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三國演義의 말씀과 감상 본문

漢詩와 漢文/삼국연의

三國演義의 말씀과 감상

耽古樓主 2023. 2. 12. 19:44

유기가 공명에게 계책을 구할 때(39회)

◆배경:
형주자사 유표의 아들 유기가 계모 채부인에게 미움을 받으니, 해결책을 공명에게 묻는다.
공명은 남의 집안일이고, 일이 잘못되면 해를 입는다며, 간여하지 않으려 한다.
유기는 공명에게 묘책이 있다고 믿고 재삼 요청하였으나 공명에게 거절당하자, 공명이 누설을 염려함을 알아챈다.
유기가 樓閣으로 공명을 안내하여 술을 마시며, 사람을 시켜 누각에 오르는 사다리를 치워버린다.
그리고 말한다.

 

◆말씀:
「琦欲求教良策,先生恐有洩漏,不肯出言;
今日上不至天下不至地出君之口入琦之耳可以賜教矣。」
“제가 좋은 계책을 가르쳐 주시기를 요청하여도, 선생께서 누설을 걱정하셔서 말씀을 꺼내시지 않습니다.
이제 위로는 하늘에 닿지 않고 아래로 땅에 닿지 않아서, 선생의 입에서 나오면 저의 귀로 들어올 뿐이니, 가르침을 내리셔도 되겠습니다.”

 

◆결과: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自刎하겠다는 유기의 협박(?)에 못 이겨서, 공명이 이미 계책이 서 있었다며 알려준다.
그 계책은, 江夏 수비를 자청하여 外方에 나가서 謀害를 피하라는 것이었다.

 

◆감상:
良策이긴 하나 누설되어도 해를 입을 정도의 기밀사항은 아닌 듯한데, 如何?
***2021.8.29.


장비가 공명을 못미더워하며 현덕에게 한 말(39회)


◆배경:
공명은 三顧草廬후 出世하여 신야의 民兵 3천 인을 招募하여 훈련하고 있다.
관우와 장비는 공명이 통 미덥지 않아 현덕의 과분한 대우(스승으로 대함)에 불만을 토로한다.
현덕이 「吾得孔明,猶魚之得水也。」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라고 하며 더이상 말하지 말라고 한다.
조조의 하후돈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현덕을 토벌하러 온다. 현덕이 두 아우를 불러 대책을 묻자 장비가 하는 말:

 

◆말씀:
哥哥何不使?」 형님은 왜 을 보내지(보내서 싸우게 하지) 않습니까?”

 

◆결과:
공명이 계책을 세워 조운,관우,장비를 이용하여 博望坡에서 하후돈군을 대파하자 두 아우가 공명에게 탄복하고 절하며 사과한다.

 

◆감상:
제갈량을 물로 보다가 장비가 큰 코를 다침.
***********2021.8.29.



공융의 집안이 멸문될 때 아들이 한 말(40회)


◆배경
재주 있는 孔融은 공자의 20세손인데 조조가 싫어했던 예형과도 친하고 재주를 믿고 오만하였다.
조조가 형주를 정벌하려 할 때 반대하다가 옥리에게 끌려가서 곧 처형당할 형편이었다.
집에 있던 나이 어린 두 공자는 바둑을 두고 있었다.
측근이 피하라고 권하자 공자가 하는 말:

 

◆말씀:
破巢之下安有完卵乎?」
깨뜨려진 둥지에 어찌 온전한 알이 있겠습니까?”

 

◆결과:
두 공자를 포함한 공융 一家는 모두 처형되고 공융은 梟首되었다.
脂習이란 사람이 조조의 노여움을 무릅쓰고 공융 부자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냈다.
형주정벌을 반대할 때 한 말이 「以至不仁伐至仁,安得不敗乎!(지극히 불인한 자가 지극히 어진 자를 정벌하니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 )」이고 이 말이 조조의 귀에 들어가서 조조가 죽이게 되었다.

