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豊臣秀吉(풍신수길)과 平秀吉(평수길) 본문
일본관련 史書 특히 왜란 관련 史書에는 일본이나 일본 사람 앞에 늘 平 자가 붙어 있어 궁금하는데, 조선초기의 서적에도 일본인에게 平을 붙인 사례도 있으므로 꼭 왜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豊臣秀吉은 平秀吉로서 명나라도 평수길로 표기했다. 명 신종이 풍신수길에게 보내는 칙서에는 "皇帝勅諭日本國王平秀吉"라는 문구가 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평행장,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調信)는 평조신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에도 시대 묘지다이토계급( 苗字帶刀)은 모름지기 성을 가지고 있었다. 겐(源), 헤이(平) 등이고 후지와라(藤原) 외에는 한국, 중국식으로 외자이다. 예컨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성을 차용하여 헤이(平)라고 정하고 외교문서에 헤이(平)수길(秀吉)이라 하였음이 틀림없다. 히데요시의 침략을 받은 조선측 문서에서 히데요시를 가르켜 평적(平敵<임진록>)이라 쓴 것은 그 때문이다. < 탐라기행>(시바 료타로지음 박이엽 옮김. 학고재.44쪽.1998. 인용)
이익의 성호사설 25권에 있는 히데요시의 인물평에도 평수길이다. 처음 도요토미의 성은 기시다(木下)였다. 하시바시(羽柴)로 개명했다. 본성으로 헤이(平) 씨로 자칭했다. 후에 양자로 가면서 후지와라(藤原)가 되고 그 후 도요토미(豊臣)로 바꾸었다.(일본어판 위키페디아 사전 인용)고 되어있는 점으로 보아 시바의 지적처럼 도요토미가 헤이(平) 씨를 자칭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와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 왜적의 이름에 붙는 평(平)자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물론 아무런 고증은 없다.
세종 때 매년 쌀 200석을 일본에 주기로 약속이 있었다. 쌀을 받으러 오는 왜선에 부산 진성의 첨사가 확인 도장을 찍어서 가져가는 쌀 수량을 확인했다. 한관희(韓寬熙) 첨사는 어느날 부하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대마도에서 오는 왜놈은 성을 모두 '종놈이라 하고 다른 곳에서 오는 왜놈은 '시팔놈'이라 해라."
어느 부하가 한자로는 어떻게 표기하는지 묻자 종놈은 宗이라 하고 시팔놈은 平이라 쓰게 했다.
종놈을 종으로 부르는 것은 이해하나 시팔놈을 평으로 표기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는 말에, 평은 十과 八로 破字되고 남은 획 -를 조금 틀면 일본글자 노(ノ)자가되니 그래서 '시팔놈'이 된다고 했다.
그 후로 대마도인은 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종(宗)으로 시작하고 다른지방 사람은 평(平)자를 붙이게 되었다.
<인터넷 인용. 출처불명>
위 주장은 물론 견강부회이나, 재미는 있다.
멸시하고 싶은 대상을 적당한 풀이로 끼워 맞추어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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