道星이 은하수를 가로질러 營室星에 닿아 있는 天體를 상징하였다.
▶ 閣道 樓閣과 누각 사이에 통행할 수 있도록 나무로 짜서 공중에 가설한 길이다複道라고도 한다史記 秦始皇本紀
▶ 闕 終南山의 봉우리를 門闕로 삼았다는 말이다문궐은 古代에 宮殿官廳祠廟陵墓의 앞에 雙闕로 만든 출입구를 이른다周易 說卦傳
▶ 複道 閣道와 같다
▶ 天極閣道 둘 다 별 이름이다.
天極은 奎宿에 속한 별로紫宮 뒤쪽에 여섯 별로 이루어져 있다閣道는 北極星이다史記 天官書
▶ 絶漢抵營室也 銀河를 가로질러 營室星에 닿았다는 말이다.
영실성은 이십팔수의 하나로玄武 7宿 중 제6宿이다室宿定星이라고도 한다周禮 考工記 輈人

又興驪山之役,錮三泉之底.
또 驪山에 陵墓 공사를 일으켜 三泉의 밑바닥에 구리를 녹여 부어 막았다.
▶ 興驪山之役 錮三泉之底 秦始皇이 자기의 지하 陵墓를 조성한 일을 말한다驪山은 陝西省 西安市 동쪽 臨潼縣 남쪽에 있다.
三泉은 지하 3층 밑의 으로 곧 지하의 아주 깊은 곳을 이른다진시황은 이 밑에 구리를 녹여 부어 견고한 을 만들었다 한다史記 秦始皇本紀

關中離宮三百所,關外四百所,皆有鐘磐帷帳,婦女倡優。
關中에 있는 離宮 300곳과 關外에 있는 별궁 400곳에 모두 鐘磬과 장막을 설치하고 미녀와 광대를 배치하였다.

立石闕東海上朐山界中,以為秦東門。
東海 가의 朐山 경계에 石闕을 세워 진나라의 東門으로 삼았다.
▶ 立石闕東海上朐山界中 石闕을 동해 가의 朐山 경계에 세웠다는 말이다.
石闕은 주로 사당이나 陵墓 앞에 돌로 높이 쌓은 로서그 사람의 官爵功績을 새기거나 裝飾用으로 세웠다구산은 지금의 江蘇省 連雲港市 서쪽에 있는 錦屛山이다.

於是有方士韓客侯生,齊客盧生,相與謀曰:
이때 方士인 나라 사람인 侯生과 나라 사람인 盧生이 상의하였다.
▶ 韓客侯生 전국시대 나라 출신의 侯氏 姓을 가진 사람인데행적은 미상이다.
▶ 齊客盧生 전국시대 나라 출신의 盧氏 姓을 가진 사람인데행적은 미상이다史記》 〈秦始皇本紀에는 燕人盧生으로 되어 있다.

「當今時不可以居.
이때를 당하여 살 수가 없다.

上樂以刑殺為威,天下畏罪持祿莫敢盡忠.
皇上은 형벌과 살인으로 위엄을 보이기를 즐기고 신하들은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
▶ 天下畏罪 저본에는 자가 있으나說苑校證에 “‘자 아래에 舊本에는 자가 있다.
살펴보건대, ‘자와 자가 상대하여 짝을 이룬 글이니 자가 있음은 부당하다群書治要에 의거하여 산삭하였다.”라고 함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上不聞過而日驕,下懾伏以慢欺而取容,諫者不用而失道滋甚。
황상은 자신의 잘못을 듣지 못하여 날로 교만해지고신하들은 두려워 복종하면서 태만과 속임수로 아첨을 떨어 용납되기를 구하고하는 사람을 重用하지 않아 道義를 상실함이 더욱 심하다.

吾黨久居,且為所害。」
우리가 오래 머물면 곧 살해될 터이다.”

乃相與亡去。
그러고는 함께 도망쳐버렸다.

始皇聞之大怒,曰:
「吾異日厚盧生,尊爵而事之,今乃誹謗我.
吾聞諸生多為妖言以亂黔首。」
진 시황이 이 사실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지난날 노생을 후하게 대우하여 벼슬을 높여주고 섬겼는데지금 나를 비방하는구나.
내가 들으니儒生들이 妖言을 많이 만들어 백성을 혼란시킨다고 한다.”

乃使御史悉上諸生,諸生傳相告,犯法者四百六十餘人,皆坑之。
그리하여 御使를 파견하여 유생들을 모두 조사하여 심문하게 하니유생들이 서로 告引하여 법을 범한 사람이 460여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 悉上 저본에는 悉上으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悉上은 史記에 悉案問으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悉案問으로 해석하였다.
▶ 悉上諸生 저본에는 悉上이나說苑校證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 相告 저본에는 相告이나說苑校證에 史記에는 ’ 아래에 자가 있으니마땅히 보충해야 한다.”라고 함을 따라 해석하였다.

盧生不得,而侯生後得,始皇聞之,召而見之.
노생은 잡지 못하였고후생은 뒤에 잡으니시황이 이를 듣고 후생을 불러 직접 만나고자 하였다.

升阿東之臺,臨四通之街,將數而車裂之。
阿東臺에 올라 사통팔달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후생의 죄를 열거하고 車裂刑에 처하려고 하였다.

始皇望見侯生,大怒曰:
「老虜不良,誹謗而主,迺敢復見我!」
시황이 후생을 멀리서 바라보고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늙은 도적놈이 不良하여 네 임금을 비방하고서 감히 나를 다시 볼 수 있느냐!”

侯生至,仰臺而言曰:
「臣聞知死必勇.
陛下肯聽臣一言乎?」
후생이 당도하여 누대를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이 듣기에죽을 줄을 알면 용감해지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陛下께서는 신의 한마디 말씀을 들어주시겠습니까?”

始皇曰:
「若欲何言?
言之!」
시황이 말하였다.
너는 무슨 말을 하려느냐?
말해보아라.”

侯生曰:
후생이 말하였다.

「臣聞禹立誹謗之木,欲以知過也。
신이 듣기에夏禹가 誹謗之木을 세움은 자기의 잘못을 알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 誹謗之木 백성이 정치의 잘못을 써놓게 하려고 세워둔 表木이다여기서는 禹王이 세웠다고 했으나 帝舜이 세웠다고 한다呂氏春秋 自知

今陛下奢侈失本,淫泆趨末,宮室臺閣,連屬增累,珠玉重寶,積襲成山,錦繡文采,滿府有餘,婦女倡優,數巨萬人,鍾鼓之樂,流漫無窮,酒食珍味,盤錯於前,衣服輕暖,輿馬文飾,所以自奉,麗靡爛熳,不可勝極。
그런데 폐하께서는 사치하여 근본을 잃고음란하고 방종하여 枝末을 추구하며궁실과 臺閣이 중첩되어 서로 이어지고珠玉과 珍寶가 쌓여 산을 이루며화려한 색채로 수놓은 비단이 창고에 가득 차 넘치고미녀와 광대의 수가 만 명이나 되며鐘鼓의 연주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지고맛있는 술과 음식이 앞에 널려 있으며의복은 가볍고 따뜻하며수레와 말은 아름답게 장식하여자신을 봉양하는 물품이 화려하고 찬란하여 이루 다하지 않습니다.

黔首匱竭,民力單盡,尚不自知,又急誹謗,嚴威克下,下喑上聾,臣等故去。
백성의 생활은 궁핍하고 民力은 모두 고갈되었는데 아직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또 비방하는 말에 조바심을 내어 엄혹한 형벌로 아랫사람들을 제압하매아래의 臣民은 벙어리가 되고위의 황상은 귀머거리가 되었으므로 신 등이 떠났습니다.
▶ 單 : ‘다하다의 뜻으로과 통용이다.

臣等不惜臣之身,惜陛下國之亡耳。
신 등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폐하의 나라가 망함을 애석하게 여길 뿐입니다.

聞古之明王,食足以飽,衣足以暖,宮室足以處,輿馬足以行,故上不見棄於天,下不見棄於黔首。
듣기에고대의 현명한 임금은 음식은 배가 부르면 그만이고옷은 몸이 따뜻하면 그만이며궁실은 거처할 만하면 그만이고수레와 말은 길을 가기만 하면 그만이라 여겼으매위로는 하늘에게 버림을 받지 않고아래로는 백성에게 버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堯茅茨不剪,采椽不斲,土階三等,而樂終身者,俗以其文采之少,而質素之多也。
帝堯는 띠로 이은 추녀의 끝을 가지런하게 자르지 않고떡갈나무 서까래를 깎아 다듬지 않으며세 층의 흙 계단을 쌓은 집에서 살았으나종신토록 즐거웠음은 그의 文采는 적고 質素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丹朱傲虐好慢淫,不修理化,遂以不升。
丹朱는 오만하고 포학하며 방탕함을 좋아하여 政事와 敎化를 修行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帝位에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 丹朱 본서 권18 辨物〉 16 참고.

今陛下之淫,萬丹朱而千昆吾桀紂,臣恐陛下之十亡也,而曾不一存。」
현재 폐하의 방탕함은 단주보다 만 배나 더하고昆吾와 桀紂보다 천 배나 더하니신은 폐하께서 열 가지 망할 행위를 하되 한 가지도 존립할 행위를 한 적이 없음을 걱정합니다.”
▶ 昆吾 시대에 있었던 部落 이름이다己姓으로 처음에 濮陽(지금의 河南省 濮陽市)에 봉해졌다하나라가 하자 昆吾가 夏伯이 되어 옛 (지금의 河南省 許昌市)로 옮겼다가 뒤에 商湯에게 멸망되었다그 부락 사람들은 陶器의 제조와 銅器의 주조에 뛰어났다고 한다詩經 商頌 長發

始皇默然久之,曰:
「汝何不早言?」
시황이 침묵하기를 오래더니말하였다.
너는 어찌 일찌감치 말하지 않았느냐?”

