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三國演義(삼국연의)43회-舌戰群儒와 力排眾議 본문
第四十三回
諸葛亮舌戰群儒 魯子敬力排眾議.
제43회
諸葛亮은 群儒와 설전을 벌이고, 魯子敬은 眾議를 힘써 물리치다.
卻說
魯肅、孔明辭了玄德、劉琦,登舟望柴桑郡來。
각설,
노숙과 공명은 현덕과 유기에게 작별을 고하고 배를 타고 시상군으로 향하였다.
二人在舟中共議。
두 사람이 배 안에서 함께 의논하였다.
魯肅謂孔明曰:
「先生見孫將軍,切不可實言曹操兵多將廣.」
노숙이 공명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 손장군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曹操兵多將廣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孔明曰:
「不須子敬叮嚀。
亮自有對答之語.」
공명이 말하였다.
“자경께서 당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게 나름의 對答之語가 있습니다.”
及船到岸,肅請孔明於館驛中暫歇,先自往見孫權。
배가 나루에 도착하자 노숙이 공명에게 館驛에서 잠시 쉬기를 청하고, 자신은 먼저 가서 손권을 만났다.
權正聚文武於堂上議事,聞魯肅回,急召入問曰:
「子敬往江夏,體探虛實若何?」
손권은 마침 문무 관리들을 당상에 모아서 의논하고 있다가, 노숙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불러들여 물었다.
“자경이 강하에 가서 體探虛實하니 어떠하였소?”
肅曰:
「已知其略,尚容徐稟.」
노숙이 말하였다.
“대략 알아냈습니다만 천천히 아뢰겠습니다.”
權將曹操檄文示肅曰:
「操昨遣使齎文至此,孤先發遣來使,現今會眾商議未定.」
손권이 조조의 격문을 노숙에게 보여주며 말하였다.
“조조가 어제 사자를 파견하여 격문을 여기로 보내왔소. 내가 우선 그 사자를 보내고, 지금 사람들을 모아 상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하지 못하였소.”
肅接檄文觀看。
노숙이 격문을 받아 살펴보았다.
其略曰:
그 대략은 이러하였다.
<孤近承帝命,奉詔伐罪,旄麾南指,劉琮束手;荊、襄之民,望風歸順。
今統雄兵百萬,上將千員,欲與將軍會獵於江夏,共伐劉備,同分土地,永結盟好。
幸勿觀望,速賜回音。
<내가 요즘 황제의 명을 받들어 조서에 따라 죄인을 토벌하오. 깃발을 남쪽으로 향하자 유종이 속수무책이었고 형양의 백성들은 형세를 보고 귀순하였소.
지금 씩씩한 군사 백만과 상장 1천 명을 거느려서 장군과 더불어 강하에서 힘을 합쳐 함께 유비를 토벌하고 토지를 같이 나누어 길이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오.
관망하지 말고 어서 回音을 내리시기를 바라오.>
魯肅看畢曰:
「主公尊意若何?」
노숙이 읽고 나서 말하였다.
“주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權曰:
「未有定論.」
손권이 말하였다.
“아직 정해진 논의가 없소.”
張昭曰:
「曹操擁百萬之眾,借天子之名,以征四方,拒之不順。
且主公大勢可以拒操者,長江也。
今操既得荊州,長江之險,已與我共之矣,勢不可敵。
以愚之計,不如納降為萬安之策。」
장소가 말하였다.
“조조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자의 이름을 빌려 사방을 정벌하니, 그를 거역함은 황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또한 주공의 형세상 조조에 맞설 수 있음은 장강 덕분이었습니다.
지금 그가 이미 형주를 얻었으니 장강의 험준함도 이미 우리와 공유하게 되어 지금 형세로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제가 헤아려 보건대 투항하여 萬全의 대책으로 삼음이 낫겠습니다.”
眾謀士皆曰:
「子布之言,正合天意.」
모사들 모두가 말하였다.
“자포의 말씀이 하늘의 뜻에 들어맞습니다.”
孫權沉吟不語。
손권이 깊이 신음하며 말하지 않았다.
張昭又曰:
「主公不必多疑。
如降操則東吳民安,江南六郡可保矣.」
장소가 다시 말하였다.
“주공께서는 여러 가지로 의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조조에게 항복하면 동오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강남 6군을 가히 보전할 터입니다.”
孫權低頭不語。
손권이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須臾,權起更衣,魯肅隨於權後。
잠시 뒤, 손권이 옷을 갈아입으러 일어나니 노숙이 뒤따라갔다.
權知肅意,乃執肅手而言曰:
「卿欲如何?」
손권이 노숙의 뜻을 알아차리고 노숙의 손을 붙잡고 말하였다.
“경은 어떻게 하고 싶소?”
肅曰:
「恰纔眾人所言,深誤將軍。
眾人皆可降曹操,惟將軍不可降曹操.」
노숙이 말하였다.
“방금 사람들이 한 말은 장군을 몹시 그르칠 터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해도 되겠지만 장군만은 조조에게 항복해서는 안 됩니다.”
權曰:
「何以言之?」
손권이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오?”
肅曰:
「如肅等降操,當以肅還鄉黨,累官故不失州郡也;
將軍降操,欲安所歸乎?
位不過封侯,車不過一乘,騎不過一匹,從不過數人,豈得南面稱孤哉?
眾人之意,各自為己,不可聽也。
將軍宜早定大計.」
노숙이 말하였다.
“저 같은 사람들이야 조조에게 항복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이 더해져서 州郡을 잃지 않습니다.
장군께서 조조에게 항복하시면 어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지위는 고작 列侯에 불과하고 戰車는 불과 1乘이요 탈 말은 불과 1匹이요 종들도 불과 몇 사람일 터이니 어찌 南面稱孤하겠습니까?
사람들의 뜻은 각자 자기를 위하니, 들어서는 안 됩니다.
장군께서 마땅히 어서 대계를 정하십시오!”
權歎曰:
「諸人議論,大失孤望。
子敬開說大計,正與吾見相同。
此天以子敬賜我也!
