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黎文集序(창려문집서)-李漢(이한)
文者貫道之器也, 不深於斯, 道有至者不也.
문장은 道를 밝히는 도구이니 이에 깊이 통달하지 않고서 도에 지극한 사람은 없다.
▶ 貫道之器(관도지기 : 道를 밝히는 도구, 貫은 알 悟·깨달을 曉의 의미. 곧 무형의 道는 유형의 문장을 통해 알 수 있으므로 문장은 도를 밝히는 도구라고 함.
▶ 不深~不也~ : 이 문장은 不深於斯에서 끊어 해석하는 경우와, 不深於斯道에서 끊어 해석하는 경우 두 가지가 있다. 전자의 경우 斯는 문장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보고, 문장에 깊이 통달하지 않고서 道에 이른 사람은 없다로 해석된다. 후자의 경우, 이러한 도리에 깊이 통달하지 않고서 문장을 제대로 짓는 경지에 이른 자는 없다로 해석된다. 不은 無의 의미. 耽古樓主는 후자로 해석하겠다.
『易』繇爻象, 『春秋』書事, 『詩』詠歌, 『書』ㆍ『禮』剔其僞. 皆深矣乎.
《易經》에 占辭로서 象傳이 있고, 《春秋》에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했으며, 《詩經》에 노래를 읊고, 《書經》과 《禮記》에 거짓을 제거하였으니, 모두 심오하다.
▶ 易 : 《周易》, 《易經》.
▶ 繇(주) : 점괘에 대한 辭를 뜻함.
▶ 爻象 : 爻辭와 象傳. 효사는 六爻 아래 각 효의 뜻을 설명해 놓은 글. 상전은 十翼의 하나로서 효의 형상을 설명한 글.
▶ 春秋 : 공자가 지은 춘추시대의 역사책. 魯나라 隱公부터 哀公까지 242년간의 역사적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였음.
▶ 詩 : 《詩經》. 周나라의 노래 모음집.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함.
▶ 書 : 《書經》. 혹은 《尙書》라고 함. 堯·舜 때로부터 夏·殷·周 3대에 이르기까지의 정사를 기록한 것을 공자가 수집·편찬하였다고 함.
▶ 禮 : 《禮記》. 秦·漢시대에 周代의 禮에 관해 기록한 책.
秦ㆍ漢已前, 其氣渾然, 迨乎司馬遷ㆍ相如ㆍ董生ㆍ揚雄ㆍ劉向之徒, 尤所謂傑然者也.
秦·漢 이전에 문장의 기상이 원만하였으니 司馬遷·司馬相如·董仲舒·揚雄·劉向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더욱 소위 ‘걸출한 작가’이다.
▶ 渾然 : 둥글어 모가 없는 모양. 조화를 이루는 모양.
▶ 司馬遷 : 前漢 武帝 때의 역사가. 《史記》의 저자.
▶ 相如 : 司馬相如. 전한 무제 때의 문인. 辭賦를 잘 지었음.
▶ 董生 : 董仲舒. 전한 무제 때의 학자. 《春秋》에 정통하여 《春秋繁露》를 저술했음.
▶ 揚雄 : 한 말엽의 대학자이자 문인. 저서로 《太玄經》·《法言》 등이 있음.
▶ 劉向 : 전한시대의 학자. 저서로 《列女傳》·《新序》·《說苑》 등이 있음.
至後漢曹魏, 氣象萎苶, 司馬氏以來, 規範蕩悉, 謂『易』以下爲古文, 剽掠潛竊爲工耳.
後漢·曹魏에 이르러서는 문장의 기상이 쇠약해졌고, 司馬氏의 晉 이래 문장의 법도가 모두 사라져, 《역경》 이하의 문장을 古文이라 하고, 그 글귀를 빼앗고 훔침을 공교롭다고 여겼을 뿐이다.
▶ 後漢 : 전한을 무너뜨린 王의 新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漢室이 부흥한 나라. 光武帝 劉秀 이후 孝獻帝에 이르기까지 12대 196년간을 말함.
