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50-毛穎傳(모영전)-韓愈(한유)

耽古樓主 2024. 3. 23. 06:08

古文眞寶(고문진보)

毛穎傳(모영전)-韓愈(한유)

 


毛穎者中山人也.
毛穎은 中山 사람이다.
毛穎(모영) : 붓털을 가리킴. 은 곡식의 이삭. 송곳 끝의 뜻이 있음. 여기서는 붓을 擬人化하여 모영이라 가명을 붙인 것임.
中山 : 산 이름. 지금의 安徽省 宣城縣 북쪽에 있으며, 獨山이라고도 부른다. 좋은 토끼털이나 옛날부터 붓의 명산지로 알려졌다.

其先明眎, 佐禹治東方土, 養萬物有功, 因封於卯地, 死爲十二神.
그의 조상은 明眎로서, 禹임금을 도와 동쪽 땅을 다스리고 만물을 양육하는 데 공을 세워 卯 땅에 封해졌고, 죽어서는 12神의 하나가 되었다.
明眎(명시) : 토끼의 별명 禮記,
: 12에 있어 토끼에 해당한다.

嘗曰:
“吾子孫神明之後, 不可與物同, 當吐而生.”
已而果然.
일찍이 말하기를,
"내 자손은 神明의 후손이어서 다른 동물과 같아서는 안될 터이니, 마땅히 자식을 입으로 토하여 낳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그 뒤로 과연 그러하였다.
吐而生 : 옛날 중국 사람들은 '토끼는 털을 핥음으로써 새끼를 배고 입으로 토하여 새끼를 낳는다'(王充論衡)고 생각하였다.

明眎八世孫㝹, 世傳當殷時, 居中山, 得神仙之術, 能匿光使物.
명시의 8세손이 㝹인데 세상에 전해지기로, 殷나라 때 중산에 살다가 神仙術을 터득하여 빛을 숨기고 물건을 부릴 줄 알았다.
() : 토끼의 속명.
匿光使物 : 빛을 숨기고 물건을 부리다. 곧 남모르게 물건을 옮기고 움직이고 함.

竊姮娥騎蟾蜍, 入月, 其後代, 遂隱不仕云.
姮娥를 훔쳐가지고 두꺼비를 타고 달로 들어가서, 그의 후손은 끝내 거기에 숨어살며 벼슬하지 않았다 한다.
姮娥 : 嫦娥라고도 하여, 옛날 羿의 처였는데 西王母에게서 얻은 不死藥을 훔쳐가지고 달나라로 도망쳐 산다는 선녀淮南子覽冥訓.
蟾蛛(섬여) : 두꺼비. 달에 살고 있다는 전설적인 동물, 항아가 섬여로 변하였다고도 한다後漢書天文志注.

居東郭者曰㕙, 狡而善走 與韓盧爭能, 盧不及. 盧怒, 與宋鵲謀而殺之, 醢其家.
東郭에 사는 㕙이란 자는 날래고 뜀박질을 잘하여 韓盧라는 개와 능력을 겨루었는데, 한로가 준을 따르지 못하매, 한로가 화가 나서 宋鵲과 모의하여 준을 죽이고, 그 집안을 멸족하여 소금에 절였다.
() : 날랜 토끼의 이름.
韓盧(한로) : 뒤의 과 함께 모두 좋은 개 이름.
() : 죽여서 시체를 소금에 절임.

秦始皇時, 蒙將軍恬, 南伐楚, 次中山. 將大獵以懼楚.
秦始皇 때 蒙恬 장군이 남으로 楚를 정벌하다가 중산에 묵었는데, 크게 사냥함으로써 초나라가 두려워하게 만들려 하였다.
蒙將軍恬 : 몽염 장군, 진시황 때 장군으로 오랑캐를 치고 長城을 쌓아 큰 공을 세웠던 사람. 대나무에 토끼털을 박아 만든 붓을 그가 처음으로 발명하여 썼다고 전한다.
: 여행하다 머무름.

