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文章

한국 古時調의 원문과 풀이

耽古樓主 2023. 1. 9. 11:54

한국의 고시조 - 평시조

 

◈춘산에 눈 녹인 바람 ---우탁

[원문]

춘산(春山)에 눈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듸 업다

져근덧 비러다가 마리 우희 불니고져

귀밋테 해묵은 서리 녹여볼가 하노라

[현대어 풀이]

봄 산에 눈을 녹인 바람 잠깐 불고 간 곳 없다

잠시동안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게하고 싶구나

귀 밑에 여러 해 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건듯: 문득

▶져근덧: 잠시 동안

▶해무근 서리: 백발

 

 

◈한 손에 막대 잡고 ---우탁

[원문]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싀쥐고

늙는 길 가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白髮)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현대어 풀이]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은 가시로 막고, 찾아오는 백발은 막대로 치려고 했더니,

백발 제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화에 월백하고 ---이조년

[원문]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 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야 잠못드러 하노라

 

[현대어 풀이]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돌아서 자정을 알리는 때에,

배꽃 한 가지에 어린 봄날의 정서를 자규가 알고 저리 우는 것일까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듯 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구름이 무심탄 말이 ---이존오

[원문]

구름이 무심(無心)탄 말이 아마도 허랑(虛浪)

중천(中天)이셔 임의(任意)니면셔

굿타여 광명(光名)날빗츨 덥퍼 무리오

[현대어 풀이]

구름이 욕심 없다는 말이 아마도 허무맹랑하다

하늘 가운데 떠 있어 마음대로 다니면서

구태여 밝은 햇빛을 덮어 무엇하리오

▶구름 : 간신배. 신돈을 가리킨다.

▶중천 : 하늘 가운데. 조정. 권력의 한 가운데를 뜻한다.

▶날빗 : 햇빛. 일반적으로 해는 임금을 상징하므로 햇빛은 임금의 은혜나, 임금의 총기를 의미한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이색

[원문]

백설(白雪)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석양(夕陽)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현대어 풀이]

흰 눈이 많이 내린 골짜기에 구름이 험하기도 험하구나.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에 홀로 서 있는 이 내 마음, 갈 곳을 모르겠구나.

 

◈녹이상제 살지게 먹여---최영(崔瑩)

[원문]

녹이상제(綠駬霜蹄) 살지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 타고,

용천설악(龍泉雪鍔) 들게 갈아 둘러메고,

장부(丈夫)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세워 볼까 하노라.

[현대어 풀이]

녹이상제와 같은 명마를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서 타고,

용천설악과 같은 보검을 잘 들게 갈아서 둘러메고,

대장부의 나라를 위하는 충성스러운 절개를 세워 보려 하노라.

▶<녹이상제(綠駬霜蹄)> : ‘잘 달리는 좋은 말’을 이름. ‘녹이’는 중국 주(周) 나라 목왕(穆王)이 타던 푸른빛의 귀를 가진 말. ‘상제’는 ‘흰 발굽’이란 뜻으로, ‘녹이’와 대구적(對句的)으로 덧붙인 말. 준마(駿馬).

▶<살지게> : 몸에 살이 많게. 현대어에서 ‘살지다’는 형용사. ‘살찌다’는 동사로 구별하나. 고어에서는 동일하게 씌었다.

▶<용천(龍泉)> : 좋은 칼. 명검(名劍). 옛날 중국에 있었던 보검(寶劍)의 하나. 용천은 원래 용천현(龍泉縣)이라는 고을 남쪽 5 리에 있는 물 이름인데 . 용천에 칼을 담그면 칼이 굳세고 날카롭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설악雪鍔)> : 날카로운 칼날. 눈같이 흰 칼날이라는 뜻으로, 명검(名劍)을 이르는 말.

▶<위국충절(爲國충절)> : 나라를 위하는 충성스러운 절개.

 

◈이런들 엇더하며---이방원

[원문]

이런들 엇더하며 뎌러들 엇더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얽어진들 긔 엇더하리

우리도 이가티 얽어져서 백년까지 하리라.

[현대어 풀이]

이렇게 산들 어떻고 저렇게 산들 어떠하리오.

만수산에 마구 뻗어난 칡덩굴이 서로 얽혀진들(얽혀진 것처럼 산들) 그것이 어떠하리오.

우리도 이와 같이 어울려져 오래오래 살아가리라.

▶조선이 개국하기 전 이방원(李芳遠:太宗)이 지은 시조 1수. ‘하여가(何如歌)’라고 한다.

▶고려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읊은 시조로서, 포은이 이에 답한 것이 <단심가(丹心歌)>이다.

▶<청구영언>에 실려 전하며, <포은집>와 <해동악부> 등에는 그 한역시(漢譯詩)가 수록되었다.

如此亦何如 如彼亦何如

城隍堂後垣 頹落亦何如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이 몸이 죽고 죽어---정몽주

[원문]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담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쳐> : 다시, 거듭

▶<백골> : 죽은 사람의 몸이 썩고 남은 뼈

▶<진토> : 티끌과 흙

▶<있고 없고> : 있거나 없거나

▶<일편단심> :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충성된 마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변치 아니 하는 마음.

▶<가실> : 변할, 바뀔

▶<줄이> : 까닭이

▶<포은집(圃隱集)>에는 한역(漢譯)되어,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라고 실려 전한다.

 

◈오백 년 도읍지를 ---길재

[원문]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현대어 풀이

오백년 이어온 도읍지를 홀로 말을 타고 들어가니

산과 강은 예와 다름없으나, 인걸은 간 곳 없구나.

아아! 태평성대를 누리던 지난날의 하룻밤 꿈과 같구나..

▶<도읍지(都邑地)> : 서울을. 개성(開城)에. ‘를’은 처소격 조가 ‘에’의 뜻.

▶<필마(匹馬)> : 한 필의 말, 또는 말 탄 혼자 몸. ‘필(匹)’에는 ‘필부(匹夫)’, 곧 벼슬이 없고 신분이 낮은 남자란 뜻이 아울러 들어있다. 유의어는 단기(單騎).

▶<돌아드니> : 돌아와 들어가 보니.

▶<의구(依舊)하되> : 예와 다름 없으되.

▶<인걸(人傑)> : 뛰어난 인재(人才). 빼어난 인재. 여기서는 고려 충신(忠臣)들.

▶<어즈버> : '아‘와 같은 감탄사. 시조의 종장 첫 구에 흔히 쓰였음.

▶<태평연월(太平烟月)> : 태평하고 안락한 세월. 여기서는 고려가 융성하던 때. 유의어는 강구연월(康衢煙月).

▶<꿈이런가> : 꿈이던가. 꿈이었던가. 꿈인가. ‘러’는 회상 보조어간. ‘더〉러’로 ㄷ의 유음화.

 

◈흥망이 유수하니---원천석

[원문]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 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노라.

 

◈선인교 나린 물이---정도전

[원문]

선인교(仙人橋) 내린 물이 자하동(紫霞洞)에 흐르르니,

반천년(半千年) 왕업(王業)이 물 소래뿐이로다.

아희야, 고국흥망(故國興亡)을 물어 무삼하리오.

현대어 풀이

선인교에서 흘러내린 물이 자하동으로 흐르니,

오백년 동안의 고려 왕국의 업적이 남은 것이라고는 적막한 저 물소리뿐이구나.

아이야, 지나간 옛 나라의 흥하고 망함을 물어서 무엇하랴.

어휘풀이

<선인교(仙人橋)> : 개성 자하동에 있는 다리.

<나린> : 내린.

<자하동(紫霞洞)> : 개성 송악산 기슭에 있는 경치 좋기로 이름난 마을.

<왕업(王業)> : 고려 왕조.

<고국흥망(故國興亡)> : 고려의 흥하고 망한 것.

<무삼하리오> : 무엇하겠는가.

 

◈언충신 행독경하고---성석린(成石璘)

[원문]

언충신(言忠信) 행독경(行篤敬)하고 그른 일 아니하면

내 몸에 해() 없고 남 아니 무이나니

()하고 여력(餘力)이 있거든 학문(學文)조차 하리라.

현대어 풀이

하는 말이 충성스럽고 믿음성이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경하며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면,

내 몸에 해가 없고 남을 미워하지 않게 되니,

이 모든 것을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거든 학문을 배우리라.

어구 풀이

<언충신(言忠信)> : 말을 함에 있어 정성스럽고 믿음성 있게 함

<행독경(行篤敬)> : 행함에 있어 돈독하고 공경스러움

<언충신(言忠信) 행독경(行篤敬)> : 언행이 성실함. 말이 충성되고 진실하며, 행실이 돈독하고 조심스러움.

<그른 일> : 잘못된 일.

<무이나니> : 미워하니. ‘무이’는 ‘뮈’.

<여력(餘力)> : 남은 힘

<조차 하리라> : 까지도 하리라.

<학문>(學文)> : 글을 배움

<행(行)하고 여력)餘力)이 잇거든 학문(學文)조차 하리라.> : 도리를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우리라.

 

◈대초 볼 붉은 골에---황희

[원문]

대초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뜯들으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익자 체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전문풀이

대추가 빨갛게 익은 골짜기에 밤까지 뚝뚝 떨어지며,

벼를 벤 그루에는 게까지 어찌 나와 다니는가?

마침 햅쌀로 빚은 술이 익었는데, 체 장수가 체를 팔고 돌아가니 먹지 않고 어쩔 것인가?

어휘풀이

<대초> : 대추

<골> : 골짜기

<뜯들으며> : 떨어지며

<게> : 게(蟹).

<나리는고> : 내리는가?. 기어다니는가?

<어이리> : 어찌하겠는가?

<술 익자 체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 햅쌀로 빚은 술이 익었는데, 마침 체 장수가 체를 팔고 돌아가니, 그 체로 새 술을 걸러서 마시지 않고 어쩌랴? '술 닉쟈 체 장사 도라가니'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뜻으로, 속담 '장수 나자 용마(龍馬) 난다.'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강호사시가---맹사성(孟思誠;13601438)

(1)

江湖(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이 절로 난다.

탁료 계변에 錦鱗魚(금린어)ㅣ 안쥐로다.

이 몸이 閒暇(한가)해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2)

江湖(강호)에 녀름이 드니 草堂(초당)에 일이 업다.

有信(유신)江波(강파)난 보내나니 바람이로다.

이 몸이 서날해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3)

江湖(강호)에 가알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잇다.

小艇(소정)에 그믈 시러 흘니 띄여 더져 두고.

이 몸이 消日(소일)해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4)

江湖(강호)에 겨월이 드니 눈 기픠 자히 남다.

삿갓 빗기 쓰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해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시어 풀이

<江湖(강호)> : 강과 호수. 벼슬을 물러난 한객(閑客)이 거처하는 시골. 자연.

<탁료계변(濁醪溪邊)> :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

<금린어(錦鱗魚)> : 싱싱한 물고기. 아름다운 물고기.

<한가(閒暇)해옴도> : 한가함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녀름> : 여름(夏). '여름'은 '果'의 뜻.

<草堂(초당)> : 억새나 짚으로 지붕을 이은 조그마한 별채. 은사들이 즐겨 지내던 별채. 은사들이 즐겨 지내던 별채.

<유신(有信)한> : 신의가 있는.

<강파(江波)> : 강의 물결

<보내나니> : 보내는 것이.

<서날해옴도> : 서늘해짐도. 시원함도.

<살져 잇다> : 살이 쪄 있다. 살이 올라 있다.

<소정(小挺)> : 작은 배

<흘니> : 흐르게.

<더져 두고> : 내바려 두고.

<소일(消日)해옴도> : 할 일 없이 날을 보내는 것도

<겨월> : 겨울

<기픠> : 깊이가.

<자히> : 한 자가.

<남다> : 넘는다. 더 된다. 남다(餘)>넘다(모음 교체)

<빗기> : 비스듬히

<누역> : 도롱이. 띠풀 등으로 엮어 만든 비옷.

<칩지 아니해옴도> : 춥지 아니함도.

【전문풀이

(1(春詞))

강호에 봄이 찾아드니 참을 수 없는 흥겨움이 솟구친다.

탁주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 제격이구나.

다 늙은 이 몸이 이렇듯 한가롭게 지냄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2(夏詞))

강호에 여름이 닥치니 초당에 있는 늙은 몸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신의 있는 강 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강바람이다.

이 몸이 이렇듯 서늘하게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3(秋詞))

강호에 가을이 찾아드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랐다.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서, 물결 따라 흘러가게 배를 띄워 버려 두니.

다 늙은 이 몸이 이렇듯 고기잡이로 세월을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4(冬詞))

강호에 겨울이 닥치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입어 덧옷을 삼으니.

늙은 이 몸이 이렇듯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내해 좋다 하고--- 변계량(卞季良)

[원문]

내해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고 의 아니면 좇지 마라.

우리는 천성을 지키어 삼긴 대로 하리라.

어구 풀이

<내해> : 나에게. ‘해’는 여격조사(與格助詞).

<의(義) 아녀든> : 옳은 일이 아니거든.

<삼긴 대로 하리라> : 생긴 대로 하리라. 타고 난 착한 성품 그대로 하리라.

현대어 풀이

내가 하기 좋다고 하여 남한테 싫은 일을 하지 말 것이며,

또 남이 한다고 해도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거든 따라 하지 말라.

우리는 타고난 성품을 따라서(지키어) 저마다 생긴 그대로 지내리라.

 

◈추강에 밤이 드니---월산대군

[원문]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오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어휘 풀이

<추강(秋江)> : 가을철의 강.

<드니> : 되니. 으슥하여지니. 들(어간)+니(설명형 어미). ‘ㄹ’불규칙.

<차노매라> : 차구나. 차(어간)+노매라(감탄형 어미)

<드리오니> : 물 속에 드리우니

<무노매라> : 무는구나. 물(어간)+노매라(감탄형 어미), ‘ㄹ’불규칙.

<무심(無心)한> “ 욕심이 없는. 사심(邪心)이 없는.

<저어> : 노를 저어.

<오노라> : 오는구나. 오(어간)+노라(감탄형 어미).

전문 풀이

가을철 강물에 밤이 깊어가니 물결이 차가워지는구나.

물이 찬 때문인지 낚시를 드리워도 고기가 물지 않는구나.

무심한 달빛만 가득히 싣고 빈 배로 돌아온다.

 

◈간밤에 부던 바람---유응부

[원문]

간밤에 부던 바람 강호에 부돗던가.

만강 주자들은 어이 굴러 지내언고.

산중에 들은 지 오라니 기별 몰라 하노라.

어휘 풀이

<부돗던가> : 불었던가?

<만강주자(滿江舟子)> : 온 강에 가득한 배 사람.

 

◈이몸이 죽어 가서---성삼문

[원문]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어구 풀이

<봉래산> : 동해 가운데 있으며,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하는 산

<제일봉> : 가장 높은 봉우리

<낙락장송> : 가지가 축축 늘어지고 키가 높은 소나무

<백설이 만건곤할제> : 흰 눈이 천지에 가득할 때

<독야> : 나 홀로.

현대어 풀이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 것인고 하니,

봉래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우뚝 솟은 소나무가 되었다가

흰 눈이 온 세상에 가득 찼을 때 홀로 푸르고 푸르리라.

 

◈방안에 혔는 촛불---이개

[원문]

방안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다.

우리도 천리에 임 이별하고 속타는 듯하여라.

어휘풀이

<혔는> : 켜 있는.

<눌과> : 누구와

<모르는다> : 모르느냐?

전문 풀이

방 안에 켜 놓은 저 촛불은 누구와 이별하였기에,

겉으로는 눈물 흘리며 속이 타는 것을 모르는가?

저 촛불도 나와 같아서 눈물만 흘릴 뿐,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구나.

 

◈가마귀 눈비 맞아---박팽년

원문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천만리 머나먼 길에 ---왕방연

시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어구 풀이

<고운 님> : 사랑하는 임. 여기서는 단종(端宗)을 가리킴.

<여의옵고> : 이별하옵고.

<내 안> : 내 마음.

<예놋다> : 가도다. 가는구나. ‘놋다’는 힘줌을 나타내는 ‘도다’의 옛말.

현대어 풀이

천만리 머나먼 길에서 떠나와 고운 님(단종)을 이별하고,

내 마음을 매어 둘 곳이 없어 혼자 흘러가는 냇물가에 앉아 있으니,

! 저 시냇물도 내 마음속 같아서 울면서 흘러가기만 하는구나.

 

◈삿갓에 도롱이 입고---김굉필(金宏弼)

시조

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중(細雨中)에 호미 메고

산전(山田)을 흩매다가 녹음(綠陰)에 누었으니

목동(牧童)이 우양(牛羊)을 몰아 잠든 나를 깨우도다.

어구 풀이

<도롱이> : 풀을 엮어서 만든 비옷. 한자로는 녹사의(綠蓑衣)라고 한다.

<세우중(細雨中)> : 가느다란 비 속, 가랑비 속.

<산전(山田)> : 산 속의 밭

<흩매다가> : 흩어 매다가.

<우양(牛羊)> : 소와 염소

현대어 풀이

삿갓 쓰고 도롱이 입은 채 가는 비 가운데 호미 메고

산 속 밭을 매다가 나무 그늘에 누웠는데

목동이 소와 양을 몰아 어느새 잠든 나를 깨우는구나.

 

◈<굽어는 천심 녹수>---이현보

시조

굽어는 천심녹수(千尋綠水) 돌아보니 만첩청산(萬疊 靑山),

십장홍진(十丈紅塵)이 언매나 가렸는고.

강호(江湖)에 월백(月白)하거든 더욱 무심하여라.

어구 풀이

<굽어는>: 굽어보면.

<천심 녹수>: 아주 깊고 푸른 물.

<십장홍진>: 열 길이나 솟은 붉은 티끌, 곧 속세를 말함.

<언매나>:얼마나

 

◈젼 나귀 모노라니---안정(安挺)

시조

젼 나귀 모노라니 서산(西山)에 일모(日暮)로다.

산로(山路) ()하거든 간수(澗水)ㅣ나 잔잔(潺潺)커나,

풍편(風便)에 문견폐(聞犬吠)하니 다 왔는가 하노라.

어구 풀이

<젼나귀> : 발을 저는 나귀. 다리를 저는 나귀.

<모노라니> : 몰고 가노라니.

<일모(日暮)> : 날이 저물음

<간수(澗水)> :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

<풍편(風便)에 문견폐(聞犬吠)> : 바람 편에 개 짖는 소리를 들음.

현대어 풀이

발을 저는 나귀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구나.

산길이 이토록 험하니 골짜기에 흐르는 물인들 잔잔하겠는가.

바람결에 개 짖는 소리를 들으니 (마을에) 다 왔는가 보다.

 

◈청우를 빗기 타고 --- 안정(安挺)

시조

청우(靑牛)를 빗기 타고 녹수(綠水)를 흘러 건너

천태산(天台山) 깊은 골에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가니

만학(萬壑)에 백운(白雲)이 잦았으니 갈 길 몰라 하노라.

어구 풀이

<청우(靑牛)> : 노자(老子)가 서유(西遊)할 때 탄 소.

<빗기> : 비껴. 비뚜로. 가로.

<천태산(天台山)> : 중국 절강성(浙江省) 천태현(天台縣)에 있는 산. 선녀(仙女)가 살았다고 전하는 산.

<골> : 골짜기

<불로초(不老草)> :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약초.

<만학(萬壑)> : 많은 골짜기

<잦았으니> : 자욱하니.

현대어 풀이

소를 비스듬히 타고 물을 건너서

신선들이 산다는 천태산 깊은 골짜기에 불로초를 캐러 가니,

골짜기마다 흰 구름이 가득하여 갈 길을 모르겠구나.

 

◈주렴을 반만 열고---홍춘경(洪春卿)

시조

주렴(珠簾)을 반()만 열고 청강(淸江)을 굽어보니,

십리파광(十里波光)이 공장천일생(共長天一色)이로다.

물 위에 양양백구(兩兩白鷗)는 오락가락 하더라.

어구 풀이

<주렴(珠簾)> : 발.

<십리파광(十里波光)> : 길게 흘러내리는 물 빛

<공장천일생(共長天一色)> : 물과 하늘 빛이 푸른 한 색.