 

◆감상:
위의 것은 三國演義의 내용이고 正史에는 9살 아들과 7살 딸 중에서 여동생이 '새집이 부서졌는데 어찌 알이 깨지지 않겠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라 하고 침착하게 죽음을 기다렸다고 한다.
*********



장판교에서 장비가 호기를 부리며 한 말(42회)


◆배경:
유비는 번성의 백성을 강릉으로 옮기는데 조조의 대군이 추격하여 대패하였다.
제갈공명은 강하의 관우에게 가고 없다.
조운은 單騎로 혈전하여 겨우 아두를 구해내지만 와중에 미부인이 아두를 살리라며 자결한다.
조조는 조운을 생포하겠다며 冷箭(몰래 쏘는 화살)을 쏘지 말라고 할 정도로 餘裕綽綽이다. 조조군은 모든 장수가 모였으니 上將만 해도 조인, 이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장요, 장합, 허저 등 기라성 같다. 군사도 형주와 양양을 치러 올 때 50만이었으니 어마어마한 대군이다.
장비는 군사도 적으면서 배후에 疑兵을 설치하고 長坂橋에 匹馬로 버티고 서서 한 말:

 

◆말씀:
燕人張翼德在此誰敢來決死戰?」
戰又不戰退又不退卻是何故!」
연인 장익덕이 여기 있다! 누가 감히 와서 죽기로 싸워볼 테냐?”
싸울 듯이 아니 싸우고 물러갈 듯이 안 물러가니, 대체 무슨 까닭이냐!”

 

◆결과:
조조가 먼저 겁을 먹고 달아나고 장수들과 군사가 모두 달아났다.
조조는 겁을 먹고 관과 비녀가 떨어져 머리카락이 풀어진 채 도망쳤고, 군사들은 창을 버리고 투구를 떨어뜨린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喊聲未絕,曹操身邊夏侯傑驚得肝膽碎裂,倒撞於馬下。
(장비의 고함이 끝나기도 전에, 조조 곁에 있던 하후걸이 놀라서 간담이 부서지고 찢어져 말 아래 거꾸로 처박혔다.)

 

◆감상:
나관중의 허풍에 놀랄 뿐이다.
특히 하후걸이 놀라서 말에서 떨어졌다는 대목에서는 멍해지는 느낌이다.
正史에도 장비의 장판교 守禦는 대단한 것으로 평가되니(상황은 다르다) 나관중이 멋지게 각색하였고 이것이 삼국연의의 재미인지도 모른다.
한편, 조운의 좌충우돌할 때 조조의 隨身背劍之將 하후은에게서 청홍검을 빼앗아서 사용하였는데 비장이 가지는 검은 靑紅, 조조 자신이 소지하는 검은 倚天이다.(의천도룡기에서 나오는 의천검이어서 매우 반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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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江口에서 조조가 채모와 장윤에게 한 말(45)


◆배경:
주유는 유세객 장간을 역이용하여 채모의 가짜 밀서를 고의로 유출하여 조조에게 보낸다.
장간은 이것이 주유의 反間計인 줄 모르고 조조에게 가서 수군도독 채모와 장윤이 적과 내통한다고 보고한다.
조조는 채,장에게 곧 출병하라고 지시한다.
채, 장은 아직 수군의 훈련이 부족하다며 함부로 출전해서는 안 된다고 諫한다.
軍尚未曾練熟不可輕進.
이때 조조가 화를 내며 한 말:

 

◆말씀:
軍若練熟吾首級獻於周郎矣!
군대가 숙련되면 내 수급을 주유에게 바치겠구나!”

 

◆결과: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조조는 밀서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조조는 즉시 두 사람을 참수하게 하고 그들의 수급을 바치자, 그제야 주유의 계략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죽였는지 묻자 ‘군법에 태만하여 죽였다.’라고 말하고 자신의 착오는 인정하지 않는다.

 

◆감상:
조조처럼 용병에 능하고 뛰어난 사람이 명확한 照査 없이 두 명의 수군도독을 霎時에 죽였다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나관중 자신도 조조가 용병에 능하다고 여러 번 언급할 정도였고, 실제로도 병법을 연구한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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蔣濟가 사마의에게 한 말(107회)


◆배경:
曹爽이 사냥 나간 틈을 타서, 사마의가 성을 장악하고 조상을 도모하려 하는데, 조상의 智囊(꾀주머니)인 桓範이 성을 빠져나가니 사마의가 우려한다.
蔣濟가 걱정할 것 없다며 사마의에게 한 말:

 

◆말씀:
駑馬戀棧豆必不能用也!
우둔한 말은 우리에 있는 콩에만 연연한다고 하니, 틀림없이 (그를) 쓰지 못할 것입니다.”
曹爽은 우둔하여 자기 집안일만 생각하고 생각이 좁으므로 환범이 좋은 계책을 올려도 채택하지 않을 것이란 뜻.

