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은 30世家 중 세 번째 편으로 주나라의 개국공신인 周公 旦의 사적과 魯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
魯는 周武王이 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 주공을 曲阜에 分封하면서 시작되었다. 주공은 봉지에 부임하지 않고 국도에서 무왕과 무왕의 아들 성왕을 보좌하면서 장남인 伯禽을 봉지로 보내어 통치하게 하였다.
戰國時代에 齊·晉·楚등의 제후에게 압도되고 그 세력에 완전히 좌우되었으며, 겨우 주나라의 전통적 문화와 제도를 보존하고 전해주는 것으로 그쳤다.
기원전256년, 楚가 魯를 병탄하고 경공을 폐출하자 魯는 멸망하였다.
周公旦者,周武王弟也。
周公 旦은 周武王의 동생이다.
自文王在時,旦為子孝,篤仁,異於群子。
文王 재위 때부터 旦은 자식으로서 효도하고, 충직하고 어진 것이 다른 아들들과는 달랐다.
及武王即位,旦常輔翼武王,用事居多。
무왕이 즉위하자 단은 늘 무왕을 보필하며 정무를 도맡았다.
武王九年,東伐至盟津,周公輔行。
무왕 9년(기원전1048년), 동방 정벌에 나서 孟津에 이르렀을 때 주공도 무왕을 보필하여 나섰다.
|
▶周公旦: 周나라 文王의 넷째 아들로 武王의 아우. 이름은 旦, 시호는 元.
▶周武王: 주나라의 제1대 왕이다. 성은 姬, 이름은 發이다. 주문왕의 아들이다.
▶文王: 西伯昌. 이름은 희창이며, 은나라의 속국인 주나라의 제후이다. 서쪽의 제후의 수장을 서백이라고 하였으므로 주문왕 희창을 서백창이라 하였다.
▶篤仁: 충직하고 성실하며 어질다.
▶輔翼: 돕다. 보필하다.
▶居: 차지하다.
▶用事: 정무를 처리하다.
十一年,伐紂,至牧野,周公佐武王,作牧誓。
무왕 11년(기원전1046년), 紂王을 정벌코자 牧野에 이르렀을 때 주공은 무왕을 보좌하였고 <牧誓>를 지었다.
破殷,入商宮。
殷나라를 쳐부수고 은나라의 왕궁에 들어갔다.
已殺紂,周公把大鉞,召公把小鉞,以夾武王,釁社,告紂之罪于天,及殷民。
주왕을 죽이고 나서 주공은 큰 도끼를 들고, 召公은 작은 도끼를 들고 무왕의 양 옆에서 보좌하며 희생의 피로 토지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紂王의 죄를 하늘과 은나라의 백성들에게 고하였다.
釋箕子之囚。
箕子의 구금을 풀어주었다.
封紂子武庚祿父,使管叔、蔡叔傅之,以續殷祀。
은나라 紂王의 아들 武庚祿父를 제후로 봉하고 管叔과 蔡叔이 돕게 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잇게 하였다.
遍封功臣同姓戚者。
공신들과 같은 성을 가진 친인척들을 두루 제후로 봉하였다.
封周公旦於少昊之虛曲阜,是為魯公。
주공 단을 少昊의 옛 땅인 曲阜에 봉하여 魯公이라 하였다.
周公不就封,留佐武王。
주공은 봉국으로 가지 않고 남아서 무왕을 보좌하였다.
|
▶紂: 殷나라의 紂왕. <사기 권03. 殷本紀>
▶牧誓: <書經>의 篇名. <서경>은 虞書 · 夏書 · 商書 · 周書로 대별되는데 목서는 주서에 속하며, 주무왕이 은주왕을 정벌할 때 군사들의 노고에 대한 위로와 은주왕의 죄상 폭로, 실제 전투에 임할 때 취할 행동, 임전할 군사들에 대한 격려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는 훈시이다.
▶鉞: 큰 도끼.
▶召公: 姓은 姬, 이름은 奭이다. 周나라의 정치가로서 戰國七雄의 하나인 燕의 始祖이기도 하다. 周公과 함께 周의 건국과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夾: 좌우에서 보좌하다.
▶釁社: 衅社. 犧牲을 죽여 그 피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다.
▶箕子: 殷나라 紂王의 숙부. 周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紂를 죽인 뒤에 구금되었던 箕子를 석방하였다.
▶武庚祿父: 은주왕의 아들. 武庚은 ‘禄父’라고도 하며, 그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주무왕은 자신의 세 동생에게 그 주변 지역을 分封하였다. 管叔姬鲜을 管의 제후로 봉했으며, 蔡叔姬度는 蔡의 제후로, 霍叔姬處는 霍의 제후로 봉하였다. 이들은 武庚과 商의 유민들에 대한 감시를 맡았기에 ‘三監’이라고 불렸다.
▶傅: 보조하다.
武王克殷二年,天下未集,武王有疾,不豫,群臣懼,太公、召公乃繆卜。
무왕이 은나라를 이긴 다음해에도 천하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무왕이 병이 나서 편치 않자 대신들이 모두 몹시 두려워하였고, 太公과 召公이 경건히 점을 보았다.
周公曰:
「未可以戚我先王。」
주공이 말하였다.
“이 일로 우리 선왕을 걱정시켜 드려서는 안 된다.”
周公於是乃自以為質,設三壇,周公北面立,戴璧秉圭,告于太王、王季、文王。
주공은 이에 자신을 인질로 삼아 세 개의 제단을 마련하고, 주공은 북쪽을 향해 서서 碧玉을 머리에 이고 홀을 손에 들고 太王, 王季, 文王에게 기도하였다.
|
▶未集: 천하통일의 대업이 미완성되다.
▶不豫: 편치 않다.
▶繆卜:穆卜. 경건하게 점을 보다.
▶戚: 근심하다. 염려하다.
▶先王: 주나라의 선조인 太王, 王季, 文王을 말한다. 태왕은 고공단보, 왕계는 季歷, 문왕은 서백 창.
▶質: 인질.
▶戴: 받들다.
▶璧: 고대의 玉器. 둥글넓적하며 중앙에 둥근 구멍이 있음
▶秉: 잡다.
▶圭: 옥으로 만든 笏. 제사를 지낼 때 쓰는 玉器.
史策祝曰:
「惟爾元孫王發,勤勞阻疾。
若爾三王是有負子之責於天,以旦代王發之身。
旦巧能,多材多藝,能事鬼神。
乃王發不如旦多材多藝,不能事鬼神。
乃命于帝庭,敷佑四方,用能定汝子孫于下地,四方之民罔不敬畏。
無墜天之降葆命,我先王亦永有所依歸。
今我其即命於元龜,爾之許我,我以其璧與圭歸,以俟爾命。
爾不許我,我乃屏璧與圭。」
사관이 祭文을 지었는데 이러하였다.
“당신들의 장손인 국왕 發이 국사에 지쳐 병들었습니다.
만약 세분 왕께서 자손을 하늘에 바치려 하신다면 이 旦이 국왕 발의 목숨을 대신하겠나이다.
이 단은 영리하고 유능하며 다재다능하여 귀신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허나 국왕 발은 이 旦만큼 다재다능하지 못하여 귀신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명을 받아 천하를 빠짐없이 구제하고 人間에서 당신 자손들을 안정시키니 천하의 백성들이 존경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하늘이 내린 고귀한 명령을 저버리지 않아야만 우리 선왕께서도 종묘의 제사를 영원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단이 즉시 큰 거북으로 명을 받들겠사오니 당신들께서 저를 받아 주신다면 저는 벽옥과 홀을 바치고 당신들의 분부를 기다리겠습니다.
당신들께서 저를 받아 주시지 않는다면 벽옥과 홀을 감추겠습니다.”
|
▶筴祝: 竹冊의 祭文.
▶元孫: 장손.
▶阻: 재난을 당하다. 막히다.
▶負子之責: 자손을 犧牲으로 바치기를 요구하다.
▶敷佑四方: 천하를 빠짐없이 구제하다. 敷는 두루. 佑는 보호하다.
▶四方: 천하.
▶用: 그런 까닭에. 그래서.
▶定: 안정시키다.
▶下地: 人間을 말한다.
▶罔: 無. 없다.
▶墜: 잃다.
▶天之降葆命: 하늘에서 내린 소중한 천명. 葆는 寶와 통용된다.
▶即命: 명을 받들다.
▶元龜: 占卜에 사용하는 큰 거북.
▶歸: 바치다. 歸는 饋와 통용된다.
▶屏: 감추다. 숨겨두다.
周公已令史策告太王、王季、文王,欲代武王發,於是乃即三王而卜。
주공이 사관에게 태왕, 왕계, 문왕께 고하여 무왕 발을 대신하고자 하고 나서 바로 세 왕의 제단 앞에서 점을 쳤다.
卜人皆曰吉,發書視之,信吉。
점을 담당한 卜人들이 모두 길조라 하며 점을 친 글을 보여주니 과연 길조였다.
周公喜,開籥,乃見書遇吉。
주공이 기뻐하며 상자를 열어 점괘서를 보고 길조를 확인하였다.
周公入賀武王曰:
「王其無害。
旦新受命三王,維長終是圖。
茲道能念予一人。」
주공이 들어가 무왕에게 축하하며 말하였다.
“왕께는 어떤 재앙도 없겠습니다.
이 단이 三王께 새로운 명을 받았사오니 오로지 원대한 계획만 생각하십시오.
이 도리는 오로지 천자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
周公藏其策金縢匱中,誡守者勿敢言。
주공은 축문을 金縢匱에 간직하고 지키는 자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주의를 주었다.
明日,武王有瘳。
이튿날 무왕의 병이 모두 나았다.
|
▶籥: 열쇠.
▶予一人: 고대에는 천자가 자신을 “予一人”이라 하였다. 즉 무왕 發을 말한다.
▶金縢匱: 금을 녹여 그 물로 봉함한 궤. 縢은 밀봉하다. 匱는 상자.
※金縢: 주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1년 만에 병이 걸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주공 단이 사관에게 太王, 王季, 文王께 武王發을 대신해 죽겠다는 축문을 고하게 하고 즉시 세 왕을 향해 점을 쳤다. 점의 괘가 길하게 나오자 그 점괘를 금궤 안에 보관하고 금으로 밀봉하였다. 금등이란 금을 녹여 그 물로 봉함한 궤를 말했으나 후에 그 안에 든 축문의 내용을 말하게 되었다. <尚書·周書·金縢>
▶瘳: 낫다.
其後武王既崩,成王少,在彊葆之中。
그 후 무왕이 세상을 떠났으나 성왕은 어려서 아직 강보에 싸여 있었다.
周公恐天下聞武王崩而畔,周公乃踐阼代成王攝行政當國。
주공은 무왕이 붕어한 소식을 천하 사람들이 듣고 배반할까 근심하여, 이에 군왕의 자리를 계승하여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하였다.
管叔及其群弟流言於國曰:
「周公將不利於成王。」
管叔과 그 동생들은 나라 안에 流言을 퍼뜨렸다.
“주공은 장차 성왕에게 이롭지 않을 터이다.”
|
▶成王: 주나라의 제2대 왕. 주무왕의 아들로 성은 姬, 이름은 誦이다. 주무왕이 역성혁명 후 불과 2년 만에 사망하자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성왕이 어렸으므로 무왕의 아우 周公旦이 攝政하였다.
▶彊葆: 포대기. 襁褓와 같다.
▶畔: 叛과 통용된다. 배반하다.
▶踐阼: 즉위하다. 임금의 자리를 계승함. 阼는 주인이 손님을 영접하는 동쪽 계단.
▶攝行: 대리하여 집행하다.
▶政: 國政.
▶管叔: 무왕의 아우. 무왕이 죽고 어린 成王이 즉위하여 周公이 섭정을 하니, 관숙과 채숙은 주공이 성왕을 해칠 것이라고 모함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周公乃告太公望、召公奭曰:
「我之所以弗辟而攝行政者,恐天下畔周,無以告我先王太王、王季、文王。
三王之憂勞天下久矣,於今而后成。
武王蚤終,成王少,將以成周,我所以為之若此。」
주공은 太公望과 召公 奭에게 말하였다.
“내가 피하지 않고 섭정하는 것은 천하가 周나라를 배반할까 염려하여, 우리 선왕들이신 태왕, 왕계, 문왕께도 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삼왕께서 천하를 걱정하고 애쓰시기 오래되어 지금에야 뒤이어 성공하였습니다.
무왕이 일찍 세상을 뜨셨고 성왕께서는 어리니, 주나라의 대업을 완성하고자 함이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입니다. ”
於是卒相成王,而使其子伯禽代就封於魯。
이에 결국 성왕을 보좌하기에 이르렀고, 아들 伯禽을 봉지인 魯로 대신 가도록 하였다.
|
▶弗辟: 피하지 않다. 辟는 避와 같다.
▶成周: 주나라를 안정시킬 대업을 완성하다.
周公戒伯禽曰:
「我文王之子,武王之弟,成王之叔父,我於天下亦不賤矣。
然我一沐三捉發,一飯三吐哺,起以待士,猶恐失天下之賢人。
子之魯,慎無以國驕人。」
주공이 백금에게 훈계하였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며, 성왕의 숙부이니 나는 천하에 천한 신분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을 세 번 움켜쥐고 달려나갔고, 한 번 식사하는데 세 번 음식물을 뱉어내면서 일어나 인재를 맞이하면서도 오로지 천하의 賢人을 잃을까 걱정하였다.
네가 魯로 가거든 근신하여 나라를 갖게 되었다고 사람들에게 교만하지 말라. ”
|
▶沐: 고대에 머리를 감는 것을 沐이라 하고 몸을 씻는 것을 浴이라 하였다.
▶哺: 입에 씹고 있는 음식물.
▶吐哺握發: 주공이 목욕하다가 어진 인재가 찾아왔다면 물기를 닦을 겨를도 없이 달려 나와 맞이하기를 하루에 세 번씩 하였고, 식사하다가 현인이 찾아왔다고 하면 씹고 있던 음식을 뱉어내고 곧바로 뛰어나가 맞이하였다는 고사로써 주공이 어진 사람을 맞이하기에 정성을 다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管、蔡、武庚等果率淮夷而反。
管叔, 蔡叔, 武庚 등이 과연 淮夷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周公乃奉成王命,興師東伐,作大誥。
주공은 이에 성왕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켜 동방 정벌에 나섰고, <大誥>를 지었다.
遂誅管叔,殺武庚,放蔡叔。
마침내 관숙을 베어 죽이고, 무경을 죽이고, 채숙을 내쫓았다.
收殷餘民,以封康叔於衛,封微子於宋,以奉殷祀。
은나라의 유민을 거두어들이고 康叔을 衛나라에, 微子를 宋나라에 봉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寧淮夷東土,二年而畢定。
회이 동쪽 땅을 평정하여 2년 만에 모두 평정하였다.
諸侯咸服宗周。
제후들은 모두 복종하여 周왕실을 宗主로 받들었다.
|
▶三監의 亂: 周武王이 죽은 뒤에 무왕의 동생인 周公이 어린 成王을 대신하여 攝政하자 周公의 형제들인 管叔, 蔡叔, 霍叔이 商紂王의 아들인 武庚과 연합하여 일으킨 반란이다.
武庚은 商나라가 멸망한 뒤 商의 도읍이었던 殷에 머무르며 遺民들을 다스렸고, 그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 무왕은 자신의 세 동생에게 그 주변 지역을 分封하였다. 管叔 姬鲜을 管의 제후로 봉했으며, 蔡叔 姬度는 蔡의 제후로, 霍叔 姬處는 霍의 제후로 봉하였다. 이들은 武庚과 商의 유민들에 대한 감시를 맡았기에 ‘三監’ 이라고 불렸다.
▶淮夷: 서주시대 淮河하류에 있던 소수부족.
▶大誥: <尙書>의 편명. 삼감의 반란행위를 정벌하는 일을 백성들에게 고한 내용이다. <尙書·周書·大誥>
▶放蔡叔: 放은 내쫓다.
주공 단은 성왕의 명령을 받아 토벌에 나서서 무경과 관숙을 죽이고, 채숙은 수레10승과 시종70명만 주어 내쫓았다.
은나라의 유민들을 둘로 나누어, 微子 啓를 宋나라에 봉하여 제사를 잇게 하고, 康叔을 衛나라의 국군에 봉하였다. <사기 권35. 管蔡世家>
▶寧: 평정하다.