<양양백구(兩兩白鷗)> : 쌍쌍이 나는 백구. 쌍쌍이 나는 흰 갈매기.

현대어 풀이

다락에 앉아 발을 반만 제끼고 맑은 강물을 내려다보니,

길게 흘러내리는 물빛은 하늘빛과 똑 같도다.

물위를 쌍쌍이 나는 갈매기는 한가롭게 이리저리 날아다니더라.

 

들은 말 즉시 잊고---송인(宋寅)

시조

들은 말 즉시(卽時) 잊고 본 일도 못 본 듯이

내 인사(人事) 이러함에 남의 시비(是非) 모르노라.

다만지 손이 성하니 잔() 잡기만 하노라.

어구 풀이

<내 인사(人事)> : 나의 하는 행동.

<다만지> : 다만.

<손이 성하니> : 손님들이 많으니.

<()잡기만> : 술잔을 잡기만. 즉 술 마시기만.

현대어 풀이

들은 말이 있거들랑 즉시 잊어버리고, 본일 도 못 본 듯이,

내 행동이 이러하매 남의 시비하는 소리를 듣지 않도다.

다만, 내 손이 성하니 술잔을 잡아 항상 마시기만 하리라.

한역시

耳朶有聞旋旋忘

眼兒看做不看樣

右堪執盞左持蟄

兩手幸吾無病恙

- <해동소악부(海東小樂府)> -

 

마음이 어린 후이니---서경덕(徐敬德)

시조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요마는

지는 잎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어휘풀이

<어린> : 어리석은(愚). 오늘날에는 어의전성(語義轉成)이 되어 ‘나이가 어린(幼)의 뜻임.

<어리다> : 고어에서는 ‘어리석다(愚)’의 뜻으로 씌었으나, 어의전성이 되어 현재는 ‘어리다(幼)’의 뜻으로 쓰인다.

<만중운산(萬重雲山)> : 구름이 겹겹이 쌓인 산. 즉 함하고 깊은 산. 여기서는 작가가 거처한 성거산(聖居山)을 가리킴.

<행여> : 혹시나

<긘가> : 그이인가. 그(대명사)+이(서솔격 조사)+ㄴ가(의문형 어미)

현대어 풀이

마음이 어리석고 보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구름이 겹겹이 싸인 이 깊은 산속에 어느 임이 찾아오랴마는,

떨어지는 잎,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면, 혹시나 임이 오는 소리가 한다.

 

◈삼동에 베옷 닙고---조식(曹植)

시조

삼동(三冬)에 베옷 닙고 암혈(巖穴)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西山)에 해 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어휘풀이

<삼동(三冬)> : 겨울 석 달(시월, 동짓달, 섣달). 한겨울. 엄동(嚴冬).

<베옷> : 삼베로 만든 옷. 유의어는 포의(布衣), 반의어는 금의(錦衣). 포의(布衣)는 벼슬하지 않은 선비를 비유하고(布衣之士), 금의(錦衣)는 출세한 사람을 말할 때 쓴다. 금의환향(錦衣還鄕).

<암혈(巖穴)> : 바위 굴. 바위 구멍의 궁색한 거처. 여기서는 벼슬을 하지 않고 세상을 등진 은사(隱士)가 사는 깊은 산골, 즉 두류산(頭流山) 덕산동(德山洞)을 말함.

<볕뉘> : 햇살. 여기서는 임금의 은총을 뜻함. ‘뉘’는 대단하지 않은 것, 작은 것 따위를 뜻하는 접미사.

<해 지다 하니> : 해가 진다 하니. 중종(中宗)의 승하(昇遐)를 뜻함.

전문풀이

춥고도 추운 삼동(三冬)에 베옷을 입고, 바위틈의 작은 거처에서 눈비를 맞아가며

구름에 덮인 조금의 햇볕의 혜택도 받은 일이 없건만,

서산에 해가 진다하니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구나.

 

◈두류산 양단수를---조식(曺植)

시조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어휘 풀이

<두류산> : 지리산의 이칭(異稱). 지리(智理) · 두류(頭流)등으로도 쓰였다.

<양단수(兩端水)> : 물 이름. 쌍계사를 중심으로 두 갈래로 흐르던 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을 말한다.

<예> : 옛날

<산영(山影)조차> : 산 그림자까지

<도화(桃花)> : 복사꽃.

<잠겼세라> : 잠겨 있구나.

<무릉(武陵)> :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준말.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향(理想鄕). 선경(仙境). 별천지(別天地).

<도화(桃花), 무릉(武陵)> : 별천지. 선경(仙境)을 이름.

<옌가> : 여긴가.

현대어 풀이

지리산의 두 갈래 물을 예전에 듣고 이제 와서 직접 보니

복숭아꽃 뜬 맑은 물에 산 그림자조차 잠겨 있구나.

아희야, 무릉도원이 어딘고. 나는 여기인가 하노라.

 

자네 집에 술 익거든---김육(金堉)

시조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

백년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어구 풀이

<부르시소> : 부르시오,

<피어든> : 피거든.

<청해옴세> : 청하겠네.

<백년덧> : 백 년 동안. 백 년쯤. ‘덧’은 사이.

현대어 풀이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나를 부르시게.

내 집의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겠네.

한평생 시름 잊을 일을 의논하고자 하노라.

 

십년을 경영하여---송순(宋純)

시조

십년(十年)을 경영(經營)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淸風) 한 간 맡겨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어휘풀이

<경영(經營) : 일을 벼르고 꾸밈. 계획하고 애써서.

<초려삼간(草廬三間)> : 아주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집. 초가집 세 간. 세 간 밖에 안 되는 초가. 초가삼간(草家三間), 삼간초옥(三間草屋)과 같은 말. ‘초려’ 또는 ‘초가’는 은자(隱者)가 사는 집.

<한 간> : 한 간(間).

<청풍(淸風) : 맑은 바람.

<들일 데> : 들여놓을 곳.

전문 풀이

십 년을 애써서 조그만 오두막집을 지어내니,

내가 한 간 차지하고, 달이 한 간 차지하고, 맑은 바람에 한 간 맡겨두고,

강과 산은 들여놓을 곳이 없으니, 밖에 둘러 있게 하고 보겠다.

 

꽃이 진다 하고---송순(宋純)

시조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슳허 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슴하리요.

어구 풀이

<희짓는> : 휘젓는. 희롱하는.

<새와> : 시기하여. 시샘하여.

현대어 풀이

새들아, 꽃이 져서 앉을 자리가 없다하여 너무 슬퍼 말라.

모진 바람이 꽃을 떨어뜨리는 것이니 꽃에 무슨 죄가 있으랴.

떠나간다고 휘젓는 봄을 시기하여 무엇하겠는가.

 

◈저 건너 일편석이---조광조(趙光祖)

시조

져 건너 일편석(一片石)이 강태공(姜太公)의 조대(釣臺)로다.

문왕(文王)은 어듸 가고 뷘 대()만 남았는고.

석양(夕陽)에 물 차는 제비만 오락가락 하더라.

어구 풀이

<일편석(一片石)> : 한 조각 돌

<강태공의 조대(釣臺)> : 여상(呂尙)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 하던 곳.

<문왕(文王)> : 주(周) 나라 무왕의 아버지. 위수에서 강태공을 만나 스승으로 삼은 사람.

<뷘> : 빈.

현대어 풀이

저 건너편에 있는 한 조각의 돌은 그 옛날 강태공이 낚시질하던 곳이로다.

강태공을 스승으로 삼아서 주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는 기반을 닦은 문왕은 어디 가고 빈자리만 남았는고.

저녁노을 속에 제비만이 물을 차며 왔다 갔다 하는구나.

 

태산이 높다 하되---양사언(楊士彦)

시조

태산(太山)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어구 풀이

<태산(太山)> : 중국 산동성에 있는 명산. 중국에서는 오악 중의 으뜸인 동악이다. 예로부터 왕자가 천명을 받아 성을 바꾸면 천하를 바로잡은 다음, 반드시 그 사실을 태산 산신에게 아뢰기 때문에 이 산을 높이어 대종(岱宗)이라고도 일컫는다. 높이는 불과 1,450미터이다.

<뫼이로다> : 산이로다.

현대어 풀이

태산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늘 아래에 있는 산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들은 올라가 보지도 않고, 산만 높다고들 하더라.

 

말 없는 청산이요 태 없는---성혼(成渾)

시조

말 없는 청산(靑山)이요, () 없는 유수(流水)로다.

값 없는 청풍(淸風)이요, 임자 없는 명월(明月)이라

이 중에 병() 없는 이 몸이 분별(分別) 없이 늙으리라.

현대어 풀이

말이 없는 푸른 산이요, 모양이 없는 물이로다.

값이 없이 불어주는 맑은 바람이요, 주인 없는 밝은 달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건강한 이 몸이 근심 걱정 없이 살겠다.

 

나온댜 금일이야---김구(金絿)

시조

나온댜 今日이야 즐거온댜 오늘이야

古往今來없은 今日이여

每日이 오늘 같으면 무삼 성이 가새리

어구 풀이

*나온댜: ‘낫다(優)에 ~것이여, ~구나’의 뜻을 지닌 어미(語尾)이다. ‘댜’가 붙은 옛말로서, ‘낫구나!, 좋구나!’등의 뜻이다.

*즐거온댜: ‘즐겁구나!’의 옛말.

*고왕금래(古往今來): 지나간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類)없는: ‘다시 없는’

*성이 가새리: 성가시랴? 걱정이 되어 속이 상하겠는가?.

*무삼: 무엇, 무슨의 옛말.

현대어 풀이

좋구나. 오늘이여! 즐겁구나 오늘이여!

옛날에도 오늘에도 다시 없는 오늘이여!

날마다 오늘만 같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다고 속을 썩히겠는가?

 

청산리 벽계수야---황진이(黃眞伊)

시조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라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 <청구영언> <해동가요> -

어휘풀이

<청산리> : 푸른 산 속.

<벽계수야> : 맑은 시냇물아. 조선 종실(宗室)인 벽계수(碧溪守)라는 사람의 이름을 걸어서 중의적(重義的)으로 표현한 말.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 : 푸른 산속을 흐르는 골짜기 물.

<수이> : 빨리. ‘쉽다’의 형용사에서 부사로 전성. 쉽(어간)+이(부사화 접미사) → 쉬비(연철식 표기) → 쉬이(‘ㅂ’ 탈락) → 수이(동음 생략) → 쉬(간음화 현상)

<일도창해(一到滄海)> : 한번 넓고 튼 바다에 이름. 즉, 인생의 종말을 비유한 말.

<명월(明月)> : 밝은 달. 황진이ㅡ이 기명(妓名)으로서의 두 가지 뜻을 겸하고 있음 (중의법).

<만공산(滿空山)> : 빈 산에 가득 참. ‘공산(空山)’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임.

<어떠리> : 좋지 않으랴. 어떻겠는가? (설의법).

현대어 풀이

청산 속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빨리 흘러간다고 자랑 마라.

한 번 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산에 가득 차 있는, 이 좋은 밤에 나와 같이 쉬어감이 어떠냐?

 

청산은 내 뜻이오---황진이

시조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난 임의 정이

녹수(綠水) 흘너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니져 우러 예어 가난고

현대어 풀이

푸른 산은 나의 뜻이요, 푸른 시냇물은 님의 정이니

푸른 시냇물은 흘러흘러 가지만 푸른 산은 (녹수처럼) 변하겠는가

푸른 시냇물도 푸른 산을 못 잊어(잊지 못하여) 울면서 흘러가는구나.

 

산은 옛 산이로되--- 황진이(黃眞伊)

시조

()은 녯 산이로되 물은 녯 물 안이로다.

주야(晝夜)에 흘은이 녯 물리 이실쏜야

인걸(人傑)도 물과 갓도다 가고 안이 오노매라.

어구 풀이

<녯> : 옛

<주야(晝夜)> : 밤낮, 늘.

<흘은이> : 흐르니

<안이로다> : 아니로다.

<녯 물리> : 옛 물이

<이실쏜야> : 있을 것인가?

<인걸(人傑)> : 뛰어난 인물.

<갓도다> : 같도다.

<안이> : 아니.

<오노매라> : 오는구나.

현대어 풀이

산은 예전의 그 산이지마는 물은 예전의 그 물이 아니다.

밤낮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옛날 물이 그대로 있을 리 만무하다.

뛰어난 사람도 물과 같아서 한 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구나!

 

황진이의 다른 시조

어저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더냐.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타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임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요

 

우부도 알며 하거니---이황(李滉)

시조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聖人)도 못다 하시니 긔 아니 어려온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줄을 몰래라.

어구 풀이

<우부(愚夫)> : 어리석은 사람

<알며 하거니> : 도를 알면서 하는 것이니.

<긔> : 그것이

<몰래라> : 모르겠도다.

현대어 풀이

어리석은 자도 알아서 행하니 학문의 길이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성인도 다하지 못하는 법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는 줄을 모르겠다.

 

심여장강 유수청이요---신광한(申光漢)

시조

심여장강유수청(心如長江流水淸)이요 신사부운무시비(身似浮雲無是非).

이 몸이 한가(閑暇)하니, 따르는 이 백구(白鷗)이로다.

어즈버, 세상명리설(世上名利說)이 귀에 올까 하노라.

어구 풀이

<심여장강유수청(心如長江流水淸)> : 마음은 긴 강 흐르는 물처럼 맑음.

<신사부운무시비(身似浮雲無是非)> : 몸은 뜬구름처럼 시비가 없이 자유스러움.

<어즈버> : 감탄사.

<세상명리설(世上名利說)> :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 대한 말.

현대어 풀이

마음은 긴 강 흐르는 물처럼 맑고, 몸은 뜬구름같이 세 살 시비에 관계없이 자유롭다.

이 몸이 이처럼 한가하니, 따를는 것은 오직 갈매기 떼뿐이로구나.

, 이런 나에게 속세의 명예와 이익에 관한 얘기가 돌려올까 두렵구나.

 

이리도 태평성대---성수침(成守琛)

시조

이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 저리도 성대태평(聖代太平)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놀고 가려 하노라.

어구 풀이

<이리도> : 여기도

<저리도> : 저기도

<요지일월(堯之日月)> : 요임금이 다스리던 세월

<순지건곤(舜之乾坤)> : 순임금이 다스리던 세상.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 : 요일월(堯日月) 순건곤(舜乾坤) 또는 요천순일(堯天舜日)과 같은 말. 곧 태평한 요순시대를 말함.

현대어 풀이

여기도 태평성대, 저기도 태평성대

온 세상이 모두 태평성대로다.

우리도 이 태평성대에 살려고 하노라.

 

태평 천지간에---양응정(梁應鼎)

시조

태평 천지간(太平天地間)에 단표(簞瓢)를 둘러메고

두 소매 느리혀고 우즑우즑 하는 뜻은

인세(人世)에 걸린 일 없으니, 그를 좋아하노라.

어구 풀이

<단표(簞瓢)> : 도시락과 표주박.

<느리혀고> : 느직하게 끌고. 늘어뜨려 끌고. 구속적이 아닌 차림새.

<우즑우즑> : 우줄우줄. 흥겹게 걷는 모양.

<인세(人世)> : 인간세상.

현대어 풀이

태평한 세상에 한 개의 도시락과 표주박을 어깨에 둘러메고,

두 옷소매를 늘어지게 질질 끌면서 우줄우줄 춤추듯이 다니는 것은

세상에 걸릴 것이 없으니 그것이 좋아 그러는 것이다.

 

전원에 봄이 오니---성운(成運)

시조

전원에 봄이 오니 이 몸이 일이 하다.

꽃나무 뉘 옮기며 약밭은 언제 갈리.

아해야, 대 베어 오너라 삿갓 먼저 결으리라.

어구 풀이

<하다> : 많다.

<꼿남근> : 꽃나무는

<뉘> : 누가

<약밭> : 약초를 심어 놓은 밭

<갈리> : 갈겠는가.

<대 뷔여> : 대나무를 베어

<몬져> : 먼저

<결으리라> : 엮어 짜리라. 기본형은 ‘겯다. ’

현대어 풀이

농촌에 봄이 오니, 이 몸이 할 일이 많구나.

꽃나무는 누가 옮겨 심을 것이며, 약초를 심을 밭은 언제 갈 것인가?

아이야, 대나무를 베어 오너라. 삿갓부터 먼저 엮어 짜야겠구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이이(李珥)

시조

(서사)

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을 사람이 모르더니

주모복거(誅茅卜居)하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즈버 무이(武夷)를 상상하고 학주자(學朱子)를 하리라.

(1)

일곡은 어디메오 관암(冠巖)에 해 비친다.

평무(平蕪)에 내 거두니 원산(遠山)이 그림이라.

송간(松間)에 녹준을 높고 벗 오는 양 보노라.

(2)

이곡(二曲)은 어디메오 화암(花巖)에 춘만(春晩)커다.

벽파(碧波)에 꽃을 띄워 야외(野外)로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勝地)를 모르니 알게 한들 어떠하리.

(3)

삼곡(三曲)은 어디메오 취병(翠屛)에 잎 퍼졌다.

녹수(綠樹)에 춘조(春鳥)는 하상기음(下上其音)하는 적에

반송(盤松)이 수청풍(受淸風)하니 여름경()이 없세라.

(4)

사곡(四曲)은 어디메오 송애(松崖)에 해 넘는다.

담심암영(潭心巖影)은 온갖 빛이 잠겼세라.

임천(林泉)이 깊도록 좋으니 흥을 겨워 하노라.

(5)

오곡(五曲)은 어디메오 은병(隱屛)이 보기 좋으이.

수변정사(水邊精舍)는 소쇄(蕭灑)함도 가이 없다.

이 중()에 강학(講學)도 하려니와 영월음풍(詠月吟風) 하오리라.

(6)

육곡(六曲)은 어디메오 조협(釣峽)에 물이 넓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즐기는고.

황혼에 낚대를 메고 대월귀(帶月歸)를 하노라.

(7)

칠곡(七曲)은 어디메오 풍암(楓巖)에 추색(秋色)좋다.

청상(淸霜)이 엷게 치니 절벽이 금수(錦繡)ㅣ로다.

한암(寒巖)에 혼자 앉아 집을 잊고 있노라.

(8)

팔곡(八曲)은 어디메오 금탄(琴灘)에 달이 밝다.

옥진금휘(玉軫金徽)로 수삼곡(數三曲)을 노래하니

고조(古調)를 알 이 없으니 혼자 즐겨 하노라.

(9)

구곡(九曲)은 어디메오 문산(文山)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눈 속에 묻쳤세라.

유인(遊人)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어휘 풀이

(서사)

<고산구곡담(高山九曲潭)> : 중국 송나라 때, 주자학의 시조인 주희가 복건 성무이산에 있는 구곡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구곡가를 본받아 고산의 고곡담을 가려낸 것이다. 담(潭)은 깊은 못 또는 물이 깊은 곳을 뜻한다.

<주모복거(誅茅卜居)> : 띠풀을 베고 집터를 가려잡고 살아가니

<벗님네> : 친구분들. 만년에 해주 고산에 은퇴, 은병정사를 짓고 지낸 것으로 보아 정사(精舍)의 여러 후학(後學)들을 가리킨다고 봄

<어즈버> : '아!' 하는 감탄사

<무이(武夷)> : 중국 복건성에 있는 산. 주자가 이 산에 정사(精舍)를 짓고 학문을 닦음. 구곡계(九曲溪)가 있어 경치가 좋음.

<무이를 상상하고> : 주자가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던 무이산을 생각하고. 이곳에서 그는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학주자(學朱子)> : 주자가 주장한 성리학의 연구

(제1곡)

<어디메오> : 어디인가? '어느 곳이요?'의 옛 말투

<관암(冠巖)> : 갓머리처럼 우뚝 솟은 바위

<평무(平蕪)> : 잡초가 우거진 들판

<내> : 안개.

<내 거두니> : 연기(또는 안개)가 걷히니

<원산(遠山)> : 멀리 보이는 산

<송간(松間)> : 소나무 숲 사이

<녹준> : 푸른 술통. 좋은 술동이. 즉 맛있는 술을 뜻한다.

<벗 오는 양> : 벗들이 오는 모습

(제2곡)

<화암(花巖)> : 꽃이 피어 있는 바위

<춘만(春晩)> : 봄이 저물어 감.