召左右庶長與軍尉, 以連山, 筮之, 得天與人文之兆.
좌우의 부대장과 장교를 불러놓고 連山으로 점을 쳤는데 하늘과 人文을 뜻하는 점괘가 나왔다.
庶長 : 여러 단위의 부대장.
軍尉 : 장교들.
連山 : 옛날 三易중의 하나. 역경은 본시 옛날의 점책이었음.
() : 蓍草. 대로 만든 점가치를 이용하여 易占을 침.

筮者賀曰:
“今日之獲, 不角不牙, 衣褐之徒, 缺口而長鬚, 八竅而趺居.
獨取其髦, 簡牘是資, 天下其同書, 秦其遂兼諸侯乎.”
점쟁이가 축하하였다.
"오늘 잡으실 짐승은 뿔도 없고 이빨도 없이 털 베옷을 입는 무리로서, 입은 언챙이고 긴 수염이 났으며, 몸에는 여덟 구멍이 있고 도사리고 앉는 게 보통입니다.
그 털만 취하여 簡牘의 작성에 쓰면 천하에서 동일한 서체를 쓰게 되고, 秦나라는 마침내 諸侯를 겸병할 터입니다.“
() : 털로 짠 허술한 옷.
八竅(팔규) : 사람의 몸에는 눈····항문·생식기 등 아홉 구멍이 있으나, 토끼에게는 생식기가 없어 팔규임.
趺居(부거) : 무릎을 굽히고 도사리고 앉음.
簡牘 : 대쪽과 나무쪽. 옛날에는 간독에 글을 썼으므로 후세의 종이에 해당한다. 簡牘是資資簡牘倒文으로, 종이와 함께 씀.
同書 : 쓰는 글씨체가 같은 것. 진시황의 승상 李斯가 한자의 字體小篆으로 통일했던 일을 가리킨다.
兼諸侯 : 제후들을 兼倂하다. 곧 천하를 통일함을 뜻한다.

遂獵 圍毛氏之族, 拔其豪, 載穎而歸, 獻俘于章臺宮, 聚其族而加束縛焉.
마침내 사냥하여 毛氏 족속을 포위하고 그 호걸을 뽑고 毛穎을 수레에 싣고 돌아와서 章臺宮에서 임금에게 포로로서 바쳤고, 그의 족속도 모아서 그와 함께 묶었다.
: 豪傑. 또는 긴 털.
章臺宮 : 전국시대 나라에 있던 궁전 이름.

秦皇帝使恬賜之湯沐而封諸管城, 號曰 ‘管城子’ 日見親寵任事.
진나라 황제는 몽염을 시켜 그에게 湯沐을 내리고, 管城에 봉하고는 管城子라 불렀는데, 날로 황제의 총애가 두터워지고 일을 맡겼다.
封諸管城 : 관성에 봉하다. 토끼털을 모아 대끝에 끼워 붓을 만든 것을 상징함.

穎爲人强記而便敏, 自結繩之代, 以及秦事, 無不纂錄.
모영의 사람됨은 기억력이 좋고 명민하여, 태고시대로부터 진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편찬하여 기록하지 않음이 없었다.
强記 : 기억력이 좋아 많이 기억함.
結繩之代 : 결승을 하던 시대. 결승이란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기억의 보조수단으로 씀을 가리키며, 태곳적을 뜻한다.

陰陽ㆍ卜筮ㆍ占相ㆍ醫方ㆍ族氏ㆍ山經ㆍ地志ㆍ字書ㆍ圖畵ㆍ九流ㆍ百家天人之書, 及至浮圖ㆍ老子ㆍ外國之說, 皆所詳悉.
陰陽·卜筮·占相·醫方·族氏·山經·地志·字書·圖畵·九流·百家天人의 서적과 浮圖·老子까지 모두 자세히 기록하였다.
山經 : 산에 관한 기록이 되어있는 책.
九流 : 漢書藝文志 諸子略에 실려있는 小說家를 제외한 유가·도가·음양가·법가 등 九家를 가리킨다. 諸子를 가리킴.
浮圖 : 붓다[佛陀]異譯.