▶咸: 모두.
▶宗周: 주왕실을 宗主로 하다.
天降祉福,唐叔得禾,異母同穎,獻之成王,成王命唐叔以餽周公於東土,作餽禾。
하늘이 복을 내려 唐叔이 벼 이삭을 얻었는데 두 줄기에서 하나의 이삭으로 패어, 이를 成王에게 바치니 성왕은 당숙에게 명하여 동쪽 땅에 있던 주공에게 보내도록 하고, <餽禾>를 지었다.
周公既受命禾,嘉天子命,作嘉禾。
주공은 하사한 벼를 받고 천자의 명을 아름답게 여겨 <嘉禾>를 지었다.
東土以集,周公歸報成王,乃為詩貽王,命之曰鴟鸮。
동쪽 땅이 안정되자 주공은 돌아와 성왕에게 보고하면서 시를 지어 왕에게 바치니, 시의 이름을 <鴟鴞>라고 지었다.
王亦未敢訓周公。
성왕 역시 주공을 감히 책망하지 못하였다.
|
▶唐叔: 晉 唐叔. 晉나라의 초대 군주. 무왕의 3남. 성왕의 동복 아우이다. 자는 子於.
성왕 시대에 당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 주공 희단이 당나라를 멸하고 그곳을 성왕이 봉지로 주어 唐의 군주가 되었다.
▶祉: 하늘에서 내리는 복.
▶母: 초목이 열매를 맺는 것을 母라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牡라 한다.
▶穎: 이삭.
▶餽: 보내다.
▶於東土: 당시 주공이 동방을 정벌하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다.
▶餽禾: <歸禾>. <尙書>의 편명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歸는 饋(보낼 궤)와 통용된다. 晉唐叔이 상서로운 곡식을 얻어 성왕에게 바치자 성왕은 그것을 병영에 나가 있는 주공에게 보냈다. 주공은 동쪽 땅에서 상서로운 곡식을 받고 천자의 명을 찬양하였다.
<사기 본기04. 周本紀>
▶命禾: 천자가 하사한 벼.
▶嘉禾:<尙書>의 편명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천자가 상서로운 곡식을 보낸 것을 찬양하는 글이라고 전해진다.
▶鴟鴞: 올빼미. 주공이 관숙과 채숙을 처형하고 지은 시로 <詩經·豳風>에 실려 있다.
▶訓: 책망하다.
成王七年二月乙未,王朝步自周,至豐,使太保召公先之雒相土。
성왕 7년(기원전1037년) 2월 을미일에 성왕이 鎬京에서 무왕 묘에 참배하고 걸어서 豐까지 가서 문왕의 사당을 참배하고, 太保 召公을 먼저 雒邑으로 보내 지형을 살피도록 하였다.
其三月,周公往營成周雒邑,卜居焉,曰吉,遂國之。
그해 3월에 주공이 가서 낙읍을 주나라의 도읍으로 조성하고자 점을 치니 길하다고 하여 드디어 낙읍을 도읍으로 삼았다.
|
▶朝: 朝拜. 참배하다. 성왕이 무왕묘에 가서 참배하고 낙읍을 조성하는 일에 대하여 기도한 것이다.
▶周: 여기서는 호경을 말한다. 무왕의 묘가 이곳에 있었다.
▶豊: 문왕의 묘가 풍읍에 있었다.
▶相土: 지형을 관찰하다.
▶國: 수도로 정하다.
成王長,能聽政。
성왕이 장성하여 국정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於是周公乃還政於成王,成王臨朝。
이에 주공은 곧 성왕에게 정권을 돌려주니 성왕이 조회에 임하였다.
周公之代成王治,南面倍依以朝諸侯。
주공이 성왕을 대신하여 통치할 때에는 남면하여 병풍을 뒤로 하고 제후들의 조회를 받았다.
及七年後,還政成王,北面就臣位,匔匔如畏然。
7년이 지나 성왕에게 정권을 돌려주고 북면하며 신하의 자리에 섰는데 신중하고 공손한 모양이 마치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
▶倍: 등지다. 倍는 등질 패.
▶依: 扆와 통용된다. 병풍. 천자의 거처에 치던 도끼 모양을 수놓은 병풍.
▶匔匔: 신중하고 공손한 모양.
初,成王少時,病,周公乃自揃其蚤沈之河,以祝於神曰:
「王少未有識,奸神命者乃旦也。」
당초 성왕이 어렸을 때 병이 났는데 주공은 곧 자신의 손톱을 잘라 황하에 던지며 신에게 빌었다.
“왕이 아직 어려서 식견이 없으니, 신의 명을 어긴 자는 이 旦이옵니다. ”
亦藏其策於府。
그리고 축문은 보관소에 간직하였다.
成王病有瘳。
성왕의 병이 모두 나았다.
及成王用事,人或譖周公,周公奔楚。
성왕이 정무를 처리하게 되자, 누군가가 주공을 참소하였고, 주공은 楚나라로 달아났다.
成王發府,見周公禱書,乃泣,反周公。
성왕이 보관소를 열어 주공의 기도문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주공을 돌아오게 하였다.
|
▶揃: 자르다.
▶蚤: 爪와 통용된다. 손톱. 揃爪 : 손톱을 자르다.
▶奸: 위반하다. 범하다.
▶府: 문서보관소. 궁중에서 중요한 문서를 보관하는 곳.
▶譖: 참소하다. 헐뜯다.
▶反: 返과 같다.
周公歸,恐成王壯,治有所淫佚,乃作多士,作毋逸。
주공이 돌아와서 성왕이 젊어서 방탕하게 나라를 다스릴까 염려하여 <多士>와<毋逸>을 지었다.
毋逸稱:
<무일>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為人父母,為業至長久,子孫驕奢忘之,以亡其家,為人子可不慎乎!
“부모로서 오랜 세월 基業을 이루어 놓았거늘, 자손이 교만과 사치로 그것을 잊고 가업을 훼손하니 자식 된 자로서 어찌 신중하지 않겠는가!
笔昔在殷王中宗,嚴恭敬畏天命,自度治民,震懼不敢荒寧,故中宗饗國七十五年。
그래서 옛날 殷王 中宗은 천명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받들고, 스스로 법도를 지키며 백성을 다스렸으며, 떨고 두려워 감히 정치를 소홀하거나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75년 동안 왕의 자리를 누렸다.
其在高宗,久勞于外,為與小人,作其即位,乃有亮闇,三年不言,言乃讙,不敢荒寧,密靖殷國,至于小大無怨,故高宗饗國五十五年。
은나라의 高宗은 오랫동안 민간에서 힘들게 일하며, 하층민들과 함께 생활했으며, 즉위하자 상을 당해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
입을 열자 모두 기뻐하였고, 감히 정치를 소홀하거나 게을리하지 않고 은나라를 안정시켜, 하층민과 대신들의 원망이 없었기에 고종은 55년 동안 왕의 자리를 누릴 수 있었다.
其在祖甲,不義惟王,久為小人于外,知小人之依,能保施小民,不侮寡,故祖甲饗國三十三年。」
은왕 祖甲은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민간에서 오랫동안 하층민으로 지냈으므로, 하층민이 바라는 바를 알았기에 하층민을 보호하고 은혜를 베풀 수 있었으며, 홀아비와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33년 동안 왕의 자리를 누릴 수 있었다. ”
|
▶淫佚: 방탕하다. 마음껏 음탕하게 놂.
▶<無逸>: <尙書>의 편명. 편안함만 추구하지 말라는 뜻으로 주공이 성왕에게 훈계한 글이다.
▶笔昔: 나로서는 笔이 해석되지 않는다. 서경 등에는 笔자가 없다.
▶中宗: 은나라의 제9대 왕으로 성은 子이며, 이름은 太戊, 王號는 中宗이다. 현인 伊陟을 재상으로 삼아 상나라를 부흥시켰다. <사기 권03. 은본기>
▶荒寧: 일을 소홀히 하고 스스로 놀며 즐기다.
▶饗: 누리다. 享과 통용된다.
▶高宗: 盤庚의 아우인 小乙의 아들로 이름은 武丁이며, 덕이 높아 존경할 만하기 때문에 號를‘高宗’이라 하였다. <사기 권03. 은본기>
▶小人: 서민. 평민. 노역에 종사하는 하층민.
▶作: 시작하다.
▶亮闇: 제왕이 상을 당하다.
▶密靖: 안정시키다.
▶祖甲: 太甲. 성은 子이며, 이름은 기록에 따라 太甲이나 祖甲이라고 한다. 王號는 太宗이다. 商나라를 건국한 湯王 天乙의 태자였던 太丁의 아들이다. 33년간 재위하였다. <사기 권03. 은본기>
▶依: 의지하다.
多士稱曰:
「自湯至于帝乙,無不率祀明德,帝無不配天者。
在今後嗣王紂,誕淫厥佚,不顧天及民之從也。
其民皆可誅。」
<多士>의 내용은 이러하다
“湯에서 帝乙까지는 제사의 예를 따르고 덕을 밝히지 않은 제왕은 없었고, 하늘의 뜻에 따르지 않은 제왕도 없었다.
지금 후대의 왕 紂에 이르러 아주 방탕하고 향락에만 빠져 하늘과 백성의 바람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
「文王日中昃不暇食,饗國五十年。」
또,
“문왕은 새벽부터 해가 중천에 뜨고,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밥 먹을 겨를도 없었기에 50년간 왕의 자리를 누릴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作此以誡成王。
이렇게 지어 성왕을 훈계하였다.
|
▶<多士>: <尙書>의 편명. <多士>는 상나라 시대의 많은 관리들을 말하며, 주공이 성왕의 명이라 하며 상나라의 모든 遺臣들에게 낙읍으로 이주할 것을 설득한 글이다.
▶湯: 殷나라를 창건한 왕. 이름은 履 또는 天乙, 太乙이고, 成湯이라고도 한다.
▶帝乙: 상나라의 30대 군주이다. 성은 子이고 이름은 羡이다. 수도는 殷이었다. 자식은 첫째 微子 啓, 둘째 中衍, 막내 帝辛, 은주왕 등이 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紂王의 아버지이다.
▶率: 따르다.
▶明: 힘쓰다.
▶配天: 하늘의 뜻에 따르다.
▶誕淫厥佚: 아주 방탕하고 놀며 즐기다. 誕은 크다. 厥은 빠진다는 뜻.
▶昃: 해가 서쪽으로 기울다.
成王在豐,天下已安,周之官政未次序,於是周公作周官,官別其宜,作立政,以便百姓。
성왕이 풍에 머무르면서 천하는 안정되었지만 주나라의 관직제도는 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 이에 주공이 <周官>을 지어 백관의 직책을 나누어 정하고, <立政>을 지어 백관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百姓說。
백관들이 기뻐하였다.
|
▶官政: 관직제도.
▶未次序: 체제를 갖추지 못하다.
▶<周官>: 고문상서의 편명. 성왕이 은나라의 잔적들을 모두 소탕한 후 풍 땅에 돌아와서 주나라의 관제를 정비할 때 쓴 글이다.
▶<立政>: 尙書의 편명. 천하가 안정된 후 어진 인재를 등용하여 적 당한 자리에 두게 하고, 천자 자신도 덕행에 힘쓰고 선정을 베풀어 문왕과 무왕이 이룩한 주나라를 더욱 빛나게 하라는 내용이다.
▶百姓: 귀족. 百官. 전국시대 이전에 귀족과 비교하여 일반 사람을 일컫는 말. 귀족은 姓이 있었으나 평민은 성이 없었다.
▶說: 悦과 같다.
周公在豐,病,將沒,曰:
「必葬我成周,以明吾不敢離成王。」
주공이 豐에서 병이 들어 죽을 즈음에 말하였다.
“반드시 나를 成周에 묻어서 내가 감히 성왕을 떠나지 않음을 밝혀 다오.”
周公既卒,成王亦讓,葬周公於畢,從文王,以明予小子不敢臣周公也。
주공이 죽자, 성왕 역시 겸양의 마음에서 주공을 畢땅에 묻어 문왕을 따르게 함으로써 성왕이 감히 주공을 신하로 여기지 않았음을 밝혔다.
|
▶成周: 周나라의 수도가 洛邑에 있었을 때의 칭호. 西周 2대 국왕인 成王 재위 시 건설하였다.
▶從文王: 주 周 文王의 묘가 畢에 있었으므로 문왕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予小子: 천자가 자기를 겸손하게 칭한 것이다.
周公卒後,秋未穫,暴風雷[雨],禾盡偃,大木盡拔。
주공이 죽은 뒤 가을걷이를 하지 않았는데 우레와 폭풍우가 몰아쳐 벼가 모두 쓰러지고 큰 나무가 다 뽑혔다.
周國大恐。
주나라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였다.
成王與大夫朝服以開金縢書,王乃得周公所自以為功代武王之說。
성왕과 대부들은 朝服옷을 입고 金藤書를 열어 보고, 성왕은 주공이 무왕을 대신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글을 찾았다.
二公及王乃問史百執事,史百執事曰:
「信有,昔周公命我勿敢言。」
태공망과 소공과 왕이 사관과 관원들에게 물으니 사관과 관원들이 대답하였다.
“실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날 주공께서 저희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
▶穫: 농작물을 수확하다.
▶史百執事: 史官과 관원.
成王執書以泣,曰:
「自今後其無繆卜乎!
昔周公勤勞王家,惟予幼人弗及知。
今天動威以彰周公之德,惟朕小子其迎,我國家禮亦宜之。」
성왕이 책서를 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이후 더이상 이처럼 경건한 祭文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옛날 주공께서 王家를 위하여 힘들게 노력하셨건만 내가 어려서 알지 못하였다.
지금 하늘이 위엄을 발휘하여 주공의 덕을 드러내 밝히니, 짐이 그것을 맞이하되 국가의 예로 함이 마땅할 터이다. ”
王出郊,天乃雨,反風,禾盡起。
왕이 교외로 나가 제사를 드리자, 비가 오고 바람은 방향을 바꾸더니 벼가 모두 일어섰다.
二公命國人,凡大木所偃,盡起而筑之。
태공망과 소공이 국인들에게 명하여 쓰러진 큰 나무들을 모두 세우고 흙으로 다지게 하였다.
歲則大孰。
그해에 풍년이 크게 들었다.
於是成王乃命魯得郊祭文王。
그리하여 성왕은 魯에 명하여 문왕의 郊제사를 올릴 수 있게 하였다.
魯有天子禮樂者,以褒周公之德也。
魯에 천자의 예악이 생긴 것은 이로써 주공의 덕을 칭송했기 때문이다.
|
▶朕小子: 성왕의 자신에 대한 겸칭.
▶孰: 熟과 같다. 풍작.
▶郊祭文王: 천자가 교외에서 하늘에 제사를 거행하는 것을 郊라고 하며 魯가 郊祭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천자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므로 특혜를 준 것이다.
▶褒: 칭찬하다.
周公卒,子伯禽固已前受封,是為魯公。
주공이 죽고, 아들 伯禽이 본래 이전의 봉국을 받았으니 그가 魯公이다.
魯公伯禽之初受封之魯,三年而後報政周公。
노공 백금이 魯에 처음 봉해지고, 3년이 지나서야 주공에게 국정을 보고한 적이 있었다.
周公曰:
「何遲也?」
주공이 말하였다.
“어째서 이렇게 늦었느냐?”
伯禽曰:
「變其俗,革其禮,喪三年然後除之,故遲。」
백금이 대답하였다.
“나라의 풍속과 예의를 바꾸고 상복을 삼년 만에 벗느라 늦었습니다. ”
太公亦封於齊,五月而報政周公。
태공도 齊에 봉해졌는데 다섯 달 만에 주공에게 국정을 보고하였다.
周公曰:
「何疾也?」
주공이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빠릅니까?”
曰:
「吾簡其君臣禮,從其俗為也。」
태공이 대답하였다.
“저는 군신 간의 예를 간소화하고 그들의 풍속에 따랐을 뿐입니다. ”
|
及後聞伯禽報政遲,乃嘆曰:
「嗚呼,魯後世其北面事齊矣!
夫政不簡不易,民不有近;
平易近民,民必歸之。」
나중에 백금의 국정 보고가 늦었음을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아, 후대에 魯가 齊의 신하가 되겠구나!
무릇 정치란 간소하고 쉽지 않으면 백성이 가까이하기 힘들다.