侯生曰:
후생이 말하였다.

「陛下之意,方乘青雲飄搖於文章之觀,自賢自健,上侮五帝,下凌三王,棄素樸,就末技,陛下亡徵見久矣。
폐하의 意氣가 한창 靑雲을 타고 하늘에 올라 화려하게 꾸민 宮觀에 맴돌고스스로 현명하고 스스로 굳세다고 여기어위로는 五帝를 업신여기고아래로는 三王을 능멸하며소박함을 버리고 말단의 방종을 추구하니 폐하의 멸망할 징조가 나타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 五帝 본서 권14 至公〉 05 참고.
▶ 三王 여러 설이 있으나주로 夏禹商湯周 文王 또는 武王을 이른다孟子 告子 下》‧《春秋穀梁傳 隱公 8

臣等恐言之無益也,而自取死,故逃而不敢言。
신 등은 말씀드려 봤자 유익함은 없고스스로 죽음을 얻을까 두려우매 도망치고 감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今臣必死,故為陛下陳之,雖不能使陛下不亡,欲使陛下自知也。」
지금 신은 틀림없이 죽을 터이매 폐하를 위해 말씀드리니비록 폐하가 망하지 않게 하지는 못하더라도폐하께서 스스로 아시도록 하려 합니다.”

始皇曰:
「吾可以變乎?」
시황이 말하였다.
내가 바르게 변할 수 있겠느냐?”

侯生曰:
「形已成矣,陛下坐而待亡耳!
若陛下欲更之,能若堯與禹乎?
不然無冀也。
陛下之佐又非也,臣恐變之不能存也。」
후생이 말하였다.
형세가 벌써 이루어졌으니폐하께서는 앉아서 멸망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만일 폐하께서 바르게 고치려고 하신다면 능히 帝堯와 夏禹처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폐하의 보필하는 신하들 또한 그릇되니신은 폐하가 변하여도 존립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 冀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로 고친 것을 따라 로 바로잡았다.

始皇喟然而歎,遂釋不誅。
시황이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는 마침내 후생을 誅殺하지 않았다.

後三年始皇崩;二世即位,三年而秦亡。
3년 후에 시황이 붕어하고二世가 즉위했으나, 3년이 지나 진나라는 멸망하였다.

 



8.

魏文侯問李克曰:
「刑罰之源安生?」
魏 文侯가 李克에게 물었다.
형벌의 근원은 어디에서 생기오?”
▶ 李克 본서 권臣術〉 05 참고.

李克曰:
이극이 말하였다.

「生於姦邪淫泆之行。
간사하고 淫佚한 행위에서 생깁니다.

凡姦邪之心,飢寒而起,淫泆者,久飢之詭也;
간사한 마음은 굶주림과 추위에서 발생하고음일은 과도하게 꾸미고 사치하여 미혹된 데서 연유합니다.
▶ 久飢之詭 저본의 이 구절은 이해할 수 없다.
說苑校證에 群書治要의 인용문에 文飾之耗로 되어 있다.”라고 하고또 程翔의 說苑譯注에 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 文餝之耗로 되어 있는데, ‘은 의 異體字이다.”라고 함을 따라 번역하였다.

彫文刻鏤,害農事者也;
錦繡纂組,傷女工者也。
들보와 기둥을 조각하고 깎음은 농사를 방해하고,
아름다운 비단을 짬은 女工을 해칩니다.

農事害,則飢之本也;女工傷,則寒之源也。
농사를 해침은 굶주림을 부르는 근본이고,
女工을 손상시킴은 추위에 떨게 하는 근원입니다.

飢寒並至而能不為姦邪者,未之有也;
男女飾美以相矜而能無淫泆者,未嘗有也。
굶주림과 추위가 함께 닥쳤는데도 간사한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남녀가 아름답게 꾸밈을 자랑하면서도 음일한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故上不禁技巧,則國貧民侈,國貧民侈則貧窮者為姦邪,而富足者為淫泆,則驅民而為邪也;
民以為邪,因之法隨,誅之不赦其罪,則是為民設陷也。
그러므로 임금이 技巧를 금지하지 않으면 나라는 가난하고 백성은 사치하게 되고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이 사치하면貧窮한 사람이 간사한 짓을 하고 부유한 사람이 음일한 행위를 하여백성을 몰아 사악한 짓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백성이 사악한 짓을 함에 그대로 법에 따라 처벌하여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백성에게 함정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 技巧 奇技淫巧의 준말이다곧 지나치게 기교를 부려 쓸 데 없는 물건을 만듦을 말한다書經 周書 泰誓 下
▶ 〈民侈則貧〉 저본에는 이 네 글자가 없으나群書治要에 의거하여 보충한 說苑校證을 따라 보충하였다.

刑罰之起有原,人主不塞其本,而替其末,傷國之道乎?」
형벌의 발생에는 근원이 있는데임금이 그 근원은 막지 않고 그 지엽적인 것만 폐기한다면 나라를 손상하는 길일 것입니다.”

文侯曰:
「善。
以為法服也。」
문후가 말하였다.
좋은 말이오.
이 말을 準則으로 삼겠소.”
▶ 法服 본래는 옛날 禮法의 규정에 근거하여 등급이 각각 다른 服飾을 말한다여기서는 準則의 뜻으로 썼다孝經 經1

 



9.

秦穆公閒,問由余曰:
「古者明王聖帝,得國失國當何以也?」
秦 穆公이 由余에게 물었다.
옛날의 현명하고 거룩한 帝王이 나라를 얻음과 나라를 잃음은 무엇 때문이오?”
▶ 閒 저본에는 자가 있으나群書拾補에 자는 衍文이라 하였고程翔의 說苑譯注에 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 자가 없다.”라고 함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 由余 본서 권尊賢〉 02 참고.

由余曰:
「臣聞之,當以儉得之,以奢失之。」
유여가 대답하였다.
이 알기로는당연히 儉素함으로 나라를 얻고奢侈함으로 나라를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穆公曰:
「願聞奢儉之節。」
목공이 말하였다.
사치와 검소의 節目을 듣고 싶소.”

由余曰:
유여가 말하였다.

「臣聞堯有天下,飯於土簋,啜於土甁,其地南至交趾,北至幽都,東西至日所出入,莫不賓服。
이 듣기에帝堯가 천하를 소유했을 적에 土簋에 밥을 담아 먹고土甁에 물을 담아 마셨지만 그의 疆域은 남쪽으로는 交趾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幽都에 이르렀으며동쪽과 서쪽은 해가 뜨고 지는 데까지 이르러 누구도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土簋 진흙을 빚어 만든 그릇이다는 옛날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대부분 둥근 모양이다韓非子 十過》‧《史記 太史公自序
▶ 土甁 진흙으로 빚어 만든 그릇으로물이나 국을 담는다.
▶ 交趾 중국 남부의 五嶺 남쪽 지역을 두루 가리킨다漢 武帝 때에 두었던 13刺史 관할의 하나로지금의 廣東廣西 대부분 지역과 越南의 北部中部가 이에 해당한다後漢 말기에 交州로 고쳤다禮記 王制》‧《漢書 地理志 8》‧《後漢書 郡國志 郡國 5
▶ 幽都 북방의 먼 변방 지역이다書經 虞書 堯典

堯釋天下,舜受之,作為食器,斬木而裁之,銷銅鐵,脩其刃,猶漆黑之以為器。諸侯侈國之不服者十有三。
제요가 천하를 禪讓하고 帝舜이 이어받아 食器를 만들되 나무를 베어 제작하고구리와 쇠를 녹여 칼을 만들며게다가 검은 옻칠을 하여 器物을 만들자 諸侯들이 사치하여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13국이었습니다.

舜釋天下而禹受之,作為祭器,漆其外而朱畫其內,繒帛為茵褥,觴勺有彩,為飾彌侈,而國之不服者三十有二。
제순이 천하를 선양함에 夏禹가 이어받아 祭器를 만들되 겉은 검은 옻칠을 하고 안은 붉은색을 칠하였고비단으로 까는 자리를 만들었으며술잔과 구기는 채색으로 장식하여 더욱 사치스럽게 꾸미자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32국이었습니다.
▶ 茵褥 침상에 까는 자리이다抱朴子 譏惑

夏后氏以沒,殷周受之,作為大器,而建九傲,食器彫琢,觴勺刻鏤,四壁四帷,茵席彫文,此彌侈矣,而國之不服者五十有二。
夏后氏가 몰락한 뒤에 나라와 나라가 뒤를 이어 大路(大輅)와 九旒를 만들고식기에 조각을 하며술잔과 구기에 무늬를 아로새기고사면의 벽에 휘장을 치며까는 자리에는 꽃무늬를 수놓아 이처럼 더욱 사치하니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52국이었습니다.
▶ 器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韓非子에 로 되어 있음 따라 로 해석하였다.
는 와 통용이다大輅는 천자가 타는 수레이다.
▶ 傲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韓非子에 로 되어 있음을 따라 로 해석하였다.
九旒는 깃발 위에 아홉 가닥의 기드림이다. ‘는 로도 쓴다.

君好文章,而服者彌侈,故曰儉其道也。」
임금이 사치스럽게 꾸미기를 좋아하면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욱 사치하는 법이매검소함을 마땅한 도리라고 합니다.”

由余出,穆公召內史廖而告之曰:
「寡人聞鄰國有聖人,敵國之憂也。
今由余聖人也,寡人患之。
吾將奈何?」
유여가 나가자목공이 內史廖를 불러 유여와 나눈 대화를 말해주었다.
寡人이 들으니이웃나라에 聖人이 있으면 적국의 걱정거리라고 했소.
그런데 유여는 성인이라 과인은 걱정이 되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오?”
▶ 內史廖 內史는 벼슬 이름이고는 王子廖이다본서 권尊賢〉 02 참고.