又通於當代之務, 官府簿書ㆍ市井貨錢注記, 惟上所使, 自秦皇帝及太子扶蘇ㆍ胡亥ㆍ丞相斯ㆍ中車府令高, 下及國人無不愛重.
또 그 시대의 업무에도 통달하여 관청의 簿冊과 市井의 돈거래 기록을 오직 황제가 시키는 대로 적으니, 진시황제와 태자인 扶蘇와 胡亥와 승상 李斯와 中車府令 趙高로부터 아래로 국민에 이르기까지 그를 愛重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扶蘇 : 진시황의 맏아들 이름.
胡亥 : 진시황의 둘째 아들. 뒤에 2가 되었다.
丞相斯 : 진시황 때의 승상 李斯.
中車府令高 : 진시황 때의 중거령 趙高. 뒤에 진나라 정권을 멋대로 주물렀다.

又善隨人意, 正直邪曲功拙, 一隨其人, 雖見廢棄, 終黙不洩.
또 사람들의 뜻을 잘 따라서, 正直·邪曲·功拙을 일체 그를 부리는 사람을 따르며, 비록 버려지더라도 끝내 입을 다물고 누설치 않았다.

惟不喜武士, 然見請, 亦時往.
오직 무인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요청을 받으면 역시 때때로 갔다.

累拜中書令, 與上益狎, 上嘗呼爲中書君.
누차 승진하여 中書令에 올라 황제와 더욱 허물없이 지냈고, 황제가 그를 中書君이라 부른 적이 있었다.
中書令 : 천자 측근에서 천자의 중요한 일들을 돕는 벼슬 이름.
: 친하게 지냄. 친하여 허물없이 지냄.

上親決事, 以衡石自程, 雖宮人不得立左右, 獨穎與執燭者常侍, 上休方罷.
황제가 친히 일을 결정할 때는 무게와 양을 스스로 헤아려 결정했으므로, 宮人이라도 황제 좌우에 서 있지 못하였으나, 오직 모영과 촛불을 든 자는 늘 侍從하매, 황제가 쉬어야만 비로소 시종을 마쳤다.
衡石自程 : 저울과 말로 직접 무게를 달고 양을 잼. 곧 일의 자세한 사정을 따짐.
上休方罷 : 임금이 쉬어야 비로소 그만두었다.

穎與絳人陳玄, 弘農陶泓, 及會稽楮先生, 友善, 相推致, 其出處必偕.
모영은 絳州(:먹의 명산지임)사람 陳玄과 弘農(:벼루의 명산지임)의 陶泓과 會稽(:종이의 명산지임)의 楮先生과 친하게 벗하며 서로 밀어주고 이끌어주며, 그들이 외출하는 곳에는 반드시 함께 갔다.
絳人陳玄 : 絳州 사람 진현, 강주는 山西省에 있던 고을 이름으로 먹의 명산지, 진현은 먹을 擬人化하여 이름붙인 것이다.
弘農陶泓(홍농도홍) : 홍농의 도홍. 홍농은 河南省에 있던 고을이름으로 瓦硯의 명산지. 따라서 도홍은 벼루를 의인화한 이름이다.
會稽楮先生 : 회계는 江蘇·浙江 두 성에 걸쳐있던 고을 이름으로, 종이의 명산지. 는 종이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던 닥나무로 종이를 의인화한 것이다.
推致 : 밀어주고 이끌어주고 함.

上召穎, 三人者不待詔, 輒俱往, 上未嘗怪焉.
황제가 모영을 부르면 세 사람은 詔命을 기다리지 않고 매번 함께 갔으나, 황제도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었다.

後因進見, 上將有任使, 拂拭之, 因免冠謝.
뒤에 황제를 뵙자 황제에게 그를 시킬 일이 있어서 그를 뽑아 쓰려 하자, 관을 벗고 사양하였다.

上見其髮禿, 又所摹畵, 不能稱上意. 上嘻笑曰:
“中書君老而禿, 不任吾用.
吾嘗謂君中書, 君今不中書邪?”
황제는 그의 머리가 대머리가 되었음을 보았고, 또 그린 그림이 황제의 뜻에 들어맞지 않았으매, 황제가 놀라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中書君이 늙어서 머리가 벗겨져서 나의 기용을 감당할 수 없다. 나는 일찍이 君은 글쓰기에 합당하다[中書] 말했었는데, 군은 이제는 글쓰기에 합당치 아니한가?”
髮禿 : 머리가 다 빠짐. 머리가 벗겨짐.
中書 : 글쓰기에 적합한 것. 中書令이란 벼슬과 합치된다.