쉽고 백성에 친근하면 백성들이 따를 수밖에 없다. ”
|
伯禽即位之後,有管、蔡等反也,淮夷、徐戎亦并興反。
백금이 즉위한 후 관숙, 채숙 등이 반란을 일으켰고, 淮夷와 徐戎 역시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於是伯禽率師伐之於肸,作肸誓,曰:
「陳爾甲胄,無敢不善。
無敢傷牿。
馬牛其風,臣妾逋逃,勿敢越逐,敬復之。
無敢寇攘,踰墻垣。
魯人三郊三隧,峙爾芻茭、糗糧、楨榦,無敢不逮。
我甲戌筑而征徐戎,無敢不及,有大刑。」
이에 백금은 군대를 이끌고 肹땅에서 그들을 정벌하면서 <肹誓>를 지어 말하였다.
“너희들의 갑옷과 투구를 준비하되 절대 허술하게 다루지 말라.
절대 마구간을 훼손하지 말라.
말과 소가 달아나고 노예가 도망가더라도 군대를 벗어나 뒤쫓지 말고 공손히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라.
재물을 약탈하지 말고 남의 담을 뛰어넘어 절도하지 말라.
성 밖과 郊外의 주민들은 마른 풀, 말린 밥, 담을 쌓는 도구들을 비축해 절대 공급부족이 없도록 하라.
나는 甲戌日에 보루를 쌓고 서융을 정벌할 것이니 미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사형에 처하겠노라. ”
作此肸誓,遂平徐戎,定魯。
이렇게「힐서」를 지었고, 마침내 서융을 평정하여 魯를 안정시켰다.
|
▶徐戎: 徐夷. 고대의 동이부족의 하나로 서주시대에 회하의 중하류에 거주하였다.
▶興反: 반란을 일으키다.
▶肹誓: <尙書>의 편명으로 費誓篇을 말한다. 周公의 아들 伯禽이 회이와 서융을 토벌하면서 魯의 費땅에서 군사들에게 훈시를 내린 것이다.
▶甲胄: 갑옷과 투구.
▶牿(곡): 우리.
▶風: 실종되다. 길을 잃다.
▶臣妾: 남녀 노예.
▶逋逃: 도망하다.
▶越: 벗어나다.
▶逐: 뒤쫓다.
▶寇攘: 약탈하다.
▶踰墻垣: 담을 넘다. 즉 담을 넘어 절도하다.
▶魯人三郊三隧: 魯의 서, 남, 북쪽 세 방향의 근교 및 교외의 사람들.
성 밖을 郊라 하고 郊의 밖을 隧라고 한다. 魯의 동쪽에 서융이 있었으므로 세 방향의 백성들에게 군용물자를 징발한 것이다.
▶峙: 준비하다. 비축하다.
▶芻茭: 건초, 마른 풀.
▶糗糧: 말린 밥.
▶楨榦: 楨幹. 담을 쌓을 때에 사용하는 나무판과 양편에 세우는 나무 기둥.
▶逮: 이르다. 여기서는 요구한 대게 함을 말한다.
▶大刑: 死刑.
魯公伯禽卒,子考公酋立。
노공 伯禽이 죽고 아들 考公 酋가 즉위하였다.
考公四年卒,立弟熙,是謂煬公。
고공이 4년 만에 죽고 동생 熙가 즉위했으며, 煬公이라 이른다.
煬公筑茅闕門。
양공은 茅闕門을 세웠다.
六年卒,子幽公宰立。
양공이 6년 만에 죽고 아들 幽公 宰가 즉위하였다.
幽公十四年。幽公弟沸殺幽公而自立,是為魏公。
유공 14년, 유공의 동생 沸가 유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했으니 그가 魏公이다.
魏公五十年卒,子厲公擢立。
위공이 50년 만에 죽고, 아들 厲公 擢이 즉위하였다.
厲公三十七年卒,魯人立其弟具,是為獻公。
여공이 37년 만에 죽자 魯의 사람들이 동생 具를 옹립하니 그가 獻公이다.
獻公三十二年卒,子真公濞立。
헌공이 32년 만에 죽고 아들 眞公 濞가 즉위하였다.
|
▶茅闕門: 茅門. 제후의 宮門. 곧 雉門인데, 치문 밖에 外朝가 있었다. 제후의 宮에는 庫門 ‧ 雉門 ‧ 路門의 3門이 있었다.
真公十四年,周厲王無道,出奔彘,共和行政。
真公 14년(기원전841년), 周厲王이 무도하게 굴다가 彘邑으로 도망치고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二十九年,周宣王即位。
진공 29년(기원전827년), 周宣王이 즉위하였다.
|
▶周厲王: 춘추시대 周나라의 國君. 성은 姬씨고, 이름은 胡다. 夷王의 아들이고, 周穆王의4대손이다. <사기 권04. 주본기>
▶共和: 周厲王이 國人暴動으로 쫓겨나고 召公과 周公이 공동으로 왕을 대신하여 執政하던 시기를 뜻하며, 왕이 없이 정치가 이루어지는 ‘共和制’란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周宣王: 西周의 11대 왕. 성은 姬씨고, 이름은 靜, 靖이며, 厲王의 아들이다. 國人폭동으로 쫓겨난 부친 주여왕의 뒤를 계승한 후 쇠락해가는 서주 왕실의 국운을 되살리기 위해 절치부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三十年,真公卒,弟敖立,是為武公。
진공 30년, 진공이 죽고 동생 敖가 즉위하니 그가 무공이다.
武公九年春,武公與長子括,少子戲,西朝周宣王。
무공 9년 봄에 무공이 큰아들 괄과 작은아들 희와 함께 서쪽의 주선왕을 조회하였다.
宣王愛戲,欲立戲為魯太子。
주선왕은 희를 사랑하여 魯의 태자로 세우려 하였다.
|
▶魯武公: 서주때 魯의 국군. 이름은 敖이고, 진공의 동생이다. 10년 동안 재위하였다.
周之樊仲山父諫宣王曰:
「廢長立少,不順;不順,必犯王命;
犯王命,必誅之:故出令不可不順也。
令之不行,政之不立;行而不順,民將棄上。
夫下事上,少事長,所以為順。
今天子建諸侯,立其少,是教民逆也。
若魯從之,諸侯效之,王命將有所壅;
若弗從而誅之,是自誅王命也。
誅之亦失,不誅亦失,王其圖之。」
주나라의 대부 번중산보가 선왕에게 간언하였다.
“장자를 폐하고 작은아들을 세우는 것은 예법에 어긋납니다.
예법에 어긋나면 반드시 왕명을 어기게 됩니다.
왕명을 어기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명령을 내리는 일은 예법에 위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린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정치가 바로 서지 못합니다.
시행하되 예법에 위배되면 백성들이 장차 윗사람에게 불복할 터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고, 젊은 사람이 연장자를 섬기는 것이 예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천자께서 제후를 책봉하면서 작은아들을 세움은 백성에게 예법을 어기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만약 魯가 그 명령을 따르고 제후들이 그것을 본받으면 왕명은 장차 막히어 시행되지 않을 터입니다.
만일 따르지 않아서 주벌하게 되면 이것은 스스로 왕명을 주벌하는 것입니다.
주벌하여도 잘못이고 주벌하지 않아도 잘못이니 왕께서는 잘 헤아리소서. ”
|
▶樊仲山父: 주나라의 대부. 樊은 식읍이름.
▶犯王命: 주나라 선왕이 제정한 적장자의 계승 제도를 범하다.
▶誅: 죽여 없애다.
▶政之不立: 정령이 권위를 세우지 못하다.
▶棄上: 통치자에 복종하지 않다.
▶壅: 막히다.
宣王弗聽,卒立戲為魯太子。
선왕이 듣지 않고 끝내 희를 魯의 태자로 삼았다.
夏,武公歸而卒,戲立,是為懿公。
여름에 노무공이 귀국한 뒤 죽자 희가 즉위하였는데 그가 의공이다.
懿公九年,懿公兄括之子伯御與魯人攻弒懿公,而立伯御為君。
의공 9년, 의공의 형인 괄의 아들 伯御와 魯 사람들이 의공을 공격하여 시해하고 백어를 군주로 세웠다.
伯御即位十一年,周宣王伐魯,殺其君伯御,而問魯公子能道順諸侯者,以為魯後。
백어가 즉위한 지 11년이 되던 해에 주선왕이 魯를 정벌하여 노군 백어를 죽이고, 魯의 공자 중 제후들을 이끌 수 있는 자를 물어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樊穆仲曰:
「魯懿公弟稱,肅恭明神,敬事耆老;
賦事行刑,必問於遺訓而咨於固實;
不干所問,不犯所[咨]。」
번목중이 말하였다.
“노의공의 동생 稱(칭)이 사람이 엄숙하고 공손하며 신을 공경하고 노인을 존경합니다.
정사를 처리하고 형법을 집행할 때는 반드시 선왕의 유훈과 과거의 사례를 묻습니다.
자문한 선왕의 유훈을 범하지 않고 자문한 전례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宣王曰:
「然,能訓治其民矣。」
주 선왕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능히 백성들을 가르치고 다스릴 수 있겠군. ”
乃立稱於夷宮,是為孝公。
이에 칭을 이궁에서 즉위케 하니 그가 효공이다.
自是後,諸侯多畔王命。
이후로 제후들이 왕명을 어기는 일이 많아졌다.
|
▶伯御: 서주 시대 魯의 제11대 군주. 노의공을 시해하고 魯 군주가 되었다. 기원전796년, 재위 11년 만에 주선왕의 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주선왕은 의공의 아우 칭을 魯 군주로 세웠다.
▶伯御即位十一年: 주선왕 봄으로 기원전796년이다.
▶周宣王伐魯: 주선왕은 백어가 의공을 시해하고 노군이 된 일을 미워하여 魯를 쳐서 백어를 폐위시키고 의공의 아우 칭을 세웠다.
▶道順諸侯: 제후 중에서 덕망이 있는 제후를 골라 제후의 장으로 삼아 제후를 계몽하고 훈계하다. 道는 導와 같다. 계몽하다. 順은 “訓”과 통하여 훈계하다.
▶魯後: 魯 군위의 계승자.
▶樊穆仲: 중산보. 樊은 식읍, 穆은 시호, 仲은 자.
▶明神: 신령을 공경함.
▶耆老: 노인. 60세 이상의 노인.
▶遺訓: 선왕의 훈계.
▶咨: 문의하다.
▶固實: 故實. 참고하거나 거울로 삼을 만한 예전의 전례.
▶干: 범하다. 저지르다.
▶犯: 저촉하다.
▶夷宫: 주선왕의 할아버지 이왕의 사당이다. 옛날 작위를 내릴 때는 반드시 할아버지 사당에서 하였다.
孝公二十五年,諸侯畔周,犬戎殺幽王。
효공 25년에 제후들이 주나라를 배반하고 견융이 유왕을 죽였다.
秦始列為諸侯。
秦나라가 처음으로 제후의 반열에 들었다.
|
▶孝公: 서주시대 魯의 제12대 국군으로 이름은 칭이다. 주선왕이 세운 의공을 魯 사람들이 죽이고 백어를 魯 군주로 세우자, 주선왕은 기원전796년에 魯를 쳐 백어를 죽이고 중산보에게 물어 효공을 새 군주로 세웠다. 기원전769년 재위27년 만에 죽어, 아들 불황이 뒤를 이었다.
▶周幽王: 주나라의 12대 왕. 정치에는 관심이 없이 여흥과 주색만을 탐닉하다 서주 왕실을 망하게 하였다. 애첩 포사를 총애한 나머지 정비 신후와 그 소생인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와 그 소생 백복을 정비와 태자에 책봉함으로써 신후를 격분시켰고, 결국 견융과 신후의 연합 공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사기 권04. 주본기>
▶秦始列為諸侯: 秦襄公은 춘추시대 진나라의 국군으로 장공의 둘째 아들이다. 진양공 7년 서융과 견융이 신후와 함께 주왕실을 공격하여 역산 아래에서 유왕을 살해하자 서주가 멸망하고 말았다. 양공이 군대를 이끌고 주나라를 구하고 평왕을 호송해 東遷하는 데 공을 세워 주나라에서 진기 서쪽의 땅을 하사하였다. 이때부터 진나라가 부용국에서 제후국이 되었다.
二十七年,孝公卒,子弗湟立,是為惠公。
효공 27년, 효공이 죽고 아들 불황이 들어서니 그가 혜공이다.
|
▶惠公: 노혜공. 서주때 魯의 국군. 이름은 불황이고, 효공의 아들이다. 천한 첩인 성자가 아들 식고를 낳자 宋 여자를 아내로 얻었는데, 총애하여 본부인을 내쫓고 아내로 삼았다. 아들 윤을 태자로 세웠다. 16년 동안 재위하였다.
惠公三十年,晉人弒其君昭侯。
혜공 30년, 晉 사람들이 그들의 국군 소후를 시해하였다.
四十五年,晉人又弒其君孝侯。
혜공 45년, 晉 사람들이 또 그들의 국군 효후를 시해하였다.
|
▶昭侯: 晉소후. 춘추시대 晉의 제12대 군주로 이름은 백이다. 晉소후 7년, 晉의 대신 반보가 소후를 죽이고, 곡옥환숙을 임금으로 모시려 했으나, 晉 사람들은 환숙을 공격하여 패배시키고, 소후의 아들 평을 晉 임금으로 세우고, 반보를 주살하였다
▶孝侯: 晉효후. 춘추시대 晉의 제13대 군주로 이름은 평이다. 아버지 晉소후가 살해당한 후 晉 사람들이 평을 진후로 세웠다. 晉효후 15년, 곡옥장백에게 익에서 살해당하였다. 晉 사람들은 곡옥장백을 쳐 곡옥으로 몰아내고, 아들 극을 晉악후로 세웠다.
四十六年,惠公卒,長庶子息攝當國,行君事,是為隱公。
혜공 46년에 혜공이 죽고 長庶子 식이 섭정하여 군주의 권력을 행사하니 그가 은공이다.
初,惠公適夫人無子,公賤妾聲子生子息。
당초 혜공의 정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혜공의 천한 첩인 聲子가 식을 낳았다.
息長,為娶於宋。
식이 장성하여 宋에서 아내를 맞이하였다.
宋女至而好,惠公奪而自妻之。生子允。
宋의 여자가 魯에 오니 아름다웠으므로 혜공이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고는 아들 윤을 낳았다.
登宋女為夫人,以允為太子。
宋 여자를 높여서 부인으로 삼고, 윤을 태자로 삼았다.
及惠公卒,為允少故,魯人共令息攝政,不言即位。
혜공이 죽자 윤이 어렸기 때문에 魯 사람들이 모두 식에게 섭정하게 했지만 즉위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
▶隱公: 魯의 제14대 임금이다. 이름은 식이다. 노혜공의 서장자로, 어머니는 성자이며, 혜공이 죽자 태자인 아우 윤의 나이가 어려 魯 사람들에게 옹립되어 섭정하였다.
▶長庶子: 첩 소생의 아들 중 장남. 식은 적장자 계승 제도로 즉위하지 못하고 섭정하였다.
▶適: 嫡과 통용된다. 정처를 적이라 한다.
▶登: 지위를 높이다.
隱公五年,觀漁於棠。
은공 5년, 棠 땅에서 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八年,與鄭易天子之太山之邑祊及許田,君子譏之。
은공 8년, 천자가 태산에 제사 지내던 鄭의 팽읍과 허전을 바꾸니 군자들이 이를 비웃었다.
|
▶觀漁於棠: 은공 5년, 魯의 당 땅에서 물고기 잡는 것을 보러 갔다. 장희백은 자연에서 물품을 직접 생산하는 일은 임금의 직분이 아니라고 말렸으나, 은공은 핑계를 대고 갔다. 이 해 장희백이 죽자, 은공은 장희백이 간언한 것을 듣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후히 장례를 치렀다. <춘추좌씨전 노은공5년>
▶易: 교환하다.
▶與鄭易天子之太山之邑祊及許田: 鄭는 자기들이 주공을 제사지내겠다는 핑계로 멀리 있는 팽전을 가까이에 있는 허전과 교환한 것이다.
팽읍은 주선왕이 그의 아우 정환공에게 주어, 천자가 태산에 제사지낼 때 그 제사를 돕는 탕목읍으로 삼게 한 땅으로 魯 영토 내에 있었고, 허전은 주성왕이 주공 단에게 주어, 노군이 조회 왔을 때에 조숙읍으로 삼게 한 땅으로 鄭 가까이에 있었다.