內史廖曰:
「夫戎辟而遼遠,未聞中國之聲也.
君其遺之女樂以亂其政,而厚為由余請期,以疏其間.
彼君臣有間,然後可圖。」
내사요가 말하였다.
西戎은 외지고 아주 멀어서 中國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을 터입니다.
임금께서 여자 樂工을 보내시어 그 나라의 정치를 어지럽게 하시고유여를 厚待하여 이곳에 오래 머물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그들의 君臣 사이를 소원하게 하십시오.
저들 군신에 간격이 생긴 후에는 도모할 수 있을 터입니다.”
▶ 請期 이곳에 장기간 머물기를 西戎의 임금에게 요청하게 한다는 말이다.

君曰:
「諾。」
목공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소.”

乃以女樂三九遺戎王,因為由余請期;
戎王果見女樂而好之,設酒聽樂,終年不遷,馬牛羊半死。
이에 여자 악공 16명을 서융 왕에게 보내고이하여 유여를 오래 머물게 해달라고 요청하니,
융왕은 과연 여자 악공을 보고는 좋아하여 술자리를 열고 음악을 듣느라 한 해가 다 가도록 遊牧하는 장소를 옮기지 않아 말양이 반이나 죽었다.
▶ 三九 저본에는 三九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三九는 史記》 〈秦本紀에 二八로 되어 있으니옳다고대의 춤은 모두 8명으로 춤추는 대열을 만든다.”라고 하였고說苑校證에는 韓非子》 〈十過와 呂氏春秋》 〈不拘에 二八로 되어 있고韓詩外傳》 8에는 二列로 되어 있으니모두 같은 뜻이다.”라고 함을 따라 二八로 해석하였다.

由余歸諫,諫不聽,遂去,入秦,穆公迎而拜為上卿。
유여가 귀국하여 하였으나 간언을 듣지 않으니마침내 그곳을 떠나 나라로 들어왔고목공은 그를 맞이하여 上卿에 임명하였다.

問其兵勢與其地利,既已得矣,舉兵而伐之,兼國十二,開地千里。
서융의 兵勢와 地利를 물어 알고 나서군대를 출동시켜 토벌하여 열두 나라를 겸병하고 천 리의 영토를 개척하였다.

穆公奢主,能聽賢納諫,故霸西戎,西戎淫於樂,誘於利,以亡其國,由離質樸也。
진 목공은 원래 사치하는 군주였지만 어진 신하의 納諫을 들었으매 서융 지역의 霸子가 되었고서융은 음악에 빠지고 이익에 유혹당하여 나라를 망치고 말았으니質朴의 원칙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10.

經侯往適魏太子,左帶羽玉具劍,右帶環佩,左光照右,右光照左;
坐有頃,太子不視也,又不問也。
經侯가 魏 太子에게 갈 적에 왼쪽에는 으로 장식한 寶劍을 차고오른쪽에는 環佩를 차고 있어서 왼쪽의 광채는 오른쪽을 비치고오른쪽의 광채는 왼쪽을 비쳐 번쩍거렸다.
한참 동안 앉아 있었으나 태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또 묻지도 않았다.
▶ 經侯往適魏太子 經侯는 사람 이름인데행적은 미상이다魏太子의 행적도 미상이다.
▶ 羽 저본에는 자가 있으나說苑校證에 藝文類聚》 6067과 太平御覽》 692의 인용문에 모두 자가 없다.”라고 함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 環佩 저본에는 珮環으로 되어 있으나說苑校證에 의거하여 環佩로 바로잡았다.

經侯曰:
「魏國亦有寶乎?」
경후가 말하였다.
위나라에도 보물이 있습니까?”

太子曰:
「有。」
태자가 말하였다.
보물이 있지요.”

經侯曰:
「其寶何如?」
경후가 말하였다.
그 보물은 어떤 것입니까?”

太子曰:
「主信臣忠,百姓上戴。此魏之寶也。」

태자가 말하였다.
임금은 信義가 있고 신하는 충성스러워서 백성이 임금을 떠받들고 있으니이것이 위나라의 보물입니다.”
▶ 戴上 저본에는 上戴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太平御覽》 146에 戴上으로 되어 있고또 두 군데의 인용문에도 모두 같다.”라고 하였고說苑校證에는 藝文類聚의 인용문에 戴之로 되어 있어서 群書拾補의 교정을 따른다.”라고 함을 따라 바로잡았다.

經侯曰:
「吾所問者,非是之謂也。
乃問其器而已。」
경후가 말하였다.
내가 물은 것은 이것은 말한 것이 아닙니다.
곧 어떤 器物인지를 물었을 뿐입니다.”

太子曰:
태자가 말하였다.

「有。
있지요.

徒師沼治魏而市無豫賈,郤辛治陽而道不拾遺,芒卯在朝而四鄰賢士無不相因而見。
徒師沼가 위나라를 다스릴 적에 시장에 값을 속이는 행위가 없었고郄辛이 陽邑을 다스릴 적에 길에 흘린 물건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었으며芒卯가 조정에 있을 적에 四鄰의 賢士에 서로 통하여 뵙지 않은 사람이 없었소.
▶ 徒師沼 나라 大夫인 듯한데행적은 미상이다.
▶ 豫賈 허위로 높은 값을 정하여 고객을 속이는 행위를 말한다荀子 儒效
▶ 郄辛治陽 郄辛은 나라 大夫인 듯한데행적은 미상이다.
은 地名인데王鍈의 說苑全譯의 에는, “전국시대 나라의 城邑으로지금의 山西省 太原市 서북쪽 45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 芒卯 본서 권10 敬愼〉 18 참고.

此三大夫乃魏國之大寶。」
이 세 분의 大夫는 바로 위나라의 큰 보물입니다.”

於是經侯默然不應,左解玉具,右解環佩,委之坐,愆然而起,默然不謝,趨而出,上車驅去。
이에 경후가 잠자코 대답하지 않더니왼쪽에 찼던 옥으로 장식한 검을 풀고오른쪽에 찼던 환패를 풀어서 자리에 놓아두고 겸연쩍어하며 일어나 묵묵히 인사말도 하지 않은 채 달려나가 수레를 타고 말을 몰아 가버렸다.

魏太子使騎操劍佩逐與經侯,使告經侯曰:
「吾無德所寶,不能為珠玉所守;
此寒不可衣,飢不可食,無為遺我賊。」
위 태자가 騎士를 시켜 검과 환패를 가지고 쫓아가서 경후에게 돌려주게 하고경후에게 말하게 하였다.
나는 보물로 삼을 이 없어서 이런 珠玉을 지킬 수 없소.
이것들은 추워도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없고배가 고파도 먹을 수가 없으니나에게 災害를 남겨주지 말라.”

於是經侯杜門不出,傳死。
이에 경후가 杜門不出하다가 부끄러워하며 죽었다.
▶ 傳死 저본에는 傳死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는 “‘傳死’ 두 글자는 잘못되었으니당연히 衍文이다.”라고 하였으나 說苑校證에 范本에 傳死가 愧死로 되어 있으니이것이 옳다.”라고 함을 따라 해석하였다.

 



11.

晉平公為馳逐之車,龍旌象色,挂之以犀象,錯之以羽芝.
晉 平公이 짐승을 쫓는 사냥용 수레를 만들어 여러 색깔로 용을 그린 깃발을 꽂고코뿔소의 뿔과 상아로 만든 장식물을 걸었으며깃털을 꽂아 장식한 수레 뚜껑을 씌웠다.
▶ 羽芝 아름다운 깃털로 장식한 수레의 뚜껑이다.
는 버섯 뚜껑처럼 생긴 물건을 가리키는데주로 수레 뚜껑[車蓋]을 지칭한다文選 甘泉賦

車成題金千鎰,立之於殿下,令群臣得觀焉。
수레가 완성된 뒤에 값이 황금 천 이라고 써서 궁전 아래에 세워두고는 群臣에게 관람하도록 하였다.
▶ 鎰 고대에 사용하던 무게의 단위이다. 20이라는 설과 24냥이라는 설이 있다墨子 號令》‧《國語 晉語 2

田差三過而不一顧,平公作色大怒,問田差
「爾三過而不一顧,何為也?」
田差가 세 차례나 지나가면서 한 번도 수레를 돌아보지 않으니평공이 안색을 바꾸면서 크게 노하여 전차에게 물었다.
네가 세 차례나 한 번도 수레를 돌아보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냐?”

田差對曰:
「臣聞說天子者以天下,說諸侯者以國,說大夫者以官,說士者以事,說農夫者以食,說婦姑者以織。
桀以奢亡,紂以淫敗,是以不敢顧也。」
전차가 대답하였다.
이 듣기에天子를 설득하는 자는 천하를 사용하고諸侯를 설득하는 자는 나라를 사용하고大夫를 설득하는 자는 관직을 사용하고를 설득하는 자는 사무를 사용하고農夫을 설득하는 자는 밥을 사용하고婦女子를 설득하는 자는 길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夏桀은 사치 때문에 멸망하였고殷紂는 음란 때문에 敗亡하였으니이 때문에 감히 수레를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 田差 당연히 晉 平公의 신하이나 행적은 미상이다.

平公曰:
「善。」
乃命左右曰:
「去車!」
평공이
좋은 말이오.”라고 하고는 곧 측근에게 명하였다.
수레를 치워라.”

 



12.

魏文侯御廩災,文侯素服辟正殿五日,群臣皆素服而弔,公子成父獨不弔。
魏 文侯의 御廩에 화재가 나자 文侯가 흰옷을 입고 5일 동안 正殿을 떠나 있으매신하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위문하였으나 公子 成父만은 위문하지 않았다.
▶ 御廩 天子와 諸侯가 제사에 쓸 곡식이나 진귀한 보물을 간수하는 창고이다.
▶ 公子成父 전국시대 魏 文侯의 신하이나 행적은 미상이다.

