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文眞寶(고문진보)

後集120-席侍郎書(상석시랑서)-唐庚(당경)

耽古樓主 2024. 4. 20. 09:54

古文眞寶(고문진보)

席侍郎書(상석시랑서)-唐庚(당경)

 



某備員學校, 三載于此.
제가 학교의 직원으로 근무한 지 이제 3년이 됩니다.
備員(비원) : 직원으로 끼이다. 직원이 되다.

在輩流中, 年齒最爲老大, 詞氣學術, 最爲淺陋, 敎養訓導之方, 最爲疏拙, 所以未卽遂去, 正賴主人以爲重.
동료 가운데서 나이는 가장 늙었으나 문장과 학문은 가장 천박하고 학생들을 교육하고 이끌어주는 방법도 가장 졸렬한데도 직책을 그만두고 떠나지 못함은 책임진 분이 중히 여겨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輩流(배류) : 동류동료.
詞氣(사기) : 문사의 기세. 여기서는 그대로 글짓는 솜씨를 뜻한다.
疎拙(소졸) : 소원하고 졸렬한 것.
主人(주인) : 주관하는 사람. 여기서는 학교의 책임자를 가리키며, 그는 바로 席侍郎.

今閤下還朝, 曉夕大用, 爲執政, 爲宰相, 爲公, 爲師, 此誠門下小子之所願聞.
지금 각하께서 조정으로 돌아가면 아침저녁으로 크게 쓰이어 정권을 맡아 재상이 되고 公卿도 되고 師傅도 될 터인데, 이는 진실로 문하 소생들이 그런 소문을 듣기 바라는 바입니다.
執政(집정) : 정권을 잡. 정사를 책임짐.
爲公(위공) : 공이 되다. 公卿이 되다.
爲師(위사) : 師傅가 되다. 옛날에는 太師·太傅·少師·少傅 등의 벼슬이 있었다.

然孤宦小官, 遽奪所依, 此其胸中, 不能無介然者.
그러나 외롭게 벼슬하는 말단 관리가 의지하던 바를 갑자기 빼앗기니, 이제 가슴속에 불안함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孤宦(고환) : 외로운 관리.
介然() : 불안한 모양.

日夜思慮, 求所以補報萬一, 而書生門戶, 無有它技. 因效其所得於古人者, 惟閤下裁擇.
밤낮으로 생각하여 만의 하나라도 보탬이 되고 은덕에 보답할 길을 찾았으나, 서생의 처지로 다른 재주가 없으므로 옛사람에게서 터득한 바를 바치니, 각하께서 취사선택하여 주십시오.
補報(보보) : 보충해주고 은혜에 보답함.
門戶(문호) : . . 집안. 자기와 어울리는 사람들.
裁擇(재택) : 헤아려 채택함.

某初讀書時, 未習時事. 意謂: ‘古之聖賢, 例須建立功名.’
저는 처음 공부할 때, 時事에 익숙하지 않았으매 생각하기를, 옛날의 성현이 공명을 세운 본보기가 된다고 여겼습니다.
() : 본보기가 되다.

其後涉世益深, 更事益多, 攷論前代經史, 益見首尾, 乃知古人之心, 本不如此.
그 후 세상 경험이 더욱 깊어지고 일의 경험도 더욱 많아지고, 前代의 經史를 연구하여 始末을 더 많게 보고 나서는, 옛사람들의 마음이 본시 그러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涉世(섭세) : 세상일을 경험함.
更事(경사) : 일에 대하여 경험을 쌓음.
攷論(고론) : 考究하다. 연구하다.
首尾(수미) : 처음과 끝, 始末.

舟遇險則有功, 燭遇夜則有功, 藥遇病則有功, 桔橰遇旱則有功, 戈弩劒戟臨衝兜鍪, 遇戰鬪則有功, 凡物有功, 悉非得己.
배는 험난한 물을 만나야 功效가 드러나고, 촛불은 밤을 만나야 功效가 드러나고, 약은 병을 만나야 공효가 드러나고, 용두레는 가뭄을 만나야 공효가 드러나고, 창·쇠뇌·칼·갈래진 창·臨車·衝車·투구는 전쟁을 만나야 공로가 드러나니, 모든 사물의 공효는 모두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桔橰(길고) : 용두레. 물을 퍼 올리는 데 쓰는 기계.
臨衝(임충) : 臨車衝車, 임거는 높은 위치에서 성을 공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차이고, 충거는 성벽을 부수는 데 쓰는 전차. 모두 성을 공격하는 데 쓰던 무기임.
兜鍪(두무) : 투구.
得己(득기) : 자기의 힘으로 얻음.