춘추시대에는 주왕이 태산의 제사를 폐한 지가 이미 오래이므로 탕목읍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鄭와 거리가 매우 멀고, 또 魯는 허전에 있는 주공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鄭는 자기들이 주공을 제사지내겠다는 핑계로 멀리 있는 팽전을 가까이에 있는 허전과 교환하려 한 것이다. <춘추좌씨전·은공8년>
▶譏: 비웃다.
十一年冬,公子揮諂謂隱公曰:
「百姓便君,君其遂立。
吾請為君殺子允,君以我為相。」
은공 11년 겨울, 공자 휘가 은공에게 아첨하며 말하였다.
“백성들이 주군을 좋아했기에 주군께서 마침내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제가 주군을 위하여 자윤을 죽일 테니 저를 재상으로 삼아 주십시오. ”
隱公曰:
「有先君命。
吾為允少,故攝代。
今允長矣,吾方營菟裘之地而老焉,以授子允政。」
은공이 말하였다.
“선군의 명령이 있었다. 윤이 어렸기 때문에 내가 대신 섭정한 것이다.
이제 윤이 성장했으니 나는 토구에다 집을 짓고 노년을 보낼 터이며 동생 윤에게 정권을 돌려주겠다.
揮懼子允聞而反誅之,乃反譖隱公於子允曰:
「隱公欲遂立,去子,子其圖之。
請為子殺隱公。」
공자휘는 자윤이 이 말을 듣고 도리어 자신를 죽일까 두려워, 도리어 자윤에게 은공을 참소하여 말하였다.
“은공이 기어이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 그대를 제거하려 하니 그대는 잘 생각하십시오.
그대를 위해 은공을 죽이도록 해주십시오. ”
子允許諾。
자윤이 허락하였다.
|
▶公子揮: 우보.
▶子允: 은공의 아우. 훗날의 노환공.
▶諂: 아첨하다.
▶便君: 주군으로 적합하다고 여기다.
▶遂: 결국.
▶營菟裘: 토구에 집을 짓다. 토구는 魯의 읍이며 태산 양보현 남쪽에 있다. 은공은 더이상 魯 조정에 거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의 읍에 따로 거처할 집을 건축한 것이다
▶老: 여생을 보내다.
▶譖: 나쁜 말로 모함하다.
十一月,隱公祭鐘巫,齊于社圃,館于蒍氏。
11월에 은공이 종무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포에서 재계한 다음 위씨집에 머물렀다.
揮使人殺隱公于蒍氏,而立子允為君,是為桓公。
공자 휘가 사람을 위씨 집으로 보내 은공을 살해하고, 태자 윤을 군주로 옹립하니 그가 환공이다.
|
▶鍾巫: 신의 이름. 은공이 일찍이 공자로 있을 때 鄭 사람과 싸워 포로가 되었는데, 鄭에서는 그를 윤씨 집에 가두었다. 은공은 윤씨에게 뇌물을 주어 윤씨의 가신인 종무에게 기도를 드렸고, 윤씨와 함께 魯로 탈출하여 魯에 종무를 제사지내는 사당을 지었다.
▶齊: 재계하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다.
▶社圃: 원의 이름.
▶館: 머무르다.
▶蒍氏: 魯의 대부.
▶桓公: 魯桓公. 춘추시대 魯의 국군. 이름은 윤 또는 궤이고, 혜공의 적자다. 공자휘가 은공을 살해하자 즉위하였다. 제양공의 여동생 문강을 아내로 얻어 부인을 삼았는데, 부인이 양공과 사통하자 크게 화를 냈다. 양공이 이를 알고 연회를 베풀 때 역사를 시켜 살해하였다. 18년 동안 재위하였다.
桓公元年,鄭以璧易天子之許田。
환공 원년, 鄭이 벽옥으로 천자가 하사한 봉읍 허전과 바꾸었다.
二年,以宋之賂鼎入於太廟,君子譏之。
환공 2년, 宋이 뇌물로 바친 鼎을 주공의 사당인 태묘에 두었으며, 군자들이 이를 비웃었다.
|
▶鄭以璧易天子之許田: 鄭은 자기들이 주공을 제사지내겠다는 핑계로 멀리 있는 팽전을 가까이에 있는 허전과 교환하였었다. 鄭이 魯에 벽을 준 것은 주공의 제사와 팽전의 교환을 위해서였다. 鄭이 주공의 자손이 아니므로, 魯는 鄭이 주공의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락해서도 안 되고, 또 천자께 하사받아 대대로 물려온 허전을 팽전과 바꾸어도 안 되었다. 벽을 준 것은 팽전은 작고 허전은 커서 맞바꿀 경우, 魯가 손해이므로 벽을 더 얹어 준 것이다. <춘추좌씨전·환공원년>
▶宋之賂鼎: 宋가 뇌물로 바친 정. 정의 이름은 郜大鼎으로 郜國에서 주조한 器物이다. 당초 제후국들이 宋의 내부 반란을 평정시키고자 하였다가 뇌물을 주어 무마시켰다.
▶太廟: 주공의 종묘.
三年,使揮迎婦于齊為夫人。
환공 3년, 공자 휘를 보내어 齊 여자를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六年,夫人生子,與桓公同日,故名曰同。
환공 6년,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환공과 생일이 같아 이름을 동이라 하였다.
同長,為太子。
동이 장성하여 태자가 되었다.
|
▶使揮迎婦于齊為夫人: 9월에 부인 강씨가 齊에서 魯로 왔다.
▶同: 환공의 아들로 훗날의 장공이다.
十六年,會于曹,伐鄭,入厲公。
환공 16년, 환공이 조나라에서 회맹하고 鄭을 정벌하여 정여공을 입국시켰다.
|
▶會于曹: 환공 16년 봄 정월에 환공이 송공‧채후‧위후와 조나라에서 회합하였으며, 이는 鄭을 토벌하는 일을 모의하기 위함이었다.
十八年春,公將有行,遂與夫人如齊。
환공 18년 봄, 환공이 외출하고자 하여 부인과 함께 齊로 가려 하였다.
申繻諫止,公不聽,遂如齊。
대부 신수가 가지 말라고 간언했지만 환공은 듣지 않고 끝내 齊로 갔다.
齊襄公通桓公夫人。
齊양공이 환공의 부인과 간통하였다.
公怒夫人,夫人以告齊侯。
환공이 부인에게 화를 내자 부인은 이를 제양공에게 알렸다.
夏四月丙子,齊襄公饗公,公醉,使公子彭生抱魯桓公,因命彭生摺其脅,公死于車。
여름 4월 병자일에 齊양공이 환공에게 술자리를 베풀었고, 환공이 취하자 공자 팽생을 시켜 魯환공을 부축케 하면서 늑골을 부러뜨리라고 명령하니 환공이 수레에서 죽었다.
|
▶申繻諫止: 환공이 외출을 계획하고서 드디어 부인 문강과 함께 齊로 가려 하자, 魯의 대부 신수가 말하기를
“여자에게는 남편이 있고 남자에게는 아내가 있어, 서로 모독하지 않는 것을 예가 있다고 하니, 이를 어기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
라고 하였다<춘추좌씨전 환공18년>
▶齊襄公通桓公夫人: 문강은 제희공의 차녀로 노환공에게 시집갔다. 출가 전부터 이복 오빠인 제양공 제아와 간통하였고, 출가 후에 노환공이 齊를 방문했을 때 함께 따라와 관계를 재개하였고 안 노환공이 대노하자 제양공이 팽생으로 하여금 살해하게 하였다.
노환공이 죽은 후에도 계속 제, 노 양국 국경 지대에 머물면서 제양공과 사통하였고 제양공의 서녀 애강과 자신의 아들 노장공의 혼인을 강제하여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饗: 대접하다. 제 양공이 노환공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摺其脅: 늑골을 부러뜨려 죽이다. 摺은 부러뜨리다.
魯人告于齊曰:
「寡君畏君之威,不敢寧居,來修好禮。
禮成而不反,無所歸咎,請得彭生除丑於諸侯。」
魯 사람들이 齊에 고하였다.
“우리 군주가 齊군주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편히 계시지 못하다가, 齊에 가서 우호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회합의 예가 끝났는데도 돌아오지 못했거늘 책임을 추궁할 곳이 없으니, 팽생을 죽여 제후들 사이에 퍼져 있는 추문을 없애시기 바랍니다. ”
齊人殺彭生以說魯。
齊君이 팽생을 죽여 魯를 달랬다.
立太子同,是為莊公。
태자 동이 즉위하니 그가 장공이다.
莊公母夫人因留齊,不敢歸魯。
장공의 어머니인 환공의 부인은 齊에 머물러 있으면서 감히 魯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
▶除丑: 魯의 좋지 못한 소문이 제후에게 소문났으니 이를 없애도록 하라는 말이다. 丑는 추할 ‘추’
▶說魯: 魯를 달래다. 說는 달래다.
▶因: 이에.
莊公五年冬,伐衛,內衛惠公。
장공 5년 겨울, 위나라를 정벌하고 위혜공을 위나라로 복귀시켰다.
|
▶內衛惠公: 겨울에 위나라를 토벌하였으니, 이는 위혜공을 위나라로 들여보내기 위해서였다. 内은 納과 같다.
▶衛惠公: 춘추시대 위나라의 국군으로 이름은 삭이다. 위혜공 4년 주변의 공자들이 혜공이 참언을 듣고 태자 급을 살해한 것을 원망하여 공격하고 급의 동생 검모를 옹립해 국군으로 삼았다. 노환공 16년에 혜공은 齊로 달아났다. <사기 권37. 위강숙세가>
八年,齊公子糾來奔。
장공 8년, 齊의 공자 糾가 도망쳐왔다.
九年,魯欲內子糾於齊,後桓公,桓公發兵擊魯,魯急,殺子糾。
장공 9년, 魯가 공자 규를 齊로 보내려 했으나 환공에 뒤처지니, 환공이 군사를 일으켜 魯를 공격하자 魯는 위급해져서 공자 규를 죽였다.
召忽死。
규의 가신 소홀은 자살하였다.
齊告魯生致管仲。
齊가 魯에 관중을 산 채로 보내라고 통고하였다.
魯人施伯曰:
「齊欲得管仲,非殺之也,將用之,用之則為魯患。
不如殺,以其尸與之。」
魯 사람 시백이 말하였다.
“齊가 관중을 얻으려는 것은 그를 죽이려 함이 아니라 기용하려 함이니, 그를 기용하게 되면 魯의 걱정거리가 될 터입니다.
죽여서 시체로 보내는 것이 낫습니다. ”
莊公不聽,遂囚管仲與齊。
장공은 듣지 않고 관중을 함거에 실어서 齊로 보냈다.
齊人相管仲。
齊君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
▶糾: 제양공의 동생. 공자 소백의 형.
▶內: 들이다. 納과 같다
▶後桓公: 공자 규는 관중이 소백을 죽인 것으로 알고 천천히 齊로 갔으나 소백이 먼저 齊에 들어와 있었고, 고혜가 소백을 옹립하였다.
<史記 세가권32. 齊太公世家>
▶召忽: 공자규의 사부. 공자 규의 이복동생 혹은 이복형이라고도 한다.
▶管仲: 管夷吾. 이름은 이오이며, 齊의 공자규에게 벼슬하여 후에 환공과 적대관계였으나, 환공의 신하 포숙의 추천에 의하여 환공의 재상이 된 후 齊를 춘추시대의 5대 강국 중 제일가는 강국으로 만든 공적을 세웠다. 제환공이 관이오를 존대하여 중보라고 호칭하여 관중이라 불리게 되었다.
十三年,魯莊公與曹沬會齊桓公於柯,曹沬劫齊桓公,求魯侵地,已盟而釋桓公。
장공 13년, 魯장공과 曹沬이 柯땅에서 齊환공과 회맹하였는데, 조말이 제환공을 협박하여 빼앗긴 魯의 땅을 요구했으며, 맹세하자 환공을 풀어주었다.
桓公欲背約,管仲諫,卒歸魯侵地。
환공은 약속을 어기려 했지만, 관중이 충고하여 마침내 빼앗은 땅을 魯에 돌려주었다.
十五年,齊桓公始霸。
장공 15년, 제환공이 패자로 칭해졌다.
二十三年,莊公如齊觀社。
장공 23년, 장공이 齊로 가서 토지신 제사를 참관하였다.
|
▶魯莊公與曹沬會齊桓公於柯: 장공 13년, 齊의 공격에 魯가 패하였고, 장공은 수읍을 바쳐 齊와 화평하였다. 齊와 魯는 가에서 맹약했는데 조말이 단상에서 제환공을 비수로 위협하여 齊가 빼앗은 魯의 땅을 돌려주게 하였다. 제환공은 이를 후회하여 나중에 맹약을 배반하고자 했으나, 관중의 간언으로 맹약을 지켰다. <史記권86刺客列傳>
▶柯: 지명으로 지금의 하남 성황현의 경내에 있었다.
▶曹沬: 曹劌, 曹翽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魯 대부로 지략과 의리가 뛰어났다고 하며 魯의 장공을 섬긴 장군이다.
▶觀社: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참관하다. 사는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사. 조귀가 장공이 齊에 가서 사제를 구경하려는 것에 대해 예법을 어기지 말 것을 간언하였다<國語·魯語>
三十二年,初,莊公筑臺臨黨氏,見孟女,說而愛之,許立為夫人,割臂以盟。
장공 32년, 당초 장공이 대를 쌓다가 黨씨집을 굽어보았는데 맹녀를 보고는 매우 좋아하게 되어 부인을 삼겠다고 약속하니 맹녀가 팔을 그어 장공과 맹세하였다.
孟女生子斑。
맹녀가 아들 반을 낳았다.
斑長,說梁氏女,往觀。
반이 자라서 양씨 딸을 좋아하여 그녀를 보러 갔다.
圉人犖自墻外與梁氏女戲。
말을 기르던 낙이 담 밖에서 양씨의 딸을 희롱하였다.
斑怒,鞭犖。
반이 화가 나서 낙에게 채찍질을 하였다.
莊公聞之,曰:
「犖有力焉,遂殺之,是未可鞭而置也。」
장공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낙은 힘이 센 자이니 죽여야지 매를 때리고 놓아두면 안 된다. ”
斑未得殺。
그러나 반은 그를 죽이지 못하였다.
|
▶莊公筑臺臨黨氏: 장공이 대위에서 당씨의 집을 굽어보다가 맹임을 보고 맹임을 찾아갔다.
▶臨: 내려다 보다.
▶黨氏: 魯 대부.
▶割臂以盟: 칼로 팔뚝을 베어 피를 내어 장공과 그 피를 마시며 맹세하였다.
▶圉人: 말 기르는 일을 맡은 자이다.
▶梁氏: 魯 대부.
▶置: 사면하다.
會莊公有疾。
마침 장공이 병이 들었다.
莊公有三弟,長曰慶父,次曰叔牙,次曰季友。
장공에게는 동생이 셋 있었는데, 첫째가 慶父, 둘째가 叔牙, 막내가 季友였다.
莊公取齊女為夫人曰哀姜。哀姜無子。
장공은 애강이라는 齊女를 부인으로 맞이했지만, 애강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哀姜娣曰叔姜,生子開。
애강의 여동생 숙강이 아들 開를 낳았다.
莊公無適嗣,愛孟女,欲立其子斑。
장공에게 적처의 아들이 없는 데다 맹녀를 사랑하였으므로 그녀의 아들 반을 태자로 세우려 하였다.
莊公病,而問嗣於弟叔牙。
장공이 병이 나자 동생 숙아에게 후계자에 대해 물었다.
|
▶哀姜: 제양공의 서녀. 고모 문강의 주선으로 문강의 아들 노장공에게 시집왔다. 노장공은 어머니 때문에 억지로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제 양공의 딸과 혼인한 후 그녀를 멀리하였고 그로 인해 애강은 노장공의 이복 동생 경보와 사통하게 되었다.
▶娣: 손아래 누이.
▶適嗣: 정처의 아들.
▶斑: 공자 반. 자반. 魯의 제17대 임금이다. 노장공은 정부인 애강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으므로, 맹임 소생인 서자 반을 세우고자 하였다. 노장공이 죽은 후 공자 계우가 반을 魯 군주로 옹립하였다.
叔牙曰:
「一繼一及,魯之常也。
慶父在,可為嗣,君何憂?」
숙아가 말하였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뒤를 이음이 魯의 정해진 법입니다.
