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행 메모는 후일의 기억에 도움주고자 지극히 개인적인 일과 생각을 적은 것이므로 별로 읽을 거리가 되지 못할 터입니다.
2020-02-09 1일차
4시20분 스님의 승용차를 타고 진주로 출발.
장남기, 제혜정불자님이 이미 트라제 차에 타고 계셨다.
5시45분 개양에서 대성여객 리무진으로 인천공항으로 출발. 5명.
박영진 여행자보험 7만여원.
박영진 2주 로밍비용 3만원.
12시 45분 델리행 대한항공 출발.
기내식 1차 해물볶음밥 2차 샌드위치.
6시30분 델리공항 도착.
소형 택시에 가방을 가득 싣고 곡예운전을 하며 먼지속에 호텔스타 도착.
인도의 차는 운전대가 모두 오른쪽에 있음. 양쪽운전대를 허용하는 몽골과는 다른 느낌.
샤워물 안됨. 대야도 없음. 화장실에 물컵,치약 치솔도 없음.
아 이게 배낭여행이구나 마음을 다잡아 먹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듦.
좀 서늘한 날씨이기는 하나 이 맘때 인도 기온은 하루에 1도씩 올라간다고 하니 추위나 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인도는 통합된 가족법이 없기 때문에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 무슬림은 일부다처제와 트리플 탈라크("이혼"을 세번외치면 이혼이 되는 제도)가 적용된다고 함.
2020-02-10 2일차
6시 기상
간디공항에서 고락푸르행 수속 후 8시 30분 samosa등 현지식
9시30분 출발 예정 비행기가 약 34분 연발함.
기내 커피는 유료, 물은 무료.
고락푸르공항에 도착.
국경지역 Sonauli(쏘나울리)로 가는 버스를 못타서 한참 헤매다가 지프를 잡았으나 너무 비싸서 취소함.
취소 후 다른 지프를 싼 값에 흥정했는데도 취소한 지프기사가 흥정기사에게 시비하고 방해하는 현상이 벌어짐. 결국 흥정기사를 고용하여 국경까지 가기로 함. 가는 도중에 계란 스크램블과 식빵튀김을 휴게소에서 먹고 인도 차 짜이를 시음함.
국경의 월경사무소에서 입국신고를 하고 네팔로 가서 비자를 받음.
1인당 비자요금 30불.
버스로 한참 대공사중인 비포장도로를 거쳐서 룸비니에 도착함.
no chemical 네팔산 차이를 한 잔하고 걸어서 절로 가려하였는데 3륜 릭샤의 권유에 따라 승차 入寺함.
룸비니 사원안에 있는 korean temple 대성석가사에 투숙함.
룸비니 사원은 세계불교계의 지원으로 부지가 조성되어 각 불교국가의 절들이 설치되어 있고, 대성석가사도 그 중의 하나로서, 모든 사찰은 100년간 사용후 네팔국가에 환원해야 한다고 함.
투박한 침대 4개가 각 방에 있고 나무막대로 된 옷걸이, 최소한으로 절제된 내무반식 숙소가 수십개 준비된 사찰임. 과거에 한국인 투숙객이 많았더는 것을 알 수 있음.
여름엔 모기가 많은지 침대옆에 모기장이 설치되어 있음.
저녁식사는 낮에 사 두었던 과일로 대체하고 4명이 팩소주 2병으로 회식함.
스님은 본절에서 숙식한다고 함.
2020-02-11 3일차
3시반 도량석에 기상.
예불 참여. 4만원 불전.
5시50분 공양함. 한국식 밥과 반찬으로 식사하고 식기는 직접 세척하고 반납함.
현지식 점심 식사를 인공호수 옆 식당에서 마침.
룸비니 사원내 인공호수에서 보트 탑승.
13시 마야데비사원(mayadevi temple)에서 싯다르타의 족적 관람.
사실인지는 미지수지만 경건하기로는 그 이상임.
devi는 女神을 가리키는 말.
마야데비사원이 보이는 보리수밑에서 예불 올림.
입장료 4인 2,000루피. 자국인은 20, 인도인 50, 기타 500루피
아쇼카석주 관람 독일 사학자가 이것을 보고 4대성지의 하나임을 고증했다 함.
아쇼카왕은 마우리아 왕조의 불교 중훙의 왕으로 4대 성지에 이 석주를 세웠다 함
대성석가사는 대각회에서 운영하는 사찰인데 조계종에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듯하다는 스님 말씀.
