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讚佛歌(찬불가)

耽古樓主 2023. 2. 21. 05:13

 

 

1. 둥글고 또한 밝은 빛은 우주를 싸고

고르고 다시 넓은 덕은 만물을 길러

억만 겁토록 변함없는 부처님 전에

한마음 함께 기울여서 찬양합니다

 

2. 저 모든 하늘 가운데서 가장 높고

이 넓은 세상 만류 중에 제일 귀하사

지혜와 복덕 구족하신 부처님 전에

한마음 함께 기울여서 찬양합니다.

 

 

 

이미향 연구원, 「조학유의 찬불가」에서 주장

불자들이 법회 때마다 즐겨 부르는 ‘찬양합시다’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진 찬불가일까.

이는 일제시대 조학유라는 스님이 1916년 『찬불가 본보』에 발표한 찬불가이다.

 

이미향 일본 류코쿠대연구원은 보조사상 26집에 「조학유의 생애와 찬불가 연구」를 발표했다.

 

조학유는 만당의 회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민족의식에 투철한 승려였고, 기독교와 왜색에 잠식돼가는 불교를 지키기 위해 근대화된 음악을 찬불가라는 이름으로 도입했다. 그럼에도 그가 작곡 혹은 작사한 노래들에 일본 창가의 음악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인들이 즐겨부르는 노래 자체가 부재했던 시대적 한계 때문이었다는 것이 이미향 연구원의 설명이다.

 

조학유의 찬불가를 살펴보면 일제시대 불교인들이 당시 불교를 살리고 불교를 통해 민족정기를 지키려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조학유는 “동일한 가사를 얹어 부르는 찬불가인데도 각처에서 악곡이 불일치한 당시 불교음악계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찬불가를 연재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미향 연구원은 또 “조학유가 편찬한 찬불가 24곡 가운데 미확인된 6곡을 제외한 16곡이 일본의 찬불가 혹은 일본 창가, 그리고 일본에서 발표된 군가의 선율에서 전부 또는 일부 선율을 차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학유가 일본에 유학할 당시인 1900년대 초 일본에서는 찬불가가 신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다. 당시 찬불가의 호응을 직접 확인한 조학유는 조선에 찬불가를 도입하여 민족의 정신을 지키리라 결심하게 된다. 비록 일본의 곡을 그대로 가져오는 방법을 시도했지만 그가 찬불가를 제작한 배경에는 불교의 대중화, 자주화가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이 연구원은 “근대 불교개혁의 핵심승려로서 근대불교계의 자립과 교정의 확립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으며, 특히 불교교육 및 불교 대중화운동을 통한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찬불가 연재와 관련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계성을 드러낸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보신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2023.2.18 고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