<커다> : 하도다.

<춘만(春晩)커다> : '∼커다'는 '하거다'의 준말. '춘만(春晩)하다'의 강조된 표현. 봄이 늦었구나! 늦봄이로구나!

<벽파(碧波)> : 푸른 물결

<야외(野外)> : 들판

<승지(勝地)> : 명승지(名勝地)의 준말로서,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

(제3곡)

<어디메오> : 어디인가.

<취병(翠屛)> : 꽃나무의 가지를 틀어 만든 병풍. 여기서는 푸른빛 병풍같이 나무나 풀로 덮인 절벽

<녹수(綠樹)> : 푸른 나무

<춘조(春鳥)> : 봄새. 꾀꼬리ㆍ종달새 따위

<하상기음(下上其音)> : 소리를 높였다 낮추었다 하며 노래를 부름. 아래 위서 우짖음.

<적에> : 때에

<반송(盤松)> : 키가 작고 가지가 가로 퍼진 소나무

<수청풍(受淸風)> : 맑은 바람을 받음.

<여름경(景)> : 여름의 경치. 여름다운 풍치

<없세라> : '없구나'의 옛 말씨

(제4곡)

<송애(松崖)> : 소나무가 있는 벼랑. 소나무가 보이는 물가의 낭떠러지

<담심(潭心)> : 못처럼 물이 고인 한가운데

<암영(巖影)> : 물에 비친 바위 그림자

<담심암영(潭心巖影)> : 못 가운데 비친 바위의 그림자. 못처럼 물이 고인 가운데 비친 바위 그림자.

<잠겼세라> : '잠겼구나!'의 옛 말투

<임천(林泉)> : 원뜻은 수풀 속의 샘물이나, 여기서는 은거하는 선비의 사는 곳, 즉 벼슬을 물러나 산골에서 살고 있는 율곡선생의 거처를 가리킨다.

<깊도록> : 깊을수록.

<겨워 하노라> : 이기지 못하는 듯하구나!

(제5곡)

<은병(隱屛)> : 굽이진 곳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 절벽. 으슥한 병풍처럼 되어 있는 낭떠러지(절벽).

<좋으이> : 좋도다.

<수변(水邊)> : 물가

<정사(精舍)> : 학사서당(學舍書堂). 글을 가르치는 집. 독서하는 곳.

<수변정사(水邊精舍)> : 물가의 정사(精舍). 정사는 제자를 가르치는 집.

<소쇄(蕭灑)> : 맑고 깨끗하여 속되지 않음

<가이없다> : 가없다. 그지없다.

<강학(講學)> : 학문 강의. 글 가르치기.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함.

<영월음풍(詠月吟風)> : 시를 짓고 읊으며 흥겹게 노는 것

<하오리라> : '하리라'의 옛 말투

(제6곡)

<조협(釣峽)> :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

<뉘야> : 누구가.

<대월귀(帶月歸)> : 달빛을 띠고 돌아감

(제7곡)

<어디메오> : 어디인고.

<풍암(楓巖)> : 단풍으로 덮인 바위

<추색(秋色)> : 가을빛

<청상(淸霜)> : 깨끗한 서리

<금수(錦繡)> :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것

<한암(寒巖)> : 차가운 바위. 바람맞이에 있는 맨바위를 말한 듯하다

(제8곡)

<금탄(琴灘)> : 거문고나 가야금을 타 듯이, 물 흐르는 소리가 흥겹게 들리는 여울목

<옥진금휘(玉軫金徽)>: 진(軫)은 거문고·가야금의 줄을 죄었다 늦쳤다 하는 자그마한 말뚝 못. 휘(徽)는 줄 고르는 자리를 보이기 위하여 거문고 앞쪽에 원형으로 박아 놓은 13개의 자개 조각. 그러므로 옥진금휘는 옥으로 만든 진과 금박으로 박은 휘, 즉 아주 값지고 좋은 거문고와도 같다는 뜻에서 금탄을 가리킨다.

<수삼곡(數三曲)> : 서너 곡조

<고조(古調)> : 옛 곡조

<알 이> : 알 사람

(제9곡)

<문산(文山)> : 문(文)은 글월이란 뜻 외에도 화(華)·미(美)·반(斑)·식(飾)의 뜻이 있으므로, 기암괴석이 뒤섞여 아롱지게 아름다운 곳을 이렇게 일컫는 듯하다.

<세모(歲暮)커다> : 한 해의 마지막 때가 되었다. '∼커다'는 '하거다'의 준말. '세모하다'의 강조된 표현. 섣달이 되었구나! 음력 섣달은 겨울철의 마지막 달이니, '겨울이 깊었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기암괴석(奇巖怪石)> : 생김새가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

<묻혔세라> : 묻혔구나! 묻혀 버렸도다. ‘∼세라’는 감탄 종지형.

<유인(遊人)> : 경치 좋은 곳을 찾는 사람. 유람객.

【현대어풀이】

(서사)

고산의 아홉 굽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니,

(내가) 풀을 베고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사니(그때야) 벗님네 (모두) 찾아오는구나.

아, 주자가 읊은 무이산에서 후학을 가르친 주자를 생각하고 주자를 배우리라

(제1곡)

첫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갓머리처럼 우뚝 솟은 관암에 아침 해가 비쳤도다.

잡초 우거진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먼 산이 그림 같구나!

소나무 숲 사이에다 술맛 좋은 술통을 놓고 벗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제2곡)

두 번째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화암의 늦봄 경치로다.

푸른 물결에 꽃을 띄워 멀리 들판으로 보내노라.

사람들이 경치 좋은 이곳을 모르니, (꽃을 띄워 보내) 알게 하여 찾아오게 한들 어떠리.

(제3곡)

세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푸른 병풍을 둘러친 듯한 절벽, 취병에 녹음이 짙어졌다.

푸른 나무 사이로 봄새는 예서 제서 우짖는데,

가로 퍼진 소나무가 마주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듯싶으니, 시원스런 풍경이라고는 할 수 없구나!

(제4곡)

네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고? 소나무 보이는 낭떠러지 위로 해가 진다.

깊은 물 한가운데로 바위 그림자는 온갖 빛이 어울린 채 잠겨 있구나!

숲속의 샘물은 깊을수록 좋으니 흥을 이기지 못하겠구나.

(제5곡)

다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으슥한 절벽 같은 은병이 보기도 좋구나.

물가에 지어놓은 정사는 맑고 깨끗하기가 더할 나위 없구나.

이 중에서 글도 가르치고 연구하려니와 시를 짓고 읊으면서 풍류도 즐기리라.

(제6곡)

여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에 물이 많이 고여 있구나.

나와 고기와 어느 쪽이 더 즐기는가?

해가 저물거든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리라.

(제7곡)

일곱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단풍으로 덮인 바위, 풍암에 가을빛이 짙었다.

게다가 깨끗한 서리가 엷게 덮였으니 낭떠러지로 이루는 풍암이 마치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구나!

바람맞이 바위에 홀로 앉아 가을 경치에 취한 나머지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고 있다.

(제8곡)

여덟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악기를 연주하며 흐르는 시냇가에 달이 밝구나.

좋은 거문고로 몇 곡조를 연주했지만,

옛 가락을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 듣고 즐기노라.

(제9곡)

아홉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바위와 돌이 모두 괴이하게 생겨서 아롱져 보이는 문산에 마지막 겨울인 섣달이 찾아왔다.

기이한 바위와 야릇한 모양의 돌들이 그렇게도 보기 좋더니, 이제는 모두 깊은 눈 속에 묻혀 버렸구나!

유람객들이 눈에 덮인 이곳을 찾아보지도 아니하고서, 입으로만 볼 것이 없다고 하니 참 딱한 노릇이로다.

 

쓴 나물 데온 물이---정철(鄭澈)

시조

쓴 나물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맛이 이셰.

초옥(草屋) 좁은 줄이 긔 더욱 내 분()이라.

다만당 님 그린 탓으로 시름 계워하노라.

어휘풀이

<쓴 나물> : 맛이 쓴 나물.

<고기도곤> : 물고기보다

<이셰> : 있으이. 있네.

<초옥(草屋)> : 풀로 이은 집

<긔> : 그것이

<분(分)이라> : 분수이라

<내 분(分)이라.> : 분(分)은 ‘분수’의 준말. 자기한테 알맞은 정도나 한계를 뜻한다.

<다만당> : 다만, 단지. ‘당’은 글잣수를 맞추기 위해 덧붙인 글자.

<시름 계워하노라> : 근심을 못 이겨 한다.

전문풀이

맛이 쓴 나물을 데운 국물이 고기보다도 맛이 있으니,

초가집 좁은 곳에 사는 그것이 도리어 나의 분수에 맞는다.

다만 때때로 임(임금)이 그리운 탓으로 근심 걱정이 많아 이기지 못해 하노라.

 

이 몸 헐어내어---정철(鄭澈)

시조

이 몸 헐어내어 냇물에 띄우고자

이 물이 울어녜어 한강 여울 되다 하면

그제야 님 그린 내 병이 헐할 법도 있나니.

어구 풀이

<허러내여> : 헐어내어.

<낸믈> : 냇물. 시냇물.

<띄오고져> : 뜨게 하고 싶다.

<우러녜여> : 울며 흘러가서

<한강 여흘> : 큰 강(大江) 여울(灘). 또는 한강(漢江)의 여울.

<헐할 법도> : 나을 법도. ‘헐’은 ‘유(癒)’의 뜻.

현대어 풀이

이 몸을 헐어 가지고 냇물에 띄워 보내고 싶구나.

이 물이 소리내며 흘러가서 임이 계시는 서울의 한강의 여울목이 된다면

그 때에 임을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의 병이 조금쯤은 나을 수도 있으리라.

 

() 우헤 심근 느틔---정철(鄭澈)

시조

() 우헤 심근 느틔 몇 해나 자랏는고

씨 지여 난 휘초리 저같이 늙도록에

그제야 또 한잔 잡아 다시 헌수(獻壽)하리다.

어구 풀이

<씨 지여 난>: 씨 뿌려 난

<헌수>: 장수를 비는 뜻으로 술잔을 드림)

 

재 너머 성권롱(成勸農) 집에--정철(鄭澈)

시조

재 너머 성권롱(成勸農) 집에 술 익닷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이야 네 권롱(勸農)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어구 풀이

<재너머> : 고개 너머에

<성권농(成勸農)> : 우계 성혼을 가리킨다. 권농이라 함은 지방의 방(坊)이나 면에 달려 있으면서 농사일을 권장하던 유사(有司)

<익닷 말> : 익었다고 하는 얘기

<언치> : 안장 밑에 까는 털 헝겊

<지즐 타고> : 눌러타고

<정좌수(鄭座首)> : 이 노래의 작자인 정철 자신을 말한다. 좌수는 향소(鄕所)의 우두머리

현대어 풀이

고개 너머 사는 성 권농 집의 술이 익었다는 말을 어제 듣고,

누워 있는 소를 발로 차서 일으켜 언치만 얹어서 눌러 타고,

아이야, 네 권롱 어른 계시냐? 정 좌수 왔다고 여쭈어라.

 

어버이 살아신 제---정철(鄭澈)

시조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살아신 제> : 살아 계실 때

<섬길 일란> : '섬기어야 할 일이라면'의 준말

<지나간 후ㅣ면> : 돌아가신 다음이면

<애닯다> : 마음이 아프다. 슬프다.

현대어 풀이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 섬기는 일을 잘 하여라.

돌아가신 후에 슬퍼한들 무엇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 부모 섬기는 일뿐인가 생각하노라.

한역시- 송달수(宋達秀)

迨我親在堂 謂當善事之

於焉過了後 雖悔亦何追

平生不可復 只此而已哉

 

아버님 날 낳으시고---정철(鄭澈)

시조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곳 아니면 이 몸이 살았으랴.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에다 갚사오리.

어구 풀이

<두 분곳> : 두 분만, 곧 부모님을 가리킴

현대어 풀이

아버님이 날 낳으시고 어머님이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이 몸이 살 수 있었을까?

이 하늘같은 은혜를 어디에다 갚을까?

한역시- 송달수(宋達秀)

父兮曰我生 母兮曰我養

如非我父母 此身豈生長

如天此恩德 於何報髴髣

 

어와 저 조카야---정철(鄭澈)

시조

어와 저 조카야 밥 없이 이찌 할꼬.

어와 저 아재비야 옷 없이 이찌 할꼬.

머흔 일 다 일러사라 돌보고자 하노라.

어구 풀이

<어와> : 아, 감탄사

<아재비야> : 아저씨여

<머흔 일> : 궂은 일

<일러사라> : 말하려무나.

현대어 풀이

! 저 조카여 밥 없이 어찌할 것인고?

! 저 아저씨여 옷이 없이 어찌할 것인고?

어려운 일 있으면 다 말해 주시오, 돌보아 드리고자 하노라.

한역시- 송달수(宋達秀)

噫彼之姪兮 艱食何所資

噫彼之叔兮 無衣且何爲

隨事更相告 願言顧助之

 

이고 진 저 늙은이---정철(鄭澈)

시조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점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웨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어구 풀이

<이고 진> :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진

<점었거니> : 젊었으니. '점다'는 '젊다'의 옛말

<설웨라커든> : 서랍다 하겠거늘

<짐을조차> : 짐을 마저, 짐까지야

현대어 풀이

머리에는 짐을 이고 등에는 짊어졌으니 그 짐을 풀어서 나에게 주시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겁겠는가.

늙는 것도 서럽다 하거든 무거운 짐까지 지시겠는가?

한역시- 송달수(宋達秀)

負戴彼何老 請我代勞之

我則年光少 道理悌長宜

衰老已可憐 又何負重爲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서익(徐益)

시조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北向)하여 우는 뜻은

석양(夕陽)이 재 넘어가매 임자 그려 우노라.

어휘풀이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 : 푸른 풀이 우거진 비 갠 강가

<북향(北向)하여> : 임금 계신 곳을 향하여

현대어 풀이

녹초 청강상에 벼슬을 그만 두고 내려와 살고 있지만

때로 고개를 들어 북쪽을 향해 우는 뜻은

석양에 해 넘어갔다(임금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을 그리워하여 운다.

 

청초 우거진 골에---임제(林悌)

시조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나니.

() 잡아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어휘 풀이

<청초(靑草)> : 푸른 풀. 자연을 상징하고 변하지 않음을 의미함.

<골> : 골짜기. 여기서는 ‘무덤’.

<자난다> : 자느냐? 자는가. 자(어간)+나(현재 보조어간)+ㄴ다(의문형 어미)

<누웠난다> : 누웠느냐? 누웠는가?

<홍안(紅顔)> : 젊고 예쁜 얼굴. 보통 젊은 사람(弱冠을 뜻함. 여기서는 황진이를 가리킴.

<백골(白骨)> : 여기서는 황진이의 무덤 속의 흰 뼈. 죽음을 의미함.

<무쳣나니> : 묻혔느냐? 묻혔는고. 묻+히+었+나니(의문종지형).

<권(勸)하리> : 권할 사람이. 여기서는 황진이를 가리킴.

<슬허하노라> : 슬퍼하노라.

현대어 풀이

푸른 풀이 우거진 산골짜기 무덤 속에 자고 있느냐, 누워 있느냐?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혀 있느냐?

술잔을 잡고 권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반중 조홍감이-- 박인로

시조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어구 풀이

<반중(盤中)> : 소반 가운데.

<조홍감> : 일찍 익은 감. 조홍시(早紅枾)

<보이나다> : 보이는구나.

<품엄즉도> : 품음직도.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 회귤의 고사 또는 육적 회귤이라 불리는 고사를 인용한 표현이다. 감이 너무도 고와 보여서, 육적이 귤(유자)를 품어 갔듯이 자신도 감을 품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반길 이> : 반길 사람이. '어버이'를 말함.

<없을새> : 없는 까닭에.

<글로> : 그것으로.

<품어가 반길 이 없슬새 글로 설워하노라> : 품어가도 반가워 해 주식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그것을 서러워한다는 뜻으로 부모 사후(死後)의 이 같은 후회를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한다.

전문풀이

소반 가운데 놓인 일찍 익은 감이 먹음직스럽게도 보이는구나.

이것이 비록 귤이나 유자는 아니라도 품에 품고 돌아갈 만도 하지만,

품안에 넣고 가도 반가워할 이가 없으니, 그것을 서러워한다.

 

큰 잔에 가득 부어---이덕형(李德馨)

시조

큰 잔()에 가득 부어 취()토록 먹으면서

만고영웅(萬古英雄)을 손꼽아 혀여 보니

아마도 유령(劉伶) 이백(李白)이 내 벗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취(醉)토록> : 취하도록

<만고영웅(萬古英雄)> : 영원토록 이름이 빛나는 영웅. 영웅은 재지(才智)나 무략(武略)이 빼어난 사람

<혀여 보니> : 세어 보니, 골라 보니

<유령(劉伶)> : 중국 진나라 때의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으로서, 술을 잘 먹던 시인이다.

<이백(李白)> : 이태백의 본이름. 당나라 현종 때의 천재 시인. 시선(詩仙)이라 일컬었다. 채석강(采石江)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술에 취한 나머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

현대어 풀이

큰잔에 술을 가득 부어 취하도록 마시면서

만고의 영웅이 누구누구인가를 손꼽아 헤아려 보니,

아마도 술 취하면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잠자던 유령(割伶)과 호수의 달을 건지려던 이백과 같은 사람만이 내 벗인가 하노라.

 

◈철령 높은 봉에---이항복(李恒福)

시조

철령(鐵嶺)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삼아 띄어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뿌려본들 어떠리.

어휘 풀이

<철령(鐵嶺)> : 강원도 회양군 북쪽 30리에 있는 산마루. 강원도 회양군(淮陽郡)과 함경남도 고산군(高山郡) 사이에 있는 큰 고개 이름.

<고신원루(孤臣寃淚)> : 임금 곁을 떠난 신하의 원통한 눈물.

<비삼아> : 비로 만들어. 비 대신에. ‘삼다’는 ‘만들다’의 뜻이 있다.

<띄어다가> : 띄워다가. 실어 가지고.

<님> : 임금. 여기서는 광해군.

<구중심처(九重深處)> : 깊은 대궐. 궁중(宮中). 유의어 : 구중궁궐(九重宮闕).

전문 풀이

철령의 높은 봉우리에서 밤길이 내키지 않아 잠시 멈추었다가 가는 저 구름아,

임금님의 신임을 얻지 못하여 귀양가는 이 외로운 신하의 억울한 눈물을 비로 삼아 띄워 가지고,

임금님이 계신 깊은 대궐 안에 뿌려 나의 진심을 알려 주었으면 좋겠구나.

 

벽해 갈류 후에---구용(具容)

시조

벽해(碧海) 갈류(渴流) 후에 모래 되어 섬이 되어

무정(無情) 방초(芳草)는 해마다 푸르르되

어떻다 우리의 왕손(王孫)은 귀불귀(歸不歸)를 하느니.

어구 풀이

<벽해(碧海)> ; 푸르고 깊고 넓은 바다. 큰 바다

<갈류(渴流) 후에> : 물이 다 마른 다음에

<무정(無情)> : 아무런 뜻이 없음. 자각감정이 전혀 없음

<방초(芳草)> : 꽃다운 풀.

<무정(無情) 방초(芳草)> : 뜻 없는 아름다운 풀.

<어떻다> : 어찌하여. 종장 초구로 흔히 쓰이는 말

<왕손(王孫)> : 귀뚜라미를 왕손(王孫)이라 하지만, 여기서는 글자의 뜻 그대로 임금의 후손을 가리키는 곧, 광해군에게 살해된 영창대군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귀불귀(歸不歸)> : 한 번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

현대어 풀이

푸르고 깊은 바닷물이 다 말라 버린 다음 모래가 모여 섬이 되고

다시 그 모래톱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 풀이 해마다 다시 푸르르곤 하는데

어찌하여 우리의 왕손은 한 번 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가?

 

날이 저물거늘---권호문(權好文)

시조

날이 저물거늘 나외야 할 일 없어

송관(松關)을 닫고 월하(月下)에 누웠으니,

세상에 티끌 마음이 일호말(一毫末)도 없다.

