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작고하고 없는 일본의 인류학자 이즈미(泉靖一) 교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일제 때 경성제국대학(帝國大學) 교수로 있었으며 한국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온 분으로 한국에 애착을 지니고 있는 노(老)학자였다. 그 후 그는 저자를 자기집으로 초대했었다. 그 집에 들리자마자 이 노 교수가 저자에게 묻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 가문에 족보가 있읍니까. 』
『예, 있읍니다. 』
『문집도 전해 내려온 것이 있읍니까. 』
『예, 몇 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
『아, 당신은 양반(兩班)이십니다. 그럼 잘 됐읍니다. 나는 당신을 누추하고 불편한 우리집에 초대한 것에 맘을 놓을 수가 있게 됐읍니다. 한국의 양반들은 일상생활의 불편에 대범하니까요. 나는 세상을 많이 다녀봤지만 한국의 양반들처럼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불편에 관용하고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불편에 용감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읍니다. 』
평생 귀가 아프도록 양반의 욕만을 들어온 저자에게 이 양반찬양(兩班讚揚)은 적이 이질적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먹힌 것도 모두 양반의 무기력 때문이며 가난하고 후진적이고 또 사대적이고 비인간적이며 파당적(派黨的)이며, 모든 한국인의 부정적 요인을 모두 이 양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상식이 되어왔고 오늘도 그렇게 돼 있다. 지금도 한심스런 세태나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다음과 같은 개탄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조선사람이 하는 짓이 그렇지――」
조선사람은 의례히 마이너스적 가치(價値)만을 대행하는 열등 인종으로 자처(自處)하고 조선사람이 조선사람을 깔본다. 조선사람이 조선사람을 깔보는 말을 조선사람이 듣고 공감을 갖는 이 얄궂은 풍토 속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교단에서, 방송에서 또 신문 잡지에서 우리 한국의 전통과 조상을 욕하는 것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마치 전통과 조상을 욕하므로서 그 오욕의 전통에서 자기가 구제되고 그 조상의 수치스런 피에서 자기가 소외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고들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價値觀)을 발굴 재구성하여 전개하기에 앞서 저자는 이와 같은 전통적 가치관에의 자조, 자멸, 풍조가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살펴봐야 할 의무에 쫓긴 것이다.
그것은 문화적 원인과 역사적 원인 두 가지로 나뉘어 따져볼 수가 있을 것 같다.
모든 문화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패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미국의 인류학자 마가렛트 · 미드 여사는 제시한 바 있다.
곧 그 하나는 아이들이 그의 애비의 문화를 전승하는 종적(縱的)인 Post-figurative의 문화요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나 애비들이 종적으로 문화를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들로부터 횡적으로 전승하는 Co-figurative 문화,
마지막으로 Pre-figurative 문화가 그것이다. 이 문화에서는 이제 애비가 그의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역 종적 현상을 이룬다.
개화기 이전의 한국문화는 철저한 Post-figurative의 패턴에 속한다. 조상들의 旣成학문은 불변의 확고한 가치를 지녔고 문화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곧 그 기성의 학문을 많이 깊이 터득한다는 것이요 기성문화(旣成文化) 아닌 창조문화(創造文化)나 외래문화(外來文化)는 이단시(異端視)되었던 것이다.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서양문물의 영향을 받아 이 기성문화체계는 무너지기 시작, 종적인 Post-figurative는 횡적인 Co-figurative의 패턴으로 옮겨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우리 조상의 문화 곧 종적인 문화전승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고 횡적인 구미문화 전승에 몰두해버린 것이다.
어느 한 새 문화가 이전에 있던 기성문화를 몰아내고 그 공간을 점하기 위해서는 기성문화의 철저한 파괴 말살이 선행돼야 한다. 곧 기성문화의 개별적 우열(優劣)이나 취사선택(取捨選擇)이 없이 도매로 열등시(男等視)하여 그 파괴나 말살행위는 전반적인 규모로 행해지게 마련이다.
Post-figurative 한 한국의 전통문화나 가치관이 그런 참변(修變)을 당한 것이며 이 참변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는 열등하며 그것을 저주한다는 것은 곧 그 열등문화권에서 자신을 구제한다는 사고방식(思考方式)이 체질화한 것이다.
이 같은 문화적 원인 이외 한국 특유의 역사적 원인으로도 한국인의 한국적 가치관의 멸시 풍조를 따져볼 수 있다.
저자는 요즈음 어린이들의 유행어 가운데 「뚱이 」라는 말을 듣고 아찔해진 적이 있다. 이 말은 좀도둑질을 하는 어린이를 얕잡아 부르는 은어로 무심코 쓰고 있었으나 「뚱이」란 말이 한국인이 한국인을 얕잡아 부르는 역사적 자천(自賤)의 대명사란 점에 주의를 하게 된 것이다.
