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同散異

字(자)와 號(호)

耽古樓主 2023. 3. 13. 02:05

字(자)와 號(호)
冠禮의 모습

 

1.개괄

우리 선현들은 이름 외에 字, 號, 諡號 등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이를 짓는 데는 어떤 법칙이나 경향이 있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이름을 매우 중요시하고 소중하게 여겼으며,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자랑스럽게 보존하고자 노력하였다. 명예라는 말이 바로 이름을 자랑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었다.

특히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은 훌륭한 뜻이 함유된 이름을 짓고 顧命思義라 하여 항상 자신의 이름이 품고 있는 뜻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자 노력했으니 이것이 修身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면 이름을 갖게 되고, 성년식의 일종인 冠禮를 치르면서 字를 갖게 되며, 號도 짓고, 공적이 있는 사람은 국가에서 죽은 뒤에 諡號까지 내려 주어, 한 사람을 상징하는 칭호가 여러 종류가 있었다.

 

이들의 名, 字, 號는 각자의 인생관이나 생활했던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므로 선인들의 名, 字, 號를 아는 일은 국학분야의 서적을 읽거나 연구하는 데에 하나의 기초적인 일이었다.

 

한편 한문으로 기록된 전적을 읽다 보면 사람을 부르는 칭호가 매우 다양하여, 기록된 칭호가 名인지 字인지 號인지 職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① 李栗谷珥, 鄭三峰道傳 (성, 호, 명)

② 息菴金相公錫 (호, 성, 직위, 명)

③ 芝峰李晬光, 燕岩朴仲美 (호, 성, 명)

④ 金員外克己, 鄭諫議知常 (성, 직, 명)

 

2. 의 필요성과 작성의 法式

禮記에

'남자는 20세에 冠禮를 행하고 字를 짓는다. 여자도 혼인을 약속하면 笄禮를 행하고 字를 짓는다’

라는 말이 있다.

成年儀式인 관례 때에 字를 짓는 일은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관념 때문에 생긴 것이다. 成人이 된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없어서, 출생한 후부터 갖게 된 이름 외에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별도의 칭호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冠禮(관례)

1.정의 전통사회에서 남자들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유교의례. 전통의례. 2.내용 상투를 틀어 갓[冠巾]을 씌우는 의식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절차로서, 남자아이가 15세가 넘으면 관례를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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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것, 곧 敬名思想은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일반화되었으며, 이를 忌諱思想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매우 귀중하게 여겨서 성인이 된 뒤로는 君師父 이외의 사람은 함부로 부를 수가 없었고, 名을 다른 사람이 부르면 멸시받는 것으로 여겨 왔었다. 이와 같은 呼名忌避 곧 諱法은 중국의 周나라 때부터 비롯되어 온 것으로 지금은 크게 문란해졌지만 아직도 자기 스승의 이름이나 아버지의 이름, 국가원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으려는 것은 전통적인 尊名思想의 남은 흔적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名을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대신할 字가 자연히 필요하게 되었고, 이 字는 周나라에서 宋나라 초까지 성인의 일반적 칭호로서 손아래 사람이나 제자, 자손들까지도 자유로이 부를 수가 있었다.

공자의 손자인 子思가 지은 <중용>에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이라 하여 손자인 자사가 조부인 공자의 字를 써서 부른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공자의 제자 子游의 門人들이 지은 <예기> '예운편'에도 스승의 스승인 공자를 두고 자인 仲尼로 칭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불리던 字를 부르기 꺼리게 되고, 호의 사용이 일반화된 송나라 때부터 일반적 호칭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여, 손아랫사람은 名뿐만 아니라 字까지도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 대신 號가 누구나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보편적 칭호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字를 지을 때 일반적으로 지어진 名과 관련하여 지었는데 <淵鑑類函>에

‘字는 名에 의하여 짓는 것이니 名은 字의 本이고, 字는 名의 끝이다(字依乎名 名字之本也).’

라는 말을 보아 알 수 있다.