文侯復殿,公子成父趨而入賀,曰:
「甚大善矣!夫御廩之災也。」
문후가 정전으로 돌아오니공자 성부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하례하면서 말하였다.
매우 좋습니다.
보물 창고의 화재 말입니다.”

文侯作色不悅,曰:
「夫御廩者,寡人寶之所藏也.
今火災,寡人素服辟正殿,群臣皆素服而弔;
至於子,大夫而不弔。
今已復辟矣,猶入賀何為?」
문후는 기분이 나빠 안색이 변하며 말하였다.
어름은 寡人이 보물을 간수하는 곳이오.
그런데 화재가 있어서 과인이 흰옷을 입고 정전을 떠나매신하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위문하였는데,
그대로 말하자면 大夫이면서도 위문하지 않았소.
그러다가 내가 복귀하자 들어와서 오히려 하례하니무엇 때문이오?”
▶ 子大夫 옛날 君主가 大夫나 혹은 臣下를 부르는 美稱이다國語 越語 上》‧《晏子春秋 問 下
▶ 復辟(복벽) : 지위를 회복하여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옴을 이른다.

公子成父曰:
「臣聞之,天子藏於四海之內,諸侯藏於境內,大夫藏於其家,士庶人藏於篋櫝。
非其所藏者必有天災,必有人患。
今幸無人患,乃有天災,不亦善乎!」
공자 성부가 말하였다.
이 듣자니天子는 보물을 온 천하에 看守하고諸侯는 境內에 看守하며大夫는 封邑에 看守하고와 庶人은 상자나 궤에 看守한다고 합니다.
看守할 것이 아닌 물건에는天災가 있지 않으면 틀림없이 人患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人患이 없고곧 天災(화재를 말함)가 있었으니어찌 좋지 않습니까!”
▶ 非其所藏者 : ‘그것이 看守해야 할 바가 아니라면이라는 뜻이다.
는 대명사로 쓰여 그의” “그에 합당한” “그에 적절한” “그것의” 등으로 해석한다.
各得其所[각자 그에게 적합한 자리를 얻었다.]
人得其位位得其人[사람과 자리[지위]가 꼭 알맞다.] <한문의 허사 其 참조>

 

 

한문의 허사(虛詞) 其

한문의 허사(虛詞) 其 其는 한문의 용법에서 가장 복잡한 글자 중 하나인 데다, 그 뜻도 갈래가 대단히 많다. 많은 용법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서를 읽을 때 이 글자에 대한 이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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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侯喟然嘆曰:
「善!」
문후가 한숨을 쉬고 탄식하였다.
좋은 말이오.”

 



13.

齊桓公謂管仲曰:
「吾國甚小,而財用甚少,而群臣衣服輿駕甚汰.
吾欲禁之,可乎?」
齊 桓公이 管仲에게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매우 작고 재물도 적은데신하들의 衣服과 車馬는 매우 사치스럽소.
나는 이 풍조를 금지하려고 하는데 가능하겠소?”

管仲曰:
「臣聞之,君嘗之,臣食之;
君好之,臣服之。
관중이 말하였다.
이 듣기에임금이 飮食의 맛을 보면 신하는 먹고임금이 服飾을 좋아하면 신하는 입는다고 합니다.

今君之食也必桂之漿,衣練紫之衣,狐白之裘。此群臣之所奢汰也。
지금 임금께서 음식을 먹음에 항상 桂皮의 음료수를 마시고자주색의 비단옷과 흰 여우 가죽의 갖옷을 입으시니이것이 신하들이 사치하게 된 원인입니다.
▶ 練紫 자주색을 물들여 짠 비단이다.

《詩》云:
『不躬不親,庶民不信。』
君欲禁之,胡不自親乎?」
詩經
자기 몸소 하지 않으면 서민들이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임금께서 사치하는 풍조를 금지하려 하시면서 어찌 자신부터 하시지 않습니까?”
▶ 詩云……庶民不信 詩經》 〈小雅 節南山에 보인다.

桓公曰:
「善。」
於是更制練帛之衣,大白之冠,朝一年而齊國儉也。
환공이
좋소.”라고 말하고,
이에 거친 비단옷과 白布冠을 고쳐 지어 착용하고 朝會를 보기 1제나라의 풍속이 검소하게 되었다.
▶ 太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說苑校證에 근거하여 로 바로잡았다.

 



14.

季文子相魯,妾不衣帛,馬不食粟。仲孫它諫曰:
「子為魯上卿,妾不衣帛,馬不食粟,人其以子為愛,且不華國也。」
季文子가 나라의 재상일 적에 은 비단옷을 입지 못하고말은 곡식을 먹지 못하니仲孫它가 하였다.
그대가 노나라의 上卿이 되자 첩은 비단옷을 입지 못하고말은 곡식을 먹지 못하니남들이 그대를 인색하다 여길 터이고더구나 나라를 빛내지 못합니다.”
▶ 季文子 본서 권11 善說〉 25 참고.
▶ 仲孫它 國語》 〈魯語 上의 韋昭 注에 의하면 仲孫它는 나라 孟獻子(仲孫蔑)의 아들 子服它라 하였다아래 原注에는 一本에는 로 썼다.”라고 하였다.

文子曰:
계문자가 말하였다.

「然乎?
그런가요?

吾觀國人之父母衣麤食蔬,吾是以不敢。
내가 살펴보기에국민의 부모는 거친 베옷을 입고 거친 곡식을 먹고 있으매내가 이 때문에 감히 사치하지 못하오.

且吾聞君子以德華國,不聞以妾與馬。
더구나 내가 알기로는君子가 으로 나라를 빛낸다고 하지첩과 말로 나라를 빛낸다고는 듣지 못했소.

夫德者得於我,又得於彼,故可行;
若淫於奢侈,沈於文章,不能自反,何以守國?」
덕이란 자기에게서 얻고또 남에게서 얻기 때문에 미루어 행할 수 있소.
만일 사치에 방종하고 화려한 생활에 빠져서자신을 돌이키지 못하면 무엇으로 나라를 守護하겠소?”

仲孫它慚而退。
중손타가 부끄러워하면서 물러갔다.

 



15.

趙簡子乘弊車膄馬,衣羖羊裘,其宰進諫曰:
「車新則安,馬肥則往來疾,狐白之裘溫且輕。」
趙簡子가 낡은 수레에 수척한 말을 타고검은 숫양의 갖옷을 입으니그의 家臣이 諫言을 올렸다.
수레가 새것이면 안전하고말이 살찌면 왕래가 빠르며흰 여우 갖옷은 따뜻하고도 가볍습니다.”
▶ 趙簡子 본서 권君道〉 35 참고.
▶ 膄 와 같다.
▶ 宰 古代 卿大夫의 집안일을 총괄하던 家臣의 우두머리이다儀禮 工食大夫禮》‧《韓非子 說難

簡子曰:
「吾非不知也。
조간자가 말하였다.
내가 모름이 아니다.

吾聞之,君子服善則益恭,細人服善則益倨;
我以自備,恐有細人之心也。
내가 듣자니君子의 옷이 좋으면 더욱 공손해지고小人의 옷이 좋으면 더욱 거만해진다고 한다.
나는 이것으로 자신을 경계하여 대비하나니소인의 마음을 가질까 걱정해서이다.

傳曰:
周公位尊愈卑,勝敵愈懼,家富愈儉,故周氏八百餘年.
此之謂也。」
에 말하기를,
周公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욱 겸양하시고적을 이기면 더욱 두려워하시며집안이 부유해지면 더욱 검소하셨다그러므로 나라가 800여 년 동안 이어졌다.’라고 했으니,
이를 이름이다.

 



16.

魯築郎囿,季平子欲速成,叔孫昭子曰:
「安用其速成也?
以虐其民,其可乎?
無囿尚可乎,
惡聞嬉戲之游,罷其所治之民乎?」
나라가 郞邑의 苑囿를 조성할 적에 季平子가 빨리 완성하려고 하자 叔孫昭子가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것을 속성하려 하십니까?
그 때문에 백성을 학대함이 옳겠습니까?
원유가 없음이 오히려 옳을 터입니다.
즐겁게 노는 것 때문에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을 피곤하게 한다는 말을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 郞囿 은 춘추시대 나라 國都 부근에 있던 邑 이름이다지금의 山東省 曲阜市 부근에 있었다春秋左氏傳 昭公 9》‧《禮記 檀弓 下
▶ 季平子 춘추시대 나라 大夫 季孫如意이다季孫宿의 손자로은 시호이다春秋 昭公 101113
▶ 叔孫昭子 춘추시대 나라 大夫 叔孫婼이다叔孫豹의 庶子숙손표가 죽자 豎牛의 모략으로 후계자가 되었다春秋 昭公 7》‧《春秋左氏傳 昭公 45910121719~26

 



17.

衛叔孫文子問於王孫夏曰:
「吾先君之廟小,吾欲更之,可乎?」
나라 叔孫文子가 王孫夏에게 물었다.
우리 先君의 宗廟가 작아서 내가 고치려 하는데 되겠는가?”
▶ 叔孫文子問於王孫夏 叔孫文子는 춘추시대 나라 大夫 公叔文子이다.
이름은 公孫枝(또는 公孫拔)이고獻公의 손자인데은 시호이다論語 憲問
王孫夏는 당연히 나라 대부인 듯하나행적은 미상이다.
太平御覽》 531에는 王孫賈로 되어 있고論語》 〈憲問에는 孔子께서 公明賈에게 公叔文子를 물으셨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왕손하는 바로 공명가인 듯하다는 설도 있다.

