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題目 作者 原文 解釋
淸平調 其一〈청평조 첫 번째 시〉 -李白(이백) |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구름 같은 저고리와 치마, 꽃 같은 얼굴 봄바람이 난간에 스치고 이슬방울 짙어진다.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만약 群玉山 꼭대기에서 보지 못한다면 瑤臺 달빛 아래에서 만나리라.
2.通釋
양귀비의 저고리와 치마는 구름같이 아름답고 그 얼굴은 모란처럼 화사한데, 봄바람이 난간에 스치니 모란에 맺힌 이슬방울이 짙어진다.
만약 서왕모가 산다는 群玉山 꼭대기에서 그녀를 보지 못한다면, 선녀가 사는 瑤臺의 달빛 아래에서 만날 것이다.
3.解題
이백이 天寶 연간 초기에 장안에 들어와 供奉翰林이 되었을 때 지은 작품이다.
당시 이백은 현종의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侍從臣이 되었고 이때 궁정생활에 대한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淸平調〉 3수는 그중의 하나이다.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興慶宮 沈香亭에서 모란을 감상하며 이백에게 시를 지어 바치도록 하고 李龜年으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였다고 전한다.
첫 번째 수 제1구에서는 양귀비의 의복과 얼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다음 구에서는 이슬이 맺혀 빛나는 모란의 형상을 통하여 양귀비의 빛나는 자태를 묘사하였다.
3구에서는 전환이 이루어져 양귀비를 群玉山의 서왕모나 瑤臺의 선녀에 비유하여 신비한 색채를 가미하였다.
시 전체가 뛰어난 발상과 비유를 통하여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다.
이 작품이 창작되고 또한 이 작품으로 인하여 이백이 핍박을 당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唐代 李濬의 《松窗雜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開元 연간에 궁중에서는 木芍藥을 귀하게 여겼는데 지금의 모란이다.
홍색, 자색, 연홍색, 순백색 네 종류를 얻었는데, 임금이 興慶宮 못 동쪽 沈香亭 앞에 옮겨 심도록 하였다.
막 꽃이 무성하게 피려는 날 달이 뜬 밤에 임금은 太眞妃(양귀비)를 불러 歩輦을 타고 따르게 하고는 명을 내려 梨園弟子 중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16가지 종류의 소리를 갖추도록 하였다.
李龜年이 노래로써 당대에 명성을 얻었는데, 손에 檀板을 받들고 여러 악공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름난 꽃을 감상하고 妃를 마주하고 있는데 그대는 어찌 옛 곡조의 노래를 하려는가.’라고 하여 마침내 명을 내려 李龜年이 金花牋을 가지고 가서 한림학사 이백에게 하사하여 〈淸平調詞〉 三章을 지어 바치게 하였다.
이백은 기쁘게 어명을 받들었으나 숙취가 깨지 않아 여전히 괴로워하며 이에 붓을 빼어 들고 시를 썼다.…… 李龜年이 급히 이 노래를 가져다 바치자, 임금이 이원제자들에게 명하여 악기로 대략 곡을 맞추게 하고 드디어 李龜年을 재촉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太眞妃가 玻瓈七寶杯에 西涼州의 포도주를 따르고 웃음으로 권하는 뜻이 매우 후하였다.
이에 임금이 옥피리로 음률을 맞춰 불었는데 매양 곡이 한 차례 끝나려 하면 다시 불어 그 소리를 느리게 하여 아름답게 꾸몄다.
太眞이 술을 다 마시자 수놓은 수건을 거두고 임금에게 再拜하였다.
생각건대 李龜年이 五王에 대해 말하면서 오직 노래로써 스스로를 능가한 적이 이보다 뛰어난 때가 없었다고 하였으니 이 역시 한 시대의 극치이다.
임금은 이로부터 이한림(이백)을 보는 것이 다른 학사들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일찍이 高力士가 烏皮六合靴를 벗긴 것을 수치로 여기고 있었다.