 

◆결과:
환범은 도망하여 조상에게 가서, 別營의 군대를 동원하여 사마의의 변란을 토벌하자는 계책을 내며 투항하면 죽음뿐이라고 말한다.
조상은 가족만 걱정하며 猶豫未決하다가 결국 투항하기로 한다.
병권만 빼앗을 뿐 다른 뜻은 없다는 사마의의 말을 믿은 것이다.
조상의 三族과 환범 등은 市曹(저자)에서 처형되었다.

 

◆감상:
병권만 빼앗을 뿐 다른 뜻은 없다는 사마의의 말을 믿는 조상은 너무 바보스럽고 대장군의 기개가 없다. 결국 장제가 조상의 위인을 잘 보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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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와 마초의 대화(65회)


◆배경:
제갈공명의 계략에 의하여 진퇴양난에 빠진 마초를 설득하러 공명이 가려 하는데 李恢가 익주의 李恢가 투항해 오며 ‘良禽相木而棲,賢臣擇主而事.’라는 말을 한다. 이회가 마초와 친분이 있어서 마초를 설득하러 간다. 마초는 이회가 說客임을 알고 마음을 다잡고 刀斧手를 대기하게 한다. 이회에게 마초가 말하고 이회가 대꾸한 말:

 

◆말씀:
마초가 말한다
吾匣中寶劍新磨汝試言之其言不通便請試劍!」
내 칼집 안의 보검은 새로 갈아놓았다. 너는 시험 삼아 말해보라. 그 말이 되먹지 않으면 검을 시험해 보겠다.”
이회가 대꾸한다
將軍之禍不遠矣但恐新磨之劍不能試吾之頭將欲自試也!」
장군의 화가 멀지 않았소!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새로 간 검으로 나의 머리에 시험하지 못하고, 장차 자신을 시험하게 되겠다는 것이오.”

◆결과:
마초는 무슨 화가 있느냐고 묻고 이회는 三寸不爛之舌을 놀려 마초를 설득한다. 설득된 마초는 유비에게 가서 투항하고, 유장을 설득하여 유비에게 歸降하게 한다.

 

◆감상:
지루하던 익주 병탄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회의 流暢한 辯說이 壓卷이다.
삼국연의는 유장을 闇弱하다고 계속 강조하지만 백성을 고통받지 않게 하려는 마음은 강했던 것 같다.

楊修의 최후(72회)


◆배경:
유비와 마초의 연합군에게 漢中의 據點인 南鄭과 要塞인 陽平關마저 빼앗기고 斜谷界口에 주둔한 조조는 나아가자니 이길 수 없고, 퇴각하자니 촉병의 웃음거리가 될 것을 염려하여 고민에 빠져 있다.
雞湯을 먹다가 그 속의 雞肋을 보고 자신의 처지가 계륵과 같다고 느낀다.
그때 마침 하후돈이 그날 밤 암호를 정해달라고 하자 조조가 “계륵”이라고 무의식중에 말한다.
楊修는 하후돈에게서 그날의 암호가 계륵임을 듣고, 조조의 심중을 짐작하여 하후돈에게 설명해 주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퇴각하기 위한 짐을 꾸리게 한다. 하후돈을 포함한 모든 영채에서 퇴각할 준비를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조가 양수를 불러서 한 말:

 

◆말씀:
汝怎敢造言亂我軍心!
너는 어찌 감히 헛소문을 퍼뜨려 우리 軍心을 어지럽히는가?”

 

◆결과:
조조는 양수를 斬한다.
하후돈도 참하려는 척하다가 좌우에서 말리자 사면한다.
조조는 양수의 말과는 달리 퇴각의 뜻이 없음을 보이고자 억지로 출병하였다가 대패하고 앞니가 2개 부러진다.
조조는 양수의 생각이 옳았다고 느끼고 양수를 후하게 장사지내게 한다.

 

◆감상:
양수는 실존 인물로 機智가 過人하여 조조의 意中을 잘 읽어낸 것이 正史에도 전한다.
그의 逸話는 世說新語 등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다만 계륵의 일은 나관중의 창작이다.
목을 베어 놓고 후하게 장사지내는 것이 조조의, 아니 나관중의 장기인가?
***********2021.10.1.

