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300수

224.鹿柴(녹채)-王維(왕유)

耽古樓主 2023. 12. 13. 02:32

唐詩300首

 

1.題目 作者  原文  解釋

 

 

鹿柴〈녹채〉
-王維(왕유)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빈산에 사람 보이지 않고 사람소리 메아리만 들려올 뿐.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석양빛이 깊은 숲으로 들어와 다시 푸른 이끼 위에 비친다.

 
 

2.通釋

 

빈산에 사람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데 단지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말소리와 메아리만 들려온다.
해 지며 설핏한 석양의 희미한 빛이 깊숙한 숲속에 들어와 그윽하게 다시 푸른 이끼 위에 비친다.

 
 

3.解題

 
왕유는 나이 40이 넘어 벼슬길도 여의치 않고 자연에 정을 붙이면서 輞川谷口에 별장[別業]을 마련해 거의 半隱半官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 裴迪과 함께 시를 주고받는 일로 즐거움을 삼았다.
輞川은 陝西省 藍田縣 남쪽 嶢山 어귀에 있는데 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수레바퀴[輞] 모양의 무늬를 이룬다 해서 지어졌다.
이곳은 장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왕유의 이후 행적을 보건대 그는 여기서 은거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벼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장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별장을 마련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輞川別業은 애초 당나라 초기의 저명한 시인 宋之問의 소유였다.
현종이 즉위한 先天 元年(712)에 宋之問이 賜死당한 후 불길한 땅으로 남아 있었는데, 宋之問 사후 13, 4년이 지나 왕유가 구입하였다.
輞川別業은 자연환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시인 스스로 자연에 맞추어 건물을 배치하고 물길을 끌어 들이며 나무와 꽃을 심으면서 정성을 쏟아 자신의 손길이 미친 곳이기도 했다.
훗날 天寶 9년(750)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친상을 마친 왕유는 吏部郞中에 제수되었다.
이즈음 황제에게 表를 올려 輞川莊을 사찰로 쓸 수 있도록 희사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이에 망천별업은 절이 되어 淸源寺로 개칭되었는데 鹿苑寺 혹은 鹿原寺라고도 불렸다.
왕유는 輞川別業에서 裴迪과 酬唱하며 詩集을 엮어 《輞川集》이라 하였는데 〈鹿柴〉는 그 20首 가운데 제5수다.
〈輞川集幷序〉에 “내 별장이 망천의 산골짜기에 있다.
거기에 노닐며 쉬는 곳으로 孟城坳‧華子岡‧文杏館‧斤竹嶺‧鹿柴‧木蘭柴‧茱萸沜‧宮槐陌‧臨湖亭‧南垞‧欹湖‧柳浪‧欒家瀬‧金屑泉‧白石灘‧北垞‧竹里館‧辛夷塢‧漆園‧椒園 등이 있어 裴迪과 한가롭게 보내며 각자 절구를 지었다.[余別業在輞川山谷 其遊止有孟城坳華子岡文杏館斤竹嶺鹿柴木蘭柴茱萸沜宮槐陌臨湖亭南垞欹湖柳浪欒家瀬金屑泉白石灘北垞竹里館辛夷塢漆園椒園等 與裴迪閑暇 各賦絶句云爾]”라고 하였다.
《唐詩三百首》에는 《輞川集》 20수 가운데 〈鹿柴〉‧〈竹里館〉 두 수가 수록되었다.
《輞川集》에 수록된 시는 왕유의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특히 〈鹿柴〉는 그의 대표작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전거나 난해한 글자 그리고 주관과 감정이 섞인 언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극히 평이한 글자로 敍景만을 했을 뿐인데, 언어의 조형미와 회화성을 뛰어넘어 어떤 한 境地를 느끼게 한다.
2구에 쓰인 ‘響’은 적막을 강조하는 말이다.
참고로 裴迪은 왕유가 시를 지은 뒤에 〈同詠〉이라 해서 자신의 시를 붙였는데, 시는 다음과 같다.
“날 저물어 차가운 산 보이면, 홀로 가는 길손이 된다.
모르겠어라. 깊은 숲속의 일은, 사슴 흔적만 있을 뿐.[日夕見寒山 便爲獨往客 不知深林事 但有麏麚跡]”
 

 

 

4.集評

 

○ 佳處不在語言 與陶公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同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훌륭한 곳은 언어에 있지 않다.
陶淵明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 유연히 남산을 보네.’와 같다.

○ 鹿柴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悟通微妙 筆足以達之
〈鹿柴〉의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은 微妙한 곳을 깨달아야 필치로 전달할 수 있다.
不見人之人 卽主人也
‘不見人’의 ‘人’은 주인을 말한다.
故能見返照靑苔 - 淸 張謙宣, 《繭齋詩談》, 《淸詩話續編》
그렇기에 석양이 靑苔에 되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前二句已寫出山居之幽景
앞의 두 구는 山居의 그윽한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後二句 言深林中苔翠陰陰 日光所不及 惟夕陽自林間斜射而入 照此苔痕 深碧淺紅 相映成彩
뒤의 두 구는 깊은 숲 가운데 어두운 푸른 이끼는 햇빛도 비칠 수가 없는데, 오로지 석양만이 숲 가운데로 비껴 들어와 이 이끼를 비추니, 짙은 푸른빛과 옅은 붉은빛이 서로 비추어 채색을 이루었음을 말한 것이다.
此景無人道及 惟妙心得之 詩筆復能寫出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이러한 경치는 다른 사람들은 말로 할 수 없고 오로지 妙心을 깨달은 사람만이 붓을 들어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5.譯註

 
▶ 鹿柴 : 輞川 별장 주변에 있는 지명이다.
‘柴’는 寨를 말하는데 古字가 柴이다.
柵과 같은 말로 나무로 엮어 둘러친 울타리를 뜻한다.
▶ 返景 : 동쪽으로 되비치는 빛, 즉 석양을 말한다.
▶ 苔 : ‘莓’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深 : ‘松’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 麏麚 : 麏(균)은 노루이고, 麚(가)는 수사슴(牝鹿)이다.
 

6.引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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