5시 50분 석가사에서 석식. 김치 첨부됨
2020-02-12 4일차
조식을 5시 50분에 시작.
6시30분 대성석가사 출발 고락푸르로 향함.
인도와 네팔의 길가엔 개들이 엄청 많음. 잘 먹지 못해서인지 앙상한 몸매로 뛰어 다니는데 내가 본 것은 모두 수컷이었음.
소나울리 가는 차를 반대방향으로 타서 중도에서 내림.
네팔 사람들이 길가에서 설록차 티백크기의 가루를 사서 먹는 것을 보고 스님께 물어보니 마리화나 비슷한 환각제로서 인도와 네팔에선 금하지 않는다고 함.
봉지에 과용하면 몸에 나쁘다는 듯한 사진이 섬뜩하게 인쇄되어 있음. 인도에선 자주 보이지 않았는데 네팔에선 매우 성행하는 듯.
반대방향으로 버스를 바꾸어 타고 소나울리 도착
출국신고, 입국검사 마치고 인도로 입국. 입국신고 마치고 어제 사용하고 예약한 지프기사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음.
한참 기다려서 고락푸르행 버스 승차.
고락푸르 도착.
고락푸르에서 쿠시나가르(Kushinagar)행 버스 탑승. 자리가 너무 비좁아서 서서 가기로 함.
휴게소에서 노상방뇨. 화장실은 있으나 거의 대부분 남자 승객은 노상방뇨함.
부처님 열반성지 쿠시니가르에서 nirvana temple(열반당)에서 배불.
열반당 뒤의 뾰족한 건물은 사리탑이 아니라 아쇼카석주가 여러번 개축하여 커진 것이라는 스님 설명.
열반당을 향하여 나무그늘에서 생수와 과일등을 진설하고 예불 올림.
과일등으로 점심 때움.
버스를 타고 고락푸르(Gorakhpur) 기차역으로 출발. 인도에선 장유유서를 잘 지켜 자리를 양보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
어른이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종용하는 모습도 자주 봄.
기차역에서 2시간반 기다려서 10시반 차 타기로 함. 역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담요를 펴고 누운 승객으로 가득 참. 우리도 자리를 깔고 2시간여 기다림.
술 취한 사람은 전혀 보지 못함.
기차는 침대가 설치되어 가로로 마주보며 3층 세로로 2층 합계 8명이 한 부스에 입실함.
슬리퍼 클래스로서 인터넷 검색요금은 200루피
시트와 담요, 수건이 제공됨.
열차내에서 소주 1잔 홀짝함.
2020-02-13 5일차
4시반에 바라나시역에 도착하여 게스트 하우스 "온도ㅡondo"에서 라면 식사.
갠지스강가에서 일출을 봄.
우기에는 수위가 엄청 높아진다고 하는데 가히 놀라울 지경.
갠지스강변 뒷골목엔 소와 개들이 지천으로 똥을 싸고 놀고 있음.
소와 개들은 주택에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삶.
목줄이 없는 개는 주인이 없다는 선재의 말에 충격.
이 많은 개가...
바라나시는 골목과 강과 가트의 특징이 있다고.
모나리자 카페에서 커피 빵으로 조식.
1차 정산 추가경비 1인당 150불 지급.
오늘 하루는 일정이 비어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행동하기로 하고 스님에게서 1인 1천루피씩 받음.
chartter box hostel에 여장을 풀고
바라나시 구경에 나섰으나 소똥,개똥이 골목에 지천이고 강가에는 보트승선 호객행위로 피곤하고 도로에선 릭샤(rickshaw) 호객행위가 극성임. 곳곳에 적선을 바라는 구걸행위가 성행함.
상류와 하류 두 곳에서 화장을 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강물로 목욕하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 물병에 받아가는 사람등등 안산인해임.
평일이고 성수기도 아닌 듯한데 갠지스강에 모이는 사람의 수효로 보아 인도의 힌두교도에게 ganga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점심은 "온도"에서 비빔밥과 감자전, 맥주로 해결함.
오후에 휴식하고 5시에 보트로 바라나시 (varanasi)유람에 나섬.
"선재ㅡ온도의 주인. 동국대에서 한국어 공부하고 한국여자와 결혼한 청년. 여자는 온도의 주방장"의 자세한 설명으로 바라나시 강가의 사원, 힌두교 개괄, 갠지스 화장문화, 캐스트 제도등을 이해하게 됨.