龍蛇雜處而禹有功, 草木障塞而益有功, 民不粒食而稷有功, 天理人倫, 顚倒失次而契有功, 夷蠻賊寇, 干紀亂治而皐陶有功, 自此以降, 不可勝擧.
용과 뱀이 뒤섞여서 禹가 공적을 세웠고, 草木이 가리고 막혀서 益이 공적을 세웠고, 백성이 곡식을 먹을 줄 몰라서 稷이 공적을 세웠고, 天理와 인륜이 자빠지고 차례를 잃어 契이 공로를 세웠으며, 오랑캐와 도적이 기율을 범하고 정치를 어지럽히어 皐陶가 공적을 세웠으니, 이로부터 후대로 내려오며 이루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龍蛇雜處(용사잡처) :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여기의 뱀은 용의 종류로 구름과 안개를 일으킨다는 螣蛇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용과 등사가 뒤섞여 있어 서로 비를 많이 오게 하여 장마가 졌음을 뜻한다.
() : 임금의 명으로 천하의 홍수를 다스리어 뒤에 나라를 세운 임금이 되었다.
草木障塞(초목장색) : 풀과 나무가 가리고 막히도록 무성히 자람.
() : 순임금의 신하로 산림과 호수를 다스리는 라는 벼슬을 하였다.
() : 임금의 신하로 백성에게 농사를 지어 곡식을 먹는 법을 지도하였다 한다. 后稷이라 보통 부르며 나라의 선조이다.
() : 순임금 때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는 司徒 벼슬을 맡았던 사람. 나라의 선조로 알려져 있다.
干紀(간기) : 기강 또는 기율을 범함.
皐陶(고요) : 咎繇로도 쓰며, 순임금의 신하로서 刑獄을 관장하는 의 벼슬을 지냈다.

然皆因時立功, 非聖賢本意.
그러나 모두가 때로 말미암아 공훈을 세웠으매, 성현의 본뜻은 아니었습니다.

伊陟ㆍ臣扈ㆍ巫咸, 相大戊, 無它奇功, 以格上帝乂王家爲功, 巫賢ㆍ甘盤ㆍ傅說, 相祖乙, 相武丁, 不聞有功, 以保乂有商爲功, 君陳相成王, 畢公相康王, 不自立功, 以循周公之業爲功.
伊陟·臣扈·巫咸은 殷나라 大戊왕의 재상이 되어 별달리 뛰어난 공로는 없었으나, 上帝께 感通케 하여 왕실을 잘 다스린 공이 있었으며, 巫賢·甘盤·傅說은 祖乙왕과 武丁왕의 재상이 되어 공을 세웠음을 듣지 못했으나 商나라를 보전하고 다스린 공이 있었으며, 君陳은 成王의 재상이 되고 畢公은 康王의 재상이 되어 자신은 공을 세우지 않았으나 周公의 遺業을 계승한 공로가 있었습니다.
伊陟(이척) : 信扈巫咸과 함께 나라 때의 대부로 모두 太戊임금의 재상 노릇을 하였다.
太戊(태무) : 상나라 제7대 임금, 임금의 高孫.
格上帝(격상제) : 하느님께 感通케 함.
() : 다스리다.
巫賢(무현) : 甘盤·傅說과 함께 나라 대부. 무현은 조을 임금의 재상, 감반과 부열은 武丁 임금의 재상을 지냈다.
祖乙(조을) : 상나라의 제11대 임금, 太戊의 손자임.
武丁(무정) : 상나라 20대 임금, 도읍을 으로 옮겼던 盤庚임금의 조카.
保乂(보예) : 보전하고 다스림.
君陳(군진) : 나라 成王 때 재상을 지낸 사람. 周公 旦의 아들임.
成王(성왕) : 나라 제2대 왕으로 武王의 아들.
畢公(필공) : 주나라 康王의 신하로 이름은 .
康王(강왕) : 주나라 제3대 왕으로 成王의 아들.