但操新得袁紹之眾,近又得荊州之兵,恐勢大難以抵敵.」
손권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람들의 의논이 내 소망을 크게 저버렸소.
자경이 큰 계책을 깨우쳐 줌이 내 견해와 꼭 맞소.
이것은 하늘이 자경을 내게 내리신 까닭이오!
다만 조조가 袁紹之眾을 새로 얻은 데다 요새 荊州之兵까지 얻었으니, 군세가 커서 대적하기가 어려울까 걱정이오.”
肅曰:
「肅至江夏,引諸葛瑾之弟諸葛亮在此。
主公可問之,便知虛實.」
노숙이 말하였다.
“제가 江夏에 가서 제갈근의 아우 제갈량을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주공께서 그에게 물어 허실을 알아내십시오.”
權曰:
「臥龍先生在此乎?」
손권이 말하였다.
“와룡선생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오?”
肅曰:
「現在館驛中安歇.」
노숙이 말하였다.
“현재 관역에서 安歇합니다.”
權曰:
「今日天晚,且未相見。
來日聚文武於帳下,先教見我江東英俊,然後升堂議事.」
손권이 말하였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만나지 못하겠소.
내일 문무 관리들을 막사로 모아서 먼저 그에게 우리 江東英俊을 보여주고 그런 뒤에 관청의 당에 올라 의논하겠소.”
肅領命而去。
노숙이 명령을 듣고 나갔다.
次日至館驛中見孔明,又囑曰:
「今見我主,切不可言曹操兵多.」
다음날 여관에 가서 공명을 만나 다시 부탁하였다.
“이제 우리 주공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曹操兵多를 말하지 마십시오.”
孔明笑曰:
「亮自見機而變,決不有誤.」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제가 나름대로 상황을 보아 대처할 터이니 결코 그르침이 없을 터입니다.”
肅乃引孔明至幕下。
노숙이 이에 공명을 막사로 데려갔다.
早見張昭、顧雍等一班文武二十餘人,峨冠博帶,整衣端坐。
벌써 장소, 고옹 등 한 무리 문무 관리 스무 명 남짓이 높은 관을 쓰고 넓은 띠를 두른 차림으로 옷맵시를 정돈하여 단정히 앉아 있었다.
孔明逐一相見,各問姓名。
공명이 逐一相見하고 각기 성명을 물었다.
施禮已畢,坐於客位。
施禮已畢하고 손님 자리에 앉았다.
張昭等見孔明丰神飄灑,器宇軒昂,料道此人必來遊說。
장소 등이 보니 공명의 풍채는 활달하고 외모는 당당하여, 이 사람은 틀림없이 유세하러 왔다고 생각하였다.
張昭先以言挑之曰:
「昭乃江東微末之士,久聞先生高臥隆中,自比管、樂。
此語果有之乎?」
장소가 먼저 말로서 떠보았다.
“저는 강동의 보잘것없는 선비이지만, 오래전부터 선생께서 高臥隆中하여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견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孔明曰:
「此亮平生小可之比也.」
공명이 말하였다.
“제가 평소에 조그맣게 견주어 봤습니다.”
昭曰:
「近聞劉豫州三顧先生於草廬之中,幸得先生,以為如魚得水,思欲席捲荊、襄。
今一旦以屬曹操,未審是何主見?」
장소가 말하였다.
“요새 듣자니 유예주가 선생의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가서 다행히 선생을 얻고는 물고기가 물을 얻은 듯이 여기고, 마음속으로 형주 양양 지방을 석권하고자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루아침에 조조에게 복속하게 됐으니 어떤 주견이 있습니까?”
孔明自思張昭乃孫權手下第一個謀士,若不先難倒他,如何說得孫權?遂答曰:
「吾觀取漢上之地,易如反掌。
我主劉豫州躬行仁義,不忍奪同宗之基業,故力辭之。
劉琮孺子,聽信佞言,暗自投降,致使曹操得以猖獗。
今我主屯兵江夏,別有良圖,非等閒可知也.」
공명이 생각하기를, ‘장소는 곧 손권의 수하 가운데서 제일가는 모사인데, 만약 먼저 그를 압도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손권을 설득하리오?’ 하고, 곧 대답하였다.
“제가 보기에 한수 상류 지방(형주)을 취함은 易如反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주공 유예주께서는 躬行仁義하여 不忍奪同宗之基業이기에 애써 사양하셨습니다.
유종은 어린애라 간사한 말을 믿고, 몰래 스스로 투항해서 결국 조조가 창궐하게 됐습니다. 지금 我主屯兵江夏는 따로 良圖가 있어서이니, 非等閒만이 알 수 있습니다.”
昭曰:
「若此,是先生言行相違也。
先生自比管、樂:
管仲相桓公,霸諸侯,一匡天下;
樂毅扶持微弱之燕,下齊七十餘城;
此二人者,真濟世之才也。
先生在草廬之中,但笑傲風月,抱膝危坐;
今既從事劉豫州,當為生靈興利除害,剿滅亂賊。
且劉豫州未得先生之前,尚且縱橫寰宇,割據城池;
今得先生,人皆仰望:
雖三尺童蒙,亦謂彪虎生翼,將見漢室復興,曹氏即滅矣;
朝廷舊臣,山林隱士,無不拭目而待:
以為拂高天之雲翳,仰日月之光輝,拯民於水火之中,措天下於衽席之上,在此時也。
何先生自歸豫州,曹兵一出,棄甲拋戈,望風而竄;上不能報劉表以安庶民,下不能輔孤子而據疆土;乃棄新野,走樊城,敗當陽,奔夏口,無容身之地;是豫州既得先生之後,反不如其初也。
管仲、樂毅,果如是乎?
愚直之言,幸勿見怪.」
장소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선생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견준다고 하셨는데,
관중은 桓公을 도와서 제후를 제패하고 천하를 크게 바로잡았습니다.
악의는 미약한 연나라를 떠받쳐서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참으로 濟世之才입니다.