현대어 풀이

날이 저물어서 다시는 할 일이 없어

소나무 가지로 엮은 문을 닫고 달 아래 누워 있으니,

세상의 티끌에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다.

 

짚방석 내지 마라---한호(韓濩)

시조

짚방석(方席) 내지 마라 낙엽(落葉)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어구 풀이

<집방석(方席)> : 짚으로 만든 방석.

<솔불> : 관솔 불. 송진이 많이 막힌 소나무나 진어 엉긴 가지나 옹이. 유의어 : 송명(松明).

<혀지> : 켜지. 15세기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었다. 점화(點火) 끌다() 썰다(톱으로)

<아해야> : 아이야. 실제로 아이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옛 시조에서 하나의 멋으로 사용된 것임. 감탄사. 돈호법에 해당.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 막걸리와 산나물. 변변치 않은 술과 산나물. ‘-일망정은 방임형 어미.

현대어 풀이

짚방석을 내지 말아라. 낙엽엔들 앉지 못하겠느냐

관솔불을 켜지 말아라. 어제 진 달이 다시 떠오른다.

아이야! 변변치 않은 술과 나물일지라도 좋으니 없다 말고 내오너라.

 

추산이 석양을 띠고--- 유자신(柳自新)

시조

추산(秋山)이 석양(夕陽)을 띠고 강심(江心)에 잠겼는데

일간죽(一竿竹) 둘러메고 소정(小艇)에 앉았으니

천공(天公)이 한가(閑暇)히 여겨 달을 조차 보내도다.

어구 풀이

<추산(秋山)> : 가을 산

<석양(夕陽)을 띠고> : 저녁 햇빛을 띠고.

<강심(江心)> : 강 한복판. 강속.

<일간죽(一竿竹)> : 한 개의 낚싯대. 낚싯대 하나

<소정(小艇)> : 작은 배.

<안자시니> : 앉으니, 앉아있으니.

<천공(天公)> : 조물주. 하느님.

<녀겨> : 여겨.

<달을 조차> : 달조차, 달까지.

현대어 풀이

가을산이 석양빛을 머금고 강 한복판에 잠겨 비추는데,

낚싯대 하나 둘러매고 작은 고깃배에 앉았으니

조물주가 나를 한가롭게 여겨 달까지 보내는구나.

한역시- <해동소악부(海東小樂府)>

秋山夕照蘸江心

釣罷孤憑小艇吟

漸見水光迎棹立

半灣新月一條金

 

◈빈천을 팔랴 하고---조찬한(趙纘韓)

시조

빈천(貧賤)을 팔랴 하고 권문(權門)에 들어가니

치름 없는 흥정을 뉘 먼저 하자 하리.

강산(江山)과 풍월(風月)을 달라 하니 그는 그리 못하리.

어구 풀이

<빈천(貧賤)> : 가난하고 천함.

<팔랴 하고> : 팔려고. 면해 보려고.

<권문(權門)> : 권세 있는 집안. 관위(官位)가 높고 권세 있는 집안.

<치름 없는> : 치름 없는, 대가로 줄 것이 없는. ‘치름’은 ‘치르다’의 명사형.

<흥정> :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치름 없는 흥정> : 대가를 치르지 않는, 주는 것이 없는 흥정.

<뉘 몬져> : 누가 먼저.

<하쟈 하리> : 하자고 할 것인가?

<강산과 풍월> : 아름다운 자연

<그는> : 그것은.

<그리 못하리> : 그렇게 하지 못한다.

현대어 풀이

가난과 천함을 팔고자 권세 있는 집에 찾아갔더니,

치름 없는 흥정을 우가 먼저 하겠다고 하리오.

자연을 달라고 하니, 그렇게는 할 수가 없노라.

 

지당에 비 뿌리고---조헌(趙憲)

시조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 제

사공(沙工)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난고.

석양(夕陽)에 무심한 갈며기난 오락가락 하노매.

어휘풀이

<지당(池塘)> : 못, 연못.

<양류(楊柳)> : 버드나무.

<내> : 뿌옇게 낀 안개.

<끼인 제> : 끼었는데.

<갈며기> : 갈매기.

<하노매> : 하는구나.

현대어 풀이

연못에 비가 뿌리고 버드나무에 안개가 자욱이 끼었는데,

뱃사공은 어디에 가고 빈 배만 못가에 매어 있는가?

해질 무렵에 아무 잡념이나 욕심이 없는 갈매기들만 오락가락하는 구나.

 

동간관어(東澗觀魚, 동쪽에 있는 산골 물에서 고기를 보다)---조존성

시조

아희야 도롱 삿갓 찰화 동간(東澗)에 비 지거다

기나긴 낙대에 미늘 없은 낚시 매야

저 고기 놀라지 마오라 내 흥겨워 하노라

어휘풀이

* 도롱 삿갓 : 도롱이와 삿갓

* 찰화 : 차려라, 챙겨라

* 지거다 : 졌다, 그쳤다

* 낙대 : 낚싯대

* 미늘 : 낚시 끝 안쪽의 갈구리 미늘이 없는 낚시로 고기를 잡겠다는 것이니, 고기 잡는 데는 뜻이 없다는 것

* 呼兒曲 4수중 2

 

서산채미(西山採薇, 서산에서 고사리를 캐다---조존성

시조

아야 구럭망태 어두 서산(西山)에 날 늣거다

밤 지낸 고사리 마 아니 늘그리야

이 몸이 푸새 아니면 조석(朝夕) 어이 지내리

어휘풀이

* 구럭 망태 : 구럭과 망태

* 어두 : 거두, 거두어라, 챙겨라

* 늣거다 : 늦었다

* 呼兒曲 4수중 1

 

남묘궁경(南畝躬耕, 남쪽 밭에서 밭갈이하다)---조존성

시조

아희야 죽조반 다오 남묘(南苗)에 일이 하다

서투른 따부를 눌 마조 잡으려뇨

두어라 성세(聖世) 궁경(躬耕)도 역군은이샷다

어휘풀이

* 죽조반 : 죽으로 된 아침밥

* 남묘 : 남쪽 밭

* 하다 : 많다

* 따부 : 따비(농기구의 일종)

* 눌 : 누구와

* 성세 : 태평스러운 세상

* 궁경 : 자신이 직접 밭갈이를 함

* 역군은 : 또한 임금의 은덕

* 呼兒曲 4수중 3

 

북곽취귀(北郭醉歸, 북쪽에 있는 마을에서 술에 취해 돌아오다)---조존성

시조

아희야 소 먹여 내어라 북곽(北郭)에 새 술 먹자

대취한 얼굴을 달빛에 실어오니

어즈버 희황(羲皇) 상인(上人)을 오늘 다시 보와라

어휘풀이

* 희황 상인 : 복희씨 시대의 옛날 사람. 태평한 세월에 살던 때의 백성을 뜻함

* 보와라 : 보도다

* 呼兒曲 4수중 4

 

대 심거 울을 삼고--- 김장생

시조

대 심거 울을 삼고 솔 갓고니 정자(亭子)ㅣ로다

백운 더핀 듸 날 인난 줄 제 뉘 알리

정반(庭畔)에 학() 배회(排徊)하니 긔 벗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대 심거> : 대나무를 심어

<울을> : 울타리를

<솔> : 소나무

<갓고니> : 가꾸니

<정자(亭子)> : 경치가 좋은 곳에 놀기 위하여 지은 작은 집

<더픤 듸> : 덮여 있는 곳에.

<인난 줄> : 있는 줄.

<제 뉘> : 그 누가.

<정반(庭畔)> : 뜰 가

<배회(排徊)> : 부질없이 오락가락함

현대어 풀이

대나무를 심어서 울타리를 삼고, 소나무를 가꾸고 나니 바로 정자가 되는구나.

흰구름이 덮인 곳에 내가 살고 있는 걸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뜰에서 배회하는 학()만이 바로 내 벗이로구나.

 

책 덮고 창을 여니--- 정온(鄭蘊)

시조

책 덮고 창을 여니 강호(江湖)에 배 떠 있다.

왕래백구(往來白鷗)는 무슨 뜻 먹었는고.

앗구려 공명(功名)도 말고 너를 좇아 놀리라.

어구 풀이

<강호(江湖)> : 강과 호수. 흔히 풍치가 좋은 시골을 말한다.

<왕래(往來)> : 오고 가는

<백구(白驅)> : 흰 갈매기

<앗구려> : 아서라! 아! 감탄사.

<공명(功名)> : 나라에 공훈을 세워 이름이 남

현대어 풀이

책을 덮고, 창문을 여니, 멀리 물가에는 조그만 배가 떠 있구나.

오가는 흰 갈매기는 무슨 뜻을 품었는가?

아서라! 부귀공명일랑 생각도 말고, 너를 따라 놀아보련다.

 

천지로 장막 삼고----이안눌(李安訥)

시조

천지(天地)로 장막(帳幕) 삼고 일월(日月)로 등촉(燈燭) 삼아

북해(北海)를 휘여다가 주준(酒樽)에 다혀 두고

남극(南極)에 노인성(老人星) ()여 늙을 뉘를 모르리라.

어구 풀이

<장막(帳幕)> : 포장. 잔치 따위를 할 때 둘러치는 것

<등촉(燈燭)> : 등불과 촛불

<북해(北海)> : 북녘에 있다고 믿는 큰 바다의 물. 중국에서는 발해의 딴 이름이기도 하다.

<휘어다가> : 억지로 끌어다가

<주준> : 술통

<다혀 두고> : 대어 두고.

<남극(南極)에 노인성(老人星)> : 남극에 있어 사람의 수명을 맡은 별. 옛날에 일컫던 남극의 별. 그 별빛이 특출한데, 이 별이 남극에 나타나면 치안이 잡히고 보이지 않을 때는 병란이 일어난다고 하며, 한편 사람의 수명을 맡고 있다고도 전한다.

<뉘> : 때, 세상.

현대어 풀이

하늘과 땅을 장막으로 삼고 해와 달을 등불삼아

북쪽 바다 물결을 휘어서 술통 속에 대어놓고

남쪽 하늘 노인성을 바라보며 늙는 줄 모르고 살리라.

 

내 집이 백학산중---윤순(尹淳)

시조

내 집이 백학산중(白鶴山中) 날 찾을 이 위 있으리.

입아실자(入我室者)이 청풍(淸風)이요 대아음자(對我飮者)이 명월(明月)이라

정반(庭畔)에 학() 배회(徘徊)하니 긔 벗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백학산중(白鶴山中)> : ‘백하산(白下山) 속’의 잘못. 지은이의 호가 백하(白下)임.

<입아실자(入我室者)이 청풍(淸風)이요> : 내 방에 들어오는 것은 맑은 바람이요.

<대아음자(對我飮者)이 명월(明月)이라> : 나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밝은 달이라.

<정반(庭畔)> : 뜰 가.

<배회(徘徊)> : 이리저리 왔다갔다 함.

<정반(庭畔)에 학(鶴) 배회(徘徊)하니> : 뜰 가에 학이 배회하니.

<긔> : 그것이

 

마천령 올라 앉아---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

시조

마천령(摩天嶺) 올라앉아 동해(東海)를 굽어보니,

물 밖에 구름이요, 구름 밖에 하늘이라.

아마도 평생장관(平生壯觀은 이것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마천령(摩天嶺)> : 함경남도 단천(端川)과 함경북도 성진(城津) 사이의 도계(道界)에 있는 높은 재. 이판령(伊板嶺).

<평생장관(平生壯觀)> : 한평생을 두고 볼 만한 경치.

 

이화우 흩뿌릴 제---이매창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현대어 풀이

배꽃이 비내리듯 흩날리든 날에, 서러 울며 잡고 이별한 임

가을바람 나뭇잎 떨어지는 이 때에 임도 나를 생각하고 계실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劉希慶이 上京후 소식이 없자 읊은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이순신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어구 풀이

<수루(戍樓)> : 변방의 오랑캐를 감시하는 높은 망루.

<일성호가(一聲胡笳)> : 한 곡조의 호가 소리. 호가(胡笳)는 갈대잎을 말아 만든 피리로 소리가 매우 처량함.

전문 풀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서

큰 칼을 옆에 차고 다가올 큰 싸움을 앞에 두고 깊은 시름 하는 때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가닥의 피리소리는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춘산에 불이 나니--- 김덕령

시조

춘산(春山)에 불이 나니 못 다 핀 곶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잇거니와

이 몸의 내 없는 불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어휘풀이

<곶> : 꽃

<내 없는> : 연기가 없는.

전문풀이

봄철의 산에 불이 나니 피지도 못한 꽃들이 불이 붙어 다 타는구나.

저 산에 일어난 불은 물을 뿌려 끌 수 있지만,

이 몸 속에 연기도 없는 불이 일어나니, 끌 물조차 없어 안타깝구나.

해설

이 시조는 의병대장인 작가가 적장과 내통한다는 모함으로 투옥되어 죽기 직전에 자기의 억울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따라서 전편이 은유로 되어 있는데, ‘춘산의 불임진왜란을 가리키는 것이고, ‘못다 핀 꽃적과 용감히 싸워 전사하는 청년들의 비유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젊은이의 피로 승리할 수 있지만, 정치 싸움에 끼어 억울하게 갇힌 나의 답답한 울화는 막아낼 수가 없다고 개탄한 것이다.

 

냇가에 해오라바---신흠

시조

냇가에 해오라바 므스 일 셔 잇난다

무심(無心)한 져 고기를 여어 므슴하려난다

아마도 한 믈에 잇거니 니저신들 엇더리

*여어 : 엿보아.

전문풀이

냇가에서 있는 백로야! 무슨 일로 서 있느냐?

사심 없이 노니는 저 고기를 엿보아서 무엇하려느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같이 한 물에 살고 있는 입장이니, 아예 잊어버리고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는가?

 

님을 미들 것가>- --정구(李廷龜)

시조

님을 미들것가 못 미들슨 님이시라.

미더온 시절도 못 미들 줄 아라스라.

밋기야 어려와마난 아니 밋고 어이리.

어구 풀이

<미들것가> : 믿을 것인가

<못 미들슨> : 못 믿을 것은

<아라스라> : 알았도다.

<어려와마난> : 어렵건마는

현대어 풀이

임을 믿을 것인가? 아마도 믿지 못할 것은 임이로다.

믿고서 지내던 시절도 믿을 바가 못 되는 줄로 알았었다.

믿기가 어렵기는 하지마는 그래도 임을 믿지 않고서 어찌하겠는가?

 

천지 몇 번째며---조찬한(趙纘韓)

시조

천지 몃 번째며 영웅(英雄)은 누고누고.

만고흥망(萬古興亡)이 수후 잠에 꿈이여늘

어듸셔 망녕엣 거슨 노지 마라 하나니.

어구 풀이

<몃 번째며> : 몇 번째이며. 몇 번이나 바뀌었으며.

<누고누고> : 누구누구인가.

<만고흥망(萬古興亡)> : 오랜 세월을 두고 흥하고 망한 일.

<수후> : 잠깐. 수유(須臾)의 와철(訛綴).

<망녕엣> : 망녕한.

<거슨> : 것은.

<노지 마라> : 놀지 말라고.

<하나니> : 하느냐.

현대어 풀이

천지는 몇 번째나 바뀌었으며, 소위 영웅들은 누구누구이던가?

만고의 흥망성쇠는 기껏 잠깐 동안의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거늘,

어디서 망령스런 것은 놀지 말라고 간섭하느냐.

 

풍파에 놀란 사공--- 장만(張晩)

시조

풍파(風波)에 놀란 사공(沙工)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나 하리라.

어휘풀이

<풍파(風波)> : 바람과 물결.

<구절양장(九折羊腸)> : 이리저리 틀어진 양의 창자. 굽이굽이 틀어진 양(羊)의 창자처럼 험준한 산길.

<물도곤> : 물보다.

<어려왜라> : 어렵구나.

전문풀이

사납기만 한 풍파에 놀란 뱃사공이 배를 팔아 말을 사니,

꼬불꼬불한 산길을 말을 몰아 오르고 내리는 것이 물길보다 더 어렵구나.

이후에는 배도 그만 두고 말도 그만 두고 밭갈기만 지으리라.

 

공산이 적막한데---정충신(鄭忠信)

시조

공산(空山)이 적막한데 슬피 우는 저 두견(杜鵑)

촉국 흥망이 어제 오늘 아니어늘

지금(至今)히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나니.

어구 풀이

<공산(空山)> : 사람의 기척이 없는 호젓한 산

<두견(杜鵑)> : 소쩍새. 촉나라 망제의 죽은 혼이 화해서 된 새라고 전한다. 늦봄에 남방에서 오는 철새인데 밤에 슬피 운다. 자규, 두우, 불여귀 등의 딴 이름이 있다.

<아니어늘> : '아니거늘'의 옛 말투

<지금(至今)히> : 지금까지

<애를 끊나니> : 애를 끊느냐? '애'는 창자의 옛말

현대어 풀이

아무도 없는 산이 적막하여 고요한데, 슬프게도 우는 저 두견새야.

촉나라가 망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지금에사 피나게 울어 남의 애간장을 끊느냐?

 

발산력 개세기는---임경업(林慶業)

시조

발산력 개세기(拔山力蓋世氣)는 초패왕(楚覇王)의 버금이요

추상절(秋霜節) 열일충(烈日忠)은 오자서(伍子胥)의 우이로다.

천고(千古)에 늠름장부(凜凜丈夫)는 한수정후(漢壽亭候)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발산력 개세기(拔山力蓋世氣)> : 산을 뽑을 만한 힘과 세상을 뒤엎을 기상. 초패왕 항우(項羽)가 해하(垓下)에서 패사(敗死)하기 직전에 지은 시의 첫 구절이다.

力拔山兮 氣蓋世(힘은 산을 빼고 기개는 세상을 덮어 누르도다.)

時不利兮 騅不逝 (시운이 불리하니 추도 아니 나아가누나.)

騅不逝兮 可奈何 (추가 아니 나감을 어찌할 것이랴)

虞兮虞兮 奈若何 (우여 우여! 그대와 헤어지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이랴?)

<초패왕(楚覇王)> : 중국전국시대의 영웅인 항우. 진말(秦末) 하상(下相) 사람. 우(羽)는 자. 진(秦)을 파하고 서초(西楚) 패왕이 되었다가 후에 유방(劉邦)과 싸우다가 패사(敗死)함.

<버금> : 다음 되는 차례. 제2위.

<추상절(秋霜節)> : 가을 서리처럼 엄정한 절개

<열일충(烈日忠)> : 뙤약볕처럼 뜨거운 충성

<추상절(秋霜節) 열일충(烈日忠)> : 지엄(至嚴)한 충절. 추상같은 절의와 햇빛처럼 뜨거운 충성심.

<오자서(伍子胥)> : 중국 춘추시대의 초나라 사람. 이름은 원(員), 아버지 사(奢)와 형 상(尙)을 죽인 초나라의 평왕(平王)을 오나라의 도움으로 원수를 갚음.

<우> : 위.

<천고(千古)> : 만고에 다음 가는 먼 옛적, 또는 오랜 세월. 영원

<늠름장부(凜凜丈夫)> : 씩씩한 사나이.

<한수정후(漢壽亭候)> : 관운장(關雲長)의 봉호(封號).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하매 유비ㆍ장비와 갈리게 된 관우는 유황숙의 이부인(二婦人)을 살리고자 부득이 조조에게 항복한 다음, 그가 조조에게서 밭은 작위이다.

현대어 풀이

힘이 산을 뽑아내고 기개가 세상을 덮치는 데는 서초패왕 항우의 다음이요,

가을 서릿발 같은 절개와 불타는 태양 같은 충성심에 있어서는 오자서보다 낫도다.

수천 년에 걸쳐서 늠름한 대장부라 하여 숭배할 만한 사람으로서는 한수정후 관운장이 으뜸인 줄로 안다.

 

공명도 잊었노라---김광욱(金光煜 1579-1656)

시조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내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현대어 풀이

공명도 잊고, 부귀영화도 잊었다.

세상의 복잡하고 걱정스러운 일 다 내버려 잊었노라.

스스로 스스로를 잊으니 남이 아니 잊겠는가.