경보가 있어 뒤를 이을 수 있거늘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莊公患叔牙欲立慶父,退而問季友。
장공은 숙아가 경보를 세우려 함이 걱정되어 그가 물러가자 계우에게 물었다.
季友曰:
「請以死立斑也。」
계우가 말하였다.
“죽기로 반을 옹립하겠습니다. ”
莊公曰:
「曩者叔牙欲立慶父,柰何?」
장공이 말하였다.
“조금 전에 숙아는 경보를 세우려 하던데 어찌하면 좋겠느냐?”
季友以莊公命命牙待於鍼巫氏,使鍼季劫飲叔牙以鴆,曰:
「飲此則有後奉祀;不然,死且無後。」
계우는 장공의 명이라 하며 숙아를 鍼巫氏집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鍼季를 시켜 숙아에게 鴆酒를 마시도록 겁박하며 말하였다.
“이것을 마시면 후손이 제사를 받들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후손 또한 없앨 터이다. ”
牙遂飲鴆而死,魯立其子為叔孫氏。
숙아는 마침내 독주를 마시고 죽었고, 魯는 숙아의 아들을 숙손씨로 삼았다.
八月癸亥,莊公卒,季友竟立子斑為君,如莊公命。
8월 계해일에 장공이 죽고, 계우가 마침내 子斑을 군주로 옹립하니 장공이 명령한 대로였다.
侍喪,舍于黨氏。
반은 상을 치르고 당씨 집에 머물렀다.
|
▶一繼一及: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뒤를 잇는다.
▶曩者: 이전. 방금.
▶鍼巫氏: 魯의 대부.
▶鴆: 독주。鴆은 새의 이름인데, 그 깃에 독이 있어 그 깃으로 술을 저어 마시면 죽는다.
先時慶父與哀姜私通,欲立哀姜娣子開。
앞서 경보는 형수인 애강과 私通을 저질러 왔고, 애강의 여동생의 아들인 개를 세우려 하였다.
及莊公卒而季友立斑,十月己未,慶父使圉人犖殺魯公子斑於黨氏。
장공이 죽고 계우가 반을 옹립하자, 10월 기미일에 경보는 어인 낙을 시켜 공자 반을 당씨 집에서 살해하였다.
季友奔陳。
계우는 陳으로 달아났다.
慶父竟立莊公子開,是為湣公。
경보는 마침내 장공의 아들 개를 세우니 그가 湣公이다.
|
▶湣公: 민공으로도 쓴다. 춘추시대 魯의 국군으로 이름은 계방 또는 개이다. 장공의 아들이고, 장공의 부인 애강의 동생 숙강 소생이다. 숙부 경보가 애강과 사통하여, 장공이 죽고 계우가 반을 세우자 경보가 어인 낙을 시켜 반을 죽이고 개을 등극시켰다. 2년 동안 재위했는데, 경보가 복의를 시켜 몰래 죽였다.
湣公二年,慶父與哀姜通益甚。
민공 2년, 경보와 애강의 간통이 갈수록 심해졌다.
哀姜與慶父謀殺湣公而立慶父。
애강과 경보는 민공을 죽이고 경보를 군주로 세우려 모의하였다.
慶父使卜齮襲殺湣公於武闈。
경보는 卜齮를 시켜 민공을 무위에서 습격하여 죽였다.
季友聞之,自陳與湣公弟申如邾,請魯求內之。
계우가 이 소식을 듣고 陳에서 민공의 동생 申과 함께 邾나라로 가서 魯에 입국을 요청하였다.
魯人欲誅慶父。慶父恐,奔莒。
魯 사람들이 경보를 죽이려 하자 경보가 겁을 먹고 莒로 달아났다.
於是季友奉子申入,立之,是為釐公。
이에 계우가 공자 신을 받들고 들어와 옹립하니 그가 희공이다.
|
▶邾: 춘추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국성은 조이며, 작위는 자작이다.
전국시대에는 국명이 鄒나라로 변경되었다. 이 추나라에서 맹자가 태어났다.
▶奉: 떠받들어 모시다. 동행하다.
▶釐公: 노희공. ‘희’는 ‘희’로도 쓴다. <사기>에서는 사마천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피하여 희공으로 표기하였다. 춘추시대 魯의 제19대 군주로 이름은 신이다. 장공의 아들이며 민공의 서형이다. 민공이 피살되자 계우가 받들어 魯로 들어와 즉위시켰다.
계우를 문양과 비 두 읍을 봉지로 주고 재상으로 삼으니, 계우가 공족 계손씨가 되었다.
경보는 나중에 공족 맹손씨가 되었다.
釐公亦莊公少子。
희공 역시 장공의 작은아들이다.
哀姜恐,奔邾。
애강은 겁을 먹고 邾나라로 도망쳤다.
季友以賂如莒求慶父,慶父歸,使人殺慶父,慶父請奔,弗聽,乃使大夫奚斯行哭而往。
계우는 뇌물을 가지고 莒로 가서 경보를 요구하여 경보를 귀국시켰고, 사람을 시켜 경보를 죽이려 하니, 경보가 망명을 청했지만 계우는 이를 허락하지 않아 대부 奚斯가 울면서 돌아가게 하였다.
慶父聞奚斯音,乃自殺。
경보가 해사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자살하였다.
齊桓公聞哀姜與慶父亂以危魯,及召之邾而殺之,以其尸歸,戮之魯。
제환공은 애강과 경보의 음란함이 魯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애강을 주나라에서 불러 죽인 다음 그 시신을 魯로 보내 조리를 돌렸다.
魯釐公請而葬之。
노희공이 그녀를 묻어 주자고 청하였다.
|
▶奚斯: 공자 어. 경보가 해사를 보내 사형을 면제해 주기를 청하였으나 계우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해사가 울면서 돌아갔다. 공중이 그 울음소리를 듣고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춘추좌씨전 노민공2년>
▶戮: 시체를 대중에게 보여 주다. 죽임을 당하다.
季友母陳女,故亡在陳,陳故佐送季友及子申。
계우의 어머니는 陳의 여자였기 때문에 계우가 陳으로 도망쳤고, 陳은 이 때문에 계우와 신을 도와 호송하였다.
季友之將生也,父魯桓公使人卜之,曰:
「男也,其名曰『友』,閒于兩社,為公室輔。
季友亡,則魯不昌。」
계우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 노환공이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하니 점쟁이가 말하였다.
“사내아이이고 그 이름은 우이며,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 공실을 위해 보좌할 것입니다.
계우가 없으면 魯는 번창하지 못합니다. ”
及生,有文在掌曰「友」,遂以名之,號為成季。
태어난 다음 보니 손바닥에 ‘우’자 같은 무늬가 있어 마침내 그것으로 이름을 삼고 호를 成季라 하였다.
其後為季氏,慶父後為孟氏也。
그는 훗날 季氏가 되었고, 경보의 후손은 孟氏가 되었다.
|
▶佐送: 계우와 신을 魯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다.
▶兩社: 周社와 亳社. 양사 사이는 조정과 집정관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公室: 군주의 가족.
▶補: 보좌하는 신하.
釐公元年,以汶陽鄪封季友。
희공 원년, 계우에게 汶陽과 鄪의 두 읍을 봉하였다.
季友為相。
계우가 재상이 되었다.
|
▶季友: 成季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노장공의 동생이다. 형으로 경보와 숙아가 있었다. 숙아가 경보를 세우려고 하자 계우가 장공의 명을 받들어 숙아를 독주로 죽였다. 장공이 죽자 계우가 공자 반을 군주로 세웠다. .
九年,晉裏克殺其君奚齊、卓子。
희공 9년, 晉의 대부 裏克이 자신의 군주 奚齊와 卓子를 죽였다.
齊桓公率釐公討晉亂,至高梁而還,立晉惠公。
제환공은 노희공을 데리고 晉의 난을 토벌하면서 高梁까지 갔다가 돌아와 晉惠公을 옹립하였다.
十七年,齊桓公卒。
희공17년, 제환공이 죽었다.
二十四年,晉文公即位。
희공24년에 진문공이 즉위하였다.
|
▶裏克: 里克. 晉獻公의 책사이자 권신. 무공과 전략에 뛰어나 진헌공 시기에 우·괵을 정벌하는 데 절대적인 공을 세웠다. 헌공이 죽자 순식이 여희의 소생인 해제를 세웠는데 이극이 해제를 죽였다. 순식이 헌공의 서자인 탁자를 다시 세우자 이극이 朝에서 또 그를 죽였다. 진혜공 이오에 의해 사사되었다.
▶高梁: 晉 땅으로 平陽縣 서남쪽에 있다.
三十三年,釐公卒,子興立,是為文公。
희공33년, 희공이 죽고 아들 흥이 즉위하니 그가 文公이다.
|
▶文公: 노문공. 춘추시대 魯의 군주로 이름은 흥이고, 희공의 아들이다. 11년 鄋瞞(長狄)이 齊를 공격하고 다시 魯를 공격하자 叔孫을 시켜 추격하게 하여 鹹에서 격파하고, 그 수령 僑如를 살해하였다.
文公元年,楚太子商臣弒其父成王,代立。
문공 원년, 楚의 태자 商臣이 아버지 성왕을 시해하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三年,文公朝晉襄父。
문공 3년, 문공이 晉양공을 조회하였다.
|
▶晉襄公: 춘추시대 晉의 국군으로 이름은 歡인데, 驩으로도 쓴다.
진양공4년, 전년에 노문공과 자국의 대부 양처보가 결맹하게 하여 魯에 굴욕을 준 것을 두려워하여 魯에 다시 회맹하기를 청하였고, 이를 노문공이 받아들여, 12월, 양공 친히 노문공과 회맹하였다. <춘추좌씨전·문공2년, 3년>
▶父: 公의 오류이다.
十一年十月甲午,魯敗翟于咸,獲長翟喬如,富父終甥舂其喉,以戈殺之,埋其首於子駒之門,以命宣伯。
문공11년 10월 갑오일에 魯가 함에서 적을 무찌르고 장적의 교여를 사로잡았으며, 대부 부보종생이 창으로 교여의 목을 찔러 죽이고 그의 머리를 자구문에 묻고는 자기의 아들 선백의 이름을 교여로 지었다.
|
▶적: 고대 몽골민족인 北狄의 나라 이름. 춘추시대 지명이 鲜虞이며 후에 中山国이 되었다.
▶長翟: 長狄. 狄은 戎狄이라고도 하여, 일반적인 북방 이민족을 통틀어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춘추시대에는 섬서에서 산서지방에 걸쳐 활약하였으며, 적적·백적·장적 등으로 나뉘어 중원에까지 진출하였다
▶僑如: 수만국의 임금으로 신장이 거의 3장이었다.
▶舂: 찌르다.
▶埋其首於子駒之門: 그 머리를 묻은 것은 공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자구문은 魯 도성 서쪽에 있는 문이다.
▶以命宣伯: 자기의 아들 선백의 이름을 교여로 지어 자기의 공을 드러낸 것이다.
初,宋武公之世,鄋瞞伐宋,司徒皇父帥師御之,以敗翟于長丘,獲長翟緣斯。
당초 宋무공때 수만이 宋를 공격해오자 사도 황보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막았는데 장구에서 적을 무찌르고 장적의 緣斯를 잡았다.
晉之滅路,獲喬如弟棼如。
晉는 路를 멸하고 교여의 동생 棼如를 잡았다.
齊惠公二年,鄋瞞伐齊,齊王子城父獲其弟榮如,埋其首於北門。
제혜공 2년에 수만이 齊를 공격하자 齊의 왕자 성보가 교여의 동생 榮如를 잡아 머리를 북문에 묻었다.
衛人獲其季弟簡如。
위나라 사람들이 그 막내동생인 簡如를 잡았다.
鄋瞞由是遂亡。
수만은 이로써 멸망하였다.
|
▶宋武公: 춘추시대 宋의 제12대 국군으로 성은 자, 휘는 사공이다.
▶鄋瞞: 북적의 일족.
▶皇父: 춘추시대 宋의 사도. 戴公의 아들로 이름은 充石이다.
▶帥師: 군대를 거느리다. 帥은 거느릴 ‘솔’.
▶緣斯: 교여의 선대.
▶路: 적적의 일족.
▶榮如: 분여의 아우.
▶王子成父: 제환공 때의 대사마.
十五年,季文子使於晉。
문공 15년, 계문자가 晉에 사신으로 갔다.
|
▶季文子: 춘추시대 魯의 대부. 신중하면서도 검소한 재상으로 이름이 있었다. 문공과 양공때 대부를 지냈다. 계행보로도 불린다. 문공과 선공, 성공, 양공 4대를 섬기면서 깊은 신뢰를 쌓은 현인이다.
十八年二月,文公卒。
문공 18년 2월에 문공이 죽었다.
文公有二妃:長妃齊女為哀姜,生子惡及視;
문공에게는 妃가 둘 있었는데, 첫째 비는 齊 여자인 哀姜으로 아들 惡과 視를 낳았다.
次妃敬嬴,嬖愛,生子俀。
둘째 비인 敬嬴은 총애를 받았고 아들 俀를 낳았다.
俀私事襄仲,襄仲欲立之,叔仲曰不可。
퇴는 襄仲과 내통했는데, 양중이 그를 옹립하려고 하자 叔仲이 안 된다고 하였다.
襄仲請齊惠公,惠公新立,欲親魯,許之。
양중이 齊혜공에게 도움을 청하자, 새로 즉위한 혜공은 魯와 가까이 지내고자 양중의 요청을 허락하였다.
|
▶嬖愛: 총애하다.
▶敬嬴: 퇴의 어머니. 경영은 문공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사로이 양중을 섬겼다.
▶俀: 노선공. 이름은 퇴 또는 왜이고, 문공의 서자이다. 문공이 죽자 양중이 문공의 적자 악과시를 죽여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魯 공실은 점점 쇠락해지고 삼환이 강해졌다.
▶私事: 퇴가 장성하자 경영은 퇴를 양중에게 부탁하였으므로 사사로이 양중과 내통한 것이다.
▶襄仲: 魯의 대부인 공자 수. 魯의 종실로 東門遂 또는 東門襄仲이라고도 칭해졌다. 양중이 齊에 간 기회를 이용해 제혜공에게 선공을 세우도록 도움을 요청하였다.
▶叔仲: 惠伯. 선공이 즉위하자 양중은 혜백을 죽여 마구간의 말똥 속에 묻었다.
冬十月,襄仲殺子惡及視而立俀,是為宣公。
겨울10월에 양중이 惡 과 視를 죽이고 퇴를 세우니 그가 宣公이다.
哀姜歸齊,哭而過市,曰:
「天乎!襄仲為不道,殺適立庶!」
애강은 齊로 돌아갈 때 울면서 시장을 지나며 말하였다.
“하늘이시여! 양중이 무도하게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市人皆哭,魯人謂之「哀姜」。
시장의 사람들도 모두 우니, 魯 사람들이 그녀를 ‘哀姜’이라고 불렀다.
魯由此公室卑,三桓彊。
魯는 이로부터 공실이 약해지고 三桓이 강성하였다.
|
▶惡及視: 정비인 애강의 소생. 악은 태자이고, 시는 태자의 동생이다.
▶卑: 쇠하다.
▶三桓: 춘추시대 魯의 세 卿의 집안, 계손씨, 숙손씨, 맹손의 세 귀족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 집안의 시조는 모두 노환공의 아들로 계손씨는 공자 계우, 숙손씨는 공자 숙아, 맹손씨는 공자 경보의 자손이며, 이 때문에 환공의 자손인 세 집안이란 의미로 삼환이라고 한다. 춘추 중·말기에 魯의 권세를 쥐어, 임금 자리도 좌지우지할 정도로 그 세력이 막강하였다. 노목공의 개혁으로 권력을 잃었다. 맹손씨와 숙손씨는 齊의 침공을 받아 망했으나, 계손씨는 魯에서 떨어져 나와 費나라를 세웠다.
宣公俀十二年,楚莊王彊,圍鄭。
선공 퇴 12년에 楚장왕이 강대해지더니 鄭을 포위하였다.
鄭伯降,復國之。
정백이 항복하자 장왕이 鄭의 봉국의 지위를 회복시켰다.
|
▶宣公: 노선공. 이름은 퇴이며, 문공의 서자이다. 문공이 죽자 양중이 문공의 적자 악과 시를 죽여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魯 공실은 점점 쇠락해지고 삼환이 강해졌다.