선생은 草廬之中서 단지 笑傲風月하며 무릎을 싸안고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 유예주를 종사하니 마땅히 백성들을 위해 興利除害하며 剿滅亂賊해야 합니다.
또 유예주는 선생을 얻지 못했을 예전에는 오히려 천하를 종횡하고 성지를 할거했습니다.
지금 선생을 얻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봤습니다.
비록 三尺童蒙도 역시 彪虎生翼이어서 장차 漢室復興과 曹氏即滅을 보리라 여겼습니다.
朝廷舊臣과 山林隱士도 눈을 씻고 기대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拂高天之雲翳하여 仰日月之光輝하게 하고, 拯民於水火之中하여 措天下於衽席之上함이 이때에 달렸다고 여겼습니다.
선생이 유예주를 모신 뒤 조조의 군대가 한 번 출동하니,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형세만 보고도 달아나서, 위로는 유표에 보답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외로운 아들을 도와 疆土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신야를 포기하고 번성으로 달아나더니 당양에서 패전하여 하구로 달아나니 容身之地도 없습니다.
이것은 유예주가 선생을 얻은 뒤의 일이니, 도리어 예전보다 못하게 되었습니다.
관중과 악의가 과연 이러했습니까?
愚直之言을 언짢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孔明聽罷,啞然而笑曰:
「鵬飛萬里,其志豈群鳥能識哉?
譬如人染沉痾,當先用糜粥以飲之,和藥以服之;待其腑臟調和,形體漸安,然後用肉食以補之,猛藥以治之;則病根盡去,人得全生也。
若不待氣脈和緩,便投以猛藥厚味,欲求安保,誠為難矣。
吾主劉豫州,向日軍敗於汝南,寄跡劉表,兵不滿千,將止關、張、趙雲而已;此正如病勢尪羸已極之時也。
新野山僻小縣,人民稀少,糧食鮮薄,豫州不過暫借以容身,豈真將坐守於此耶?
夫以甲兵不完,城郭不固,軍不經練,糧不繼日,然而博望燒屯,白河用水,使夏侯惇、曹仁輩心驚膽裂;
竊謂管仲、樂毅之用兵,未必過此。
至於劉琮降操,豫州實出不知;
且又不忍乘亂奪同宗之基業,此真大仁大義也。
當陽之敗,豫州見有數十萬赴義之民,扶老攜幼相隨,不忍棄之,日行十里,不思進取江陵,甘與同敗,此亦大仁大義也。
寡不敵眾,勝負乃其常事。
昔高皇數敗於項羽,而垓下一戰成功,此非韓信之良謀乎?
夫信久事高皇,未嘗累勝。
蓋國家大計社稷安危,是有主謀,非比誇辯之徒,虛譽欺人,坐議立談,無人可及;臨機應變,百無一能。
誠為天下笑耳!」
공명이 듣고 나서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하였다.
“鵬飛萬里니 其志豈群鳥能識이리오?
비유컨대 사람이 병을 오래 앓으면 마땅히 먼저 죽을 먹은 뒤에 부드러운 약을 服用해서 내장이 조화되고 몸이 점차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뒤에 고기를 먹어 보양하고 강한 약으로 치료해야 병의 뿌리가 모조리 없어져서 사람이 온전히 살아나게 됩니다.
만약 그 기맥이 안정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강한 약과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몸을 안전하게 보존하려 하면 참으로 어려울 터입니다.
저의 주공 유예주께서는 지난날 여남에서 패전해 유표에게 몸을 맡기셨을 때 병력이 천 명에 차지 않고 장수도 겨우 관우, 장비, 조운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병세가 심하기 그지없는 때와 같습니다.
신야는 궁벽한 작은 고을이고 인민도 희소한데다 양식마저 적어서 예주께서 잠깐 몸을 둘 곳에 불과하지 어찌 참으로 장차 坐守할 곳이겠습니까?
이렇게 甲兵不完이고 城郭不固이고 軍不經練이고 糧不繼日이었지만, 박망파에서 진지를 불사르고 백하에서 수공으로 하후돈과 조인 등을 心驚膽裂하게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관중과 악의의 용병이 꼭 이보다 낫다고는 못할 터입니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것에 대해서는, 유예주께서 참으로 알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차마 같은 종친의 기업을 난리를 틈타 함부로 빼앗지 못하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크나큰 인의입니다.
당양의 패전도, 수십만의 정의를 따라나선 백성들이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이끌고 따라오는 것을 예주께서 보고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하루에 십 리를 가면서도 강릉을 빼앗으러 진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백성들과 함께 기꺼이 패전하셨으니 참으로 크게 어질고 크게 의로운 일입니다.
寡不敵眾이었으나, 승부는 전쟁에서 으레 있는 일입니다.
예전에 고조 황제는 항우에게 몇 차례 패하였지만 垓下一戰으로 공업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한신의 좋은 계책이 아닙니까?
무릇 한신이 오래전부터 고조 황제를 섬겼지만, 거듭하여 승리한 적은 없었습니다.
대저 국가의 대계와 사직의 안위는 근본 계획에 있으니, 말로만 떠벌리는 무리를 본받을 바가 아닙니다. 헛된 명예로 사람을 속이고, 앉으나 서나 의론하고 담론하는 데는 남들이 미치지 못하겠지만, 臨機應變는 백에 하나도 능함이 없습니다.
참으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따름입니다!”
這一篇言語,說得張昭並無一言回答。
이렇게 한바탕 말로 장소를 설득하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座上忽一人抗聲問曰:
「今曹公兵屯百萬,將列千員,龍驤虎視,平吞江夏,公以為何如?」
좌상에서 문득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지금 조공이 兵屯百萬하고 將列千員하여 용이 날뛰고 호랑이가 쏘아보듯이 강하를 평정해 삼키려 하는데, 공은 어떻게 여기시오?”
孔明視之,乃虞翻也。
공명이 보니 虞翻이었다.
孔明曰:
「曹操收袁紹蟻聚之兵,劫劉表烏合之眾,雖數百萬不足懼也.」
공명이 말하였다.