字와 名의 상관관계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1) 가 名과 글자는 다르나 의미는 동일한 경우(字異意同)

金子粹 - 純仲 (純,粹,精한 生을 지향)

金士衡 - 平甫 (공평무사한 衡과 平)

安景恭 - 遜甫 (恭과 遜)

韓致亨 - 通之 (亨과 通)

 

(2) 에 쓰인 글자를 字에도 그대로 쓰는 경우(用同字)

吉再 - 再父,

李冑 - 冑之,

申光漢 - 漢之

 

(3) 의 의미를 字로 확충한 경우(意味擴充)

金汝知 - 子行 (知→行)

孟思誠 - 自明 (思誠→明)

李原 - 次山 (原→山)

黃致身 - 孟忠 (致身→忠)

 

(4) 名의 뜻이 한쪽으로 치우친 결함을 보완한 경우(缺陷補完)

韓愈 → 退之

權近 → 可達

洪汝方 → 子圓

安止 → 子行

 

(5) 聖賢과 이 같을 경우나 성현 말씀에서 字를 그대로 따른 경우(先賢名字承襲)

丁克仁 → 可宅(맹자의 仁人之安宅也에서 따옴)

邊以中 → 彦時(중용의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에서 따옴)

 

名과 字는 그 사람이 지향할 인생관이나 실천 덕목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중국에서는 여자에게 자가 일반적인 것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었다. 다만 허난설헌의 本名이 楚姬요, 字가 景樊이며, 號가 蘭雪軒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字가 쓰인 예를 보면 삼국시대 말 7C경부터 부분적으로 보이고 <삼국사기> 열전인물 62명 중 字를 쓴 기록은 5명뿐이었다.

金仁問 - 仁壽,

淵男生 - 元德,

薛聰 - 聰智,

金陽 - 魏昕,

崔致遠 - 孤雲

 

고려시대에는 초기에 조금씩 나타나다가 점차 일반화되었다.

王儒(文行),

徐熙(廉允),

朴寅亮(代天),

崔冲(浩然) 등이 보이고

 

조선시대에는 조사대상자 <한국인명사전>의 인물 중 90% 이상이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3. 와 作號法式

 

 

아랫사람이 名과 字를 자연스럽게 부를 수 없게 되자 누구나 구애받지 않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이 號였다. 號는 雅號나 堂號, 그밖에 別號, 불가의 法名, 宅號 등도 포함되는 것이다. 호는 周나라 때부터 쓰이기 시작해서 송나라 때 보편화되었다.

 

 

雅號는 주로 예술인들이 詩文이나 書畵 등에 쓰는 風雅한 號라는 뜻이며, 堂號는 집의 칭호이지만 결국 그 집의 주인공 號로 쓰이는 것이요, 別號는 別名과 같은 것이다. 한편 諡號는 국가에 공이 있는 이에게 사후에 내리던 號요, 佛家의 法名도 世俗에서 쓰던 本名을 버리고 새로 지은 別名이라 할 수 있다.

 

號는 본래 송나라 때부터 보편화되어 시문이나 서화 등의 서명에 주로 쓰였으니, 名이나 字를 피하기 위해 더욱 칭호로써 크게 유행하여 쓰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선인들에 대해서 名이나 字보다는 號로서 더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많으니 韓濩보다는 韓石峯을, 李滉보다는 李退溪를, 李珥보다는 李栗谷을 더 잘 아는 것이 그 예이다.

 

號는 자신이 지은 것도 있고, 남이 지어준 것도 있으며, 自他가 공히 부르거나, 自稱하는 것도 있다.

또한 자기는 부르지 않고 남들만이 부르는 예도 있으니 成三問의 梅竹軒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현달한 인물이 나온 경우 자신의 가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미 사망한 조상의 字나 號를 지어 족보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등재하는 일도 있었다.

 

중국 周나라 때부터 쓰이기 시작하던 號가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접촉이 잦던 삼국시대 말기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삼국사기 열전의 인물 62명 중 극소수의 號가 보이는데 元曉(속성명은 薜思)의 小性居士, 任牛頭의 强首 정도이다.

 

고려시대로 넘어와서 號의 사용 빈도는 점차 높아져 14C 주자학 학풍이 널리 퍼지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로 넘어와 15C에 이르면서 號의 사용은 일반화되어 顯達高名한 이는 대부분 號를 갖게 되었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습속은 계속되어 온 것이다.