캐스트제도는 착취와 불평등의 제도라고 알고 있었는데 선재의 말로는 불평등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고 함.
브라만과 수드라도 같은 학교에서 교육받는 것이 그 예라고 한다.
된장찌개 저녁을 온도에서 먹고 치킨을 숙소로 갖고 와서 먹고 취침함.
2020-02-14 6일차
아침 일찍 강가(ganga)-갠지스별칭 에서 차이(우유,홍차로 만든 차)를 마심.
모나리자 독일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
과일시장 다녀 오는 길에 "baba lassi" 라는 집에서 인도음료 플레인라씨(plain lassi) 시식. 맛이 시원하며 새콤하다.
박불자 제불자 편한 인도 바지 1개 득템
한국엔 잘 없는 꽈리 사다 먹음
온도에서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
오후 3시 강가에 나가서 목욕 실시ㅡ힌두교도는 갠지스를 신성시 하여 씻고, 먹고, 기도하고, 화장하는 등 온갖 행위를 여기에서 한다고 함.
저녁에 강가에서 노젓는 보트를 타고 93개의 Diaㅡ꽃 장식된 촛불ㅡ 를 띄우고 소원을 빎.
온도에서 김치찌개로 저녁 식사.
화장실에 휴지가 없고 조그만 바가지가 있는것은 손을 이용한다는 것이라고...
2020-02-15 7일차
chatter box hostel에서 5시 기상.
술을 마시지 않으니 속이 편함.
강가에서 차이 마심.
ghat(강가에 있는 계단)에 앉아서 맞은편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는 것이 장관.
비둘기에 모이 주고 강물에 헌화하는 사람 발견.
가난하여도 신에게 貢物을하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 듯함.
아침에 골목을 나가보면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마구 골목에 내다 버리고 개똥, 소똥이 널려 있는데
개, 소,원숭이등이 음식물을 먼저 골라먹고 청소하는 사람이 청소를 하는 듯 함.
소는 시바신의 상징이라 숭배한다고.
모나리자 레스토랑에서 빵으로 조식.
바라나시에서 40분정도 택시로 이동하여 최초설법지 싸르나쓰ㅡ초전법륜지ㅡ에 도착함.
stupa를 5바퀴 돌고 나무그늘에서 예불함.
부러진 아쇼카 석주 관람
강가세러모니 아르띠 뿌자(arti pujaㅡ 불의 제사)관람.
선재집 2층에서 인도 전통식 대접받음.
세상에서 가장 후한 대접이 집에서 요리하여 대접하는 것이라 했으니 선재의 후의가 고마울 뿐.
달이 나오고 후식으로 요거트가 나옴. 손으로 먹어야 하지만 한국인임을 감안하여 숟가락을 제공해주네요.
식물성 재료만으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다는 것을 느끼다.
온도에서 치킨 시식
2020-02-16 8일차
6시 잠자는 선재를 번거롭게 하지 않고자 연락하지 않고 바라나시역으로 출발.
부다가야 기차 출발직전 선재내외 어떻게 알았는지 역으로 환송나옴.
침대열차로 4시간 여정 출발. 12시쯤 보드가야역에 도착.
보드가야역에서 릭샤로 티벳사원으로 출발.
뒤의 차가 출발을 재촉하는 바람에 침낭을 허술히 실어서 이동중에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다가 내릴 때에야 1개가 없어진 줄 알게 됨.
숙소(티벳 템플)에 도착하여 비질하고 밀대질하여 먼지 투성이 숙소를 그런대로 수습함.
마하보리사원(mahabodhi temple) 가는 길에 lassi corner에서 인도 정식을 맛봄. 손은 쓰지 않고 숟가락과 포크로..
인도 음식에는 부침개 같은 도사(dosa), 커리, 소스인 달(dal)을 밥,국수와 함께 먹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음.
사원입장은 무료이고 휴대폰 소지가 금지됨.
어마 어마한 방문객 숫자에 놀라고 탑의 웅장 화려함에 놀라고 불교도의 신심에 놀라는 계기가 되었다.
대탑내의 불상을 친견하고 나와서 3회 순회후 아쇼카 석주 밑쪽에서 예불을 하였다.
예불후 금강좌 뒤쪽 보리수 밑에서 한국 스님 몇 분을 앞에 앉히고 신도들을 뒤에 앉히고 설법하는 소위 큰 스님 한 분을 보았다. 아함스님께 여쭤보니 修彿스님이라 한다.