“조조가 원소의 蟻聚之兵을 거두고, 유표의 烏合之眾을 빼앗았으니, 비록 수는 백만이나 족히 두려워할 게 없소.”
虞翻冷笑曰:
「軍敗於當陽,計窮於夏口,區區求救於人,而猶言不懼,此真大言欺人也!」
우번이 냉소하고 말하였다.
“당양에서 군사들은 패하고 하구에서 계책이 궁하여 구구히 남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시니 이야말로 진실로 흰소리로 남을 속임이구려!”
孔明曰:
「劉豫州以數千仁義之師,安能敵百萬殘暴之眾?
退守夏口,所以待時也。
今江東兵精糧足,且有長江之險,猶欲使其主屈膝降賊,不顧天下恥笑;
由此論之,劉豫州真不懼操賊者矣!」
공명이 말하였다.
“유예주께서 數千仁義之師로써 어찌 능히 百萬殘暴之眾에 대적하겠소?
하구로 물러나 지킴은 때를 기다리기 때문이오.
지금 강동은 兵精糧足하고 또 長江之險이 있는데도 오히려 其主屈膝降賊하게 하니, 天下恥笑를 돌아보지 않음이오.
이렇게 따지면 유예주야말로 진실로 조조 도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오!”
虞翻不能對。
우번이 대꾸하지 못하였다.
座間又一人問曰:
「孔明欲效蘇秦、張儀之舌,遊說東吳耶?」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물었다.
“공명은 소진과 장의의 혀를 본받아 동오에 유세하시오?”
孔明視之,乃步騭也。
공명이 보니 그는 步騭이었다.
孔明曰:
「步子山以蘇秦、張儀為辯士,不知蘇秦、張儀亦豪傑也。
蘇秦佩六國相印,張儀兩次相秦,皆有匡扶人國之謀,非比畏強凌弱,懼刀避劍之人也。
君等聞曹操虛發詐偽之詞,便畏懼請降,敢笑蘇秦張儀乎?」
공명이 말하였다.
“보자산은 소진과 장의를 辯士로만 여길 뿐, 소진과 장의 또한 호걸임을 모르시는구려.
소진은 六國相印을 차고, 장의는 兩次相秦이니 모두 나라를 바로잡아 도와줄 지모를 가졌었소. 畏強凌弱, 懼刀避劍之人과 비교할 바 아니오.
여러분은 조조가 마구 떠들어 대는 詐偽之詞를 듣고, 畏懼請降하면서 감히 소진과 장의를 비웃소?”
步騭默然無語。
보즐이 묵묵히 말이 없었다.
忽一人問曰:
「孔明以曹操何如人也?」
문득 한 사람이 물었다.
“공명은 조조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시오?”
孔明視其人,乃薛綜也。
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바로 薛綜이었다.
孔明答曰:
「曹操乃漢賊也,又何必問?」
공명이 답하였다.
“조조는 한나라 역적인데, 또 물어볼 필요가 있겠소?”
綜曰:
「公言差矣。
漢歷傳至今,天數將終。
今曹公已有天下三分之二,人皆歸心。
劉豫州不識天時,強欲與爭,正如以卵擊石,安得不敗乎?」
설종이 말하였다.
“공의 말이 틀렸소.
한나라가 대대로 전하여 至今이나, 天數가 곧 다하려 하오.
이제 조공은 이미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사람들이 모두 마음으로 복종하고 있소.
유예주는 천시를 알지 못하고 굳이 더불어 다투려 하니 이야말로 以卵擊石인데 어찌 패하지 않겠소?”
孔明厲聲曰:
「薛敬文安得出此無父無君之言乎!
夫人生天地間,以忠孝為立身之本。
公既為漢臣,則見有不臣之人,當誓共戮之,臣之道也。
今曹操祖宗叨食漢祿,不思報效,反懷篡逆之心,天下之所共憤;
公乃以天數歸之,真無父無君之人也!
不足與語!
請勿復言!」
공명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였다.
“설경문은 어찌 此無父無君之言을 내뱉을 수 있습니까?
무릇 사람은 生天地間하여 충효를 立身之本으로 삼는 법이오.
공은 漢臣이니 不臣之人을 보면 마땅히 맹세코 함께 죽임이 신하의 도리요.
이제 조조가 조상 대대로 漢祿을 먹고도 보답할 생각 없이, 도리어 篡逆之心을 품어 天下之所共憤이오.
공은 이것을 天數歸之라 여기니 참으로 부모도 임금도 없는 사람이오!
더불어 말하기에 부족하구려!
청컨대 다시는 말하지 마시오!”
薛綜滿面羞慚,不能對答。
설종이 얼굴 가득히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지 못하였다.
座上又一人應聲問曰:
「曹操雖挾天子以令諸侯,猶是相國曹參之後。
劉豫州雖云中山靖王苗裔,卻無可稽考,眼見只是織席販屨之夫耳,何足與曹操抗衡哉!」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공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물었다.
“조조가 비록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지만 그래도 상국 조참의 후예요.
유예주가 비록 중산정왕의 후예라 말하지만, 도리어 稽考할 수 없고 눈으로 본 것은 단지 織席販屨之夫였음이니 어찌 족히 조조와 맞설 수 있겠소?”
孔明視之,乃陸績也。
공명이 보니 바로 陸績이었다.
孔明笑曰:
「公非袁術座間懷橘之陸郎乎?
請安坐聽吾一言。
曹操既為曹相國之後,則世為漢臣矣;
今乃專權肆橫,欺凌君父,是不惟無君,亦且蔑祖;
不惟漢室之亂臣,亦曹氏之賊子也!
劉豫州堂堂帝胄,當今皇帝,按譜賜爵,何云無可稽考?
且高祖起身亭長,而終有天下;
織席販屨,又何足為辱乎?
公小兒之見,不足與高士共語!」
공명이 웃으며 말하였다.
“공은 원술이 있는 자리에서 懷橘했던 육랑이 아니시오?
청컨대 편히 앉아 제 한마디를 들어보시오.
조조가 조상국의 후예라 하니, 대대로 한나라 신하였음이오.