對曰:
「古之君子,以儉為禮;
今之君子,以汰易之。
夫衛國雖貧,豈無文履一奇,以易十稷之繡哉?
以為非禮也。」
왕손하가 대답하였다.
예전의 君子는 검소함을 禮制로 삼았는데,
지금의 군자는 사치로 그것을 바꾸는군요.
위나라가 가난하지만 어찌 文履 한 짝을 가지고 十稷의 수놓은 비단과 바꾸지 못하겠습니까?
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 豈無文履一奇 以易十稷之繡 文履는 무늬를 넣어 장식한 신발이다.
一奇는 한 짝을 이른다이 구절은 뜻이 명백하지 않다.
十稷을 일설에는 아주 작은 한 조각 수놓은 비단이라 하고일설에는 十總의 잘못이니십총은 거친 베의 이름이라고 한다.

文子乃止。
숙손문자가 이에 중지하였다.

 



18.

晉文公合諸侯而盟曰:
晉 文公이 諸侯들과 회합하여 맹서하였다.

「吾聞國之昏,不由聲色,必由姦利.
내가 알기로는국가의 혼란은 聲樂과 女色에서 연유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간사하게 이익을 취함에서 연유한다.

好樂聲色者,淫也;貪姦者,惑也,夫淫惑之國,不亡必殘。
樂聲과 여색에 빠짐은 淫佚한 행위이고간사한 이익을 탐함은 미혹한 행위이니음일과 미혹에 빠진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衰殘해진다.

自今以來,無以美妾疑妻,無以聲樂妨正,無以姦情害公,無以貨利示下。
지금부터 이후로는 아름다운 妾 때문에 아내를 의심하지 말며성악에 빠져서 政事를 그르치지 말며간사한 마음으로 公正함을 방해하지 말며재물의 이익으로 아랫사람들을 인도하지 말라.
▶ 正 과 같다.

其有之者,是謂伐其根素,流於華葉;
若此者,有患無憂,有寇勿弭。
이런 행위가 있음은 그 근본을 베어 없애고 꽃과 잎에 마음이 빠져 있다고 이른다.
이런 자에게 환난이 있어도 근심해주지 말고적군이 침입해도 제거해 주지 말라.
▶ 根素 根本과 같다孫詒讓의 札迻에 “‘는 아마 가 되어야 될 듯하다.”라고 하였다.
는 草木의 뿌리이다.

不如言者盟示之。」
맹서한 대로 하지 않으면盟約한 것을 보여줄 터이다.”

於是君子聞之曰:
「文公其知道乎?
其不王者猶無佐也。」
이때 君子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진 문공은 아마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겠다.
그가 이 되지 못함은 輔佐가 없기 때문이다.”
▶ 猶 와 같다程翔의 說苑譯注에 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 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19.

晏子飲景公酒,日暮,公呼具火.
晏子가 景公에게 술을 마시게 할 적에날이 저물자 경공이 사람을 불러 등불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晏子辭曰:
안자가 거절하며 말하였다.

「《詩》曰:
『側牟之俄。』
言失德也;
詩經에 []이 삐딱하게 기울었다.’라고 하였으니,
술에 취해 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 側弁之俄 詩經》 〈小雅 賓之初筵에 보인다.

『屢舞傞傞。』
言失容也。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춤을 춘다.’라고 하였으니,
술에 취해 형용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 屢舞傞傞 詩經》 〈小雅 賓之初筵에 보인다.

『既醉以酒,既飽以德。』
『既醉而出,並受其福。』
賓主之禮也。
이미 술에 취했고이미 恩德에 배가 부르네.’라 하고,
이미 취하고 자리를 떠나면함께 그 복을 받을 것인데.’라고 하였으니,
손님과 주인 사이의 禮節을 말한 것입니다.
▶ 旣醉以酒 旣飽以德 詩經》 〈大雅 旣醉에 보인다.
▶ 旣醉而出 竝受其福 詩經》 〈小雅 賓之初筵에 보인다.

『醉而不出,是謂伐德。』
賓主之罪也。
취하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으니이를 일러 伐德(을 손상함)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손님의 잘못을 말한 것입니다.
▶ 醉而不出 是謂伐德 詩經》 〈小雅 賓之初筵에 보인다.
▶ 主 저본에는 있으나說苑校證에 晏子春秋》 〈內篇 雜 上에는 자가 없으니없는 것이 옳다.”라고 함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嬰已卜其日,未卜其夜。」
저는 술을 마심에 낮을 예상하였을 뿐밤을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公曰:
「善。」
경공이 말하였다.
좋소.”

舉酒而祭之,再拜而出,曰:
「豈過我哉?吾託國於晏子也。
以其家貧善寡人,不欲淫侈也,而況與寡人謀國乎?」
술잔을 들어 땅에 술을 붓고 재배하고 나가면서 말하였다.
내 어찌 잘못 보았으랴내가 안자에게 나라를 부탁하였다.
그는 가난한 생활로 寡人을 잘 이끌어 지나치게 사치하게 하지 않았으니하물며 과인과 함께 治國을 계획함에랴!”
▶ 豈過我哉 저본에는 豈過我哉로 되어 있으나說苑校證에 兪樾의 諸子平議》 7에 豈過我哉는 응당 我豈過哉가 되어야 하니景公이 스스로 나라를 부탁할 인재를 얻었음을 기뻐했기 때문에 내 어찌 잘못 보았으랴나는 晏子에게 나라를 부탁하였다.」 라고 하였다.’ 하였다.”라고 함을 따라 我豈過哉로 해석하였다.

 



20.

楊王孫病且死,令其子曰:
「吾死欲倮葬,以返吾真,必無易吾意。」
楊王孫의 병이 위독하여 죽을 즈음에 그 아들에게 분부하였다.
내가 죽거든 알몸으로 埋葬하여 내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기를 원하니꼭 나의 뜻을 바꾸지 말아다오.”
▶ 楊王孫 나라 城固 사람으로黃老術을 익혔다집이 부유했으나 임종 때 옷을 입히지도 말고 棺槨을 쓰지도 말고 알몸으로 묻도록 유언하였다사람이 죽은 뒤에 귀신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厚葬하는 풍속을 반대하였다저서에 裸葬書가 있다漢書 楊王孫傳
▶ 倮葬 壽衣와 棺槨 등을 사용하지 않고 벌거벗은 나체로 매장함을 말한다는 와 같다後漢書 趙咨傳

祁侯聞之,往諫曰:
「竊聞王孫令葬必倮而入地,必若所聞,愚以為不可。
祁侯가 소문을 듣고 가서 간하였다.
삼가 듣건대그대가 분부하기를 매장할 때 반드시 알몸으로 땅에 묻으라고 했다고 하는데소문과 틀림없이 같다면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祁侯 楊王孫의 친구이다漢書》 〈楊王孫傳의 顔師古 注에 祁侯 繒賀(나라 開國功臣의 한 사람)의 손자로기후를 계승한 사람인데이름은 이다.”라 하였다.

令死人無知則已矣,若死有知也,是戮尸於地下也,將何以見先人?
愚以為不可!」
가령 사자에게 지각이 없다면 그만이지만만일 사자에게 지각이 있다면 지하에서 시체를 욕보이는 것이매 장차 어떻게 先祖을 뵙겠소?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王孫曰:
양왕손이 말하였다.

「吾將以矯世也。
나는 이것으로 세태를 바로잡으려 하오.

夫厚葬誠無益於死者,而世以相高,靡財殫幣而腐之於地下.
厚葬은 진실로 死者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데세상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고상하다며 재물을 허비하고 돈을 다 써서 땅속에서 썩히오.

或乃今日入而明日出,此真與暴骸於中野何異?
때로는 오늘 묻었다가 내일 (盜掘당하여노출되면이것이 참으로 들에 骸骨을 뒹굴게 함과 무엇이 다르겠소?

且夫死者終生之化,而物之歸者;
歸者得至,而化者得變,是物各返其真。
또 죽음은 一生의 큰 조화요만물의 본원으로 회귀함이오.
회귀함은 지극함을 얻고조화는 변화를 얻으니만물이 각각 그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오.

其真冥冥,視之無形,聽之無聲,乃合道之情。
그 본래의 모습은 어둡고 아득하여 보아도 형체가 없고들어도 소리가 없으니이것이 에 합치하는 情狀이오.

夫飾外以誇眾,厚葬以矯真,使歸者不得至,化者不得變,是使物各失其然也。
겉모습을 꾸며서 대중에게 과시하고厚葬함으로써 본래의 모습을 바꾸어서회귀할 것을 회귀하지 못하게 하고변화할 것을 변화하지 못하게 하면만물이 각각 그 본연을 잃게 하는 것이오.
▶ ()[] :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를 으로 고치고자는 잘못 되었으니漢書에 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고程翔의 說苑譯注에 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 으로 썼으니, ‘은 과 같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도 뜻을 훼손하지 않으므로 로써 해석하였다.

且吾聞之,精神者,天之有也,形骸者,地之有也;
精神離形而各歸其真,故謂之鬼。鬼之為言歸也.
또 내가 들으니정신은 하늘에 속해 있고형체는 땅에 속해 있으니,
정신이 형체를 떠나면 각각 그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므로 라 이르니라는 말은 돌아감[]이오.

其尸塊然獨處,豈有知哉?
사람의 시체가 고독하게 홀로 땅속에 있으니 어찌 지각이 있겠소?

厚裹之以幣帛,多送之以財寶,以奪生者財用。
비단을 써서 두껍게 시체를 싸고 財寶를 많이 써서 葬送하여生者의 재물을 빼앗소.

古聖人緣人情,不忍其親,故為之制禮;
今則越之,吾是以欲倮葬以矯之也。
옛 聖人은 인정 때문에 부모에게 차마하지 못하매 喪禮를 제정하였는데,
지금에는 예법을 뛰어넘으니내가 이 때문에 알몸으로 매장하여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오.