 

질가마 좋이 씻고----김광욱(金光煜)

시조

질가마 조히 싯고 바회 아래 샘물 기러

팟쥭 달게 쑤고 저리지 이끄어 내니

세상(世上)에 이 두 마시야 남이 알가 하노라.

어구 풀이

<질가마> : 흙으로 구어서 만든 가마솥.

<조히> : 깨끗이

<바회> : 바위

<저리지> : 절이김치. 겉절이. 남부지방에서 김치와는 달리 만들어 먹는, 채소를 소금에 절인 것이다.

<이끄어> : 이끌어

현대어 풀이

질가마를 깨끗이 씻어 놓고 바위 밑 옹달샘 물을 길어다가 팥죽을 쑨 다음

채소를 절여서 익힌 절이김치를 꺼내어 먹으니

희한한 이 두 맛이야말로 남이 알고 달려들까 염려하는 바로다.

 

군산을 삭평턴들---이완(李浣)

시조

군산(君山)을 삭평(削平)턴들 동정호(洞庭湖)ㅣ 너를랏다.

계수(桂樹)를 버히던들 달이 더옥 발글 거슬

뜻 두고 이로지 못하고 늙기 셜워 하노라.

어구 풀이

<군산(君山)> : 동정호(洞庭湖) 안에 있는 산.

<삭평(削平)> : 깎아 평평하게 하는 것.

<너를랏다> : 넓을 것이로다.

<계수(桂樹)> : 달 속에 있다는 나무.

<버히던들> : 베었던들.

<이로지> : 이루지.

현대어 풀이

동정호 안에 있는 군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었더라면 호수는 더 넓어졌을 것이다.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를 베어 버렸다면 밝은 달은 더욱 빛날 것을

뜻은 있으면서도 이루지 못하고 늙어 가니 참으로 서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구나!

 

청산도 절로절로---송시열(宋時烈)

시조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 절로절로 수() 절로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절로

그 중()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어구 풀이

<청산(靑山)> : 푸른 산. ‘자연’의 대유법(代喩法).

<절로절로> : 저절로. 스스로. 자연대로. 반복법, 점층법.

<녹수(綠水)> : 맑은 물. 푸른 물로. ‘자연’의 대유법.

<산수간(山水間)> : 산과 물 사이. 자연 속에.

<그 중에> : 산수간에.

현대어 풀이

푸른 산도 저절로 서 있고, 맑은 물도 저절로 흐른다.

산도, 물도 자연 그대로이니, 그 속에 자란 나도 역시 자연 그대로가 아닌가.

따라서, 자연 속에 절로 자란 이 몸이 늙는 것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리라.

 

꿈에 다니는 길이---이명한(李明漢)

시조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곳 날작시면

임의 집 창() 밖이 석로(石路)ㅣ라도 달으련마는

꿈길이 자취 없으니 그를 슬어 하노라

현대어 풀이

꿈속에서 다니던 길에 오고간 흔적이 만일 난다고 한다면

그대의 집 창밖의 길이 비록 돌깐 길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다 닳으련만.

꿈속에 다니는 길에 아무런 흔적도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한역시

魂夢相尋屐齒輕 鐵門石路亦應平

原來夢徑無行迹 伊不知儂恨一生

- 신자하(申紫蝦) : <소악부(小樂府)> -

 

청강에 비 듣는 소리---봉림대군(효종)

시조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읍관데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리 우울 대로 우어라.

어구 풀이

<청강(淸江)> : 맑은 물이 흐르는 강

<비 듣는> : 비가 떨어지는

<우읍관데> : 우습기에, 우습길래

<만산홍록(滿山紅綠)> : 산에 가득한 꽃과 풀. 봄철 산을 덮은 초목. 꽃이 뒤섞여 울긋불긋하기에

<휘두르며> : 흔들면서

<웃는고야> : 웃는구나! ‘∼고야’는 감탄종지형.

<두어라> : 시조 종장의 첫마디에 흔히 쓰이는 말이다.

<우울 대로 우어라> : 웃을 대로 웃어라.

현대어 풀이

맑은 강물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무엇이 우습기에

온 산을 뒤덮은 울긋불긋한 꽃과 나무들이 몸을 흔들며 웃는구나.

내버려 두어라, 이제 봄바람인들 며칠이나 더 불랴, (만산의 홍록아) 웃을 대로 웃어라.

 

가노라 삼각산아---김상헌(金尙憲)

시조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어구 풀이

<시절(時節)> : 여기서는 시세(時勢)ㆍ사국9時局)의 뜻.

<삼각산(三角山)> : 서울의 진산(鎭山)인 북한산의 옛 이름. 보통 북한산이라 부른다. 백운(白雲)ㆍ인수(仁壽)ㆍ국망(國望)의 세 봉우리가 빼어나서 이렇게 불린다.

<한강수(漢江水)> : 한강의 물줄기, 곧 한강.

<고국산천(故國山川)> : 고국(故國)의 산과 물. 조상 적부터 살아온 고향인 나라. 조국산하(祖國山河).

<하랴마는> : 하겠는가마는. 물론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하 수상(殊常)하니> : 하도 별스러우니. 하도 보통 때와 다르니. 뒤숭숭하니.

<올동말동> : 올지 어떨지.

현대어 풀이

나는 이제 떠나가노라, 삼각산아. 돌아와서 보자구나, 한강수야.

정든 고국의 산천을 떠나려고 할 것인가마는

지금의 이 시대가 너무 혼란하고 수상하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이별하던 날에---홍서봉(洪瑞鳳)

시조

이별하던 날에 피눈물이 난지 만지

압록강(鴨綠江) 내린 물이 푸른 빛이 전혀 없네.

배 위에 허여 센 사공이 처음 보롸 하더라.

어구 풀이

<난지 만지> : 난 둥 만 둥, 났는지 말았는지.

<허여센> : 머리카락이 허옇게 센

<보롸> : 보노라, 본다.

현대어 풀이

임금과 이별하던 날 피눈물이 났는지 안 났는지 모르지만,

압록강에 흐르는 물도 싸움에 진 우리와도 같이 푸른 빛이라고는 전혀 없네.

배를 젓는, 머리가 허옇게 센 사공도 평생에 이런 변괴는 처음 본다 하더라!

해설

이 시조는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은 뒤 소현세자(昭顯世子), 봉림대군(효종) 등이 볼모로 심양(瀋陽)으로 잡혀가는 처지에서 그 슬픈 민족적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따라서 이별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및 척화파(斥和派)로 인질이 되어 잡혀가는 이들과의 사이에서 겪는 이별이었다.

한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소현세자(昭顯世子) 일행이 볼모로 잡혀가는 날이 하나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의 날이었기에, 그 날은 압록강의 푸른 물조차도 온통 피눈물로 시뻘겋게 물들어 버렸다. 그래서 늙은 뱃사공까지도 함께 울면서 처음 당하는 처절함에 놀란 것이다.

 

녹양이 천만사인들---이원익(李元翼)

시조

녹양(綠楊)이 천만사(千萬絲)인들 가는 춘풍(春風) 매어두며

탐화봉첩(耽花蜂蝶)인들 지는 꽃을 어이하리.

아무리 근원(根源)이 중()한들 가는 님을 어이리.

어구 풀이

<녹양(綠楊)> : 푸른 수양버드나무

<천만사(千萬絲)인들> : 천 갈래 만 갈래의 실올이라 할지라도. 버드나무의 늘어진 많은 실가지를 뜻한다.

<탐화봉접(耽花蜂蝶)> :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 ‘耽’은 ‘즐기다’의 뜻.

<어이리> : '어찌하리'의 옛말

현대어 풀이

푸른 버들가지가 천 갈래 만 갈래의 실올같이 드리웠으나, 흘러가는 봄바람을 어찌 잡아맬 수가 있으며

꽃을 반겨 찾아다니는 벌과 나비인들 떨어지는 꽃이야 어찌할 수 있으리오?

그러니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 할지라도 헤어져 가는 임을 어찌할 수 있으리오.

 

어전에 실언하고---구인후

시조

어전(御前)에 실언(失言)하고 특명으로 냇치신이

이 몸 갈 데 업써 서호(西湖)로 차자간이

밤중만 닷드는 소릐예 연군성(戀君誠)이 새로왜라.

어구 풀이

<어전(御前)> : 임금의 앞

<실언(失言)> : 말을 잘못함

<냇치신이> : 물러가게 하시니, 내치시니

<서호(西湖)> : 오강의 하나. 오강(五江)은 한강, 마포, 용산, 지호, 서호. 그러나 여기에서는 자연의 뜻

<밤중만> : 밤중쯤

<연군성(戀君誠)> : 임금을 그리는 정성

<새로왜라> : 새롭구나.

현대어 풀이

임금 앞에서 한 말이 잘못되어 물러가라고 내치시니

이 몸이 갈 곳이 없어 서호로 찾아갔다.

밤중쯤 닻 드는 소리를 들으니 임금 그리는 마음 새로워라.

 

수양산 내린 물이---홍익한(洪翼漢)

시조

수양산(首陽山) 내린 물이 이제(夷齊)의 원루(寃淚)되어

주야불식(晝夜不息)하고 여흘여흘 우는 뜻은

지금의 위국충성(爲國忠誠)을 못내 슬허 하노라.

어구 풀이

<수양산(首陽山)>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형제가 절의를 지켜 고사리를 캐먹다가 죽었다는 산.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다.

<이제(夷齊)> : 백이와 숙제를 아울러 일컫는 말. 백이와 숙제는 은(殷) 나라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임.

<원루(寃淚)> : 원통에 찬 눈물

<주야불식(晝夜不息)> :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여흘여흘> : 여울여울. 물이 여울목을 흘러갈 때 나는 소리. '여흘'은 '여울'의 옛말

<위국충성(爲國忠誠)> : 나라를 위한 충성

<못내> : 항상 잊지 못하고서

<슬허 하노라> : '슬퍼하다'의 옛말

현대어 풀이

수양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백이와 숙제의 원한의 눈물로 변해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여울목을 흘러가듯 소리내어 우는 뜻은

오늘날의 나라를 위한 충성심이 옛날과는 달리 보잘 것이 없음을 슬퍼함이다.

 

오우가(五友歌)---윤선도

시조- 윤선도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칠 뉘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곶은 무슨 일로 피며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프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곶 피고 추우면 닢 지거늘,

솔아, 너는 어이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

 

나모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둏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에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해설

조선시대의 시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1642(인조 20)에 지은 연시조. 작자가 56세 때 고향 해남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 18수 중에 들어 있는 6수의 시조로, ()ㆍ석()ㆍ송()ㆍ죽()ㆍ월()을 다섯 벗으로 삼아 서시(序詩) 다음에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어 자신의 자연애(自然愛)와 관조를 표백하였다. 이는 고산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으로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어 시조를 절묘한 경지로 이끈 백미편(白眉篇)이다. <고산유고(孤山遺稿)> 6권 하편 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금준에 가득한 술을---정두경(鄭斗卿)

시조

금준(金樽)에 가득한 술을 슬카장 거후르고

()한 후 긴 노래에 즐거움이 그지없다.

어즈버 석양(夕陽)이 진()타 마라 달이 조차 오노매.

어구 풀이

<금준(金樽)> : 금으로 만든 단지. 미주(美酒)를 담는 좋은 술단지.

<슬카장> : 싫도록.

<거후로고> : 기울이고. 기울여 마시고.

<그지업다> : 한이 없다.

<어즈버> : 아! 시조의 종장 첫마디에 흔히 쓰이는 감탄사.

<진(盡)타 마라> : 다 지난다고 걱정하지 마라.

<오노매> : 오는구나. ‘∼노매’는 ‘∼노매라’의 축약(縮約) 감탄종지형.

현대어 풀이

좋은 단지에 가득 찬 술을 실컷 기울여 마시고서,

취한 후 노래도 부르니, 그 즐거움이 한이 없구나!

! 저녁 해가 다 져간다고 아쉬워 마라, 밝은 달이 돋아 비추어 주는구나!

 

술을 취케 먹고---정태화(鄭太和)

시조

술을 취()케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億萬) 시름이 가노라 하직(下直)한다.

아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餞送)하리라.

어구 풀이

<취(醉)케> : 취하게, 취하도록

<두렷이> : 둥글게.

<두렷이 앉았으니> : 여럿이 둥글게 둘러앉았더니

<시름> : 온갖 걱정과 근심

<하직(下直)한다> : 물러간다고 인사를 한다.

<전송하리라> : 잔치를 베풀어 떠나보내겠다.

현대어 풀이

술을 취하도록 먹고서 여럿이 둥글게 둘러앉았더니

온갖 근심걱정이 이제 물러간다고 작별 인사를 하는구나!

아이야, 잔을 가득 채워라, 가는 억만 시름에게 술이나 대접해 전송하리라.

 

청춘에 곱던 양자---강백년(姜栢年)

시조

청춘(靑春)에 곱던 양자(樣姿) 님으로야 다 늙거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알으실까.

아모나 내 형용(形容) 그려다가 님의 손대 드리고저.

어구 풀이

<청춘(靑春)> : 젊은 시절, 사람의 꽃다운 시절

<양자(樣子)> : 모양새, 모습

<님으로야> : 임으로 인하여. 임으로 말미암아, '임으로 해서'의 옛 말투

<늙거다> : 늙었다. 늙었구나.

<아모나> : 시조 종장 첫머리에 흔히 쓰이는 말인데, 감탄의 뜻이 잇는 ‘아무나’, ‘누구든지’의 뜻이다.

<형용(形容)> : 모습.

<손대> : 에게.

<드리고져> : 드리고 싶다., 드리고 싶구나.

현대어 풀이

청춘에 곱던 모습 님 때문에 다 늙었다.

이제 님이 보게 되면 나인 줄 아실까.

아무나 내 모습 그려서 임에게 드리고 싶구나.

 

닫는 말 서서 늙고---유혁연(柳赫然)

시조

닫는 말 서서 늙고 드는 칼 보뫼거다.

무정세월(無情歲月)은 백발(白髮)을 재촉하니

성주(聖主)의 누세홍은(累世鴻恩)을 못 갚을까 하노라.

어구 풀이

<닫는 말> : 잘 달리는 말

<보뫼거다> : '녹쓸다'의 옛말. 녹이 끼었도다.

<무정세월(無情歲月)> : 사정을 돌보지 않고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일

<백발(白髮)> : 희어진 머리카락

<성주(聖主)> : 성군(聖君), 어진 임금. 지덕(智德)이 뛰어난 왕.

<누세(累世)> : 대를 거듭함, 여러 대에 걸침

<홍은(鴻恩)> : 크고 깊은 은혜

<누세홍은(累世鴻恩)> : 대대로 받은 넓은 은혜.

현대어 풀이

세상이 너무도 태평하고 보니, 싸움터를 잘 달리던 말이 갈 데도 없이 서서 늙어 가고, 잘 드는 칼이 벽에 걸린 채로 쓸 데가 없어 녹이 쓸었구나!

사정없이 흐르는 세월이 흘러흘러, 무장(武將)으로 무예를 자랑하던 이 몸도 어느새 늙어 백발이 휘날리니

어진 임금께 대를 거듭하여 입은 크고 깊은 은혜를, 아무래도 다 갚지 못할 것만 같이 생각되는구나!

 

어버이 날 낳으셔---낭원군(朗原君)

시조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자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恩德)을 못내 갚아 하노라

어구 풀이

<어버이> : 부모, 양친

<어질과자> : 어진 사람이 되게 하고자. 어질게 만들고자.

<어질소냐> : 어질 수 있겠느냐?

<은덕(恩德)> : 은혜로운 신세

<못내> : 못 다. '끝내∼을 하지 못한다'의 옛말이며 현대어는 '잊지 못하고 언제까지나'의 뜻이다.

현대어 풀이

어버이가 날 낳으셔서 어질게 키워내시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홀로 어찌 어질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갚지 못할까 근심하노라.

 

녹이상제 역상에서-- 김천택(金天澤)

시조

녹이(綠耳) 상제(霜蹄) 역상(櫪上)에서 늙고 용천설악(龍泉雪鍔)이 갑리(匣裏)에 운다.

장부(丈夫)의 해 온 뜻을 속절없이 못 이루고

귀밑에 흰 털이 날리니 그를 셜워 하노라.

어구 풀이

<녹이(綠耳)> : 하루에 천리길을 달렸다는 명마(名馬). 중국 주(周) 나라 목왕(穆王)의 준마(駿馬) 이름.

<상제(霜蹄)> : 좋은 말. 흰 말굽 또는 천리마의 이름.

<녹이(綠耳) 상제(霜蹄)> : 빠르고 좋은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녹이’와 ‘상제’는 모두 중국 주나라 목왕이 타던 준마(駿馬)이다. <사기(史記)> <주기(周記)>에 나오는 말. 조부가 말을 잘 탐으로써 주목왕에게 사랑을 받아, 녹이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를 얻었다.

<역상(櫪上)> : 마굿간 위. 마판 위.

<용천(龍泉)> : 예전의 명검(名劍)ㆍ보검(寶劍). 용천검은 옛날에 중국의 장수들이 쓰던 보검(寶劍)을 이름. 용천은 본디 절강성 용천현이란 지명이며, 용천현 남방 9리쯤에 샘물이 있다는데 여기에 칼을 담그면 날이 잘 든다고도 하며, 또 칼을 담그니 화하여 용이 되어 갔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설악(雪鍔)> : 잘 드는 칼날. 잘 드는 좋은 칼이라는 뜻도 된다.

<갑리(匣裏)> : 칼집 안.

<장부(丈夫)> : 재능이 뛰어난 사나이

<해온 뜻> : 마음먹은 뜻. 생각해 온 뜻.

<속절없이> : 단념하는 도리밖에 없어서, 할 수 없이

<셜워> : 서러워

현대어 풀이

하루에 천리길을 다니는 좋은 말이 마굿간에서 하는 일 없이 늙어 가고, 잘 들기로 이름난 칼이 칼집 속에 들어만 있을 뿐 한 번도 쓰일 때가 없어 슬퍼한다.

사나이 대장부가 오래 전부터 가슴에 품은 뜻을 단념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이 일을 이루지 못하고서

어언 세월이 흘러 이제는 흰 귀밑 털이 바람결에 날리니, 벌써 그토록 늙었음을 서럽게 여길 따름이다.

 

옷버서 아희주어---김천택

시조

옷버서 아희주어 술집의 볼모하고

靑天[청천]을 울어러 달드려 물은말이

어즙어 千古[천고] 李白[이백]이 날과 엿뎌 하든요.

현대어 풀이

옷 벗어 아이주어 술집에 볼모하고

청천을 우러러 달에게 묻는 말이

어즈버 천고 이백이 나와 어떠하련가 ?

 

잘 가노라 닫지 말며---김천택(金天澤)

시조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

부디 긋지 말고 촌음(寸陰)을 아껴스라.

가다가 중지(中止)곧 하면 안이 감만 못하니라.

어구 풀이

<닫지 말며> : 달리지 말며

<긋지> : 그치지

<촌음(寸陰)> : 아주 짧은 시간, 촌각

<아껴스라> : 아끼려무나.

<중지(中止)곧> : 여기서의 '곧'은 현대어로서, 반드시 어떤 일이 뒤따른다고 할 경우에 앞의 말에 붙여서 힘줌을 나타내는 강세조사.

<아니 감만> : 아니 가는 것만

현대어 풀이

잘 간다고 달리지 말 것이며 못 간다고 해서 쉬지를 말아라.

부디 그치지 말고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서 쓰도록 하여라.

가다가 중지하면 가지 않는 것만 못하니라.

 

검으면 희다 하고---김수장(金壽長)

시조

검으면 희다 하고 희면 검다 하네.

검거나 희거나 옳다 할 이 전혀 없다.

차라리 귀 막고 눈 감아 듣도 보도 말리라.

어구 풀이

<옳다 할 이> : 옳다고 할 사람.

<듣도 보도> : 듣지도 보지도.

현대어 풀이

검으면 희다하고 희면 검다하네.

검거나 희거나 간에 옳다할 사람 전혀 없다.

차라리 귀를 막고 눈을 감아 듣지도 보지도 말리라.

 

공명을 즐겨 마라---김삼현(金三賢)

시조

공명(功名)을 즐겨 마라 영욕(榮辱)이 반()이로다.