關羽의 투항 거부(76회)


◆배경:
관우가 거느리던 한수 상류지역 9郡은 모두 오나라에 넘어가고, 관우는 麥城에 의지하고 있으나 糧草와 救兵이 없으니 위태로움이 朝夕에 달렸다.
오나라에서는 제갈근(공명의 형)을 보내 이해득실을 말하며 투항을 권유하게 한다.
관우가 정색하며 답한 말:

 

◆말씀:
吾乃解良一武夫蒙吾主以手足相待安肯背義投敵國乎
城若破有死而已
玉可碎而不可改其白竹可焚而不可毀其節
身雖殞名可垂於竹帛也
汝勿多言速請出城
吾欲與孫權決一死戰!
관공이 正色하고 말하였다.
나는 解良의 한 武夫일 뿐으로 우리 주공께서 수족으로 대우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의리를 저버리고 적국에 투항하겠소?
성이 만약 깨뜨려지면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옥은 부술 수 있으나 그 흰색을 바꿀 수 없고, 대는 태울 수 있으나 그 마디를 훼손할 수는 없소.
몸은 비록 죽어도 이름은 竹帛에 드리워질 것이오.
당신은 많은 말을 하지 말고 속히 성을 나가기를 청하오.
나는 손권과 한 번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자 하오!”

◆결과:
제갈근은 쫓겨서 동오로 돌아가고 ,여몽이 계책을 세워 관우를 사로잡는다.

◆감상:
三國演義의 초반에는 관우, 관운장으로 불리고 장비와 함께 關,張으로 표시하다가, 관우가 번성을 공격할 때부터는 關公으로 높여 부르는데, 그의 忠義之心을 보면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1.10.1.


關羽의 최후(77회)


◆배경:
관우는 麥城에서 孤立無援이다가 탈출하여 성도로 가려 할 때, 왕보가 小路를 피하여 大路로 가라는 助言을 듣지 않고 가다가, 潘璋의 부하장수 馬忠에게 사로잡힌다.
손권이 재차 투항을 권유하려 하자 손권의 主簿 左咸이 말:

 

◆말씀:
不可
昔曹操得此人時封侯賜爵三日一小宴五日一大宴
上馬一提金下馬一提銀:
如此恩禮畢竟留之不住聽其斬關殺將而去致使今日反為所逼幾欲遷都以避其鋒
今主公既已擒之若不即除恐貽後患.
안 됩니다.
옛날 조조가 이 사람을 얻었을 때 에 봉하고 벼슬을 내리며, 3일에 한 번은 작은 연회, 5일에 한 번은 큰 연회를 열었습니다.
말에 오를 때 한 번 금을 주고 말에서 내릴 때 한번 은을 주었습니다.
이 같은 恩禮에도 결국 만류하지 못하고 斬關殺將하고 갔음을 들었고, 오늘에는 도리어 핍박받아 遷都하여 그 예봉을 피하고자 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사로잡아 놓고 즉시 제거하지 않으면, 아마 후환을 끼치겠습니다.”

 

◆결과:
관우와 관평 부자는 참수되었다.
적토마는 마충에게 주었으나 여물을 먹지 않고 죽었다.
관우의 가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三國演義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감상:
오나라에서 제갈근을 보내어 吳主의 아들과 관우의 딸이 혼인하여 姻戚을 맺자고 제의했을 때, 「吾虎女安肯嫁犬子乎!」(범같은 내 딸을 개새끼한테 어찌 시집보내겠느냐!) 라고 一言之下에 거절하던 自負心과 義理의 表象은 이렇게 殞命한다.
三國演義에 등장하는 인물은 왕이 아닌 한 이름이나 字를 부르는데 관우에 대하여는 거의 모두 關公으로 높여 부르는데, 그의 忠義之心을 보면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1.10.1.

于禁의 최후(79회)


◆배경:
관우는 번성에서 水攻으로 조조의 7군을 크게 무찌르고 龐德과 于禁을 사로잡았다.
방덕은 충절을 지켜 죽음을 받았다. 우금이 살려달라고 애원함을 보고, 관우가 그를 비루하게 여겨 하옥하였다.
뒤에 관우가 죽고 형주가 오나라에 함락되자, 오나라는 우금을 처결하지 않고 위나라로 보낸다.
曹操가 죽자 그의 長子 曹丕가 魏王을 계승하고, 우금에게 조조의 陵을 조성하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우금이 조조의 능에 가서 보니, 壁面에 관운장이 7군을 격파하고 우금이 땅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방덕은 당당히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그림인데, 조비가 일부러 우금에게 모욕을 주려 한 것이다.

