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求(몽구)

蒙求(몽구)197-谷永筆札(곡영필찰)

耽古樓主 2023. 4. 9. 02:54

蒙求(몽구) 谷永筆札(곡영필찰)

by 耽古書生

谷永筆札-谷永의 문장 

 

前漢谷永字子雲 長安人.
前漢의 谷永은 字가 子雲이니 長安人이다

與樓護俱爲五侯上客.
성제 때 樓護와 함께 다섯 제후의 上客이 되었다.

長安號曰 谷子雲筆札 樓君卿脣舌, 言其見信用也.
장안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곡영의 문장, 누호의 변설.”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신용을 받았음을 말한 것이다.

永於經書 汎爲疏達 與杜欽杜鄴略等 不能洽浹如劉向父子及揚雄也.
곡영은 經書에 두루 막힘 없이 통달하여 杜欽 ‧ 杜鄴과 더불어 대략 대등했지만, 劉向부자 및 양웅에는 충분히 미치지 못했다.

其於天官京氏易最密. 故善言災異.
그는 <주례>의 천관편이나 京氏의 <주역>에 대하여 가장 치밀하게 알았기 때문에 재앙과 이변에 대해서는 잘 예언하였다.

終大司農.
관직은 大司農(錢穀 담당, 재무장관)으로 마쳤다.

護字君卿 少隨父爲醫 出入貴戚家.
누호의 자는 君卿인데,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의원이 되어 귀족의 집안에 출입하였다.

是時王氏方盛 賓客滿門.
이때 외척인 왕씨의 권세가 바야흐로 왕성해서 빈객이 문에 가득했다.

五侯爭名 其客各有所厚 不得左右.
다섯 제후가 명성을 다투어서, 그의 빈객은 각기 후대를 받아서 다른 집에는 가지 못했다.

唯護盡入其門 咸得其驩心.
오직 누호는 어느 집에나 다 갔으며, 모두 그들의 환심을 얻었다.

爲人精辯論議 常依名節 聽者皆竦.
사람됨이 논의에 정밀하게 변론하였고, 항상 유명한 구절에 의지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워했다.
; 삼갈 송, 놀랄 송,


仕至廣漢太守.
벼슬이 廣漢太守에 이르렀다.

王莽專政 召爲前輝光.
왕망이 정치를 전횡하자 불러 前輝光(三輔를 나눈 두 군의 태수)으로 삼았다.

西京雜記曰
五侯競致奇膳.
護乃合以爲鯖.
世盛稱五侯鯖 以爲奇味焉.
<서경잡기>에 일렀다.
“다섯 제후는 다투어 기이한 음식을 내주었다.
누호는 그것들을 합쳐서 열구자탕을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오후청이라고 성대하게 일컫고, 뛰어난 맛의 음식이라고 여겼다.”

 

[註解]

前漢- <한서> <열전> 55의 기사임.

杜欽-나라 사람. 젊었을 때 經書를 좋아했다. 茂陵 杜鄴杜欽姓字가 같았는데 모두 인재가 능하다고 일컬어진다.

前輝光- 王莽三輔를 두었을 때 前輝光·後承烈이었는데 이것을 樓護가 맡았다.

西京雜記- 前漢雜事를 기록한 책. 나라 劉歆, 또는 나라 葛洪의 저술이라고 한다.

- 물고기를 지지고 고기를 끓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