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漢文

息壤在彼(식양재피) - 樗里子甘茂列傳(저리자감무열전)

耽古樓主 2023. 4. 25. 22:31

息壤在彼(식양재피) - 樗里子甘茂列傳(저리자감무열전)

息壤在彼

 

 

풀이

 

'息壤(식양)이 저기 있습니다.' 식양(息壤= 지명)이 저기 있다는 말로, 전에 식양에서 한 맹세를 잊으실 수 있느냐는 의미. 즉 약속(約束)을 어기지 말라는 뜻이다

 

息壤(식양): ‘식양’은 지명(地名)이다. 사천성(四川省)에 있음

 

 

유래

 

秦(진)나라 武王(무왕)이 息壤(식양)에서 맹세를 한 후, 甘茂(감무)에게 韓(한)나라의 宜陽(의양)을 討伐(토벌)하게 하였는데, 다섯 달이 되어도 陷落(함락)시키지 못하므로 저리자와 공손석이 감무를 비난하고 나섰다.

무왕은 近臣(근신)들이 감무를 召喚(소환)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감무를 불러 싸움을 그만두게 하려 하였을 때 감무가 한 말이다.

“식양이 저기에 있습니다”

식양에서의 約束(약속)을 어기지 말라는 말이다.

무왕이 말했다.

“맹약한 것이 있었소.”하고 무왕은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켜 감무에게 다시 공격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적군 6만 명의 머리를 베고 마침내 의양을 빼앗았다.

 

 

史記 樗里子甘茂列傳의 원문

 

始張儀西并巴蜀之地 北開西河之外 南取上庸 天下不以多張子而以賢先王.
"지난 날 장의가 서쪽으로 파와 촉의 땅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북쪽으로 서하의 바깥 쪽을 개척하고, 남쪽으로 上庸을 얻었지만, 천하의 사람들은 장의가 위대한 공을 세웠다고 하지 않고 선왕이 현명하다고 했습니다.

魏文侯令樂羊將而攻中山 三年而拔之. 樂羊返而論功 文侯示之謗書一篋 樂羊再拜稽首曰 此非臣之功也 主君之力也.

또 魏文侯 때 樂羊을 장군으로 삼아 中山을 쳐서 3년 만에 이를 빼앗았습니다. 악양이 돌아 와서 싸움에서 이긴 공을 논할 때, 문후는 악양을 헐뜯는 문서의 상자를 내보였습니다. 이에 악양은 두 번이나 무릎을 꿇어 절하고 말하기를, ‘이번의 승리는 신의 공이 아니고, 주군의 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今臣 羈旅之臣也 樗里子公孫奭二人者挾韓而議之 王必聽之.

그런데 신은 떠돌아 다니며, 벼슬살이하는 몸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리자와 공손석(公孫奭) 두 사람이 한나라를 지킬 생각으로 신의 계책을 이러쿵 저러쿵 헐뜯으면, 왕께서는 틀림없이 저들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是王欺魏王 而臣受公仲侈之怨也.

이는 왕께서는 魏나라 왕을 속이게 되고, 신은 한나라의 재상인 公仲侈의 원망을 사게 될 것입니다"

 

王曰

寡人不聽也 請與子盟.

이에 왕이 대답하였다.

"과인은 그들의 비방을 듣지 않기로 그대와 맹약을 하겠소"

 

卒使丞相甘茂將兵伐宜陽

마침내 승상인 감무를 시켜 군대를 이끌고 宜陽을 치게 하였다.

 

五月而不拔 樗里子公孫奭果爭之. 武王召甘茂 欲罷兵.

다섯 달이 지나도 빼앗지 못하자, 저리자와 공손석이 과연 감무를 비난하고 나섰다. 무왕이 감무를 소환하여, 싸움을 그만두게 하려고 하였다.

 

甘茂曰

息壤在彼

감무가 이렇게 말했다.

"식양(息壤)이 저기에 있습니다."

 

王曰

有之

무왕이 대답하였다.

"그런 맹약이 있었지."

 

因大悉起兵 使甘茂擊之.

이로 인하여 무왕은 군대를 크게 일으켜, 감무로 하여금 다시 공격하게 하였다.

 

斬首六萬 遂拔宜陽.

그렇게 해서 적군 6만 명의 수급을 베고, 드디어 宜陽을 탈취하였다.

 

韓襄王使公仲侈入謝 與秦平

한나라 襄王은 公仲侈를 사자로 보내어 용서를 구하고, 진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2021.5.30 -삼을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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