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同散異

不名一錢(불명일전)의 고사

耽古樓主 2023. 2. 25. 08:19

 

不名一錢(불명일전)의 고사

不名一錢은 자기 명의로 돈이 한 푼도 없이 몹시 가난함을 말한다. 동전을 주조할 권한을 갖고 억만금의 호사를 누리다 마지막엔 자신의 이름으로 한 푼의 돈이 없이 굶어 죽었다는 鄧通의 고사가 있다.

<사기>에서 등통의 일을 알아 보자.

 

漢孝文帝(기원전 180~157) 때 총애를 받은 신하로 鄧通이 있었다. 등통은 蜀郡의 南安 사람으로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그는 배를 잘 저었기 때문에 황제가 타는 배의 선장이었다.​

어느 날, 효문제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효문제는 하늘에 오르려 했으나 오르지 못하고 있던 차에 배를 젓는 어떤 선장이 자기의 등을 밀어주어 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

효문제는 잠에서 깨어난 뒤, 꿈에서 자신을 밀어준 그 뱃사공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등통의 모습이 꿈속에서 보았던 그 선장의 모습과 같았다효문제는 몹시 기뻐하며 등통을 총애하였다.

등통은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며 아첨을 잘하였다. 효문제는 이에 억만 전을 내리기를 십여 차례 하였고, 벼슬은 上大夫에 이르게 했다.

문제는 수시로 등통의 집에 가서 놀았다. 그러나 등통에게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으니 인재를 추천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자기 한 몸 근신하며 주상의 비위를 맞출 뿐이었다.

文帝가 관상 잘 보는 사람에게 등통의 관상을 보게 했더니

“가난을 맞이하여 굶어죽을 터것입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등통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거늘, 어찌 가난 운운하는가?”라고 하고 등통에게 촉군 嚴道의 銅鑛山을 주어 스스로 돈을 주조할 수 있게 하니 ‘鄧氏錢’이 천하에 퍼졌다.

그의 부유함이 이 정도였다.

문제가 일찍이 종기를 앓은 적이 있는데, 등통은 늘 황제를 위해서 종기의 고름을 빨아냈다.

문제는 마음이 편치 않아 조용히 등통에게

“천하에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겠느냐?”라고 물었다.

등통은 “태자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태자가 문병을 오자 문제는 태자에게 종기를 빨라고 시켰다. 태자가 종기를 빨기는 했으나 내키지 않았다.

얼마 뒤 태자는 등통이 늘 황제를 위해서 고름을 빨아낸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했고, 이로써 등통을 원망했다.

문제가 죽고 景帝가 즉위하자 등통은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었다. 누군가 등통이 몰래 국경 밖으로 그가 주조한 돈을 실어내고 있다고 고발했다. 관리에게 넘겨 조사하게 했는데 그런 일이 많았다. 마침내 결국 죄를 물어 등통의 집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고 수만 금의 빚을 지게 만들었다.

長公主가 등통에게 재물을 내렸으나 관리가 재빨리 그것을 몰수했기 때문에 등통은 비녀 하나조차 몸에 지닐 수 없었다. 이에 장공주는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등통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보내주었다.

등통은 끝내 단 한 푼의 돈도 없이 남의 집에 빌붙어 살다가 죽었다(竟不得名一錢,寄死人家).

속담에 “힘써 농사지음이 풍년이 드는 것만 못하고, 착하게 벼슬함이 군주에게 잘 보이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여자만 미색으로 잘 보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살이에도 그런 것이 있다(諺曰「力田不如逢年, 善仕不如遇合」,固無虛言. 非獨女以色媚, 而士宦亦有之).

 

가난은 불명예가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 데 불편을 느끼게 할 뿐이다. 옛사람이 가난을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강조하지만 그 불편을 사서 할 사람은 없을 터이다. 어쩔 수 없이 닥친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을 예찬하지만, 그 상황에 자신이 직접 부딪치기는 싫어한다.

 

2023.2.25 고안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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