昔堯之葬者,空木為櫝,葛藟為緘;
其穿地也,下不亂泉,上不泄臭。
옛날 帝堯의 장례에는 나무의 속을 비워 을 만들고칡덩굴로 묶었으며,
땅을 적에는 밑으로 샘물을 어지럽히지 않았고위로는 냄새가 새지 않게 하였소.

故聖人生易尚,死易葬,不加於無用,不損於無益.
그러므로 聖人은 살아서 숭상하기 쉽고죽어서 장사지내기 쉬웠으니소용없는 데 더하지 않고무익함에 덜지 않았소.

謂今費財而厚葬,死者不知,生者不得用,謬哉!
지금을 말하자면재물을 허비하여 厚葬하나 사자는 알지 못하고생자는 재물을 쓸 수 없으니 잘못되었소!

可謂重惑矣。」
미혹을 가중시킨다고 이를 만하오.”

祁侯曰:
「善。」
遂倮葬也。
기후가 좋소.”라고 말하고
알몸으로 매장하였다.

 



21.

魯有儉者,瓦鬲煮食,食之而美,盛之土鉶之器,以進孔子。
나라에 검소한 사람이 있어서 瓦鬲으로 음식을 끓여 먹어보니 맛이 좋으매이 음식을 土鉶에 담아 孔子께 드렸다.
▶ 瓦鬲 옛날 진흙을 구워서 만든 밥 짓는 기구이다[]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발이 세 개 달렸고 귀는 없다孔子家語 致思》‧《晉書 四夷傳 肅愼氏
▶ 土鉶 옛날 진흙을 구워 만든국이나 탕을 담는 그릇이다墨子 節用 中》‧《韓詩外傳 3

孔子受之,歡然而悅,如受太牢之饋。
공자가 받으시고 흔연히 즐거워하시기를 太牢의 음식을 받은 듯이 하였다.
▶ 太牢 옛날 나라의 큰 祭祀에 의 세 희생을 모두 갖추어 바치던 것을 말한다또는 소만을 이르기도 한다莊子 至樂》‧《大戴禮記 曾子天圓

弟子曰:
「瓦甂,陋器也;
煮食,薄膳也。
而先生何喜如此乎?」
어떤 제자가 말하였다.
瓦甂은 볼품없는 그릇이고,
끓인 음식은 맛이 없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찌 즐거워하심이 이러합니까?”
▶ 瓦甂 옛날 진흙을 구워 만든납작한 동이[종류의 그릇이다六書故 工事 4

孔子曰:
「吾聞好諫者思其君,食美者念其親.
吾非以饌為厚也,以其食美而思我親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알기로는諫言을 올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늘 자기 임금을 생각하고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은 늘 자기 부모를 생각한다고 한다.
나는 이 음식을 중시함이 아니라그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 親 저본에는 자가 있으나群書拾補에 “‘자는 衍文인 듯하다.孔子家語 致思에 而我思焉으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22.

晏子病將死,斷楹內書焉,謂其妻曰:
「楹也,語子壯而視之!」
晏子가 이 깊어 죽을 즈음에 기둥을 뚫어 遺書를 거기에 넣고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기둥의 말은 아들이 장성하면 보여주시오.”
▶ 斷 저본에는 으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은 인 듯하니晏子春秋》 〈雜 上(의 )에 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고程翔의 說苑譯注에도 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 鑿楹으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으로 해석하였다.
▶ 楹也語 저본에는 楹也語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晏子春秋에 楹語也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고程翔의 說苑譯注에 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도 楹語也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楹語也로 해석하였다.

及壯發書,書之言曰:
아들이 장성하여 유서를 꺼내 보니서신의 말은 이러하였다.

「布帛不可窮,窮不可飾;
牛馬不可窮,窮不可服;
士不可窮,窮不可任。
窮乎?窮乎?窮也!」
布帛이 결핍되면 안 되니 포백이 결핍되면 몸을 꾸밀 수 없고,
牛馬가 결핍되면 안 되니 우마가 결핍되면 부릴 수 없고,
선비가 결핍되면 안 되니 선비가 결핍되면 일을 맡길 수 없다.
결핍하겠느냐결핍하겠느냐결핍을 말한다.”
▶ 布帛不可窮 저본에는 布帛不窮이나說苑校證에 晏子春秋에는 자 아래에 자가 있으니아래(牛馬不窮)도 같다.”라고 함을 따라 보충하였다.
▶ 窮乎窮乎窮也 群書拾補에 晏子春秋에는 나라를 곤궁하게 해서는 안 되니나라가 곤궁하면 살필 수 없다.[國不可窮 窮不可竊也(을 兪樾은 이라 하였다.)]’로 되어 있다.”라 하였다上下의 文例로 볼 때 群書拾補의 설명이 옳을 듯하나 우선 저본대로 번역하였다.

 



23.

仲尼問老聃曰:
「甚矣!道之於今難行也!
吾比執道委質以求當世之君,而不我受也。
道之於今難行也。」
仲尼께서 老聃(老子)에게 물으셨다.
심합니다지금 세상에 를 행하기 어려움이!
내가 근래에 도를 가지고 당대의 임금에게 禮物을 바치며 시행을 구하였으나 나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에 도를 행하기 어렵습니다.”
▶ 委質() : 禮物을 땅에 놓는다는 뜻이다.
옛날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 尊長을 찾아뵈면 손님과 주인이 서로 주고받는 예절을 행할 수 없으므로 예물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물러나왔다禮記 曲禮 下》‧《白虎通 瑞贄
▶ 求當世之君 저본에는 當世之君이나群書拾補에 “‘가 빠졌으니 孔子家語》 〈觀周에는 있다.”라고 함을 따라 보충하였다.

老子曰:
「夫說者流於辯聽言者亂於辭,如此二者,則道不可委矣。」
老子가 말하였다.
말하는 사람은 구변에 흘러 실패하고듣는 사람은 언사에 혼란을 느끼니이 두 가지와 같으면 도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 說者流於辯 저본에는 說者流於이나群書拾補에 “‘이 빠졌으니 孔子家語에는 있다.”라고 함을 따라 보충하였다.
▶ 聽言者 저본에는 聽言者이나群書拾補에 “‘은 孔子家語에 없다.”라고 함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24.

子貢問子石:
「子不學詩乎?」
子貢이 子石에게 물었다.
그대는 詩經을 배우지 않았소?”
▶ 子石 본서 권17 雜言〉 02 참고.

子石曰:
「吾暇乎哉?
父母求吾孝,兄弟求吾悌,朋友求吾信。
吾暇乎哉?」
자석이 말하였다.
내가 한가한 시간이 있나요?
부모는 나에게 孝道를 요구하시고형제는 나에게 友愛를 요구하며벗은 나에게 信義를 요구합니다.
내가 한가한 시간이 있나요?”

子貢曰:
「請投吾詩,以學於子。」
자공이 말하였다.
나의 詩經을 던져버리고 그대에게 배우기를 청하오.”
▶ 詩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에 로 썼고說苑校證에 宋本明鈔本에 모두 로 썼고太平御覽》 607도 같다意林》 3에는 損吾詩 學子詩로 되어 있다.”라고 함을 따라 로 바로잡았다.




25.

公明宣學於曾子,三年不讀書。曾子曰:
「宣,而居參之門,三年不學,何也?」
公明宣이 曾子에게 배우되 3년 동안 글을 읽지 않자증자가 말하였다.
네가 나의 門下에 있은 지 3년이건만 글을 배우지 않음은 무엇 때문이냐?”
▶ 公明宣 춘추시대 나라 南武城 사람으로曾子의 제자이다山東通志 11-6

公明宣曰:
공명선이 말하였다.

「安敢不學?
어찌 감히 배우지 않았겠습니까?

宣見夫子居宮庭,親在,吒之聲未嘗至於犬馬,宣說之,學而未能;
제가 선생님께서 뜰에 계심을 보니부모가 계시면 꾸짖는 소리가 개와 말에도 미치지 않으시기에 저는 이를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능하지 못합니다.
▶ 吒 저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說苑校證에 群書拾補에 로 썼고宋本明鈔本에도 모두 로 썼기에 群書拾補의 교정을 따른다.”라고 함을 따라 로 바로잡았다.

宣見夫子之應賓客,恭儉而不懈惰,宣說之,學而未能;
제가 선생님께서 손님을 응접하심을 보니공손하고 儉朴하여 태만하지 않으시기에 저는 이를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능하지 못합니다.

宣見夫子之居朝廷,嚴臨下而不毀傷,宣說之,學而未能。
제가 선생님께서 朝廷에 계심을 보니아랫사람을 엄격히 대하되 傷害하지 않으시기에 저는 이를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능하지 못합니다.

宣說此三者學而未能,宣安敢不學而居夫子之門乎?」
제가 이 세 가지를 기뻐하여 배웠으나 아직 능하지 못하니제가 어찌 감히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습니까?”

曾子避席謝之曰:
「參不及宣,其學而已。」
증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하여 말하였다.
나는 너에게 미치지 못하니그저 배웠기만 했을 뿐인 듯하구나!”
▶ 曾子 저본에는 曾參으로 되어 있으나群書拾補와 說苑校證을 따라 로 바로잡았다.

 



26.

魯人身善織屨,妻善織縞,而徙於越。
나라 사람이 자신은 신을 잘 삼고아내는 흰 비단을 잘 짰는데나라로 옮겨가 살려고 하였다.

或謂之曰:
「子必窮!」
누군가 말하였다.
그대는 틀림없이 곤궁할 터이다.”

魯人曰:
「何也?」
노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입니까?”

曰:
「屨為履,縞為冠也.
而越人徒跣剪髮,遊不用之國,欲無窮得乎?」
대답하였다.
신은 발에 신는 것이고흰 비단은 을 만드는 것이오.
월나라 사람은 맨발로 다니고 머리는 짧게 깎고 사는데그대가 이 두 가지를 쓰지 않는 나라에 가려 하니곤궁하지 않으려고 한들 되겠는가?”
▶ 屨爲履……而越人徒跣剪髮 程翔의 說苑譯注에 이 文章에는 脫字가 있는 듯하니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 屨爲履 而越人跣行 縞爲冠 而越人披髮로 되어 있다.”
하였다.