세계의 온갖 세속인과 승려가 앞을 다투어 빈부를 가리지 않고, 원근을 가리지 않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여서 오체투지, 염불, 기타 별별 기도를 올리며 본사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찬송하고 기원하는 마당에서 본사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聖地를 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법문을 하고 있으니 '그는 이미 다 이룬 것인가', '부처님 성도의 자리에서 설법할 정도로 자신의 수행은 끝난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세계 각국에서 오신 여러 스님들처럼 염불하거나, 독경하거나, 오체투지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고자 힘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본사 석가모니께서도 아집과 교만을 경계하라 하셨는데,
큰 스님이라니 무엇이 크다는 말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厚顔無恥心이 크다는 말인가?
라씨코너에서 석식하고 숙소로 와서 맥주로 목축이고 취침하다. 제공된 이불을 털어 보니 군대 모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먼지가 발생.
어쨌든 벌레같은 것만 없으면 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바꿈.
인도에선 허가없이 술을 팔면 처벌된다고 하며 비밀리에
판매한다며 맥주 3캔과 간단한 안주에 20불을 요구함.
2020-02-17 9일차
늦게 기상.
우리 숙소는 티벳 템플이라고 한다는데 증축중이며 몇 명의 스님이 거주하고 있음.
모기가 많아서 모기향을 피움.
라씨 코너에서 고수 들어간 수제비 같은 현지식과 플레인라이스(plain rice)로 식사.
마하보리사원으로 가는 도중 숙소로 다시 갈 일이 생겨서 장불자님과 함께 무동력인력거(cycle rickshaw)를 200루피에 왕복함. 약 6천원정도 .
2인이 타면 各人當 요금을 계산하는 것이 인상적.
마하보리사원에 가서 금강좌 앞에서 기도함.
다음은 마하보리사원 본당의 자료.
"6평쯤 되어 보이는 법당에는 서쪽 벽면에 약 1m쯤의 불단을 마련하여 부처님을 한 분 모셨다. 원래 사원에 모셨던 불상은 회교도의 인도 침략 때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637년 경 이곳을 방문했던 현장 스님의 기록에 의하면 법당에서 친견했던 불상의 높이가 11자 5치(3.5m)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불상 보다는 훨씬 컸었나 보다. 현재 아름다운 불상은? 마한트의 힌두 사원에 버려져 있었던 것을 모셔왔다고 한다.? 불상의 높이는 약 1.8m이며 9-10세기 팔라 왕조 시대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불상은 검은 돌로 만들었으나, 불멸 2500년 대제(大祭) 때에 미얀마의 한 불자의 시주로 개금을 했다고 한다. 안내서에는 모든 마군(魔軍)을 항복받고 성도(成道)를 이루시던 때의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고 있다고 되어 있으나, 황금빛 가사를 덮어두어 알 수가 없다
이 본존불은 13세기의 작품이다.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형상은 부처가 성도를 이루려 하실 때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음을 증명코자 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땅에서 지신이 나와 그 증인이 되어 준 것을 상징한 것이다"
금강좌의 발자국은 너무 커서 현실성이 결여되어 보임.
기도 도중에 시든 보리수 잎이 바람에 떨어지면 그 많은 사람들이 잎을 서로 주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失笑.
정안탑앞에서 기도함.
곳곳의 시주함(donation box)에서 헌금을 꺼내서 포대에 담아서 사원의 직원들이 어디론가 가져 가는데 37포대까지 세어 보았다는 박불자님의 傳言.
어제 주말을 지냈으니 오늘 수금해서 은행에 입금하는 것으로 보임.
수금은 여러 사람의 입회하에 하고 수금후에 시주함을 봉인하는 것을 봄.
3시가 넘어서 간식으로 점심을 때움.
숙소로 오는 도중 트럭에 개들을 많이 실어 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천지 사방에 돌아 다니는 주인없는 개들을 포획해 가는 것인 듯 함.
라씨코너에서 현지식으로 석식하고 이웃에 있는 general store에서 양주1병 375cc를 25불에 구입하여 숙소에서 마심.
2020-02-18 10일차
티벳사원에서 늦게 기상
조식을 라씨코너에서 하고 7선정처를 찾아보기로 함.
7선정처는 인터넷 자료를 옮겨 놓는다.