이제 권력을 틀어쥐고 제멋대로 행사하여 임금을 속이고 능멸하니, 이것은 임금을 업신여김만이 아니라 또한 조상을 능멸함이기도 하오.
한실의 亂臣일 뿐 아니라 조씨 집안의 賊子이기도 하오!
유예주께서는 당당한 황제의 후예로서 當今皇帝께서도 按譜賜爵인데 어찌 고증할 수 없다고 하시오?
또 고조께서는 정장을 지내시다 몸을 일으켜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셨소.
織席販屨이 어찌 족히 치욕이 되겠소?
공의 어린애 같은 견해로는 高士와 더불어 말하기에 부족하오!”
陸績語塞。
육적은 말문이 막혔다.
座上一人忽曰:
「孔明所言,皆強詞奪理,均非正論,不必再言。
且請問孔明治何經典.」
자리에서 한 사람이 문득 말하였다.
“공명이 하는 말은 모두 強詞奪理라 하나같이 정론이 아니니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소.
우선 청하건대 공명은 어떤 경전을 익히셨는지 묻습니다.”
孔明視之,乃嚴畯也。
공명이 보니 그는 바로 嚴畯이었다.
孔明曰:
「尋章摘句,世之腐儒也,何能興邦立事?
且古耕莘伊尹,釣渭子牙,張良、陳平之流,鄧禹、耿弇之輩,皆有匡扶宇宙之才,未審其生平治何經典。
豈亦效書生區區於筆硯之間,數黑論黃,舞文弄墨而已乎?」
공명이 말하였다.
“尋章摘句는 世之腐儒가 하는 짓이니 어찌 능히 興邦立事할 수 있겠소?
더욱이 옛날 莘野에서 밭을 갈던 이윤이나 위수에서 낚시하던 자아나 장량, 진평 같은 사람들이나, 등우, 경엄 같은 무리는 모두 匡扶宇宙之才 가졌었지만, 그들이 평생에 무슨 경전을 익혔는지 알지 못하오.
어찌 서생을 본받아서 구구하게 붓과 벼루에 파묻혀, 시비나 가리고 舞文弄墨하고 말뿐이겠소?”
嚴畯低頭喪氣而不能對。
엄준이 머리를 숙이고 기가 꺾여 대답하지 못하였다.
忽又一人大聲曰:
「公好為大言,未必真有實學,恐適為儒者所笑耳.」
문득 한 사람이 다시 큰 소리로 말하였다.
“공은 걸핏하면 큰소리를 치는데 여태 참으로 실학을 가지지는 못했으니 아마도 선비들에게 웃음거리나 되기 알맞겠소.”
孔明視其人,乃汝南程德樞也。
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여양의 程德樞였다.
孔明答曰:
「儒有君子小人之別:
君子之儒,忠君愛國,守正惡邪,務使澤及當時,名留後世。
若夫小人之儒,惟務雕蟲,專工翰墨;
青春作賦,皓首窮經,筆下雖有千言,胸中實無一策;
且如楊雄以文章名世,而屈身事莽,不免投閣而死,此所謂小人之儒也。
雖日賦萬言,亦何取哉!」
공명이 대답하였다.
“선비에는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있소.
군자인 선비는 忠君愛國하고 守正惡邪하며, 힘써서 澤及當時하고 名留後世하게 하오.
반해서 소인인 선비는 보잘것없는 재주에 힘을 쏟고 글을 짓고 쓰는 일에 매달리오.
청춘에는 시부를 짓고 흰머리가 돼서는 경전을 연구하여 붓 밑에 비록 천 마디 말이 있더라도 가슴속에는 참으로 아무런 계책이 없소.
바로 양웅과 같이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도, 몸을 굽혀 왕망을 섬겼다가 누각에서 떨어져 죽음을 면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所謂小人之儒이오.
비록 日賦萬言한들 무엇을 취하리오!”
程德樞不能對。
정덕추가 대답하지 못하였다.
眾人見孔明對答如流,盡皆失色。
사람들은 공명이 흐르는 물처럼 대답함을 보고 모두 失色하였다.
時座上張溫、駱統二人又欲問難。
그때 자리에 있던 장온과 낙통 두 사람이 다시 난처한 질문을 하려 하였다.
忽一人自外而入,厲聲言曰:
「孔明乃當世奇才,君等以脣舌相難,非敬客之禮也。
曹操大軍臨境,不思退敵之策,乃徒鬥口耶?」
문득 한 사람이 밖에서 들어와 성난 목소리로 말하였다.
“공명은 當世奇才이거늘, 여러분이 말로써 그를 난처하게 하니 敬客之禮가 아니오.
조조의 대군이 臨境했는데 不思退敵之策하고 헛되이 鬥口하오?”
眾視其人,乃零陵人,姓黃名蓋,字公覆,現為東吳糧官。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니 바로 영릉 사람으로 성은 黃이고 이름은 蓋이며 자는 公覆인데 현재 동오에서 糧官을 맡고 있었다.
當時黃蓋謂孔明曰:
「愚聞多言獲利,不如默而無言。
何不將金石之論為我主言之,乃與眾人辯論也?」
그때 황개가 공명에게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말을 많이 해서 이익을 얻음은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했습니다.
어찌해서 金石之論을 저희 주공을 위하여 말씀드리지 않고, 뭇 사람과 변론하십니까?”
孔明曰:
「諸君不知世務,互相問難,不容不答耳.」
공명이 말하였다.
“여러분이 세상일을 모르고 제게 따져 물으니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於是黃蓋與魯肅引孔明入。
이에 황개와 노숙이 공명을 데리고 들어갔다.
至中門,正遇諸葛瑾,孔明施禮。
중문에서 마침 제갈근과 마주치니 공명이 인사를 올렸다.
瑾曰:
「賢弟既到江東,如何不來見我?」
제갈근이 말하였다.
“아우는 강동에 도착하고도 어찌 나를 찾지 않았는가?”
孔明曰:
「弟既事劉豫州,理宜先公後私。
公事未畢,不敢及私。
望兄見諒.」
공명이 말하였다.
