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古樓主의 한문과 고전 공부
태평한화골계전19- 失天下者必此兒 본문

太平閑話滑稽傳
失天下者必此兒
高皇帝初定天下 流明王玉珍於我國 其孫明義 人品庸下.
高皇帝가 처음 천하를 평정하고, 명왕(明王) 옥진(玉珍)을 우리나라로 유배하였는데, 그 손자인 명의(明義)는 사람됨이 옹졸하고 못났다.
▶고황제: 중국 明나라 태조인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이다.
▶명왕 옥진: 명나라 사람의 이름이다.
▶명왕 옥진을 우리나라로 유배시켰는데 이 내용에는 약간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용재총화≫ (제10권)에 우리나라로 유배된 것은 명왕 옥진이 아니라 그의 아들 승(昇)이라고 했다. 민족문화추진회 편, ≪국역 대동야승 1971, 255쪽).
또 尹根壽의 ≪大東野乘≫(제1권), ≪月汀漫筆≫에도, 우리나라로 유배된 것은 진우량(陳友諒)의 아들인 이(理)와 명옥진의 아들 승(昇)이었는데, 승은 개성에 머물고, 이는 청양현으로 옮겼다고 했다. 민족문화추진회 편, ≪국역 대동야승≫(제14권), 1971, 306].
▶ 明義 : 명왕 옥진의 손자이자, 명승(明昇)의 아들이다.
▶어(於): 만송본에는 "자(子)"로 되어 있고, 일사본. 민자본에는 “우(于)"로 되어 있는데, 문맥상 만송본이 옳은 듯하다. ≪용재총화≫나 ≪월정만필≫에 우리나라로 유배된 것은 명왕옥진이 아니라 그의 아들 승이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嘗爲議政府錄事 許文敬公稠 熟視曰
假使明王得天下 失天下者 必此兒也.
일찍이 議政府의 錄事가 되었는데,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가 자세히 보고 말하였다.
"가령 명왕이 천하를 얻었다 해도, 그 천하를 잃을 자는 틀림없이 이 아이였을 터이다"
▶의정부: 조선 시대 행정부의 최고 기관이다.
▶녹사: 서울의 의정부 중추원(中樞院) 등에 속했던 아전 직함이다.
▶문경공 허조(고려 공민왕 18년(1369)~조선 세종 21년(1439)]: 조선 시대의 문신. 자는 중통(仲通), 호는 경암(敬菴)이며, 문경(文敬)은 그의 시호이다.
文敬公平生不戱言 言發自笑 諸公亦笑
문경공은 평생 농담을 하지 않았는데, 말하고 스스로 웃으니, 벼슬아치들이 또한 웃었다.
▶이 이야기는 ≪용재총화≫ (제10권)에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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