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71-諫院題名記(간원제명기)-司馬光(사마광)

耽古樓主 2024. 3. 31. 19:26

古文眞寶(고문진보)

諫院題名記(간원제명기)-司馬光(사마광)

 


古者諫無官, 自公卿大夫, 至于工商, 無不得諫者.
옛날에는 諫言에 관직이 따로 없어서 공경대부부터 工商까지 간하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古者諫無官 : 옛날에는 하는 벼슬아치가 따로 없었다.

漢興以來, 始置官. 夫以天下之政, 四海之衆, 得失利病, 萃于一官, 使言之, 其爲任亦重矣.
漢나라가 흥기한 이래 처음으로 간관을 설치하여, 천하 정치와 四海 백성의 득실과 이해가 한 관직에 집중되고 간관이 말하게 했으니, 그 임무는 매우 중대하였다.
始置官 : 諫官을 두기 시작함. 前漢文帝 때에 이르러, 현인 가운데 정직한 사람을 골라 간하는 일을 맡도록 했으며 武帝 元狩 5년에 諫議大夫를 두었다 한다.
得失 : 정치의 잘됨과 못됨.
利病 : 백성의 이익과 손해.

居是官者, 當志其大, 捨其細; 先其急, 後其緩, 專利國家, 而不爲身謀.
이 관직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큰일에 뜻을 두고 자질구레한 것은 버리며, 급한 것을 먼저 하고 급하지 않은 것은 뒤로 미루며, 오로지 국가를 이롭게 하고 자신을 위해 일하지는 않는다.

彼汲汲於名者, 猶汲汲於利也, 其間相去何遠哉?
그들이 명예에 급급함은 私利에 급급함과 같으니, 그 사이의 거리가 어찌 멀다고 하겠는가?
汲汲 : 무슨 일에 마음을 쏟아 쉴 사이가 없음.

天禧初, 眞宗詔置諫官六員, 責其職事.
天禧 초년에 진종황제께서 간관 6명을 두어 그 직무에 책임을 지우셨다.
天禧 : 宋眞宗 때의 연호. 진종은 송의 제3대 천자. 998년부터 1022년까지 재위.
: 책임을 지움.

慶曆中, 錢君始書其名於版.
慶曆 연중에 錢昆이 처음으로 간관이었던 사람의 이름을 목판에 써 두었다.
慶曆 : 仁宗 때의 연호.
錢君 : 右諫議大夫였던 錢昆을 가리킴. 吳越王 凉의 아들로, 자는 裕之.

光恐久而漫滅, 嘉祐八年, 刻著于石.
나 司馬光은 세월이 오래되어 지워질까 걱정하여 嘉祐 8년에 돌에 새겼다.
漫滅 : 문자가 닳고 깎이어 분명하지 않게 됨.
嘉祐 : 인종 때의 연호.

後之人將歷指其名, 而議之曰:
“某也忠, 某也詐, 某也直, 某也曲.”
후인이 그 이름을 낱낱이 가리키면서 평할 터이다.
“누구는 충성스러웠고 누구는 간사했으며, 누구는 곧았고 누구는 구부러졌다.”
歷指 : 한쪽에서 차례대로 하나하나 손가락질해 가리킴.

嗚乎! 可不懼哉?
아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해설


諫院이란 諫官이 일하는 곳이다. 천자의 행위에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간하는 관리가 간관이다.
간관은 諫正·司諫·補闕·拾遺라고도 한다. 보궐은 임금의 부족한 점을 보충한다는 의미이고, 습유는 임금이 흘린 것을 줍는다는 의미로, 임금의 소홀한 점을 지적해 줌을 뜻한다. 한대의 무제 元狩 5년 처음으로 諫大夫를 두었다.

天禧 초년에 송의 진종황제가 간판을 두고, 慶曆 중에는 錢昆이 간관을 지낸 사람의 이름을 板에 써두었는데, 이것을 嘉祐 8년 돌에 새기게 된 내력을 기록한 것이 〈諫院題名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