다른 날 태진비가 예전의 노래를 다시 읊조리자 고역사가 장난삼아 말하기를 ‘이제야 말씀을 드립니다만, 비께서는 이백을 골수까지 원망하셔야 하는데 어찌하여 이와 같이 좋아하십니까?’라고 하였다.
태진비가 이 말을 듣고 놀라 말하기를 ‘어찌 한림학사가 이 같은 노래에서 사람을 욕보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고역사가 ‘비연으로 비를 지칭한 것은 매우 천하게 여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진은 자못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현종은 이백에게 관직을 주고 싶었지만 끝내 궁중에서 저지를 당하여 이루지 못하였다.
[開元中 禁中初重木芍藥 卽今牡丹也 得四本紅紫淺紅通白者 上因移植興慶池東沈香亭前 會花方繁開 上乘月夜召太眞妃 以歩輦從 詔特選梨園子弟中尤者 得樂十六色 李龜年以歌擅一時之名 手捧檀板 押衆樂前 欲歌之 上曰 賞名花對妃 子焉用舊樂詞 爲遂命 龜年持金花牋 宣賜翰林學士李白進淸平調詞三章 白欣承詔旨 猶苦宿酲未解 因援筆賦之……龜年遽以詞進 上命梨園子弟約略調撫絲竹 遂促龜年以歌 太眞妃持玻瓈七寶杯 酌西涼州蒲萄酒 笑領意甚厚 上因調玉笛以倚曲 每曲遍將換 則遲其聲以媚之 太眞飮罷 斂繡巾重拜上 意龜年常語於五王 獨憶以歌得自勝者 無出於此 抑亦一時之極致耳 上自是顧李翰林 尤異於他學士 會高力士終以脫烏皮六合爲深恥 異日 太眞妃重吟前詞 力士戱曰 始謂妃子怨李白深入骨髓 何拳拳如是 太眞妃因驚曰 何翰林學士能辱人如斯 力士曰 以飛燕指妃子賤甚 太眞頗深然之 上嘗欲命李白官 卒爲宮中所捍而止]”
4.集評
○ 李白淸平調詞曰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이백의 〈淸平調詞〉에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이라고 하였다.
按唐詩解云 明皇於武妃薨後 見雲而想其衣裳 見花而想其貌 當春風滴露之際 哀不勝情矣
살펴보건대, 《唐詩解》에 이르기를 “明皇(현종)이 武妃가 죽은 뒤에 구름을 보면서 그의 의상을 상상하고, 꽃을 보고 그의 모습을 상상하였으며, 봄바람에 이슬이 맺는 시절을 만나면 슬퍼서 정을 이기지 못하였다.
若此之女 非群玉之王母 卽瑤臺之佚妃 人間豈易覩乎 謂未得太眞時也
이런 여자는 群玉山에 있는 서왕모가 아니면 瑤臺의 佚妃일 것이니 인간 세상에서 어찌 쉽게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太眞(양귀비)을 얻기 전을 말한 것이다.
余謂此乃贊美貴妃之辭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양귀비를 찬미한 말이다.
想者疑其似也 言貴妃之衣裳似雲 容似花而如春露方濃也 下句比諸仙女 非人間之所有云爾 - 朝鮮 李睟光, 《芝峯類說》 卷10, 文章部(三), 唐詩
‘想’은 비슷하다고 의심하는 것이니, 양귀비의 의상은 구름과 같고, 얼굴은 꽃과 같은데 봄이슬에 흠뻑 젖은 것 같다고 말한 것이요, 아래 구절은 여러 선녀에게 비유하였으니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 此首詠太眞
이 첫 번째 수는 태진(양귀비)을 노래한 것이다.
著二想字妙
‘想’자를 두 번 쓴 것이 묘하다.
次句人接不出 卻映花說 是想之魂
다음 구에는 사람의 접근이 나오지 않으면서 오히려 꽃에 대한 이야기만 반영하고 있으니 이것이 ‘想’의 혼이다.