 

 

********해석 후기***************

2023.11월 상순에 설원을 해석하기 시작하여 12월 크리스마스에 마치니 대략 2달여가 소요되었다. 짬짬이 당시300수도 올렸으니 그 분량에 비하면 오래 걸리지 않은 듯하다.

이야기의 동산에서 노닐었던 그동안의 세월이 즐거웠으나, 2천년도 넘는 前時代의 社會相을 피력한 문장을 해석하려다 보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음률에 관한 법도를 설명한 부분에서는 그냥 남의 해석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래 나의 목적이 한문의 문리를 트이게 함에 있었으니, 역사와 지리 등에 전문성이 없음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한편으로는 남의 해석을 참고함이 많았으나 한자 한자 나의 손을 거치며 나의 語套로 윤색하였음을 自許한다.

최대한 직역을 하되, 내가 작문을 한다고 생각하며 어순도 한문에 최대한 가깝게 해석한 것이 나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몰라서 틀린 것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해석하는 사람 자신도 무슨 말인지 모르며 어물쩍 넘어가지는 않으려 노력하였다.

宋代  曾鞏의 설원 서문을 마저 올리고 다음에는 古詩 19首를 해석해 보려 한다.

曾鞏이 산실된 설원을 최대한  모았으나  佚文 이 많이 남아 전하므로 아래에 남겨둔다. 이것은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싸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2023.12.25 탐고루주 白

 



《佚文》相關討論
電子圖書館資料來源
1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閔子騫兄弟二人,母死,其父更娶,復有二子。

子騫為其父御車,失轡,父持其手,衣甚單。

父則歸,呼其後母兒,持其手,衣甚厚溫,即謂其婦曰:
「吾所以娶汝,乃為吾子,今汝欺我,去,無留!」

子騫前曰:
「母在一子單,母去四子寒。」

其父默然。

故曰:
「孝哉閔子騫,一言其母還,再言三子溫。」

《藝文類聚》卷二十頁三六九
2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晉靈公造九層臺,費用千億,謂左右曰:
「敢有諫者斬!」

孫息乃諫曰:
「臣能累十三博棊,加九雞子其上。」

公曰:
「吾少學,未嘗見也,子為寡人作之。」

孫息即以棊子置其下,加九雞子其上。

左右慴懼。

靈公扶伏,氣息不續。

公曰:
「危哉,危哉!」

孫息曰:
「臣謂是不危也,復有危此者。」

公曰:
「願見之。」

孫息曰:
「九層之臺,三年不成,男不得耕,女不得織,國用空虛,戶口減少,吏民叛亡,鄰國謀議,將興兵。

社稷一滅,君何所望?」

靈公曰:
「寡人之過,乃至於此。」

即壞九層之臺。

《類聚》卷二四頁四三六
3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孫息學悲歌古琴,即引琴作鄭衛之音,靈公大感,故作《衛公》之曲,歌而和之。

《北堂書鈔》卷一百六頁四零九
4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齊王起九重之臺,募國中能畫者賜之錢。

有敬君居常飢寒,其妻妙色,敬君工畫臺,貪賜畫臺,去家日久,思憶其妻像,向之而笑。

傍人見以白王。

王召問之,對曰:
「有妻如此,去家日久,心常念之,竊畫其像,以慰離心,不悟上聞。」

王即設酒,與敬君相樂。

謂敬君曰:
「國中獻女無好者,以錢百萬謂妻,可乎?不者,殺汝。」

敬君慞惶聽許。

《類聚》卷三二頁五六一、《太平御覽》卷三八一頁一七五八
5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呂望年七十,釣于渭渚,三日三夜,魚無食者。

與農人言,農人者,古之老賢人也,謂望曰:
「子將復釣,必細其綸,芳其餌,徐徐而投之,無令魚駭。」

望如其言。

初下得鮒,次得鯉,刳腹得書,書文曰:
「呂望封于齊」

,望知當貴。

《類聚》卷六六頁一一七八
6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齊遣淳于髡到楚,為人短小,楚王甚薄之,謂曰:
「齊無人?而使子來,何長也?」

對曰:
「臣無所長,臣腰中七尺之劍,欲斬無狀王。」

王曰:
「止,吾但戲子耳。」

即與髡共飲酒,楚王謂淳于髡曰:
「吾有仇在吳,子寧能為吾報之乎?」

對曰:
「臣見來道旁野民,持一頭魚,上田祝曰:
『高得萬束,下得千斛。』

臣竊笑之,以為禮薄而望多也。

王今與吾半日之樂而委以吳,王非其計。」

楚王嘿然。

《御覽》卷三七八頁一七四五、《類聚》卷九六頁一六七一、《御覽》卷七三六頁三二六四
7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晉文公伐楚,歸國行賞,狐偃為首。

或曰:
「城濮之事,先軫之謀。」

文公曰:
「城濮之事,偃說我無失信,不背三舍之約。

先軫所謀軍事,吾用之以勝,然此一時之說,偃言萬世之功,奈何以一時之利而加萬世功乎?是以先之。」

眾人悅服。

《御覽》卷二七九頁一三零二
8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梁君出獵,見白鴈群。

梁君下車,彀弓欲射之。

道有行者觀,勸梁君止,鴈群駭。

梁君怒,欲殺行者。

其御公孫龍下車對曰:
「昔者齊景公之時,天旱三年,卜之曰:
『必以人祠,乃雨。』

景公曰:
『吾昔所以求雨者為吾民也,今以人祠乃雨,寡人將自當之。』

言未卒,天大雨方千里。

今主君以白鴈故而欲殺之,無異於狼虎。」

梁君援其首,與上車,歸入郭門,呼萬歲,曰:
「樂哉!今日獵也,獨得善言。」

《御覽》卷三百九十頁一八零四
9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齊遣兵攻魯,見一婦人,將兩小兒走,抱小而挈大,顧見大軍且至,抱大而挈小。

使者甚怪,問之。

婦人曰:
「大者妾夫兄之子,小者妾之子。

夫兄子者公義也,妾之子者私義也,寧濟公而廢私耶?」

使者帳然,賢其辭,即罷軍還,對齊王說之曰:
「魯未可攻也,匹婦之義尚如此,何況朝廷之臣乎?」

《御覽》卷四二二頁一九四八
10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魯有賢女,次室之子,年適二十,明曉經書,常侍立而吟,涕泣如雨。

有識謂之曰:
「汝欲嫁耶?何悲之甚。」

對曰:
「魯君年老,太子尚小,憂其姦臣起矣。」

《御覽》卷四六九頁二一五六
11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趙襄子問王離曰:
「國之所以亡者何也?」

對曰:
「君恡而能忍,是以亡爾。」

襄子曰:
「何以為然也?」

曰:
「恡則不能賞賢,忍則不能罰罪,賢者不賞,罪者不罰,不亡何也!」

《御覽》卷六三三頁二八四零
12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蘇秦至齊,齊王厚待之。

諸大夫嫉之,使人刺秦而不死。

齊王出珍寶賞募求賊不得。

蘇秦垂死,謂齊王曰:
「王誠能為臣求賊者,臣死後,請車裂臣屍於市,詢之曰:
『蘇秦為燕欲亂齊。

今日其死,寡人甚喜,故裂之。

若得其殺主,重封賞之。』

如此,刺臣者必出矣。」

齊王從其言,裂屍而詢之,刺秦者果出求賞。

《御覽》卷六三三頁二八四零
13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北塞上之人,其馬亡入胡中,人皆吊之。

其父曰:
「此何誰知不為福?」

居數月,其馬將胡駿馬而歸,人皆賀之。

其父曰:
「此何誰知不為禍?」

家富馬良,其子好騎,墮而折髀,人皆吊之。

其父曰:
「此何誰知不為福?」

居一年,胡夷大出,丁壯者皆控弦而戰,◇塞上之人,死者十九,此子獨以跛故,子父相保。

《御覽》卷八九六頁三九八零
14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晉平公問趙武曰:
「中牟,三國之股肱,邯鄲之肩髀也。

寡人欲其良令也,其令空,誰使而可?」

趙武曰:
「邢子可。」

公曰:
「邢子非子之讎邪?」

對曰:
「私讎不入公門。」

又問曰:
「中府之令空,誰使而可?」

趙武曰:
「臣子可。」

故外舉不避讎,內舉不避子。

《類聚》卷五十頁九零七
15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龜千歲,能與人言。

《類聚》卷九六頁一六六八
16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鼓法天,鐘法地。

《書鈔》卷一百八頁四一二
17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勇士孟賁水行不避蛟龍,陸行不避虎狼。

《文選‧羽獵賦》注頁一六八
18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聲樂易良而合於歌情,盡舞意。

《文選‧舞賦》注頁三二零
19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子奇年十八,齊君使主東阿,東阿大化。

《後漢書‧胡廣傳》注頁一五零八
20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晉平公時,赤地千里。

《後漢書‧臧宮傳》注頁六九六
21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王國子前母子伯奇,後母子伯封。

後母欲其子立為太子,說王曰:
「伯奇好妾。」

王不信,其母曰:
「令伯奇於後園,妾過其旁,王上臺視之,即可知。」

王如其言。

伯奇入園,後母陰取蜂十數置單衣中,過伯奇邊曰:
「蜂螫我。」

伯奇就衣中取蜂殺之。

王遙見之,乃逐伯奇也。

《後漢書‧黃瓊傳》注頁二零三九
22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晉文公饗炙而髮繞之。