▶楚莊王: 楚의 22대 군주로 본명은 旅 또는 侶. 晉와 鄭, 宋 등 오랜 전통을 지닌 나라들에게 압박을 가했지만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제환공이나 진문공 등과 더불어 五霸로 불려진다.
▶鄭伯: 정양공. 춘추시대 鄭의 군주로 이름은 堅이다. 鄭은 晉에 두 마음을 품고 있었고, 楚는 鄭를 굴복시키고자 했으나 이때까지 이루지 못하였다. 정양공 8년, 楚는 다시 鄭을 포위하였다. 정양공은 석달간 맞서 싸웠으나 결국 초장왕에게 항복하였다.
十八年,宣公卒,子成公黑肱立,是為成公。
선공 18년에 선공이 죽고, 아들 黑肱이 즉위하니 그가 성공이다.
季文子曰:
「使我殺適立庶失大援者,襄仲。」
계문자가 말하였다.
“우리로 하여금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워 대국의 도움을 잃게 한 것은 양중이다. ”
襄仲立宣公,公孫歸父有寵。
양중이 선공을 옹립하자 양중의 아들 公孫歸父가 선공의 총애를 받았다.
宣公欲去三桓,與晉謀伐三桓。
선공이 삼환을 제거하기 위해 晉와 삼환을 토벌할 것을 모의하였다.
會宣公卒,季文子怨之,歸父奔齊。
마침 선공이 죽고 계문자가 공손귀보를 원망하자 공손귀보는 齊로 달아났다.
|
▶成公: 노성공. 魯의 제23대 임금으로, 휘는 흑굉이다. 아버지 선공이 삼환을 칠 계획을 세우다 죽어 뒤를 이었다. 계문자는 이를 원망하여 선공을 세운 양중의 아들이며 선공의 총애를 받은 공손귀보를 추방하였다.
▶季文子: 계손행보. 춘추시대 魯의 대부. 신중하면서도 검소한 재상으로 이름이 있었다.
▶殺適立庶失大援者: 적자는 태자 악을 말하며, 악은 문공의 아들인데, 양중이 그를 죽이고 선공을 세우고서 남쪽으로 楚와 왕래하였으나, 이미 나라를 굳건히 하지 못하였고, 또 齊와 晉을 견실히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대국의 도움을 잃었다고 한 것이다. 계문자는 귀보가 삼환을 제거하려는 것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양중의 죄를 빌려다가 귀보의 죄로 삼고자 한 것이다.
▶襄仲: 동문양중. 성은 희, 이름은 수, 자는 중이다.
춘추시대 魯의 공족으로 노장공의 둘째 아들이다.
▶公孫歸父: 양중의 아들이다.
▶三桓: 춘추시대 魯의 세 경의 집안, 계손씨, 숙손씨, 맹손의 세 귀족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환공의 자손인 세 집안이란 의미로 삼환이라고 한다.
▶去: 제거하다.
▶怨之: 양중의 아들 공손귀보를 원망하다. 공손귀보는 삼환을 제거하고 공실의 권위를 신장시키고자 하여, 선공과 모의하고서 晉을 방문하였다. 이는 晉의 힘을 빌어 삼환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成公二年春,齊伐取我隆。
성공 2년봄에 齊가 魯를 정벌해 隆읍을 점거하였다.
夏,公與晉郤克敗齊頃公於砹齊復歸我侵地。
여름에 성공이 晉의 郤克과 함께 鞍에서 齊경공의 군대를 물리치니, 齊가 빼앗은 魯의 땅을 돌려주었다.
四年,成公如晉,晉景公不敬魯。
성공 4년, 성공이 晉에 갔는데 晉景公이 魯를 존중하지 않았다.
魯欲背晉合於楚,或諫,乃不。
魯가 晉를 배반하고 楚와 연합하려고 하자 누군가가 말려서 그만두었다.
十年,成公如晉。
성공10년, 성공이 晉에 갔다.
晉景公卒,因留成公送葬,魯諱之。
晉景公이 죽자 머무르고 있던 성공이 장례에 참석하였지만 魯는 이를 꺼려 기록하지 않았다.
十五年,始與吳王壽夢會鐘離。
성공 15년, 吳王 壽夢과 鐘離에서 처음으로 회맹하였다.
|
▶卻克: 각헌자. 성은 희, 씨는 郤, 이름은 克이다. 춘추시대 晉의 정경이었다. 몸이 불구였으나 장군으로 齊와 鞍땅의 전투에서 齊를 대패시켰다. <사기 권32. 제태공세가>
▶砹(안): 鞍은 齊의 땅.
▶或諫,乃不: 성공은 진경공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은 것에 노하였기 때문에 楚와 우호를 맺고 晉을 배반하고자 한 것이다. 계문자가 이를 말렸다. <춘추좌씨전 노성공4년>
▶魯諱之: 가을에 성공이 晉에 가니, 晉에서 성공을 억류하여 진경공의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겨울에 진경공을 장사지낼 때 성공만이 참석하고 그 밖에 참여한 제후가 없으니, 魯 사람들은 이를 치욕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경에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를 숨긴 것이다
十六年,宣伯告晉,欲誅季文子。
성공16년, 宣伯이 晉에 계문자를 죽여달라고 요청하였다.
文子有義,晉人弗許。
계문자는 의리가 있으므로 晉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
▶宣伯: 숙손교여. 魯의 대부. 선문으로도 불린다. 성공의 아버지 선공의 부인인 목강과 통정하고 계문자를 제거하기 위해 晉에게 晉 군대와 함께 있는 계문자를 죽여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晉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춘추좌씨전·성공16년>
十八年,成公卒,子午立,是為襄公。
성공 18년, 성공이 죽고 아들 午가 즉위하니 그가 襄公이다.
是時襄公三歲也。
이때 양공의 나이 세 살이었다.
|
▶襄公: 노양공. 魯의 제24대 군주로 이름은 오다. 성공이 죽자 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襄公元年,晉立悼公。
양공 원년에 晉立悼이 즉위하였다.
往年冬,晉欒書弒其君厲公。
지난 해 겨울, 晉의 欒書가 자신의 군주 여공을 시해하였다.
四年,襄公朝晉。
양공 4년에 양공이 晉에 조회하였다.
|
▶晉悼公: 晉의 28대 군주로 본명은 周. 晉襄公의 증손자이자 晉厲公의 7촌 조카로 부친 景伯 談과 함께 낙양에서 지내오다 황음무도한 폭군 진여공이 난서, 순언 등의 음모에 의해 시해되자 晉의 다수 경대부들의 요청에 의해 본국으로 돌아와 열네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五年,季文子卒。
양공 5년에 계문자가 죽었다.
家無衣帛之妾,廄無食粟之馬,府無金玉,以相三君。
집에는 비단 옷을 입는 첩이 없었고, 마구간에는 곡식을 먹는 말이 없었으며, 창고에는 금과 구슬이 없는 세 군주의 재상이었다.
君子曰:
「季文子廉忠矣。」
군자들이 말하였다.
“계문자는 청렴하고 충성스럽다. ”
九年,與晉伐鄭。
양공 9년에 魯는 晉과 함께 鄭을 정벌하였다.
晉悼公冠襄公於衛,季武子從,相行禮。
진도공이 衛에서 양공의 관례를 행하였는데, 季武子가 따르면서 의례를 도왔다.
十一年,三桓氏分為三軍。
양공 11년에 삼환씨가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각각 가졌다.
|
▶三君: 魯의 선공, 성공, 양공을 말한다.
▶冠: 관례. 고대 귀족의 자제가 만20세가 되면 성년이 되었다는 표시로 관을 쓰는 의식. 천자와 제후는 12세에 관례를 치렀다. 노양공이 이 해에 12세였으므로 진도공이 관례를 치러준 것이다.
▶季武子: 季孫宿. 季孫行父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이어 대부가 되었다. 계무자가 공실의 권력을 독점하려고 三軍을 삼환에 분리 배치하니 공실이 심하게 분열되었다.
▶三桓氏分為三軍: 魯에는 본래 中軍이 없고 오직 상하 양군만이 있어 모두 공실에 소속되었으며, 전쟁이 있으면 세 경이 번갈아 가며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정벌하였다. 계무자가 공실의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여, 중군을 세운다고 하여 군제를 고친 것이다. <춘추좌씨전 노양공11년>
十二年,朝晉。
양공 12년에 晉에 입조하였다.
十六年,晉平公即位。
양공 16년에 晉平公이 즉위하였다.
二十一年,朝晉平公。
양공 21년에 양공이 진평공을 입조하였다.
|
▶晉平公: 춘추시대 晉의 군주로 이름은 彪이며, 悼公의 아들이다. 진평공 3년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魯를 구하기 위해 齊를 공격하여 수도를 포위하였다. 다음 해 제후들과 督揚에서 모여 대국이 소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었다.
二十二年,孔丘生。
양공 22년에 공구가 태어났다.
二十五年,齊崔杼弒其君莊公,立其弟景公。
양공 25년, 齊의 崔杼가 자신의 군주 莊公을 시해하였고, 장공의 동생 景公을 세웠다.
二十九年,吳延陵季子使魯,問周樂,盡知其意,魯人敬焉。
양공 29년, 오나라의 延陵季子가 魯에 사신으로 와서, 주나라의 음악에 대해 묻고 그 뜻을 모두 알아차리니 魯 사람들이 존경하였다.
|
▶孔丘: 공자.
▶崔杼: 齊의 대부. 최무자 또는 최자로도 불린다. 자신의 후처와 사통한 장공을 시해하고 경공을 세워 전권을 휘둘렀지만 집안의 불화를 틈탄 慶封에 의해 멸문을 당하였다.
<史記세가권32. 齊太公世家>
▶莊公: 제장공. 춘추시대 齊의 제25대 후작이며 이름은 光이다. 장공은 최저의 후처 당강과 정을 통했으며 이로 인해 최저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吳延陵季子: 季札. 춘추시대 오왕 수몽의 네 아들 중 막내로 연릉에 봉해져 연릉계자라고 부른다. 왕의 자리를 넘겨주려 했으나, 계찰은 이를 받지 않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훗날 계찰이 魯를 방문하여 악공에게<周南>, <召南>, <風>, <雅>, <頌>을 연주하게 하였다. <左傳·襄公29年>
<史記세가권31. 오태백세가>
三十一年六月,襄公卒。
양공 31년 6월에 양공이 죽었다.
其九月,太子卒。
그해 9월에는 태자가 죽었다.
魯人立齊歸之子裯為君,是為昭公。
魯 사람들이 齊歸의 아들 裯를 군주로 세우니 그가 昭公이다.
|
▶太子卒: 子野. 魯의 군주이다. 성은 희, 이름은 野이다. 양공의 장남으로 소공과 정공의 형으로 어머니는 敬歸이다. 기원전542년, 양공이 세상을 떠나자 魯는 자야를 옹립한다. 9월 자야는 애통함이 지나쳐 죽었다.
▶昭公: 魯昭公. 魯의 군주로 이름은 裯, 稠, 袑이고, 양공의 서자이다. 중군을 없앴고, 魯의 공족 삼환과 공실을 사분하였다. 삼환이 함께 공격하자 齊로 달아났다가 나중에 晉으로 갔다. 晉이 乾侯에서 살게 했는데, 8년을 살다 죽었다.
▶齊歸之子裯為君: 노양공의 부인 경귀의 동생 제귀의 아들인 주를 叔孫穆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무자가 노소공으로 옹립한다.
昭公年十九,猶有童心。
소공은 나이가 열아홉인데도 어린아이 같았다.
穆叔不欲立,曰:
「太子死,有母弟可立,不即立長。
年鈞擇賢,義鈞則卜之。
今裯非適嗣,且又居喪意不在戚而有喜色,若果立,必為季氏憂。」
목숙이 그를 세우고 싶지 않아 말하였다.
“태자가 죽음에 동모제는 옹립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서자들 중 장자를 세운다.
나이가 같으면 현명한 사람을 택하고, 재능이 같으면 점을 쳐서 결정한다.
지금 주는 적자가 아닌 데다 상중인데도 슬퍼하기는커녕 기뻐하는 기색이다.
만약 정녕 그를 세운다면 분명 계씨의 근심거리가 될 터이다. ”
季武子弗聽,卒立之。
계무자는 듣지 않고 기어이 주를 옹립하였다.
比及葬,三易衰。
소공은 장례 기간에 상복을 세 번이나 바꾸어 입었다.
君子曰:
「是不終也。」
군자들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끝이 좋지 않을 것이다. ”
|
▶鈞: 均과 통용된다. 같다. 대등하다.
▶義鈞: 재능이 같다.
▶裯非適嗣: 주의 아버지 양공이 죽고 뒤를 이은 이복형 자야도 얼마 못 가 죽었다. 주는 노 양공의 부인 경귀의 동생 제귀의 아들로 서자였다. 숙손목숙은 공자 주를 임금으로 세우는 것을 반대했으나, 계무자는 기어이 공자 주를 옹립하니 그가 곧 소공이다.
▶戚: 슬퍼하다.
▶比及: ~때에 이르러.
▶衰: 상복. 衰는 상복 ‘최’.
昭公三年,朝晉至河,晉平公謝還之,魯恥焉。
소공 3년에 晉에 조회하러 가다가 황하에 이르렀을 때 晉平公이 사양하여 되돌아오자 魯가 수치스러워하였다.
四年,楚靈王會諸侯於申,昭公稱病不往。
소공 4년에 楚靈王이 申에서 제후들과 회맹했는데 소공은 병을 핑계로 삼아 가지 않았다.
七年,季武子卒。
소공 7년에 계무자가 죽었다.
八年,楚靈王就章華臺,召昭公。
소공 8년에 楚영왕이 章華臺를 완공하고 소공을 불렀다.
昭公往賀,賜昭公寶器;已而悔,復詐取之。
소공이 가서 축하를 드리자 소공에게 보궁을 내렸다. 그러나 곧 후회하여 속임수를 써서 도로 가져갔다.
|
▶楚靈王: 춘추시대 楚의 군주로 熊氏이며 이름은 圍인데 나중에 虔으로 고쳤다. 공왕의 둘째 아들이다. 令尹이었을 때 병사를 관장했는데, 조카 郟敖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賜昭公寶器: 초영왕이 연회석에서 우호를 표하기 위해 노소공에게 大屈弓을 주고 나서 곧 이를 후회하였다. 楚 대부 薳啓彊이 소공을 만나 대굴궁을 제, 진, 월나라 3국이 갖기를 원했는데 소공이 가져가면 세 나라가 대굴궁을 탈취하기 위해 공격할 것이라고 겁을 주자 소공이 보궁을 되돌려 주었다. <춘추좌씨전·노소공 7년>
十二年,朝晉至河,晉平公謝還之。
소공 12년, 소공이 晉에 조회하러 가다가 황하에 이르렀을 때 晉평공이 사양하여 다시 돌아왔다.
十三年,楚公子棄疾弒其君靈王,代立。
소공 13년, 楚의 공자 기질이 자기 군주 영왕을 시해하고 자신이 즉위하였다.
十五年,朝晉,晉留之葬晉昭公,魯恥之。
소공15년, 晉에 조회하러 가자, 晉昭公의 장례를 치르고 가라며 억류하여 魯에서는 이를 치욕으로 여겼다.
二十年,齊景公與晏子狩竟,因入魯問禮。
소공 20년, 제경공과 안자가 魯의 변경에서 사냥을 하다가 魯에 들어온 김에 예법에 대해 물었다.
二十一年,朝晉至河,晉謝還之。
소공 21년, 晉에 조회하러 가다가 황하에 이르렀을 때 晉에서 사양하여 되돌아 왔다.
|
▶楚公子棄疾: 楚의 공자 棄疾. 초평왕. 楚의 국군. 웅씨이며 이름은 居 또는 子居, 자는 棄疾이다. 초영왕이 晉을 멸하고 5년 뒤 초공자 기질이 영왕을 살해하고 자립하여 평왕이 되었다.
二十五年春,鸜鵒來巢。
소공 25년 봄에 鸜鵒이 魯에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
師己曰:
「文成之世童謠曰
『鸜鵒來巢,公在乾侯。
鸜鵒入處,公在外野』。」
師己가 말하였다.
“문공과 성공때에 동요가 있었는데
‘구욕조가 날아와서 둥지를 틀면 임금은 간후땅에 있고,
구욕조가 날아와 잠을 자면 임금은 들판에 있다네.’라고 하였습니다”
|
▶鸜鵒來巢: 魯의 대부 사기가 말하였다.
