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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溫達(온달)

耽古樓主 2023. 3. 14. 06:17

 三國史記 권45 열전 5

溫達 高句麗平原王時人也。
온달(溫達)은 고구려 평원왕(平原王) 때의 사람이다.

容貌龍鍾可笑 中心則睟然。

용모가 못생겨 우스꽝스러웠으나 마음은 순수하였다.

 

家貧 常乞食以養母.

집이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떨어진 옷과 해진 신을 신고 거리를 왕래하니,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 했다.

 

平原王少女兒 好啼 王戱曰: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평원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자 왕이 농담 삼아 말하였다,

“네가 늘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분명 커서 사대부의 아내는 되지 못할 테니,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야겠다.”

 

王每言之。

왕은 매번 이 말을 되풀이했다.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그러다 딸이 16세가 되자,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况至尊乎?

故曰王者無戲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공주가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늘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다.’ 하셨는데, 지금 어째서 전에 한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匹夫)도 오히려 식언(食言)을 하려 하지 않거늘, 하물며 지존(至尊)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왕은 농담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대왕의 명령은 잘못되었으니, 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왕은 노해서 말했다.

“네가 내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니, 진실로 내 딸이라 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 繫肘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그러자 공주는 값비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 뒤에 매달고 궁궐을 나와 홀로 가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서 그 집에 이르렀다.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侜 以至於此乎?

惟我息不忍飢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

눈먼 늙은 어머니를 보고 그 앞에 가까이 가서 절하고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으니노모는 대답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도 지저분하여 귀인이 가까이할 사람이 못 됩니다.

지금 당신의 체취를 맡으니 향기롭기가 예사롭지 않고, 당신의 손을 만지니 부드럽기가 솜과 같으니, 반드시 천하의 귀인일 텐데, 누구의 속임수에 넘어가 이곳에 왔습니까? 내 아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해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산에 간 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공주는 나가서 산 밑에 이르러,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짊어지고 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속마음을 말하였다.

 

溫達勃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온달은 발끈 성을 내며 말하였다.

“이곳은 아녀자가 다니는 곳이 아니니, 틀림없이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이다.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遂行不顧。

그리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 버렸다.

 

公主獨歸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공주는 홀로 돌아와 사립문 밑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 모자에게 자세히 말하였다.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온달이 우물쭈물하면서 결정하지 못하자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내 아들은 몹시 지저분하여 귀인의 배필이 될 수 없으며, 우리 집은 몹시 가난해 귀인이 살기에는 마땅치 않습니다.”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

공주가 대답하였다.

“옛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이라도 찧어서 나누어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라도 옷을 지어 같이 입을 수 있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마음만 같이 한다면 어찌 꼭 부귀를 누린 뒤라야만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그리고는 금팔찌를 팔아서 밭, 집, 종, 소, 말, 그릇 등을 사들여 살림 장만을 완전히 하였다.

 

初買馬 公主語溫達曰: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처음에 말을 살 적에 공주는 온달에게 말했다.

“장사꾼의 말은 사지 말고, 꼭 국마(國馬)인데 병들고 여위어서 내놓은 것을 골라 샀다가 후에 바꾸도록 하세요.”

 

溫達如其言。

온달은 그 말대로 했다.

 

公主養飼甚勤 馬日肥且壯。

공주가 매우 정성들여 길렀더니, 말은 날로 살찌고 힘도 세졌다.

 

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 會獵樂浪之邱 以所獲猪鹿 祭天及山川神。

고구려는 항상 3월 3일에 낙랑(樂浪)의 언덕에 모여 사냥하고, 잡은 멧돼지와 사슴으로써 하늘과 산천의 신에 제사 지냈다.

 

至其日 王出獵 羣臣及五部兵士皆從。

그날이 되어 왕이 나아가 사냥하자, 신하들과 오부(五部)의 군사가 모두 따랐다.

 

於是 溫達以所養之馬隨行 其馳騁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이때 온달은 기른 말을 타고 따라갔는데, 항상 남보다 앞서 달렸고 잡은 것 또한 많아서, 그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

 

王召來問姓名 驚且異之。

왕이 불러서 성명을 묻고는 깜짝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時 後周武帝 出師伐遼東 王領軍逆戰於肄山之野。

이때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군사를 내어 요동(遼東)으로 쳐들어왔으므로,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이산(肄山)의 들에서 역습하여 싸웠다.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諸軍乘勝 奮擊大克。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래게 싸워 수십여 명을 목베어 죽이니,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서 분투하여 크게 이겼다.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第一。

공을 논함에 미쳐서 온달을 제일로 꼽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왕이 가상히 여기고 감탄하여 말하였다.

“정말 내 사위로다.”

 

備禮迎之 賜爵爲大兄 由此 寵榮尤渥 威權日盛。

예를 갖추어 그를 맞아들이고 벼슬을 주어 대형(大兄)으로 삼으니, 이로부터 총애와 영화가 더욱 두터워져 위엄과 권세가 날로 성해졌다.

 

及陽原王卽位 溫達奏曰:

“惟新羅 割我漢北之地 爲郡縣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願大王不以臣愚不肖 授之以兵 一往必還吾地。”

양원왕(陽原王)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었다.

“신라가 우리 한북(漢北)의 땅을 빼앗아 군현(郡縣)으로 만들어 백성들은 통한을 품고 부모의 나라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 신(臣)을 어리석고 불초(不肖)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한번 나아가 반드시 우리 땅을 회복하겠습니다.”

 

王許焉。

왕이 허락했다.

 

溫達臨行 誓曰:

“鷄立亭竹嶺已西 不歸於我 則不返也。”

온달은 떠나면서 맹세하였다.

“계립정(鷄立亭)과 죽령(竹嶺) 서쪽을 우리 땅으로 회복하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

 

遂行 與新羅軍 戰於阿且之城下 爲流矢所中 路而死。

드디어 나아가, 신라 군사와 아차성(阿且城) 밑에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길에서 죽었다.

 

欲葬 柩不肯動 公主來撫棺曰:

“死生決矣! 於乎歸矣!”

장사를 지내려 하니, 널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공주가 와서 널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사생이 결정났습니다! 아, 돌아가십시오.”

 

遂擧而窆。

그러자 관이 들려서 장사를 지냈다.

 

大王 聞之悲慟。

대왕이 그 사실을 듣고 매우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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