春風拂檻 想其綽約 露華濃 想其芳艶 脫胎烘染 化工筆也 - 淸 黃叔燦, 《唐詩箋注》 卷8
‘春風拂檻’은 꽃이 부드럽게 하늘거림을 상상하게 하고, ‘露華濃’은 그 향기가 농염함을 상상하게 하니, 畵工의 묘사를 탈피한 造化翁의 필치이다.
5.譯註
▶ 淸平調 : 唐代의 大曲 중의 하나로, 후에 詞牌로도 쓰였다.
청나라 때 편찬된 《御定詞譜》(卷40)에는 “당나라의 大小曲의 명칭은 《敎坊記》에 보인다.……竹枝, 柳枝, 浪陶沙 등의 곡조는 唐의 小曲이고,……淸平調, 水調, 涼州, 伊州 등의 곡조는 唐의 大曲이다.[唐之大小曲名 見教坊記……如竹枝柳枝浪陶沙等調 唐之小曲也……淸平調水調涼州伊州諸調 唐之大曲也]”라고 하였다.
〈淸平調〉는 唐 玄宗이 양귀비와 함께 모란꽃을 구경하면서 李白에게 지어 바치게 한 노래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 雲想衣裳花想容 : ‘雲想’과 ‘花想’의 ‘想’은 ‘像’과 같은 뜻으로 구름 모양에 양귀비의 치마저고리를 비유하고, 꽃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꽃은 모란을 지칭한다.
▶ 檻 : 난간 또는 격자가 있는 창문을 지칭한다.
▶ 露華 : 이슬방울을 꽃에 비유한 표현이다.
▶ 群玉山 : 신화와 전설에 西王母가 거처한다고 전하는 산의 이름이다.
《穆天子傳》에 “신묘년 天子가 북쪽으로 원정을 나갔다가 동쪽으로 돌아올 때 黑水로 돌아왔다.
계사년에는 群玉이라는 산에 도착하였다.[辛卯 天子北征東還 乃循黑水 癸巳 至于群玉之山]”라고 하였고, 군옥산의 주석에 “곧 《山海經》에 이르기를 ‘군옥산은 서왕모가 거처하는 곳이다.’라고 했다.[卽山海云 群玉山 西王母所居者]” 하였다.
《山海經》의 주석에 “이 산은 옥돌이 많아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此山多玉石 因以名云]”라고 하였다.
▶ 瑤臺 : 옥으로 만든 누대라는 뜻으로, 서왕모를 비롯한 선녀들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太平御覽》에 “곤륜산의 요대는 서왕모의 궁전이다.
이른바 西瑤 위의 臺라는 것으로 天眞의 秘文이 그 속에 있다.[崑崙瑤臺 西王母之宮 所謂西瑤上臺 天眞秘文在其中]”라고 하였고, 屈原의 《離騷》에는 “요대가 높이 솟아 있는 곳을 바라보니, 有娀의 아름다운 선녀가 보인다.[望瑤臺之偃蹇兮 見有娀之佚女]”라고 하였다.
▶ 武妃 : 현종의 后妃인 貞順皇后 武氏(699~737)로 武惠妃라고도 칭한다.
현종의 외삼촌인 恒安王 武攸止의 딸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궁중에서 성장하였는데, 開元 12년(724)에 현종이 정실인 王皇后를 폐위시키고 武氏를 惠妃에 봉하였다.
자신이 낳은 아들 壽王 李瑁를 후원한 李林甫와 결탁하여 太子 李瑛, 鄂王 李瑤, 光王 李琚 등을 모함하여 폐위시켰는데, 이 사건을 일으킨 뒤 38세의 나이로 곧 세상을 떠났다.
▶ 檀板 : 널빤지를 두드려서 박자를 맞추는 악기 이름이다.
▶ 일찍이……있었다 : 李白이 일찍이 당 현종 앞에서 술에 잔뜩 취한 나머지 고역사를 불러서 자기 신을 벗기게 하자, 고역사가 마지못해 그 신을 벗겨주었다.
6.引用
이 자료는 동양고전종합DB http://db.cyberseodang.or.kr/front/main/main.do 에서 인용하였습니다. 耽古樓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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