後世知有功之爲功, 而不知無功之爲功, 其去道已遠, 至謂聖賢有心於功名, 其探聖賢, 亦淺矣.
후세에는 공효가 있음을 공적으로 삼을 줄 알되, 공효가 없음을 공적으로 삼을 줄은 모르니, 올바른 도리에서 이미 멀어졌기 때문이고, 성현이 공명에 마음을 두었다고 여김에 관하여 말하자면, 성현에 대한 이해가 매우 얕습니다.
() : 탐구. 이해

天下承平日久, 綱紀文章, 纖悉備具, 無有毫髮未盡未便, 一部『周禮』, 擧行略遍, 但不姓姬耳.
천하에 평화로운 날이 오래되어, 기강과 문장(예악과 제도)이 미세한 것까지 다 갖추어지매, 머리카락만큼도 극진하지 않거나 편리하지 않음이 없는데, 한 부의 《周禮》를 모든 행사의 법도로 두루 적용하되, 다만 姬姓이라 하지 않을 뿐입니다.
讖悉(섬실) : 섬세한 것들 모두 빠짐없이.
周禮(주례) : 儒家의 경전 중 이른바 三禮 중의 하나. 본시 周官이라 불렀고, 주나라의 정치제도에 대한 기록을 周公이 쓴 것이라 하나 후세에 이루어진 책임이 분명하다. 宋代王安石은 이 주례를 바탕으로 하여 新法을 행하다가 오히려 큰 혼란만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 : 주례의 주체가 되는 나라의 성이 였음.

竊謂今日, 正當持循法度, 不宜復有增廣建置.
삼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마땅히 옛 법도를 유지하고 따르면 되지 다시 법도를 늘이고 넓히어 설치함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增廣建置(증광건치) : 이전의 법도에서 더 늘이고 넓히어 새로운 많은 제도를 마련함.

歌呼於吏舍者勿問, 醉吐於車茵者勿逐, 客至欲有所開說者, 飮以醇酒, 勿聽, 擇士唯取通大體知古誼者, 用之, 雖不立功, 功在其中矣.
官舍에서 노래하고 소리지르는 자를 따지지 말고, 수레 깔개에 취하여 토하는 자를 쫓아내지 말고, 세객이 와서 설득하려 하면 진국 술을 마시게 하고 듣지 말고, 선비를 선택함에 大體에 통하고 고인의 도리를 아는 자를 취하고 그를 기용하면, 비록 공적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공효가 그 가운데 있을 터입니다.
歌乎(가호) : 노래하고 소리지름.
吏舍(이사) : 일하는 관청.
車茵(거인) : 수레 깔개.
醇酒(순주) : 진국 술. 아직 거르지 않은 술.
通大體(통대체) : 대체적인 것에 통하다. 전체적인 것에 통달하다.
古誼(고의) : 옛뜻. 고인의 도리.

某之所得於古人者如此, 不知其當否也.
제가 옛사람들에게서 터득한 것이 이와 같은데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閤下倘以爲然, 歸見何丞相, 其亦以此說告之.
각하께서 혹시 옳다고 여기신다면 돌아가셔서 何丞相을 뵙고서 그에게도 이러한 말씀을 알려주십시오.
何丞相(하승상) : 나라 때의 何栗을 가리킨다. 徽宗 御史中丞, 欽宗 尙書右僕射를 지냈다.

 

 

 

 해설


이 글은 작자인 당경이 자기 상관이었던 席侍郞이 조정으로 영전되어 갈 적에 올린 글이다. 석사랑은 席益이란 사람인 듯하나 확실치 않다.

이 글의 요점은 조정에서 벼슬하면서 기발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여 큰 공을 세우려 들지 말고, 옛 법도를 잘 지키며 소리없이 나라를 다스리어 이른바 '無功之功'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王安石이 신법을 마련하여 나라의 정치를 개혁하려다가 오히려 큰 혼란을 야기한 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
너무 공로를 세우려 들지 말라는 충고는 지금도 다시 음미해 볼 만한 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