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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역옹패설(櫟翁稗說)》 전서(前序) 至正壬午。夏雨連月。杜門無跫音。悶不可袪。至正(元順帝의 연호) 임오년(1342, 고려 충혜왕 복위3)에 여름비는 여러 달 계속되는데, 杜門不出하니 (찾아오는 이의) 발걸음 소리도 없으매, 답답함을 떨치지 못한다. 持硯承簷溜。聯友朋往還折簡。遇所記。書諸紙背。題其端曰。櫟翁稗說。그래서 벼루를 가져다가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고, 벗들 사이에 오간 편지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기억나는 것을 종이 뒤에다 적고서, 그 끝에 ‘櫟翁稗說’이라고 썼다. 夫櫟之從樂。聲也。然以不材遠害。在木爲可樂。所以從樂也。櫟이 樂을 따름은 소리이되, 재목이 못 되어 해를 입지 않음이 나무로서는 즐거우므로, 樂을 따른 것이다. 予嘗從大夫之後。自免以養拙。因號櫟翁。庶幾其不材而能壽也。내가 벼슬아치가 된 뒤 죄..
《중간여한십가문초(重刊麗韓十家文鈔)》 발(跋)-손정계(孫廷階) 曩僕。見故韓學士王原初先生所選。麗韓十家文。愛其有唐宋八大家之遺味。而刊之矣。지난번 나는 舊 韓國 學士 王原初 선생이 選한 麗韓十家文이 唐宋八大家의 餘韻이 있음을 좋아해서 간행했었다. 近見學士於其書。重爲致意。或修正。或增損。欲以益爲天下之寶。근래에 보니, 학사가 그 책에 거듭 성의를 다해서 수정을 가하기도 하고 增損 하기도 하여, 천하의 보배가 됨을 도우려 했다. 而顧未有題識以標明者。豈學士年已衰。而懶於筆墨耶。抑其微意。陰屬之於僕也耶。그런데 아직 제지(題識)를 붙여서 표명(標明)하지 않음은, 학사의 나이가 이미 노쇠해서 필묵(筆墨)에 게을러졌는가? 아니면 은근히 나에게 슬쩍 넘기려는 것인가? 重刊之日。一笑題此以問之。重刊하는 날에 한 번 웃으며 이 말을 ..
발(跋)-비범구(費範九) 발(跋)-비범구(費範九)故韓侍講王君原初。痛國之亡。將吾師金滄江先生所輯高麗金富軾,李齊賢,韓張維,李植,金昌協,朴趾源,洪奭周,金邁淳,李建昌九家之文。增損之。仍益以金先生之文。以爲麗韓十家文抄。舊 한국 侍講 王原初군이 조국이 망함을 마음 아파하여, 내 스승 金滄江 선생이 편집한 고려 김부식(金富軾), 이제현(李齊賢)과, 조선의 장유(張維), 이식(李植), 김창협(金昌協), 박지원(朴趾源), 홍석주(洪奭周), 김매순(金邁淳), 이건창(李建昌) 九家의 글을 增損하고, 거기에 김선생의 글을 추가해서 《麗韓十家文鈔》라고 하였다. 一日金先生。以其事語師洪曰。하루는 김선생이 이 일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였다. 王君之阿好於我。不可。而其纂輯之意。非不可。“왕군이 나에게 迎合함은 옳지 않지만, 그 편집하는 뜻이 옳..
발(跋)-양이(楊貽) 自高麗益齋李氏。以古文辭。倡于一邦。後世作者踵接。高麗의 益齋(:李齊賢) 李氏가 古文辭를 일국에 倡導한 이래, 후세의 작자가 잇따랐다. 踵接: 사물(事物)이나 사건(事件)이 잇따름을 이르는 말. 吾師滄江公。擇其尤者。都爲九家。而王君益以師文。나의 스승 滄江公이 그중 뛰어난 분을 뽑아 모두 九家라 하였는데 王君이 거기에다 스승의 글을 더하였다. 嗟呼。銅山西崩。靈鐘東應。物理之相合也。伯牙鼓琴。鍾子辨音。人事之相合也。아, ‘동산(銅山) 서편이 무너지자, 영종(靈鍾)이 동쪽에서 따라 운다.’라고 함은 物理가 서로 합함을 이른 말이요, ‘伯牙가 거문고를 타면 鍾子期가 그 소리를 분간하였다.’라고 함은 人事가 서로 합함을 이른 말이다. 銅山西崩。靈鐘東應:漢나라 孝武帝 때 未央宮 前殿의 鍾이 아무런 이유..
양진산(梁眞山) 처사 묘갈명(墓碣銘) 銘: ‘銘’ 아래에 《韶濩堂文集定本》에는 ‘辛酉’가 있다. 澤榮生世也晩。於鄕。未及見大儒金堯泉(堯泉之自號曰初菴) 先生。김택영(金澤榮)이 鄕里에서 세상에 태어남이 늦으매, 大儒 金堯泉선생( 堯泉의 自號는 初菴이다.)을 뵙지 못했다. 金堯泉 :이름은 김헌기(金憲基)이고 자는 치도(穉度)이며 요천은 그의 호이다. 정조(正祖) 때 명경(明經)으로 등제(登第)하여 예조 좌랑에 이르렀다. 성리학자(性理學者)로 이름이 있었으며, 文集에 《初菴集》 14권이 있고 창강이 중국에서 《堯泉集》이라 해서 간행한 것이 있다.(堯泉之自號曰初菴) :‘堯泉之自號曰初菴’라는 間註가 《韶濩堂文集定本》에는 빠져 있다. 然猶幸得見堯泉後輩姜龍山處士。及處士接其言論。而知堯泉風流餘韻之未泯。그러나 다행히도 요..