“아우가 유예주를 모시고 있으므로, 이치상 마땅히 先公後私입니다.
공무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감히 사사로운 일에 미치지 못합니다.
형님께서 諒解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瑾曰:
「賢弟見過吳侯,卻來敘話.」
제갈근이 말하였다.
“아우가 吳侯를 만나 보고 이야기를 나누세.”
說罷自去。
말을 마치자 떠났다.
魯肅曰:
「適間所囑,不可有誤.」
노숙이 말하였다.
“저번에 부탁드린 것,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孔明點頭應諾。
공명이 고개를 끄덕여 응낙하였다.
引至堂上,孫權降階而迎,優禮相待。
당상으로 데리고 가자 손권이 계단을 내려와 맞이하여 넉넉한 예로 待遇하였다.
施禮畢,賜孔明坐。
인사를 마치자 공명을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眾文武分兩行而立。
문무 관리들이 두 줄로 늘어섰다.
魯肅立於孔明之側,只看他講話。
노숙이 공명 곁에 서서 그가 이야기함을 지켜보았다.
孔明致玄德之意畢,偷眼看孫權,碧眼紫鬚,堂堂一表。
공명이 현덕의 뜻을 전하고 나서 슬그머니 손권을 훔쳐보았다. 푸른 눈에 자줏빛 수염으로 풍채가 당당하였다.
孔明暗思:
「此人相貌非常,只可激,不可說。
等他問時,用言激之便了.」
공명이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생김새가 남다르니 격동시켜야지 설득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가 물을 때를 기다렸다가 말로써 격동시키면 되겠다.’
獻茶已畢,孫權曰:
「多聞魯子敬談足下之才,今幸得相見,敢求教益.」
차를 대접하고 손권이 말하였다.
“노자경이 足下之才를 말함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 다행히 만났으니, 감히 요청하건대 이롭도록 가르쳐 주시오.”
孔明曰:
「不才無學,有辱明問.」
공명이 말하였다.
“재주가 없고 배우지 못해서 英明한 질문을 욕되게 할 것 같습니다.”
權曰:
「足下近在新野,佐劉豫州與曹操決戰,必深知彼軍虛實.」
손권이 말하였다.
“족하가 요새 신야에서 유예주를 도와서 조조와 결전하셨다니, 반드시 그 군대의 허실을 잘 아시겠구려.”
孔明曰:
「劉豫州兵微將寡,更兼新野城小無糧,安能與曹操相持?」
공명이 말하였다.
“유예주께서는 兵微將寡하고 신야는 城小無糧인데 어찌 능히 조조와 맞섰겠습니까?”
權曰:
「曹兵共有多少?」
손권이 말하였다.
“조조의 군사는 도합 얼마나 되오?”
孔明曰:
「馬步水軍,約有一百餘萬.」
공명이 말하였다.
“기병과 보명, 수군을 합쳐서 대략 1백여 만입니다.”
權曰:
「莫非詐乎?」
손권이 말하였다.
“거짓말이겠지요?”
孔明曰:
「非詐也。
曹操就兗州已有青州軍二十萬;
平了袁紹,又得五六十萬,中原新招之兵三四十萬;
今又得荊州之軍二三十萬。
以此計之,不下一百五十萬。
亮以百萬言之,恐驚江東之士也.」
“거짓이 아닙니다.
조조는 연주에 갈 때 이미 청주군 20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소를 평정하고 다시 5, 6십만을 얻었고, 중원에서 새로 뽑아서 모은 병력이 3, 4십만입니다.
이제 다시 형주의 군대 2, 3십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적어도 1백 5십만입니다.
제가 1백만이라 말씀드림은 江東之士를 놀라게 할까 염려해서입니다.”
魯肅在旁,聞言失色,以目視孔明;孔明只做不見。
노숙이 곁에서 그 말을 듣고 실색해서 공명에게 눈짓을 했으나, 공명이 못 본 듯하였다.
權曰:
「曹操部下戰將,還有多少?」
손권이 말하였다.
“조조 부하 중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장수는 또한 얼마나 되오?”
孔明曰:
「足智多謀之士,能征慣戰之將,何止一二千人!」
공명이 말하였다.
“지모가 많은 謀士와 전투를 능숙히 할 將帥가 어찌 1~2천 명뿐이겠습니까!”
權曰:
「今曹操平了荊、楚,復有遠圖乎?」
손권이 말하였다.
“지금 조조가 형주 초나라 지역을 평정했는데 다시 멀리까지 도모하겠소?”
孔明曰:
「即今沿江下寨,準備戰船,不欲圖江東,待取何地!」
공명이 말하였다.
“바로 지금 강가를 따라 진지를 세우고 전선을 준비하는데, 강동을 도모하고자 하지 않으면 어느 땅을 취하고자 기다리겠습니까!”
權曰:
「若彼有吞併之意,戰與不戰,請足下為我一決.」
손권이 말하였다.
“그에게 병탄할 마음이 있으면, 싸워야 할지 싸우지 말아야 할지 청하건대 그대가 나를 위해 한번 결정해 주시오.”
孔明曰:
「亮有一言,但恐將軍不肯聽從.」
공명이 말하였다.
“제게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 다만 아마도 장군께서 聽從하려 않을 터입니다.”
權曰:
「願聞高論.」
손권이 말하였다.
“바라건대 高論을 듣고 싶소.”
孔明曰:
「向者宇內大亂,故將軍起江東,劉豫州收眾漢南,與曹操並爭天下。
今操芟除大難,略已平矣;
近又新破荊州,威震海內;
縱有英雄,無用武之地:故豫州遁逃至此。
願將軍量力而處之。
若能以吳、越之眾,與中國抗衡,不如早與之絕;
若其不能,何不從眾謀士之論,按兵束甲,北面而事之?」
공명이 말하였다.
“예전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던 까닭에 장군께서 강동에서 일어나고 유예주께서 한수 남쪽에서 무리를 모아서 조조와 나란히 천하를 다투었습니다.
이제 조조는 큰 어려움을 없애버리고 대략 평정을 끝냈습니다.