 

◆결과:
우금은 치욕에 고민하다가, 분한 마음이 병이 되어 곧 죽었다.

 

◆감상:
조비가 조조의 능묘인 高陵에 우금의 부끄러운 항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은 사실이다.
정사에도 실려 있다.
우금은 조조의 부하장수 중 다섯 안에 드는 上將으로 30여 년에 걸쳐 공을 세웠는데, 마지막이 좋지 못하여 역사의 평가가 좋지 않다.
항복한 우금에게 책임이 있지만, 제왕으로서 그림을 그려 우금을 능욕한 曹丕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사마광은 말하였다.
***********2021.10.1.

유비의 雪恨(83회)


◆배경:
관우와 養子 관평(정사에서는 어엿한 장남이다)은 임저에서 오나라 장수 潘璋의 부장 馬忠에게 사로잡혀서 죽는다. 부사인과 미방은 관우의 명을 어기고 군량을 조달하지 않고 오나라에 항복하여 관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장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출전을 준비하던 중, 범강과 장달에게 목이 베인다.
범,장은 수급을 가지고 오나라에 가서 항복한다.
현덕은 두 동생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하여 공명을 비롯한 많은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70만 대군을 일으켜 오나라를 정벌하러 나섰다.

◆복수의 방법:
관우의 아들 관흥이 이릉전투에서 반장을 뒤쫓다가 놓치고 어떤 莊園에서 끼니를 때우는데 공교롭게도 반장 또한 이 장원에 들린다. 관흥이 반장의 목을 베고 그가 가졌던 아버지의 兵器 靑龍偃月刀를 回收한다.
蜀軍의 위세가 盛大함을 보고 미방과 부사인은 마충의 목을 베어 先主를 뵙고 변명한다. 선주는 大怒하여 관우의 靈前에서 관흥에게 명하여 두 사람의 살을 발라내어 陵遲處死한다.
촉의 위세에 놀란 오나라는 범,장을 묶어서 보내어 和議를 강구한다. 先主는 화의를 一言之下에 拒絶하고, 장비의 아들 장포에게 두사람의 살을 발라내어 凌遲處斬하고 제사하게 한다.

◆감상:
오나라에서 제갈근을 보내어 吳主의 아들과 관우의 딸이 혼인하여 姻戚을 맺자고 제의했을 때, 「吾虎女安肯嫁犬子乎!」(범같은 내 딸을 개새끼한테 어찌 시집보내겠느냐!) 라고 一言之下에 거절하던 自負心과 義理의 表象은 이렇게 殞命한다.
三國演義의 작자도 임금이 아닌 이상, 字나 이름을 부르지만 관우는 關公으로 높여 부르는데, 그의 忠義之心을 보면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1.10.1.

董卓 入洛陽의 辯(3회)


◆배경:
大將軍 何進이 환관을 誅殺하고자 外兵을 부르고자 하니 여러 사람이 환관을 掃蕩함에는 외병을 불러서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능히 가능하다며 반대한다.
하진은 결국 조서를 각 鎭에 보내고, 동탁은 西凉에서 낙양으로 출발하며 表를 올리며 하는 말:

 

◆말씀:
臣聞揚湯止沸不如去薪, 潰癰雖痛勝於養毒.
臣敢鳴鐘鼓入洛陽, 請除讓等. 社稷甚幸, 天下甚幸.
신이 듣건대 끓는 물을 들어서 끓지 않게 함은 땔나무를 치움만 못하고, 고름을 짜면 비록 아프지만 養毒보다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감히 鳴鐘鼓入洛陽하여 청컨대 장양 등을 제거하겠습니다. 사직에 매우 다행이고, 천하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결과:
표를 보고, 豺狼같은 동탁이 京城에 오면 食人할 것이라며 불허하라고 諫하지만, 하진은 듣지 않는다. 결국 동탁의 無知莫知한 專橫이 시작되고 황제까지 폐위한다.