 

號는 본인이 짓거나 친지가 짓게 되는데 아무렇게나 짓는 것이 아니라 짓는 의도와 법식이 있었다. 본인이 짓는 경우는 대개 名이나 字, 품성, 출신지, 사는 곳 등과의 관련하여 지어졌는데 이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所處以號

 

號를 지을 때 그 사람이 생활하고 있거나 태어났거나 또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處所를 號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선인들의 號 중에는 상당히 많은 수가 이 소처이호에 의해서 지어진 것들이었다. 동네 이름, 산골짜기명이 붙여진 것은 모두 이에 속한다. 따라서 村․里․洞․州․郊․山․峰․岩․岡․岳․谷․溪 등의 글자가 나타나며 다음의 예를 들 수 있다.

 

鄭道傳(三峰),

李滉(退溪, 陶山老人),

李珥(栗谷),

柳馨遠(潘溪),

朴趾源(燕岩),

丁若鏞(茶山)

 

(2) 所志以號

 

號 안에 자신의 지표와 의지가 담겨진 호로서 뜻하는 바를 號에 나타낸 것이다. 선인들의 號 가운데 상당히 많은 수가 所志를 나타낸 것인데 이런 類의 號 중에는 수신적인 뜻을 나타낸 것이 가장 많고 더러는 은둔적인 뜻이나 풍류적인 것도 많다.

다음과 같이 예를 들 수가 있겠다.

 

李齊賢(櫟翁),

張中擧(以存堂),

栗谷의 어머니(師任堂),

李奎報(白雲居士),

宋純(俛仰亭),

丁若鏞(與猶堂),

朴祥(訥齋),

李天慶(日新堂),

南袞(知足堂)

 

(3) 所遇以號

 

作號者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을 號로 표현하는 것으로서 이런 號에는 부귀현달이나 건강진취의 모습은 없고, 貧·苦·病·老·孤ㅍ虛無 등을 나타내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樵隱, 退翁, 醉翁 등과 같이 隱·翁·樵·老·居士·散人·老人·主人·布衣·野人·山人·道人 등의 글자가 많이 붙는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 山人: 속세를 떠나 산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人과 山자를 합하면 신선 仙字가 된다).

▶ 散人: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뜻한다.

▶ 道人: 학문과 예술의 한 분야에 정진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主人: 대개 堂號 또는 산 이름 밑에 붙여서 쓰는 것으로 그 집, 또는 그 산의 주인이란 뜻이다.

▶ 老人: 늙은이란 뜻이다.

▶ 翁: 老人과 같은 뜻으로 늙은이란 뜻이다. 號나 나이 밑에 쓴다.

▶ 居士, 逸士, 退仕: 속세를 떠나 조용한 초야나 심산, 절에 들어가 도를 닦는 선비를 뜻한다.

▶ 布衣 : 속세를 떠나 초야에 살면서 도를 닦는 野人이란 뜻이다.

 

(4) 所蓄以號

 

이는 간직하고 있는 물건 가운데 특히 애완하는 것을 號로 삼는 것이다. 상록수인 소나무, 잣나무, 대나무라든지 연못, 연꽃, 거문고 등과 같은 것을 소재로 하여 이들이 머금고 있는 상징이 作號者의 뜻과 합치했을 때 이를 호로 삼기 때문에 작호자의 所志가 함축되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陶潛(五柳先生),

鄭熏(七松居士),

鄭敍(瓜亭),

許震(竹村),

文益周(白蓮堂)

 

이상의 작호법 중 작호자의 개성이 잘 나타난 것은 所志以號이고, 비개성적인 것이 所處以號라 보며, 이러한 네 가지 법식에 해당되지 않은 호가 있다면 통상적인 의미의 號로 보기가 어렵다.

 

한편 거주지와 所志나 所遇가 바뀌었을 때는 거기에 맞는 새로운 호를 짓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혼자서 여러 개의 號를 가진 예도 많았으며, 所志가 같거나 所遇가 같다 보니 자연 같은 號를 갖게 되어 한 가지 號를 여럿이서 공유하는 예가 많다.

전자의 예를 든다면 백개가 넘는 號를 가진 김정희의 경우 阮堂·秋史·禮堂·詩療·果坡·老果 등이요, 김시습의 경우 鰲世翁·梅月堂·雪岑·淸寒子·東峰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후자의 예로서 여럿이 공유하는 호는 黙齌·松坡·竹溪·孤山·松巖·東岡·訥齌·松亭·雲谷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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