요새 다시 형주를 깨뜨려 위세가 천하를 뒤흔듭니다.
비록 영웅이 있더라도 무력을 쓸 수 있는 땅이 없게 되어 예주께서 여기까지 도망쳐 왔습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힘을 헤아려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吳越의 군사로써 중원과 맞설 수 있다면 일찍 조조와 절교함이 좋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어찌 모사들의 의논을 쫓아 병력을 거두고 갑옷을 묶고 北面하여 그를 섬기지 않습니까?”
權未及答。
손권이 미처 답하지 못하였다.
孔明又曰:
「將軍外託服從之名,內懷疑貳之見,事急而不斷,禍至無日矣.」
공명이 다시 말하였다.
“장군께서 겉으로 그에게 복종한다는 명분을 稱託하고, 안으로 의심하여 다른 견해를 가진다면, 사세가 다급한데도 결단하지 못해서 禍至無日일 것입니다.”
權曰:
「誠如君言,劉豫州何不降操?」
손권이 말하였다.
“참으로 그대의 말과 같다면 유예주께서는 어째서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소?”
孔明曰:
「昔田橫齊之壯士耳,猶守義不辱;
況劉豫州帝室之胄,英才蓋世,眾士仰慕?
事之不濟,此乃天也,又安能屈處人下乎?」
공명이 말하였다.
“옛날의 田橫은 齊之壯士일 뿐이었으나 오히려 의리를 지켜 욕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유예주께서는 帝室의 후예로서 그 영웅의 재질이 세상을 뒤덮고 선비들이 우러러 사모하지 않습니까?
일이 성공하지 못함도 하늘의 뜻이니, 어찌 몸을 굽혀 남의 밑에 처하겠습니까?”
孫權聽了孔明此言,不覺勃然變色,拂衣而起,退入後堂。
손권이 공명의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불끈 낯빛이 바뀌어, 옷을 털고 일어나 후당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眾皆哂笑而散。
사람들이 모두 비웃으며 흩어졌다.
魯肅責孔明曰:
「先生何故出此言?
幸是吾主寬洪大度,不即面責。
先生之言,藐視吾主甚矣.」
노숙이 공명을 책망하여 말하였다.
“선생은 어쩌자고 그런 말을 지껄이시오?
다행히 저희 주공께서 관대하고 도량이 넓어서 그 자리에서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의 말은 저희 주공을 몹시 깔본 것입니다.”
孔明仰面笑曰:
「何如此不能容物耶?
我自有破曹之計,彼不問我,我故不言.」
공명은 얼굴을 들고 웃었다.
“어째서 이렇게 사람을 용납하지 못합니까?
내 나름대로 조조를 깨부술 계책이 있는데 제게 묻지 않으시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肅曰:
「果有良策,肅當請主公求教.」
노숙이 말하였다.
“정말 좋은 계책이 있다면 제가 마땅히 주공께 청해 求教하도록 하겠습니다.”
孔明曰:
「吾視曹操百萬之眾,如群蟻耳!
但我一舉手,則皆為虀粉矣!」
공명이 말하였다.
“제가 보기에 조조의 백만 무리도 개미 떼 같을 뿐입니다!
제가 한번 손을 쓰면 그들 모두 가루가 될 터입니다!”
肅聞言,便入後堂,見孫權。
노숙이 말을 듣고 곧 후당으로 들어가 손권을 만났다.
權怒氣未息,顧謂肅曰:
「孔明欺吾太甚!」
손권은 노기가 가라앉지 않아 노숙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공명이 나를 업신여김이 너무 심하군!”
肅曰:
「臣亦以此責孔明,孔明反笑主公不能容物。
破曹之策,孔明不肯輕言,主公何不求之?」
노숙이 말하였다.
“신도 역시 그것 때문에 공명을 책망했더니, 공명은 도리어 주공께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비웃었습니다.
破曹之策을 공명은 가벼이 말하려 하지 않는데, 주공께서 어찌하여 그것을 구하지 않습니까?”
權回嗔作喜曰:
「原來孔明有良謀,故以言詞激我。
我一時淺見,幾誤大事.」
손권이 回嗔作喜하며 말하였다.
“알고 보니 공명이 良謀를 가지고 일부러 言詞로써 나를 격동시켰구려.
내가 한때의 얕은 생각으로 대사를 그르칠 뻔했소.”
便同魯肅重復出堂,再請孔明敘話。
곧 노숙과 함께 다시 당상으로 나가서 공명에게 대화하기를 청하였다.
權見孔明,謝曰:
「適來冒瀆威嚴,幸勿見罪.」
손권이 공명을 보고 사과하였다.
“방금 선생의 위엄을 모독함을 아무쪼록 나무라지 마시오.”
孔明亦謝曰:
「亮言語冒犯,望乞恕罪.」
공명도 역시 사과하였다.
“제 말이 무례하였으니 바라건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權邀孔明入後堂,置酒相待。
손권이 공명을 후당으로 맞아들여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數巡之後,權曰:
「曹操平生所惡者,呂布、劉表、袁紹、袁術、豫州與孤耳。
今數雄已滅,獨豫州與孤尚存。
孤不能以全吳之地,受制於人。
吾計決矣。
非劉豫州莫與當曹操者;
然豫州新敗之後,安能抗此難乎?」
몇 차례 술잔이 돈 후에 손권이 말하였다.
“조조가 평소 미워하던 자들은 여포, 유표, 원소, 원술, 예주(유비) 그리고 나뿐이오.
이제 몇 명의 영웅들이 멸망하고 예주와 내가 아직 남아 있소.
내가 동오 땅을 능히 보전하지 못한다면, 남에게 부림을 받게 될 터이오.
내 계획은 결정되었소.
유예주가 아니라면 더불어 조조와 싸울 사람이 없소.
그러나 유예주가 갓 패전한 후이니, 어찌 이 어려움을 대항하겠소?”