宰曰:
「佩刀砥礪,利由干將,切肉斷而髮不絕,臣罪一也;愛誅貫臠而不見髮,臣罪二也;鑪炭赤紅而髮不絕,臣罪三也。」

文公曰:
「噫,此有所在。」

乃召次宰詰之,果服也。

《書鈔》卷五五頁一七五
23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柳下惠死,人將誄之。

妻曰:
「將述夫子之德,二三子不若妾之知。」

為誄曰:
「夫子之不伐,夫子之不謁,諡宜為惠。」

弟子聞而從之。

《書鈔》卷一百二頁三九一
24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子曰:
「以容取人,失之子羽;以言取人,失之宰予。」

澹臺子羽,君子之容也,與之久處,而言不克其貌;宰予之辭,雅而文也,與之久處,而智不克其辯。

宋薛據《孔子集語‧楚昭王篇》
25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衛靈公天寒鑿池,宛春諫曰:
「天寒起役,恐怠民也。」

公曰:
「寒乎?」

春曰:
「公衣狐裘,坐熊席,是以不寒,民寒甚矣。」

公乃罷役。

《御覽》卷二七頁一二七
26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淳于髡三稱,鄒忌三知之,髡等辭屈而去。

故所以尚干將莫耶者貴於立斷。

《文選‧答東阿王牋》注頁七五零
27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殷法,棄灰於街者刑。

《書鈔》卷四三頁一二一
28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辟雍,天子鄉飲之處。

《御覽》卷五三四頁二四二二
29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秦二世立,枉矢夜光。

俄而天下大亂,二世被殺。

《御覽》卷八七五頁三八八四
30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禹之化天下也,以五聲聽,門懸鐘鼓鐸磬而置鞀,以待四海之士。

《初學記》卷九頁二零六
31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文公好食昌本葅,本草即菖蒲。

《御覽》卷九九九頁四四二一
32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公孫僑相鄭,路不拾遺,桃李垂街,人不敢取。

《御覽》卷九六七頁四二八八
33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梁上鼠飽聞長者論。

《御覽》卷九一一頁四零三七
34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楚文侯曰:
「邑中豪好蔽善而揚惡,可親問之。」

《文選‧東京賦》注
35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樗里子且死,曰:
「葬我必於渭南章臺東,後百年當有天子宮夾我墓。」

及漢興,長樂宮在其東,未央宮在其西,武庫直其上。

《事文須聚》五六、《古今合璧事類備要》六六
36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昔隨侯行,遇大蛇中斷,疑其靈,使人以藥封之。

蛇乃能去。

因號其處斷蛇丘。

歲餘,蛇銜明珠,徑寸,絕白而有光,因號隨珠。

《史記‧李斯傳正義》
37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子奇年十八,齊君使治阿。

既行,齊君悔之,遣使追。

追者返曰:
「子奇必能矣,共載者皆白首者也。」

子奇至阿,鑄庫兵以為耕器。

魏聞童子為君,庫無兵,倉無粟,乃起兵擊之。

阿人父率子,兄率弟,以私兵戰,遂敗魏師。

《文選‧潘正叔贈河陽詩》注
38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高平王遣使者從魏文侯貸粟。

文侯曰:
「須吾租收邑粟至乃得也。」

使者曰:
「臣初來時,見瀆中有魚張口,謂臣曰:
『吾窮水,魚命在呼吸,可得灌乎?』
臣謂之曰:
『待吾南見河堤之君,決江淮之水灌汝口。』

魚曰:
『為命在須臾,乃須決江淮之水,比至君還,必求吾於枯魚之肆。』

今高平貧窮,故遣臣詣君貸粟,乃須租收粟至者,大王必求臣於死人之墓。」

《藝文類聚》八五、《太平御覽》八四零、《古今合璧事類備要》五七、《天中記》四五、《淵鑑類函》三九五
39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子產死,處女泣於室,農夫哭於野。

《北堂書鈔》三五
40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子產相鄭死,婦人捨簪珥,良人弛琴瑟。

《北堂書鈔》三五
41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聲樂之象,瑟易瑟良而合於樂也。

《北堂書鈔》一零九
42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晉靈公好悲歌鼓琴。

《北堂書鈔》一零九、《淵鑑類函》一八八
43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聲樂之象,控揭象萬物。

《北堂書鈔》一一一
44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電陰擊輝耀。

《北堂書鈔》一五二
45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鬻子曰:
「禹之化天下也,以五聲聽,門懸磬鐘鐸以待四海之士。」

《初學記》九
46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十步之內有芳草。

《後漢書‧王符傳》、《淵鑑類函》四零八
47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昔鄒忌為齊相,稷下先生淳于髡之屬七十二人,皆輕鄒忌,為設妙辭。

淳于髡三稱,鄒忌三知之,如應響,髡等辭屈而去。

故所以尚干將莫邪者,貴其立斷;所以尚騏驥者,貴其立至;必且歷日曠久,絲氂猶能栔石,駑馬亦能致遠;是以聰明敏捷,人之美材也。

《後漢書‧崔駰傳》注、《文選‧陳孔璋答東阿王牋》注、《太平御覽》四三二
48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鮑焦衣木皮,食木實。

《後漢書‧崔駰傳》注
49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甯戚飯牛於康衢,擊車輻而歌《碩鼠》;傅說代胥靡刑人築於傅巖之野,高宗夢得之。

《後漢書‧馬融傳》注
50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無類之說,不戒之行,不贊之辭,君子慎之。

《荀子‧正名篇》楊倞注
51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飢馬盈廄,飢犬在宮,見芻與骨,動不可禁。

《事類賦》二三
52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臣事仲尼,猶執柸就江海飲,莫知淺深也。

《太平御覽》二、《記纂淵海》四三
53 打開字典顯示更多訊息 佚文:
魏文侯師李悝著律書六篇。

《古今合璧事類備要外集》十七
54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田英曰:
「義死者不避鈇鉞之威,義窮者不受軒冕之賜。

無義而生,不如有義而死。」

《記纂淵海》五四
55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求利下交,曾無愧色;分銖之利,知而必爭。

《記纂淵海》五四
56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以徵為羽,非絃之罪也;以甘為苦,非味之罪也。

《記纂淵海》五五
57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葉公諸梁問樂王鮒曰:
「晉大夫趙文子為人何若?」

對曰:
「好學而受規諫。」

葉公曰:
「疑未盡矣。」

對曰:
「好學者智也,受規諫者仁也。

江出汶山,其源若甕口;至楚國,其廣十里。

無他,其下流多也。

人而好學受規諫,宜哉其立也!」

《天中記》九
58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武王問太公曰:
「貧富豈有命乎?」

太公曰:
「為之不密,密而不富者,盜在其室。」

武王曰:
「何為盜也?」

公曰:
「計之不熟,一盜也。

收種不時,二盜也。

娶婦無能,三盜也。

養女太多,四盜也。

棄事就酒,五盜也。

衣服過度,六盜也。

封藏不謹,七盜也。

井竈不利,八盜也。

舉息就禮,九盜也。

無事燃燈,十盜也。

取之安得富哉?」

武王曰:
「善。」

《天中記》三九
59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兩貴不可同,兩勢不可雙。

楊慎《藝林伐山》十七
60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魯獻子聘於晉,宣子觴之,三徙,鍾石之懸不移而具。

獻子曰:
「富哉家!」

宣子曰:
「子之家孰與我家富?」

獻子曰:
「吾家甚貧,惟有二士曰顏回、茲無靈者,使吾邦家安平,百姓和協。

惟此二者耳,吾盡於此矣!」

客出,宣子曰:
「彼君子也,以養賢為富;我鄙人也,以鍾石為富。」

孔子曰:
「孟獻子之富可著於《春秋》。」

《焦氏類林》一下
61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閔子騫早喪母,為後母所苦,冬月以蘆花衣之,其所生二子則衣之以綿。

父令閔子御車,體寒失靷,父責之,閔子不自理。

父察知之,歸謂婦曰:
「我所以娶汝,乃為吾子;今汝欺我,去無留。」

子騫前曰:
「母在一子寒,母去三子單。」

其父默然。

故曰:孝哉閔子騫!一言其母還,再言三子溫。

《淵鑑類函》二七一
62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黎侯失國,久寓于衛,衛不救,其臣勸之歸,而作《中露》也。

《淵鑑類函》十
63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桑君出懷中藥與扁鵲,飲以上池之水,未至地,承取竹木上露水。

《淵鑑類函》十
64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周成王與幼弟戲,於地得葉,以與弟曰:
「以此封唐。」

周公曰:
「選日。」

王曰:
「戲耳,不封也。」

周公曰:
「王者重言,封人而悔者不信。」

於是遂封之。

《淵鑑類函》一一八
65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王章為諸生,學長安,獨與妻居。

章病無被,臥牛衣中,與妻訣,涕泣。

其妻呵怒之曰:
「仲卿,京師尊貴在朝廷,人誰踰仲卿者。

今病困,不自激卬,乃反涕泣,何鄙也!」

《淵鑑類函》二六七
66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朱雲年七十餘終于家,病不呼醫飲藥。

遺言以身服歛,棺周于身,土周于椁。

《淵鑑類函》二六七
67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隰斯彌見田成子。

田成子與登臺四望,三面皆暢,南望,隰子家之樹蔽之。

田成子亦不言。

隰子歸,使人伐之,斧離數創,隰子止之。

其相室曰:
「何變之數也?」

隰子曰:
「古者有諺曰:
『知淵中之魚者不祥。』

夫田子將有事,事大而我示之知微,我必危矣。

不伐樹,未有罪也;知人之所不言,其罪大矣。」

乃不伐也。

《淵鑑類函》二七六
68 打開字典顯示相似段落顯示更多訊息 佚文:
趙簡子獵於晉山之陽,撫轡而歎曰:
「吾有食穀之馬數千,多力之士數百,欲以獵獸也,吾恐鄰國養賢以獵吾也。」

智哉!簡子善反其身。

《淵鑑類函》二七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