「뚱이」는 「동이(東夷)」의 중국음이다. 동이는 동쪽에 사는 오랑캐란 말로 「중화(中華)」에서 자존하는 중국인들이 변방(邊方)의 민족을 얕잡아 부르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며 한국인은 곧 동이에 해당된다. 뚱이가 「좀도둑」까지 천화하는 데는 또 다른 한 역사의 장면을 재현시켜야 할 것이다.
연암 박지원(燕岩 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이 뚱이의 천화과정이 명시되어 있다. 중국에 사신따라 가는 많은 한국인들 가운데는 마부(馬夫)며 몸종이며 가마군 등 상민들이 많았다. 몇 개월이 걸리는 이 기나긴 사신길 도중에 상민들은 좀도둑질을 잘했고 횡포가 심해 조선의 사신이 행차한다면 그 길가에 사는 중국인들은 철시를 할 만큼 역겨운 존재였다 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얕잡아 부르는 「뚱이」란 말에는 이 같은 연유로 좀도둑이란 뜻이 가중되었으며 이 다른 뜻이 가중된 이 말이 사신길 따라 갔던 많은 한국 사람에 의해 한국에 수입되어 보편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중세적인 슬픈 낱말이 현대에까지 살아남는 이 기적(奇蹟)을 뭣으로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곧 한국의 역사는 사대적인 중국선망으로 점철(點綴)되었으며 그 선망은 곧 자기가 사는 한국에 열등감을 느끼고 자천감을 가중시키는 어떤 요인을 역사에 작용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역사 작용은 한국인임에 열등감을 느끼고 또 한국인이면서, 한국 것에 치욕을 느끼고 경원하는 뚱이사상이라는 병적인 한 사고 방식을 형성해 놓았으며 현대인도 이 뚱이 사상의 연장 위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Co-figurative 한 문화적 요인과 뚱이 사상의 역사적 요인 이외에도 한국인의 한국 멸시 풍조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동화 정책에 의해 고양되고 체질화되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민족, 한국사, 한국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그것들은 저주하고 욕하고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기에 급급했다.
이 같은 말살정책(抹殺政策) 곧 한민족이나 한국사, 한국문화에서 마이너스적 가치 곧 결점, 약점만을 잡아 그것을 교육시켰던 것이다.
물론 한국의 전통에 열등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만한 열등적 요소는 비단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앵글로 색손 족에도, 게르만 족에도 또 슬라브 족에도 다 있다. 한국의 역사에 나타난 만큼의 파당(派黨)이나 음모나 보수(保守)는 다 있다. 오히려 더 심하다. 어느 민족에게도 마이너스적 가치가 있고 또 플러스적 가치도 있다. 다만 다른 민족들은 마이너스적 가치를 극소화시키고, 플러스적 가치를 극대화한 데 비해 한민족은 마이너스적 가치를 극대화하고 플러스적 가치를 극소화했다는 차이밖에 없는 것이다. 그 극대화 극소화 과정이 너무 오래되었기로 마치 한국에는 마이너스적인 가치밖에 없다는 통념이 형성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기성세대(旣成世代)나 젊은 세대는 예외없이 공간적인 옆만 바라볼 뿐 시간적인 뒤를 바라본다는 법은 없다. 곧 구미사상만을 「옆」으로 보고서 그들의 미래상을 정립하려 할 뿐 한국적인 가치관을 발굴해서 미래상을 정립하려 하질 않는다. 그리하여 교통, 통신, 매스컴 등의 발달로 자꾸만 좁아지는 지구에서 한국인은 국적(國籍)없는 고아가 돼가고 있다. 한국인은 한국을 이탈하고 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한국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두려운 사실이 아니겠는가.
성내어 「뒤」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본다. 곧 전통의 극소화 진행에서 극대화 진행으로 방향을 돌리는 정신 혁명을 역사는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 시대에 한국인이 굳이 존재할 수 있는 바탕을 구축하기 위한 정신적 귀향 행위이며 구미화한 젊은 세대에게 조그맣게라도 한국인이라는 자존의 훈장을 달아 주기 위함인 것이다.
현대의 한국인이나 현대의 한국 사회의 표층은 근대화하고 또 서구화되고 아울러 자조화하였지만 그 표층의 껍데기를 벗기면 우리 선조가 누렸던 인간관계나 사고행동이 드러나며 양파 벗기듯 한 꺼풀 한 꺼풀 더 벗겨 나가면 중세·고대·원시의사회 구조나 심성이 살아있게 마련이다. 지금 자조화의 녹슨 표층을 긁어내고 그 속에 살아있을 전통적 가치를 정리하여 그 바탕에다 미래의 새 표층을 씌워 나가는 복고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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