對曰:
“臣所謂盡心者.”
대답하였다.
“신은 이른바 마음을 다한 사람입니다.”

因不復召, 歸封邑, 終于管城.
그래서 다시는 불려가지 않았으매 邑으로 돌아가서 管城에서 일생을 마쳤다.

其子孫甚多, 散處中國夷狄, 皆冒管城, 惟居中山者, 能繼父祖業.
그의 자손이 매우 많아서 중국과 오랑캐 땅에 흩어져 살았는데, 모두 관성 사람이라 내세웠으나 오직 中山에 사는 자만이 조상의 가업을 잘 계승하였다.

太史公曰:
太史公은 말한다.
太史公 :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史官의 우두머리.

“毛氏有兩族.
“毛氏에는 두 족속이 있다.

其一姬姓, 文王之子, 封於毛, 所謂魯衛毛聃者也, 戰國時, 有毛公ㆍ毛遂.
그중 하나는 姬姓으로 文王의 아들인데 毛 땅에 봉해진 魯와 衛에의 毛聃의 후손이며, 戰國시대에는 毛公과 毛遂가 있었다.
毛聃(모담) : 左傳僖公 24년에 보이는 실제 인물. 중국 모씨의 조상이다.
毛遂(모수) : 나라 사람으로 平原君食客이었다.

獨中山之族, 不知其本所出, 子孫最爲蕃昌.
다만 중산에 사는 족속은 그 근본이 나온 곳을 알 수 없으나 자손이 가장 번창하다.

『春秋』之成, 見絶於孔子, 而非其罪.
《春秋》가 완성됨에 孔子에 의하여 絶交를 당하기도 하였으나 그들의 죄는 아니었다.
春秋之成 : 춘추의 완성. 공자는 춘추를 기록함에 있어 나라 隱公 원년에 시작하여, 노나라 哀公 14'임금이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잡았다[西狩獲麟]는 데서 기록을 끝내고 있다. 이를 獲麟에서 絶筆하였다고 보통 말하고 있다.

及蒙將軍, 拔中山之豪, 始皇封諸管城, 世遂有名. 而姬姓之毛, 無聞.
몽염 장군이 중산의 호걸을 뽑고, 진시황이 그를 관성에 봉함으로써 세상에는 마침내 그 이름이 알려졌고, 姬姓의 모씨는 알려진 바가 없다.

穎始以俘見, 卒見任使. 秦之滅諸侯.
모영이 처음에 포로로써 황제를 뵈었으나 마침내 벼슬에 임용되어, 秦나라가 제후를 멸함에 공을 세웠다.

穎與有功, 賞不酬勞, 以老見疏, 秦眞少恩哉.”
그러나 모영의 공훈에 대하여 상을 주어 공로를 보답하지 않고, 늙었다 하여 멀리하니, 진나라는 진실로 은혜에 인색하였구나.”

 

 

 해설


붓을 擬人化한 소설류에 속하는 글이다. 소설 같은 글이면서도 붓의 유래와 기능이 잘 표현되어 있고 문장의 구성이 재미있다. 한유가 주장한 古文은 이런 성격의 글의 발굴을 통하여 또 다른 면의 발전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洪慶善曰:
홍경선이 말했다.

“此傳柳子厚以爲怪予以爲子虛烏有之比其源出於莊周寓言.”
이 을 유자후는 괴이하다 여겼는데 나는 子虛와 烏有의 부류라 생각하니그 근원은 莊周의 寓言에서 나왔다.”

◯ 迂齋曰:
우재가 말했다.

“筆事收拾盡善將無作有所謂以文滑稽者.
“일의 수습을 기록함이 모두 좋고 무를 가지고 유를 지었으니소위 ‘문장으로 골계함.’이다.

贊尤高古是學『史記』文字.
은 더욱 고상하고도 예스러우니 『사기』의 문자를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