1.대보리수
처음 일주일은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 아래(보리도량)에 그대로 머물면서 12연기를 차례로 되새겼다. 무명으로부터 노사에 이르기까지, 또 그 역순으로 여러 차례 12연기를 관찰하면서 깨달음의 요체인 연기의 진리를 완벽하게 정리해냈다. 또한 선정에 들어있는 동안 붓다는 시방세계의 모든 불보살들이 모인 가운데 법회를 열어 우주의 이치를 꿰뚫은 『화엄경』을 설했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깨달음을 이룬 후 『화엄경』을 설한 최초의 3·7일(21일)을 화엄시(華嚴時)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보리수는 부처님 당시의 보리수는 아니다. 그때의 보리수는 1876년에 거대한 폭풍우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어 버렸다. 그곳에 다시 보리수를 심기로 하고 부다가야 보리수의 직계 자손이 되는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 묘목을 가져 왔다. 지금으로부터 2350여년 전에 아쇼카 대왕의 공주였던 상가밋타 비구니가? 역시 아쇼카 대왕의 왕자인 오빠 마힌다 비구를 따라 스리랑카에 전법을 떠날 때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 이렇게 스리랑카에 옮겨 심었던 보리수 나무가 없었더라면 보리수의 맥이 끊길 뻔 했다. 현재의 보리수 나무는 원래 보리수 나무의 손자뻘이 되는 나무이다. 수령은 약 100년쯤 되었고, 높이는 약 25 - 30m이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는 금강보좌(金剛寶座)가 있겠으나 어두운 데다 조명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서 알아볼 수가 없다?.
2. 아니미샤 로차나(Animisha Locana:靜眼) 스투파
2번째 주에는 정안탑에서 선정에 드셨고,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에 “7일 동안 보리수를 보는데 눈을 잠시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보리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탑의 이름인 아니미샤는 ‘움직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바라보는’이라는 뜻이다.
3.經行處
3번째 주에는 경행처에서 동서로 왕래하며 경행하셨는데, 그때 부처님께서 가벼운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피어올라 부처님의 부처님의 발을 받쳐드렸다고 하는데, 현재 이곳에는 18개의 연꽃대좌가 조성되어 있다.
4.라트나그라하 사원
네 번째 일주일, 붓다는 대탑 서쪽 가까운 곳에 있는 라트나그라하(Ratnagraha) 사당에서 선정에 들었다. 붓다는 이곳에서 범천과 제석천으로부터 칠보로 장식된 집과 칠보좌를 공양받았는데, 붓다가 여기에 앉자 몸에서 오색광명(파랑·노랑·빨강·주황·흰색)이 나타나 보리수를 비추었다고 한다.
5. 반얀(Banyan)나무- ‘법구경’을 설하신 곳
다섯 번째 일주일에는 현재 대탑 입구 계단을 내려가 계단이 끝나는 지점의 반얀(Banyan)나무 혹은 아자팔라 니그로다라고 불리는 나무가 있는 곳에서 좌정하여 선정에 들었다고 한다. 이때 한 브라흐만이 찾아와 법을 청했는데, 붓다는 ‘욕심에 물들지 않고, 다투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상대적인 것을 묻지 않고, 주어지지 않은 물건은 받지 않으며, 모든 멍에로부터 벗어나는 이가 브라흐만이며, 브라흐만은 출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으로 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6. 무칠린다(Mucalinda) 용왕 못
대보리사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이 연못에는 수많은 연꽃이 피어 그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고, 연못 가운데에는 조그만 탑 속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당시 연못의 서쪽 기슭에서 6번째 7일간 선정에 들어 계시던 부처님 주위를 연못에 살고 있는 무칠린다라는 용왕이 일곱 바퀴 둘러싸고 머리를 펼쳐 안개와 비바람, 천둥번개를 막아주었으며, 이런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이제 모든 번뇌가 다하고, 나의 할 일은 마쳤다. 나고 죽음의 바다는 마르고 구원겁에 쌓아온 원행(願行)은 다 찼다. 그러나 내가 깨달아 얻은 법은 매우 깊고 어려워 오직 부처와 부처가 서로 증명할 뿐, 저 어둡고 혼탁한 인간들은 탐진치와 사견과 교만 등에 덮이고 막히어 복은 엷고 근성은 둔하고 지혜와 선근이 없어 나의 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내가 그들에게 법을 바로 설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미혹하여 믿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요, 도리어 나를 비방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악도에 떨어져 모든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나는 차라리 조용히 열반에 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때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린 제석천왕과 범천왕 등 모든 하늘은, 생사의 바다에 빠져 헤매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대자비의 법을 설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으며, 이에 부처님께서 이 요청을 받아들이시고, 장소를 옮겨 또다시 7일 동안 선정에 드신 채 끝없는 법열을 받으셨다. (불본행집경, 잡아함경)
7. 라자야타나(Rajayatana)나무
대보리사 남쪽에 있는 이곳은 부처님께서 6주째의 선정 다음에 다시 선정에 드신 장소이다. 이곳에서 선정에 드신 가운데 깨달음의 법을 듣고 깨칠 수 있는 사람들을 관찰, 6년 전의 스승인 아라라가리마와 우드라카라마푸트라를 천안으로 관찰하였으나,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므로, 같이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법을 설하고자 마음을 정하셨다.
