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蒙求(몽구)399-應奉五行(응봉오행) 본문
by 古岸子
應奉五行- 應奉이 글을 다섯 줄씩 읽다.
後漢應奉字世叔 汝南南頓人.
後漢의 應奉은 字가 世叔이니 汝南 南頓人이다.
少聰明.
어려서 총명하였다.
自爲童兒及長 凡所經履 莫不暗記.
아동에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경험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讀書五行並下.
글을 읽음에 다섯 줄을 한번에 읽어내려갔다.
爲郡決曹史 行部四十二縣 錄囚徒數百千人.
郡의 決曹史가 되어 소속된 42縣을 다니며, 囚徒 數百 내지 천여 명을 기록하였다.
及還 太守問之.
군으로 돌아오자 太守가 그 내용을 물었다.
奉口說罪繫姓名 坐狀輕重 無遺脫.
응봉은 입으로 말하되, 罪因의 성명, 罪狀의 무게 등을 빠뜨림이 없었다.
時人奇之.
당시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官至史隸校尉.
벼슬이 司隷校尉에 이르렀다.
謝承書曰
奉年二十時 嘗詣彭城相袁賀.
賀時出行 閉門造車.
匠於內開扇 出半面視奉.
奉去後數十年 於路見車匠 識而問之.
謝承이 《後漢書》에서 일렀다.
“응봉이 나이 20세일 때 彭城相 袁賀에게 간 적이 있었다.
袁賀는 이때 외출 중이었고, 목공이 문을 닫고 수레를 만들고 있었다.
목공은 안에서 문을 빠끔히 연 채, 얼굴을 반쯤 내밀고 응봉을 보았다.
응봉이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었는데, 길에서 수레 만들던 목공을 만나자 알아보고 안부를 물었다.”
▶開扇: 부채모양으로 반쯤 열었다는 뜻
[註解 ]
▶後漢- <後漢書> <列傳> 38의 기사임.
▶決曹史- 고을의 刑法을 맡은 관리.
▶謝承- 吳나라 山陰 사람. 널리 배우고 흡족하게 들어서 일찍이 알고 본 것은 몸을 마치도록 잊지 않았다. 후한서를 지었다.
▶後漢書- 중국 이십사사 중의 하나로 후한의 역사를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범엽(398년 ~ 445년)이 정리한 책이다.
다루는 시대는 25년(건무 원년)부터 220년(건안 25년)까지의 역사이며 본기 10권, 열전 80권, 지 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중국 정사 24기 중 유일하게 미완성으로 남은 책인데, 본기와 열전은 작성 중이었고 표와 지를 만들기도 전에 범엽이 내란에 연루되어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한서 지 30권은 사마표의 <續漢書>에 유소가 주석을 단 것을 덧붙인 것으로, 志 부분은 <續漢志>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현존하는 후한서는 6세기에 劉昭가 집대성한 책이다.
《후한서》 〈東夷列傳〉에는 동이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고구려, 부여도 동이로 분류되어 있다. 한편 일본도 같이 동이로 분류되어 본격적으로 언급되면서 중국의 사서에 최초로 등장하였다.
이외에도 謝承·설영·화교·사침·원산송·張璠·사마표 총 8명이 개별적으로 《후한서》를 집필한 바 있다. 이 중 절반도 완성하지 못한 張璠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이 각각 개인적으로 집필한 《후한서》들이 있었으나, 五胡十六國時代를 지나면서 모두 滅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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