주(周)의 처 황 안인(黃安人) 묘지명 銘 : ‘銘’ 아래에 《韶濩堂文集定本》과 《滄江稿》에는 ‘壬子’가 있다. 中華民國南通周君曾錦晉琦。以前淸宣統庚戌二月二十九日。哭其妻同郡黃安人。十二月某日。葬陸洪閘先壠內。手述其行事。請銘于流寓人韓人金澤榮。中華民國 南通의 周曾錦군은 字가 晉琦인데, 이전의 淸國 宣統(宣統帝의 연호) 경술년(1910, 순종4) 2월 29일에 같은 고을에 사는 그의 처 黃安人(: 안인은 6품관의 처에게 주는 작)의 喪을 당하여 12월 某日에 陸洪閘 先塋 안에 장사 지내고, 손수 자기 처의 사적을 적어 가지고, 우거해 있는 韓人 金澤榮에게 墓誌銘을 청하였다. 時韓社之屋屬耳。澤榮幽憂成疾。堅辭之。때는 우리나라의 社稷이 멸망하여 복속한 즈음이라서, 김택영은 남모르는 근심이 병이 되었으므로, 굳이 사양하..
왕성순의 모친 김숙부인(金淑夫人)의 묘지명 銘 : ‘銘’ 아래에 《韶濩堂文集定本》과 《滄江稿》에는 ‘庚戌’이 있다. 余自少時。考觀於吾開城邱墓之文。無有謂其父若祖曰賈者。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 개성(開城)의 墓道文字(墓碣ㆍ墓誌ㆍ墓表 등을 말함)들을 살펴보니, 그 아비와 할아비를 商人이라고 쓴 것이 있지 않았다. 夫吾郡。地小人衆。其生也齷齪。勢不能不爲賈。夫人之所知。而今何以無之。諱也。우리 고을은 땅은 좁고 인구는 많아서, 생활이 악착같고, 형세상 장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사람들이 아는 바인데, 지금 무엇 때문에 없느냐 하면 숨겼기 때문이다. 及近歲僑於淮南。與其文士游。見其文所稱農家者。深考之。則大率實皆賈家也。근년에 淮南에 寓居하면서 이곳 문사(文士)들과 교유하였는데, 그들의 글에 농가(農家)라고 칭한 것을 보고 상..
남원(南原) 양공(梁公) 묘갈명 南原 : ‘南原’은 빠져 있고, ‘梁公’ 위에 《滄江稿》에는 ‘同知敦寧府事啣’이 있다銘: ‘銘’ 아래에 《韶濩堂文集定本》과 《滄江稿》에는 ‘乙巳’가 있다. 昔我先子。分監役君。懷抱直道。於世少合。獨與公中歲相知。而晩更加密。옛날 나의 선친(先親) 분감역군(分監役君)은 곧은 道를 품고 있어 세상에 화합함이 적었는데, 유독 梁公과는 중년에 서로 알고 지냈고, 만년에 더욱 가까워졌다. 當是時。先子産落困甚。公憫之。爲之語其子縣監啣錫埰曰。金長者。可念哉。그 당시 나의 선친은 살림이 衰落해서 곤란이 심했는데, 양공은 이를 가엾게 여기고 그 때문에 그 아들인 현감(縣監)의 직에 있던 梁錫埰에게 말하였다.“金長者를 생각해야 한다.”其子 : ‘其子’ 아래에 《滄江稿》에는 ‘漣川’이 있다.啣(함): ..
전 처사 행장(錢處士行狀) 狀: ‘狀’ 아래에 《韶濩堂文集定本》에는 ‘己未’가 있다 錢處士。諱鶴鳴。字九皐。錢處士의 이름은 학명(鶴鳴)이요, 자는 구고(九皐)이다. 其先出於吳越。後爲南通白蒲之大族。그의 조상은 오(吳)와 월(越) 출신으로 뒤에 남통(南通) 백포(白蒲)의 대족(大族)이 되었다. 父諱棠以上。多以農家者流行其仁義。母如皐劉氏。아버지의 휘(諱)가 당(棠)이며, 그 위로는 農家(학술 流派의 하나로 농업에 종사하는 파)로 인의(仁義)를 널리 행한 분들이 많고, 어머니는 여고 유씨(如皐劉氏)이다.流行: 넓게 퍼지다. 널리 행해지다. 處士儀貌淸疎。識度高明。전처사는 외모와 거동이 맑고 소탈했으며, 식견과 도량이 고명하였다. 少時好讀書。順奉二親。어릴 때 글 읽기를 좋아하고 양친을 잘 봉양했다. 及長。與兄弟析田..
친구 박영기(朴榮紀)가 토계(兎溪)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지내 그 아우의 시체를 구하는 것을 위해 지어 준 글 朴友榮紀 :‘朴友榮紀’가 《韶濩堂文集定本》에는 ‘朴堯山’으로 되어 있다.文:‘文’ 아래에 《韶濩堂文集定本》과 《滄江稿》에는 ‘癸巳’가 있고, 그 아래에 《소호당문집정본》에는 間註로 ‘박의 제사 지내는 것을 중지하였기 때문에 제문은 사용하지 않았음[朴止祭祀故文不用]’이 있다. 維歲次癸巳五月某日。某之季弟某。自兎山還開城。涉兎溪之水而沒焉。維歲次 계사년(1893, 고종30) 5월 모일(某日) 모(某)의 막내아우 모가 兎山에서 開城으로 돌아오는 길에 兎溪의 냇물을 건너다가 익사하였다. 某奔往求屍七八日。不果得。不得已返而成服。모는 쫓아가서 시체를 찾기 7, 8일에 찾지 못하자, 부득이 돌아와서 성복(成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