▶ 曹魏 : 후한을 멸망시키고 曹操의 아들 曹丕가 세운 위나라.
▶ 萎茶 : 쇠약해짐. 쇠미해짐. 萎는 초목이 시든 모양, 茶은 피곤한 모양.
▶ 司馬氏 : 司馬炎이 세운 晉나라를 말함. 처음에는 洛陽에 도읍했다가 후에 建康으로 遷都하였음. 전자를 西晉(265~316), 후자를 東晉(317~420)이라 일컬음.
▶ 規範 : 문장의 법도.
▶ 蕩悉 : 죄다 써 버림. 흔적도 없이 사라짐.
▶ 剽掠 : 억지로 빼앗음.
▶ 潛竊 : 몰래 훔침.
文與道蓁塞, 固然莫知也.
문장과 도가 막혀버렸음을 確固히 알지 못하였다.
▶ 蓁塞 : 초목이 무성하여 길이 막힌 모양.
先生生大曆戊申, 幼孤隨兄, 播遷韶嶺.
선생께서는 大曆 戊申에 태어나셨는데, 어렸을 때 고아가 되어 형님을 따라 韶嶺으로 옮겨 가 사셨다.
▶ 大曆戊申 : 대력은 당나라 9대 왕인 代宗의 연호. 무신은 대력 3년(768년)
▶ 幼孤 : 어릴 때 아버지를 여임. 韓愈는 3세에 아버지 韓中卿을 잃었다.
▶ 播遷韶嶺 : 韶嶺으로 옮겨감. 소령은 韶州를 가리킴. 지금의 廣東省 曲江縣. 한유가 11세 때, 형 韓會가 참소를 당하여 소령으로 유배되자, 형을 따라 옮겨가게 되었다.
兄卒, 鞠於嫂氏. 辛勤來歸.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형수에게 양육되며 고생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 鞠 : 기를 養의 뜻.
▶ 嫂氏 : 형수인 鄭氏를 가리킴.
▶ 辛勤 : 고생하며 부지런히 일함.
自知讀書爲文, 日記數千百言, 比壯經書, 通念曉析, 酷排釋氏, 諸史百子, 搜抉無隱.
책을 읽고 문장을 지을 줄 알면서부터 날마다 수천 수백 자의 글을 쓰셨고, 장년이 되어서는 경서를 연구하여 명확히 이해하셨으며, 불교를 몹시 배척하시고, 史書와 諸子百家의 책을 두루 연구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 比壯 : 장년이 될 무렵. 比는 이를 至. 미칠 及의 뜻.
▶ 通念曉析 : 경전의 내용을 깊이 검토하여 분명하게 이해하다.
▶ 酷排釋氏 : 불교를 철저하게 배척하다. 酷은 혹독하게, 철저하게의 뜻. 석씨는 釋迦의 가르침인 불교를 가리킴.
▶ 諸史 : 《史記》·《漢書》·《後漢書》·《三國志》·《晉書》·《南史》·《隋書》 등의 여러 가지 역사책
▶ 百子 : 諸子百家. 老子·莊子·列子·墨子·韓非子 등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유가 이외의 학자들이 저술한 책.
▶ 搜拱 : 샅샅이 뒤지다.
汗瀾卓踔, 奫泫澄深. 詭然而蛟龍翔, 蔚然而虎鳳躍, 鏘然而韶鈞發.
문장은 광대하면서 고원하며, 심오하면서 청아하여, 기이하기는 마치 교룡이 하늘을 나는 듯하고, 문채는 성하기가 마치 호랑이와 봉황이 뛰는 듯하며, 그 가락은 舜임금의 음악인 韶나 天帝의 음악인 균이 울리는 듯하다.
▶ 汗瀾 : 물결이 광대하게 흐르는 모양,
▶ 卓踔(탁탁) : 高遠함. 뛰어나고 높음.
▶ 奫泫(윤현) : 문장의 내용이 깊고도 넓은 모양. 윤은 샘이 깊고 넓은 모양, 泫은 물이 흐르는 모양.
▶ 澄深 : 문장의 내용이 맑고도 깊은 모양.