◆감상:
동탁의 말이야 옳지만, 마음속에 不臣之心을 품었으니, 어찌 환관 소탕에만 힘썼겠는가?
하진은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말았으니,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 서툴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함을 알아야 했는데.
***********2021.10.15.

조조가 踐麥之罪를 스스로 벌할 때의 辯(17회)


◆배경과 말씀:
조조가 張繡를 정벌하러 가며 군사를 엄히 단속하여 백성에게 민폐를 끼치지 못하게 한다.밀밭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르자 조조가 탄 말이 놀라서, 백성의 밀밭을 한바탕 짓밟아 놓는다.
行軍主簿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무슨 죄에 해당하는지 묻자, 행군주부는 승상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한다.
吾自製法吾自犯之何以服眾?」
내 자신이 법을 만들어놓고 스스로 그 법을 범하고서, 어떻게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겠는가?”
조조는 자신의 칼로 自刎하려 한다.
좌우에서 말려서 제지한다.
郭嘉가 말한다.
古者春秋之義法不加於尊
옛날 春秋之義을 존엄한 사람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이에 조조가 말한다
既春秋有法不加於尊之義吾姑免死。」
춘추에 법은 존엄한 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 있다 하니, 내 잠깐 죽음은 면하겠구나.”

 

◆결과:
머리카락을 잘라 3군에 돌려 보이며, 머리카락으로 首級을 대신함을 알린다. 군사들이 군령을 더욱 두려워하며 준수한다.

◆감상:
조조의 쇼맨십을 잘 보여줌.
뒤따라 언급하는 후인의 시는 이렇다
<十萬貔貅十萬心一人號令眾難禁
拔刀割髮權為首方見曹瞞詐術深>
<사나운 병사 10만에 마음도 10만이라, 한 사람 호령으로 금하기 어려워라.
칼을 뽑아 頭髮을 잘라 수급을 대신하니, 曹瞞이 사기에 능함을 알겠구나.>
어느 나라의 대통령을 많이 닮은 것 같다.
***********2021.10.20.


 조조의 短歌行과 劉馥의 죽음(48회)


◆배경:
208년 조조가 오,촉의 연합군과 赤壁에서 전투를 벌일 무렵 달빛이 밝은 揚子江의 밤경치를 바라보는데 새들이 울며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뱃전에 서서 취중에 〈단가행〉을 짓는다.
취흥은 도도하고 사람들이 모두 화답하는데 劉馥은 詩句가 불길하다고 한다.
조조는 화가 나서 어느 구절이 불길한지 묻는다.
유복이 하는 말:

 

◆말씀:
「『月明星稀烏鵲南飛遶樹三匝無枝可依。』 此不吉之言也.
“‘달이 밝아서 별빛이 흐린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가네. 나무를 세 바퀴 돌아도 의지할만한 나뭇가지가 없구나라고 하시니 이것이 불길한 말입니다.”

 

◆결과:
흥을 깬다고 하여 조조가 직접 槊으로 유복을 찔러 죽인다.
다음날 조조가 술에서 깨어, 뉘우치고 한탄해 마지않았다. 유복의 아들 유희에게 후하게 장사지내게 한다.

 

◆감상:
유복은 후한말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정치를 잘한 사람인데, 短歌行을 비평하다가 죽은 사람으로 나관중이 만들었다.
이렇게 善政을 한 사람을 조조가 죽였음, 그것도 직접 창으로 찔러 죽였음을 보이려 했을까?
어진 사람의 죽음이나 억울한 죽음 뒤에는 정해진 순서로 ‘후하게 장사지냄’이 따라붙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문제가 된 저 구절은 소동파의 赤壁賦에도 인용되어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한 구절이다.
***********2021.10.24.

손부인이 추격하는 서성과 정봉을 꾸짖을때(55회)


◆배경:
손부인(손권의 누이. 이름 미상)과 유비가 오에서 탈출하여 오는데, 주유는 그 사실을 늦게 알고, 서성과 정봉에게 유비와 손부인을 잡아오라고 분부한다.
손부인이 돌아가지 않으려 하고 꾸짖자, 서성과 정봉은 주유의 將令이라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데, 이때 손부인이 한 말:

 

◆말씀:
你只怕周瑜獨不怕我
周瑜殺得你我豈殺不得周瑜?
너희는 단지 주도독만 무섭지, 유독 나는 두렵지 않다는 것이냐?
주유가 너희를 죽일 수 있겠지만, 나는 어찌 주유를 죽이지 못하겠느냐?”