“내 듣건대 문공 ‧ 성공 때에 동요가 있었는데, 그 동요에
‘구욕이 오면 임금님이 출국하여 치욕을 당하리라.
구욕이 날아다니면 임금님이 국외의 교야에 계시고 신하가 가서 말을 드리리라.
구욕이 뛰어다니면 임금님이 간후에 계시면서 의복을 요구하리라.
구욕이 와서 둥지 지으면 임금님이 멀리 나가 계시다가 조보는 고생하다 죽고 송보는 교만하리라.
구욕이 오면 갈 때는 노래하고 올 때는 곡하리라. ’라고 하였다.
이런 동요가 있었는데, 지금 구욕이 와서 둥지를 지었으니 아마도 장차 화가 미칠 터이다.”<동래박의> <춘추좌씨전 노소공25년>
▶鸜鵒: 九官鳥. 북방에 사는 새로 남쪽의 濟水를 넘어오지 않는데, 魯에 들어와 둥지를 트니 이를 이변이 있을 전조라 한 것이다.
▶師己: 魯의 대부.
季氏與郈氏鬬雞,季氏芥雞羽,郈氏金距。
季氏와 郈氏가 닭싸움을 벌였는데 계씨는 닭 날개에 갑옷을 입혔고, 후씨는 발톱에 쇠를 씌웠다.
季平子怒而侵郈氏,郈昭伯亦怒平子。
계씨의 닭이 지자 계평자가 화가 나서 후씨 땅을 침범하자 郈昭伯도 계평자에게 화를 냈다.
臧昭伯之弟會偽讒臧氏,匿季氏,臧昭伯囚季氏人。
臧昭伯의 동생 會가 臧氏를 거짓으로 모함하고는 계씨의 집에 숨자 臧昭伯이 계씨 사람을 가두었다.
季平子怒,囚臧氏老。
계평자도 화가 나서 장씨 집안의 가신을 가두었다.
臧、郈氏以難告昭公。
장씨와 후씨가 이 분란을 소공에게 아뢰었다.
|
▶季氏: 季平子. 季孫意如. 춘추시대 말기 魯의 대부.
季孫宿의 손자다. 후씨및 장씨와 불화하자 후씨와 장씨가 소공에게 고자질하였다. 소공이 계씨를 공격하여 宅에서 포위하였으나 숙손, 맹손과 연합하여 삼가가 소공을 함께 공격하니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소공이 달아나 齊와 晉에 원조를 청하였다. 계씨는 齊에는 대항하고 晉에는 뇌물을 먹여 소공을 乾侯에 머무르게 하였다. 소공은 돌아오지 않고 간후에서 죽으니, 魯陵 墓道 남쪽에 장사지내 祖宗과 같은 반열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郈昭伯: 郈孫. 이름은 惡이다. 노소공 때 대부를 지냈다. 일찍이 계평자와 투계를 했는데, 계씨의 닭이 지자 계평자가 화가 나서 후씨의 집을 침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중에 소공을 따라 계씨를 공격하다가 맹씨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는 소백이다.
▶芥: 介와 통용된다. 갑옷. 겨자를 분말로 만들어 닭의 깃에 뿌린 것이다. 혹자는 모래를 아교로 개어 닭의 몸에 뿌려 갑옷 입은 닭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金距: 距는 닭발. 쇠로 자기 닭의 발톱을 만들어 끼운 것이다.
▶侵郈氏: 후씨의 택지를 빼앗아 자기의 집에 보탠 것이다.
▶藏昭伯: 臧爲子.
▶偽讒: 거짓으로 참소하다.
昭公九月戊戌伐季氏,遂入。
소공이 9월 무술일에 계씨 정벌에 나서 계씨의 집으로 진입하였다.
平子登臺請曰:
「君以讒不察臣罪,誅之,請遷沂上。」
계평자가 누대에 올라가 청하였다.
“군주께서는 모함만 듣고 신의 죄를 살피지 않으시고 저를 죽이려 하시니, 저를 沂水가로 내쫓아 주십시오. ”
弗許。
소공은 허락하지 않았다.
請囚於鄪,弗許。
계평자가 비읍에 가두어달라고 청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請以五乘亡,弗許。
수레 다섯 대만 가지고 망명하겠다고 요청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子家駒曰:
「君其許之。
政自季氏久矣,為徒者眾,眾將合謀。」
子家駒가 말하였다.
“군주께서는 요청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정권이 계씨에서 비롯된 지 오래되었고 무리도 많으니 그 무리들이 일을 꾸밀 것입니다. ”
弗聽。
그러나 소공은 듣지 않았다.
郈氏曰:
「必殺之。」
후손이 말하였다.
“계씨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
|
▶費: 계씨의 채읍.
▶子家羈: 子家는 氏, 羈는 이름이며, 字는 駒이다. 노장공의 현손이자 子家文伯의 아들로, 소공의 대부가 되었다. 계평자를 토벌하려는 소공을 만류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소공이 패하여 齊로 달아나자 그를 수행하였으며, 소공이 죽자 소공의 영구를 魯로 보내고 자신은 국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叔孫氏之臣戾謂其眾曰:
「無季氏與有,孰利?」
숙손씨의 가신 戾가 그의 무리에게 말하였다.
“계씨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어느 쪽이 우리에게 유리한가?”
皆曰:
「無季氏是無叔孫氏。」
모두들 말하였다.
“계씨가 없어지는 것은 바로 숙손씨가 없어지는 것이다. ”
戾曰:
「然,救季氏!」
여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계씨를 구원하자!”
遂敗公師。
마침내 공실의 군대를 물리쳤다.
孟懿子聞叔孫氏勝,亦殺郈昭伯。
孟懿子는 숙손씨가 이겼다는 소식을 듣자 역시 후소백을 죽였다.
郈昭伯為公使,故孟氏得之。
후소백이 소공의 사신으로 맹씨 집에 갔기 때문에 맹씨가 잡아 죽일 수 있었다.
三家共伐公,公遂奔。
세 집안이 함께 소공을 치니 소공은 급기야 달아났다.
|
▶戾: 鬷戾. 숙손씨의 가신. 숙손씨는 공자 숙아의 후손.
▶孟懿子: 맹손씨의 9대손. 仲孫何忌. 魯의 대부 仲孫氏. 이름은 하기, 시호는 懿. 그의 아버지 孟僖子가 임종 때 그로 하여금 공자에게 예를 배우게 하였다.
▶三家: 계손씨, 숙손씨, 맹손씨를 말한다.
己亥,公至于齊。
기해일에 소공이 齊에 이르렀다.
齊景公曰:
「請致千社待君。」
제경공이 말하였다.
“1, 000사 규모의 읍으로 군주를 대우하겠소. ”
子家曰:
「棄周公之業而臣於齊,可乎?」乃止。
자가구가
“주공의 업적을 버리고 齊의 신하가 되라는 말씀인데 될 말입니까?”
라고 하자 그만두었다.
子家曰:
「齊景公無信,不如早之晉。」弗從。
자가구가
“제경공은 신의가 없으니 서둘러 晉으로 가는 것만 못합니다. ”
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叔孫見公還,見平子,平子頓首。
숙손이 소공을 만나고 돌아와 계평자를 만나자 계평자가 머리를 조아렸다.
初欲迎昭公,孟孫、季孫後悔,乃止。
처음에 숙손이 소공을 맞으려 했으나 맹손씨와 계손씨가 번복하자 그만두었다.
|
▶公至于齊: 제경공 31년, 노소공이 계씨의 반란을 피해 齊로 도망쳤다. 齊가 그에게 2만5천호에 해당하는 1천 사로 봉하려 하자 자가가 소공을 말렸으나, 노소공은 齊에게 魯를 정벌해달라고 청하였고, 齊는 魯의 鄆邑을 빼앗아 노소공을 그곳에 살게 하였다.
<史記세가권32. 齊太公世家>
▶齊景公: 제장공의 이복동생으로 이름은 杵臼이다. 장공을 살해한 대부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궁실을 짓고 사냥개와 말을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세금과 형벌을 무겁게 하며 사치가 끝이 없었다. 재위 기간 동안 齊의 공실이 쇠퇴하고 전씨 세력이 대두하게 되었다.
▶社: 25가 가 중심이 되어 토지신에게 제사지내는 곳이 1사이다. 千社는 25, 000가이다.
▶叔孫: 叔孫穆子. 魯의 경인 叔孫豹.
▶頓首: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절을 하다.
二十六年春,齊伐魯,取鄆而居昭公焉。
소공 26년 봄에 齊가 魯를 침벌하여 운읍을 빼앗아 노소공을 그곳에 살게 하였다.
夏,齊景公將內公,令無受魯賂。
여름에 제경공이 소공을 魯로 귀국시키려고 魯의 뇌물을 받지 못하도록 명령하였다.
申豐、汝賈許齊臣高龁、子將粟五千庾。
魯의 대부 申豐과 汝賈가 齊의 대신 高龁과子將에게 곡식 5, 000庾를 주겠다고 하였다.
子將言於齊侯曰:
「群臣不能事魯君,有異焉。
宋元公為魯如晉,求內之,道卒。
叔孫昭子求內其君,無病而死。
不知天棄魯乎?抑魯君有罪于鬼神也?
願君且待。」
자장이 제경공에게 말하였다.
“신하들이 魯의 군주를 섬기지 못하겠다고 하니 괴이한 점이 있습니다.
송원공이 魯를 위해 晉에 가서 소공을 귀국시키려 하였으나 도중에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叔孫昭子가 자기 군주를 귀국시키려 하였으나 병도 없는데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魯를 버린 것인지 아니면 魯의 군주가 귀신에게 죄를 지은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군주께서는 잠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
齊景公從之。
齊경공이 그 말에 따랐다.
|
▶申豐, 汝賈: 두 사람은 모두 계씨의 가신이다.
▶高龁, 子將: 신풍이 여고를 시종으로 삼고 齊의 군대로 가서 子猶의 가신 고흘에게 이르기를‘만약 우리를 위해 자유에게 뇌물을 써준다면 齊 군주에게 청하여 그대를 고씨의 후사로 삼아주고, 또 곡식 5천 유를 주겠다’고 말하였다.
▶庾: 16말.
▶有異: 괴이한 점이 있다.
二十八年,昭公如晉,求入。
소공 28년, 소공이 晉에 가서 귀국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季平子私於晉六卿,六卿受季氏賂,諫晉君,晉君乃止,居昭公乾侯。
계평자가 晉의 6경에게 뇌물을 주고 있었으며, 6경이 계씨의 뇌물을 받았으므로
진경공에게 간하자 진경공은 곧 논의를 그만두고 소공을 乾侯에서 살게 하였다.
二十九年,昭公如鄆。
소공 29년, 소공이 운읍으로 갔다.
齊景公使人賜昭公書,自謂「主君」。
제경공이 사람을 시켜 소공에게 편지를 보내 ‘主君’이라 자칭하였다.
昭公恥之,怒而去乾侯。
소공은 이를 치욕으로 여겨 화를 내며 간후로 되돌아갔다.
|
▶昭公如晉: 齊가 소공을 멸시하기 때문에 晉로 간 것이다.
▶六卿: 晉의 강신인 지·범·중항·한·위·조 6성을 말한다. 이들6성은 서로 간에 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다투었는데, 晉는 결국 이들 중 한·위·조3성에 의해3분되었다.
▶乾侯: 晉 경내의 읍.
▶私: 뇌물을 주다.
▶自謂「主君」: 제경공이 자신을 ‘주군’이라 칭하여 노소공을 대부로 취급한 것이다.
三十一年,晉欲內昭公,召季平子。
소공 31년, 晉이 소공을 귀국시키려고 계평자를 불렀다.
平子布衣跣行,因六卿謝罪。
계평자가 베옷에 맨발로 와서는 6경을 통해 소공에게 사죄하였다.
六卿為言曰:
「晉欲內昭公,眾不從。」
육경이 계평자를 위하여 말하였다.
“晉이 소공을 귀국시키려고 해도 무리들이 따르지 않습니다. ”
晉人止。
결국 진경공은 그만 두었다.
三十二年,昭公卒於乾侯。
32년에 소공이 간후에서 죽었다.
魯人共立昭公弟宋為君,是為定公。
魯 사람들이 모두 소공의 동생 宋을 군주로 삼았으니 그가 정공이다.
|
▶跣: 맨발.
▶因: 통하다. 경유하다
定公立,趙簡子問史墨曰:
「季氏亡乎?」
정공이 즉위하고 조간자가 史墨에게 물었다.
“계씨가 망하겠는가?”
史墨對曰:
「不亡。
季友有大功於魯,受鄪為上卿,至于文子、武子,世增其業。
魯文公卒,東門遂殺適立庶,魯君於是失國政。
政在季氏,於今四君矣。
民不知君,何以得國!
是以為君慎器與名,不可以假人。」
사묵이 대답하였다.
“망하지 않습니다.
계우가 魯에 큰 공을 세워 비나라 땅을 받고 상경이 되었고, 계문자와 계무자에 이르도록 대대로 그 공적을 늘렸습니다.
魯문공이 죽자 동문수가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우니 이에 魯의 군주가 정권을 잃었습니다.
정권이 계씨에게 넘어간 뒤 지금까지 네 명의 군주가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군주를 알지 못하니 어찌 나라를 장악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군주는 벼슬과 작위를 신중하게 관장해야지 남에게 함부로 주어서는 안 됩니다. ”
|
▶趙簡子: 趙鞅. 춘추시대 말기 晉의 사람으로 趙孟 또는 志父로도 불린다. 晉 내부에서 6경이 세력 다툼을 벌일 때 2경인 범씨와 중항씨를 몰아내고 조나라를 일으키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史墨: 蔡墨. 춘추시대 말기 晉 사람으로 蔡史墨, 史黯이라고도 한다. 晉에서 太史로 있었다. 진경공 13년에 조앙이 刑鼎을 주조하고 范宣子가 刑書를 만들었다. 공자가 晉이 원칙을 잃어 장차 망할 것이라고 하자 사묵은 덕을 닦는 것이 재앙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季友: 노장공의 동생.
▶季文子: 季孫行父. 춘추시대 魯의 대부. 신중하면서도 검소한 재상으로 이름이 있었다. 문공과 양공때 대부를 지냈다. 季行父로도 불린다.
▶季武子: 季孫宿. 계손행보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이어 대부가 되었다.
▶世: 대대로.
▶東門遂: 襄仲. 東門襄仲. 성은 희, 이름은 遂, 자는 仲이다. 문공이 죽자 양중이 문공의 적자 악과 시를 죽여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魯 공실은 점점 쇠락해지고 삼환이 강해졌다.
▶四君: 노의 선공, 성공, 양공, 소공.
▶器: 지위등급.
▶名: 작호. 작위의 이름.
▶假: 주다. 빌려주다.
定公五年,季平子卒。
정공 5년, 계평자가 죽었다.
陽虎私怒,囚季桓子,與盟,乃捨之。
陽虎가 개인적으로 화가 나서 계환자를 가두었으나 맹약을 하자 풀어주었다.
七年,齊伐我,取鄆,以為魯陽虎邑以從政。
정공 7년, 齊가 魯를 정벌하여 鄆땅을 빼앗아 魯의 양호로 하여금 자신의 읍으로 삼고 정치에 관여하도록 하였다.
八年,陽虎欲盡殺三桓適,而更立其所善庶子以代之;
정공 8년, 양호가 삼환의 적자를 모두 죽이고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서자로 바꾸어 세우려 하였다.
載季桓子將殺之,桓子詐而得脫。
계환자를 수레에 태운 다음 죽이려 했으나 계환자가 계략을 써서 탈출하였다.
三桓共攻陽虎,陽虎居陽關。
삼환이 함께 양호를 공격하자 양호는 陽關을 점거하였다.
九年,魯伐陽虎,陽虎奔齊,已而奔晉趙氏。
정공 9년, 魯가 양호의 토벌에 나서자 양호가 齊로 달아났다가 얼마 뒤에 晉의 조씨에게로 달아났다.
|
▶季平子卒: 6월에 계평자가 東野를 순행하고 돌아오다가 국도에 이르지 못하고 房땅에서 죽었다.