부귀(富貴)를 탐()치 마라 위기(危機)를 밟나니라.

우리는 일신(一身)이 한가(閑暇)커니 두려온 일 없에라.

어구 풀이

<공명(功名)> : 공을 세워서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냄.

<영욕(榮辱)> : 영예와 치욕.

<영욕(榮辱)이 반(半)이로다> : 영광도 따르지만 그와 함께 치욕도 있다.

<한가(閑暇)커니> : 한가하거니.

<두려온> : 두려운.

<없에라> : 없도다. ‘∼에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현대어 풀이

공을 세워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말아라. 영광이 있겠지만, 욕먹는 일도 있는 법이다.

재물과 몸이 귀해지는 것을 탐내지는 말아라, 반드시 위기도 따라오리라.

우리는 공명과 부귀를 탐하지 않아 한가하니, 두려울 일도 없도다.

 

강호에 버린 몸이---김성기(金聖器)

시조

강호(江湖)에 버린 몸이 백구(白驅)와 벗이 되어

어정(漁艇)을 흘려 놓고 옥소(玉簫)를 높이 부니

아마도 세상 흥미는 이뿐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강호(江湖)> : 강과 호수가 있는 시골.

<버린> : 버린.

<백구(白鷗)> : 흰 갈매기

<어정(漁艇)> : 작은 고깃배.

<흘리노코> : 흐르게 띄워놓고.

<옥소(玉簫)> : 옥으로 만든 퉁소. 옥피리.

현대어 풀이

번화한 세상을 등지고 강과 호수가 있는 시골에 묻혀 살면서 갈매기를 벗으로 삼아

고깃배를 띄워 두고 통소를 꺼내어 맑은 곡조를 길이 뽑아 불어 보니

아마도 이 세상에서 참된 흥겨움이란 이것뿐인 듯이 여겨지는구나!

 

굴레 벗은 천리마를---김성기(金星器)

시조

굴레 벗은 천리마(千里馬)를 뉘라서 잡아다가

조죽(粗粥) 삶은 콩을 살지게 먹여 둔들

본성(本性)이 왜양하거니 있을 줄이 있으랴

현대어 풀이

굴레를 벗고서 자유롭게 된 천리마를 누가 있어 잡아다가

거친 먹이로 쑨 콩죽을 살 오르도록 먹여 둔다 한들

본래의 성품이 억세고 거친 것이니 그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는가?

감상

이 시조는 화자(話者) 자신을 천리마에 비유하여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천리마는 벼슬을 버린 선비, 또는 도리를 모르는 인간 등을 의미하는데, 각각 이들이 자유를 추구하고, 도덕률을 지키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 본성이 변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날아가는 학을 내려앉게 했다는 악공 김성기는 번잡한 도회를 떠나 마포 나루에서 낚시를 하며 소일했다. 그는 당대에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동성군(東城君) 목호룡(睦虎龍)이 연주를 청하자 그 자리에서 뜯고 있던 비파를 부숴버렸다.

김성기는 자신을 천리마로 표현하며 굴레를 벗어 자유로운 자신을 그 누가 붙잡아둘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조선의 ''''들은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고 굴욕을 감내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목호룡(睦虎龍.1684.숙종 10~1724.영조 즉위)

조선 후기의 지관(地官). 신임사화의 고변자(告變者)이다. 본관은 사천(泗川). 서얼 출신으로 어려서 풍수술(風水術)을 배워 지사(地師)가 되었다. 노론인 김용택(金龍澤)ㆍ이천기(李天紀) 등과 왕세제(王世弟 : 영조)를 옹호했으나, 소론에 가담하게 되었다. 1722(경종 2) 김일경(金一鏡)의 사주를 받아 경종을 시해하려는 역모에 자신도 가담했다고 고변했다.

이 고변으로 노론 4대신인 이이명(f)ㆍ김창집(金昌集)ㆍ이건명(李健命)ㆍ조태채(趙泰采) 등이 사형에 처해지고, 역모에 관련된 60여 명이 처벌되는 신임사화가 일어났다. 이 고변의 공으로 부사공신(扶社功臣) 3등으로 동성군(東城君)에 봉해지고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한 뒤 노론의 상소로 신임사화가 무고로 일어났음이 밝혀지자, 김일경과 함께 체포되어 옥중에서 죽었다. 죽은 뒤 당고개(唐古介)에서 효수되었다.

 

오늘은 천렵하고---김유기(金裕器)

시조

오늘은 천렵(川獵)하고 내일은 산행(山行)가세.

곳다림 모릐하고 강신(降神)을랑 글피하세.

그글픠 편사회(邊射會)할 제 각지호과(各持壺果)하시소.

어구 풀이

<천렵(川獵)> : 그물로 냇물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일.

<산행(山行)> : 사냥

<곳다림> : 화전(花煎). 진달래나 국화가 필 때, 그 꽃잎으로 적을 부치거나 떡에 넣어서 먹는 잔치놀이

<모릐> : 모레(再明日)

<강신(降神)> : 제사에 향을 피우고 제주(祭酒)를 올리는 일. 여기서는 신령을 맞기 위해 제사하는 강신제(降神祭)인 듯.

<글픠> : 글피(三明日).

<변사회(邊射會)> : 활쏘기 모임.

<호과(壺果)> : 술과 과일

<각지호과(各持壺果)> : 제각기 술과 과일을 가져 옴 호과

현대어 풀이

오늘은 냇가에서 고기잡이하고, 내일은 산으로 사냥을 가세.

화전놀이는 모레 하고, 강신제는 글피쯤 하세.

그 다음날 활쏘기를 할 때는 제각기 술과 과일을 가져오소.

 

벼슬을 저마다 하면---김창업(金昌業)

시조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農夫) 할 이 뉘 있으며,

의원(醫員)이 병() 고치면 북망산(北邙山)이 저러하랴.

아희야, ()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어휘풀이

<농부 할 이> : 농사꾼이 될 사람.

<북망산(北邙山)> : 죽어서 가는 무덤자리.

전문풀이

벼슬을 누구든지 대 해 버리면 농사지을 사람이 누기 있으며,

의원이 어떤 병이든 다 고친다면 북망산천(北邙山川)의 무덤이 저렇게 많을 수가 있겠느냐?

아희야, 잔에 가득 술이나 부어라, 나는 내 곧은 마음대로 실컷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볼까 하노라.

 

거문고 술 꽂아 놓고---김창업

시조

거문고 술 꽂아 놓고 호젓이 낮잠 든 제

시문(柴問) 견폐성(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도괴야

아해야 점심도 하려니와 외자 탁주 내어라

어구 풀이

<> : 술대. 거문고를 타는 제구

<호졋이> : 고요하고 쓸쓸하게.

<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 : 사립문에서 나는 개 짖는 소리.

<오도괴야> : 오는구나.

<외자> : 외상.

<탁주(濁酒)> : 막걸리.

현대어 풀이

거문고의 술대를 줄에다 꽂아 놓고 조용히 낮잠에 취해 있을 때,

사립문 밖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리니 아마도 뜻을 같이 하는 정다운 벗이 찾아 오는구나!

아이야! 점심도 한 술 하려니와, 술집에 가서 외상으로 막걸리라도 받아 오려무나!

 

감장새 작다 하고---이택(李澤)

시조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大鵬)아 웃지 마라.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一般飛鳥)ㅣ니 네오 긔오 다르랴.

어구 풀이

<감장새> : 굴뚝새. 빛이 까무테테하고 몸집이 자그마한 새

<대붕(大鵬)> : 상상의 큰 새. 북녘 큰 바다에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큰 물고기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가 몇 천리인지 모르거니와, 화(化)해서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의 길이가 몇 천리인지 모르거니와, 노하여 그 나래를 펼치면 하늘은 구름장을 드리운 듯하다. 이것이 날짐승이다. 바다를 나니 ,바야흐로 남녘의 큰 바다를 넘으려 하며, 물장을 치면 3천리에 번지고, 폭풍을 잡아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니 구만리를 올라간다. 가서는 6개월이나 쉰다고 한다.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 : 높고 넓은 하늘

<일반(一般)> : 여느, 보통의

<비조(飛鳥)ㅣ니> : 나는 새이니, 날짐승이니

<네오> : 너나. ‘∼오’는 ‘∼고’와 같이 두 가지 이상이 동작ㆍ성질 등을 잇달아 나타내는 연결어미.

<긔오> : 그이고. 김장새를 말함.

현대어 풀이

감장새가 몸이 작다고 해서 대붕새야 너무 비웃질랑 말아라.

드높고도 넓디넓은 저 하늘을 너도 물론 날거니와 감장새도 날아다닌다.

너나 저나 흔히 있는 나는 새이니, 대붕새라 해서 다르고 감장새라 해서 다를 것이 있겠느냐?

 

동창이 밝았느냐---남구만(南九萬)

시조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어구 풀이

<동창(東窓)> : 동쪽으로 난 창문

<노고지리> : 종달새의 옛말

<우지진다> : '우짖는다. 울다'와 '짖다'가 합친 말, 새가 한참씩 계속해서 운다. ‘ㄴ다’는 여기서는 감탄종지형.

<소칠> : 소를 기를, 소를 먹일

<여태> : 지금까지

<일었느냐> : 일어났느냐

<재너머> : 고개 너머에 있는

<사래> : 이랑

<하느니> : 하느냐.

현대어 풀이

동쪽 창문이 벌써 밝았느냐? 날이 새었는지 종달새가 마구 울어 젖히는구나.

소 먹이는 아이는 아직도 아니 일어났느냐?

저 고개 너머에 있는 이랑 긴 밭을 언제나 갈아 보려고 늦장을 부리느냐?

 

흉중에 불이 나니---박태보(朴泰輔)

시조

흉중(胸中)에 불이 나니 오장(五臟)이 다 타 간다.

신농씨(神農氏) 꿈에 보와 불 끌 약 물어보니

충절(忠節)과 강개(慷慨)로 난 불이니 끌 약 없다 하더라.

어구 풀이

<흉중(胸中)> : 가슴 속

<오장> : 간·염통·지라·허파·콩팥 등 사람 몸 속에 들어 있는 다섯 가지 장기. 흔히 오장육부라고 쓰인다.

<신농씨> : 중국 고대 제왕의 이름. 농사와 제약(製藥)을 가르쳤다 함. 중고 고대전설에 나오는 삼황(三皇)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농사짓기를 가르쳤고 또한 백초(百草)를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강개(慷慨)> : 의분(義憤). 불의를 보고 정의심이 북받치어 슬퍼하고 한탄함. 세사(世事)를 분격하고 슬피 탄식함

<끌 약> : 불을 끌 수 있는 약

현대어 풀이

가슴속에 불이 나니 오장이 다 타들어 간다.

신농씨가 꿈에 나타나 보여서 불 끌 약이 있나 물어보니

충절과 강개로 인한 불이니 끌 약이 없다 하더라.

 

자규야 우지 마라---이유(李渘)

시조

자규야 우지 말아 울어도 속절없다.

울거든 너만 우지 날은 어이 울리는다.

아마도 네 솔의 들을 제면 가슴 알파 하노라.

어구 풀이

<자규> : 소쩍새의 다른 이름

<솔의> : 소리

현대어 풀이

두견새야 울지 말아라, 아무리 울어도 도리 없다.

울려거든 너 혼자 울지 나는 왜 울리느냐?

네 소리를 들으면 옛날 자규시를 읊으며 슬퍼한 단종 임금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프구나.

 

주려 죽으려 하고---주의식(朱義植)

시조

주려 죽으려 하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었거니,

설마 고사리를 먹으려 캐었으랴.

물성(物性)이 굽은 줄 미워 펴 보려고 캠이라.

어휘풀이

<주려> : 주리어, 굶주리어.

<들었거니> : 들어갔더니.

<수양산(首陽山)> : 백이ㆍ숙제가 숨어 고사리를 캐먹다 죽었다는 산 이름.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산.

<물성(物性)> : 만물의 성질.

<캠이라> : 캐었던 것이다.

현대어 풀이

굶어 죽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간 것이니

설마하니 배가 고팠어도 고사리를 먹으려고 캐었겠는가?

고사리의 성질이 굽은 것을 미워하여 펴보려고 캔 것이리라.

 

벼슬이 귀타 한들---신정하(申靖夏)

시조

벼슬이 귀타 한들 이내 몸에 비길소냐.

건려(蹇驢)를 바삐 몰아 고산(故山)으로 돌아오니

어디서 급한 비 한 줄기에 출진행장(出塵行裝) 씻괘라.

어구 풀이

<비길소냐> : 견줄 수 있겠느냐? 비교할 수 있겠느냐?

<건려(蹇驢)> : 다리를 절룩거리는 나귀. 절름발이 나귀.

<고산(故山)> : 옛 보던 산. 고향 산촌.

<급한 비> : 소나기

<출진행장(出塵行裝)> : 속세를 벗어난 여장. 속세를 벗어나는 여행의 차림.

<씻괘라> : '씻었도다'의 옛말

현대어 풀이

벼슬이 귀하고 좋다고는 한들 이 내 한 몸이 소중함에야 어찌 견줄 수가 있겠는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나귀를 바삐 몰아서 고향땅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가 속세를 등지고 돌아오는 티끌 묻은 행장을 말끔히 씻어 주었구나!

 

옥에 흙이 묻어---윤두서(尹斗緖)

시조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다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 것이니 흙인 듯이 있거라.

어구 풀이

<오는 이 가는 이> : 오는 사람 가는 사람

<하는고야> : 하는구나.

<알 이> : 알 사람

<흙인 듯이> : 흙인 듯이

현대어 풀이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사람 가는 모두 사람들이 흙이라 하는구나.

아아, 옥이라 알 사람이 있을 것이니, 흙인 듯이 있거라.

 

설악산 가는 길에---조명리(趙明履)

시조

설악산(雪嶽山) 가는 길에 개골산(皆骨山) 중을 만나

중더러 물은 말이 풍악(楓嶽)이 어떻더니

이 사이 연()하여 서리 치니 때 맞았다 하더라.

어구 풀이

<설악산> : 강원도 양양(襄陽)에 있는 명산. 눈경치가 특히 좋아서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개골산(皆骨山)> : 금강산의 겨울 모습을 일컫는 말.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바위만 앙상하게 남는다는 뜻. 금강산은 경치가 좋아서 계절에 따라 봄은 금강(金剛), 또는 금수(錦繡), 여름은 봉래(蓬萊), 가을은 풍악(楓嶽), 겨울은 개골(皆骨)이라 일컫는다.

<풍악(楓嶽)> : 풍악산. 가을의 금강산의 별칭. 조선 후기의 학자 방산(舫山) 윤정기(尹廷琦)가 엮어 1859년에 간행한 <동환록(東寰錄)>에 ‘春曰金剛 夏曰蓬萊 秋曰楓嶽 冬曰皆骨’이라 했음.

<어떻더니> :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이 사이> : 요새, 요즈음

<때 맞았다> : 때가 꼭 알맞다.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만났다.

현대어 풀이

설악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금강산에서 온 중을 만났기로

중에게 금강산이 어떠하더냐고 물었더니

요즈음은 잇따라 서리가 내려, 한창 단풍이 아름다운 좋은 때를 만났다고 하더라.

 

남이 해할지라도---이정신(李廷藎)

시조

남이 해()할지라도 나는 아니 겨루리라

참으면 덕()요 겨루면 같으리니

굽음이 제게 있거니 갈올 줄이 있으랴.

어구 풀이

<겨루리라> : 겨루리라. 상대하리라, 맞서서 싸우리라

<굽음이> : 굽은 것이. 그릇됨이, 잘못이

<제게 있거니> : 저에게 있으니.

<갈올 줄이> : 상대할 줄. 맞서서 싸울 까닭이, ‘갈오다’는 맞서서 견주다, 함께 나란히 하다, 겨루다의 뜻을 가진 옛말.

현대어 풀이

남이 나를 해할지라도 나는 맞서 겨루지 않으리라.

참으면 덕이 되고, 겨루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거늘,

잘못은 내게도 없지 않을 터이니, 그와 맞서서 싸울 까닭이 있겠는가?

한역시

人或害吾吾不較 苟吾相較將無同

彼原未必先無曲 曲直都忘不較中

- <해동소악부(海東小樂府)> -

 

샛별 지자 종달이 떴다---이재(李在)

시조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매고 사립 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

아이야, 시절이 좋을손 옷이 젖는다 관계하랴.

현대어 풀이

샛별이 지고 종달새 높이 떴으니 호미 매고 사립문을 나서니,

긴 풀에 맺힌 찬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구나.

아아! 시절이 좋으면 옷 좀 젖으면 어떠하랴.

**베잠방이: 베로 만든 짧은 홑바지

 

국화야 너는 어이---이정보(李鼎輔)

시조

국화(菊花),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퓌엿는다,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어휘 풀이

<삼월동풍(三月東風)> : 솔솔 부는 봄바람. 춘(春)과 동(東)은 음양오행설에서 일치되므로 ‘봄에 부는, 만물을 생동케 하는 바람’을 가리킨다.

<지내고> :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 : 나뭇잎이 떨어진 때의 추운 날씨

<퓌엿는다> : 피었느냐?

<오상고절(傲霜孤節)> : 서리의 차가움도 굴하지 않는 국화의 형용. 찬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나서 외로이 지켜 내는 절개. 모진 서리를 혼자 외로이 이겨내는 굳은 절개

전문 풀이

국화야, 너는 어찌 춘삼월 봄바람 부는 사절을 다 보내고,

나뭇잎이 떨어진 때의 추운 날씨에 와서야 너 혼자 피어 있느냐?

아마도 모진 서리를 혼자 끝끝내 외로이 이겨내는 굳은 절개를 가진 것은 국화 너뿐인가 한다.

 

광풍에 떨린 이화---이정보(李鼎輔 1697-1766)

시조

광풍에 떨린 이화 오며 가며 날린다가

가지에 못 오르고 거미줄에 걸릴 거다

저 거미 낙화-ㄴ 줄 모르고 나비잡듯 하련다

전문 풀이

세찬 바람에 떨어진 배꽃 이리저리 날리다가

가지에 다시 오르지 못하고 거미줄에 걸렸구나

거미는 지는 꽃잎을 나비로 알고 잡으려 하는구나.

 

묻노라 부나비야---이정보(李鼎輔)

시조

묻노라 부나비야 네 뜻을 내 몰래라

한 나비 죽은 후에 또한 나비 따라오니

아무리 푸새엣 짐승인들 너 죽을줄 모르는다.

어구 풀이

<부나비> : 불나방의 옛말. 불나비.

<몰래라> : 모르도다, 모르겠구나. ‘∼래라’는 감탄형 어미.

<푸새엣 짐승> : 보잘것없는 짐승. 푸새는 풀ㆍ채소 등의 총칭.

<모르는다> : 모르느냐?. ‘-는다’는 의문형.

현대어 풀이

네게 물어 보겠거니와, 불나방아 나는 네 의도를 모르겠구나!

한 놈이 죽은 다음에 또 다른 놈이 다시 불 속으로 따라드니

아무리 미물의 짐승인들 너 죽을 줄을 모른단 말이냐.

 

꽃 피면 달 생각하고---이정보(李鼎輔)

시조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玩月長醉)하려뇨.

어구 풀이

<완월장취(玩月長醉)> : 달을 벗삼아 즐기면서 거나한 기분으로 오래도록 노닐다.

현대어 풀이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고 달 밝아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어느 때에나 꽃 아래에서 벗과 함께 달을 즐기며 오래 취하겠는가.

 

공산에 우난 접동---박효관(朴孝寬)

시조

공산(空山)에 우난 접동, 너난 어이 우짖난다.

너도 날과 같이 무음 이별하였나냐.

아모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어구 풀이

<공산(空山)> : 아무도 없는 빈 산

<접동> : 접동새. 소쩍새. 자규. 두견새. 귀촉도, 시적 화자의 정서가 투영된 대상으로 한의 정서를 환기, 객관적 상관물

<우난> : 우는

<우짖난다> : 우짖느냐? ‘난다’는 의문종지형.