▶ 詭然 : 기이한 모양.
▶ 蔚然 : 성대한 모양. 무성한 모양.
▶ 鏘然(장연) : 옥 또는 방울 같은 것의 소리가 울리는 모양. 예로부터 문장을 옥에 비유해 왔으므로, 여기에서는 문장의 소리, 가락을 말함.
▶ 韶(소) : 舜임금이 지은 음악의 이름.
▶ 鈞(균) : 鈞天廣樂. 天帝가 연주하는 음악.
日光玉潔, 周情孔思, 千態萬狀, 卒澤於道德仁義炳如也.
태양처럼 빛나고 옥처럼 깨끗하며, 周公의 情志와 孔子의 사상이며, 千態萬象으로, 끝내 도덕과 仁義를 윤택하게 하여 밝히고 계시다.
▶ 周情孔思 : 周公의 淸志와 孔子의 사상.
▶ 澤 : 恩澤.
▶ 炳如 : 빛남. 如는 助字로서 然의 뜻.
洞視萬古, 愍惻當世, 遂大拯頹風, 敎人自爲.
만고의 문장을 洞察하고 당시의 문장을 근심하여 마침내 퇴폐해진 문장의 기풍을 대대적으로 건져내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바른 문장을 쓰도록 가르쳤다.
▶ 洞視(통시) : 洞察.
▶ 萬古 : 영원. 태고로부터 미래까지의 긴 세월.
▶ 愍惻 : 근심하며 슬퍼함.
▶ 頹風 : 퇴폐해진 문장의 기풍.
▶ 敎人自爲 : 사람들이 스스로 바른 문장을 쓰도록 가르치다. 道와 분리된 문장을 짓는 당시의 그릇된 기풍에서 벗어나서 바른 문장을 쓰도록 가르친다는 뜻.
時人始而驚, 中而笑且排, 先生益堅, 終而翕然隨以定.
당시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놀라더니 얼마 안 있어 비웃으며 배척했으나, 선생께서는 더욱 마음을 굳게 하매, 결국에는 모두 한마음으로 선생을 따라 문장의 방향을 정하였다.
▶ 翕然 : 마음이 일치하는 모양.
嗚呼! 先生於文, 摧陷廓淸之功, 比於武事, 可謂雄偉不常者矣.
아! 선생께서 문장에 있어서 과거의 병폐를 떨쳐 버리고 깨끗하게 한 공로를 군인에 비유한다면 비상하게 뛰어난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다.
▶ 嗚呼 : 아아! 슬프거나 감탄할 때 내는 소리.
▶ 摧陷 : 적진을 쳐부숴 무너뜨림. 당시의 그릇된 문장의 병폐를 배척한 것을 말함.
▶ 廓淸 : 더러운 것을 떨어버리고 깨끗하게 함.
▶ 雄偉 : 영웅답게 뛰어남.
長慶四年冬, 先生歿, 門人隴西李漢, 辱知最厚且親, 遂收拾遺文, 無所失墜, 合若干卷,目爲『昌黎先生集』.
장경 4년(824) 겨울에 선생께서 돌아가시니, 문인인 隴西의 李漢은 외람되이 선생께서 가장 厚待하고 親愛하셨기에, 남긴 글을 모아 빠뜨림이 없이 합쳐서 약간의 書卷으로 엮어 《창려선생집》이라 제목한다.
▶ 隴西 : 지금의 甘肅省일대.
해설
韓愈가 죽은 뒤,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李漢이 遺作을 모아 문집을 만들면서 붙인 序文이다.
한유는 화려하기만 하고 내용이 없던 당시의 騈儷文을 배격하고 道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내용 있는 문장을 쓰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문장의 모범으로 夏·殷·周 삼대와 兩漢의 문장을 제시하며 이러한 古文을 통해 올바른 도리를 글로 써낼 것을 역설하였다.
이렇게 고대의 문장으로 돌아가자는 古文運動은 한동안 世人들의 호응을 받아 발전하다가 宋代에 이르러 완전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글은 이와 같은 한유의 사상과 그의 생애를 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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