 

◆결과:
주눅이 든 서성과 정봉이 유비일행을 통과시킨다.

 

◆감상 및 손부인의 행적:
남자 같은 성격에 무예를 좋아하여 시비들에게도 무장을 시킬 정도로 괄괄한 손부인이니 어찌 수하들이 두려워하지 않았겠는가?
정사에서는 손부인이 유비에게 가서 결혼하고(유비가 동오로 간 것이 아니라) 2년도 살지 못하고 아두를 납치하여 오나라로 돌아가다가 제갈량이 조운을 시켜 아두를 빼앗기는 것으로 나온다.
결혼 당시 유비는 49세 손권은 29세 손부인은 20여세인 것으로 계산되는데 현격한 나이 차와 성격차이로 금슬은 좋지 못하였고 별거하였다 한다.
손부인은 시녀 백여 명으로 하여금 무기를 들게 하여 늘 자신의 주변에서 시립하고 있게 했고 유비는 내실로 들어갈 때마다 늘 마음 속으로 두려움을 가졌다.
사실상 손부인은 혼인 후에도 무장한 시녀들을 사병처럼 대동하며 '나는 유비를 존중하는 시늉도 안 할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를 죽일 수 있다'고 무력 시위를 한 셈이었다.
손부인은 교만하고 횡포해서 오나라에서 데려온 관리와 병사들을 거느리고 마구 법을 위반했다. 제갈량이 말하길 유비는 공안에 있을 당시 손부인이 곁에서 변고를 일으킬까 겁내했다. 법정은 유비에게 손부인을 오로 돌려보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손부인은 유비와 서로 믿지 않아서 잔릉현성 동쪽 5리에 손부인성을 쌓아 따로 여기에서 거주했다. 당시 유비의 본거지가 공안이었고 손부인성은 공안현 서쪽에 있었다. 말이 부부지, 손부인이 오나라의 병사와 관리를 동원해 유비를 감시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패배했고 다시 오와 화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손권은 여동생 손부인을 다시 촉으로 돌아가게 했다. 손부인이 아직 촉한에 도착하지 못하고 난강에 이르렀는데 유비가 죽어버렸다. 이에 손부인은 강에 뛰어들어 자결했고 토박이가 손부인을 불쌍하게 여겨 교기에 제사를 지내주었다.
'유비와의 애정 때문에 그를 따라 죽은' 게 아니라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 손부인이 처음 유비와 결혼한 것은 표면상으로는 화친을 위해서였으나 실상은 유비군을 견제 또는 염탐하기 위해서였으며, 실제로 그 역할을 충실히 다한 뒤 귀국했다. 그런데 이릉대전 이후 양국 재화친을 위해 다시 촉으로 보내졌으니 사람이 아니라 공물 비슷한 취급을 당한 꼴이다. 이번에는 동오로 돌아올 기약도 없었던데다 안 그래도 양국 간 악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손부인은 과거 유선을 납치한 전과가 있으므로 더욱더 미움받을 입장이었다. 유비가 여전히 홀아비면 모를까, 이미 목황후 오씨가 있어서 이제는 유비의 정실부인 대우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막막한 상황에 그나마 걸어 볼 만한 건 유비가 약간의 호의를 베풀어 줄지도 모른다는, 그다지 높지도 않은 가능성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손부인이 도착하기 전에 유비가 죽으면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자신이 막막한 처지에 놓일 것을 예상하고 절망하여 삶의 의지를 상실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2021.10.28.

 

良禽相木而棲,賢臣擇主而事를 인용 한 곳


◆말씀:
이회가 마초를 초항하려 가면서 유비에게 한 말(65회)
良禽相木而棲,賢臣擇主而事
이숙이 여포를 정원으로부터 동탁에게 귀순하게 할 때(3회)
良禽擇木而棲,賢臣擇主而事,
滿寵이 양봉과 한섬에게서 조조에게로 서황을 초항할 때(14회)
良禽擇木而棲,賢臣擇主而事

◆감상:

적을 아군으로 懷柔할 때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인 듯하다. 당신이라는 새가  깃들인 나무는 좋은 나무가 아니니 운운.
***202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