▶陽虎: 춘추시대 말기 魯 사람. 자는 貨이고, 얼굴이 공자와 닮았다고 한다. 계씨의 가신으로 계평자를 섬겼다. 계평자가 죽자 권력을 장악하였다. 일찍 계환자를 잡아 강제로 동맹을 맺게 하였다. 노정공 8년에 삼환을 제거하고 삼환의 적자들을 모두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양관으로 달아났다. 다음 해에 삼환이 양관을 공격하자 齊로 달아났고, 다시 晉으로 달아났다. 조순에게 귀의하여 조간자의 모신이 되었다.
▶私怒: 양호가 난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계환자가 따르지 않을 것이 두려워 잡아 가두었다.
▶陽虎邑以從政: 齊가 운과 양관을 魯에 돌려주니, 양호가 그곳에 거주하며 국정을 관여하도록 하였다.
▶殺三桓適: 양호는 삼환을 제거하고 季寤로 계환자를 대체시키고, 叔孫輒으로 숙손씨를 대체시키고, 자신이 맹씨를 대체하고자 하였다.
▶更: 고치다.
十年,定公與齊景公會於夾谷,孔子行相事。
정공 10년, 정공과 제경공이 夾谷에서 회합했는데 공자가 회합의 행사를 도왔다.
齊欲襲魯君,孔子以禮歷階,誅齊淫樂,齊侯懼,乃止,歸魯侵地而謝過。
齊가 노정공을 습격하려 하자 공자가 예에 어긋나지 않게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 齊의 음탕한 악사들을 죽이니 齊경공이 겁을 먹고 그만두고 빼앗은 魯의 땅을 돌려주며 사죄하였다.
|
▶行相事: 회합의 예의를 돕다.
▶歷階: 계단을 급히 오르다.
▶誅齊淫樂: 회맹할 때 萊의 악사들에게 연주하게 하자 공자는 계단을 급하게 올라 담당 관리를 시켜 萊 사람을 잡아 목을 베게 한 다음 예로써 경공에게 따졌다. 경공이 부끄러워 빼앗은 魯의 땅을 돌려주며 사과하고는 회맹을 마치고 떠났다.
[史記세가]권32. 齊太公世家
十二年,使仲由毀三桓城,收其甲兵。
정공 12년, 仲由로 하여금 삼환의 성을 허물고 무기를 거두어들이게 하였다.
孟氏不肯墮城,伐之,不克而止。
맹씨가 성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아서 토벌에 나섰으나 이기지 못해 중지하였다.
季桓子受齊女樂,孔子去。
계환자가 齊의 여악사를 받아들이자 공자가 魯를 떠났다.
|
▶仲由: 子路 또는 季路이며 卞사람이다. 자로는 공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三桓城: 費邑, 郈邑, 成邑이다. 장차 나라의 해가 될 것이므로 중유가 그 성을 허물고자 한 것이다.
▶甲兵: 갑옷과 병기. 통상적으로 무기를 말한다
▶堕: 무너뜨리다.
▶女樂: 지금의 기녀이다.
十五年,定公卒,子將立,是為哀公。
정공 15년, 정공이 죽고 아들 장이 즉위하니 그가 애공이다.
|
哀公五年,齊景公卒。
애공 5년, 齊경공이 죽었다.
六年,齊田乞弒其君孺子。
애공 6년, 齊의 대부 田乞이 자신의 군주 孺子를 시해하였다.
|
▶田乞: 田釐子 또는 田僖子라고도 한다. 춘추시대 말기 齊의 대신. 기원전489년, 경공이 죽자 어린 도(荼:안유자)가 즉위하나 전걸이 안유자를 옹립한 國夏와 高張을 모두 쫓아내고, 도공을 즉위시켰으며 안유자를 살해하였다. 전걸이 재상이 되니 이때부터 전씨가 齊의 정치를 독점하였다.
[史記세가]권32. 齊太公世家
七年,吳王夫差彊,伐齊,至繒,徵百牢於魯。
애공 7년, 오왕부차가 강성하여 齊를 정벌하여 繒땅에 이르러 魯로부터 소, 양, 돼지 100뢰를 요구하였다.
季康子使子貢說吳王及太宰嚭,以禮詘之。
계강자가 자공을 시켜 오왕과 太宰嚭에게 예로 설득하여 그만두게 하였다.
吳王曰:
「我文身,不足責禮。」乃止。
오왕이 말하기를,
“나는 문신을 하고 있다. 예를 가지고 내게 말하지 말라. ”
라 말하고 그만두었다.
|
▶夫差: 오나라 왕 부차는 아버지의 복수 때문에 월나라를 크게 패배시켰다. 부차는 북쪽으로 齊를 정벌하여 艾陵에서 齊의 군대를 무찔렀다. 증읍에 이르러 노애공을 불러 백뢰의 향연을 요구하였다. 魯의 계강자가 자공을 사신으로 보내 주나라의 예법을 들어 태재 백비를 설득하여 겨우 그만두게 하였다.
[史記세가]권31. 오태백세가
▶百牢: 소‧양‧돼지가 1뢰이니, 소‧양‧돼지를 각각1백 마리씩 잡아서 베푸는 향연이다.
▶太宰嚭: 伯嚭. 춘추시대 楚 사람으로 오나라로 망명하여 태재가 된 뒤 월왕구천의 뇌물을 받고 화의를 받아들이게 하여,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빌미를 제공하였으나 월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史記권41. 월왕구천세가>
▶文身: 고대에 오와 월지방은 몸에 문신을 하고 단발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文은 紋과 같다.
吳為鄒伐魯,至城下,盟而去。
애공 8년에 오나라가 추나라를 위해 魯를 정벌하러 나서, 도성 밑에까지 왔다가 맹약을 하고 돌아갔다.
齊伐我,取三邑。
齊가 魯를 정벌하여 세 읍을 빼앗았다.
十年,伐齊南邊。
애공 10년, 魯가 齊의 남쪽 변경을 정벌하였다.
|
▶吳為鄒伐魯: 오왕 부차는 齊와 魯의 남쪽 땅을 점령하였다. 부차 9년, 추나라를 위해 魯를 정벌하러 나섰다가 魯에 이르러 맹약을 하고 떠났다.
▶鄒: 邾. 춘추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국성은 조이며, 작위는 자작이다. 전국시대에는 국명이 鄒나라로 변경되었다. 이 추나라에서 맹자가 태어났다.
齊伐魯。
애공 11년에 齊가 魯를 정벌하였다.
季氏用冉有有功,思孔子,孔子自衛歸魯。
계씨가 冉有를 기용했는데 염유가 공을 세우자 계씨는 공자를 생각했으며, 이에 공자가 위나라에서 魯로 돌아왔다.
齊田常弒其君簡公於俆州。
애공 14년, 齊의 田常이 자신의 군주 簡公을 俆州에서 시해하였다.
孔子請伐之,哀公不聽。
공자가 전상을 정벌하자고 청했으나 애공이 듣지 않았다.
|
▶冉有: 冉求. 魯의 정치가이며 자는 子有이다. 공자의 제자로 자로와는 상반되는 성격으로 여겨진다. 화술에도 능란하였고 유능한 행정가요 장군이기도 하였다. 공자의 추천으로 魯의 실세였던 계씨가의 가신으로 등용되었다. 공자의 가르침보다는 계씨의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여 공자가 반대하는 중과세 정책을 실행하여 공자의 미움을 받았다.
▶功: 성과.
▶田常: 陳成子 또는 田成子, 陳恒. 춘추시대 齊 사람. 전걸의 아들이다. 제간공때 闞止와 함께 좌우상을 맡았다.
전걸의 아들 전상은 悼公을 죽이고 간공을 군주로 세웠다. 간공은 총신 감지를 끼고 전상과 대립했으나 전상은 제간공 4년 감지와 간공을 공격해 살해하고, 간공의 동생 오를 세워 평공으로 삼았다. 스스로 재상이 되어 齊의 국정을 장악하고, 공족 가운데 강성한 이들은 모두 제거하였다.
十五年,使子服景伯、子貢為介,適齊,齊歸我侵地。
애공 15년, 子服景伯을 사신으로, 子貢을 그의 조수로 삼아 齊로 보내자 齊가 빼앗은 魯의 땅을 돌려주었다.
田常初相,欲親諸侯。
전상이 처음으로 齊의 재상이 되어 제후들과 화친하려 하였다.
|
▶子服景伯: 子服이 성이고 景은 시호이며 伯은 자이다. 魯 대부 子服何이다.
▶子貢: 端木賜. 춘추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성은 端木이고, 이름은 賜며, 字가 자공이다. 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재아와 더불어 언어와 사령에 뛰어났다고 한다. 理財家로서도 알려져 수천 금의 재산을 모았다. 공자가 죽은 뒤 魯를 떠나 衛에 가서 벼슬했으며 齊에서 죽었다.
▶介: 조수. 모시다.
十六年,孔子卒。
애공 16년에 공자가 죽었다.
二十二年,越王句踐滅吳王夫差。
애공 22년에 월왕 句踐이 오왕 夫差를 멸망시켰다.
二十七年春,季康子卒。
애공 27년 봄에 계강자가 죽었다.
夏,哀公患三桓,將欲因諸侯以劫之,三桓亦患公作難,故君臣多閒。
여름에 애공이 삼환을 근심하여, 제후들을 이용해 그들을 위협하려고 하자, 삼환 역시 애공이 난을 일으킬까 근심하였기 때문에 군신 사이에 틈이 많이 벌어졌다.
公游于陵阪,遇孟武伯於街,曰:
「請問余及死乎?」
애공이 陵阪으로 유람을 갔다가 길에서 孟武伯을 만나 물었다.
“묻건대 내가 제명에 죽겠는가?”
對曰:
「不知也。」
맹무백이 말하였다.
“신은 알 수 없나이다. ”
|
▶因諸侯以劫之: 제후의 군대를 청구하여 삼환을 축출하려 한 것이다.
▶閒: 틈. 원한으로 인하여 벌어진 틈.
▶孟武伯: 맹의자의 아들로 중손씨,이름은 彘이다. 춘추시대 魯의 대부.
▶余及死乎: 내가 수명대로 죽을 수 있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公欲以越伐三桓。
애공이 월나라를 이용하여 삼환을 토벌하려고 하였다.
八月,哀公如陘氏。
8월에는 애공이 魯의 대부 陘氏에게 갔다.
三桓攻公,公奔于衛,去如鄒,遂如越。
삼환이 애공을 공격하자 애공은 衛로 달아났다가, 鄒로 간 다음 마침내 越로 갔다.
國人迎哀公復歸,卒于有山氏。
국인이 애공을 맞아들여 복귀시키려 했지만 애공은 有山氏의 집에서 죽었다.
子寧立,是為悼公。
그 아들 영이 즉위하니 그가 悼公이다.
|
▶如: 가다.
▶陘氏: 有陘氏는 有山氏이다.
▶悼公: 魯悼公. 전국시대 魯의 국군으로 이름은 영이고, 애공의 아들이다. 재위할 때 삼환이 강대해져 군주는 小侯나 다름없었다. 37년 동안 재위하였다.
悼公之時,三桓勝,魯如小侯,卑於三桓之家。
도공의 시대에는 삼환이 강성해져 魯의 군주는 작은 제후와 같아 삼환의 가세보다 연약해졌다.
十三年,三晉滅智伯,分其地有之。
도공 13년에 한·조·위의 삼진이 지백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
▶勝: 흥성하다.
▶三晉: 춘추시대강국의 하나였던 晉이 분리되어 세워진 한・위・조의 세 나라. 晉의 삼경이었던 文侯 魏斯・烈侯 趙籍・景侯 韓虔의 3가가 기원전453년에 쇠약해진 晉을 분할하여 각각 나라를 세웠는데, 이때부터 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智伯: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기의 晉 사람으로 이름은 瑤이고, 智襄子라고도 부른다. 진 출공 17년에 조, 한, 위와 함께 범씨와 중항씨의 땅을 나눠 읍으로 삼았다. 趙襄子가 한, 위와 함께 지씨를 멸족시켰다.
三十七年,悼公卒,子嘉立,是為元公。
도공 37년, 도공이 죽고 아들 嘉가 즉위하니 그가 元公이다.
元公二十一年卒,子顯立,是為穆公。
원공이 재위 21년만에 죽고 아들 顯이 즉위하니 그가 穆公이다.
穆公三十三年卒,子奮立,是為共公。
목공이 재위 33년만에 죽고 아들 奮이 즉위하니 그가 共公이다.
共公二十二年卒,子屯立,是為康公。
공공이 재위 22년만에 죽고 아들 屯이 즉위하니 그가 康公이다.
康公九年卒,子匽立,是為景公。
강공이 재위 9년만에 죽고 아들 匽이 즉위하니 그가 景公이다.
景公二十九年卒,子叔立,是為平公。
경공이 재위 29년만에 죽고 아들 叔이 즉위하니 그가 平公이다.
是時六國皆稱王。
이 무렵 6국이 모두 왕을 칭하였다.
|
平公十二年,秦惠王卒。
평공 12년, 秦혜왕이 죽었다.
二十年년,平公卒,子賈立,是為文公。
평공 20년에 평공이 죽고, 아들 賈가 즉위하니 그가 文公이다.
文公[元]年,楚懷王死于秦。
문공 원년, 楚懷王이 秦에서 죽었다.
二十三年,文公卒,子讎立,是為頃公。
문공 23년에 문공이 죽고 아들 讎가 즉위하니 그가 頃공이다.
|
頃公二年,秦拔楚之郢,楚頃王東徙于陳。
경공 2년에 秦이 楚의 도읍 郢을 점령하자,楚頃王이 동쪽 陳으로 거처를 옮겼다.
十九年,楚伐我,取徐州。
경공 19년에 楚가 魯를 정벌하여 徐州를 빼앗았다.
二十四年,楚考烈王伐滅魯。
경공 24년에 楚考烈王이 魯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頃公亡,遷於下邑,為家人,魯絕祀。
경공은 도망쳐서 소읍으로 옮겨 평민이 되니 魯의 제사가 끊어졌다.
頃公卒于柯。
경공은 柯읍에서 죽었다.
|
▶楚考烈王: 전국시대 楚의 국군으로 웅씨, 이름은 元 또는 完이다. 태자로 있을 때 秦나라에 인질로 갔다. 黃歇의 도움을 받아 돌아와서 즉위하고, 진나라에 영토를 주어 화친을 도모하였다. 재위 기간 중에 군대를 보내 秦에 포위당한 조나라를 구하였고, 魯를 멸망시켰다.
▶下邑: 도성 밖의 소읍.
▶家人: 평민.
魯起周公至頃公,凡三十四世。
魯는 주공에서 경공까지 모두 34대였다.
|
▶三十四世: 魯의 국군은 37명이나 그중 시호를 받지 못한 군주는 백어, 반, 악, 야 4명이었으며, 34대로 기록한 것은 군주 중 실제로 즉위하지 못한 반, 악, 야 3명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太史公曰:
余聞孔子稱曰
「甚矣魯道之衰也!
洙泗之閒龂龂如也」。
觀慶父及叔牙閔公之際,何其亂也?
隱桓之事;襄仲殺適立庶;
三家北面為臣,親攻昭公,昭公以奔。
至其揖讓之禮則從矣,而行事何其戾也?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공자께서 일찍이
‘심하도다, 魯의 도가 쇠약해지는 것이!
洙水와 泗水 사이 사람들은 언쟁을 그치지 않는다. ’
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慶父,叔牙,閔公 당시를 살펴보면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은공과 환공때의 일, 양중이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운 일,
삼환이 북면하는 신하로서 직접 소공을 공격하여 소공이 달아난 일 등이 그렇다.
읍하고 사양하는 예절은 준수하면서도, 행하는 일은 어찌 그토록 어그러지는 것인가?”
|
▶龂龂: 언쟁하는 모양.
▶洙泗: 수수와 사수로 모두 춘추시대 魯 땅에 있었다. ‘洙泗之敎’는 공자가 이 지역에서 강학하였기 때문에 뒤에는 공자의 가르침이나 유가의 학문을 지칭하게 되었다.
▶從: 준수하다.
▶揖讓之禮: 읍하고 사양하는 예절.
▶戾: 배반하다. 위배하다.
'史記 > 世家'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世家36-陳杞世家(진기세가) (0) | 2023.06.03 |
---|---|
世家35-管蔡世家(관채세가) (0) | 2023.06.02 |
世家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 (0) | 2023.06.02 |
世家32-齊太公世家(제태공세가) (0) | 2023.05.29 |
世家31-吳太伯世家(오태백세가) (0) | 2023.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