孔明曰:
「豫州雖新敗,然關雲長猶率精兵萬人;
劉琦領江夏戰士,亦不下萬人。
曹操之眾,遠來疲憊;
近追豫州,輕騎一日夜行三百里。
此所謂『強弩之末,勢不能穿魯縞』者也。
且北方之人,不習水戰。
荊州士民附操者,迫於勢耳;非本心也。
今將軍誠能與豫州協力同心,破曹軍必矣。
操軍破,必北還,則荊、吳之勢強,而鼎足之形成矣。
成敗之機,在於今日。
惟將軍裁之.」
공명이 말하였다.
“예주께서 비록 최근에 패하셨다 하나 관운장이 아직도 정병 1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유기가 강하의 전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역시 1만을 밑돌지 않습니다.
조조의 군대는 遠來疲憊입니다.
요새 유예주를 추격하느라 경기병으로써 하루 밤낮에 3백 리를 달렸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센 화살이라도 끝에 가서는 얇은 비단조차 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北方之人은 不習水戰입니다.
형주의 사대부와 백성이 조조에게 歸附함은 형세가 급박해서일 뿐이지 본심은 아닙니다.
이제 장군께서 진실로 유예주와 協力同心하면 조조의 군대를 격파함은 틀림없습니다.
조조 군대가 격파되면 틀림없이 北還할 터이고 형주와 동오의 세력은 강해져서 鼎足之形을 이룰 터입니다.
成敗之機는 오늘에 달렸습니다.
장군께서 잘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權大悅曰:
「先生之言,頓開茅塞。
吾意已決,更無他疑。
即日商議起兵,共滅曹操.」
손권이 크게 기뻐하였다.
“선생의 말을 들으니 頓開茅塞이오.
내 뜻은 결정됐으니 다시 다른 머뭇거릴 것이 없소.
오늘 병력을 일으킴을 상의할 테니, 함께 조조를 멸합시다.”
遂令魯肅將此意傳諭文武官員,就送孔明於館驛安歇。
마침내 노숙에게 명해서 이 뜻을 문무 관원들에게 전하게 하고, 공명을 館驛으로 보내 쉬게 하였다.
張昭知孫權欲興兵,遂與眾議曰:
「中了孔明之計也!」
장소는 손권이 興兵하려 함을 알고 곧 사람들과 의논하였다.
“공명의 계략에 빠졌구려!”
急入見權曰:
「昭等聞主公將興兵與曹操爭鋒。
主公自思比袁紹若何?
曹操向日兵微將寡,尚能一鼓克袁紹;
何況今日擁百萬之眾南征,豈可輕敵?
若聽諸葛亮之言,妄動甲兵,此所謂負薪救火也.」
급히 들어가 손권을 만나 말하였다.
“저희가 듣자니 주공께서 병력을 일으켜 조조와 싸우겠다고 합니다.
주공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원소와 비교해 어떻습니까?
조조는 지난날 兵微將寡이나 북소리 한번 울려 원소를 이겼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그가 百萬之眾을 거느려 南征하는데 어찌 함부로 대적하시겠습니까?
만약 제갈량의 말을 듣고 妄動甲兵이면 이것은 이른바 負薪救火입니다.”
孫權只低頭不語。
손권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顧雍曰:
「劉備因為曹操所敗,故欲借我江東之兵以拒之,主公奈何為其所用乎?
願聽子布之言.」
고옹이 말하였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전했으므로 우리 江東之兵을 빌려서 그에게 맞서려 함인데 주공께서 어찌해서 이용당하려 하십니까?
바라건대 자포의 말을 들으소서.”
孫權沉吟未決。
손권이 낮게 신음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張昭等出,魯肅入見曰:
「適張子布等,又勸主公休動兵,力主降議,此皆全軀保妻子之臣,為自謀之計耳。
願主公勿聽也.」
장소 등이 나가자 노숙이 들어와 말하였다.
“장자포 등이 또다시 주공께 군사 출동을 하지 말라고 권하며 항복하자고 힘써 주장하니 이 모두가 全軀保妻子之臣이 為自謀之計일 뿐입니다.
바라건대 따르시지 마소서.”
孫權尚在沉吟。
손권은 아직 망설이고 있다.
肅曰:
「主公若遲疑,必為眾人誤矣.」
노숙이 말하였다.
“주공께서 머뭇거리시다가는 틀림없이 사람들이 주공을 그르치고 맙니다.”
權曰:
「卿且暫退,容我三思.」
손권이 말하였다.
“경은 잠시 물러가서 내가 심사숙고하기를 기다리시오.”
肅乃退出。
이에 노숙이 물러났다.
時武將或有要戰的,文官都是要降的,議論紛紛不一。
당시에 무장들 가운데 일부는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관들은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해서, 의논이 분분해 일치되지 않았다.
且說
孫權退入內宅,寢食不安,猶豫不決。
한편,
손권은 안으로 물러갔으나, 寢食不安하고 머뭇거리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吳國太見權如此,問曰:
「何事在心,寢食俱廢?」
오국태(손권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 마음에 걸려 침식을 모두 폐하느냐?”
權曰:
「今曹操屯兵於江漢,有下江南之意。
問諸文武,或欲降者,或欲戰者。
欲待戰來,恐寡不敵眾;欲待降來,又恐曹操不容;
因此猶豫不決.」
손권이 말하였다.
“이제 조조가 강한(장강과 한수)에 진을 치고 下江南之意를 가졌습니다.
관리들에게 물으니 항복하려는 자가 있고, 싸우려는 자가 있습니다.
싸우자니 寡不敵眾일까 걱정이고 항복하자니 조조가 용납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결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吳國太曰:
「汝何不記吾姐臨終之語乎?」
오국태가 말하였다.
“너는 어찌 吾姐臨終之語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孫權如醉方醒,似夢初覺,想出這句話來。
손권이 마치 술에 취하였다가 방금 깬 듯, 꿈에서 막 깬 듯 그 말이 생각났다.
正是:
追思國母臨終語,引得周郎立戰功。
이야말로, 國母臨終語를 떠올려서, 주랑이 전공을 세우도록 이끄는구나.
畢竟說著甚的,且看下文分解。
결국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다음 회의 설명을 또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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