<무음> : 무슨

현대어 풀이

공산에 우는 접동새야 너는 어찌 우짖느냐

너도 나와 같이 무슨 이별하였느냐

아무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임 그린 상사몽이---박효관(朴孝寬)

시조

임 그린 상사몽(想思夢)이 실솔(蟋蟀)의 넋이 되어

추야장(秋夜長) 깊은 밤에 임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어구 풀이

<상사몽(相思夢)> : 사로 사랑하고 사모하여 꾸는 꿈.

<실솔(蟋蟀)> : 귀뚜라미.

<추야장(秋夜長)> : 긴 가을밤.

현대어 풀이

임을 그리워 마지않는 이 꿈이 귀뚜라미의 넋으로 변하여서

가을 밤 기나긴 밤에 임의 방으로 들어가 있다가

나를 잊어버리고 깊이 잠이 들어버린 임을 깨워보고 싶구나!

 

장공 구만리에---안민영(安玟英)

시조

장공구만리(長空九萬里)에 구름을 쓸어 열고

뚜렷이 굴러 올라 중앙에 밝았으니

알괘라 성세(盛世) 상원(上元)은 이 밤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장공구만리(長空九萬里)> : 드높고도 먼 하늘. 아득한 하늘.

<뚜렷이> : 뚜렷이, 둥글게.

<알괘라> : 알겠노라. 알겠도다. ‘∼애라’는 감탄종지형.

<성세(盛世)> : 흥하는 시대, 좋은 세상

<상원(上元)> : 대보름날, 음력 정월

<성세상원(盛世上元)> : 성대의 정월보름

현대어 풀이

드높고도 머나먼 하늘에 덮여진 구름을 쓸어 밀고 열어 젖기며

뚜렷이 떠올라 하늘 한가운데서 밝게 밝히고 있으니

좋은 세상의 정월 대보름날이 바로 이 밤이 됨을 알겠구나!

 

해 지고 돋는 달이---안민영(安玟英)

시조

해 지고 돋는 달이 너와 긔약(期約) 두었던가.

합리(閤裡)의 자든 꽃이 향기 노아 맡는고야.

내 어찌 매여월(梅與月)이 벗되는 쥴 몰랐던가 하노라.

어구 풀이

<합리(閤裡)> : 침방 속. 또는 협문 안, 사잇문 가까이 있는 마당

<맡는고야> : 맡는구나

<매여월(梅與月)> : 매화와 달.

현대어 풀이

어두워지며 솟아 오른 달이 너와 만날 약속이 있었더냐?

협문 가까이서 피어난 꽃이 그윽한 향기를 피우며 맞는구나!

내가 어찌 매화가 피면 달이 찾아와서 서로 벗이 되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가?

 

선으로 패한 일 보며---엄흔(嚴昕)

시조

()으로 패()한 일 보며 악()으로 인 일 본가.

이 두 즈음에 취사(取捨)ㅣ아니 명백(明白)한가.

진실(眞實)로 악()된 일 아니하면 자연위선(自然爲善)하느니.

어구 풀이

<인 일> : 이룬 일.

<본가> : 보았는가.

<즈음> : 사이

<취사(取捨)> : 취할 것과 버릴 것.

현대어 풀이

착한 일을 하여 실패한 일 보았으며 악한 일만 하여 성공한 예를 보았는가.

이 선과 악의 두 경우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을 버리느냐는 분명한 것이다

생전에 악한 일을 않으려고 노력 한다면 그 결과 착한 일을 한 것이 되리라

 

논밭 갈아 기음 매고---신희문(申喜文)

시조

논밭 갈아 기음 매고 돌통대 기사미 피워 물고

콧노래 부르면서 팔뚝 춤이 제격이라

아이는 지어자 하니 후후(詡詡) 웃고 놀리라.

어구 풀이

<기음> : 논이나 밭에 난 잡초

<기음 매고> : 김을 매고.

<돌통대> : 흙이나 나무로 만든 담뱃대. 곰방대.

<기사미> : 썰어 만든 담배. 잎담배를 잘게 썬 것, 본래 일본말인데 담배가 광해군 때에 일본에서 들어올 때 따라 들어온 말이다.

<팔뚝 춤> : 팔뚝질만 하면서 흥겹게 돌아가는 춤.

<제격이라> : 제격이니라.

<지어자 하니> : '지화자'하고 흥겨워하니, '지화자'는 가무에서 흥을 돋구기 위해 장단을 가볍게 맞추어 내는 감탄사

<후후> : '훗후' 하고 웃는 소리, 대언장담(大言壯談)하는 소리. 큰소리치며 웃는 모양.

현대어 풀이

논과 밭을 갈아서 기음을 매고, 돌통대에 썰어서 담은 담배를 채워 피워 물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팔뚝 춤을 추는 것이 제격이라 하겠다.

아이는 '지화자, 좋을시고'하고 흥을 돋우니 '허허, 하하'하고 웃으면서 즐기겠다.

 

말이 놀라거늘---무명씨

시조

말이 놀라거늘 혁() 잡고 굽어보니,

금수청산(錦繡靑山)이 물속에 잠겼어라.

저 말아, 놀라지 마라 이를 보려 하노라.

어휘풀이

<혁(革>) : 고삐

<금수청산(錦繡靑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푸른 산.

전문풀이

길 가다가 말이 갑자기 움찔 놀라기에 고삐를 잡고 아래를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니,

비단에 수놓은 듯이 아름다운 청산이 물속에 잠겨 있구나.

저 말아, 놀라지 마라. 나는 그와 같은 경치를 찾아보려고 한다.

 

물 아래 그림자 지니--- 정철(鄭澈)

시조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있거라, 너 가는 데 물어보자.

막대로 흰 구름 가리키고 돌아 아니 보고 가노매라.

어휘풀이

<물 아래> : 다음에[ 나오는 ‘다리 위’와 대구(對句)를 이루는 것인데, ‘다리 아래에 흐르고 있는 물’이라는 뜻이다.

<게> : 거기에.

<막대로> : 막대기로. 지팡이로. 스님이 짚고 다니는 긴 지팡이를 석장(錫杖)이라 부른다. 일종의 무기로도 썼다.

<가노매라> : 가는구나. ‘∼노매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전문 풀이

물 아래 그림자가 비치기에 쳐다보니, 다리 위에 중이 가는구나.

저 스님 거기 좀 서 있으시오, 그대의 가는 곳을 물어봅시다.

석장(錫杖)을 들어 흰 구름만 가리키고 돌아보지도 않고 가 버리더라.

 

나비야 청산 가자---작자 미상

시조

나비야 청산(靑山)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어구 풀이

<범나비>: 범나비. 호랑나비.

 

사랑이 어떻더니---작자 미상

시조

사랑이 어떻더니 두렷더냐 넓었더냐.

기더냐 자르더냐 발을러냐 자일러냐.

지멸이 긴 줄은 모르되 애궂을 만하더라.

어구 풀이

<어떻더니> : 어떠하더냐?

<두렷더냐> : 둥글더냐?

<발을러냐> : 발(길이를 재는 단위)로 밟겠더냐?

<자일러냐> : 재겠느냐?

<지멸이> : 매우 지루하게.

<애궂을만> : 애가 끊일 만.

현대어 풀이

사랑이란 어떠하더냐? 둥글더냐 넓적하더냐.

아니면 길더냐 짧더냐 한 발 두 발 하고 발로 잴 수 있더냐.

사랑할 때는 지루하게 긴 줄을 모르겠더니, 사랑이 끝나고 나니 창자를 끊는 듯하구나.

 

설월이 만창한데---무명씨

시조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데 바람아 부지 마라.

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을 판연(判然)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행여 긘가 하노라.

어구 풀이

<설월(雪月)> : 눈 위에 비치는 달빛

<만창(滿窓)한데> : 창문에 가득한데.

<예리성(曳履聲)> : 신 끄는 소리. 신을 끌며 다가오는 소리.

<판연(判然)히> : 아주 환하게, 아주 똑똑히

<아쉬운> : 마음에 부족함을 느낀

<행여> : 요행히, 혹시나

<긘가> : 그것인가의 준말. 그분인가.

현대어 풀이

눈 위에 비치는 달빛이 창문에 가득한데 바람아 불지를 말아라.

임이 신을 끌며 다가오는 소리가 아닌 줄을 똑똑히 알지마는

그립고 아쉬울 때에는 행여 그이인가 하노라!

 

말하기 좋다 하고---작자 미상

시조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 말음이 좋에라.

어구 풀이

<말을 것이> : 말 것이

<말 말음이> : 말하지 않음이.

<좋에라> : 좋도다.

현대어 풀이

말하기 쉽다고 남의 험담의 말을 하지 말지니

남의 말을 내가 한다면 역시 남도 내 험담의 말을 할 것이니

말로써 말이 많아지니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도다.

 

세상 사람들이---인평대군(麟坪大君)

시조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흉 보는괴야.

남의 흉 보거라 말고 제 허물을 고치고자.

어구 풀이

<성하여서> : 살아 있어서

<보는괴야> : 보는구나!

<보거라 말고> : 보려고 하지 말고

현대어 풀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입들만은 나불나불 살아서

자기의 잘못이나 흠은 아주 잊어버린 채 남의 흉만 보기에 바쁘구나!

남의 흉만 보러 들지 말고서, 제 잘못이나 흠을 고치려무나.

 

어져 세상사람---작자미상

시조

어져 세상사람 올흔 일도 못다하고

구태야 그른 일로 업슨 허믈 싯는 괴야

우리는 이런 줄 아라셔 올흔 일만 하리라

어구 풀이

<싯는괴야>: 씻는구나

 

까마귀 검으나 따나---무명씨

시조

까마귀 검으나 따나 해올이 희나따나

황새다리 기나따나 오리다리 자르나따나

평생에 흑백장단은 나는몰라 하노라

 

산중에 책력 없어---작자 미상

시조

산중(山中)에 책력(冊曆) 없어 절()가는 줄 모르노라.

꽃 피면 봄이요, 잎 지면 가을이라.

아해들 헌 옷 찾으면 겨울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책력(冊曆)> : 해와 달, 절기 등을 기록한 역서(曆書)

<절(節)> : 철

 

북소리 들리는 절이---작자 미상

시조

북소리 들리는 절이 머다한들 얼마 멀리.

청산지상(靑山之上)이요, 백운지하(白雲之下)이언마는,

그곳에 안개 잦으니, 아모덴 줄 몰라라.

어구 풀이

<천산지상(靑山之上)> : 푸른 산의 위.

<백운지하(白雲之下) : 흰 구름의 아래.

 

벽오동 심은 뜻은---작자 미상

시조

벽오동(碧梧桐) 심운 뜻은 봉황(鳳凰)을 보렷터니

내 심운 탓인지 가다려도 아니오고

밤중()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븬 가지(柯枝)에 걸녀세라.

어구 풀이

<벽오동(碧梧桐)> : 오동나무의 일종.

<봉황> : 예로부터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 봉황새는 벽오동 나무에만 서식한다고 함. 여기서는 임을 가리킴.

<보렷터니> : 보려고 하였더니.

<심운> : 싫은.

<밤중(中)만> : 밤중만.

<일편명월> : 한 조각 밝은 달.

<븬 가지> : 비어있는 가지

<걸녀세라> : 걸렸구나. 걸려 있구나. ‘-ㄹ세라’는 감탄종결어미.

현대어 풀이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함이었더니,

내가 싫은 탓인지 기다려도 임은 오지 않는구나.

밤중에만 한 조각 밝은 달이 빈 가지에 걸려있구나.

 

달다려 무로려고---작자 미상

시조

달다려 무로려고 잔()잡고 창()을 여니,

두렷고 맑은 빗츤 녜론듯 하다마는

이제는 태백(太白)이 간 후()ㅣ니 알니 업셔 하노라.

어구 풀이

<달다려> : 달더러. 달에게.

<무로려고> : 물으려고.

<두렷고> : 뚜렷하고. 또는 둥글고.

<빗츤> : 빛은.

<녜론듯> : 예스러운 듯. 옛 모양 그대로인 듯.

<태백(太白)> :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알니> : 알 사람

현대어 풀이

달에게 물어보려고 술잔을 잡고 창문을 여니

뚜렷이 비치는 맑은 달빛은 옛날 그대로인 듯 하다마는,

이제는 달을 그토록 좋아하던 이태백도 죽은 후이니 알 사람이 없어라.

 

봄이 가려 하니---작자 미상

시조

봄이 가려 하니 내라 혼자 말릴손가.

다 못 핀 도리화(桃李花)를 어찌하고 가려는다.

아희야 덜 괸 술 걸러라 가는 봄 전송(餞送)하리라.

어구 풀이

<말릴손가> : 말릴 것인가.

<도리화(桃李花> : 복숭아꽃과 오얏꽃.

<가려는다> : 가려고 하는가.

 

대붕을 손으로 잡아---작자 미상

시조

대붕(大鵬)을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워먹고

곤륜산(崑崙山) 옆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니

태산(泰山)이 발 끝에 차이어 왜각데걱 하더라.

어구 풀이

<대붕(大鵬)>: 중국 고대의 상상의 큰 새.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이 붕(鵬)이라. 붕의 등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北溟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千里也)‘라고 적혀 있다.

<곤륜산(崑崙山)> : 중국 서쪽에 있다는 전설 속의 높은 산. 티벳과 신강성 경계에 있는 산. 중국에서 가장 높은 산.

<태산(泰山)> : 중국에서 이름난 오악(五嶽)의 하나.

<왜각데걱> : 흔들흔들하는 모양. 단단한 물건이 서로 부딪쳐 소리나는 모양.

현대어 풀이

대붕을 한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워 먹고

곤륜산을 옆구리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니

태산이 발밑에서 채여 흔들흔들 하는구나.

 

목 붉은 산상치와---작자 미상

시조

목 붉은 산상치(山上雉)와 홰에 앉은 송골(松骨)이와

집 앞 논 무살미에 고기 엿는 백로(白鷺)ㅣ로다

초당(草堂)에 너희곧 아니면 날 보내기 어려왜라.

어구 풀이

<산상치(山上雉)> : 산에 사는 꿩

<홰> : 새나 닭이 올라앉도록 가로지른 나무막대

<송골(松骨)이> : 송골매. 몸매가 날씬하고 힘에 세며 동작이 날랜 사냥매

<무살미> : 물꼬의 옛말. 논물이 빠져 나가는 곳. 또는 물을 대고 써레질한 논.

<엿는> : 엿보는, 노리는.

<백로(白鷺)> : 해오라기

<초당(草堂)> : 초가로 지은 별당. 은사의 거처로서 외딴 곳에 지은 초가집

<너희곧> : 너희들

<어려왜라> : 어렵도다

현대어 풀이

모가지가 붉은 것은 산에 사는 꿩이요 횃대에 앉아 있는 것은 송골매로다.

그리고 집 앞에 있는 논 물꼬에서 고기를 엿보는 것은 해오라기로다.

외딴 곳에 있는 초가집에서 너희들이 아니면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어렵도다!

 

비는 온다마는--- 작자 미상

시조

비는 온다마는 임은 어이 못 오는고.

물은 간다마는 나는 어이 못 가는고.

오거나 가거나 하면 이대도록 설우랴.

 

말 타고 꽃밭에 드니---작자 미상

시조

말 타고 꽃밭에 드니 말굽에서 향내난다.

주천당(酒泉堂) 돌아드니, 아니 먹은 술내 난다.

어떻다 눈정에 걸은 임은 헛말 먼저 나느니.

어구 풀이

<주천당(酒泉堂)> : 술집 이름

<눈정> : 눈길로 느낀 정(情).

<걸은> : 건.

<헛말> : 소문. 거짓말. 풍문.

<나느니> : 나는가?

감상

조선시대가 아무리 형식 윤리를 강요했다 할지라도 이 시조에서 보듯 남녀의 정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정도의 의표(意表)가 있었다. 종장의 눈정에 걸은 임같은 표현이 그런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주제는 남녀의 정이 있어서도 외도적(外道的)인 것보다 정도적(正道的)인 것의 가치성을 넌지시 보이나, 감상 가치로서는 초장ㆍ중장의 표현이 묘하다. ‘말 타고 꽃밭에 드니, 말굽에서 향내 난다.’는 절창(絶唱)이다. - 이상보 : <명시조감상>(1970) -

 

건너서는 손을 치고---작자 미상

시조

건너서는 손을 치고 집에서는 들라 하네

문 닫고 들자하랴 손치는 데를 가자 하랴

이 몸이 두 몸 되어 여기저기 하리라

현대어 풀이

건너편에서는 손을 치고 오라하고 집에서는 그만 들어오라 하네.

문을 닫고 들어갈 것인가, 손 치며 오라는 곳으로 갈 것인가?

내 몸이 둘이라면 여기 저기 다 갈 것이련만.

 

어리거든 채 어리거나---작자 미상

시조

어리거든 채 어리거나 미치거든 채 미치거나

어린 듯 미친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이런가 저런가 하니 아무런 줄 몰래라.

어구 풀이

<어리거든> : 어리석거든. '어리다'는 '어리석다'의 옛말

<채> : 매우, 아주, 아예, 완전히.

<아무런 줄> : 어떤 줄. 무슨 까닭인지. 줄은 까닭, 연유의 옛말이다.

<몰래라> : 모르겠도다.

현대어 풀이

어리석거든 매우 어리석거나 미치거든 또 다 미치거나

어리석은 듯 미친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이런가 저런가 하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도다!

 

상공을 뵈온 후에--- 소백주(小栢舟)

시조

상공(相公)을 뵈온 후에 사사(事事)를 믿자오매

졸직(拙直)한 마음에 병()들까 염려ㅣ러니

이리마 저리차 하시니 백년동포(百年同抱)하리이다.

어구 풀이

<상공(相公)> : 상국(相國)ㆍ상신(相臣)과 한가지로 대신(大臣)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감사를 높여서 부른 말이다.

<사사(事事)를> : 사사건건을. 모든 일을

<믿자오매> : 믿사오니. ‘자오’는 겸칭보조어간.

<졸직(拙直)한> : 어리석고 고지식함. 옹졸하고 곧아서 융통성 없이 외곬으로만 쏠리는

<이리마 저리차> : 이렇게 하마, 저렇게 하자

<백년동포(百年同抱)하리이다> : 평생을 해로(偕老)함. 백 년까지 한가지로 안으오리다. 부부가 되어 백년해로를 하겠나이다.

현대어 풀이

상공을 뵈온 후로는 모든 일을 믿고 지내오므로,

옹졸하고 곧은 마음에 '혹시 마음을 주지 않으시면 어찌 할꼬?'하여 병이 될까 걱정이옵더니

상공께서 '이렇게 하마, 저렇게 하자!'고 그러시니, 평생을 함께 보내리라.

해설

<해동가요(海東歌謠)>에 보면, 광해군(光海君) 때 박엽(朴燁)이 평안감사로 있을 때 손님과 함께 장기를 두면서 소백주에게 시켜 지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니 상공(相公)은 상궁(象宮)이요, 사사(事事: 士士)ㆍ졸(: )ㆍ병(: )ㆍ마()ㆍ차()ㆍ포(: )로써 소리의 같음을 이끌어 중의법(重義法)으로 다룬 솜씨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당우를 어제 본 듯---소춘풍(笑春風)

시조

당우(唐虞)를 어제 본 듯 한당송(漢唐宋) 오늘 본듯

통고금(通古今) 달사리(達事理)하는 명철사(明哲士)를 어떻다고

저 설 데 역력히 모르는 무부(武夫)를 어이 좇으리.

어구 풀이

<당우(唐虞)> : 도당씨(陶唐氏)와 유우씨(有虞氏). 곧 태평성대였던 요순시대(堯舜時代). 덕으로 인민을 다스리던 요순시대를 가리키는 말

<한당송(漢唐宋)> : 문화가 화려했던 한나라ㆍ당나라ㆍ송나라. 경학(經學)이 크게 발달했던 시대.

<통고금(通考今)> : 고금을 통해. 지금과 옛적을 통하여.

<달사리(達事理)하는> :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는

<명철사(明哲士)> : 어질고 밝은 선비. 세상 형편과 사물의 이치에 밝은 선비

<저 설 데> : 제가 서 있어야 할 곳. 자기의 처지 또는 지위

<무부(武夫)> : 무사(武士). 무도를 닦아 무사에 능한 사람.

<역력히(歷歷)히> : 뚜렷이

<어이 좇으리> : 어떻게 따를 수 있으랴?