7선정처를 모두 돌아보고 금강좌 앞 보리수 밑에서 기도하다. 화요일 오후임에도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참배객으로 붐비는 사원을 보며 무상정각을 얻은 聖地를 숭배하는 세계 불자들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라씨코너에서 현지식 석식을 하다.
숙소 티벳사원으로 돌아와 어제 먹다 남은 양주로 회식하다.
2차 정산으로 1인당 122불 지급하다.
2020-02-19 11일차
19일 늦게 일어남.
라씨코너에서 조식. 각자 1천루피 스님에게서 받고 개별행동 하기로 함.
연꽃 8송이 사서 본존불 및 7선정처를 차례대로 순례하며 헌화함.
정안탑에서 기도함.
한국수행학교를 둘러 봄. 한국템플로서 불교수행자를 육성하는 기관임.
tirupati veg restaurent에서 제불자님 볶음밥종류, 장불자님 콩요리, 박불자와 나는 중국식 국수를 시켜 먹음.
설탕과 솦이라는 허브를 주며 입가심하라는데 그 맛이 독특함.
고고 박물관에 들러 힌두교 불교 관련 유물을 관람함.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고 리플렛도 없음. 9ㅡ10세기의 유물이 많음.
제불자님 어항용 돌 구입. 최도석 박영진 파우치 3개 구입.
제불자님 생신을 축하하는 파티를 케이크 놓고 진행. 식당사장이 직원 8명과 함께 풍선을 달고 축하해 줌.
제불자님 감동했다네요.
'안 온듯이 다녀 가소서'를 실천하기 위하여 숙소를 깨끗이 정리하고 안 입을 옷은 기부하는 뜻에서 깨끗한 상태로 남겨 두기로 함.
숙소에서 오토릭샤(auto rickshaw)를 타고 보드가야서 가야정션으로 출발. 요금 250루피.
어제 인력거 요금 200루피는 상당한 바가지 요금임을 알게 됨.
10시 50분 기차를 기다림.
2020-02-20 12일차
전일 22시 50분 1칸에 3층짜리 2개 2층짜리 1개로 총 8개 침대가 있는 기차를 타고 12시간 예정 델리로 이동 시작.
예정일 뿐 연착이 자주 되니 언제 도착하는지는 가봐야 함. 인터넷에 검색된 기차요금은 750루피.
델리 appetite restaurent에서 점심.
지하철로 공항으로 이동.지하철은 인구대국답게 시원하게 뚫린 듯. 깨끗하기도 함.
추가정산 인당 22달러 지급.
7시40분발 비행기 1시간 연발함.
기내에서 위스키 및 맥주 마시고 취침.
인도로 갈 때는 9시간 걸린 운항시간이 올때는 6시간 걸림.
항로도 같은데 속도가 훨씬 높게 시속 1000킬로미터 이상으로 비행하는 것 확인.
2020-02-21 13일차
6시 40분 인천공항 도착.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도착자 출구를 중국인 전용으로 사용하고 도착자는 환승자 출구로 바꾸어 놓아 일시 우왕좌왕함.
제불자님 따님 공항까지 마중 나오니 효심이 지극함이 어떠한지 알것이라.
7시 30분 진주행 리무진 승차.
스님 운전으로 귀가도중 남양 앞들식당에서 재첩국으로 제불자님 생신기념 점심 .
아함스님의 리드로 시작한 12일간의 인도 성지순례여행 메모는 이것으로 총총.
'탐고루주의 끄적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중에 시조 한수-2003-07-13 (0) | 2023.04.18 |
---|---|
늦봄-비가 오려나-2003-05-01 (0) | 2023.04.18 |
권태-2003-04-08 (0) | 2023.04.18 |
와운마을 천년송 (1) | 2023.04.17 |
절(拜)의 예절(禮節) (0) | 2023.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