현대어 풀이

태평성대인 요순시대를 어제 본 듯하고, 문물이 화려했던 한, , 송나라를 오늘 본 듯,

고금의 모든 일에 통달하고 일의 근본 이치를 모두 달통하신 뛰어난 선비님을 어이 버려두고

앉을 데, 설 데도 잘 모르는 무식한 장군을 어이 따를 것인가?

감상

조선 성종(成宗은 자주 술자리를 베풀고 군신들과 여악(女樂)을 즐겼는데, 하루는 소춘풍(笑春風)에게 술을 따르도록 명했다. 소춘풍은 영흥(永興)의 이름난 기생(妓生)이었는 바 임금께 금배(金杯)에 술을 따라 바친 다음 영상(領相) 앞에 나아가 술잔을 들어 노래한 것이 바로 이 것이었다.

뜻인즉, 아득한 옛날에 있었던 요순시대(堯舜時代)의 역사며 한ㆍ당ㆍ송에 이르도록 모르는 일이 없는 똑똑한 선비님들을 어찌 마다 하고 저렇듯 제 설 자리도 분간 못하는 어리석은 무관(武官)들을 따르겠느냐고 한 것이다.

이는 무부(武夫)를 얕잡고 문신들을 추켜세워 그 뜻에 영합하는 것이었으므로 문관들은 득의만만하였으나, 무사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자못 심상치 않았다. 이에 춘풍은 또 한 잔을 무부(武夫) 앞에 나아가 따르면서,

전언(前言)은 희지이(戱之耳)라 내 말씀 허물 마오.

문무일체(文武一體)인 줄 나도 잠깐 아옵거니,

두어라, 규규무부(赳赳武夫)를 아니 좇고 어이리.

라고 읊어 그 얼음짱 같았던 노여움을 봄눈 녹이듯 사그라지게 하였다. 그 뜻은,

앞서 한 말은 희롱삼아 한 것뿐이니 내 말씀을 탓하지 마시오.

문신과 무신이 다 같은 준재인 줄 나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으려니와

씩씩한 무관들을 따르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도 대국(大國)이요 초()도 역대국(亦大國)이라.

조그만 등국(騰國)이 간어제초(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이 좋으니 사제사초(事齊事楚)하리라.

고 결론지었다. 곧 자기를 소국(小國) 등나라로 견주고, 문무신을 각각 제()와 초() 나라에ㅐ 비유하여 둘 다 섬기겠다고 했으니, 만당(滿堂)은 화락(和樂)의 극에 이르렀다. 이에 성종은 매우 기뻐하고 많은 비단과 호표피(虎豹皮) 등을 상급(賞給)했으니, 이로써 온 나레에 그 이름이 크게 떨쳤다고 한다. [차천로(車天輅)<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

과연 한낱 기생으로 지존(至尊) 앞에 나아가 문무백관들을 떡 주무르듯 다루던 소춘풍의 재주도 놀랍지만, 흉허물 없이 한데 어울리던 태평성대의 조정 풍경이 장관(壯觀)이었다 할 것이다. - 이상보 : <명시조감상>(1970) -

 

꿈에 뵈난 님이---명옥(明玉)

시조

꿈에 뵈난 님이 신의(信義)업다 하것마난

탐탐(貪貪)이 그리올 졔 꿈 아니면 어이보리.

져 님아 꿈이라 말고 자로자로 뵈시쇼.

어구 풀이

<뵈난> : 보이는.

<신의(信義)> : 믿음과 의리. 연분이라고 된 곳도 있다.

<탐탐(貪貪)이> : 탐탁히. 절실히. 알뜰살뜰히, 마음에 들어맞게

<어이보리> : 어찌 만나볼 수 있으랴.

<자로자로> : 자주자주

<뵈시쇼> : 뵙게 해 주십시오.

현대어 풀이

꿈에 뵈는 임은 생시가 아니고 꿈인 까닭에 의리도 미더움도 없다고 하지마는

만나 보지 못하여 마음에 몹시 그리울 적에 꿈에서가 아니면 어떻게 만나 보겠는가?

그리운 임이여, 꿈이라도 좋으니 자주자주 보이소서!

 

매화 옛 등걸에---매화(梅花)

시조

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들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염즉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하여라.

어휘풀이

<매화> : 자기의 이름과 꽃의 이름을 이중(二重)의 뜻이 되게 한 중의법(重義法).

<춘절(春節)> : 봄철.

<옛 등걸> : 자기의 늙어진 몸과 고목나무가 된 매화의 이중의 뜻을 지닌 중의법(重義法).

<피염즉도> : 필 것 같기도.

<춘설(春雪)> : 봄철에 내리는 눈.

<난분분(亂紛紛)> : 어지럽게 흩날리는 모양.

<필동말동하여라> : 필 듯 말 듯 하구나.

현대어 풀이

매화나무 해묵은 늙어진 몸의 고목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날에 피었던 가지에 다시 꽃이 필 것 같기도 하지만,

뜻 아니한 봄철의 눈이 하도 어지럽게 펄펄 흩날리니 꽃이 필지 말지 하구나.

해설

지은이는 <해동가요(海東歌謠)>에 명기구인(名技九人)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시조는 매화(梅花)라는 기생이 유춘색이라는 사람이 평양감사로 부임해 매화와 가까이 지냈으나 나중에는 춘설(春雪)이라는 기생(妓生)을 가까이 하자 매화(梅花)가 원망하며 지었다는 유래가 전해지는 작품이다. 늙은 기녀(妓女)가 매화(梅花)에 붙이어 자탄(自歎)한 노래이다.

 

솔이 솔이라 하니---송이(松伊)

시조

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는다.

천심절벽(千尋絶壁)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樵童)의 접낫이야 걸어 볼 줄 있으랴.

어구 풀이

<솔이> : 소나무. 여기서는 지은이의 이름을 기리킨다.

<솔이 솔이라> : 소나무라 소나무라. 송이(松伊)라는 작자의 이름과도 통한다.

<여기는다> : 여기느냐?

<솔만 여기는다> : 솔로만 여기는가?

<천심절벽(千尋絶壁)> : 심(尋)은 8척(尺)의 길이, 또는 사람의 한 길. 천 길이나 되는 절벽

<낙락장송(落落長松)> : 가지가 축축 늘어진 큰 소나무

<긔로다> : 그것이로다

<초동(樵童)> : 나무하는 아이.

<접낫> : 작은 낫

현대어 풀이

소나무다, 소나무다 하니 어떤 소나무인 줄로만 여기는가?

천 길이나 높은 절벽 위에 솟아 있는 굵고 큰 소나무, 그것이 바로 나로다!

길 아래로 지나가는 나무꾼 아이들의 풀 베는 작은 낫 따위로야 이런 나무에다 걸어 볼 도리가 있겠느냐?

 

산촌에 밤이 드니---천금(千錦)

시조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 뎃 개 짖어 운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空山) 잠든 달을 짖어 무삼히리요.

어구 풀이

<산촌(山村)> : 산마을

<먼 뎃 개> : 먼 곳의 개.

<시비(柴扉)> : 사립문

<무삼하리요> : 무엇하겠는가?

해설

이 시조는 신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기녀(妓女) 천금(千錦)이 빈 하늘의 무심한 달을 보고 짖는 개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킨 작품이다.

개 짖는 소리를 듣고 혹시 임이 오는 소리가 아닌가 하고 허둥지둥 사립문을 열어 보는 안타까운 여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개 짖는 소리와 달의 대비는 청각과 시각의 미묘한 대비로서 여인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다.

 

고시조 - 엇시조.사설시조

갈 제는 오마터니---김두성(金斗性)

시조

갈 제는 오마터니 가고 아니 오매라.

십이난간(十二欄干) 비장이며 임 계신 데 바라보니 남천에 안진하고 서상에 월락토록 소식이 끊져졌다.

이 뒤란 임이 오셔든 잡고 앉아 새오리라.

어구 풀이

<오마터니> : 오겠다 하더니

<오매라> : 오는구나.

(십이난간(十二欄干)> : 열두 굽이나 되는 난간.

<바장이며> : 부질없이 왔다갔다 하며

<안진(雁盡)> : 기러기가 다 날아가서 보이지 않음.

<서상(西廂)> : 서쪽에 있는 마루.

<오셔든> : 오시거든.

현대어 풀이

떠나갈 적에는 얼른 다녀오겠다 하시더니 가서는 오지 않는다.

열두 굽이나 꺾인 난간을 거닐면서 임이 가 계시는 곳을 바라보니, 남쪽 하늘에는 기러기조차 다 날아가 버리고 서쪽 마루에 달이 지도록 소식이 없다.

이 뒤에 임께서 오시거든 꼭 붙잡고 앉아서 밤을 꼬박 새우겠노라!

 

눈 풀풀 접심홍이요---김영(金煐)

시조

눈 풀풀 접심홍(蝶尋紅)이요 술 튱튱 의부백(蟻浮白)

거문고 당당 노래하니 두룸이 둥둥 츔을 츈다.

아희야 시문(柴門)에 개 즞즈니 벗 오니나 보아라.

어구 풀이

<접심홍(蝶尋紅)> : 나비가 꽃을 찾음. ‘홍(紅)은 꽃. 눈이 풀풀 내리는 것에 비유함.

<튱튱> : 충충. 맑지 못함.

<의부백(蟻浮白)> : 개미가 뜬 듯한 술, ‘白’은 술을 가리킴. 술이 충충하여 마치 개미가 뜬 듯하다는 말.

<두룸이> : 두루미.

<시문(柴門)> : 사립문

현대어 풀이

눈이 풀풀 날리는데 나비는 꽃을 찾고 술 빛깔이 맑지 못하고 충충한 개미가 떠 있다.

거문고를 당기당 치면서 노래를 부르니 두루미는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아이야 사립문 밖에 개가 짖으니 벗이 오나 보다. 급히 가서 만자 오도록 하여라!

 

웃는 양은 닛밧에도---작자 미상

시조

웃는 양()은 닛밧에도 죠코 할긔는 양()은 눈씨도 더욱 곱다.

안거라 서거라 것거라 닷거라 온갖 교태(嬌態)를 다 해여라 허허허 내 사랑(思郞) 되리로다.

네 부모(父母) 너 상겨 내올 쩨 날만 괴게 하로다.

어구 풀이

<웃는 양은> : 웃는 모습은

<닛밧에> : 잇바디(齒列). 잇속. 또는 이빨.

<할긔는> : 흘기는

<눈씨> : 노려보는 시선의 힘, 혹은 눈매. 눈맵시.

<닷거라> : 닫거라. 달리거라.

<교태(嬌態)< : 아양부리는 태도.

<해여라> : 하여라

<상겨 내올 쩨> : 생겨 낼 때

<괴게> : 사랑하게

<하로다> : 한 것이로다.

현대어 풀이

웃는 모습에 잇속도 좋고, 흘기는 모습은 눈매도 더욱 곱다.

앉거라, 서거라, 걷거라, 달리거라, 온갖 교태를 다하여라. 허허허, 나의 사랑이 되겠도다.

네 부모가 널 낳을 때 나만 사랑하게 한 것이로다.

 

나무도 바윗돌도 없은 뫼에 - 작자미상

시조

나무도 바윗돌도 없은 뫼에 매에게 쫓긴 가토리 안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도 끊고 돛대고 꺾고 키도 빠지고 바람불어,물결치고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만리 남은데 사면 거머어둑 저문 천지 적막 가치놀 떴는데 수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엊그제 님 여읜 내 안이야

얻다가 가을 하리요

어구 풀이

뫼 : 메. 산.

가토리 : 까투리, 암꿩. 수꿩은 '장끼'라 부른다.

안 : 속. 마음.

대천 바다 : 큰 바다. 넓은 바다.

용총(龍總) : 돛대에 달린 굵은 밧줄.

거머어둑 : 어두컴컴.

저문 천지 : 해가 지고 저물어서 을씨년스러운 세상.

가치놀 : 폭풍우가 일기 전의 저녁때 서쪽 하늘에 지는 놀.뱃사람들은 이것을 몹시 무서워한다.

수적(水賊) : 해적(海賊).

도사공(都沙工) : 사공의 우두머리. 도(都)는 장(長) 또는 총(總)의 뜻.

님 여읜 : 님을 이별한.

얻다가 : 어디에다가.

가을 하리요 : 한계를 정하리요. 무엇으로 구별할 것인가.

감상

사랑하는 님을 여읜 후, 안타까고 애절한 심정을 감출 길 없는 것을 매에게 쫓긴 까투리와 파선(破船) 직전의 절박한 상황 속의 도사공(선장)의 마음에다가 비유하여 사설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시조의 기본 율격에 제한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늘어놓는 것이 사설시조인데, 산문적 ·서사시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사설시조에서 보편적인 것은 수다와 익살이다. 지은이는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을 곧잘 총동원하는데,그 수다는 대개 익살로 나타나 우리 평민문학의 해학성(諧謔性)이라는 한 흐름을 이룬다.

 

님이 오마 하거늘---작자 미상

시조

임이 노마 하거늘 저녁밥을 일 지어 먹고 중문 나서 대문 나가 지방 우에 치달아 앉아 이수로 가액하고 오는가 가는가 건넌 산 바라보니, 거머흿돌 서 있거늘 져야 임이로다.

버선 벗어 품에 품고 신 벗어 손에 쥐고 곰븨님뵈 님븨곰븨 천방지방 지방천방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말고 위렁충창 건너가서 정엣말 하여 하고 곁눈을 흘깃 보니 상년 칠월 사흗날 갉아 벗긴 주추리 삼대 살들이도 날 속여라.

모처라 밤일싀만정 행혀 낮이런들 남 우일 번하괘라.

어구 풀이

<일> : 일찍.

<지방> : 문지방.

<치달아> : 치올라.

<이수로(以手)로 가액(加額) : 손으로 이마를 가림.

<거머흿돌> : 검은 빛과 흰 빛이 뒤섞인 모양.

<저야> : 저것이야말로

<곰븨님븨> : 거듭거듭. 엎치락뒤치락.

<천방지방> : 허둥거리는 모양. 천방지축(天方地軸).

<위렁충창> : 급히 달리는 발소리.

<정엣말> : 정다운 말.

<상년(上年)> : 지난해

<주추리> : 삼대의 줄기.

<모처라> : 아서라.

<밤일싀만정> : 밤이었기에망정이지.

<우일 번하괘라> : 웃길 뻔했도다.

현대어 풀이

님이 오겠다고 하기에 저녁 밥을 일찍 지어 먹고 중문을 나와서 대문으로 나가, 문지방 위에 올라가서, 손을 이마에 대고 임이 오는가 하여 건너산을 바라보니, 거무희뜩한 것이 서 있기에 저것이 틀림없는 임이로구나.

버선을 벗어 품에 품고 신을 벗어 손에 쥐고, 엎치락뒤치락 허둥거리며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우당탕퉁탕 건너가서, 정이 넘치는 말을 하려고 곁눈으로 흘깃 보니, 작년 73일 날 껍질을 벗긴 주추리 삼대(씨를 받느라고 그냥 밭머리에 세워 둔 삼의 줄기)가 알뜰하게도 나를 속였구나.

마침 밤이기에 망정이지 행여 낮이었다면 남 웃길 뻔했구나.

 

귀또리 져 귀또리 - 작자 미상

시조

귀또리 져 귀또리 어엿부다 저 귀또리

어인 귀또리 지난 달 새난 밤의 긴 소래 쟈른 소래 節節(절절)이 슬픈 소래 제 혼자 우러 녜어 紗窓(사창) 여왼 잠을 살뜨리도 깨오난고야.

두어라, 제 비록 微物(미물)이나 無人洞房(무인동방)에 내 뜻 알리는 너뿐인가 하노라.

어구 풀이

우러 녜어 : 계속해서 울어. 울며 다니어.

사창(紗窓) : 젊은 여인의 침실

여왼 : 여윈 잠. 살풋 든 잠. 선잠.

살뜨리도 : 알뜰하게도. 잘도. 이 말은 '얄밉게도'란 뜻의 반어적으로 표현.

미물 : 보잘 것 없는 벌레. 작은 벌레.

무인동방(無人洞房) : 임이 없는 여인의 방. 홀로 외롭게 자는 방. 독수공방. 임이 없는 외로운 빈 방.

현대어 풀이

귀뚜라미, 저 귀뚜라미, 가련하다 저 귀뚜라미

어찌 된 귀뚜라미이기에 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마디마다 슬픈 소리로 저혼자 계속 울어 규방에서 살짝 잠이 든 나를 알뜰하게(확실하게)도 깨우는구나.

두어라, 네 비록 미물이지만 임 없는 외로운 밤의 내 심정 알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물레는 줄로 돌고---작자 미상

시조

물레는 줄로 돌고 수레는 바퀴로 돈다.

산진이, 수진이, 송골매, 보라매들이 두 날개를 옆에 끼고 태백산 허리를 안고 도는구나.

우리도 그리운 임을 만나 서로 안고 돌아갈까 하노라.

 

바둑이 검둥이 청삽사리---작자 미상

시조

바둑이 검동이 청삽사리중(靑揷沙里中)에 조 노랑 암캐 치 얄믭고 잣믜오랴.

믜온 임() 오게 되면 리를 회회 치며 반겨 닷고 고은 임() 오게 되면 두발을 벗듸고 코그리며 무르락 나오락 캉캉 즛요 노랑 암캐

잇틋날 문()밧긔  장사(匠事) 가거드란 찬찬 동혀 야 쥬리라.

어구 풀이

<청삽사리(靑揷沙里)> : 털이 긴 검은 개. ‘청삽살이’의 한자 표기.

<조> : 저

<얄믭고> : 얄밉고.

<잣믜오랴> : 잔미우랴. 매우 밉다. ‘잣’은 ‘細’에서 온 접두사. ‘얄맙다’와 같음.

<믜온 임> : 미운 임.

<닷고> : 내달리고. 달려나가고.

<코> : 콧살.

<무르락 나오락> : 개가 물려고 위협하는 모양.

<즛> : 짖는.

<잇틋날> : 이튿날.

<문밧긔> : 문 밖에

< 옵> : 개 삽시다. 개를 파십시오.

<웨> : 외치는

<찬찬> : 칭칭.

<동혀 야> : 동여매어.

<야 쥬리라> : 내어주리라. 팔아버리리라.

현대어 풀이

바둑이, 검둥이, 청삽사리 중에 저 노랑 암캐같이 얄밉고도 미울 수가 있으랴.

보기 싫은 미운 사람이 오게 되면, 꼬리를 회회치며 반겨하여 내달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오게 되면, 두 발을 뻗대고 콧살을 찡그리며 무르락 나오락하며 컹컹 짖는 요 노랑 암캐 녀석.

다음날 문 밖에서 개 삽시다하고 외치는 장수가 지나가거들랑 요녀석을 칭칭 동여 내어주리라.

 

두터비 파리 물고---무명씨

시조

두터비 파리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서서

건넌산 바라보니, 백송골(白松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덕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 지빠지거고,

모쳐라, 날랜 낼싀망정 어혈(瘀血)질 번하괘라.

어휘풀이

<두터비> : 두꺼비

<백송골(白松骨)> : 흰 송골매

<모쳐라> : 아차.

<낼싀망정> : 나라고 할지라도.

<어혈(瘀血)질> : 타박상으로 피부에 피가 맺히는 병, 곧 피멍이 질.

<번하괘라> : 뻔하였도다.

현대어 풀이

두꺼비가 파리를 물고 거름더미 위쪽으로 향하여 달려 올라가 서서,

먼 건너 산을 바라보니 무서운 흰 송골매가 떠 있거늘 가슴 끔찍하여 갑자기 펄쩍 뛰어나가다가 거름더미 밑에 굴러 떨어졌구나.

아차! 동작이 날랜 게 나였으니 망정이지 혹시 둔했더라면 다쳐서 멍이 들 뻔하였도다.

 

참고서적

 

 

 

 

'한글 文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금강 기행문  (2) 2023.02.25
나의 고향- 전광용  (0) 2023.02.24
깨어진 그릇 - 이항녕  (0) 2023.02.24
기미독립선언서  (1) 2023.02.24
고인(古人)과의 대화(對話)-이병주  (2) 2023.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